[어린이] 자녀를 축복하라
본문
여러분! 가정이 무엇을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어떤 분은 가정이란,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곳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 분은 서로 사랑을 나누는 곳이라고 한다. 먹고 자는 의식주의 기능과, 쉬고 즐기는 여가의 기능이 가정의 역할이라고 사람들은 보통 생각한다.
그러나 가정은 이런 기능 위에,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좋은 예가 있다.
미국 뉴잉글랜드에, 교회를 다니는 두 아이가 있었다. 그 중에 한 사람은, 미국의 초기 청교도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영향을 끼쳤던 사람 중 하나가 된 '조나단 에드워즈'였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나가,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신앙적인 여인과 결혼해서, 철저하게 기독교적 원리에 입각해서,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형성해 갔고, 믿음의 길을 걸어갔다. 그래서 미국 명문 대학 가운데 하나인, 프린스턴 대학을 설립하게 되었다.
반면 같은 때에, 그와 같이 자란 동네 친구 맥스 쥬크는, 뉴욕에서 술집을 경영하다 부자가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에드워드와는 반대의 길을 걸어서, 신앙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방탕했던 여인과 결혼하였고, 나중에는 자신도 신앙을 저버렸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가정은, 신앙으로 자녀를 기르면서, 가정을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 생각했던 경우이고, 무신론자 쥬크는 말 그대로, 가정을 의식주의 기능만을 갖춘 곳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뉴욕시 교육위원회에서, 논문 자료를 위해, 우연히 이 두 가문의 후손들을 조사해 보았다.
그리고 아주 놀라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우선 조나단의 5대에 걸친 후손들을 살펴보니, 전체 인원은 896명이었고, 그 가운데 총장이 12명, 교수 65명, 의사 60명, 목회자와 성직자 100명, 군장성 75명, 저술가 85명, 변호사 100명, 판사 30명, 공무원 80명, 국회의원 5명, 미국 부통령 1명이었다.
그리고 286명의 장로나 집사로 살고 있었다. 조사한 사람이 너무 큰 감동을 받았다.
반대로 가정을 의식주를 위한 곳으로만 생각했던, 쥬크의 후손들은,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의 후손은 1,292명인데, 그 조사 결과가 충격적이었다.
그 자손 중, 어릴 때 사망한 사람이 309명, 거지가 310명, 불구자가 440명, 매춘부와 창녀가 50명, 도둑으로 감방에 들어간 사람이 60명, 다른 사람을 죽인 살인자가 70명이나 나왔다. 그 외에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은, 불과 53명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축복하시되, 머리를 통해서 주신다. 아버지는 가정의 머리요 제사장이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의 복은 아버지를 통하여, 가정에 흘러간다. 아버지는 각 가정의 축복의 통로가 된다. 사랑하는 자녀들을 축복하는 일은 아버지들의 특권이요, 거룩한 임무다.
1. 가장 위대한 일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라고 했다(시127:3).
자녀를 양육하는 일이,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낳고 입히고, 먹이면, 자녀는 잘 자라는 줄 생각하고, 바깥일에 시간과 열정을 쏟았다. 이 세상의 어떤 일보다, 자녀를 양육하는 일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정치하는 일도, 경제를 살리는 일도, 회사 일도, 다른 사람이 대신해서 할 수 있다.
돈은 나중에도 벌 수 있고, 집도 나중에도 살 수 있지만, 자녀를 양육하는 일은, 그 나이에 해주지 않으면 영원히 할 수 없다. 무엇이든 때가 있다. 청소년의 시기는 키 크는 시기인데, 이때 제대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하면, 키가 크지 않는다.
자녀를 키우는 일도, 그때 그때마다, 부모가 해 주어야 할 일이 있다. 그때 하지 못하면, 평생 할 수 없고, 다시 할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는다. 강아지나 돼지는 태어나자마자, 스스로 서고 걷기 시작한다. 그러나 사람은 태어나면, 오직 젖을 빠는 일만 할 수 있다.
옛날에는 가난한 집 자녀들이나, 공부 못하는 아이들에게 문제가 많았다. 그러나 요즘 목회자나, 믿음의 가정의 자녀들에게도 문제가 있다. 대학교수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사건도 있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기독교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수하는데,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독교 역사를 돌아보면, 2천년 간 계속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촛대를 간직하고 있는 민족이나 국가는 거의 없다. 현재 성지순례를 가보면, 성령님께서 지나간 흔적뿐이지, 성령이나 말씀은 없다. 20세기 최대의 기독교 국가이며, 크나큰 선교 사역을 감당했던 미국도, 기독교가 쇠퇴해가고 있다.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수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천국이 확장되기를 원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여,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다(마28:19-20). 그런데 복음을 전하는데는 2가지 방향이 있다. 수평적인 방법과 수직적인 방법이다.
수평적인 방법은, 기독교인이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하여,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교육이다. 반면에 수직적인 방법은, 부모가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수하는 교육이다. 이 두 방법을 다 사용해야 한다.
우리 한국 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세계 선교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통계에 의하면, 한국의 유년 주일학교 증가율이 계속 줄고 있다. 미국의 교회도 자녀의 종교교육에, 심각한 위기가 왔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제대로 믿음의 교육을 시키지 못하면, 민족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먼저 내 자녀에게 말씀을 전하고 난 후, 이웃 전도도 있고, 세계 선교도 있을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우리 자녀들부터 다시 살펴보아야 할 때이다. 남은 전도하여 천국에 보내놓고, 우리집 아이는 지옥에 보낸다면, 어떻게 주님의 책망을 면하겠는가
영원한 천국에 가서, 이산가족이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자녀 교육에 실패하면, 먼 훗날 이웃 전도도 세계 선교도 있을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유대 민족은 신앙교육을 올바로 시키기 때문에, 계속 승승장구 할 수 있다. (제 설교 2004년 2월 22일 설교를 참조하세요).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배척해서 구원은 받지 못했지만, 지금까지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수하는데는 성공했다. 그래서 세계를 지배하는 민족이 되었다. 유대인의 잘못된 메시아 사상은,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그들의 성경적인 선민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어떻게 교육해야 하나요
2. 자녀들을 축복하라.
축복은 무엇인가 축복은 헬라어로 라고 한다. 이 말은 (좋은) + (말)의 합성어이다. 축복은 대개 입으로 전하는 말을 통해 전달되며, 안수행위를 수반한다.
히브리어로는 베라카( )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부여받음을 말한다. (무릎꿇다)에서 왔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무릎을 꿇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부어주신다.
그러므로, 자녀들에게 좋은 말을 해주고, 자녀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살도록 만들어 줘야 한다.
자녀를 말로서 축복하자. 힘을 줄 수 있는, 아름답고 좋은 말을 많이 해주시기 바란다.
미국 텍사스 의과대학의 스미스 교수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심장학 교수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졌고, 이를 계기로 아주 신비한 경험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쓰러진 자기 육체를 싣고, 병원 응급실로 데려가는 모습과, 침대에 누워 응급조치를 해도 소생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마치 다른 사람 보듯이, 훤히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다음엔 의사들이, 그의 얼굴을 하얀 시트로 덮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가 죽은 것으로 판단한 눈치였다. 그 후 그는 어디론가 한없이 계속 빨려들어 갔고, 마지막에는 심판대처럼 보이는, 단상 앞에 서게 되었다. 그때 그가 심판 받았던 심판의 기준은, 그가 살아있을 동안, 무수히 쏟아냈던 말이었다.
그가 예전에 무심코 내뱉은 말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는가를 깨닫게 되었고, 반대로 조그만 위로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막 심판대로 나서는데 "너에게 다시 한번 인생의 기회를 줄 테니, 좋은 일을 하면서 살라"고 했다.
그 순간 그는 다시 살아났다. 이런 모습을 본 후부터,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되었다. 다시 살아난 그는 곧바로 병원을 그만두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우리가 하는 말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중요하며, 얼마나 생명과 직결되는지 전하고 있다.
말에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큰 능력이 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셨고, 예수님께서도 말씀으로 병든 자와 죽은 자를 구하셨다.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싸움의 불씨가 되고, 잔인한 말 한마디가 삶을 파괴한다.
우리는 자녀들이 잘못을 반복했을 때, "사람되긴 다 틀렸어"이렇게 단정짓는 말을 할 때가 많다. 자녀가 이 말을 들을 때, 가슴에 비수가 박힌다. "그래 나는 사람되기 틀렸어"라고 생각하며, 깊은 수치심 모욕감을 느낀다. 그래서 열등감에 사로잡히고, 자포자기 할 뿐 아니라, 분노도 함께 느낀다.
이런 말을 자주 들으면, 부모와 아이와의 관계는 단절되고, 대신 불신과 반항심이 사이에 놓인다. 그래서 그 아이는 세상에 대해, 인간 관계에 대해 자신감이 없고, 반항적인 사람이 된다. 반복되어질 때 더욱 심각해진다. 이렇게 무시하고 모욕을 주는 말을 디스카운트(discount) 언어라고 한다.
discount는 물건을 살 때, 싸게 할인해서 사듯이, 사람의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말이다. 이와 반대로 존재를 인정하고, 격려해 주는 언어를 스트로크 언어(stroke)라고 한다.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돼",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 앞으로 잘 하면 돼"하고 격려해 주는 언어다.
이렇게 자신이 이해 받고 있으며, 소중히 여김을 받는다고 생각해서, 더 잘하려고 하고, 자신감도 갖게된다. 한 마디 덕담이 자녀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말 그대로 열매를 맺는다면, 주님의 이름으로 드려진 축복은, 또한 얼마나 놀라운 열매를 맺겠는가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인은 자녀들을 축복해야 한다. 자신이 축복 받는 순간, 내가 중요한 존재며, 축복을 받을 만한 자라고 깨닫게 된다. 나아가 자신의 미래에 대한, 깊은 암시와 목표를 갖게 된다. 그래서 축복은 가장 큰 격려요, 가장 큰 유산이다.
또한 축복하고 축복 받을 때, 둘의 관계 속에는, 깊은 신뢰가 자리잡는다. 그 관계 속에 인정과 사랑, 의미, 동질성이 담긴다. 또 축복은 생명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고,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의미를 깨우치게 해준다. 이런 행위는 자녀들의 삶에 경건의 씨앗을 심게 된다.
청교도들은 지식보다 경건을 더 중요시했고, 경건의 씨앗은 초기에 심을수록 좋다고 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바로 자녀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해 주는 일이다. 그때 그들은 시들지 않는 꿈나무로 자라게 된다. 말만 잘하면 되는가 아니다.
3. 자녀들에게 행동으로 보여줘라.
영화 "아름다운 비행"을 보면, 야생 거위들이 자기들을 부화시킨 소녀를 어미로 착각하고, 그 뒤를 따라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거위는 알에서 태어나면서, 처음 본 것을 어미로 기억하는 습성이 있다.
이런 현상을 전문 용어로 "imprinting"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오리를 대상으로 실험해보면, 오리는 아무리 어미의 소리를 들려주거나, 환경을 바꾸어도, 자기가 태어나면서 처음 본 것 외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소리로 듣고 몸으로 느끼는 것보다, 눈으로 보고 배운 것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이런 임프린팅 효과가 자녀교육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면, 솔로몬 왕이 죽은 후, 나라가 분열되는데,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 왕국은, 각각 10명과 14명이 아버지의 왕국을 물려받아 왕이 되었다.
그런데 이들 중에, 북 이스라엘에서 아버지가 악한 왕이었을 경우, 아버지를 닮아 아들까지 악한 정치를 펼치는 확률이 100%다. 또 남 유다 왕국에서도 아버지의 성품을 따라 아들이 착해지기도 하고 악해지기도 하는 확률이 64. 3%로 나타났다.
이를 합치면 전체 24명의 왕들 가운데, 아버지의 행동을 그대로 닮은 사람이 19명으로 나타난다. 평균 79. 2%가 아버지를 그대로 닮게 되었다. 분명히 이스라엘의 왕들도 자녀들에게, 가장 훌륭한 교사들을 데려다가, 여러 가지 교육을 받도록 했다.
그런데도 왕의 자녀가 부모님의 말보다, 교사의 말보다, 자신들이 어려서부터 보고자란 아버지의 모습에 더 큰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백성을 착취하고, 우상을 섬기기 시작하면, 영락없이 폭군이 되고, 우상 숭배자가 되었다. 바로 이런 것이 imprinting(각인) 효과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자녀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말이나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부모님의 살아있는 모습 그 자체다. 엄마 아빠는 TV 앞에 붙어살면서, 자녀들에게만 TV 보지말고, 공부 좀 하라고 하면, 아이들이 어떻게 반응할까요
맞아 TV는 어른들이나 보는 것이니까, 엄마 말씀 들어야지, 이렇게 생각하는 아이가 있을까요 없다. 그 대신 아이들은 "치사하게 엄마는 TV보면서, 나만 공부하래"이렇게 말하게 된다. 그래서 부모와 자녀 사이에, 회복되기 어려운 거리감을 만든다.
이런 비극을 맞지 않으려면, 자녀 교육을 입으로만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은 집에서 성경 한 줄도 읽지 않고, 기도 한번 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만 "성경을 읽어라, 기도해라"고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런 교육은 단 1%의 효과도 기대할 수 없는 속 빈 교육이다.
하지만 몸으로 하는 교육, 행동으로 보여주는 교육, 몸으로 실천하는 교육은 다르다. 그런 교육이 100% 자녀에게 변화를 가져온다. 그럴 때 가정의 질서가 잡히고, 올바른 가정의 모습이다. 이렇듯 자녀교육에서 성공하려면 말이 아니라, 모범으로 가르쳐야 한다.
신앙생활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말씀을 보는 일과 기도하는 일에 모범이 되어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모범이 되어야 한다. 야곱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는(예배하는)법을 자녀들에게 가르쳤다.
야곱의 삶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쳤다. 마지막을 예배로 마침은, 참으로 엄숙하고 아름답다.
야곱은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고 경배하였다. 야곱이 일어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경배했다. 죽을 때가 이르렀으며, 병들어 침상이 누워 있었다. 이제 앉고 일어서는 일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기력이 다 쇠진한 때였다.
그러나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그를 도우시고 인도하셨던 여호와 하나님, 모든 환난 가운데서 건지셨던 여호와 하나님, 그리고 그의 조부 아브라함과, 그의 아버지 이삭이 섬기시던 그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므로 그의 생애를 마감하였다.
이처럼 야곱은, 그가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살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를 드렸다. 살아있는 마지막 순간을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함으로, 믿음의 예배를 통하여 그의 생애를 결산하였다. 야곱과 같이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시기 바란다. 그럴 때, 우리 자녀들이 보고 배운다.
18세기 영국에서 거대한 영적 대각성 운동을 벌였던, 존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는, 독특한 자녀 교육방법으로, 후세의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녀가 자녀 교육에 가장 역점을 두었던 부분은 말씀을 읽는 것이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자녀들에게 성경을 읽게 했다.
감리교회의 창시자가 된 존 웨슬리는, 5살 때부터 창세기를 가르쳤다. 아예 글자를 배우기 시작할 나이부터 성경으로 알파벳과 영어를 가르쳤다. 뿐만 아니라 매일 저녁, 아이들과 둘러앉아 성경을 읽었다. 아이들에게만 읽으라고 시키지 않고, 자신이 몸소 성경을 읽는 모범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수산나의 임프린팅 교육을 받은 웨슬리 집안의 자녀들은, 어머니의 삶의 자세와 신앙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그 결과 수많은 찬송가를 작곡한, 찰스 웨슬리와 부패한 영국 사회를 개혁한 존 웨슬리와 같은 위인이 탄생했다.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다. 자녀들의 모습을 보면, 부모님의 얼굴까지 알 수 있다. 혹시 자녀들에게 일그러진 거울이나, 깨진 거울조각을 물려주지 말자.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부모가 되어서, 우리의 자녀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는 자녀들이 되기 바란다.
그러나 가정은 이런 기능 위에,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좋은 예가 있다.
미국 뉴잉글랜드에, 교회를 다니는 두 아이가 있었다. 그 중에 한 사람은, 미국의 초기 청교도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영향을 끼쳤던 사람 중 하나가 된 '조나단 에드워즈'였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나가,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신앙적인 여인과 결혼해서, 철저하게 기독교적 원리에 입각해서,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형성해 갔고, 믿음의 길을 걸어갔다. 그래서 미국 명문 대학 가운데 하나인, 프린스턴 대학을 설립하게 되었다.
반면 같은 때에, 그와 같이 자란 동네 친구 맥스 쥬크는, 뉴욕에서 술집을 경영하다 부자가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에드워드와는 반대의 길을 걸어서, 신앙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방탕했던 여인과 결혼하였고, 나중에는 자신도 신앙을 저버렸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가정은, 신앙으로 자녀를 기르면서, 가정을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 생각했던 경우이고, 무신론자 쥬크는 말 그대로, 가정을 의식주의 기능만을 갖춘 곳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뉴욕시 교육위원회에서, 논문 자료를 위해, 우연히 이 두 가문의 후손들을 조사해 보았다.
그리고 아주 놀라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우선 조나단의 5대에 걸친 후손들을 살펴보니, 전체 인원은 896명이었고, 그 가운데 총장이 12명, 교수 65명, 의사 60명, 목회자와 성직자 100명, 군장성 75명, 저술가 85명, 변호사 100명, 판사 30명, 공무원 80명, 국회의원 5명, 미국 부통령 1명이었다.
그리고 286명의 장로나 집사로 살고 있었다. 조사한 사람이 너무 큰 감동을 받았다.
반대로 가정을 의식주를 위한 곳으로만 생각했던, 쥬크의 후손들은,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의 후손은 1,292명인데, 그 조사 결과가 충격적이었다.
그 자손 중, 어릴 때 사망한 사람이 309명, 거지가 310명, 불구자가 440명, 매춘부와 창녀가 50명, 도둑으로 감방에 들어간 사람이 60명, 다른 사람을 죽인 살인자가 70명이나 나왔다. 그 외에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은, 불과 53명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축복하시되, 머리를 통해서 주신다. 아버지는 가정의 머리요 제사장이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의 복은 아버지를 통하여, 가정에 흘러간다. 아버지는 각 가정의 축복의 통로가 된다. 사랑하는 자녀들을 축복하는 일은 아버지들의 특권이요, 거룩한 임무다.
1. 가장 위대한 일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라고 했다(시127:3).
자녀를 양육하는 일이,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낳고 입히고, 먹이면, 자녀는 잘 자라는 줄 생각하고, 바깥일에 시간과 열정을 쏟았다. 이 세상의 어떤 일보다, 자녀를 양육하는 일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정치하는 일도, 경제를 살리는 일도, 회사 일도, 다른 사람이 대신해서 할 수 있다.
돈은 나중에도 벌 수 있고, 집도 나중에도 살 수 있지만, 자녀를 양육하는 일은, 그 나이에 해주지 않으면 영원히 할 수 없다. 무엇이든 때가 있다. 청소년의 시기는 키 크는 시기인데, 이때 제대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하면, 키가 크지 않는다.
자녀를 키우는 일도, 그때 그때마다, 부모가 해 주어야 할 일이 있다. 그때 하지 못하면, 평생 할 수 없고, 다시 할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는다. 강아지나 돼지는 태어나자마자, 스스로 서고 걷기 시작한다. 그러나 사람은 태어나면, 오직 젖을 빠는 일만 할 수 있다.
옛날에는 가난한 집 자녀들이나, 공부 못하는 아이들에게 문제가 많았다. 그러나 요즘 목회자나, 믿음의 가정의 자녀들에게도 문제가 있다. 대학교수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사건도 있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기독교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수하는데,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독교 역사를 돌아보면, 2천년 간 계속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촛대를 간직하고 있는 민족이나 국가는 거의 없다. 현재 성지순례를 가보면, 성령님께서 지나간 흔적뿐이지, 성령이나 말씀은 없다. 20세기 최대의 기독교 국가이며, 크나큰 선교 사역을 감당했던 미국도, 기독교가 쇠퇴해가고 있다.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수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천국이 확장되기를 원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여,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다(마28:19-20). 그런데 복음을 전하는데는 2가지 방향이 있다. 수평적인 방법과 수직적인 방법이다.
수평적인 방법은, 기독교인이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하여,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교육이다. 반면에 수직적인 방법은, 부모가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수하는 교육이다. 이 두 방법을 다 사용해야 한다.
우리 한국 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세계 선교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통계에 의하면, 한국의 유년 주일학교 증가율이 계속 줄고 있다. 미국의 교회도 자녀의 종교교육에, 심각한 위기가 왔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제대로 믿음의 교육을 시키지 못하면, 민족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먼저 내 자녀에게 말씀을 전하고 난 후, 이웃 전도도 있고, 세계 선교도 있을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우리 자녀들부터 다시 살펴보아야 할 때이다. 남은 전도하여 천국에 보내놓고, 우리집 아이는 지옥에 보낸다면, 어떻게 주님의 책망을 면하겠는가
영원한 천국에 가서, 이산가족이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자녀 교육에 실패하면, 먼 훗날 이웃 전도도 세계 선교도 있을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유대 민족은 신앙교육을 올바로 시키기 때문에, 계속 승승장구 할 수 있다. (제 설교 2004년 2월 22일 설교를 참조하세요).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배척해서 구원은 받지 못했지만, 지금까지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수하는데는 성공했다. 그래서 세계를 지배하는 민족이 되었다. 유대인의 잘못된 메시아 사상은,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그들의 성경적인 선민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어떻게 교육해야 하나요
2. 자녀들을 축복하라.
축복은 무엇인가 축복은 헬라어로 라고 한다. 이 말은 (좋은) + (말)의 합성어이다. 축복은 대개 입으로 전하는 말을 통해 전달되며, 안수행위를 수반한다.
히브리어로는 베라카( )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부여받음을 말한다. (무릎꿇다)에서 왔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무릎을 꿇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부어주신다.
그러므로, 자녀들에게 좋은 말을 해주고, 자녀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살도록 만들어 줘야 한다.
자녀를 말로서 축복하자. 힘을 줄 수 있는, 아름답고 좋은 말을 많이 해주시기 바란다.
미국 텍사스 의과대학의 스미스 교수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심장학 교수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졌고, 이를 계기로 아주 신비한 경험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쓰러진 자기 육체를 싣고, 병원 응급실로 데려가는 모습과, 침대에 누워 응급조치를 해도 소생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마치 다른 사람 보듯이, 훤히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다음엔 의사들이, 그의 얼굴을 하얀 시트로 덮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가 죽은 것으로 판단한 눈치였다. 그 후 그는 어디론가 한없이 계속 빨려들어 갔고, 마지막에는 심판대처럼 보이는, 단상 앞에 서게 되었다. 그때 그가 심판 받았던 심판의 기준은, 그가 살아있을 동안, 무수히 쏟아냈던 말이었다.
그가 예전에 무심코 내뱉은 말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는가를 깨닫게 되었고, 반대로 조그만 위로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막 심판대로 나서는데 "너에게 다시 한번 인생의 기회를 줄 테니, 좋은 일을 하면서 살라"고 했다.
그 순간 그는 다시 살아났다. 이런 모습을 본 후부터,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되었다. 다시 살아난 그는 곧바로 병원을 그만두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우리가 하는 말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중요하며, 얼마나 생명과 직결되는지 전하고 있다.
말에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큰 능력이 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셨고, 예수님께서도 말씀으로 병든 자와 죽은 자를 구하셨다.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싸움의 불씨가 되고, 잔인한 말 한마디가 삶을 파괴한다.
우리는 자녀들이 잘못을 반복했을 때, "사람되긴 다 틀렸어"이렇게 단정짓는 말을 할 때가 많다. 자녀가 이 말을 들을 때, 가슴에 비수가 박힌다. "그래 나는 사람되기 틀렸어"라고 생각하며, 깊은 수치심 모욕감을 느낀다. 그래서 열등감에 사로잡히고, 자포자기 할 뿐 아니라, 분노도 함께 느낀다.
이런 말을 자주 들으면, 부모와 아이와의 관계는 단절되고, 대신 불신과 반항심이 사이에 놓인다. 그래서 그 아이는 세상에 대해, 인간 관계에 대해 자신감이 없고, 반항적인 사람이 된다. 반복되어질 때 더욱 심각해진다. 이렇게 무시하고 모욕을 주는 말을 디스카운트(discount) 언어라고 한다.
discount는 물건을 살 때, 싸게 할인해서 사듯이, 사람의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말이다. 이와 반대로 존재를 인정하고, 격려해 주는 언어를 스트로크 언어(stroke)라고 한다.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돼",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 앞으로 잘 하면 돼"하고 격려해 주는 언어다.
이렇게 자신이 이해 받고 있으며, 소중히 여김을 받는다고 생각해서, 더 잘하려고 하고, 자신감도 갖게된다. 한 마디 덕담이 자녀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말 그대로 열매를 맺는다면, 주님의 이름으로 드려진 축복은, 또한 얼마나 놀라운 열매를 맺겠는가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인은 자녀들을 축복해야 한다. 자신이 축복 받는 순간, 내가 중요한 존재며, 축복을 받을 만한 자라고 깨닫게 된다. 나아가 자신의 미래에 대한, 깊은 암시와 목표를 갖게 된다. 그래서 축복은 가장 큰 격려요, 가장 큰 유산이다.
또한 축복하고 축복 받을 때, 둘의 관계 속에는, 깊은 신뢰가 자리잡는다. 그 관계 속에 인정과 사랑, 의미, 동질성이 담긴다. 또 축복은 생명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고,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의미를 깨우치게 해준다. 이런 행위는 자녀들의 삶에 경건의 씨앗을 심게 된다.
청교도들은 지식보다 경건을 더 중요시했고, 경건의 씨앗은 초기에 심을수록 좋다고 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바로 자녀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해 주는 일이다. 그때 그들은 시들지 않는 꿈나무로 자라게 된다. 말만 잘하면 되는가 아니다.
3. 자녀들에게 행동으로 보여줘라.
영화 "아름다운 비행"을 보면, 야생 거위들이 자기들을 부화시킨 소녀를 어미로 착각하고, 그 뒤를 따라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거위는 알에서 태어나면서, 처음 본 것을 어미로 기억하는 습성이 있다.
이런 현상을 전문 용어로 "imprinting"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오리를 대상으로 실험해보면, 오리는 아무리 어미의 소리를 들려주거나, 환경을 바꾸어도, 자기가 태어나면서 처음 본 것 외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소리로 듣고 몸으로 느끼는 것보다, 눈으로 보고 배운 것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이런 임프린팅 효과가 자녀교육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면, 솔로몬 왕이 죽은 후, 나라가 분열되는데,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 왕국은, 각각 10명과 14명이 아버지의 왕국을 물려받아 왕이 되었다.
그런데 이들 중에, 북 이스라엘에서 아버지가 악한 왕이었을 경우, 아버지를 닮아 아들까지 악한 정치를 펼치는 확률이 100%다. 또 남 유다 왕국에서도 아버지의 성품을 따라 아들이 착해지기도 하고 악해지기도 하는 확률이 64. 3%로 나타났다.
이를 합치면 전체 24명의 왕들 가운데, 아버지의 행동을 그대로 닮은 사람이 19명으로 나타난다. 평균 79. 2%가 아버지를 그대로 닮게 되었다. 분명히 이스라엘의 왕들도 자녀들에게, 가장 훌륭한 교사들을 데려다가, 여러 가지 교육을 받도록 했다.
그런데도 왕의 자녀가 부모님의 말보다, 교사의 말보다, 자신들이 어려서부터 보고자란 아버지의 모습에 더 큰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백성을 착취하고, 우상을 섬기기 시작하면, 영락없이 폭군이 되고, 우상 숭배자가 되었다. 바로 이런 것이 imprinting(각인) 효과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자녀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말이나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부모님의 살아있는 모습 그 자체다. 엄마 아빠는 TV 앞에 붙어살면서, 자녀들에게만 TV 보지말고, 공부 좀 하라고 하면, 아이들이 어떻게 반응할까요
맞아 TV는 어른들이나 보는 것이니까, 엄마 말씀 들어야지, 이렇게 생각하는 아이가 있을까요 없다. 그 대신 아이들은 "치사하게 엄마는 TV보면서, 나만 공부하래"이렇게 말하게 된다. 그래서 부모와 자녀 사이에, 회복되기 어려운 거리감을 만든다.
이런 비극을 맞지 않으려면, 자녀 교육을 입으로만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은 집에서 성경 한 줄도 읽지 않고, 기도 한번 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만 "성경을 읽어라, 기도해라"고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런 교육은 단 1%의 효과도 기대할 수 없는 속 빈 교육이다.
하지만 몸으로 하는 교육, 행동으로 보여주는 교육, 몸으로 실천하는 교육은 다르다. 그런 교육이 100% 자녀에게 변화를 가져온다. 그럴 때 가정의 질서가 잡히고, 올바른 가정의 모습이다. 이렇듯 자녀교육에서 성공하려면 말이 아니라, 모범으로 가르쳐야 한다.
신앙생활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말씀을 보는 일과 기도하는 일에 모범이 되어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모범이 되어야 한다. 야곱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는(예배하는)법을 자녀들에게 가르쳤다.
야곱의 삶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쳤다. 마지막을 예배로 마침은, 참으로 엄숙하고 아름답다.
야곱은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고 경배하였다. 야곱이 일어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경배했다. 죽을 때가 이르렀으며, 병들어 침상이 누워 있었다. 이제 앉고 일어서는 일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기력이 다 쇠진한 때였다.
그러나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그를 도우시고 인도하셨던 여호와 하나님, 모든 환난 가운데서 건지셨던 여호와 하나님, 그리고 그의 조부 아브라함과, 그의 아버지 이삭이 섬기시던 그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므로 그의 생애를 마감하였다.
이처럼 야곱은, 그가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살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를 드렸다. 살아있는 마지막 순간을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함으로, 믿음의 예배를 통하여 그의 생애를 결산하였다. 야곱과 같이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시기 바란다. 그럴 때, 우리 자녀들이 보고 배운다.
18세기 영국에서 거대한 영적 대각성 운동을 벌였던, 존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는, 독특한 자녀 교육방법으로, 후세의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녀가 자녀 교육에 가장 역점을 두었던 부분은 말씀을 읽는 것이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자녀들에게 성경을 읽게 했다.
감리교회의 창시자가 된 존 웨슬리는, 5살 때부터 창세기를 가르쳤다. 아예 글자를 배우기 시작할 나이부터 성경으로 알파벳과 영어를 가르쳤다. 뿐만 아니라 매일 저녁, 아이들과 둘러앉아 성경을 읽었다. 아이들에게만 읽으라고 시키지 않고, 자신이 몸소 성경을 읽는 모범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수산나의 임프린팅 교육을 받은 웨슬리 집안의 자녀들은, 어머니의 삶의 자세와 신앙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그 결과 수많은 찬송가를 작곡한, 찰스 웨슬리와 부패한 영국 사회를 개혁한 존 웨슬리와 같은 위인이 탄생했다.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다. 자녀들의 모습을 보면, 부모님의 얼굴까지 알 수 있다. 혹시 자녀들에게 일그러진 거울이나, 깨진 거울조각을 물려주지 말자.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부모가 되어서, 우리의 자녀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는 자녀들이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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