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믿음있는 부모의 자녀 교육!
본문
계절의 여왕 5월을 맞았습니다.
이 한 달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들의 가정에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5월은 가정의 달로서 어린이날이 있고, 어버이날이 있습니다. 그리고 스승의 날이 있습니다.
어찌 보면 5월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달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교회마다 어린이 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성경에는 어린이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무시하고 귀찮은 존재로 취급하던 당시의 상황에서도 예수님은 아이들을 안으시고 축복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장 5절과 6절에 보면 ”또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안수기도를 받기 위해 자녀들을 데리고 왔으나 제자들이 꾸짖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고 말씀하시고 저희 위에 안수하셨습니다(마19:13-15).
이처럼 기독교는 어린아이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생명도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출애굽기 2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애굽 왕 바로가 모든 히브리인 사내아이는 다 죽이도록 명령을 내린 환난의 시대에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그런 긴박한 시대에서 모세의 부모는 자녀를 어떻게 양육하였는지 살펴보면서 우리 자신들을 진단하는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옛말에 ’농사 중에 자식 농사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품안에 있을 때 자식이지 조금만 성장해도 부모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자식인 것 같습니다.
아마 어느 누구도 내 자식만큼은 이럴 것이라고 장담을 하기엔 힘든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낳기만 해 가지고는 부모의 의무를 다했다고 보면 곤란한 문제입니다.
자녀 교육이 아무리 어려워도 이 문제는 부모가 책임져야 하는 문제입니다.
쉽게 포기할 수 없고, 양보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닙니다.
모세의 부모는 정말 어려운 시대 속에서도 자녀 교육에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을 통해 믿음을 가진 부모가 어떻게 자녀를 교육할 것인지에 대해 큰 깨달음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1.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 보았습니다.
본문 23절에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7장 20절에서는 ”그때에 모세가 났는데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 부친의 집에서 석 달을 길리우더니”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2장 2절은 ”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준수함을 보고 그를 석달을 숨겼더니”라고 했습니다.
모세의 부모는 여호와 하나님이 모세를 보는 아름다움을 깨달았습니다.
이 아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아이임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부모의 본능은 아무리 미운 자식이라 할지라도 제 자식은 예쁜 것입니다.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이뻐한다는 말이 있듯이 자기 자식을 보는 부모는 본능적으로 귀하게 보는 것이지요.
그러나 모세의 부모는 육신적인 의미에서, 인간적인 면에서 아름답게 본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아름답게 본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를 내 소유물처럼 여겨서는 안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상급이요, 기업임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육신적인 안목으로 내 자녀가 예쁘다, 똑똑하다 하는 식의 관점보다는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그 아이 속에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을 보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의 숨결을 느껴야 합니다.
내 자녀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온전히 그를 여호와 하나님께 위탁할 수 있습니다.
2.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의탁했습니다.
출애굽기 2장 3절에 ”더 숨길 수 없이 되매 그를 위하여 갈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이를 거기 담아 하수가 갈대 사이에 두고”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생명이요, 여호와 하나님이 귀하게 사용하실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모세를 숨어서 키웠으나 석달이 되면서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갈대 상자를 만들고 역청으로 방수 처리를 다하고 나일강에 띄웠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 수 있는 것은 모세의 부모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자녀를 책임졌다는 사실입니다.
절대적 왕권을 가진 군주정치 속에서 왕의 명령을 어기고 석달을 길렀다는 것은 부모의 생명을 담보한 사건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부모로서도 어찌할 수 없게 되자 최선을 다해 갈대 상자를 만들어 나일강에 띄우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 버렸습니다.
여기 ’갈대 상자’는 방주라는 말입니다. 갈 상자는 창세기 6장에 나오는 방주와 같은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배는 키를 조정하여 가고 싶은 목적지로 갈 수 있는 것이지만, 방주는 키도 없이 물위에 떠 있기만 하는 것입니다. 방주라고 하는 것은 가고 싶은 곳으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모세를 방주에 넣었다는 것은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하고 모든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 맡긴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최후에는 모든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구약의 방주는 오늘의 교회요, 더 나아가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우리는 자녀를 키우면서 더 이상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사회로 내보낼 때 부모는 방주를 만들어야 합니다. 군입대할 때도 부모는 방주를 만들어야 합니다. 객지 생활을 하고, 결혼을 해서 부모 곁을 떠날 때 방주를 만들어야 합니다.
방주를 만든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모세의 부모가 방주를 만들어 모세를 거기에 넣었듯이 우리의 영원한 목자되신 예수님께 우리의 자녀를 맡겨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게 거할 곳이 예수 그리스도의 품입니다. 우리의 자녀가 세속에 물들지 않고 아름답게 성장할 곳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슴입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 자녀 교육에 힘쓰고 더 이상 내 힘으로 어찌 할 수 없을 때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고,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며, 자녀를 여호와 하나님께 맡기는 현명한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3. 믿음으로 양육시켰습니다.
본문 24절에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라고 했습니다.
비록 애굽의 공주의 아들로 입양되었지만 모세의 누이는 보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바로의 공주에게 찾아가 유모를 소개시키면서 바로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을 소개했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궁중에서 자라며 애굽의 학문과 문화를 익히면서 자랐지만 그 마음속에는 애굽인들이 알지 못하던 여호와 하나님의 생명이 자라났습니다.
세상의 권좌를 누릴 좋은 기회를 가진 모세가 어떻게 공주의 아들도 포기할 수 있었겠습니까
공주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을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25절의 말씀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더 좋아할 수 있는 믿음이 어디에서 나왔겠습니까
그것은 어머니 요게벳의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모세를 철저하게 믿음으로 키웠습니다.
그러므로 24절에서는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저 옷이나 몇 벌 사주고, 간식이나 사주는 이런 부모가 아니었습니다. 학교나 보내고 부모의 할 일을 다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그 마음속에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도록 최선을 다했다는 말입니다. 젖을 먹이면서, 때론 모세의 곁에서 너는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신앙 교육이 애굽의 모든 보화를 버릴 만한 능력을 가지게 했습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목숨을 걸고 자신이 가진 신앙을 모세에게 심어 주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자녀들에게 무엇을 심어 주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목숨을 바칠 만큼 여러분의 자녀들을 믿음으로 키워 보았습니까
알량한 기도 몇 마디로 내 자녀를 믿음으로 키웠다고 착각하지 맙시다.
역사학자 ’벤륜’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 5천년 역사란 그들 민족이 자손에게 두 가지 유산을 물려주는 역사이다. 하나는 한 권의 책이요, 다른 하나는 한 채의 집이다. 한 권의 책이란 성경이며, 한 채의 집이란 예루살렘 성전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그 누구도 꺾을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의 부모가 자녀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신앙을 철저하게 물려주었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예배 생활! 이것만큼은 절대적으로 양보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부모가 여기에 실패하면 여러분의 자식은 더 이상 소망이 없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자식에게 주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현대 감각에 맞는 옷을 입히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세상 것이 조금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자식의 영적인 문제를 부모가 소홀히 하면 그것처럼 큰 수치는 없는 것입니다.
잠언 29장 15절에는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잠언 13장 24절에도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매를 아끼는 부모는 악한 부모입니다. 요즘처럼 버릇없는 아이들을 본적이 없습니다. 자식이 우상이 되어 어찌할 줄 모르는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린이 주일을 맞아 자녀 교육에 대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부모된 성도 여러분! 정말 자식을 위해 눈물 섞인 기도를 드려 보았습니까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잘 하도록 힘을 써 보았습니까
영적인 일에 소홀히 했다면 우리는 이 시간 회개해야 합니다.
성 어거스틴은 방탕아였고, 방종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모니카의 끈질긴 눈물의 기도가 어거스틴을 성자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디모데에게 믿음을 상속한 어머니 유니게와 외조모 로이스처럼 여러분 자녀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유산으로 남기시는 믿음의 부모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한 달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들의 가정에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5월은 가정의 달로서 어린이날이 있고, 어버이날이 있습니다. 그리고 스승의 날이 있습니다.
어찌 보면 5월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달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교회마다 어린이 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성경에는 어린이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무시하고 귀찮은 존재로 취급하던 당시의 상황에서도 예수님은 아이들을 안으시고 축복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장 5절과 6절에 보면 ”또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안수기도를 받기 위해 자녀들을 데리고 왔으나 제자들이 꾸짖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고 말씀하시고 저희 위에 안수하셨습니다(마19:13-15).
이처럼 기독교는 어린아이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생명도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출애굽기 2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애굽 왕 바로가 모든 히브리인 사내아이는 다 죽이도록 명령을 내린 환난의 시대에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그런 긴박한 시대에서 모세의 부모는 자녀를 어떻게 양육하였는지 살펴보면서 우리 자신들을 진단하는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옛말에 ’농사 중에 자식 농사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품안에 있을 때 자식이지 조금만 성장해도 부모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자식인 것 같습니다.
아마 어느 누구도 내 자식만큼은 이럴 것이라고 장담을 하기엔 힘든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낳기만 해 가지고는 부모의 의무를 다했다고 보면 곤란한 문제입니다.
자녀 교육이 아무리 어려워도 이 문제는 부모가 책임져야 하는 문제입니다.
쉽게 포기할 수 없고, 양보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닙니다.
모세의 부모는 정말 어려운 시대 속에서도 자녀 교육에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을 통해 믿음을 가진 부모가 어떻게 자녀를 교육할 것인지에 대해 큰 깨달음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1.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 보았습니다.
본문 23절에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7장 20절에서는 ”그때에 모세가 났는데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 부친의 집에서 석 달을 길리우더니”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2장 2절은 ”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준수함을 보고 그를 석달을 숨겼더니”라고 했습니다.
모세의 부모는 여호와 하나님이 모세를 보는 아름다움을 깨달았습니다.
이 아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아이임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부모의 본능은 아무리 미운 자식이라 할지라도 제 자식은 예쁜 것입니다.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이뻐한다는 말이 있듯이 자기 자식을 보는 부모는 본능적으로 귀하게 보는 것이지요.
그러나 모세의 부모는 육신적인 의미에서, 인간적인 면에서 아름답게 본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아름답게 본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를 내 소유물처럼 여겨서는 안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상급이요, 기업임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육신적인 안목으로 내 자녀가 예쁘다, 똑똑하다 하는 식의 관점보다는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그 아이 속에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을 보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의 숨결을 느껴야 합니다.
내 자녀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온전히 그를 여호와 하나님께 위탁할 수 있습니다.
2.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의탁했습니다.
출애굽기 2장 3절에 ”더 숨길 수 없이 되매 그를 위하여 갈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이를 거기 담아 하수가 갈대 사이에 두고”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생명이요, 여호와 하나님이 귀하게 사용하실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모세를 숨어서 키웠으나 석달이 되면서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갈대 상자를 만들고 역청으로 방수 처리를 다하고 나일강에 띄웠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 수 있는 것은 모세의 부모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자녀를 책임졌다는 사실입니다.
절대적 왕권을 가진 군주정치 속에서 왕의 명령을 어기고 석달을 길렀다는 것은 부모의 생명을 담보한 사건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부모로서도 어찌할 수 없게 되자 최선을 다해 갈대 상자를 만들어 나일강에 띄우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 버렸습니다.
여기 ’갈대 상자’는 방주라는 말입니다. 갈 상자는 창세기 6장에 나오는 방주와 같은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배는 키를 조정하여 가고 싶은 목적지로 갈 수 있는 것이지만, 방주는 키도 없이 물위에 떠 있기만 하는 것입니다. 방주라고 하는 것은 가고 싶은 곳으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모세를 방주에 넣었다는 것은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하고 모든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 맡긴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최후에는 모든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구약의 방주는 오늘의 교회요, 더 나아가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우리는 자녀를 키우면서 더 이상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사회로 내보낼 때 부모는 방주를 만들어야 합니다. 군입대할 때도 부모는 방주를 만들어야 합니다. 객지 생활을 하고, 결혼을 해서 부모 곁을 떠날 때 방주를 만들어야 합니다.
방주를 만든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모세의 부모가 방주를 만들어 모세를 거기에 넣었듯이 우리의 영원한 목자되신 예수님께 우리의 자녀를 맡겨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게 거할 곳이 예수 그리스도의 품입니다. 우리의 자녀가 세속에 물들지 않고 아름답게 성장할 곳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슴입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 자녀 교육에 힘쓰고 더 이상 내 힘으로 어찌 할 수 없을 때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고,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며, 자녀를 여호와 하나님께 맡기는 현명한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3. 믿음으로 양육시켰습니다.
본문 24절에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라고 했습니다.
비록 애굽의 공주의 아들로 입양되었지만 모세의 누이는 보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바로의 공주에게 찾아가 유모를 소개시키면서 바로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을 소개했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궁중에서 자라며 애굽의 학문과 문화를 익히면서 자랐지만 그 마음속에는 애굽인들이 알지 못하던 여호와 하나님의 생명이 자라났습니다.
세상의 권좌를 누릴 좋은 기회를 가진 모세가 어떻게 공주의 아들도 포기할 수 있었겠습니까
공주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을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25절의 말씀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더 좋아할 수 있는 믿음이 어디에서 나왔겠습니까
그것은 어머니 요게벳의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모세를 철저하게 믿음으로 키웠습니다.
그러므로 24절에서는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저 옷이나 몇 벌 사주고, 간식이나 사주는 이런 부모가 아니었습니다. 학교나 보내고 부모의 할 일을 다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그 마음속에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도록 최선을 다했다는 말입니다. 젖을 먹이면서, 때론 모세의 곁에서 너는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신앙 교육이 애굽의 모든 보화를 버릴 만한 능력을 가지게 했습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목숨을 걸고 자신이 가진 신앙을 모세에게 심어 주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자녀들에게 무엇을 심어 주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목숨을 바칠 만큼 여러분의 자녀들을 믿음으로 키워 보았습니까
알량한 기도 몇 마디로 내 자녀를 믿음으로 키웠다고 착각하지 맙시다.
역사학자 ’벤륜’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 5천년 역사란 그들 민족이 자손에게 두 가지 유산을 물려주는 역사이다. 하나는 한 권의 책이요, 다른 하나는 한 채의 집이다. 한 권의 책이란 성경이며, 한 채의 집이란 예루살렘 성전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그 누구도 꺾을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의 부모가 자녀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신앙을 철저하게 물려주었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예배 생활! 이것만큼은 절대적으로 양보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부모가 여기에 실패하면 여러분의 자식은 더 이상 소망이 없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자식에게 주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현대 감각에 맞는 옷을 입히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세상 것이 조금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자식의 영적인 문제를 부모가 소홀히 하면 그것처럼 큰 수치는 없는 것입니다.
잠언 29장 15절에는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잠언 13장 24절에도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매를 아끼는 부모는 악한 부모입니다. 요즘처럼 버릇없는 아이들을 본적이 없습니다. 자식이 우상이 되어 어찌할 줄 모르는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린이 주일을 맞아 자녀 교육에 대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부모된 성도 여러분! 정말 자식을 위해 눈물 섞인 기도를 드려 보았습니까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잘 하도록 힘을 써 보았습니까
영적인 일에 소홀히 했다면 우리는 이 시간 회개해야 합니다.
성 어거스틴은 방탕아였고, 방종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모니카의 끈질긴 눈물의 기도가 어거스틴을 성자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디모데에게 믿음을 상속한 어머니 유니게와 외조모 로이스처럼 여러분 자녀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유산으로 남기시는 믿음의 부모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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