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자녀, 이렇게 양육하라
본문
큰아들이 제주도 공항에서 웬일로 전화를 했습니다. “아빠, 뭐 사가지고 갈까요” 제주도로 졸업 여행을 간 큰아들이 뭘 사면 좋겠냐고 전화를 한 것입니다. “오미자는 안 살 거예요. ” 큰 아들이 고등학교 수행여행 때 오미자를 사가지도 왔습니다. 중학교에 다니던 둘째딸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다가 오미자를 사왔습니다. 오빠처럼 오미자는 사오지 말라고 당부했는데 또 오미자를 사 왔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간 셋째도 언니 오빠처럼 절대 오미자를 사오지 말라고 신신당부 했는데 또 오미자를 사왔습니다. 제일 싼 값에 사온 아이는 막내였습니다. 어릴수록 돈이 없는 것으로 알고 많이 받지 않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도대체 제주도에서 수학여행 학생들을 상대로 오미자 파는 분들이 어떤 분이기에 매번 아이들의 주머니를 터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에는 대학생이라 철이 들어서 그런지 오미자는 안 산다고 하니 안심이었습니다. 삼전사기입니다. “한라봉은 어때요” 아니다. “그러면 젓갈은 어때요” 그것도 아니다. 집으로 택배로 보낸다는 것을 한사코 말렸습니다. 아이들이 있어서 힘든 일도 있지만 이렇게 웃을 일도 있습니다. 한 지붕 아래서 자녀들과 하는 사는 것이 축복입니다. 살맛나는 가정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모는 자녀를 끔찍이 사랑합니다. 유대인들이 자녀를 얼마나 위하는지를 말해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아버지가 다음과 같은 유서를 썼습니다. “내 재산 전부를 아들에게 줄 것이다. 그러나 내 아들이 진짜 바보가 되기 전에는 그 재산을 물려 줄 수 없다. ” 그 소식을 듣고 랍비가 찾아와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참으로 이상한 유서를 썼군요. 대체 당신 아들이 바보가 되지 않으면 재산을 물려주지 않겠다니, 무슨 이유라도 있는 것입니까”
랍비의 질문에 그는 갈대 하나를 입에 물더니 괴이한 울음을 내면서 마루 위를 엉금엉금 기어 다녔습니다. 그의 행동은 자기 아들이 결혼하여 아이를 갖고, 그 자식을 귀여워하게 되면 재산을 물려준다는 뜻이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인간은 바보가 된다는 속담이 여기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자녀들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으로 탈도 납니다. 얼마 전에 재벌 회장님이 아들이 맞았다고 친히 보복 폭력을 행사했다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아들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술집에서 사소한 시비로 넘어져서 다친 아들의 원수를 갚는다고 수십 명을 동원해서 현장으로 달려가서 무자비한 폭행을 가합니까 믿거나 말거나에 나올만한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이 말씀의 배경이 무엇입니까 로마 시대에는 가족에 대해서 아버지의 권위가 절대적이었습니다. 자녀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고, 새로 태어난 자녀를 죽이거나 내다버릴 수 있는 권리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녀들을 노엽게 해서 안 됩니다. 사랑과 미움을 이웃사촌입니다. 잘못된 사랑은 곧 미움과 폭력이 됩니다. 자녀를 사랑하기에 자녀를 노엽게 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을 비인격적으로 대하거나 감정적으로 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맡긴 선물로서 나의 자녀 이전에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자녀를 너무 떠받들어도 안 되지만, 노엽게 할 만큼 학대해서도 안 됩니다.
큰 집으로 이사를 가면서 텔레비전을 새로 장만했습니다. 그런데 최신형 텔레비전은 복잡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리모컨에 뭐가 그리 기능이 많은지, 설명서를 들여다봐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더구나 위성방송까지 시청하게 되자 설상가상이었습니다.
그녀가 설명서를 보면서 기능을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리모컨에 자꾸 손을 대다 보니 입력했던 기능들이 없어지는 일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그러기를 몇 차례, 어느 날 사건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빅뉴스가 많았던 터라 9시 뉴스를 보기 위해 잔뜩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 된 거야” “아니, 기다려봐. ” “이제 다 된 거지” “아냐, 조금만 더. ” 뉴스가 시작한지 5분이 지났지만, 텔레비전을 제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좀 보자. 다 끝나겠다. 입력은 나중에 해도 되잖아. ” "아냐, 다 됐다니까. " 그는 바짝 화가 났습니다. “그만 좀 해. 그만 좀. ” 그는 리모컨을 빼앗아 바닥에 내동댕이쳐 버렸습니다. 리모컨은 박살이 나버렸습니다.
다음날 냉랭한 침묵이 집안에 내려앉은 가운데 딸아이가 물었습니다. “엄마 아빠, 왜 말 안 해” “아빠, 왜 리모컨 던졌어” “몰라. 엄마한테 물어봐라. ”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지만 네 살짜리 아들이 말을 배우려는지 계속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빠, 왜 리모컨 던졌어 리모컨이 잘못했어” 어린아이들에게는 그런 행동이 커다란 충격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습니다. “아빠가 잘못한거야. 앞으로는 던지지 않을게. ” 화가 난다고 함부로 할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 눈치도 살펴야 합니다. 부모의 모습이 자녀들에게 분노나 실망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성경적인 징계
자녀를 노엽게 해서는 안 되지만,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때로는 징계가 필요합니다.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아버지의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 드리는 제물을 임의로 먹거나, 심지어 성전에 수종 드는 여인과 동침하는 악행도 저질렀습니다. 엘리가 두 아들을 제대로 징계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언약궤를 가지고 블레셋과 전쟁터에 나가서 죽었고, 언약궤는 빼앗겼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엘리는 충격을 받고 뒤로 넘어져서 죽고, 자부는 갑자가 조산하다고 죽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습니다. 바른 징계가 있었다면 엘리의 가정은 행복했을 것이고, 이스라엘의 영광은 세계 가운데 빛났을 것입니다.
다윗의 아들 암논이 이복누이 다말을 겁탈했습니다. 다윗은 암논을 제대로 징계하지 않습니다. 이에 복수심을 불태우던 다말의 친오빠인 압살롬이 암논을 살해하고 외갓집으로 도망갑니다. 다윗은 압살롬을 징계하지 않고 받아들였습니다.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을 반역했습니다. 합당한 징계가 있었다면 가정의 불화나 나라의 혼란은 없었을 것입니다.
자녀들은 옳고 그른 것을 잘 분간하지 못합니다. 아무런 경계선 없이 자녀를 양육한다는 것은, “난간도 없이 캄캄한 건물 위에 사람을 데려다 놓고 마음껏 둘러보십시오. 편안한 마음으로 좋은 시간을 갖기 바랍니다” 하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상대주의적이고 모호한 분위기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매사에 불안을 느끼지만, 일정한 규칙을 이해하고 부모로부터 그 규칙에 따라 살도록 도움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훨씬 더 안정되고 행복을 누립니다.
징계는 행동지침이나 통제된 환경을 통해 경건한 인격을 키워 가는데 필요합니다. 자녀를 징계하는 목적은 성령의 지배하심을 통해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내려놓는데 있습니다.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셨거니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느니라(히12:10). ” 여호와 하나님께 인정받고 사람들에게 귀히 여김을 받는 비결이 합당한 징계에 있습니다.
징계를 하려면 먼저 규칙을 정해야 합니다. 그 규칙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합니다. 어떤 경기든 공정한 시합이어야 합니다. 적당한 분량의 요구 사항을 정합니다. 바람직한 행동은 보상하고 격려합니다. 징계할 때에는 이유를 설명하고, 징계한 후에는 사랑을 표시합니다. 처벌도 하고 포상도 해야 합니다.
처벌은 그 효력이 일시적이고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킬 위험이 있습니다. 최선의 통제는 벌을 주기보다 적극적인 동기를 부여해 주는 것입니다. 참 잘했구나! 같은 말을 잘 사용합니다. 벌을 줄 때에는 신중해야 합니다. 조급하거나 감정대로 처벌하면 안 됩니다. 지나치게 가혹하거나 비실제적인 처벌은 부모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말의 가치를 잃게 합니다. 침착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징계해야 합니다.
징계할 때 자녀를 때릴 수는 있지만 체벌은 공정해야 합니다. 자녀의 신체를 학대하면 안 됩니다. 얼굴은 때리지 말아야 합니다. 때릴 때에는 손이 아닌 막대기를 사용해야 합니다. 비록 매는 들어도 자녀는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자녀들은 항상 자신의 한계선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부모의 인내심이 어디까지인지, 부모님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나를 사랑하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아이를 꾸중했을 때에는 잠을 재울 때 따뜻하게 재워야 합니다. 나쁜 감정은 그날로 풀어주어야 합니다. 부정적인 감정은 빨리 제거해야 합니다. 오른손으로 벌을 주었으면 왼손으로 안아 주어야 합니다. 교육을 목적으로 때릴 때에는 반드시 다른 한 손으로 껴안아 주어야 합니다. 벌을 주든지 용서하든지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자녀의 마음에 그늘이 들지 않게 하려면 늘 명쾌한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위협은 자녀를 그늘지게 할뿐 징계가 아닙니다.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자녀를 어떻게 양육해야 합니까 소극적으로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적극적으로는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교양은 훈련이나 체벌을 동반한 책망을 의미한다. 훈계는 말로 하는 교훈이나 훈계를 통해 그리스도인다운 행동 양식을 가르쳐서 자녀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첫째, 지식보다 지혜로운 자녀로 키워야 합니다. 남보다 뛰어나 게가 아니라 남과 다르게 키워야 합니다. 상대성 이론을 발견한 세계적인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은 여덟살 때까지 저능아 취급 받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말이 너무 늦어서 네 살 때까지만 해도 부모는 그를 저능아로 믿었습니다. 학교에 들어가서는 두뇌 회전이 늦고 사교적이지 못해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이 아이에게는 아무런 기적이나 업적도 기대할 수 없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자녀마다 개성과 소질이 다릅니다.
획일적으로 바라보지 말고 그 나름의 개성에 맞추어 긴 안목으로 지켜보아야 합니다. 남과 비교할 것이 아니라 다르게 성장시켜야 합니다. 우열을 다투다 보면 승자는 항상 소수에 불과하지만, 남과 다른 능력을 갖게 된다면 모든 사람이 서로 인정받고 협조하여 공존할 수 있습니다. 국어나 영어를 잘하는 자녀가 있다고 합시다. 너는 수학만 잘하면 일류대학에 들어갈 수 있을거야 라고 말하지 말고, 어학이나 문과 계통에 네게 좋겠다고 말해야 합니다.
중세 시대의 유대인이 직업은 의사와 여행자뿐이었습니다. 교육을 받아 의사가 되어 안주하느냐, 아니면 어디서나 통용되는 지혜를 배워 순회하면서 두뇌를 활용해 상업을 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의지할 것은 지혜밖에 없었습니다. 지혜가 없다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부자들만 태운 배에 랍비 한 사람이 올랐습니다. 부자들이 서로 재산을 비교할 때 한 랍비가 끼어들었습니다.
“여기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바로 나일 것이요. 그런데 지금 이곳에서는 보여줄 수 없군요. ” 사람들은 웃었습니다. 한 눈에도 랍비는 행색이 초라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그 배는 해적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부자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을 다 빼앗겼습니다. 배가 항구에 도착하고, 랍비는 그곳에 학교를 열어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사람들이 모여들자 랍비는 큰 재산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함께 여행을 하던 부자들은 완전히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부자들은 그 때서야 비로소 랍비가 한 말의 뜻을 알았습니다. 지혜에서 뒤지는 자는 매사에 뒤집니다. 지혜 없는 부자의 재산은 결국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둘째, 마음이 따뜻한 아이로 키워야 합니다. 오른손으로 벌을 주었으면 왼손으로 안아 줍시다. 아이를 꾸중했으면 잠을 재울 때에는 따뜻하게 대합시다. 나쁜 감정은 그날로 풀어줍시다. 평생 배우게 하려면 어릴 때 충분히 놀게 합시다. 놀이는 자녀의 정신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것을 빼앗으면서 공부를 강요하는 것은 긴 안목으로 볼 때 현명한 방법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휴일에 자녀와 대화하면서 보냅시다.
적어도 주일만큼은 함께 예배드리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고홍주 박사 가정은 주일에 부모님과 형제들이 함께 예배드리고 대화하는 날이었습니다. 그것이 성공적인 자녀 교육의 기초였습니다. 낚시나 골프 등으로 자신의 시간을 위해 외출해버린다면 자녀와 함께 하는 기회는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배울 점이 있는 친구를 선택하게 합니다. 친구를 고를 때에는 한 단계 올라서야 합니다. 그 친구로 인하여 자극을 받아 성장하는데 도움을 되는 친구라야 합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합니다. 친절이 자산입니다. 선행을 통해 사회를 배우게 합니다. 왕이 한 남자에게 입궁을 명하였다. 첫째 친구는 냉담하게 거절했고, 둘째 친구는 왕궁까지만 데려다 주었고, 셋째 친구는 임금을 만나려 같이 갔습니다. 첫째는 재물이고, 둘째는 친척이고, 셋째는 선행이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끝까지 우리와 함께 할 것은 선행입니다. 물질이나 친척보다 선행이 더 중요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습니다.
식사할 때마다 감사의 기도를 드립시다. 음식을 먹는 것은 생존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 그 자체입니다. 일용할 양식으로 감사하고, 그 음식에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아갑시다. 약속과 시간을 귀히 여깁니다. 유대인은 성인식 선물로 손목시계를 줍니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인간이 되라는 가르침이 담긴 선물입니다. 자신이 꼭 해야 할 일들을 정해진 시간 안에 하는 습관을 자연스럽게 몸에 익힙니다.
셋째, 신앙의 유산을 물려줍니다. 자녀들에게 신앙을 물려주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이 없습니다. 자녀들이 참 믿음을 갖도록, 예배에 참석하고, 성경을 암송하고 기도하는 습관을 갖도록 격려합시다. 배운 것을 매일의 삶에 적용시킬 수 있도록 도와줍시다.
자녀들과 더불어 신앙 생활합시다. 주일을 거룩한 날로 지킵시다. 토요일 밤부터 주일이 시작됩니다. 토요일은 주일을 여호와 하나님께 최고의 날로 드리는데 지장이 없도록 지내야 합니다. 주일 아침에 피곤해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가 되면 토요일을 잘못지낸 것입니다. 주일 예배를 준비합시다. 예배에 참석하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주실 말씀을 기대합시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무슨 일을 하기 원하는지 기대합시다.
신앙은 가르치는 것입니까, 본을 보이는 것입니까 둘 다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섬깁시다. 부모의 참 신앙을 자녀들이 따를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들에게 가르칩시다. 그냥 두면 신앙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삿2:10-11). ”
부모는 자녀들과 함께 믿음의 삶을 나눕시다. 가정 예배를 드리고, 묵상의 시간을 갖습니다. 삶의 문제를 가족끼리 함께 나눕니다. 취학 전의 아이들에게는 자연, 하늘의 별, 계절의 변화, 그리고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을 이용해서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들려줍니다. 또래집단의 압력이나 학교 친구들의 문제를 이야기 하고,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만화, 책, 영화를 보고 함께 믿음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부모도 자녀들에게 기도 제목을 나눕시다. 그리스도 안에서 천국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간 셋째도 언니 오빠처럼 절대 오미자를 사오지 말라고 신신당부 했는데 또 오미자를 사왔습니다. 제일 싼 값에 사온 아이는 막내였습니다. 어릴수록 돈이 없는 것으로 알고 많이 받지 않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도대체 제주도에서 수학여행 학생들을 상대로 오미자 파는 분들이 어떤 분이기에 매번 아이들의 주머니를 터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에는 대학생이라 철이 들어서 그런지 오미자는 안 산다고 하니 안심이었습니다. 삼전사기입니다. “한라봉은 어때요” 아니다. “그러면 젓갈은 어때요” 그것도 아니다. 집으로 택배로 보낸다는 것을 한사코 말렸습니다. 아이들이 있어서 힘든 일도 있지만 이렇게 웃을 일도 있습니다. 한 지붕 아래서 자녀들과 하는 사는 것이 축복입니다. 살맛나는 가정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모는 자녀를 끔찍이 사랑합니다. 유대인들이 자녀를 얼마나 위하는지를 말해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아버지가 다음과 같은 유서를 썼습니다. “내 재산 전부를 아들에게 줄 것이다. 그러나 내 아들이 진짜 바보가 되기 전에는 그 재산을 물려 줄 수 없다. ” 그 소식을 듣고 랍비가 찾아와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참으로 이상한 유서를 썼군요. 대체 당신 아들이 바보가 되지 않으면 재산을 물려주지 않겠다니, 무슨 이유라도 있는 것입니까”
랍비의 질문에 그는 갈대 하나를 입에 물더니 괴이한 울음을 내면서 마루 위를 엉금엉금 기어 다녔습니다. 그의 행동은 자기 아들이 결혼하여 아이를 갖고, 그 자식을 귀여워하게 되면 재산을 물려준다는 뜻이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인간은 바보가 된다는 속담이 여기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자녀들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으로 탈도 납니다. 얼마 전에 재벌 회장님이 아들이 맞았다고 친히 보복 폭력을 행사했다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아들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술집에서 사소한 시비로 넘어져서 다친 아들의 원수를 갚는다고 수십 명을 동원해서 현장으로 달려가서 무자비한 폭행을 가합니까 믿거나 말거나에 나올만한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이 말씀의 배경이 무엇입니까 로마 시대에는 가족에 대해서 아버지의 권위가 절대적이었습니다. 자녀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고, 새로 태어난 자녀를 죽이거나 내다버릴 수 있는 권리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녀들을 노엽게 해서 안 됩니다. 사랑과 미움을 이웃사촌입니다. 잘못된 사랑은 곧 미움과 폭력이 됩니다. 자녀를 사랑하기에 자녀를 노엽게 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을 비인격적으로 대하거나 감정적으로 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맡긴 선물로서 나의 자녀 이전에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자녀를 너무 떠받들어도 안 되지만, 노엽게 할 만큼 학대해서도 안 됩니다.
큰 집으로 이사를 가면서 텔레비전을 새로 장만했습니다. 그런데 최신형 텔레비전은 복잡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리모컨에 뭐가 그리 기능이 많은지, 설명서를 들여다봐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더구나 위성방송까지 시청하게 되자 설상가상이었습니다.
그녀가 설명서를 보면서 기능을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리모컨에 자꾸 손을 대다 보니 입력했던 기능들이 없어지는 일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그러기를 몇 차례, 어느 날 사건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빅뉴스가 많았던 터라 9시 뉴스를 보기 위해 잔뜩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 된 거야” “아니, 기다려봐. ” “이제 다 된 거지” “아냐, 조금만 더. ” 뉴스가 시작한지 5분이 지났지만, 텔레비전을 제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좀 보자. 다 끝나겠다. 입력은 나중에 해도 되잖아. ” "아냐, 다 됐다니까. " 그는 바짝 화가 났습니다. “그만 좀 해. 그만 좀. ” 그는 리모컨을 빼앗아 바닥에 내동댕이쳐 버렸습니다. 리모컨은 박살이 나버렸습니다.
다음날 냉랭한 침묵이 집안에 내려앉은 가운데 딸아이가 물었습니다. “엄마 아빠, 왜 말 안 해” “아빠, 왜 리모컨 던졌어” “몰라. 엄마한테 물어봐라. ”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지만 네 살짜리 아들이 말을 배우려는지 계속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빠, 왜 리모컨 던졌어 리모컨이 잘못했어” 어린아이들에게는 그런 행동이 커다란 충격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습니다. “아빠가 잘못한거야. 앞으로는 던지지 않을게. ” 화가 난다고 함부로 할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 눈치도 살펴야 합니다. 부모의 모습이 자녀들에게 분노나 실망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성경적인 징계
자녀를 노엽게 해서는 안 되지만,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때로는 징계가 필요합니다.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아버지의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 드리는 제물을 임의로 먹거나, 심지어 성전에 수종 드는 여인과 동침하는 악행도 저질렀습니다. 엘리가 두 아들을 제대로 징계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언약궤를 가지고 블레셋과 전쟁터에 나가서 죽었고, 언약궤는 빼앗겼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엘리는 충격을 받고 뒤로 넘어져서 죽고, 자부는 갑자가 조산하다고 죽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습니다. 바른 징계가 있었다면 엘리의 가정은 행복했을 것이고, 이스라엘의 영광은 세계 가운데 빛났을 것입니다.
다윗의 아들 암논이 이복누이 다말을 겁탈했습니다. 다윗은 암논을 제대로 징계하지 않습니다. 이에 복수심을 불태우던 다말의 친오빠인 압살롬이 암논을 살해하고 외갓집으로 도망갑니다. 다윗은 압살롬을 징계하지 않고 받아들였습니다.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을 반역했습니다. 합당한 징계가 있었다면 가정의 불화나 나라의 혼란은 없었을 것입니다.
자녀들은 옳고 그른 것을 잘 분간하지 못합니다. 아무런 경계선 없이 자녀를 양육한다는 것은, “난간도 없이 캄캄한 건물 위에 사람을 데려다 놓고 마음껏 둘러보십시오. 편안한 마음으로 좋은 시간을 갖기 바랍니다” 하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상대주의적이고 모호한 분위기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매사에 불안을 느끼지만, 일정한 규칙을 이해하고 부모로부터 그 규칙에 따라 살도록 도움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훨씬 더 안정되고 행복을 누립니다.
징계는 행동지침이나 통제된 환경을 통해 경건한 인격을 키워 가는데 필요합니다. 자녀를 징계하는 목적은 성령의 지배하심을 통해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내려놓는데 있습니다.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셨거니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느니라(히12:10). ” 여호와 하나님께 인정받고 사람들에게 귀히 여김을 받는 비결이 합당한 징계에 있습니다.
징계를 하려면 먼저 규칙을 정해야 합니다. 그 규칙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합니다. 어떤 경기든 공정한 시합이어야 합니다. 적당한 분량의 요구 사항을 정합니다. 바람직한 행동은 보상하고 격려합니다. 징계할 때에는 이유를 설명하고, 징계한 후에는 사랑을 표시합니다. 처벌도 하고 포상도 해야 합니다.
처벌은 그 효력이 일시적이고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킬 위험이 있습니다. 최선의 통제는 벌을 주기보다 적극적인 동기를 부여해 주는 것입니다. 참 잘했구나! 같은 말을 잘 사용합니다. 벌을 줄 때에는 신중해야 합니다. 조급하거나 감정대로 처벌하면 안 됩니다. 지나치게 가혹하거나 비실제적인 처벌은 부모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말의 가치를 잃게 합니다. 침착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징계해야 합니다.
징계할 때 자녀를 때릴 수는 있지만 체벌은 공정해야 합니다. 자녀의 신체를 학대하면 안 됩니다. 얼굴은 때리지 말아야 합니다. 때릴 때에는 손이 아닌 막대기를 사용해야 합니다. 비록 매는 들어도 자녀는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자녀들은 항상 자신의 한계선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부모의 인내심이 어디까지인지, 부모님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나를 사랑하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아이를 꾸중했을 때에는 잠을 재울 때 따뜻하게 재워야 합니다. 나쁜 감정은 그날로 풀어주어야 합니다. 부정적인 감정은 빨리 제거해야 합니다. 오른손으로 벌을 주었으면 왼손으로 안아 주어야 합니다. 교육을 목적으로 때릴 때에는 반드시 다른 한 손으로 껴안아 주어야 합니다. 벌을 주든지 용서하든지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자녀의 마음에 그늘이 들지 않게 하려면 늘 명쾌한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위협은 자녀를 그늘지게 할뿐 징계가 아닙니다.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자녀를 어떻게 양육해야 합니까 소극적으로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적극적으로는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교양은 훈련이나 체벌을 동반한 책망을 의미한다. 훈계는 말로 하는 교훈이나 훈계를 통해 그리스도인다운 행동 양식을 가르쳐서 자녀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첫째, 지식보다 지혜로운 자녀로 키워야 합니다. 남보다 뛰어나 게가 아니라 남과 다르게 키워야 합니다. 상대성 이론을 발견한 세계적인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은 여덟살 때까지 저능아 취급 받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말이 너무 늦어서 네 살 때까지만 해도 부모는 그를 저능아로 믿었습니다. 학교에 들어가서는 두뇌 회전이 늦고 사교적이지 못해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이 아이에게는 아무런 기적이나 업적도 기대할 수 없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자녀마다 개성과 소질이 다릅니다.
획일적으로 바라보지 말고 그 나름의 개성에 맞추어 긴 안목으로 지켜보아야 합니다. 남과 비교할 것이 아니라 다르게 성장시켜야 합니다. 우열을 다투다 보면 승자는 항상 소수에 불과하지만, 남과 다른 능력을 갖게 된다면 모든 사람이 서로 인정받고 협조하여 공존할 수 있습니다. 국어나 영어를 잘하는 자녀가 있다고 합시다. 너는 수학만 잘하면 일류대학에 들어갈 수 있을거야 라고 말하지 말고, 어학이나 문과 계통에 네게 좋겠다고 말해야 합니다.
중세 시대의 유대인이 직업은 의사와 여행자뿐이었습니다. 교육을 받아 의사가 되어 안주하느냐, 아니면 어디서나 통용되는 지혜를 배워 순회하면서 두뇌를 활용해 상업을 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의지할 것은 지혜밖에 없었습니다. 지혜가 없다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부자들만 태운 배에 랍비 한 사람이 올랐습니다. 부자들이 서로 재산을 비교할 때 한 랍비가 끼어들었습니다.
“여기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바로 나일 것이요. 그런데 지금 이곳에서는 보여줄 수 없군요. ” 사람들은 웃었습니다. 한 눈에도 랍비는 행색이 초라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그 배는 해적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부자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을 다 빼앗겼습니다. 배가 항구에 도착하고, 랍비는 그곳에 학교를 열어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사람들이 모여들자 랍비는 큰 재산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함께 여행을 하던 부자들은 완전히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부자들은 그 때서야 비로소 랍비가 한 말의 뜻을 알았습니다. 지혜에서 뒤지는 자는 매사에 뒤집니다. 지혜 없는 부자의 재산은 결국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둘째, 마음이 따뜻한 아이로 키워야 합니다. 오른손으로 벌을 주었으면 왼손으로 안아 줍시다. 아이를 꾸중했으면 잠을 재울 때에는 따뜻하게 대합시다. 나쁜 감정은 그날로 풀어줍시다. 평생 배우게 하려면 어릴 때 충분히 놀게 합시다. 놀이는 자녀의 정신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것을 빼앗으면서 공부를 강요하는 것은 긴 안목으로 볼 때 현명한 방법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휴일에 자녀와 대화하면서 보냅시다.
적어도 주일만큼은 함께 예배드리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고홍주 박사 가정은 주일에 부모님과 형제들이 함께 예배드리고 대화하는 날이었습니다. 그것이 성공적인 자녀 교육의 기초였습니다. 낚시나 골프 등으로 자신의 시간을 위해 외출해버린다면 자녀와 함께 하는 기회는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배울 점이 있는 친구를 선택하게 합니다. 친구를 고를 때에는 한 단계 올라서야 합니다. 그 친구로 인하여 자극을 받아 성장하는데 도움을 되는 친구라야 합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합니다. 친절이 자산입니다. 선행을 통해 사회를 배우게 합니다. 왕이 한 남자에게 입궁을 명하였다. 첫째 친구는 냉담하게 거절했고, 둘째 친구는 왕궁까지만 데려다 주었고, 셋째 친구는 임금을 만나려 같이 갔습니다. 첫째는 재물이고, 둘째는 친척이고, 셋째는 선행이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끝까지 우리와 함께 할 것은 선행입니다. 물질이나 친척보다 선행이 더 중요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습니다.
식사할 때마다 감사의 기도를 드립시다. 음식을 먹는 것은 생존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 그 자체입니다. 일용할 양식으로 감사하고, 그 음식에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아갑시다. 약속과 시간을 귀히 여깁니다. 유대인은 성인식 선물로 손목시계를 줍니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인간이 되라는 가르침이 담긴 선물입니다. 자신이 꼭 해야 할 일들을 정해진 시간 안에 하는 습관을 자연스럽게 몸에 익힙니다.
셋째, 신앙의 유산을 물려줍니다. 자녀들에게 신앙을 물려주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이 없습니다. 자녀들이 참 믿음을 갖도록, 예배에 참석하고, 성경을 암송하고 기도하는 습관을 갖도록 격려합시다. 배운 것을 매일의 삶에 적용시킬 수 있도록 도와줍시다.
자녀들과 더불어 신앙 생활합시다. 주일을 거룩한 날로 지킵시다. 토요일 밤부터 주일이 시작됩니다. 토요일은 주일을 여호와 하나님께 최고의 날로 드리는데 지장이 없도록 지내야 합니다. 주일 아침에 피곤해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가 되면 토요일을 잘못지낸 것입니다. 주일 예배를 준비합시다. 예배에 참석하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주실 말씀을 기대합시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무슨 일을 하기 원하는지 기대합시다.
신앙은 가르치는 것입니까, 본을 보이는 것입니까 둘 다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섬깁시다. 부모의 참 신앙을 자녀들이 따를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들에게 가르칩시다. 그냥 두면 신앙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삿2:10-11). ”
부모는 자녀들과 함께 믿음의 삶을 나눕시다. 가정 예배를 드리고, 묵상의 시간을 갖습니다. 삶의 문제를 가족끼리 함께 나눕니다. 취학 전의 아이들에게는 자연, 하늘의 별, 계절의 변화, 그리고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을 이용해서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들려줍니다. 또래집단의 압력이나 학교 친구들의 문제를 이야기 하고,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만화, 책, 영화를 보고 함께 믿음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부모도 자녀들에게 기도 제목을 나눕시다. 그리스도 안에서 천국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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