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부모들아!
본문
엊그제는 5월 5일, 제84회 어린이날이었습니다. 소파 방정환 선생 등이 주축이 되어 1923년 처음 제정된 어린이날이 벌써 84년째를 맞이한 것입니다.
우리 부모님들 어린이날 뭐 하셨습니까 어떤 여론조사에서 부모들에게 ‘어린이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많은 분들이 ‘어린이날은 고민하는 날, 고생하는 날’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자녀에게 무엇을 선물할까 고민하고 자녀들을 데리고 어디를 가야할까 고민한다는 뜻입니다. 또 어디를 데리고 가면 사람이 좀 많습니까
고생만 잔뜩 하지요. 저는 이제 둘째 아이가 내년에 중학교에 들어가니 어린이날 무엇을 선물할까, 어디를 갈까 고민 안 해도 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이 말은 그만큼 이제 가정마다 어린이들이 주역이 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과거 어린이들이 그리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워낙 많이 낳아 기르다보니 그 많은 아이들에게 일일이 관심을 갖기도 어려웠고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다 해준다는 것도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심지어 어린이들을 천시하거나 귀찮게 여기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워낙 가난하고 먹을 것이 없던 시대이다 보니 일도 못 하면서 먹을 것만 축내는 아이들이 달갑지 않아서 가뭄이 닥쳐오면 아이들을 종으로 팔아버리거나 내다 버리는 비정한 부모까지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집집마다 기껏해야 자녀가 한 두 명이다 보니 아이들이 금이야 옥이야 정말 귀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모든 생활의 중심이 자녀들입니다. 의외로 TV 채널 선택권이 부모가 아닌 어린이들에게 있는 가정이 많습니다. 자녀들이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해주고 자녀 교육을 위해서라면 부모들이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자녀들 사교육비를 대기 위해 어른들이 허리띠 졸라매고 삽니다. 그야말로 어린이는 가정의 중심이고 가정의 가장 귀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너무 귀하게 키우다보니 버릇이 없어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말입니다.
성경에서도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 127:3)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어린이들을 무척 사랑하셨기에 그 정신을 본받아 매년 5월 첫째 주일을 어린이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요즈음 정말 어린이들이 살맛나는 세상인 것 같습니다.
어린이를 화나게 하는 세상
그러나 오늘날 이렇게 어린이 천국처럼 보이는 세상에서도 여전히 어린이들을 천시하고 학대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한쪽 편에서는 어린이가 왕인 것처럼 보이지만 반대편에서는 어린이들이 고통당하는 어두운 그늘이 있는 세상인 것입니다.
요즈음 매스컴에 가장 많이 보도되는 범죄 중 하나가 어린이를 성적 도구로 이용하는 행위입니다. 어린이를 성추행하거나 성폭행하고 심지어 살해하는 파렴치범들이 점점 늘어나니 저도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돈 몇 푼 더 벌기 위해 어린이들이 먹는 음식물에 들어가야 할 것을 안 넣거나 반대로 들어가서는 안 될 것을 집어넣는 행위, 유통기한이 한참 넘은 재료를 납품하는 어른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자녀를 가장 사랑하고 아껴주어야 할 부모 중에 자녀를 학대하고 폭력을 가하는 일이 점점 늘어 전국에 있는 아동 쉼터, 청소년 쉼터에 부모의 폭력을 피해 도망한 아이들이 수없이 많다고 하니 이 또한 심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아비들이란 꼭 아버지만 뜻하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와 어머니 즉 부모 모두를 뜻합니다. 이렇게 부모 모두에게 당부하는 말씀은 바로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좀 더 분명히 이해하려면 같은 내용을 다룬 에베소 6:4을 보아야 합니다.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 부모가 자녀를 노엽게, 화나게 하는 경우가 무엇인가를 설명한 것입니다. 그것은 첫째, 자녀들을 훈계할 때 주의 교양과 훈계가 아닌, 즉 성경적이고 신앙적인 교양과 훈계가 아닌 부모 자신의 권위와 자기 방법만 고집하는 경우입니다. 흔히 부모가 자녀에게 야단 칠 때 부모 말에 무조건 순종하라고 강요합니다. 왜 그런지 설명하지도 않고 무조건 순종하라는 것은 잘못입니다. 부모의 생각과 경험이 무조건 맞는 것은 아닙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가치기준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부모가 자기 생각과 경험만 옳다고 생각해서 자녀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한다면 문제가 생깁니다. 또 부모도 틀릴 때가 있고 실수할 때가 있는데 자녀들의 실수는 지적하면서 부모 자신의 실수는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부모는 틀리든 맞든 무조건 순종하라고만 강요한다면 그것은 더 큰 잘못입니다. 누구 얘기냐 바로 제 얘기입니다. 설교를 준비하다 보니 저 자신이 이럴 때가 많은 것 같아 부끄러웠습니다. 며칠 전에도 아이들을 야단치다 보니 감정이 앞서서 심한 말을 했습니다. 나중에 너무 심했구나 싶어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를 하고 싶은데 체면 때문에 망설이다가 어제 겨우 사과했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둘째, 방금 전 제 얘기를 한 것처럼 부모가 자녀들이 자신의 말에 잘 순종치 않으면 혈기와 울분에 사로잡혀 윽박지르고, 악담을 하고, 폭력까지 사용하게 될 때 자녀가 가장 분노하고 화가 난다는 것입니다. 저 또한 이런 실수를 가끔 한다는 말이지요. 물리적 폭력보다 더 무서운 언어폭력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결론적으로 부모가 자녀에 대한 자신의 권한을 남용하여 제 마음대로 가르치고 키울 때 반드시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결방법은 무엇인가 부모가 자신의 생각이나 고집이나 경험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너무도 빨리 바뀝니다. 1, 2분 차이로 태어난 쌍둥이도 세대차이가 난다고 하는 세상에서 부모와 자녀 사이에 얼마나 큰 세대차이가 나겠습니까 가치관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정말 다른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옳고 그름을 떠나 이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 아들이, 내 딸이 내 생각과 다를 수가 있겠구나 하고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부모가 무조건 자기 생각이나 자신이 경험한 것만 고집하고 자녀의 의견이나 생각을 무시한다면 자녀를 노엽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무슨 수로 변하지 않는 교훈을 줄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바로 주의 교양과 훈계가 필요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영원한 진리입니다. 주님의 가르침은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자녀를 양육하고 훈계할 때 부모의 생각과 경험이 아니라 영원히 변치 않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주님의 가르침으로 양육하고 훈계하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자녀를 키우는 일은 결코 부모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경험해 보았지 않습니까 절대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예수님만이 우리 자녀를 바른 길로 인도하고 키워주실 권위와 방법을 가지고 계신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부모는 그 예수님이 명령하신 교양과 훈계를 그 자녀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인정해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가 잘 되고 못 되는 것이 온전히 주님께 달린 줄 알고 그 분께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혹시 그 자녀가 불순종하는 때에도 온유하고 평화로운 주님의 마음으로 지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계속해서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라고 말씀합니다. 방금 말씀드린 대로 부모가 자기 뜻과 생각으로만 자녀를 지도하려 하면 자녀가 노여울 뿐 아니라 낙심하게 됩니다. 희망을 잃고 낙심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어떤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너 동생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아니” “예, 엄마가 맛있는 것을 많이 먹고 뚱뚱해지면 아기가 태어나요. ” 정말 어린아이다운 재미난 발상 아닙니까 그런데 그 아이가 그 다음에 하는 말 좀 들어보세요. “그런데 동생은 절대 안 태어날 거예요. ” “왜 그렇다고 생각하니” “엄마 아빠는 저 하나만 있어도 지겹고 힘들다고 하시는데 동생이 태어날리 없잖아요” 바로 이런 경우 자녀들은 낙심하는 것입니다. “나는 더 이상 부모에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구나,” 더 나가서 “부모님한테 나 같은 아이는 필요 없구나. ” 하고 생각하게 되면 한없이 낙심하고 실망하여 자신의 가치를 부정하게 됩니다. 나를 가장 인정해줘야 할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느낌이 들면 그 아이는 더 이상 살아갈 의미를 잃어버리기 때문에 자포자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참 무서운 일입니다.
자녀를 잘못 키우는 법
그런데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해서 “그러면 성경은 자녀들을 훈계하거나 책망하지 말라고 가르치는구나. ”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성경은 자녀를 부모 뜻대로 부모 고집대로 훈계하지 말라고 했지, 결코 자녀를 훈계하지 말라고 말씀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자녀들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엡 6:4)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뿐만 아니라 구약에는 “초달(회초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잠 13:24)는 말씀도 있고 신약에도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히 12:8)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렇게 자녀들이 잘못된 길로 갈 때는 분명하게, 그러나 반드시 말씀에 의지해서 징계하고 훈계해야만 자녀들이 바른 길로 갈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에 부모의 감정이나 흥분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한쪽에서는 부모가 자기 감정으로 자녀들을 훈계해서 문제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자녀를 아예 훈계하지 않아서 문제가 됩니다. 요즈음 부모 중에서 자녀에게 훈계하기를 포기하고 뭐든지 잘 한다 잘 한다 해서 아이를 망쳐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텍사스 휴스턴 경찰 당국에서 ‘못된 자녀 키우는 열 가지 방법'이라는 내용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아주 뜻 깊은 말들이므로 잘 새겨들으시기 바랍니다. 1) 아주 어려서부터 아이가 갖고 싶어 하는 것은 다 사주어라. 그 아이는 온 세상의 모든 것이 자기 것이 될 수 있다고 오해하면서 자랄 것이다. 2) 아이가 나쁜 말을 할 때 그냥 웃어 넘겨주어라. 그리하면 자기가 재치 있는 줄 알고 더욱 악한 말과 생각이 깊어질 것이다. 3) 아무런 영적 훈련과 교육도 주지 말고 크면 자기가 알아서 잘할 것이라고 내버려두어라. 4) 잘못된 품행을 책망하지 말고 그냥 두어라. 이다음에 자동차를 훔치고 체포된 후에 사회에서 책망 받게 될 테니까. 5) 아이가 치우지 않은 침대, 옷, 신발 등을 모두 정돈해 주어라. 자기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는 사람이 될 것이다. 6) 어떠한 TV 프로나 책이나 그림이든 마음대로 보고 읽게 내버려두어라. 그 마음은 쓰레기통이 될 것이다. 7) 아이들 앞에서 부모나 가족들이 자주 싸워라. 이다음에 가정이 깨어져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을 것이다. 8) 달라는 대로 용돈을 얼마든지 주어라. 세상을 쉽게만 살아가는 태도를 터득할 것이다. 9) 먹고 싶은 것은 다 먹이고 마시고 싶은 것은 다 마시게 하고 좋다고 하는 것은 다 해 주어라. 앞으로 어떤 거절이라도 한 번만 받으면 곧 절망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10) 아이가 이웃과 친구와 선생님과 어른에게 대립적인 자세가 될 때 언제나 아이의 편이 되어 주어라. 건전한 사회가 모두 그 아이의 적이 될 것이다.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우리 자녀를 영적으로 양육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자녀를 부모의 뜻과 고집으로 키워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해서 자녀들 뜻대로 자녀 마음대로 키워서도 안 됩니다.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 뜻대로 여호와 하나님 기준에 맞게 키워야 합니다. 세상의 교육에서도 이런 이야기는 합니다. 부모 뜻대로만 키우지 말고 아이들 입장에서 자녀들 눈높이를 맞춰라. 그러나 이것으로만 끝나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부모들 뜻대로도 아니고 자녀들 뜻대로도 아니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양육하라고 말씀합니다.
어린이주일의 의미
설교 첫머리에 어린이날은 고민하는 날이라고 대답한 부모들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분들 생각처럼 물론 어린이날 선물을 하는 것도 중요하고 좋은 곳에 데리고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린이날이 결코 선물 하나 하고서 부모로서 할 일 다 했다고 끝내라고 제정한 날은 아닐 것입니다.
사실 어린이날은 부모들이 반성하라고 만든 날입니다. 지금까지 자녀를 제대로 키워왔는가 돌아보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자녀를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만 키워온 것이 아닌지, 과연 성경이 말씀한 대로,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맞는 자녀로 키워왔는지, 세상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인정 받을만한 자녀로 키워왔는지 돌아보는 날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내 자녀에게 믿음의 본이 되었는지 돌아보는 날입니다. 부모가 불성실한 신앙태도로 교회에 다니면 자녀도 불성실한 기독교인이 됩니다. 부모가 형식적으로 교회 나가고, 신앙생활보다 다른 일을 우선시 하면 자녀도 신앙을 우습게 아는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자녀들에게 “중요한 시험을 봐야 하니까 이번 주는 교회 가지 마라”고 말하면 자녀는 나중에 교회를 아예 떠나게 됩니다. 그러기에 부모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부동산이나 현금이 아니라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주는 부모가 가장 좋은 것을, 가장 많이 물려준 부모입니다. 자녀에게 세상의 온갖 좋은 선물을 다 준다 해도 정작 영생에 대해 가르치지 못한다면 부모 노릇을 올바로 못한 것입니다. 이것이 어린이주일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마지막으로 믿음의 사람 다윗이 임종 전에 아들 솔로몬에게 남긴 유언을 읽어드립니다. 이 유언 속에 다윗이 어떤 마음으로 아들 솔로몬을 키웠는지 잘 나와 있습니다.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만일 네가 그를 버리면 그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대상 28:9). ” 여러분도 바로 이 진리를 자녀들과 어린 생명들에게 분명히 가르치는 좋은 부모 좋은 어른이 되기 바랍니다.
우리 부모님들 어린이날 뭐 하셨습니까 어떤 여론조사에서 부모들에게 ‘어린이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많은 분들이 ‘어린이날은 고민하는 날, 고생하는 날’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자녀에게 무엇을 선물할까 고민하고 자녀들을 데리고 어디를 가야할까 고민한다는 뜻입니다. 또 어디를 데리고 가면 사람이 좀 많습니까
고생만 잔뜩 하지요. 저는 이제 둘째 아이가 내년에 중학교에 들어가니 어린이날 무엇을 선물할까, 어디를 갈까 고민 안 해도 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이 말은 그만큼 이제 가정마다 어린이들이 주역이 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과거 어린이들이 그리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워낙 많이 낳아 기르다보니 그 많은 아이들에게 일일이 관심을 갖기도 어려웠고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다 해준다는 것도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심지어 어린이들을 천시하거나 귀찮게 여기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워낙 가난하고 먹을 것이 없던 시대이다 보니 일도 못 하면서 먹을 것만 축내는 아이들이 달갑지 않아서 가뭄이 닥쳐오면 아이들을 종으로 팔아버리거나 내다 버리는 비정한 부모까지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집집마다 기껏해야 자녀가 한 두 명이다 보니 아이들이 금이야 옥이야 정말 귀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모든 생활의 중심이 자녀들입니다. 의외로 TV 채널 선택권이 부모가 아닌 어린이들에게 있는 가정이 많습니다. 자녀들이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해주고 자녀 교육을 위해서라면 부모들이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자녀들 사교육비를 대기 위해 어른들이 허리띠 졸라매고 삽니다. 그야말로 어린이는 가정의 중심이고 가정의 가장 귀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너무 귀하게 키우다보니 버릇이 없어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말입니다.
성경에서도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 127:3)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어린이들을 무척 사랑하셨기에 그 정신을 본받아 매년 5월 첫째 주일을 어린이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요즈음 정말 어린이들이 살맛나는 세상인 것 같습니다.
어린이를 화나게 하는 세상
그러나 오늘날 이렇게 어린이 천국처럼 보이는 세상에서도 여전히 어린이들을 천시하고 학대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한쪽 편에서는 어린이가 왕인 것처럼 보이지만 반대편에서는 어린이들이 고통당하는 어두운 그늘이 있는 세상인 것입니다.
요즈음 매스컴에 가장 많이 보도되는 범죄 중 하나가 어린이를 성적 도구로 이용하는 행위입니다. 어린이를 성추행하거나 성폭행하고 심지어 살해하는 파렴치범들이 점점 늘어나니 저도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돈 몇 푼 더 벌기 위해 어린이들이 먹는 음식물에 들어가야 할 것을 안 넣거나 반대로 들어가서는 안 될 것을 집어넣는 행위, 유통기한이 한참 넘은 재료를 납품하는 어른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자녀를 가장 사랑하고 아껴주어야 할 부모 중에 자녀를 학대하고 폭력을 가하는 일이 점점 늘어 전국에 있는 아동 쉼터, 청소년 쉼터에 부모의 폭력을 피해 도망한 아이들이 수없이 많다고 하니 이 또한 심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아비들이란 꼭 아버지만 뜻하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와 어머니 즉 부모 모두를 뜻합니다. 이렇게 부모 모두에게 당부하는 말씀은 바로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좀 더 분명히 이해하려면 같은 내용을 다룬 에베소 6:4을 보아야 합니다.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 부모가 자녀를 노엽게, 화나게 하는 경우가 무엇인가를 설명한 것입니다. 그것은 첫째, 자녀들을 훈계할 때 주의 교양과 훈계가 아닌, 즉 성경적이고 신앙적인 교양과 훈계가 아닌 부모 자신의 권위와 자기 방법만 고집하는 경우입니다. 흔히 부모가 자녀에게 야단 칠 때 부모 말에 무조건 순종하라고 강요합니다. 왜 그런지 설명하지도 않고 무조건 순종하라는 것은 잘못입니다. 부모의 생각과 경험이 무조건 맞는 것은 아닙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가치기준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부모가 자기 생각과 경험만 옳다고 생각해서 자녀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한다면 문제가 생깁니다. 또 부모도 틀릴 때가 있고 실수할 때가 있는데 자녀들의 실수는 지적하면서 부모 자신의 실수는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부모는 틀리든 맞든 무조건 순종하라고만 강요한다면 그것은 더 큰 잘못입니다. 누구 얘기냐 바로 제 얘기입니다. 설교를 준비하다 보니 저 자신이 이럴 때가 많은 것 같아 부끄러웠습니다. 며칠 전에도 아이들을 야단치다 보니 감정이 앞서서 심한 말을 했습니다. 나중에 너무 심했구나 싶어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를 하고 싶은데 체면 때문에 망설이다가 어제 겨우 사과했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둘째, 방금 전 제 얘기를 한 것처럼 부모가 자녀들이 자신의 말에 잘 순종치 않으면 혈기와 울분에 사로잡혀 윽박지르고, 악담을 하고, 폭력까지 사용하게 될 때 자녀가 가장 분노하고 화가 난다는 것입니다. 저 또한 이런 실수를 가끔 한다는 말이지요. 물리적 폭력보다 더 무서운 언어폭력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결론적으로 부모가 자녀에 대한 자신의 권한을 남용하여 제 마음대로 가르치고 키울 때 반드시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결방법은 무엇인가 부모가 자신의 생각이나 고집이나 경험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너무도 빨리 바뀝니다. 1, 2분 차이로 태어난 쌍둥이도 세대차이가 난다고 하는 세상에서 부모와 자녀 사이에 얼마나 큰 세대차이가 나겠습니까 가치관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정말 다른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옳고 그름을 떠나 이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 아들이, 내 딸이 내 생각과 다를 수가 있겠구나 하고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부모가 무조건 자기 생각이나 자신이 경험한 것만 고집하고 자녀의 의견이나 생각을 무시한다면 자녀를 노엽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무슨 수로 변하지 않는 교훈을 줄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바로 주의 교양과 훈계가 필요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영원한 진리입니다. 주님의 가르침은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자녀를 양육하고 훈계할 때 부모의 생각과 경험이 아니라 영원히 변치 않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주님의 가르침으로 양육하고 훈계하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자녀를 키우는 일은 결코 부모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경험해 보았지 않습니까 절대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예수님만이 우리 자녀를 바른 길로 인도하고 키워주실 권위와 방법을 가지고 계신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부모는 그 예수님이 명령하신 교양과 훈계를 그 자녀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인정해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가 잘 되고 못 되는 것이 온전히 주님께 달린 줄 알고 그 분께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혹시 그 자녀가 불순종하는 때에도 온유하고 평화로운 주님의 마음으로 지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계속해서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라고 말씀합니다. 방금 말씀드린 대로 부모가 자기 뜻과 생각으로만 자녀를 지도하려 하면 자녀가 노여울 뿐 아니라 낙심하게 됩니다. 희망을 잃고 낙심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어떤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너 동생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아니” “예, 엄마가 맛있는 것을 많이 먹고 뚱뚱해지면 아기가 태어나요. ” 정말 어린아이다운 재미난 발상 아닙니까 그런데 그 아이가 그 다음에 하는 말 좀 들어보세요. “그런데 동생은 절대 안 태어날 거예요. ” “왜 그렇다고 생각하니” “엄마 아빠는 저 하나만 있어도 지겹고 힘들다고 하시는데 동생이 태어날리 없잖아요” 바로 이런 경우 자녀들은 낙심하는 것입니다. “나는 더 이상 부모에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구나,” 더 나가서 “부모님한테 나 같은 아이는 필요 없구나. ” 하고 생각하게 되면 한없이 낙심하고 실망하여 자신의 가치를 부정하게 됩니다. 나를 가장 인정해줘야 할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느낌이 들면 그 아이는 더 이상 살아갈 의미를 잃어버리기 때문에 자포자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참 무서운 일입니다.
자녀를 잘못 키우는 법
그런데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해서 “그러면 성경은 자녀들을 훈계하거나 책망하지 말라고 가르치는구나. ”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성경은 자녀를 부모 뜻대로 부모 고집대로 훈계하지 말라고 했지, 결코 자녀를 훈계하지 말라고 말씀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자녀들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엡 6:4)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뿐만 아니라 구약에는 “초달(회초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잠 13:24)는 말씀도 있고 신약에도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히 12:8)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렇게 자녀들이 잘못된 길로 갈 때는 분명하게, 그러나 반드시 말씀에 의지해서 징계하고 훈계해야만 자녀들이 바른 길로 갈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에 부모의 감정이나 흥분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한쪽에서는 부모가 자기 감정으로 자녀들을 훈계해서 문제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자녀를 아예 훈계하지 않아서 문제가 됩니다. 요즈음 부모 중에서 자녀에게 훈계하기를 포기하고 뭐든지 잘 한다 잘 한다 해서 아이를 망쳐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텍사스 휴스턴 경찰 당국에서 ‘못된 자녀 키우는 열 가지 방법'이라는 내용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아주 뜻 깊은 말들이므로 잘 새겨들으시기 바랍니다. 1) 아주 어려서부터 아이가 갖고 싶어 하는 것은 다 사주어라. 그 아이는 온 세상의 모든 것이 자기 것이 될 수 있다고 오해하면서 자랄 것이다. 2) 아이가 나쁜 말을 할 때 그냥 웃어 넘겨주어라. 그리하면 자기가 재치 있는 줄 알고 더욱 악한 말과 생각이 깊어질 것이다. 3) 아무런 영적 훈련과 교육도 주지 말고 크면 자기가 알아서 잘할 것이라고 내버려두어라. 4) 잘못된 품행을 책망하지 말고 그냥 두어라. 이다음에 자동차를 훔치고 체포된 후에 사회에서 책망 받게 될 테니까. 5) 아이가 치우지 않은 침대, 옷, 신발 등을 모두 정돈해 주어라. 자기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는 사람이 될 것이다. 6) 어떠한 TV 프로나 책이나 그림이든 마음대로 보고 읽게 내버려두어라. 그 마음은 쓰레기통이 될 것이다. 7) 아이들 앞에서 부모나 가족들이 자주 싸워라. 이다음에 가정이 깨어져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을 것이다. 8) 달라는 대로 용돈을 얼마든지 주어라. 세상을 쉽게만 살아가는 태도를 터득할 것이다. 9) 먹고 싶은 것은 다 먹이고 마시고 싶은 것은 다 마시게 하고 좋다고 하는 것은 다 해 주어라. 앞으로 어떤 거절이라도 한 번만 받으면 곧 절망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10) 아이가 이웃과 친구와 선생님과 어른에게 대립적인 자세가 될 때 언제나 아이의 편이 되어 주어라. 건전한 사회가 모두 그 아이의 적이 될 것이다.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우리 자녀를 영적으로 양육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자녀를 부모의 뜻과 고집으로 키워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해서 자녀들 뜻대로 자녀 마음대로 키워서도 안 됩니다.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 뜻대로 여호와 하나님 기준에 맞게 키워야 합니다. 세상의 교육에서도 이런 이야기는 합니다. 부모 뜻대로만 키우지 말고 아이들 입장에서 자녀들 눈높이를 맞춰라. 그러나 이것으로만 끝나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부모들 뜻대로도 아니고 자녀들 뜻대로도 아니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양육하라고 말씀합니다.
어린이주일의 의미
설교 첫머리에 어린이날은 고민하는 날이라고 대답한 부모들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분들 생각처럼 물론 어린이날 선물을 하는 것도 중요하고 좋은 곳에 데리고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린이날이 결코 선물 하나 하고서 부모로서 할 일 다 했다고 끝내라고 제정한 날은 아닐 것입니다.
사실 어린이날은 부모들이 반성하라고 만든 날입니다. 지금까지 자녀를 제대로 키워왔는가 돌아보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자녀를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만 키워온 것이 아닌지, 과연 성경이 말씀한 대로,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맞는 자녀로 키워왔는지, 세상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인정 받을만한 자녀로 키워왔는지 돌아보는 날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내 자녀에게 믿음의 본이 되었는지 돌아보는 날입니다. 부모가 불성실한 신앙태도로 교회에 다니면 자녀도 불성실한 기독교인이 됩니다. 부모가 형식적으로 교회 나가고, 신앙생활보다 다른 일을 우선시 하면 자녀도 신앙을 우습게 아는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자녀들에게 “중요한 시험을 봐야 하니까 이번 주는 교회 가지 마라”고 말하면 자녀는 나중에 교회를 아예 떠나게 됩니다. 그러기에 부모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부동산이나 현금이 아니라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주는 부모가 가장 좋은 것을, 가장 많이 물려준 부모입니다. 자녀에게 세상의 온갖 좋은 선물을 다 준다 해도 정작 영생에 대해 가르치지 못한다면 부모 노릇을 올바로 못한 것입니다. 이것이 어린이주일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마지막으로 믿음의 사람 다윗이 임종 전에 아들 솔로몬에게 남긴 유언을 읽어드립니다. 이 유언 속에 다윗이 어떤 마음으로 아들 솔로몬을 키웠는지 잘 나와 있습니다.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만일 네가 그를 버리면 그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대상 28:9). ” 여러분도 바로 이 진리를 자녀들과 어린 생명들에게 분명히 가르치는 좋은 부모 좋은 어른이 되기 바랍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