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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자녀 교육의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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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반 고호의 작품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워낙 유명한 작가의 전시회인지라 세계 각국에서 그림을 보려고 몰려 들었습니다. 그런데 전시관 입구에 “코리안은 입장이 금지됨”라는 안내문이 붙여져 있어 우리 한국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였습니다. 왜 이런 안내문이 붙게 되었을까요 떼를 지어 떠들며 몰려 다니기 때문입니다. 아이스크림을 들고 질질 흘리며 다니기 때문입니다. 더러운 손으로 작품을 만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천박성과 저질성 때문에 한국인의 입장을 금지시킨 것이었습니다. 또 파리 상젤리제에 있는 루비똥 가방 매장 앞에 한국인들이 줄을 지어 서 있는 모습이 현지 신문에 찍혔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대 여섯 개씩 사재기를 하는 바람에 “한 명 당 한 개”라는 팻말까지 붙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독일에 있는 한 청소년 유스 호스텔에서는 한국 청소년의 숙박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른 나라 청소년들에 비해 시설을 무질서하게 사용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와 같이 네델란드에서 현지 교회를 빌려 예배를 드리던 한인 교회는 그 교회에서 쫓겨났습니다. 아이들이 교회당을 난장판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라 안에서는 물론, 나라 밖에서까지도 그렇게 소란스럽고 무질서하며 품위가 없이 행동을 할까요 한 마디로 말씀 드려서 제대로 가르치고 훈련시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익히 들어 잘 아는 이야기 이지만 영국 사람들은 자녀가 어릴 때 식탁 매너를 가르칩니다. 말을 잘 안 듣고 난리를 치는 아이는 의자에 묶어 놓아서 라도 올바른 매너를 가르칩니다. 자식을 낳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낳은 자식을 잘 가르치는 것입니다.
미국 어느 법정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범죄를 저지른 한 미성년자를 앞에 놓고 판사가 재판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미성년자는 이제 열 두세 살 정도 밖에 안 되는 어린 아이였습니다. 판사가 물었습니다. “어디서 이런 나쁜 짖을 배웠느냐”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라코가 가르쳐 주었습니다. ” 다른 아이 차례가 되었습니다. 판사는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누가 도둑질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느냐”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라코요. ” 3일 동안 판사는 무려 33명의 아이들을 재판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한결같이 라코라는 청년에게 범죄 하는 기술을 배웠다고 자백했습니다. 그래서 판사는 경찰에게 라코라는 청년을 잡아 오라고 지시했습니다. 이틀 후 라코가 법정에 섰습니다. 판사가 물었습니다. “지금 자네가 가르쳐 준 기술을 가지고 죄를 지은 아이들이 감옥에 갇혀 있다네. 자네는 어떻게 그런 나쁜 일을 가르칠 수 있었는가” 라코가 대답했습니다. “네가 어렸을 때 에디라는 사람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
이 사건에서 우리는 교육의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어릴 때, 이제 머리가 굳어져 갈 때, 인생관과 가치관이 형성되어져 갈 때, 부모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무엇을 배우느냐에 따라 그 아이의 장래를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 속담에 한 살 때 버릇이 여든 살까지 간다는 것이 있습니다. 이 속담이 주는 의미와 같이 어릴 때 좋은 교육, 올바른 훈련을 시키면 그 좋은 영향은 죽을 때까지 갑니다. 이와 반대로 어릴 때 나쁜 교육, 올바르지 않은 훈련을 시키면 그 나쁜 영향이 죽을 때까지 갑니다. 그래서 큰 범죄를 한 사람들의 삶을 추적해 들어가면 어릴 때 부모로부터 좋지 않은 교육을 받았거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나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는 중요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이 있다면 자녀를 교육시키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믿음 생활을 빼고 세상에서 그 보다 더 중요한 일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사업에 어려움이 생기기나 직장에 문제가 있어도 견디기 힘듭니다. 또 인간 관계에 문제가 생겨도 참으로 괴롭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런 일들이 힘들고 괴롭다고 할지라도 자녀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자녀에게 문제가 생기면 부모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이 아픕니다. 자녀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부모의 마음은 괴롭기가 한이 없습니다. 자녀에게 힘든 일이 생기면 부모의 무릎에서는 힘이 쭉 빠집니다. 우리는 다 자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사실에 실감을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자녀 문제는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자녀를 바르게 교육시키는 일이 말대로 쉽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부모라고 하면 누구나 다 자녀를 올바르게 교육시키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실제에서는 잘 안됩니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이 갈등하며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자녀 교육을 올바르게 시키기 어려운 시대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세상의 문화적 환경과 여건이 자녀 교육에 큰 걸림돌이 됩니다. 시대의 조류가 자녀를 올바르게 교육시키는데 많은 어려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문제의 원인을 세상에게만 돌릴 수 없습니다. 더 크고 직접적인 원인은 부모님 자신에게 있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우리의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기며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녀를 잘 사랑해 주면 잘 기르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 하나만 가지고 자녀를 문제 없이 기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이 자녀를 바로 기르는데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랑 하나만 가지고 자녀 교육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사랑 외에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부모님들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개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자녀 교육의 궁극적인, 그리고 최종적인 책임은 부모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 교육에 있어 우리 부모님들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것을 저는 다음 세 가지로 나누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는 “무지함”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스스로 자녀를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내가 낳았고 기르고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맞는 말임과 동시에 틀리는 말입니다. 아는 것도 많지만 부모님들이 잘 모르는 부분도 많습니다. 부모님들은 자녀의 마음, 생각 그리고 심리 상태를 잘 모릅니다. 그래서 어떻게 다루어야 할 지를 모릅니다. 속으로는 저의 말씀에 동의를 하지 않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입니다. 부모님들이 자녀를 안다는 것이 그저 피상적이고 단편적이고 외적인 것뿐입니다. 실제로 자녀의 깊은 내면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우리 부모님들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왜 모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공부를 안 해서 모르는 것입니다. 자신을 너무 과대 평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도 운전을 하려면 연구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기 자신을 과신하고 대충 아는 지식으로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가끔 면허가 없는 청소년들이 부모 몰래 운전을 하다가 큰 사고를 내는 것을 우리는 신문에나 텔레비전에 종종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부모님들이 이런 식의 자녀 교육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녀를 바르게 키우기 위해서 부모님들은 연구와 노력을 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잘 하지 않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우리 부모님들 중에는 자녀 교육에 있어 무면허자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자녀 교육에서 종종 사고가 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점을 인정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자녀 교육의 서광이 비칩니다. 저도 저의 자녀들을 위해서 이런 노력을 잘 하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좋은 자녀 교육을 원하신다면 공부를 하십시오. 책도 읽으십시오. 세미나에도 참석하십시오. 좋은 강의도 들으십시오. 그래야 자녀를 이해하고 올바르게 가르칠 수 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저 내가 살아온 과거 경험만 가지고 가르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우리 부모는 무식한 부모라는 소리밖에 듣지 못합니다. 좀 더 나은 지식을 가지고 자녀를 가르치려고 하십시오. 대부분 부모님들은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십니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연구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 우리 부모님들의 문제는 “무례함”입니다. 자녀를 교육하는데 있어 무례함은 무지함보다 더 나쁩니다. 저도 저의 자녀들에게 무례한 말과 행동을 많이 했습니다만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들에 대해 무례합니다. 자녀들에 대해 무례하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부모님들은 알게 모르게, 그리고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자녀들을 무례하게 대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은 부모님들의 무례함을 인하여 상처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부부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 간에 문제가 생기는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무례함입니다. 사람들은 사랑할 때 무례해지기가 쉽습니다. 사랑하니까 웬만한 예의는 안 갖추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위험한 사고입니다. 사랑하면 할수록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무례함 때문에 사랑이 깨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보통 부부 간에 예의를 지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자녀에게는 별로 예의를 중요시 여기지 않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나은 자식이기 때문에, 그리고 어리기 때문에 함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예의를 가지고 대하지 않고 그저 부모의 권위로 누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어려도, 내가 낳은 자식이라고 해도, 그리고 사랑한다고 해도 소중한 인격입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인격으로 대하여야 합니다. 물론 아직 미숙하기 때문에 가르쳐야 합니다. 꾸중도 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매도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녀의 인격을 존중해야 합니다. 어떤 부모님은 자녀가 잘못을 했다고 해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따귀를 철썩 때립니다. 따귀를 맞은 자녀의 입장에 서 보십시오. 얼마나 인격에 손상이 가겠습니까 때리려면 사람들이 안 보는 데서 때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자녀들이 언제 부모에 대해 노여움을 갖습니까 꾸중을 들을 때입니까 매를 맞을 때입니까 아닙니다. 자녀들도 잘못을 하면 꾸중을 듣거나 매 맞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저들이 노여움을 갖는 것은 부모님들이 자기들의 인격을 무시하고 무례하게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부모님들은 자기 자녀들이 말을 잘 안 듣는다고 불평합니다. 때로는 반항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저들이 말을 잘 듣지 않고 반항을 할까요 부모가 자신들의 인격을 무시하고 무례하게 대하기 때문입니다. 예의는 어른들 사이에서만 갖추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들에게도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어야 합니다. 자녀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하고 예의를 갖추고 대해 준다면 자녀들은 부모의 꾸중과 매를 순수하게 받아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꾸중과 매는 자녀가 바르게 자라게 하는 데 좋은 결과를 가져 오게 할 것입니다.
세 번째, 우리 부모님들의 문제는 자녀에게 본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서 말씀 드린 무지함과 무례함보다 더 치명적입니다.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본이 되게 살지 못하기 때문에 자녀 교육을 망치고 있습니다. 자기들은 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자녀들에게는 법을 지키라고 합니다. 자기들은 거짓말 하면서 자녀들에게는 정직하라고 합니다. 자기들은 남을 것을 훔치면서 자녀들에게는 훔치지 말라고 합니다. 자기들은 후탁하면 주일을 거르면서 자녀에게는 교회에 빠지지 말라고 합니다. 자기들은 말씀 대로 살지 않으면서 자녀들은 말씀 대로 살라고 합니다. 이런 부모님들의 요구를 들을 자녀들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요
아들을 많이 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아들들만 키워서 그런지 어머니의 말투는 무척 거칠었습니다. 무엇을 먹을 때는 “빨리 처 먹어라”, 부를 때는 “야! 이 놈아!”, 잘못했을 때 “나가서 쾍하고 돼져라” 등 상스러운 말을 썼습니다. 아이들은 이런 말에 익숙해지며 자랐습니다. 하루는 학교 담임 선생이 가정 방문을 오셨습니다. 어머니가 과일을 깎아 대접하였습니다. 선생님을 혼자 먹기가 쑥스러워서 아이와 같이 먹자고 권했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어머니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말했습니다. “엄마, 선생님이 같이 먹자고 하는데 같이 처 먹어도 되요” 아이는 어머니를 그대로 본 받았습니다.
이런 일을 예로 들자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여러분! 자식은 부모의 거울입니다. “저런 자식이 어디서 나왔나”라고 말씀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지혜롭지 못합니다. 자기한데 나왔지 어디서 나왔습니까 하늘에서 뚝 떨어졌습니까 자식을 보면 나를 보는 것으로 생각하십시오. 자녀들은 알게 모르게 부모의 말과 행동을 보고 자랍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모여서 자녀의 인격과 성격이 형성되어집니다. 그러므로 내 자식을 보면 내가 자식 교육을 잘 시키고 있는지, 못 시키고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자신들에 대해 후하게 점수를 주지 마시고 한 번 냉정하게 평가해 보십시오. 그리고 잘못 시키고 있다고 판단이 되면 더 악화되기 전 부모님들 스스로가 개선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참된 교육은 말에 있지 않고 행동에 있습니다. 자녀들은 80%를 가정과 부모로부터 배웁니다. 나머지 20%를 학교, 친구,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웁니다. 그러므로 최상의 교육의 장소는 학교가 아니고 가정입니다. 그리고 최고의 스승은 학교 선생이 아니고 부모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말한 것을 행함으로 자녀에게 본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말로만 해 보십시오. 아이가 듣습니까 부모가 말은 이렇게 하고 행동은 저렇게 하는데 그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겠습니까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니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말과 행동을 다르게 하는 것은 곧 자녀를 삐뚤어지게 키우는 지름길인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물론 부모라고 해서 항상 말과 행동이 일치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때는 말은 이렇게 하고 행동은 저렇게 할 수 있습니다. 잘못할 수도,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상관 없습니다. 그것이 큰 문제가 아닙니다. 아이들도 그 정도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럴 경우 부모가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를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괜한 자존심을 내세우지 마십시오. 자녀 앞에서 정직하십시오. 그러면 오히려 그런 부모를 존경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보통의 경우 쓸데 없는 권위 의식 때문에 자녀 앞에서 그것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은폐하려고 합니다. 그럴 때 아이들의 눈에는 부모가 위선자로 보이게 됩니다. 이것은 자녀 교육에 있어 독약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부모가, 존경하는 부모가, 자랑스러운 부모가 위선자의 모습으로 비추어질 때 아이가 받는 충격은 엄청난 것입니다. 그러면 자녀 교육은 끝장난 것입니다. 더 이상 교육이 불가능한 상태가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리고 사랑하는 자녀 여러분! 시편 127편 3절을 보면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와 함께 예배 드리는 우리의 자녀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상급으로 주신 우리의 기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기업을 잘 일으키기 위해 애 쓰고 노력합니다. 세상의 다른 일들은 아무리 잘되고 성공을 했다고 해도 자녀가 잘못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반대로 아무리 세상 일이 잘 안되고 성공을 하지 못했다고 해도 자녀를 잘 키웠다면 세상의 실패나 어려움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세상에서 실패한 것을 자녀로부터 충분히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가정을 최상의 학교로, 그리고 부모가 최고의 선생으로 하는 일을 잘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열심히 벌어서 좋은 학교에 다니게 하고, 좋은 것 먹게 하고, 좋은 환경에서 살게 하는 데는 잘 하시는 것 같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부모님들은 다른 나라 부모님들보다 더 잘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한국 부모님들은 자녀 교육 시키다가 죽는다는 말도 있을 정도입니다. 부모님들은 먹을 것 잘 안 먹고, 가고 싶은 곳 안 가고, 하고 싶은 것 안 하고 돈을 모아 자녀 교육을 위해 아낌 없이 쏟습니다. 참 잘 하시는 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한국 부모님들은 참으로 존경스럽고 자랑할 만합니다.
그러나 이런 외적인 교육은 잘 시키지만 내적인 교육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좋은 학교에만 가면 다 되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고 계시는 부모님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을 비교해 보십시오. 어떤 것이 더 중요합니까 내적인 것이라고 대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외적인 교육에 더 치중합니다. 외적인 교육만 잘 시키면 내적인 교육은 저절로 잘 되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래서 좋은 학교에서 좋은 교육을 받지만 인격적인 면에서는 형편 없는 아이들이 주위에 많습니다. 이런 아이가 성장하여 나중에 사회에 나가면 어떤 사람이 되겠습니까 말하지 않아도 뻔합니다.
아까 설교 서두에서 예로 들었던 어글리 코리안들이 왜 생겼을까요 어릴 때 그들의 부모님들이 외적 교육에는 치중하였으나 내적 교육에는 등한시 하였기 때문입니다. 공부는 많이 해서 지식은 많이 쌓았는지 모르겠으나 하나의 고상한 인격체로 만드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오늘날 청소년들이 왜 더 심하게 타락하고 있습니까 학교에 안 다녀서요 아닙니다. 가정 교육을 잘 받지 못해서 입니다. 부모님들이 가정에서 잘 가르치지 못해서 입니다. 세상은 날이 갈수록 더 악해져 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부모님들이 정신 바짝 차리고 자녀들을 바르게 가르치지 못한다면 자녀들의 장래에 큰 소망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외적 교육보다 내적 교육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8장 6절에 보면 우리 자녀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자녀를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말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고 훈련시키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 세상 지식과 학문으로 교육시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생활화되도록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르치고 훈련을 시킬 때 우리들의 자녀들은 아무리 세상이 혼탁하고 유혹이 많아도 훌륭하게 자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면 훌륭하게 자랄 것입니다. 이렇게 자란 자녀들은 결국 우리의 기업과 상급이 될 것입니다. 이런 교육을 시키시는 믿음의 부모, 그리고 그런 교육을 받고 자라는 복된 자녀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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