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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그리스도인의 자녀 양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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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교회가 어린이 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먼저 우리는 어린이 주일을 맞으면서 우리 주 예수님께서 어린이를 사랑하시고 또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까지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암으로 죽어가던 한 사람이 남긴 글이 있습니다.
내가 조금만 더 살 수 있다면, 이제는 조금 적게 말하고, 더 많이 듣고 싶고, 모든 것을 나 중심적으로 살기보다 다른 사람을 조금 더 생각하며 살고 싶고, 아내의 짐을 더 나눠서 지고, 자녀들에게는 '사랑한다!'고 더 말하고 싶습니다.
오늘은 여러분 연세가 드신 분이든 아니면 젊은 분이든 자녀들에게, 그리고 어린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또 우리 교회의 어린이들을 보면서 정말 사랑한다는 표현을 한 번 해보는 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은 짧습니다.
내 눈으로 보기에 미운 짓 하는 사람들을 다 미워하면서 살기에는 너무 짧은 인생입니다.
오늘은 어린이주일인데, 어떻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녀들을 향하여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혹은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하는 것을 살펴보고 싶습니다.
1.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으려는 마음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한 번 읽습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바울 사도가 이 말씀을 전하는 것은 당시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아주 파격적인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로마에서는 아버지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아버지는 자식을 물건처럼 팔 수도 있었고, 심지어는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아비들아!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머니들은 결코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부모들에게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부모 때문에 생기는 마음의 상처는 많은 불행의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저는 최근에 오늘날 성도들이 바로 예배하지 못하고, 기도하지 못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상처받은 마음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의 갈등으로, 혹은 부모 중 한 사람이 준 상처 때문에, 혹은 그 밖의 가족이나 친지 이웃들로부터 어렸을 때 받은 상처 때문에 자아상이 너무나 일그러져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렸을 때 부모를 잃어버리고 깊은 상처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친부모가 아닌 계부나 계모 밑에서, 혹은 고아원에서 아픔을 겪으면서 자라면서 너무나 고통스러운 상처를 입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친구들은 다 가는 학교를 가지 못하고 마음에 상처를 받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어렸을 때 동네 아줌마들이 농담으로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 던진 말들 때문에 깊은 상처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그밖에도 어린 시절에 여러 가지 상처로 인해 자아상들이 많이 일그러져 있습니다.
그리고 일그러진 자아로부터 독소가 나오면서 심지어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도, 사람들과의 관계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 일그러지고 상처입은 자아를 치료하는 길은 주님의 손길이 그 마음을 만져주시는 길입니다.
저는 먼저 어린이 주일을 맞으면서 혹시 어렸을 때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상처를 입은 성도들이 있다면,
오늘 다시 그 어린 시절 입은 상처를 어루만져 주시는 주님의 은총이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오늘도 여러분의 아픈 상처들을 치료해주시고 일으켜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그 찬양을 기억하시지요
주님과 같이 내 마음 만지는 분은 없네, 오랜 세월 찾아 난 알았네 내겐 주밖에 없네
주님이 먼저 여러분의 마음의 상처를 만져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자 이제 우리는 다시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로 인해 자녀들의 마음에 상처가 되지는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자녀들을 노엽게 만들고 있지 않느냐, 상처를 주고 있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자녀들에게 오늘 상처를 주고 있습니까
저는 먼저 3가지 정도의 이유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부모가 욕심을 가지고 자녀에게 너무 많이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어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주려고 애쓰기보다는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자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녀의 삶을 거의 착취합니다.
어떤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자기 속에 자리잡은 상처들로 말미암아 그 상처를 자녀를 통해 보상을 받으려고 자녀의 인생을 착취합니다.
그런 자녀들은 부모에 대해 분노를 가지다가, 결국 자기 마음이 병들게 됩니다.
나이트 클럽에서 누드 댄서로 일하는 한 여성에게 왜 그런 일을 하느냐고 물으니까
저는 춤을 출 때마다, 아빠 얼굴에 대고 춤을 춘다고 생각하고 춤추는 거예요. 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권위적이고, 독단적이었는데 그런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으로 그처럼 방탕한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부모의 욕심과 독단은 자녀들에게 상처를 입힙니다.
저는 지금 자녀들을 방임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언제나 자녀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나의 욕심이 아닌가 하는 것을 돌아보셔야 합니다.
 둘째, 부모가 자녀들 앞에서 너무 의인인 척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이 왜 오늘날 교회의 중직을 가진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안하고 뒷전에 있느냐 하면 부모들이 교회에서는 의인인 척 하는데 집에서는 엉망이라서 그렇다고 평가했습니다.
자녀는 부모가 정말 의롭게 살 때에는 존경하지만, 의인인 척 할 때는 존경심을 버리고 그 마음에 상처를 입는 것입니다.
어떤 부모들은 자녀에게 부족한 모습을 보이면 권위가 깎이는 줄 압니다.
그러나 부모도 죄인입니다. 부모들도 예수님이 필요하고 복음이 필요합니다.
자녀들은 부모가 잘못했을 때 그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는 모습을 보기 원합니다.
그런 부모의 솔직한 모습을 보면 오히려 자녀는 부모를 더 존경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 우리가 자녀를 노엽게 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같은 잔소리를 끊임없이 하는 솔직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일까요 물론 부분적으로는 그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더 분명한 이유는 부모 자신에게 믿음이 없고 두려움이 많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위해 기도하지 않는 부모가 있습니까
그런데 자녀를 위해 그렇게 기도하면서도 자녀의 인생 길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장 아름답게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끊임없는 잔소리입니다.
그렇게 잔소리하면 결과가 어떻습니까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을 보셨습니까
잔소리로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역효과만 납니다.
왜 많은 부모들은 아이의 특성을 이해하기보다 무조건 잔소리부터 하게 됩니까
깊이 생각해보면 그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불신과 두려움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나의 인생 길을 인도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는 알지만, 우리 자녀에게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있을 것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와 같이 자녀를 심하게 꾸짖고, 자녀의 체면을 깎는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애령씨가 이런 이야기를 하나 썼습니다.
초등학교 아이를 데리고 가던 어머니가 길에서 친구를 만났습니다.
어머, 네 아들이니 아주 잘 생겼다
잘 생기면 뭐하니 공부를 잘 해야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대화입니다.
그런데 우애령씨는 반대로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엄마 손을 잡고 가던 아이가 길에서 친구를 만났습니다.
야, 너희 엄마니 너희 엄마 참 예쁘다
아이가 대답합니다.
예쁘면 뭐하니 살림을 제대로 해야지
여러분,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으면서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으려는 마음 자세를 갖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2.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오늘 본문 하반부를 보면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고 합니다.
자녀를 양육할 때는 주의 교양과 엄격한 훈계 두 가지가 다 있어야 합니다.
먼저 우리는 자녀들에게 주의 교양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주의 진리의 말씀으로 자녀를 양육해야 합니다.
잠22:6을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합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각종 정보만 넣어주고, 대학 진학을 위한 지식만 쌓도록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마땅히 행할 길, 주의 교양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차분히 주의 말씀을 가르쳐 보셨습니까
자녀들이 공부 안하고 노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워하듯이 주의 말씀을 읽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 자녀를 바라보면서 안타까워합니까
자녀들이 성경을 너무 모르는 것 때문에 교회 사역자들에게 성경과외를 시켜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이라도 가져 보셨습니까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여러분 중에 성경은 나중에 배워도 되지만 학교 공부는 지금 안 시키면 그 아이 앞 길이 막힌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그 잘못된 고정관념을 깨뜨리셔야 합니다.
사람은 그 생각하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젊은 여자가 병원에 와서 자기 뱃속에 개구리를 꺼내 달라고 했습니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는 의사에게 여자가 설명을 합니다.
몇 달 전에 산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너무 목이 말라 웅덩이에 고인 물을 손바닥으로 움켜서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어서다 보니까 그 웅덩이에서 올챙이들이 헤엄치고 놀더라는 것이지요.
그 후에 가끔 배가 아파서 가만히 날짜를 계산해 보니까 그 때 몸속에 들어간 올챙이가 이제 개구리가 되어서 몸 안에 돌아다니는 것이 틀림이 없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의사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설명도하고 엑스 레이도 찍어서 보여주고 아무리 설명해도 안됩니다.
하는 수 없이 그 의사는 수술을 하는 척 하고 개구리 한 마리를 준비해서 마취에서 깨어난 후 그 개구리라고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그 여자는 이제 언제 아팠느냐는 듯이 기뻐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두 세 달이 지나자 이 여자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지난 번 수술할 때 개구리는 잡아냈지만 그 개구리가 낳은 알들이 부화를 해서 지금 새끼 개구리들이 자기 뱃속을 휘젓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정신병자와 같은 한 사람의 이야기지만 이렇게 우리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기가 어렵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들의 머리에는 우선 서울, 연고대를 들어가야 자녀들이 잘 산다는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자녀들이 이 험한 세상에서 제대로 잘 사는 길은 주의 도우심을 받으며, 주의 말씀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잘 이해해주고, 대화도 해주고, 여행도 가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 기회를 잘 포착하여 여호와 하나님 말씀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훈계, 곧 훈련을 잘 시켜야 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훈계의 원어적인 의미는 매를 드는 것을 포함하는 의미입니다.
잠언 13장 24절은 말합니다.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공동 번역에서 이 부분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자식이 미우면 매를 들지 않고 자식이 귀여우면 채찍을 찾는다.
어떤 부모는 자녀가 게을러도 그냥 놔두고, 버릇없이 다녀도 그냥 놔둡니다.
그것은 자녀에게 평생 고통스런 삶을 주는 부모의 책임 회피중의 하나입니다.
반대로 어떤 부모는 자녀가 마음이 약해진 상태인데도 야단부터 치고 봅니다.
그러한 모습은 자녀의 영혼을 더 병들게 하고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듭니다.
우리는 자녀의 마음 상태를 잘 파악하고 기도하며 그들을 잘 이끌어야 합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으면서 다시금 자녀들에게, 그리고 모든 어린이들에게 진정한 사랑을 주는 은총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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