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좋은 자녀가 되는 길
본문
어린이 주일입니다. 우리 어린이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건강과 지혜가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기념일에 대한 우리의 개념이 좀 바뀌었으면 합니다. 생일은 생일 당한 사람이 축하를 받는 날이 아니라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는 날이 되면 좋겠습니다.
어린이날은 어린이가 축하 받는 날이 아니라 어린이가 부모와 스승과 사회에 책임을 잘 알 수 있는 날이 되고,
어버이날은 어버이가 자녀에 대한 바른 책임을 생각해 보는 날이 되고, 스승의 날은 학생들에게 대접받는 날이 아니라 스승의 도를 확립하고 다시 사도의 칼날을 세우는 날 되길 바랍니다. 어린이 주일은 아이들을 축하하고 "아이들에게 잘 하세요"라고 하는 날이기 보다 아이들에게 "부모에게 잘 하는 자녀 되세요"라고 아이들이 해야 할 일을 가르치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 어버이 주일은 "부모에게 잘 하세요"라고 하기 보다 "부모로서 자녀에게 좋은 부모가 되세요"라고 하는 것이 더 중요하리라고 봅니다.
우리 사회가 자신의 의무보다 권리가 앞서는 사회로 변질되고 있는데 대접받는 날이 아닌 책임을 다짐하는 날이 될 때에 진정한 의미가 살아날 것입니다. 외국에 입양된 한국 사람들이 나이 들어 다시 한국에 부모를 찾으러 옵니다. 자신의 뿌리를 찾는 것은 인간의 본능일 것입니다. 그런데 뿌리를 알면서도 부모를 공경하지도, 순종하지도 않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순종은 고사하고 오히려 구타하고 버리는 사람까지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정신도 온전치 못한 할머니를 호주에 보내 버린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돌아오는 비행기 표도 없이 며칠째 구걸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우주 여행할 때가 되면 아예 지구 밖으로 버리는 사람도 생길 것입니다.
성서의 역사 접근법은 가족입니다. 그러나 현대의 역사책은 어떤 식의 접근법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어느 책을 보더라도 문명의 흥망성쇠로부터 시작합니다. 오늘날의 신문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습니까 나라와 도시와 대학과 정부와 회사에 대한 이야기들입니다. 초점은 가족에서 기구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신약성서는 어떠합니까 역시 교회를 기구보다도 가족과 닮은 존재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필립 얀시는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에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가정 중심의 역사, 가정 중심의 문명, 가정 중심의 이야기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어떤 분이 말하기를 요즘은 과일에 철이 없으니 사람들까지고 철이 없다고 합디다. 우리 아이들이 철이 있기를 바랍니다. 철든 아이들은 부모의 소중함을 알고, 성경적 순종과 공경을 알며 성경대로 좋은 자녀가 됩니다. 이런 아이들이 우리 교회에 많기를 바랍니다.
첫째, 주안에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는 말은 부모와 자녀 사이의 대 전제입니다. 순종하다는 말은 "휘파쿠에테"인데 현재 능동태 명령형입니다. 순종은 자녀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 사항입니다. 자녀에게 있어서는 반드시 해야 할 명령입니다. 그런데 "주안에서"라고 합니다. 필수이지만 주안에서라는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부모입장에서도 자녀에게 주안에서 명령하라는 말입니다. 자녀에게 절대로 그릇된 것을 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어릴 때 순종하라는 명령은 무조건 순종하고 그릇된 것도 순종해야 하나 하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도둑질을 시켜도 순종해야 하는가 라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주안에서의 순종이란 주 밖에서의 명령은 순종하지 말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순종하는 이것이 옳으니라 라고 합니다. 순종은 옳은 일입니다. 불순종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옳다라는 헬라어는 디카이오스인데 디카이오스는 의라는 뜻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순종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갑니다. 칼빈은 이 말을 "이것은 성경에 꼭 맞는 일이다"라고 해석했습니다.
바르트는 "부모님에게 자녀가 순종하는 것은 창조의 질서이다"라고 해석하였습니다. 순종한다(obedient)라는 영어는 '듣는다'는 뜻의 라틴어 단어 아우디레(audire)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성경은 순종과 들음을 엄하게 명령합니다. 신명기 21:18-21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말씀이 있습니다. 부모의 말을 순종하지 않고, 부모의 권고를 듣지 않으면 부모가 그를 잡아 가지고 동네의 장로들에게 가서 그 아들이 순종을 않고, 술에 취하고 방탕하다고 이르면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돌로 그 아들을 치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 마지막에는 "너희 중에 악을 제하라"는 말씀이 덧붙여 있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고 부모의 권면을 듣지 않는 자체가 악이란 뜻입니다. 이런 벌을 내리게 되면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고 합니다. 성경은 부모가 이 자녀를 잡아 가지고 가라고 합니다. 요즘 아들을 죽여달라고 잡아갈 부모도 없고, 잡혀갈 자녀도 없습니다. 이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모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삭을 바치라고 명령하신 다음 아브라함은 아들에게 나무를 매게 하고 모리아로 갑니다. 이 사건을 보면 아브라함만 위대한 것이 아니라 이삭도 위대합니다. 이삭이 왜 몰랐겠습니까 알지만 아버지를 믿고, 순종하고, 따르고, 묶이고, 제단 위에 올라앉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지만 이삭은 듣지도 못하고 이 만큼 따라 간 것만 해도 대단합니다. 순종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육신의 아버지께 순종하여 받드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라고 고통 중에서도 순종하셨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에서는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합니다.
영국의 에드워드왕은 8살에 왕위에 즉위했습니다. 당시의 규례 부모의 동의 없이 결혼할 수 있는 연령이 18세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승정원은 어린 왕에게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여자를 지배하는 것이 나라를 지배하는 일보다 어렵기 때문입니다, 폐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작은 일이라도 동의를 얻으십시오. 왜냐하면 나를 지배하는 것은 세상을 지배하는 것보다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를 진정코 지배할 줄 아는 분은 세상에서 부모님밖에 없습니다.
둘째,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공경하라는 말은 티마입니다. 티마란 높은 가격을 매긴다. 소중히 여긴다. 가치를 둔다. 는 뜻입니다. 부모공경에 삶의 가치를 두는 것입니다. 공경이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 올리는 존귀와 같은 뜻입니다. 공경이란 말은 신구약에 31번 나타납니다. 부모에 대하여 17번,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7번, 나머지가 7번입니다. 공경이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태도이지만 성경은 부모님께 더 많이 적용하고 있습니다. 부모님께 대한 공경이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태도입니다. 공경은 약속 있는 첫 계명입니다. 이것에 대한 유대인의 가르침은 가정에서 아이들의 위치와 계명이 무엇인가를 일러줍니다. 부모는 여호와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모든 곳에 다 다니실 수 없기 때문에 부모님을 주셨다는 말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20:12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여호와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합니다. 십계명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은 1계명과 5계명입니다. 2계명에서 4계명까지는 1계명의 해설입니다. 6계명에서 10계명까지는 5계명의 해설입니다. 레위기 19:3은 "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고 권합니다. 이 성경은 부모 경과 안식일 엄수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부모 공경은 안식일 엄수만큼 중요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자신의 부모님을 높여 주십시오. 내가 높아지고, 부모가 늙어가고, 늙어 흉해지고, 몸이 약해질수록 높이고 공경하십시오. 옛날 어른들 요즘처럼 학력도 높지 못하고 낮을수록 공경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력 높은 자녀가 되게 했다면 더 공경을 받으실만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부모님의 은혜를 모른다면 너의 친구가 되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부모님에게 공경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 도 공경하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 커서 여호와 하나님이 없다고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는 자는 장성하면 무신론자가 됩니다. "군대 가기 전 아들이 돌아오지 군대 간 아들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군대 가 있으면 누구나 효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 군대간 아들들도 꼭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자녀들이 효자, 효녀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신명기 27:16에는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고 합니다. 얼마나 성경은 부모 공경을 강조하고 무섭게 경고하는지 모릅니다. 부모를 공경하세요. 아니면 저주를 받습니다. 저주를 받기 싫어서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이며 마땅한 이치이기 때문에 공경해야 합니다. 가끔 글이나 방송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아버지/어머니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가장 듣기 좋은 말이라 생각합니다. 가장 존경받는 부모는 가장 자녀를 잘 양육한 부모이고 가장 행복한 부모입니다. 자녀의 존경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아무리 존경한다고 해도 가식입니다. 진정한 존경은 아닙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자녀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자신의 부모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 부모님의 훈계를 듣는 것입니다.
잠언 4:1은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고 합니다. 부모의 훈계를 들을 줄 알아야 참 자녀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꾸지람을 잘 못 듣습니다. 꾸지람을 들었다고 자살하기도 하고 꾸지람을 했다고 부모를 폭행하기도 합니다. 훈계를 듣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훈계를 할 수 있는 부모가 있는 것이 행복한 일입니다.
솔로몬은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임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도 내 아버지에게 아들이었으며 내 어머니 보기에 유약한 외아들이었었노라"고 고백합니다. 아무리 지혜가 넘쳐도 아버지에게는 어리고 불안스런 아들입니다. 그래서 성경 잠언 29:17에는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고 합니다. 성경이 징계, 훈계를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것이 부모의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또 누구나 훈계는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고 합니다. 훈계는 자녀라는 증거로 주어집니다. 부모가 자녀를 아예 꾸지람을 않는다면 부모이기를 포기했거나 자녀에 대한 기대감을 상실했거나 자녀가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테일러라는 교육학자는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의 92%는 부모로부터 오고 8%는 나머지로부터 온다고 하였습니다. 누가 뭐래도 가장 큰 스승은 부모입니다. 제가 아는 집사님의 아들은 너무나 개구쟁이라서 한번은 교회의 어느 장로님이 야단을 치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야, 너 누구 닮아 그렇게 까부냐" 그 아이는 대뜸 "우리 아버지 닮았잖아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정답을 한 것입니다. 부모를 싫어해도 이미 가장 많이 닮아 있습니다. 부모는 가장 큰 스승입니다. 디모데전서 3:2에는 말세에 대한 한 가지 현상을 "부모를 거역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점점 부모를 거역하는 시대에 살면서 역사를 거슬러 부모의 훈계를 듣는 자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결론
잠언 23:25에는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합니다. 하루하루 부모님의 기쁨을 찾고 기쁨을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기쁨 가운데서 여러분의 기쁨을 채우실 것입니다.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보면서 기쁨을 얻어야 참 기쁨입니다. 이런 기쁨의 자녀가 되기를 바랍니다.
어린이날은 어린이가 축하 받는 날이 아니라 어린이가 부모와 스승과 사회에 책임을 잘 알 수 있는 날이 되고,
어버이날은 어버이가 자녀에 대한 바른 책임을 생각해 보는 날이 되고, 스승의 날은 학생들에게 대접받는 날이 아니라 스승의 도를 확립하고 다시 사도의 칼날을 세우는 날 되길 바랍니다. 어린이 주일은 아이들을 축하하고 "아이들에게 잘 하세요"라고 하는 날이기 보다 아이들에게 "부모에게 잘 하는 자녀 되세요"라고 아이들이 해야 할 일을 가르치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 어버이 주일은 "부모에게 잘 하세요"라고 하기 보다 "부모로서 자녀에게 좋은 부모가 되세요"라고 하는 것이 더 중요하리라고 봅니다.
우리 사회가 자신의 의무보다 권리가 앞서는 사회로 변질되고 있는데 대접받는 날이 아닌 책임을 다짐하는 날이 될 때에 진정한 의미가 살아날 것입니다. 외국에 입양된 한국 사람들이 나이 들어 다시 한국에 부모를 찾으러 옵니다. 자신의 뿌리를 찾는 것은 인간의 본능일 것입니다. 그런데 뿌리를 알면서도 부모를 공경하지도, 순종하지도 않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순종은 고사하고 오히려 구타하고 버리는 사람까지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정신도 온전치 못한 할머니를 호주에 보내 버린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돌아오는 비행기 표도 없이 며칠째 구걸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우주 여행할 때가 되면 아예 지구 밖으로 버리는 사람도 생길 것입니다.
성서의 역사 접근법은 가족입니다. 그러나 현대의 역사책은 어떤 식의 접근법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어느 책을 보더라도 문명의 흥망성쇠로부터 시작합니다. 오늘날의 신문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습니까 나라와 도시와 대학과 정부와 회사에 대한 이야기들입니다. 초점은 가족에서 기구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신약성서는 어떠합니까 역시 교회를 기구보다도 가족과 닮은 존재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필립 얀시는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에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가정 중심의 역사, 가정 중심의 문명, 가정 중심의 이야기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어떤 분이 말하기를 요즘은 과일에 철이 없으니 사람들까지고 철이 없다고 합디다. 우리 아이들이 철이 있기를 바랍니다. 철든 아이들은 부모의 소중함을 알고, 성경적 순종과 공경을 알며 성경대로 좋은 자녀가 됩니다. 이런 아이들이 우리 교회에 많기를 바랍니다.
첫째, 주안에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는 말은 부모와 자녀 사이의 대 전제입니다. 순종하다는 말은 "휘파쿠에테"인데 현재 능동태 명령형입니다. 순종은 자녀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 사항입니다. 자녀에게 있어서는 반드시 해야 할 명령입니다. 그런데 "주안에서"라고 합니다. 필수이지만 주안에서라는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부모입장에서도 자녀에게 주안에서 명령하라는 말입니다. 자녀에게 절대로 그릇된 것을 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어릴 때 순종하라는 명령은 무조건 순종하고 그릇된 것도 순종해야 하나 하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도둑질을 시켜도 순종해야 하는가 라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주안에서의 순종이란 주 밖에서의 명령은 순종하지 말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순종하는 이것이 옳으니라 라고 합니다. 순종은 옳은 일입니다. 불순종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옳다라는 헬라어는 디카이오스인데 디카이오스는 의라는 뜻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순종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갑니다. 칼빈은 이 말을 "이것은 성경에 꼭 맞는 일이다"라고 해석했습니다.
바르트는 "부모님에게 자녀가 순종하는 것은 창조의 질서이다"라고 해석하였습니다. 순종한다(obedient)라는 영어는 '듣는다'는 뜻의 라틴어 단어 아우디레(audire)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성경은 순종과 들음을 엄하게 명령합니다. 신명기 21:18-21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말씀이 있습니다. 부모의 말을 순종하지 않고, 부모의 권고를 듣지 않으면 부모가 그를 잡아 가지고 동네의 장로들에게 가서 그 아들이 순종을 않고, 술에 취하고 방탕하다고 이르면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돌로 그 아들을 치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 마지막에는 "너희 중에 악을 제하라"는 말씀이 덧붙여 있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고 부모의 권면을 듣지 않는 자체가 악이란 뜻입니다. 이런 벌을 내리게 되면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고 합니다. 성경은 부모가 이 자녀를 잡아 가지고 가라고 합니다. 요즘 아들을 죽여달라고 잡아갈 부모도 없고, 잡혀갈 자녀도 없습니다. 이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모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삭을 바치라고 명령하신 다음 아브라함은 아들에게 나무를 매게 하고 모리아로 갑니다. 이 사건을 보면 아브라함만 위대한 것이 아니라 이삭도 위대합니다. 이삭이 왜 몰랐겠습니까 알지만 아버지를 믿고, 순종하고, 따르고, 묶이고, 제단 위에 올라앉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지만 이삭은 듣지도 못하고 이 만큼 따라 간 것만 해도 대단합니다. 순종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육신의 아버지께 순종하여 받드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라고 고통 중에서도 순종하셨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에서는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합니다.
영국의 에드워드왕은 8살에 왕위에 즉위했습니다. 당시의 규례 부모의 동의 없이 결혼할 수 있는 연령이 18세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승정원은 어린 왕에게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여자를 지배하는 것이 나라를 지배하는 일보다 어렵기 때문입니다, 폐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작은 일이라도 동의를 얻으십시오. 왜냐하면 나를 지배하는 것은 세상을 지배하는 것보다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를 진정코 지배할 줄 아는 분은 세상에서 부모님밖에 없습니다.
둘째,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공경하라는 말은 티마입니다. 티마란 높은 가격을 매긴다. 소중히 여긴다. 가치를 둔다. 는 뜻입니다. 부모공경에 삶의 가치를 두는 것입니다. 공경이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 올리는 존귀와 같은 뜻입니다. 공경이란 말은 신구약에 31번 나타납니다. 부모에 대하여 17번,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7번, 나머지가 7번입니다. 공경이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태도이지만 성경은 부모님께 더 많이 적용하고 있습니다. 부모님께 대한 공경이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태도입니다. 공경은 약속 있는 첫 계명입니다. 이것에 대한 유대인의 가르침은 가정에서 아이들의 위치와 계명이 무엇인가를 일러줍니다. 부모는 여호와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모든 곳에 다 다니실 수 없기 때문에 부모님을 주셨다는 말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20:12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여호와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합니다. 십계명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은 1계명과 5계명입니다. 2계명에서 4계명까지는 1계명의 해설입니다. 6계명에서 10계명까지는 5계명의 해설입니다. 레위기 19:3은 "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고 권합니다. 이 성경은 부모 경과 안식일 엄수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부모 공경은 안식일 엄수만큼 중요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자신의 부모님을 높여 주십시오. 내가 높아지고, 부모가 늙어가고, 늙어 흉해지고, 몸이 약해질수록 높이고 공경하십시오. 옛날 어른들 요즘처럼 학력도 높지 못하고 낮을수록 공경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력 높은 자녀가 되게 했다면 더 공경을 받으실만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부모님의 은혜를 모른다면 너의 친구가 되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부모님에게 공경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 도 공경하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 커서 여호와 하나님이 없다고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는 자는 장성하면 무신론자가 됩니다. "군대 가기 전 아들이 돌아오지 군대 간 아들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군대 가 있으면 누구나 효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 군대간 아들들도 꼭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자녀들이 효자, 효녀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신명기 27:16에는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고 합니다. 얼마나 성경은 부모 공경을 강조하고 무섭게 경고하는지 모릅니다. 부모를 공경하세요. 아니면 저주를 받습니다. 저주를 받기 싫어서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이며 마땅한 이치이기 때문에 공경해야 합니다. 가끔 글이나 방송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아버지/어머니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가장 듣기 좋은 말이라 생각합니다. 가장 존경받는 부모는 가장 자녀를 잘 양육한 부모이고 가장 행복한 부모입니다. 자녀의 존경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아무리 존경한다고 해도 가식입니다. 진정한 존경은 아닙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자녀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자신의 부모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 부모님의 훈계를 듣는 것입니다.
잠언 4:1은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고 합니다. 부모의 훈계를 들을 줄 알아야 참 자녀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꾸지람을 잘 못 듣습니다. 꾸지람을 들었다고 자살하기도 하고 꾸지람을 했다고 부모를 폭행하기도 합니다. 훈계를 듣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훈계를 할 수 있는 부모가 있는 것이 행복한 일입니다.
솔로몬은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임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도 내 아버지에게 아들이었으며 내 어머니 보기에 유약한 외아들이었었노라"고 고백합니다. 아무리 지혜가 넘쳐도 아버지에게는 어리고 불안스런 아들입니다. 그래서 성경 잠언 29:17에는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고 합니다. 성경이 징계, 훈계를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것이 부모의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또 누구나 훈계는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고 합니다. 훈계는 자녀라는 증거로 주어집니다. 부모가 자녀를 아예 꾸지람을 않는다면 부모이기를 포기했거나 자녀에 대한 기대감을 상실했거나 자녀가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테일러라는 교육학자는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의 92%는 부모로부터 오고 8%는 나머지로부터 온다고 하였습니다. 누가 뭐래도 가장 큰 스승은 부모입니다. 제가 아는 집사님의 아들은 너무나 개구쟁이라서 한번은 교회의 어느 장로님이 야단을 치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야, 너 누구 닮아 그렇게 까부냐" 그 아이는 대뜸 "우리 아버지 닮았잖아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정답을 한 것입니다. 부모를 싫어해도 이미 가장 많이 닮아 있습니다. 부모는 가장 큰 스승입니다. 디모데전서 3:2에는 말세에 대한 한 가지 현상을 "부모를 거역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점점 부모를 거역하는 시대에 살면서 역사를 거슬러 부모의 훈계를 듣는 자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결론
잠언 23:25에는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합니다. 하루하루 부모님의 기쁨을 찾고 기쁨을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기쁨 가운데서 여러분의 기쁨을 채우실 것입니다.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보면서 기쁨을 얻어야 참 기쁨입니다. 이런 기쁨의 자녀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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