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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어버이에게 주신 지상명령

본문

저는 이 요절을 어버이에게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지상 명령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실 줄 믿습니다. 어버이로서 가장 가치 있고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일까 내가 제일 사랑하는 내 생명의 연장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는 여러분 생명의 연장입니다. 여러분은 죽어요, 우리 모두는 죽습니다. 그렇지만 자녀들을 통해서 내 생명이 이 지상에서 연장되는 것입니다. 물론 내 영혼은 천국에 가지요, 그렇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지상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지속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자녀를 주신 거예요. 자녀들은 지상에서의 내 생명의 연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 시대에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자식을 원하는 거예요. 자식이 없으면 지상에서의 자기 생명이 끊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어버이날을 맞아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이 지상 명령을 생각해 보려 합니다.
여기에 보니까,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그랬습니다. 우리들은 본의 아니게 우리의 자녀를 노엽게도 하고 아내도 노엽게 합니다. 또 아내들은 남편을 노엽게 하고 시어머니도 노엽게 합니다. 본의 아니게 그럴 때가 많이 있어요. 예전에는 특히 아비들이 자녀들을 명령으로 마구 눌러서 자녀들을 노엽게 한 때가 많이 있었어요. 우리 성경에는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영어 성경에는 '주의 교양'이라는 말이 'discipline(훈련)', 그리고 '훈계'는 'instruction(가르침)'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원문에 보다 가깝습니다.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예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영으로 훈련(discipline)하라. 또 말씀을 가르치면서 양육하라'고 하는 뜻입니다.
어린아이들을 잘 양육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인데, 우리의 어린아이들을 양육하는데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환경이올시다. 환경을 조성하지 않으면 잘 자라지 못 합니다. 꽃나무나 과실나무를 키울 때 아무리 비료를 주고 태양 빛이 좋다고 해도 토질이 나쁘면 태양 빛이 들어오지를 않아요. 기본적 환경이 좋지 않으면 아무리 거름을 주고 벌레를 잡아 주어도 열매를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환경을 조성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부모님이 서로 얼마나 사랑하는가 가장 좋은 환경이 무엇입니까 성경에서는 가장 좋은 환경을 '에덴 동산'이라고 부릅니다. 가장 좋은 환경을 천국이라고 부릅니다. 히브리말로 '에덴'이라는 말은 '기쁨'입니다. 그래서 '에덴 동산'이라는 말은 '기쁨의 동산'이라는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대로 지으신 아담과 하와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의 형상이에요. '아빠 닮았다,' 또는 '엄마 닮았다'고 하지요 우리 인간의 마음과 성품이 지금은 죄인이니까 변질되었지만, 본래는 여호와 하나님을 닮았어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대로 지으신 귀한 자녀들을 어디에 두셨어요 아무 곳에나 두시지 않고 특별히 에덴 동산, 기쁨의 동산을 창조하셔서 그 곳에 두셨어요. 우리 사랑하는 부모들이 그 어린 자녀들을 가슴이 찢어지고 터지고 메이도록 '이 아이만 잘 되면... ' 하며 사랑하듯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어디에 두셨어요 에덴 동산, 그 기쁨의 동산에 두셨습니다. 기쁨의 동산에는 무엇이 있었읍니까 선악과가 있었어요. 선악과가 뭐예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우리를 사랑하신다면서 왜 선악과를 만들고 그걸 따먹지 말라 하시는지 "따먹지 말라"고 하실 바엔 아예 만들지도 않으셨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제자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은 그 뜻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제자 훈련받은 사람은 선악과가 무엇인지 깨달아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따먹지 말라"고 하실 바엔 아예 만들지 마시든지 아니면 한 쪽 구석에 놓지 않으시고, 에덴 동산 중앙에 놓으셨어요. 그것도 따먹지 말라고만 하신 것이 아니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셨는데, 왜 그러셨는지 이상해요. 그러나 우리는 선악과가 있었기 때문에 에덴 동산이 기쁨의 동산이 되었다고 배웠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선악과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선악과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아담과 하와가 왜 선악과를 따먹고 기쁨의 동산에서 쫓겨났는지를 알면 됩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고 쫓겨났어요. 선악과를 따먹으면 왜 쫓겨 나는 것입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따먹지 말라' 하신 그 명령을 불순종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악과를 따먹는 것은 사과를 따먹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고, 선악과를 따먹는 것은 불순종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그랬으면 쫓겨나지 않아요.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으면 계속 기쁨의 동산에 있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먹는 것은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 따먹지 않는 것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악과라는 열매의 문제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선악과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배웠어요. 선악과를 따먹는 것은 불순종인데, 불순종하니까 쫓겨 나는 거예요. 선악과를 안 따먹는 것은 순종하는 것이니까 에덴 동산에 머물러 있어요. 이 에덴 동산을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라고 합니다. 기쁨의 동산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랑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니까 기쁨이 충만해요. 우리가 우리의 가정을 참 좋은 환경으로 삼기 원한다면, '에덴 동산 중심에 선악과나무가 있어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지 않고 순종만 했더라면 ... ' 하고 우리 가정의 중앙에 여호와 하나님 말씀을 두고 여호와 하나님 중심의 가정이 되어서, 우리의 가정이 여호와 하나님께 주권을 바치고 순종할 때, 우리의 가정이 에덴 동산이 된다고 배웠읍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 주권을 바친다는 것은 무엇인가 여호와 하나님 중심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말로는 이렇게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우리 자녀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 그것은 제일 먼저 여호와 하나님께 제단을 쌓을 줄 아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지만, 그는 본래 이방인의 나라에서 우상을 섬기며 살던 할아버지입니다. 소망이 없던 아브라함이 일흔 다섯 살 때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되어 여호와 하나님을 따르기 시작해서 믿음의 조상이 됐는데, 아브라함의 일생을 보면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먼저 제단을 쌓았어요. 그렇게 해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여호와 하나님에게 축복의 근원이 되는 삶을 살았는데, 그가 했던 일은 먼저 제단을 쌓는 일이었습니다.
옛날 청교도들이 미국에 와서 제일 처음에 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가난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었어요. 그런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그들은 마을을 형성할 때 먼저 그 마을의 중심지를 찾았어요. 그들에게는 아직 자기들이 머물 집이 없었지만, 그 마을의 중심지에 제단, 즉 예배당을 먼저 세웠어요. 그 때문에 지금도 남부의 시골 마을에 가면, '다운타운(downtown)'이라는 중앙에 예배당이 있고 그 옆에 시청이 있습니다. 예배당은 영적 중심, 시청은 육신적 중심입니다. 청교도의 후손들도 '우리는 먼저 예배당을 지어서 그 예배당에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 드리는 제단을 먼저 쌓자'고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먼저 제단을 쌓은 것처럼, 아브라함의 뒤를 따라서 청교도들도 먼저 제단을 쌓았어요.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고 하지만, 실생활에 있어서 먼저 제단을 쌓는 일을 게을리 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먼저 돈 버는 생각, 먼저 숙제하는 생각, 먼저 학교 가는 생각, 먼저 쾌락을 즐기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어떤 제단을 누구에게 먼저 쌓는가 내 욕심의 제단을 먼저 쌓지는 않는가 물질과 쾌락의 제단을 먼저 쌓는가, 여호와 하나님께 먼저 제단을 쌓는가 누구를 먼저 섬기는가 내 인생 뿐 아니라 자녀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내가 무엇에 우선권을 두는가 하는 것입니다. 심히 중요한 얘기올시다. 그러니 가정 예배를 꼭 바쁜 아침에 드리려고 하면 안 됩니다. 학교에 가야 하는데, 직장에 가야 하는데, 어제 밤에 늦게 귀가해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출근하여야 하는데, 거기서 예배를 드리자고 하면 드릴 수가 없어요.
문제는 우리의 자세입니다. 아버지와 엄마가 잠깐이지만, 경건히 여호와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기도하는 모습, 한 절이라도 좋아요, 먼저 여호와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서 식사할 때에는 모두 한 자리에 모이니까, '오늘 수고했지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자. 얼마나 감사하니 이북에 있는 우리 동포들은 얼마나 어렵니 우리 감사하니까 찬송가를 1절만 부르자'고 자연스럽게 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부모님이 애들의 이름을 불러 가며, 누구는 어때서 감사, 누구를 주셔서 감사하면서, 엎드려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드릴 때에 자세가 올바른 겁니다. 격식을 차리고 율법적으로 하면, 그건 율법적이기만 하지 올바른 것이 아닙니다. 자세가 문제란 말씀이죠. 먼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함을 가지고, 나부터 먼저 여호와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원리는 간단하지만 실천은 어렵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가정의 어떤 법을 만들 때에도 애들의 동의를 얻어서 잘 알아듣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선한 목자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의 삶이 주님의 참 증인되길 원합니다. 부족하지만 '우리가 매일 매일 주님과 동행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며, 환경을 그렇게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아이들이 '우리 아버지, 우리 엄마는 여호와 하나님을 참 사랑해' 하게 될 것입니다. 또 어떤 때에는 골방에 들어가 기도해요. 아버지가 거기서 흐느끼며 기도하는 것을 애들이 볼 때에, '아! 우리 아버지도 우네!' 하며 느끼는 것이 다를 겁니다. 주님을 사랑해서, 주님 앞에 좀 더 올바로 서기 위해서. 올바른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팔로 알토(Palo Alto)에 있는 저희 교회에 새로 나온 가정이 있었어요. 그 부인이 처음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까불기만 했었는데,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되니까 나에게 와서 상담을 청해요. "목사님. " "왜 그래" "제게 아들과 딸이 있는데, 얘들이 밤낮 싸우고 말도 안 들어요. 소리를 지르면 그 때만 조용했다가는 또 싸우고 그래요. 이걸 어떻게 하면 좋아요" "왜 그러는 줄 알아" "왜 그래요" "네가 여호와 하나님에게 못 되게 굴었잖아 네 꼬락서니를 닮아서 그렇지 뭐. " "어이구 목사님, 사실이 그래요. " "그러니까 다음에 애들이 싸우면 꼭 이렇게 해. " "어떻게 해요" "내 말대로 하겠다면 가르쳐 주겠지만, 그렇지 않겠다면 시간만 낭비하는 거니까 안 가르쳐 줘. " "꼭 그렇게 하겠어요. " "애들이 그러는 것은 네가 부족해서 그러는 것이니까 네가 회개해야 하는데, 혼자 회개하지 말고 애들이 싸울 때 그 아이들을 붙잡고 '자, 너희 주일 학교에서처럼 기도하자' 하고 꼭 이렇게 기도해. '여호와 하나님 제가 너무 부족합니다. 애들이 싸우면 제가 소리지르고 잘못 했어요. 여호와 하나님은 제가 잘못할 때 제게 소리지르거나 저를 벌하시지 않고 밤낮 용서해 주셨는데, 저도 이제부터는 이 아이들이 싸워도 소리 지르지 않을게요. 용서해 주세요. 우리 아이들을 정말 여호와 하나님 사랑하는 애들이 되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하면 돼. " "또 싸우면 어떻게 해요" "뭐라고 할 것 없고 '우리 기도하자'고 하면서 기도만 해. " 얼마 후에 나에게 보고를 하는데 말씀이죠, "목사님. " "왜" "애들이 착해졌어요. 싸우다가도 '기도하자'고 하면, 아무 소리도 못하고 기도해요. " 엄마가 먼저 회개하고 소리지르지 않고 자기 꼬락서니를 드러내지 않고 자기가 정말 상한 심정이 되어서 기도하고 애들을 정말 사랑하면, 그 애들이 믿음으로 자라는 것이에요. 그건 연극이 아닙니다. 신앙의 가정은 이렇게 이루어야 합니다. 실제적이에요. 이론이 아닙니다.
다음에는 애들을 훈계해야 됩니다. 군대는 훈련이 없으면 소용이 없어요. 지금 우리 나라의 큰 문제는 법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무법 천지예요. 왜 무법 천지가 되었습니까 부모님들이 애들을 훈련시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훈련이 부족해서 그래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저부터도, 훈련하는 것이 심히 어렵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잘못 하면 훈계를 해야 하는데, 싫은 소리를 하기 싫다는 것입니다. 애들도 잘못 했다고 하면 기분 나빠하고, 부부 사이도 잘못 한다고 하면 기분 나빠해요. 사실 충고를 잘 듣는 사람이 정말로 성숙한 사람이고, 충고를 감사히 받아들이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충고하기가 참 힘들어요.
갈라디아서 6장 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다른 사람이 잘못 할 때, 가정에서도 내 아내가 잘못 하거나 내 남편이 잘못 할 때, 신령한 너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 이러면 안 되는데' 하고 깨달은 너희는 잠자코 있어야 되는가 성경을 보니까 잠자코 있으면 안 돼요. 더구나 부부 사이에 불만이 있을 때에는 서로 끄집어 내 놔야지, 불만이 속에 자꾸 쌓이면 이것이 삼팔선처럼 휴전선이 되어 버려요.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됩니다. 신령한 너희는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온유한 심령을 가져야 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내가 온유한 심령이 됩니까 내가 용서받은 탕자가 될 때 내 자신이 온유한 심령이 되는 것이에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라고 했어요. 내 자신을 돌아보면 내가 온유한 자가 됩니다. 내 자신을 돌아보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어떻게 용서해 주시고 어떻게 지으셨는가를 깨달으면 내 자신이 온유한 자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부족한 것을 어떻게 참으셨는가! 예수님께서는 내가 부족할 때마다 눈을 흘기시고 업신여기시고 꾸중하시지 않았지 않은가!' 사마리아 여인에게 그랬어요.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보고 그랬어요. 삭게오에게도 그랬어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 우리 자녀들이 잘못 할 때에, 내 자신을 돌아보고 '나는 여호와 하나님께 얼마나 부족한가'를 생각 할 때에, 끝까지 오르던 화가 쑥 내려가고 온유해져요. 온유한 마음으로, 사랑으로 바로 잡고 '나도 이 아이처럼 하면 안 되겠다' 해야 됩니다.
그런데, 야고보서 3장 2절에 보면, 사람이 말에 실수가 없으면 온전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말에 실수 없는 사람이 있어요 말에 실수가 없으면 그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라고 했어요.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식들에게도 그렇고, 우리 가정에서도 그렇고, 말의 실수가 많기 때문에 자꾸 상처를 줘요. 상처를 주려고 일부러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뜻으로 하는 것인데도, 말의 실수 때문에, 말에 온유가 없어서 상처를 주게 되고 도리어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 이 대화가 큰 문제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훈계하고 가르쳐야 할텐데, 어떻게 효과적으로 가르치는가
빌리 그레함(Billy Graham) 목사님 아시죠 그레함 목사님의 사모님도 빌리 그레함 목사님 때문에 유명하거든요. 하루는 텔레비전에서 기자 회견을 하는데, 기자들이 짓궂게 물어봤습니다, "사모님, 사모님도 부부 싸움하세요" 이 질문을 받은 사모님은 야단났습니다. 빌리 그레함 목사님은 전 세계의 임금과 대통령 앞에서 설교하시면서, "부부 싸움하지 말라!"고 하시는 분인데, 사모님에게 부부 싸움을 하느냐고 물어 보니 야단났어요. 그런데 이 사모님에게는 참 지혜가 있어요. 뭐라고 대답했는지 아세요 싹 웃으면서 되묻기를 "내 머리에서 광채가 나요" '내가 천사냐' 하고 묻는 거야. 사모님도 부부 싸움한다고 하니, 할렐루야! 내게 지혜가 있다면, 상대방이 말하는 바로 그 때에 화가 나서 말하지 말고 때를 기다려야 됩니다. 때를 기다려서 식당에 가든지, 분위기가 좋을 때에 말하기 시작해야 하는 겁니다.
나도 아내에게 타이르고 싶은 것이 있거든요. 그러면 어떻게 하는가 "여보, 내가 당신에게 배우는 것이 많이 있어. 내 설교에 대해서 말도 해주고 고마워" 하고 칭찬하니까 좋아해. "그런데 말이야, 내가 설교를 길게도 하고 되풀이도 하니까 답답하지" "그래. " "당신이 나를 고쳐 주니까 정말 감사해. 당신밖에 나를 누가 고쳐 주겠어 근데 이왕 고쳐 줄 바엔 말이야, 사람이 없을 때 한 두 번만 말하면 내가 알아들어. " 이렇게만 말하고 그만두면, 도리어 "당신이 두 번 말하면 알아들어 다섯 번 말해도 안 듣는데" 하고 나온단 말이죠. 또 이렇게 되면 '아이구, 말했다가 밑천도 못 찾는구나' 하게 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 말이 나오기 전에 "사실 내가 이만큼 된 것도 당신 덕분이지 뭐" 하고 내가 좋은 말을 하면 이게 싹 먹힌단 말이에요. "그러니 알았지" 하면, "알았어" 한단 말이지요.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이런 대화법을 '샌드위치법'이라고 해요. 단 것을 먼저 싹 먹이고 쓴 것을 먹인 후에 곧 이어서 단 것을 먹이는 거예요. 저는 이렇게 할 때마다 성공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도 말을 안 들을 때 곧바로 주의를 주면 '아이쿠, 아버지가 나를 꾸중하려고 그러시는구나' 하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좀 기다렸다가 "야, 피자나 먹자" 하면서 얘기해야 하는 거예요. 너무 덤비지 말고 시간을 가진 후에 "난 사실 감사해. 네가 다른 아이들보다 말도 잘 듣고 공부도 잘 하니까 감사해. 그런데 이런 것은 이렇게 하면 조금 더 좋지 않겠니" 하고 연구해서 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귀한 영혼들을 키우는데, 노력도 없이 부주의하게 키워 가지고서 가정이 행복하겠어요 마음이 비단결과 같아서 얼마나 상하기가 쉬워요 여러분들은, 아내도 그렇고 남편도 그렇고, 다 사랑을 원하잖아요 사랑 대신에 이상한 것이 나오고 마음이 상할 때 얼마나 실망이 됩니까 우리 자녀들도 잘못 하니까 우리가 그것을 잘 고쳐 주어야 하는 거예요.
우리는 여기에서 두 가지를 배워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에 있는 말씀과 같이, 우리가 누구를 훈련하고 가르칠 때에 말에 실수가 없어야 할텐데 말에 실수 없는 사람이 없단 말씀이죠. 그러니 먼저 '차렷, 나는 용서받은 탕자! 내가 정신을 차려야지. 내 꼴을 가지고 뭘 그러나' 하면서 먼저 나를 살펴야 합니다. 내 마음이 부드러워 질 때에 나의 말도 부드러워지는 것입니다. '당신도 그렇지만 내 꼴은 안 그런가 내가 괜히 당신을 가르치는 게 아냐. 난 정말 더 부족하지' 해 봐요. 먼저 내가 더 부족하다고 하는데 반격이 나오겠어 내가 먼저 부족하다고 하고 내가 먼저 낮아졌는데 무슨 반격이 있겠어요 이게 샌드위치 법이에요. 말의 실수를 없이 하고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은 참 중요한 것입니다.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은 '말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대화가 끊어지고 '말해서 무슨 소용이 있어' 하는 것은 절망입니다. 마음에서부터 섭섭함이 자라고, '저 사람은 말해봐야 소용이 없어' 하면, 가정이 있지만 그건 휴전선입니다. '공산당하고는 말해도 통하지 않는데 발을 빼고 말지' 하는 것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말을 해야 하는데 갈라디아서 6장, 야고보서 3장 2절, 샌드위치를 기억해서 노엽게 하지 말고 반드시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지어서 하면 안돼요. 내가 용서받은 탕자가 되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얼마나 용서해 주셨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주기도문이 좋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에요.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옵시고,' 즉 '너희가 남의 죄를 용서해 주지 않으면 나도 너희 죄를 용서치 않겠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렇다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지 않겠어요 '어쩌면 그렇게 염치가 없느냐 너는 일만 달란트의 탕감을 받고 왜 일백 데나리온을 탕감하지 못 하느냐'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상한 심령이 될 때 이것이 거듭난 사람입니다. 마음이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고 했어요. 거듭난 사람은 내가 용서받은 탕자니까 온유가 있어요. 내가 부족한 자니까 마음에 언제나 눈물이 고여 있어요. 참 사랑과 눈물을 가지고 이 어린아이들을 길러야 합니다. 억지로 연극으로 눈물을 흘리면 다 드러나니까 안 돼요. 진정한 눈물로 애들을 키워야 합니다.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은 예수님이죠 제 생각으로는 그 다음에 주신 축복이 가정이라고 생각해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 무엇을 주셨어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시니까,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아요. '아담'이라는 말은 히브리말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독처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시니, 아담이 에덴 동산, 기쁨의 동산에 살면서도 혼자 살아서 그런지 또 노총각이라서 그런지 한숨만 푹푹 내쉬는 거야.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을 사랑하시니까 '저게 왜 그럴까' 하고 걱정을 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영이세요. 우리를 영적으로 사랑하시는 것은 좋은데, 아담은 영 뿐이 아니라 육신도 있어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이 한숨쉬는 것을 보시고는, '아! 네게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아니라 네가 지상에 있을 때에는 너와 똑같이 영과 육을 겸비해서 너와 같이 사랑을 나눌 사람이 필요하구나' 하시고 가정을 주신 거예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와를 데려 오실 때에 아담이 얼마나 기뻐했어요 성경 최초의 시가 거기에 있어요,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 이 이상 멋있는 시가 어디 있어요 아담이 그렇게 기뻐했어요.
그러니 가정이 뭡니까 가정은 우리 인간에게 이 세상 생활의 중심지가 되는 것이올시다. 교회는 영적 생활의 중심지예요. 좋은 가정을 가진 사람이 행복한 것같이, 좋은 교회를 가진 사람은 정말 행복해요.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 불행한 사람은 불행해요. 가정이 행복한 사람은 정말 행복해요. 사람은 하루의 일을 가정에서부터 시작하고 하루의 일이 끝나면 가정으로 돌아와서 안식을 취합니다. 가정이 없는 사람은 불행하고 외로워요. 공중의 새들도 저녁이 되면 까욱까욱 제 둥지로 돌아가고, 여우도 저녁이 되면 제 굴로 돌아가고, 곰도 제 굴로 들어가고, 고기들도 제 굴로 돌아가요. 사람에게 가정이 없으면 외로워요. 예수님께서는 가정이 없었어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 나는 새도 있을 곳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었어요. 외로워요. 우리를 위해서 다 희생하셨어요. 가정이 불행하면 다른 일이 잘 돼도 불행해요. 가정이 행복하면 다른 일이 못 돼도 집에 돌아가서 위로 받고 힘을 얻고 상처가 나음을 받아요. 이 가정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겨야 되겠어요 가정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자신을 소홀히 하는 사람이에요, 미련한 사람입니다. 가정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을 중하게 여기고, 자신을 중하게 여기고, 자식들을 중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가정을 복되게 하기 위해서는 에덴 동산을 이루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가정의 세 가지 원리; 여호와 하나님 일등, 에덴 동산, 선악과. 먼저 제단을 쌓아서 여호와 하나님께 주권을 바쳐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주권을 바쳐야 합니다. 이것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사랑입니다. 에덴 동산에는 사랑이 있어요. 벌거벗었어도 부끄럽지 않아요. 참 사랑이 있는데, 이 사랑은 죄인을 용서해 주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잘못 하고 실수를 했을 때에도 노엽게 하지 아니하고, 인자와 온유함으로 샌드위치 대화법을 써야 합니다. 사랑은 상대를 용서하는 것이지만, 이것을 우리는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니까 표현이 참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표현을 잘 해야 돼요. 예수님도 사랑을 표현하셨잖아요 셋째는, 아담과 하와가 가정을 이루었을 때 그냥 가정을 이룬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일을 주셨어요. 그게 무슨 일이에요 "에덴 동산을 가꾸라"고 하셨어요. 에덴 동산은 천국, 즉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이니까 에덴동산을 가꾸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가꾸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 15절에, '여호와께서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라고 기록되었어요. 에덴 동산을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전 세계의 복음화입니다. 이 사명을 주셨어요. 한 가정에 고귀한 사명이 없으면 그 가정은 놀라운 가정이 될 수 없습니다. 애들에게도 고귀한 이상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 건설이 우리의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크리스천 가정의 기본인데, 오늘은 가운데 얘기인 사랑을 중심으로 말씀했습니다. 사랑이 좋지만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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