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자녀의 복된 성장을 위하여
본문
여호와 하나님 말씀 디도서 2:14을 보면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친백성이란 말의 뜻은 소유물 중에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우리 대신 죽으신 것은 우리들이 죄사함 받고 거룩한자가 되어 여호와 하나님의 선한 일에 열심을 다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유 중에 가장 귀한 존재가 되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에게는 우리들이 최고로 귀한 존재입니다. 왜냐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산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유 중에서 가장 귀한 소유물임을 확신하십니까 제가 이 말씀을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가 우리의 아버지이신 여호와 하나님에게 가장 귀한 재산이듯이, 우리들에게는 우리의 자녀들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귀한 재산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여호와 하나님의 귀한 존재답게 살아가기를 원하시듯이 우리들도 우리의 자녀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선한 일에 열심을 다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귀한 존재가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귀한 존재로서의 복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하여 친히 자신을 내어 주시는 최선의 삶을 사셨듯이, 우리들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우리의 자녀들이 귀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소망을 갖고 자녀를 위하여 살아가고 있는 부모들에게 귀한 지침서가 되고 있습니다.
1. 최고의 학교인 가정과 최고의 교사인 부모
오늘 본문의 말씀은 아비들아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이는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않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할 중 차대한 의무가 부모에게 있음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학교 교사나 또는 주일학교 교사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요, 부모들에게 주어진 여호와 하나님의 준엄한 명령입니다. 즉 이 말씀은 자녀들을 위한 이 땅에서의 최고의 학교는 가정이요, 자녀들을 위한 최고의 교사는 바로 부모라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대부분은 이러한 진리를 깨닫지 못한 체 자녀들을 위한 최고의 학교와 최고의 교사들을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최고의 학교나 최고의 교사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가정이 최고의 학교요 부모가 최고의 교사가 되지 않고서는 이 땅에 세워진 최고의 학교나 최고의 교사도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들의 가정이 자녀들을 위한 최고의 교육 장소가 먼저 되어야 합니다. 부모 된 우리들이 자녀들을 위한 최고의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방법이요 여호와 하나님의 질서입니다.
1889년에 이 땅에 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한 아이는 오스트리아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그들 부부는 사촌 남매였기에 불법부부였습니다. 가정의 출발부터가 잘못된 것입니다. 아버지는 성미가 급했고, 어머니는 가정에는 무관심한 체 세상적인 것에만 흥미를 갖고 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부들이 유난히 많이 다투었는데, 다툴 때마다 아버지는 이 아이가 지켜보는 가운데서도 어머니를 지독하게 폭행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아버지는 어느 날 갑자기 죽고, 어머니는 이 아이를 알코올 중독자인 숙모에게 맡기고 가출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아 아이는 놀라웁게도 1933년에 독일의 절대 지도자인 총통이 되었습니다. 아 아이가 바로 아돌프 히틀러입니다. 다른 한 아이는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아이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풍성히 받으면서 자라났습니다. 이 아이의 부모는 이 아이를 위해서 캔사스 시골 농촌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 이유는 농촌생활이 이 아이의 신앙교육에 유익하리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이 아이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가훈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려주었습니다. 아 아이는 성장해서도 어머니가 두 팔에 자신을 안고 간곡하게 기도하시던 어머니의 매일 저녁 일과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 두 동갑내기는 1944년 6월 6일부터 11개월에 걸친 세계대전의 치열한 전쟁터에서 대면하게 됩니다. 그런데 한 아이였던 아돌프 히틀러는 1945년 4월 30일 지하 방공대피소에서 독일의 패망과 함께 자살하고 말았고, 다른 한 아이는 이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마침내는 미국의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이 아이가 바로 아이젠하워입니다. 이 두 동갑내기의 서로 다른 모습을 통해서, 우리들은 최고의 교육현장인 가정과 최고의 교사인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자녀들에게 미치는가를 잘 깨닫게 됩니다. 히틀러는 가정에서 부모들로부터 증오와 미움만을 배웠기에 전쟁과 살인의 미치광이가 된 것이요, 아이젠하워는 가정에서 부모들로부터 삶의 가장 중요한 것들을 가슴 깊이 잘 배웠기에 보잘 것 없는 농촌에서 자랐지만 복된 승리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자녀가 복되게 자라나기를 소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가정이 최고의 학교가 되어야 합니다. 부모가 최고의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이일에 먼저 힘써야 하고 이 일을 위하여 먼저 기도하여야 합니다.
2. 신앙교육부터 먼저 힘써야 한다
오늘 본문은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말하기 전에 중요한 단어 하나를 앞에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주의라는 단어입니다. 이는 주 뜻 안에서 자녀들을 양육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자녀들도 주님 안에서 살아가도록 하면서 양육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방법대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녀들을 먼저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진행되고 있는 교육을 간단하게 분류한다면 하나는 인성교육이요, 다른 하나는 지성교육이요, 또 다른 하나는 기술교육입니다. 사실 모든 세상 사람들은 지성교육과 기술교육에만 힘을 쓰고 있습니다. 최고의 지식과 최고의 기술만 획득하면 다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인성교육 즉 인간다운 인간을 만드는 교육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최근 한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집단으로 교사를 폭행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는 한국교육이 지성교육과 기술교육에만 관심을 두고 있지, 사람다운 사람을 만드는 인성교육에는 무관심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은 인성교육이나 지성교육이나 기술교육에만 관심을 두어서는 안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은 또 하나의 다른 교육에 먼저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그 교육이 주의 교양과 훈계로 하는 영성교육입니다. 이 영성교육이 먼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을 만드는 것이 먼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이 먼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방법과 질서를 배우는 것이 먼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여호와 하나님의 지혜를 경험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러한 믿음에 조금도 의심함이 없어야 합니다.
주전 430년경 그리스에 세워진 고대국가 스파르타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이 나라는 철저한 국가 위주의 교육으로 나라의 지도자들을 세웠고 그 때문에 한 때는 그리스지역의 가장 강대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신체적인 조건을 따진 후에 합격이 된 어린아이들만 선별하여 국가에서 책임을 지고 최고의 강도 있는 교육을 시킵니다. 인성교육, 지성교육, 기술교육 그리고 군사교육까지 철저히 시킵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전인교육을 국가에서 책임지고 시키는 것입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조기교육을 받던 아이가 자라 성인이 될 때면 일단 교육을 마치고 집으로 돌려보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자객을 두어 그 아이를 공격하게 만들고 그 공격에서 살아난 아이들만 다시 그 나라의 지도자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강력한 교육을 흔히 스파르타식 교육이라 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교육을 그리워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렇게 세워져 가던 강력한 이 나라가 100년도 못 되어서 교육의 교자도 모른 야만족에 의해서 무너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주전 146년에 로마에 의해서 이 땅에서 영원히 자취를 감추게 되고 말았습니다. 인성교육, 지성교육, 기숙교육이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교육보다도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교육,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가는 영성교육이 더욱 중요하고 먼저인 것입니다. 강력한 국가 위주의 교육국가였던 스파르타의 몰락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없는 교육은 언제인가는 무너지고 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없는 교육은 결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자녀의 복된 성장을 소망하는 부모라면 이 법칙을 지켜야합니다. 세상교육에 목숨을 걸어서는 안됩니다. 세상교육에서 자녀들이 뒤졌다고 걱정할 일도 아니요, 혹이 앞섰다고 교만할 일도 아닙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은 먼저 자녀들의 신앙교육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아인슈타인은 4세에 겨우 말을 배우고 7세에 겨우 글을 배운 세상적인 교육마당에서는 볼품없는 존재였습니다. 만유일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은 소학교의 성적이 바닥이었습니다. 에디슨은 담임선생으로부터 무능한 학생이라고 혹평을 받고 13세에 퇴학처분까지 받았습니다. 베토벤은 음악선생에게 음악 재능이 없다고 지적 받았습니다. 윈스턴 처칠은 6학년 때 낙제하여 1년을 더 다녔고 대학입학시험에 낙방하였습니다. 로댕은 학교 성적은 꼴지였고 예술학교에는 무려 3번이나 낙방하여 아버지의 가슴을 멍들게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모두는 위대한 일들을 남기고 갔습니다. 인생의 승리가 세상교육에 달여있지 않습니다. 인생의 승리는 인생을 다스리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교육이 먼저요 신앙교육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명문대학으로 인도하시지 않으시고 모리아 산 정상에 세워진 신앙학교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한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 명문학교를 세우지 아니하시고 광야에 신앙학교를 대신 세우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자녀들이 복되게 성장하기를 소망한다면, 우리의 가정들이 먼저 신앙훈련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 자신이 먼저 믿음의 훈련 조교가 되어야 합니다.
3.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
오늘 본문에서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라 하였습니다. 자녀가 마음에 상처를 받으면 교육의 열매는 맺어지지 않습니다. 아니 자녀가 상처를 받으면 잘못된 열매를 얻게 됩니다. 자녀들이 노여움을 지속적으로 받게 되면 마음은 굳어지고 맙니다. 굳어진 마음은 단단한 길과 같아서 아무런 열매는 맺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1 부모가 마음을 비워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들을 노엽게 하여 상처받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자녀들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지 않고 부모 자신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기 때문입니다. 주님 안에서 주님 뜻대로 자녀를 양육하면, 설사 자녀들이 주님 뜻대로 살지 못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모들은 기도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 살지 못하는 자녀들이 불쌍해 보입니다. 그러나 부모 자신의 뜻대로 자녀를 양육하면 때때로 문제가 생깁니다. 자녀가 잘 하지 않으면 부모의 마음에 먼저 노여움이 생깁니다. 자신이 무시당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되니 자연히 화가 납니다. 화가 나니 당연히 말과 행동이 거칠어지고 파괴적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자녀들은 우리의 이러한 말고 행동 때문에 상처받고 병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부모 된 성도 여러분! 자녀에 대한 우리의 마음을 비우십시오. 화가 났을 때에는 결코 매를 들어서는 안됩니다. 매를 들더라도 마음을 비운 다음에 매를 드십시오. 오직 우리 자녀들은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찾기에 힘쓰십시오. 여호와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함께 하실 것입니다.
2 부모 먼저 본이 되어야 한다
신명기6:4 이하의 말씀을 부모 된 우리 모두가 마음에 새기고 지키며 살아가야 합니다. "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라(신6:4-6)"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부모인 우리들이 먼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신앙인이 되기를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의 최고의 교사가 부모들이기에 부모들이 먼저 참다운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 일이 먼저 이루어지지 않고 자녀들을 교육할 때에 부모의 권위는 떨어지게 되고, 결국 교육은 그 효과를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자녀는 충고에는 귀를 막을 수 있지만 본보기에는 눈을 감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녀들은 충고에는 둔하지만 본보기에는 민감하여 쉽게 모방하곤 합니다. TV를 열심히 보고 있는 철없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바락 소리를 질렀습니다. 야! 이 녀석아 나이가 지금 몇인데 하루 종일 TV만 보고 있는 게야, 이제 제발 나이 값 좀 해라 아들이 아버지께 대꾸하였습니다. 아버지! 링컨은 아버지 나이에 미국의 대통령이 됐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부모가 본이 되지 안고서는 자녀 교육에 성과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자녀의 변화를 원하시면 부모 된 우리들이 먼저 변화되어야 합니다.
3 사랑과 훈련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의 주의 교양과 훈계란 단어에 우리 모두는 익숙해 있어야 합니다. 교양이라는 단어는 행동을 위한 훈련을 뜻하고 훈계라는 단어는 언어훈련을 뜻합니다. 즉 부모들은 일정한 목표를 정하고 자녀들이 그 목표에 도달하도록 사랑의 훈련으로 인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을 막대기와 지팡이로 인도하시듯이 부모 된 우리들은 사랑과 훈련이라는 두 막대기로 자녀들을 인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녀 교육에 실패한 부모들의 경우를 보면 대부분 둘 중 하나를 지나치게 강조하든지 둘 중 하나에 무관심합니다. 자녀들이 탈선하는 두 가지 중요한 원인은 사랑의 결핍이나 훈련의 부족입니다. 또는 지나친 사랑이나 지나친 훈련입니다. 어떤 교육학자가 실험을 했습니다. 어린이들이 놀고 있는 운동장에 아무 것도 시설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적당한 울타리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울타리가 없었을 때보다도 울타리가 있었을 때에 어린아이들이 더 신나게 노는 것이었습니다. 어린 자녀들에게는 적당한 훈련과 적당한 행동지침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소나 양은 방목해서 키우기도 하지만 ,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받을 때라야 건강하게 잘 자라나게 됩니다.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방목한다는 것은 정원의 잔디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정원을 벼려두는 것과 동일합니다. 이기어 나갈만한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이 훈련 속에는 부모들의 뜨거운 사랑이 항상 담겨져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자녀들에게 이 사랑을 표현함으로써 훈련을 이겨나갈 힘이 소멸되지 않도록 도와야 합니다.
4 부모의 입술이 먼저 변화되어야 한다
훈계하는 말씀 속에는 입술의 훈련이라는 뜻이 있다하였습니다. 자녀들이 입술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훈련되어야 합니다. 자녀들이 성숙한 언어를 통해서 이웃과의 만남을 갖도록 훈련시켜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먼저 부모의 입술부터 훈련되어 있어야 합니다. 다음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데에 부모들이 익숙해 있어야 자녀들이 상처받지 않고 잘 본받게 되어 있어야 합니다.
1 넌! 할 수 있어! 2넌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3 난 너를 이해할 수 있지
4 조금만 더 힘을 내, 조금만 더 인내해! 5 야! 이거 너무 잘했는데!
6 참 감사하다! 7 진실한 말 8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9 나를 용서할 수 있지
10 질문의 말
위와 같을 말을 항상 하기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자녀들도 쉽게 배우고 되고 그들의 삶도 넉넉하고 복된 마음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3. 복된 부모가 되어야 한다
다윗과 솔로몬의 이야기를 기억하시고 있습니까 왕상11:11이하에 불신앙의 모습으로 살아간 솔로몬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나의 언약과 내가 명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결단코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복에게 주리라 그러나 네 아비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치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나의 종 다윗과 나의 뺀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더라"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징계를 당대에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들도 다윗과 같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신령한 복이 자녀들에게까지 미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못난 자녀이었지만 부모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복을 맛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시128편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라 네 집에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한 의로운 사람 때문에 아내가 자녀들이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이런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자식이 비록 못났어도 복된 부모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1. 최고의 학교인 가정과 최고의 교사인 부모
오늘 본문의 말씀은 아비들아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이는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않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할 중 차대한 의무가 부모에게 있음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학교 교사나 또는 주일학교 교사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요, 부모들에게 주어진 여호와 하나님의 준엄한 명령입니다. 즉 이 말씀은 자녀들을 위한 이 땅에서의 최고의 학교는 가정이요, 자녀들을 위한 최고의 교사는 바로 부모라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대부분은 이러한 진리를 깨닫지 못한 체 자녀들을 위한 최고의 학교와 최고의 교사들을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최고의 학교나 최고의 교사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가정이 최고의 학교요 부모가 최고의 교사가 되지 않고서는 이 땅에 세워진 최고의 학교나 최고의 교사도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들의 가정이 자녀들을 위한 최고의 교육 장소가 먼저 되어야 합니다. 부모 된 우리들이 자녀들을 위한 최고의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방법이요 여호와 하나님의 질서입니다.
1889년에 이 땅에 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한 아이는 오스트리아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그들 부부는 사촌 남매였기에 불법부부였습니다. 가정의 출발부터가 잘못된 것입니다. 아버지는 성미가 급했고, 어머니는 가정에는 무관심한 체 세상적인 것에만 흥미를 갖고 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부들이 유난히 많이 다투었는데, 다툴 때마다 아버지는 이 아이가 지켜보는 가운데서도 어머니를 지독하게 폭행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아버지는 어느 날 갑자기 죽고, 어머니는 이 아이를 알코올 중독자인 숙모에게 맡기고 가출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아 아이는 놀라웁게도 1933년에 독일의 절대 지도자인 총통이 되었습니다. 아 아이가 바로 아돌프 히틀러입니다. 다른 한 아이는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아이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풍성히 받으면서 자라났습니다. 이 아이의 부모는 이 아이를 위해서 캔사스 시골 농촌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 이유는 농촌생활이 이 아이의 신앙교육에 유익하리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이 아이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가훈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려주었습니다. 아 아이는 성장해서도 어머니가 두 팔에 자신을 안고 간곡하게 기도하시던 어머니의 매일 저녁 일과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 두 동갑내기는 1944년 6월 6일부터 11개월에 걸친 세계대전의 치열한 전쟁터에서 대면하게 됩니다. 그런데 한 아이였던 아돌프 히틀러는 1945년 4월 30일 지하 방공대피소에서 독일의 패망과 함께 자살하고 말았고, 다른 한 아이는 이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마침내는 미국의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이 아이가 바로 아이젠하워입니다. 이 두 동갑내기의 서로 다른 모습을 통해서, 우리들은 최고의 교육현장인 가정과 최고의 교사인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자녀들에게 미치는가를 잘 깨닫게 됩니다. 히틀러는 가정에서 부모들로부터 증오와 미움만을 배웠기에 전쟁과 살인의 미치광이가 된 것이요, 아이젠하워는 가정에서 부모들로부터 삶의 가장 중요한 것들을 가슴 깊이 잘 배웠기에 보잘 것 없는 농촌에서 자랐지만 복된 승리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자녀가 복되게 자라나기를 소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가정이 최고의 학교가 되어야 합니다. 부모가 최고의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이일에 먼저 힘써야 하고 이 일을 위하여 먼저 기도하여야 합니다.
2. 신앙교육부터 먼저 힘써야 한다
오늘 본문은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말하기 전에 중요한 단어 하나를 앞에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주의라는 단어입니다. 이는 주 뜻 안에서 자녀들을 양육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자녀들도 주님 안에서 살아가도록 하면서 양육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방법대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녀들을 먼저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진행되고 있는 교육을 간단하게 분류한다면 하나는 인성교육이요, 다른 하나는 지성교육이요, 또 다른 하나는 기술교육입니다. 사실 모든 세상 사람들은 지성교육과 기술교육에만 힘을 쓰고 있습니다. 최고의 지식과 최고의 기술만 획득하면 다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인성교육 즉 인간다운 인간을 만드는 교육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최근 한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집단으로 교사를 폭행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는 한국교육이 지성교육과 기술교육에만 관심을 두고 있지, 사람다운 사람을 만드는 인성교육에는 무관심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은 인성교육이나 지성교육이나 기술교육에만 관심을 두어서는 안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은 또 하나의 다른 교육에 먼저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그 교육이 주의 교양과 훈계로 하는 영성교육입니다. 이 영성교육이 먼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을 만드는 것이 먼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이 먼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방법과 질서를 배우는 것이 먼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여호와 하나님의 지혜를 경험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러한 믿음에 조금도 의심함이 없어야 합니다.
주전 430년경 그리스에 세워진 고대국가 스파르타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이 나라는 철저한 국가 위주의 교육으로 나라의 지도자들을 세웠고 그 때문에 한 때는 그리스지역의 가장 강대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신체적인 조건을 따진 후에 합격이 된 어린아이들만 선별하여 국가에서 책임을 지고 최고의 강도 있는 교육을 시킵니다. 인성교육, 지성교육, 기술교육 그리고 군사교육까지 철저히 시킵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전인교육을 국가에서 책임지고 시키는 것입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조기교육을 받던 아이가 자라 성인이 될 때면 일단 교육을 마치고 집으로 돌려보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자객을 두어 그 아이를 공격하게 만들고 그 공격에서 살아난 아이들만 다시 그 나라의 지도자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강력한 교육을 흔히 스파르타식 교육이라 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교육을 그리워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렇게 세워져 가던 강력한 이 나라가 100년도 못 되어서 교육의 교자도 모른 야만족에 의해서 무너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주전 146년에 로마에 의해서 이 땅에서 영원히 자취를 감추게 되고 말았습니다. 인성교육, 지성교육, 기숙교육이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교육보다도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교육,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가는 영성교육이 더욱 중요하고 먼저인 것입니다. 강력한 국가 위주의 교육국가였던 스파르타의 몰락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없는 교육은 언제인가는 무너지고 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없는 교육은 결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자녀의 복된 성장을 소망하는 부모라면 이 법칙을 지켜야합니다. 세상교육에 목숨을 걸어서는 안됩니다. 세상교육에서 자녀들이 뒤졌다고 걱정할 일도 아니요, 혹이 앞섰다고 교만할 일도 아닙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은 먼저 자녀들의 신앙교육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아인슈타인은 4세에 겨우 말을 배우고 7세에 겨우 글을 배운 세상적인 교육마당에서는 볼품없는 존재였습니다. 만유일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은 소학교의 성적이 바닥이었습니다. 에디슨은 담임선생으로부터 무능한 학생이라고 혹평을 받고 13세에 퇴학처분까지 받았습니다. 베토벤은 음악선생에게 음악 재능이 없다고 지적 받았습니다. 윈스턴 처칠은 6학년 때 낙제하여 1년을 더 다녔고 대학입학시험에 낙방하였습니다. 로댕은 학교 성적은 꼴지였고 예술학교에는 무려 3번이나 낙방하여 아버지의 가슴을 멍들게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모두는 위대한 일들을 남기고 갔습니다. 인생의 승리가 세상교육에 달여있지 않습니다. 인생의 승리는 인생을 다스리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교육이 먼저요 신앙교육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명문대학으로 인도하시지 않으시고 모리아 산 정상에 세워진 신앙학교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한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 명문학교를 세우지 아니하시고 광야에 신앙학교를 대신 세우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자녀들이 복되게 성장하기를 소망한다면, 우리의 가정들이 먼저 신앙훈련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 자신이 먼저 믿음의 훈련 조교가 되어야 합니다.
3.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
오늘 본문에서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라 하였습니다. 자녀가 마음에 상처를 받으면 교육의 열매는 맺어지지 않습니다. 아니 자녀가 상처를 받으면 잘못된 열매를 얻게 됩니다. 자녀들이 노여움을 지속적으로 받게 되면 마음은 굳어지고 맙니다. 굳어진 마음은 단단한 길과 같아서 아무런 열매는 맺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1 부모가 마음을 비워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들을 노엽게 하여 상처받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자녀들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지 않고 부모 자신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기 때문입니다. 주님 안에서 주님 뜻대로 자녀를 양육하면, 설사 자녀들이 주님 뜻대로 살지 못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모들은 기도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 살지 못하는 자녀들이 불쌍해 보입니다. 그러나 부모 자신의 뜻대로 자녀를 양육하면 때때로 문제가 생깁니다. 자녀가 잘 하지 않으면 부모의 마음에 먼저 노여움이 생깁니다. 자신이 무시당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되니 자연히 화가 납니다. 화가 나니 당연히 말과 행동이 거칠어지고 파괴적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자녀들은 우리의 이러한 말고 행동 때문에 상처받고 병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부모 된 성도 여러분! 자녀에 대한 우리의 마음을 비우십시오. 화가 났을 때에는 결코 매를 들어서는 안됩니다. 매를 들더라도 마음을 비운 다음에 매를 드십시오. 오직 우리 자녀들은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찾기에 힘쓰십시오. 여호와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함께 하실 것입니다.
2 부모 먼저 본이 되어야 한다
신명기6:4 이하의 말씀을 부모 된 우리 모두가 마음에 새기고 지키며 살아가야 합니다. "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라(신6:4-6)"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부모인 우리들이 먼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신앙인이 되기를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의 최고의 교사가 부모들이기에 부모들이 먼저 참다운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 일이 먼저 이루어지지 않고 자녀들을 교육할 때에 부모의 권위는 떨어지게 되고, 결국 교육은 그 효과를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자녀는 충고에는 귀를 막을 수 있지만 본보기에는 눈을 감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녀들은 충고에는 둔하지만 본보기에는 민감하여 쉽게 모방하곤 합니다. TV를 열심히 보고 있는 철없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바락 소리를 질렀습니다. 야! 이 녀석아 나이가 지금 몇인데 하루 종일 TV만 보고 있는 게야, 이제 제발 나이 값 좀 해라 아들이 아버지께 대꾸하였습니다. 아버지! 링컨은 아버지 나이에 미국의 대통령이 됐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부모가 본이 되지 안고서는 자녀 교육에 성과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자녀의 변화를 원하시면 부모 된 우리들이 먼저 변화되어야 합니다.
3 사랑과 훈련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의 주의 교양과 훈계란 단어에 우리 모두는 익숙해 있어야 합니다. 교양이라는 단어는 행동을 위한 훈련을 뜻하고 훈계라는 단어는 언어훈련을 뜻합니다. 즉 부모들은 일정한 목표를 정하고 자녀들이 그 목표에 도달하도록 사랑의 훈련으로 인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을 막대기와 지팡이로 인도하시듯이 부모 된 우리들은 사랑과 훈련이라는 두 막대기로 자녀들을 인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녀 교육에 실패한 부모들의 경우를 보면 대부분 둘 중 하나를 지나치게 강조하든지 둘 중 하나에 무관심합니다. 자녀들이 탈선하는 두 가지 중요한 원인은 사랑의 결핍이나 훈련의 부족입니다. 또는 지나친 사랑이나 지나친 훈련입니다. 어떤 교육학자가 실험을 했습니다. 어린이들이 놀고 있는 운동장에 아무 것도 시설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적당한 울타리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울타리가 없었을 때보다도 울타리가 있었을 때에 어린아이들이 더 신나게 노는 것이었습니다. 어린 자녀들에게는 적당한 훈련과 적당한 행동지침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소나 양은 방목해서 키우기도 하지만 ,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받을 때라야 건강하게 잘 자라나게 됩니다.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방목한다는 것은 정원의 잔디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정원을 벼려두는 것과 동일합니다. 이기어 나갈만한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이 훈련 속에는 부모들의 뜨거운 사랑이 항상 담겨져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자녀들에게 이 사랑을 표현함으로써 훈련을 이겨나갈 힘이 소멸되지 않도록 도와야 합니다.
4 부모의 입술이 먼저 변화되어야 한다
훈계하는 말씀 속에는 입술의 훈련이라는 뜻이 있다하였습니다. 자녀들이 입술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훈련되어야 합니다. 자녀들이 성숙한 언어를 통해서 이웃과의 만남을 갖도록 훈련시켜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먼저 부모의 입술부터 훈련되어 있어야 합니다. 다음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데에 부모들이 익숙해 있어야 자녀들이 상처받지 않고 잘 본받게 되어 있어야 합니다.
1 넌! 할 수 있어! 2넌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3 난 너를 이해할 수 있지
4 조금만 더 힘을 내, 조금만 더 인내해! 5 야! 이거 너무 잘했는데!
6 참 감사하다! 7 진실한 말 8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9 나를 용서할 수 있지
10 질문의 말
위와 같을 말을 항상 하기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자녀들도 쉽게 배우고 되고 그들의 삶도 넉넉하고 복된 마음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3. 복된 부모가 되어야 한다
다윗과 솔로몬의 이야기를 기억하시고 있습니까 왕상11:11이하에 불신앙의 모습으로 살아간 솔로몬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나의 언약과 내가 명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결단코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복에게 주리라 그러나 네 아비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치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나의 종 다윗과 나의 뺀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더라"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징계를 당대에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들도 다윗과 같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신령한 복이 자녀들에게까지 미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못난 자녀이었지만 부모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복을 맛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시128편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라 네 집에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한 의로운 사람 때문에 아내가 자녀들이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이런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자식이 비록 못났어도 복된 부모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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