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부모들아,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본문
우리나라에서는 어린이 주일이 먼저 있고 그 후에 어버이 주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에베소서에는 부모님 주일이 먼저 있고 어린이 주일이 나중에 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1~3)
그리고 나서 에베소서 6장 4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이처럼 에베소서에 기록된 말씀은 먼저 부모에 대한 공경심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십계명 중에서 1계명에서 4계명까지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계명이고 나머지 계명은 사람에 관한 계명인데 그 중의 첫 번째 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부모님 주일에 관한 말씀을 드렸고 오늘은 어린이 주일에 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부모를 모시고 있는 자녀는 굉장히 행복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자녀가 부모와 떨어지면 그 때부터 불행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비록 육신의 부모님이 안 계시더라도 행복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영의 부모인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서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기도할 때마다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하고 부릅니다.
사실 외국에 입양된 아이들이 자기를 길러준 양부모가 있지만 자기를 낳아준 부모를 찾기 위해서 한국에 오는 것을 바라볼 때마다 우리가 큰 잘못을 저질렀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히 우리는 전쟁을 치렀기 때문에 아버지, 어머니를 잃어버린 전쟁고아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나는 고아원에서 전쟁고아들을 6개월 동안 보살핀 적이 있는데 이들은 굉장히 괴롭고 힘든 나날을 보냈기 때문에 양심이 마비되어서 자기들이 갖고 싶을 때 남의 것을 훔치더라도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내가 몽당연필로 글을 쓰는 것을 본 중학생인 고아가 “선생님, 제가 만년필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네가 무슨 만년필이 있느냐”하고 묻자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의 만년필을 훔쳐오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절대 안 된다. ”하고 말하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만년필은 선생님이 쓰나 원주인이 쓰나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은 글을 많이 쓰니까 몽당연필보다 만년필을 쓰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이처럼 그들은 부모가 없기 때문에 올바른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부모된 우리는 자녀를 잘 관리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아이들이 전부 정직하고 예쁘게 크고 있는 줄 알고 있지만, 아이들의 가방을 살펴보면 엄청나게 놀랄 일이 많습니다. 또 어떤 아이들은 부모에게 야단맞을 것이 두려워 집에 갈 때는 밖에 두고 들어가기도 한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왜 이처럼 깨끗지 못한 상태로 성장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 자녀들이 대단한 혼돈 속에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 자녀들이 왜 혼돈에 빠져있습니까 그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1) 부모의 언행이 불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부모가 하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솝우화에 나오는 게에 대한 훈계와 똑같습니다.
게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새끼들이 앞으로 가지 않고 자꾸 옆으로 갔습니다. 어미 게가 새끼 게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얘들아, 왜 앞으로 가라고 했는데 옆으로 가느냐”
“엄마가 앞으로 가보세요. ”
엄마가 새끼들 앞에서 앞으로 간다고 갔지만 역시 옆으로 갔습니다.
이러한 일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는 정직 하라고 가르치면서 부모는 정직하게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자녀들이 혼돈에 빠지게 됩니다.
2) 부모의 기분 나쁜 감정을 자녀에게 화풀이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평소에는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잘 돌보지만 때때로 화가 나는 일이 있을 때 자녀에게 화풀이를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훈계하다가 화가 나서 자녀를 때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처럼 화가 나서 자녀를 때리거나 교훈 하는 것은 전혀 효과가 없고 오히려 역효과가 납니다.
왜냐하면 자녀들은 항상 부모가 자기에게 화풀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술을 잔뜩 먹고 들어오는 아버지와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어머니의 분쟁 때문에 부모의 화풀이 대상이 된 자녀들은 혼돈에 빠지게 됩니다.
3) 부모가 자녀를 자기의 욕구충족의 대상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내가 못 배웠기 때문에 내 아들과 딸은 잘 배우게 하겠다는 생각은 참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자녀에게 공부를 강요하기 때문에 부작용이 생기게 됩니다.
요즈음 불량배가 된 사람들을 조사해 보면 대부분 아버지와 어머니가 요구하는 공부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가출한 자녀들입니다.
여러분은 공부를 못했지만 여러분의 아들과 딸이 공부를 잘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지식은 한꺼번에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어떤 지식은 학문을 통해서 얻는 지식 이상으로 중요한데 그것은 경험으로 얻는 지식입니다.
이 경험지식은 어려서부터 얻게 되는 지식입니다. 어린아이들이 벽을 빨갛게 혹은 새까맣게 칠을 하면 어머니에게 야단을 맞게 됩니다. 그것을 통해서 아이들은 “아, 이런 일을 하면 안 되는구나!”하는 지식을 얻게 되는데 이것이 경험지식입니다. 그러나 이때 너무 지나치게 야단을 치면 오히려 지능발달에 장애를 일으키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기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자녀에게 공부를 강제적으로 시킬 때 자녀들은 혼돈에 빠지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 부모가 자녀에게 해야 할 일은 마치 나침반처럼 자녀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고 신앙인이 되도록 믿음을 얻게 해주면서 접착제와 같이 가정을 떠나지 않고 꼭 붙어서 살 수 있는 사랑의 공동체를 형성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에 대한 가장 큰 교육은 가정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이러한 교육을 가리켜 가정교육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어머니, 아버지가 아침에 일어나 주님 앞에서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읽는 교육을 할 때 자녀들은 신앙인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아마 호서 대학교 총장이며 과학기술처 장관이었던 정근모 장로의 간증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 분은 예수를 믿는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우수한 두뇌로 과학을 연구하면서 세상에서 유명하게 되자 하늘이 높은 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분의 아들이 이상한 병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아들의 병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 앞에 기도하던 중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게 되어 큰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자기가 만약 어려서부터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오늘날 여호와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 경거망동을 할 뻔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녀들에게 반드시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첫째, 자녀를 노엽게 교육시키면 안됩니다.
둘째, 자녀를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가르쳐야 합니다.
목사의 가정 혹은 장로의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틀에 박힌 듯이 아침에 일어나면 찬송을 부르면서 가정예배 드리고 밤에는 졸리기 때문에 눈을 비비면서 자고 싶어하는 자녀들을 붙잡고 앉아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나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
이러한 연유 때문에 찬송가 234장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어머님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그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셋째, 자녀에게 진리를 물이 흐르듯이 가르쳐야 합니다.
진리는 말로 가르치는 것보다는 생활의 경험을 통해서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이 진리를 자녀들에게 물 흐르듯이 가르치는 것입니다.
넷째, 자녀가 성실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부모가 성실하지 못하면 자녀들도 성실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종종 이러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
그러므로 부모가 성실하게 사는 삶이야말로 자녀를 성실하게 가르치는 좋은 교육방법입니다.
다섯째, 자녀에게 정직을 가르쳐야 합니다.
20세기를 보내고 21세기를 맞이한 현대를 가리켜서 정직을 상실한 시대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정치가의 정직, 교육가의 정직, 사회인의 정직, 실업가의 정직이 상실되어서 어제 한 말을 오늘 뒤집고 아침에 세운 계획을 저녁에 바꾸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자녀를 양육해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잡풀을 제거하면서 자녀를 보호해야 합니다.
엊그제 신문에서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아주 추운 날에 버스를 탔는데 마침 대추차를 파는 사람이 올라와서 “따끈따끈한 대추차 사세요. ”하고 말했습니다. 마침 물을 먹고 싶었기 때문에 대추차를 사서 마셨는데 따끈따끈한 것이 아니라 냉수처럼 차가웠습니다. 그래서 노발대발하면서 “따끈따끈한 대추차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냉차입니까”하고 묻자, 대추차 파는 사람이 “이 차의 이름이 따끈따끈한 대추차입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사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진리라는 이름은 갖고 있지만 그 속에 알맹이가 없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대에 우리의 본분을 잘 갖추어서 아름다운 가정, 아름다운 교회, 아름다운 사회를 이루어 나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1~3)
그리고 나서 에베소서 6장 4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이처럼 에베소서에 기록된 말씀은 먼저 부모에 대한 공경심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십계명 중에서 1계명에서 4계명까지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계명이고 나머지 계명은 사람에 관한 계명인데 그 중의 첫 번째 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부모님 주일에 관한 말씀을 드렸고 오늘은 어린이 주일에 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부모를 모시고 있는 자녀는 굉장히 행복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자녀가 부모와 떨어지면 그 때부터 불행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비록 육신의 부모님이 안 계시더라도 행복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영의 부모인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서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기도할 때마다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하고 부릅니다.
사실 외국에 입양된 아이들이 자기를 길러준 양부모가 있지만 자기를 낳아준 부모를 찾기 위해서 한국에 오는 것을 바라볼 때마다 우리가 큰 잘못을 저질렀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히 우리는 전쟁을 치렀기 때문에 아버지, 어머니를 잃어버린 전쟁고아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나는 고아원에서 전쟁고아들을 6개월 동안 보살핀 적이 있는데 이들은 굉장히 괴롭고 힘든 나날을 보냈기 때문에 양심이 마비되어서 자기들이 갖고 싶을 때 남의 것을 훔치더라도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내가 몽당연필로 글을 쓰는 것을 본 중학생인 고아가 “선생님, 제가 만년필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네가 무슨 만년필이 있느냐”하고 묻자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의 만년필을 훔쳐오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절대 안 된다. ”하고 말하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만년필은 선생님이 쓰나 원주인이 쓰나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은 글을 많이 쓰니까 몽당연필보다 만년필을 쓰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이처럼 그들은 부모가 없기 때문에 올바른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부모된 우리는 자녀를 잘 관리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아이들이 전부 정직하고 예쁘게 크고 있는 줄 알고 있지만, 아이들의 가방을 살펴보면 엄청나게 놀랄 일이 많습니다. 또 어떤 아이들은 부모에게 야단맞을 것이 두려워 집에 갈 때는 밖에 두고 들어가기도 한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왜 이처럼 깨끗지 못한 상태로 성장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 자녀들이 대단한 혼돈 속에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 자녀들이 왜 혼돈에 빠져있습니까 그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1) 부모의 언행이 불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부모가 하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솝우화에 나오는 게에 대한 훈계와 똑같습니다.
게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새끼들이 앞으로 가지 않고 자꾸 옆으로 갔습니다. 어미 게가 새끼 게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얘들아, 왜 앞으로 가라고 했는데 옆으로 가느냐”
“엄마가 앞으로 가보세요. ”
엄마가 새끼들 앞에서 앞으로 간다고 갔지만 역시 옆으로 갔습니다.
이러한 일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는 정직 하라고 가르치면서 부모는 정직하게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자녀들이 혼돈에 빠지게 됩니다.
2) 부모의 기분 나쁜 감정을 자녀에게 화풀이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평소에는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잘 돌보지만 때때로 화가 나는 일이 있을 때 자녀에게 화풀이를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훈계하다가 화가 나서 자녀를 때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처럼 화가 나서 자녀를 때리거나 교훈 하는 것은 전혀 효과가 없고 오히려 역효과가 납니다.
왜냐하면 자녀들은 항상 부모가 자기에게 화풀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술을 잔뜩 먹고 들어오는 아버지와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어머니의 분쟁 때문에 부모의 화풀이 대상이 된 자녀들은 혼돈에 빠지게 됩니다.
3) 부모가 자녀를 자기의 욕구충족의 대상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내가 못 배웠기 때문에 내 아들과 딸은 잘 배우게 하겠다는 생각은 참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자녀에게 공부를 강요하기 때문에 부작용이 생기게 됩니다.
요즈음 불량배가 된 사람들을 조사해 보면 대부분 아버지와 어머니가 요구하는 공부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가출한 자녀들입니다.
여러분은 공부를 못했지만 여러분의 아들과 딸이 공부를 잘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지식은 한꺼번에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어떤 지식은 학문을 통해서 얻는 지식 이상으로 중요한데 그것은 경험으로 얻는 지식입니다.
이 경험지식은 어려서부터 얻게 되는 지식입니다. 어린아이들이 벽을 빨갛게 혹은 새까맣게 칠을 하면 어머니에게 야단을 맞게 됩니다. 그것을 통해서 아이들은 “아, 이런 일을 하면 안 되는구나!”하는 지식을 얻게 되는데 이것이 경험지식입니다. 그러나 이때 너무 지나치게 야단을 치면 오히려 지능발달에 장애를 일으키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기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자녀에게 공부를 강제적으로 시킬 때 자녀들은 혼돈에 빠지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 부모가 자녀에게 해야 할 일은 마치 나침반처럼 자녀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고 신앙인이 되도록 믿음을 얻게 해주면서 접착제와 같이 가정을 떠나지 않고 꼭 붙어서 살 수 있는 사랑의 공동체를 형성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에 대한 가장 큰 교육은 가정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이러한 교육을 가리켜 가정교육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어머니, 아버지가 아침에 일어나 주님 앞에서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읽는 교육을 할 때 자녀들은 신앙인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아마 호서 대학교 총장이며 과학기술처 장관이었던 정근모 장로의 간증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 분은 예수를 믿는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우수한 두뇌로 과학을 연구하면서 세상에서 유명하게 되자 하늘이 높은 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분의 아들이 이상한 병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아들의 병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 앞에 기도하던 중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게 되어 큰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자기가 만약 어려서부터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오늘날 여호와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 경거망동을 할 뻔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녀들에게 반드시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첫째, 자녀를 노엽게 교육시키면 안됩니다.
둘째, 자녀를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가르쳐야 합니다.
목사의 가정 혹은 장로의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틀에 박힌 듯이 아침에 일어나면 찬송을 부르면서 가정예배 드리고 밤에는 졸리기 때문에 눈을 비비면서 자고 싶어하는 자녀들을 붙잡고 앉아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나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
이러한 연유 때문에 찬송가 234장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어머님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그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셋째, 자녀에게 진리를 물이 흐르듯이 가르쳐야 합니다.
진리는 말로 가르치는 것보다는 생활의 경험을 통해서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이 진리를 자녀들에게 물 흐르듯이 가르치는 것입니다.
넷째, 자녀가 성실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부모가 성실하지 못하면 자녀들도 성실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종종 이러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
그러므로 부모가 성실하게 사는 삶이야말로 자녀를 성실하게 가르치는 좋은 교육방법입니다.
다섯째, 자녀에게 정직을 가르쳐야 합니다.
20세기를 보내고 21세기를 맞이한 현대를 가리켜서 정직을 상실한 시대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정치가의 정직, 교육가의 정직, 사회인의 정직, 실업가의 정직이 상실되어서 어제 한 말을 오늘 뒤집고 아침에 세운 계획을 저녁에 바꾸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자녀를 양육해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잡풀을 제거하면서 자녀를 보호해야 합니다.
엊그제 신문에서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아주 추운 날에 버스를 탔는데 마침 대추차를 파는 사람이 올라와서 “따끈따끈한 대추차 사세요. ”하고 말했습니다. 마침 물을 먹고 싶었기 때문에 대추차를 사서 마셨는데 따끈따끈한 것이 아니라 냉수처럼 차가웠습니다. 그래서 노발대발하면서 “따끈따끈한 대추차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냉차입니까”하고 묻자, 대추차 파는 사람이 “이 차의 이름이 따끈따끈한 대추차입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사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진리라는 이름은 갖고 있지만 그 속에 알맹이가 없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대에 우리의 본분을 잘 갖추어서 아름다운 가정, 아름다운 교회, 아름다운 사회를 이루어 나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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