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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복받는 자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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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날이 있다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설날과 추석과 어린이날과 저희 생일날일 것입니다. 물론 그 밖에 여러 환경에 따라 즐거운 날들이 많이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그렇지 않나 하는 것입니다.
영국사람들은 돈을 벌면 먼저 노인들을 위해서 쓴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국을 '노인천국'이라고 말을 합니다.
프랑스사람들은 돈을 벌면 먼저 자기자신을 위해서 쓴다고 합니다. 여름 또는 겨울의 휴가를 멋지게 보내기 위해서 1년을 고생해서 돈을 모은다고 합니다. 자기자신을 위해서 쓰기 때문에 프랑스를 '젊은이들의 천국'이라고 합니다.
미국사람들은 돈을 벌면 먼저 어린이들을 위해서 쓴다고 합니다. 세계제일의 어린이 낙원인 '디즈니랜드'가 미국에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을 '어린이의 천국'이라고도 합니다.
자녀가 참으로 귀합니다. 성경은 시 127:3에서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인 우리 자녀를 영적인 관점에서 오늘 우리는 어떻게 키우고 양육하는 것이 진정한 자녀사랑이요 우리 자녀들을 여호와 하나님께 복을 받는 자녀로 양육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몇가지로 나누어서 살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먼저 자녀양육은 바로 "내 문제"라는 인식을 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나와의 관계에서 모든 것이 이루진다는 것을 인식할 때 오늘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말씀이 은혜가 될 줄 믿습니다.
 첫째로, 자녀양육은 부모된 나와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린다면 자녀양육의 영적인 제1원리는 뭐니뭐니해도 "기도양육"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녀를 위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셔야 우리 자녀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로 올라 가실 때 여인들이 예수의 처절하고 처참한 모습을 보고 울면서 따라갔습니다. 그 때 우리 주님께서 의미있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경 눅23:28을 보니까 "나를 위하여 울지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십니다.
진정으로 무엇을 위해서 안타까워해야 할 것인가를 단적으로 하시는 말씀입니다. "너와 네 가정과 네 자녀를 위해서 울어라, 울어야 한다! 울면서 기도하라!"
예수님께서 심각하게 본 것은 바로 가정의 붕괴와 가정의 파괴였다고 하는 점입니다.
우리 자녀의 참소유주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내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영적인 도리요 의무가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상 3대현모가 있습니다. 교황그레고리의 어머니 '논나'와 초대교부였던 크리소스톰의 어머니 '안투사'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입니다. 여러분! 이 어머니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누가 그렇더라구요. "이들의 공통점은 여자요, 어머니이다. "
이 어머니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자녀를 위해서 쉬지않고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한 여인들'이라는 것입니다.
과수원의 과일이 잘되고 못되는 것은 전적으로 과수원지기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물론 종자와 자랄 때의 환경들 곧 우리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날씨와 바람등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사실 그러한 조건은 다 똑같은 것입니다.
결국 과수원지기의 정성과 방법에 따라 얼마든지 과실의 열매의 질은 좌우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자녀의 길은 부모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가 만능입니까 아닙니다. 부모는 만능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자녀, 여호와 하나님의 복으로 인도해 달라고 믿고 기도로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마치 애굽시대때 모세의 어머니가 모세를 갈상자에 넣고 띄워보내는 심정입니다. 얼마나 기도했겠습니까 얼마나 가슴을 조아리고 기도를 했겠습니까 악어밥이 되지 않게 해 달라고 얼마나 기도했겠습니까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이제 각 백일이 지난 그 준수한 자식을 밑도 끝도 없는 곳으로 흘려 보내는 엄마의 마음이 오죽했겠습니까
저와 여러분도 자식을 키우는 부모입니다. 충분히 이해되지 않습니까 다행히 저쪽 한편에서 애굽공주와 나와서 하필 목욕을 하니 이왕지사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것 같으면 애굽공주에 눈에 띄게 해 달라고 얼마나 여호와 하나님께 울면서 기도했겠습니까
공주가 목욕을 하는 시간을 일부러 멎추어서 나왔는지 아니면 띄우고 나서 보니 공주가 목욕을 하고 있었는지 그러한 사실을 우리는 알 수는 없어도 중요한 것은 떠나보내는 부모의 마음, 엄마의 마음이 오족했겠냐 하는 것입니다. 기도외에는 더 이상 달리 할 도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자녀를 위해서 기도한 여인하면 우리는 쉽게 한나를 들 수 있습니다.
자녀를 달라고 눈물로 기도한 하나는 응답을 받아 자녀를 출산한 이후 여호와 하나님께 쓰임빋는 자녀가 되게 해 달라고, 이왕의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쓰실 양이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새 온전히 헌신할 수 있는 자녀가 되게 해달라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마음껏 축복해 주셔서 여호와 하나님 영광 나타내기에 합당한 자녀가 되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를 얼마나 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시간에 우리가 분명히 명심해야 할 것은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는 부모 밑에는 절대로 탕아가 없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지금은 세상에 빠져있다 하더라도, 비록 지금은 여호와 하나님을 등지고 제멋대로 살고 있는 자식이 있다 하더라도 눈물로 그 자식을 위해서 기도하는 부모가 있는 한 분명히 돌아오게 된다는 것이 영적인결론올시다.
초대교회 교회역사에 큰 획을 그었던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어거스틴도 엄청난 방탕아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포기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13년 동안을 어거스틴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우리 아들을 버려두지 마시고 기억하여 주옵소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되게 하여 주옵소서. 여호와 하나님 영광을 위해 큰 일 하게 역사하여 주옵소서. "
어머니의 기도를 들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대로 기독교 역사에 큰 일을 감당하게 해 주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아브라함 링컨도, 카네기도 스티븐슨도 모두가 다 기도하는 어머니를 두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교회 교회학교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물론 부흥되게 하여 주옵소서하는 기도를 하지만 사실 그것 보다도 더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한빛교회 교회학교 자녀들이 크게 여호와 하나님의 복을 받아 이 세상에 나가서 어디에서나, 어느 분야에서나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나타내는 자녀들이 되게 해 달라고, 그래서 저들을 보고 시편에 나와있는 말씀대로 믿지 않는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여 돌아오는 역사가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실 여러분!
우리 믿음의 자녀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복을 받아 각 분야에서 크게 잘 되어 보십쇼. 그리고 신실하게 믿음의 길을 가는 것을 세상사람들에게 보여만 준다면 세상사람들이 감동을 받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보디발이 요셉에게 다 맡길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보디발이 요셉을 모든 것을 다 내어줄 정도로 신뢰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성경 창39:3에서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화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굉장히 중요한 내용입니다. 이것이 없었다면 요셉인들 별볼 일이 있었겠습니까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주위 나라들이 두려워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스라엘이 크고 광대한 나라이기 때문입니까 이스라엘이 무서워서입니까 그들이 그 조그만 이스라엘을 두려워 했던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심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홍해수를 건너고 난 다음 모세와 이스라엘이 승리를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찬송합니다. 성경 출 15:14이하를 보니까 "열방이 듣고 떨며 블레셋 거민이 두려움에 잡히며 에돔방백이 놀라고 모압 영웅이 떨림에 잡히며 가나안 거민이 다 낙담하나이다 놀람과 두려움이 그들에게 미치매 주의 팔이 큼을 인하여 그들이 돌같이 고요하였사오되 여호와여 주의 백성이 통과하기까지 곧 주의 사신 백성이 통과하기까지였나이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여러분!
가나안땅을 정탐하러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만 발각이 되고 맙니다. 쫓기다 기생라합의 집에 숨어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이들을 숨겨 주었습니다. 왜 숨겨주었습니까 기생이라 이 정탐꾼들이 미남들이기 때문이었습니가
기생라합이 이 간첩들을 신고만 했다면 보상금을 두둑히 챙기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기생라합이 왜 그렇게 목숨을 건 모험을 했습니까 그 근거가 무엇이었습니까
성경은 수2:8 이하를 보면 정말 한낱 기생에 불과한 이 여인의 너무나 놀라운 고백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두 사람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오아 곧 시혼와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여호와 하나님이시니라"고 엄청난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학교꿈꾸이 어린이들의 앞날에 이와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넘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부흥도 좋습니다. 이것도 좋습니다. 저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녀들이 이렇게 되야 믿지않는 부모들이 자녀들을 교회로 보낼 것이 아닙니가 이것야 말로 진정한 여호와 하나님깨서 원하시는 부흥이 아닙니까
물론 우리 한빛교회 모든 성도님들도 이런 은혜가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진정한 부흥은 이렇게 일어나야 합니다.
믿는 자들이나 믿지 않는 자들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봐야 합니다.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 위에와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가정 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부흥의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성경 막 5장을 보면 회당장의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누가 우리 주님앞에 나왔습니까 이웃집 아줌마였습니까 동네 아저씨였습니까 달리다굼의 역사가 소설이야기에 불과한 것입니까 그것은 그 애나 되는 것이고 내 자녀와는 별개의 것입니까 자녀가 죽는 것 같이 인생의 큰 문제가 어디있습니까 내 자녀가 지금 무엇으로 신음하고 있습니까
이 자녀를 살린 것은 그의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였던 회당장이 주님께 매달리기 시작합니다. 그 아버지의 기도를 듣고 주님께서 역사해 주신 것입니다. 주위사람들이 말합니다. "당신의 딸이 죽었으니 이제 더 예수님을 괴롭게 하지 말라" 이때 우리 주님께서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는 말씀으로 위로와 함께 확신을 주십니다. 내가 살리겠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 딸은 달리다굼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였다고 하니까 엄마들이 순간적으로 다른 마음이 들어가는 것이 보입니다. 이 말씀의 영적인 의미를 파악하셔야 합니다.
이 말씀을 듣고 제발 부부싸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배 드리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아빠가 기도를 해야지!!!"하다보면 필시 싸울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말씀에 은혜를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은혜를 받으면,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말은 안해도 속으로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다 점점 더 은혜를 받게되면 기도의 자리에서 기도하게 되실 것입니다. 싸우지 마십쇼! 지혜없는 아내는 이런 말을 듣고 옆구리를 찔르면 남편은 금방 시험에 들게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아빠든 엄마든 부모로서 자녀를 위해서 기도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결국은 아버지의 기도가 그 딸을 살렸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왕에 아빠의 기도로 응답받은 사건을 한가지만 더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성경 막 9장을 보면 귀신에 들린 아들이 간질을 앓고 있습니다.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하여 가는지라"고 성경은 이 아들의 병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영락없는 간질병 아닙니까 간질은 아직까지 의학적인 보고가 없습니다. 그 이유를 모른다고 합니다. 뇌의 혈액순환장애가 아닌가 하는 추측이 힘을 얻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막 9:18을 보면 그 아버기자 아들의 증세를 고백합니다. "귀신이 어드서든지 저를 잡으면 거꾸러져... "
누구 역사입니까 어떻께 해야 되겠습니까 처방전이 나왔지 않습니까 약만 지으면 될 것 아닙니까 누가 주님 앞에 나왔습니까 이 역시 아버지였습니다. 동네 할머니가 아니였습니다. 이웃집 가게 아저씨가 아니었습니다.
부모의 기도입니다. 자녀는 부모가 기도해야 합니다. 자녀의 문제는 부모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자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이 가정법의 조건은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녀를 위해 무엇인가 투자를 해야 한다면 자녀를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저의 일생을 기도로 맡기시는 부모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자녀양육은 나와 자녀와의 관계입니다.
자녀양육은 자녀양육의 영적 제2원리는 신앙안에서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자녀의 신앙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께로 데리고 와야 합니다. 로마교황청에서 발표한 글을 보면 "네 아이들을 12세까지만 우리에게 맡기고 그 뒤에는 누가 맡아도 상관이 없다"라고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12세까지 교황청에, 여호와 하나님께 한 번 맡겨보라는 것입니다. 12세되기까지 그 안에서 신앙교육을 통해서 완전히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정(setting)해 놓으면 어다를 가든지 사람구실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어렸을 때의 신앙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실감나게 해 주는 말입니다.
여러분!
자녀를 사랑함에 필요한 것은 깊이보다는 방법입니다. 사랑의 깊이는 인간이나 동물이나를 막론하고 본능적으로 타고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드리지 않습니다. 이미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사랑의 방법입니다.
성경은 엡6:4을 보면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소위가 자녀 스스로 생각해도 용납이 안되고 기가 막힌다는 감정이 드는 것이 노여운 상태입니다. "정말 내 부모 맞아" 이럴 때 자녀는 돌발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녀는 아무리 어려도 지가 때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또 어느정도 장성을 했다해도 떼를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어떻게 나오실 것인지도 어느정도 알고 하는 자기만족을 위한 일종의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싸움은 협상이 필요합니다. 대화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못한 경우라 하더라도 어느정도의 여지는 다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태에서 전혀 자녀가 생각지 못한 부모의 여지없는 소위가 자녀를 노엽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은 그러기에 자녀를 어렸을 때부터 주의 말씀과 가르침으로 양육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이느냐에 따라 소화기능이 달라집니다. 당연히 배설물도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내보내는 것이, 나오는 것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자녀가 어떻게 되기를 원하십니까 무엇을 내 보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무엇을 먹여햐 하겠습니까 성경은 '가르치라'는 말씀도 이곳 저곳에서 하시지만 자녀교육에는 "양육'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양육'이라는 뜻은 국어사전에서 '길러 자라게 함'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먹어야 자랍니다. 자라기 위해서는 먹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복된 사람으로 자라나기 위해서는 주의 자르침과 말씀을 먹어야 그렇게 자라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잠 13:24에서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초달이라함은 자식에게 회초리를 드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은 잠 29"15에서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제 멋대로 하는 것을 버려둔다고 했습니다.
소위 사랑이라는 그러싸한 미명하에 자녀를 제멋대로 하게 버려두면 결국 그 욕은 어미에게로필시 돌아오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복주시고자 할 때도 이런 방법을 쓰신다는 것을 우리는 인생을 통해서 알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은 긍휼의 극치를 이루시는 사랑입니다. 무조건의 사랑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사는 저와 여러분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그 사랑을 핑계삼고 무기삼아 자꾸 범죄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난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몇차례의 경고를 보내시다가 계속 깨닫지 못하거나 알며서도 회개하지 않을 때는 인생의 고난이라는 징계의 채찍을 드는 것이 바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히 12:6에서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계속해서 12:8에서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우리가 죄를 범하면 사랑의 채찍으로 우리를 교육하시고 양육 곧 길러 자라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잠22:6에서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많은 성도님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다 자라서는 잡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잡는다는 표현이 이상스럽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냥 여과없이 그대로 말씀해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어렸을 때 결정이 나는 것입니다. 약도 어른되어서 몇 재를 먹는 것 보다도 어렸을 때 몇 첩 쓰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
자녀를 신앙안에서 양육하시기 바랍니다. 다 커버린 자녀는 어떻게 해야되나 하는 성도님들은 이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환경을 통해서, 친구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로 신앙안으로 돌아오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자녀양육은 나와 배우자와의 관계입니다.
자녀양육은 부모가 삶으로 본을 보임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자녀양육같이 힘든 것이 없습니다. 그 누구도 자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부모 된 자들로서 알아야 할 것은, 특별히 여호와 하나님의 성도로서 명심해야 하는 것은 삶으로 본을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삶을 통해서 자녀들은 세상을 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자녀들은 귀로 듣고 보고 배우는 것이 큽니다. 사실 모든 생활이 가정에서 2/3를 보내지 않습니까
그런데 부모된 저와 여러분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현실적인 통계기록이 있습니다. 자녀들이 가장 상처를 많이 받는 것은
 첫째가 부부싸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부싸움을 하실려면 둘이서 공원을 가시든지 밖에 나가야 합니다. 부부싸움을 안할수는 없거니와 요령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로, 자녀들이 가정에서 상처를 많이 받는 것은 부모의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엄마나 아빠가 말과는 다른 삶을 산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이렇게 하라고 하고 정작 엄마아빠는 다르게 행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녀들은 상처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세째는 부모의 위선을 꼽았습니다. 엄마와 아빠가 안과 밖이 다릅니다. 안에서와 밖에서의 삶이 다릅니다. 사람 앞에서와 뒤에서 말과 행동이 달라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자녀들의 모습은 사실 우리의 모습이 아니라고 할 수가 없지않습니까 이러한 것들이 자녀인격형성에 먹칠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가정에서 바로 부모된 저와 여러분에게 가장 큰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자녀는 바로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영적인 측면을 떠나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도 문제아, 소위 문제청소년들, 비행청소년들을 상담하시는 많은 교육학자나 심리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문제 부모는 있어도 문제 자녀는 없다"는결론입니다. 모든 것이 가정에서 비롯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5월 이 좋은 가정의 달에 진정으로 자녀를 사랑하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우리는 오늘 다시 한번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배움을 얻었습니다.
자녀양육은 내가 여호와 하나님 은혜로 양육되는 것과 비례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려서 내가 은혜를 받은 것 만큼 진정한 자녀양육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첫번째 양육은 부모인 나와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자녀를 기도로 양육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인생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양육은 나와 자녀와의 관계입니다.
신앙안에서 자녀를 양육해야 합니다. 영적으로라야 사는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번째 양육은 가정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나와 배우자와의 관계입니다.
삶으로 부모가 본을 보여야 합니다. 이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된 자녀로 우리 자녀들이 성장될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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