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지금 자녀가 보고 있습니다
본문
국민대의 박종기 교수가 쓴 “帝王들의 성공학”이란 글에서 고려의 충선왕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충선왕은 충렬왕의 큰 아들로 출생하였는데, ‘이지리부카’라는 몽골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중국 몽골제국의 칭기스칸의 손자인 쿠빌라이의 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충선왕은 몽골제국의 칭기스칸의 증손자로서, 한국 역사상 외국인의 피가 섞인 최초의 임금이었습니다. 충선왕은 자기의 외할아버지 나라이자 당시 세계제국이었던 몽골에 가서, 많은 장점들을 받아들여 나라의 면모를 새롭게 하려한 적극적인 리더십을 소유한 왕이자, 한국 역사상 ‘세계화’를 추구한 최초의 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충선왕의 관심사는 몽골제국의 정국동향이었습니다.
반면에 고려의 정치현실에 너무 무관심하였습니다. 그는 나라 안의 내치(內治)보다는 나라 밖의 외치(外治)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몽골제국의 제도를 개혁의 모델로 삼고, 몽골제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왕권과 왕조의 안정을 보장받으려 한 충선왕의 외치는 내치의 실패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또 1997년부터 2002년까지 5년 동안 한국의 대통령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고려의 충선왕과 비슷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후에 역사가 정확한 평가를 내리겠지만, 현재까지는 외치는 잘했지만 내치는 잘하지 못한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50년 가까이 아무도 추진하지 못하던 북한의 김정일과 남북정상 회담을 성사시켰습니다. 한국인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탁월한 식견과 훌륭한 판단력으로 다른 나라들과의 외교문제를 잘 해결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내치였습니다.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5년 내내 야당과의 관계를 풀지 못했습니다. 처음부터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올 때까지 계속해서 야당과 갈등했습니다. 재임 기간 동안 노사문제, 국민연금문제, 의약분업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등, 내치는 잘못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들들을 잘 다스리지 못해 감옥에 갇히는 등, 가정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히스기야도 그런 사람입니다. 히스기야도 유대 나라의 13대 왕으로서 훌륭하게 나라를 다스렸지만, 아버지로서 가정적인 일은 잘하지 못했습니다. 히스기야왕의 이야기가 오늘 본문 뿐 아니라, 열왕기하 18장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3절부터 5절을 보면 그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야훼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여호와 하나님 야훼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그는 아버지 아하스왕의 뒤를 이어 25세 때에 왕위에 올라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습니다. 여러 우상들을 제거하며 종교개혁을 일으키는 등, 그의 전후에 그러한 왕이 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그는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또 무슨 일을 할 때, ‘이 일이 여호와 하나님이 좋아하실까,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이 싫어하실까’를 항상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랬더니 야훼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고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한 삶을 살게 해주셨습니다(왕하18:7). 이처럼 히스기야는 여호와 하나님께 인정받았던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여호와 하나님께만 인정받은 것이 아닙니다. 백성들로부터도 사랑과 존경을 많이 받았고 인정받았던 왕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 나오는 역대하 32장 33절을 다같이 보겠습니다. “히스기야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이 저를 다윗 자손의 묘실 중 높은 곳에 장사하여 저의 죽음에 존경함을 표하였더라. 그 아들 므낫세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좀더 공정할 수 있습니다. 살아있을 때에는 보복이 두려워서든지, 아니면 살아있는 사람에 대해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든지, 여러 가지 이유로 공정한 평가를 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죽고 나면 어느 정도까지는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여기 히스기야는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도 온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만큼 그는 매우 탁월한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히스기야는 사람에게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도 인정받을 만큼 우리 인생의 모델이 될만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가 죽고 난 후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아들 므낫세가 문제였습니다. 아버지 히스기야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습니다. 1절부터 3절을 보겠습니다. “므낫세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십 이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 오년을 치리하며 야훼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야훼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그 부친 히스기야의 헐어 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며 바알들을 위하여 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일월 성신을 숭배하여 섬기며”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왕위에 올랐을 때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선을 행한 것과 달리, 아들 므낫세는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우상들을 다시 만들고 이방신들을 섬기는 신당들을 다시 쌓아놓고,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보다 각종 우상들을 더 섬기도록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본문 9절을 보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9절을 다같이 보겠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이 므낫세의 꾀임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열방보다 더욱 심하였더라. ” 유다 백성들과 예루살렘 사람들이 얼마나 악했는지, 주변에 있는 이방 나라들보다 더욱 심했다고 합니다. 유다 백성들이 누구의 꾀임을 받아 그렇게 되었습니까 므낫세왕의 꾀임을 받아 그렇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을 여호와 하나님 말씀대로 잘 이끌어야 하고, 백성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왕이 오히려 백성들을 유혹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범죄하게 만들었고, 악을 행하게 한 것입니다.
물론 인생 말년에 므낫세왕은 여호와 하나님께 회개하고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킬 수는 없었습니다. 나중에 요시야가 왕위에 올라 여러 가지 개혁을 하고 훌륭하게 나라를 다스렸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지는 못했습니다. 열왕기하 23장 26절을 보면, 유다 나라가 망하게 된 이유를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야훼께서 유다를 향하여 진노하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야훼를 격노케 한 그 모든 격노를 인함이라. ” 또 열왕기하 24장 2절과 3절에도 구체적으로 유다 나라가 망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훼께서 그 종 선지자들로 하신 말씀과 같이 갈대아의 부대와 아람의 부대와 모압의 부대와 암몬 자손의 부대를 여호야김에게로 보내어 유다를 쳐 멸하려 하시니 이 일이 유다에 임함은 곧 야훼의 명하신 바로 저희를 자기 앞에서 물리치고자 하심이니 이는 므낫세의 지은 모든 죄로 인함이니” 이는 누구의 죄 때문이라고 합니까 므낫세의 죄 때문에 유다 나라가 이방 나라에게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므낫세가 죽은 후 56년 만인 주전 586년에 유다 나라는 바벨론 나라에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가 무려 70년 동안 종살이하며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 후 유다 왕국은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400년 동안 나라의 주권을 회복하지 못한 채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처럼 한 사람 므낫세의 잘못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므낫세는 나라를 망하게 하고 백성들을 포로로 끌려가게 하고 사람들을 극심한 고통 가운데 처하게 했습니다. 므낫세가 왕으로서 백성들을 잘 이끌기는 커녕, 오히려 백성들을 악한 길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므낫세가 그렇게 된 배후에 누가 있습니까 히스기야가 있습니다. 자식 교육에 실패한 히스기야의 책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가정이지만, 만약 히스기야가 아들 므낫세를 잘 교육시켰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므낫세 때문에 나라가 명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다른 이유라면 몰라도, 므낫세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자식교육 잘못 시킨 것 때문에 가문에 수치를 가져왔고 나라를 망하게 했고 유대 나라 역사상 가장 큰 불행을 겪게 했습니다. 오늘본문은 자녀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도대체 유다 왕국의 이름난 히스기야 왕이 아들 므낫세를 왜 그렇게 키웠을까요 왕으로서는 훌륭했던 히스기야가 자녀교육에 실패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성경에는 히스기야가 므낫세를 잘못 교육하였다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 왕의 삶을 자세히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가정 일을 소홀히 여김
첫째로 히스기야가 나라 일은 중요시 한 반면, 가정 일에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가 25세의 젊은 나이에 유다 나라의 왕위에 올랐을 때, 주변 정세가 매우 급하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서쪽으로는 블레셋이 있었습니다. 북쪽으로는 강대국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공격해서 수도인 사마리아성을 함락시켰습니다. 그리고 많은 북이스라엘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 갔습니다. 앗수르는 이어서 남쪽에 있는 유다 나라의 견고한 성읍들을 차례차례 무너뜨렸습니다. 유다 왕 히스기야는 강대국 앗수르와의 전쟁에서 승산이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앗수르왕 산헤립이 은 300달란트와 금 30달란트를 요구하자, 군말 없이 왕궁 곳간에 있는 은과 성전 문의 금과 모든 기둥에 붙어 있는 금을 벗겨낸 다음, 앗수르 왕에게 보내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앗수르가 또 다시 위협하는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히스기야는 사신으로부터 받은 앗수르 왕의 편지를 가지고 야훼의 전에 올라가 기도하며 여호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여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런데 앗수르에 이어 바벨론이 새로운 신흥강국으로 떠오르며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히스기야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국제정세는 급박하게 돌아갔습니다. 한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고, 그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는 등, 끝없이 문제가 이어졌습니다. 아마 이러한 상황 속에서 히스기야는 밤잠 설치며 나라 일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히스기야는 나라 일과 달리, 가정 일을 소홀히 여겼던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히스기야가 처한 당시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 나라를 이끄는 왕으로서, 수많은 백성들을 잘 이끌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문제는 가정일이 나라일과 완전히 별개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히스기야가 일반 평민이었다면 별 문제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왕이었고, 그리고 그의 아들이 장차 유다 왕국을 이끌 왕위에 오를 것이기 때문에 가정 일을 소홀히 한 것이 큰 문제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히스기야는 나라 일은 잘했지만, 가정 일에 소홀히 했던 사람입니다. 3년 전에 우리가 살펴본 적이 있는데, 사사기에 등장하는 기드온도 바로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겨우 300명의 용사를 거느리고 해변의 모래같이 많은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나라의 연합군들을 물리치고 대승을 거둔 장군이었습니다. 그러나 후손들을 위한 가정교육에는 실패한 아버지였습니다. 기드온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살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에봇을 만들었지만, 에봇을 만든 목적을 자녀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확하게 가르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봇을 섬기는 우상숭배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기드온은 사사로서의 일은 잘 했지만, 가정 일은 소홀히 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들도 히스기야 왕처럼, 사사 기드온처럼 밖의 일은 잘 하면서 가정 일에는 소홀히 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 저는 매년 5월만 되면 할 말이 별로 없는 사람입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저는 5월을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가정 사역을 제대로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목사로서 여호와 하나님 일을 한다고 가정 일을 소홀히 하는 사람이 바로 저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준비한다고 자녀들을 잘 돌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면 집 사람과 두 아들이 잠시 휴가를 다녀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이 강단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정에서는 이래야 합니다. 자녀는 이렇게 교육해야 합니다. 아빠는 이렇게 하십시오. ”라고 말씀을 전할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못하는 것이 많이 있지만, 특별히 가정사역을 잘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난 주에 저의 가정에 거래하는 은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그 동안 가정적으로 너무 필요해서 집사람이 몇 차례나 개인신용카드를 만들어 달라고 했지만, 시간을 내지 못해 함께 은행을 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주에 힘들게 시간을 내어 은행에 갔습니다. 은행 일을 다 마쳤는데 키위 직원이 ’한국인 직원을 만나고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별로 한국인 직원을 만날 이유를 몰랐지만, 자꾸 만나고 가라고 해서 결국에는 한국인 직원을 만났습니다. 한국인 직원을 만나 몇 마디 이야기하다가 우리 교회의 행사에 몇 차례 참석한 적이 있고, 저를 안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자매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자매에게 ’이 은행에 근무한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라고 묻자, 4년이 넘었다는 것입니다. 알고보니 제가 거래하는 그 은행을 찾아간 지가 4년이 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저는 슈퍼마켓 안을 들어간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다른 일로 슈퍼마켓을 들어간 적은 있을지 몰라도 가정의 주. 부식을 구입하기 위해 슈퍼마켓을 들어간 기억이 까막득합니다. 이처럼 저는 가정 일에 소홀히 했던 사람입니다. 저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너무나 부끄러운 목사입니다. 저를 위해서, 가정사역에 소홀하지 않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히스기야 왕이나 사사 기드온처럼 가정 일을 소홀히 여기는 잘못을 범하지 않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직장 일이나 사업이나 학업도 열심히 하지만, 가정 일도 열심히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교회학교 교사와 집사와 장로와 목사로 맡겨진 일을 소홀히 여기지 않을 뿐 아니라, 아빠와 엄마와 부모로서 가정 일도 소홀히 여기지 않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2) 제대로 가르치지 못함
둘째로 히스기야가 자녀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25세에 왕이 되어 14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던 어느 날 병에 걸렸습니다. 그 때가 그의 나이 39세가 되었을 때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가 갑자기 찾아와 그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야훼의 말씀이 네가 살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 히스기야는 아직 젊은 나이로 할 일도 많은데, 사형선고를 받은 것입니다. 그 때 히스기야는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결국 그의 눈물을 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명을 15년 동안 연장해주셨습니다. 히스기야는 15년을 보너스로 더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3년 후, 그러니까 그의 나이 42세 때에 므낫세라는 아들을 얻었습니다. 여러분, 질문하겠습니다. 젊었을 때 낳은 자녀가 이쁘겠습니까 나이 들어 낳은 자녀가 이쁘겠습니까 나이 들어 낳은 자녀가 이쁩니다. 건강할 때 낳은 아이보다 몸이 약할 때 낳은 아이가 더 사랑스러운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42세가 되는 늦은 나이에, 그것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얻은 아들 므낫세를 얼마나 애지중지하며 키웠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녀를 사랑하되 여호와 하나님의 방법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십니까 우리가 잘못하면 징계하시고 고된 훈련도 시키십니다. 어느 글에서 “광야로 내보낸 자식은 콩나무가 되었고, 온실로 들여보낸 자식은 콩나물이 되었다. ”는 말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콩나물과 콩나무의 씨앗은 똑같이 콩입니다. 그러나 성장 과정에서 나무가 되기도 하고 나물이 되기도 합니다. 똑같은 콩이지만 땅에서 키우면 콩나무가 되고 시루에서 키우면 콩나물이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땅에 심어진 콩은 자신이 썩어 밑거름이 되어 싹을 틔운 후 차가운 비바람과 뜨거운 햇빛을 맞으면서 강하게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새로운 열매를 맺어 사람들의 먹거리가 될 뿐만 아니라, 수백, 수천 년 다음 세대를 이어갈 수 있는 콩이 됩니다. 그러나 같은 콩이지만 시루에서 키우면 과잉보호를 받아 적당한 온도와 영양 공급 속에서 빨리 자라나 나물이 되어 사람들의 먹거리는 될 수 있지만, 다음 세대로 이어가지 못하는 콩나물이 될 뿐입니다. 므낫세가 시루에서 과잉보호를 받으며 자란 콩나물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과잉보호해서는 안 됩니다. 요즘은 옛날과 달리 자녀를 많이 두지 않기 때문에 지나치게 자녀를 사랑한 나머지 자녀에게 매를 들지 못하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그저 조금만 아이가 싫어해도 안스러워서 견디지 못하는 부모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잠언 29장 15절은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채찍과 꾸지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칭찬과 격려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때때로 매와 횟초리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매는 사랑의 매가 되어야 합니다. 또 에베소서 6장 4절에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잠언 22장 6절에서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그 무엇보다도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유태인의 탈무드를 읽다보면 ‘아키바’라는 랍비 얘기가 나오는데, 이분은 유태인이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훌륭한 랍비로 온 세계에 영향을 끼친 분입니다. 로마가 주후 70년경 예루살렘 성을 쳐들어와 사면을 포위하여 예루살렘 성이 멸망적전에 놓여 내일이면 함락 당할 위기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비통한 울부짖음과 불안 속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때에 랍비 아키바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다가 그 밤에 문을 뛰어나가 로마병정에게 다가갔습니다. 로마병정이 어둠 속에서 그를 붙잡고 ”네가 누구냐” 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내가 랍비 아키바요. ” 라고 대답하니 로마병정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 너무나도 유명한 사람인데다 직접 대하고 본 아키바의 위엄과 준엄한 인격 앞에서 저절로 압도당했던 것입니다. 아키바를 체포한 뒤, 그가 원하는 대로 로마 장군 앞으로 그를 인도하였습니다. 장군이 물었습니다. ”당신이 아키바요” ”예, 할 얘기가 있어 이 밤중에 찾아왔습니다. ” ”그래 뭐요” ”예, 서로 피를 흘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내일 아침이면 예루살렘 성문을 활짝 열고 전혀 항거함 없이 로마군인을 다 맞이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을 한 가운데 조그만 집이 하나있는데, 그 집만은 절대 손대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에게 있는 돈은 다 가져가도 좋습니다. 사람을 붙들어 가도 좋습니다. 다만 성 안에 있는 그 집 하나만은 손을 대지 않도록 약속해 주시기 바랍니다. ” 장군이 물었습니다. ”그곳엔 무엇이 있습니까” ”책이 있는 곳입니다” ”책뿐이라면 그까짓 것 문제될 것 없지, 그렇게 합시다. 전쟁을 하지 맙시다. ” 그 이튿날, 문을 열어주기로 하고 아키바는 바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밤에 유대의 믿음의 어머니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책이 들어 있는 그 조그만 집에 어머니들이 울면서 모였을 때, 아키바는 여기서 유명한 설교를 했습니다. ”어머니 여러분! 다 없어도 됩니다. 다 뺏겨도 됩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어머니들의 가슴 속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져 있으면, 또한 탈무드가 있으면 우리 백성은 영원히 존속됩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이 백성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룰 날이 옵니다. ”라고 설교를 했습니다. 이 설교를 들은 어머니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성경 위에서 엎드려 울며 기도로 밤을 새웠습니다. 이튿날, 예루살렘 성이 점령되어 수많은 사람이 잡혀가고 여러 가지 재물을 탈취 당했지만, 유대 믿음의 어머니들 가슴속에 새겨진 여호와 하나님 말씀과 그 정신은 어머니들의 가슴과 가슴으로 전승되어 오늘의 이스라엘을 있게 하였습니다.
1986년 통계를 보면 그 당시까지 전 세계적으로 노벨상 수상자의 수는 약 300명이었습니다. 그중에 유대인 출신이 93명, 약 3분의 1을 차지합니다. 아시아 출신 중 노벨상을 받은 사람을 다 더해도 몇 명되지 않는데, 조그만 한 나라에서 노벨상 받은 사람이 백여 명 가까이 나온 것입니다. 또 미국 전체 인구 중 유대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2%밖에 안 되는데도 400명의 재벌 중 23%가 유대인이고, 70만 명의 변호사 중에서 20%가 유대인이고, 대학교수 중에 25-35%가 유대인입니다. 세계의 경제도 유대인들이 다 쥐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이 이렇게 복을 받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자녀들을 말씀과 기도로 양육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 무엇보다도 우리 자녀들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기를 바랍니다. 거액의 유산을 자녀들에게 주기 보다는 부모님의 믿음을 물려주시기 바랍니다.
3) 신앙적인 본을 보이지 못함
셋째로 히스기야가 자녀에게 신앙적인 본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의 생명을 15년 동안 연장 받았다면 전보다도 더욱 여호와 하나님을 섬겨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32장 24절과 25절에서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된 고로 야훼께 기도하매 야훼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이적을 보이셨으나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헤를 보답치 아니하므로…..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면, 히스기야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을 연장 받았지만 감사하기는커녕 그 마음이 오히려 교만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들인 므낫세가 아버지의 그 모습을 통해 무엇을 배웠겠습니까 나이어린 므낫세는 아버지의 교만한 모습을 보고, 아버지의 나쁜 모습을 보고 자랐습니다. 그 결과 유대나라에서 가장 악한 왕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15년 동안 생명을 연장 받고 나서 히스기야가 한 일이라고는 자녀에게 나쁜 모습을 보여준 것뿐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 애는 도대체 누구를 닮아서 그래”라는 말을 서슴없이 합니다. 여러분, 우리 자녀들이 누구를 닮아서 그럴까요 저 한국에 사는 친척을 닮아서 그럴까요 아니면 옆집 아저씨 닮아서 그럴까요 아니면 쇼핑센터에서 만난 아주머니를 닮아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자녀는 다 아빠, 엄마 닮습니다. 어느 분은 주장하기를 “자녀교육이란 결국 부모가 자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이 그 부모의 삶을 닮는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육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말로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을 보이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학생들은 교사를 따라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녀는 부모를 따라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부모를 닮게 되어 있습니다.
앞서서도 이야기했지만,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헌옷가게에 들러 외투 하나를 샀습니다. 오면서 외투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보석 하나가 있었습니다. 보석을 보는 순간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산 옷이니 보석은 내 거야! 내 소유야!’ ‘아니야! 원래 주인이 넣어놓은 것을 모르고 헌옷가게에서 판 것이 아닐까 그러면 보석은 주인 것인가’ 그는 랍비에게 가서 물어 보았습니다. 랍비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옷을 산 것이지 보석을 산 것은 아니지 않느냐 보석을 돌려주러 갈 때 네 자녀를 데리고 가라. 보석보다 더 귀한 것을 자녀에게 가르치게 될 것이다. ”
보석보다 더 귀한 것은 사랑하는 자녀에게 부모로서 모범을 보여주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자녀들에게 신앙적인 본을 보여주는 일은 보화를 얻는 것보다 귀한 일인 줄로 믿습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들이 자녀들이 닮아가고 싶은 모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여러분, 지금 보고 있습니다. 누가 보고 있습니까 먼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시고, 둘째로 우리의 자녀들이 보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 소개한 적이 있지만,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늦은 오후 시간에 어느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목도 타고 배가 고파 아빠가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누가 보는지 잘 살피고 있다가 사람이 오면 이야기해라” 그리고는 길 옆에 있는 무우밭으로 뛰어 들어가 무우 하나를 뽑으려고 했습니다. 그 떄 아들이 말합니다. ”아빠, 누가 보고 있어요. ” 아버지는 놀라서 뽑으려고 했던 무우를 놓아두고 얼른 길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시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합니다. ”정신 차리고 누가 보는지 잘 살피고 있거라” 그리고는 다시 무우 밭으로 뛰어들어가 무우 하나를 뽑으려고 하는데, 아들이 또 말합니다. ”아빠, 누가 보고 있어요. ” 아버지는 놀라서 뽑으려고 했던 무우를 놓아두고 얼른 길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시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합니다. ”정신 차리고 누가 보는지 잘 살피고 있으라니까” 그리고는 다시 무우 밭으로 뛰어들어가 무우 하나를 뽑으려고 하는데, 아들이 또 말합니다. ”아빠, 누가 보고 있어요. ” 아버지는 놀라서 뽑으려고 했던 무우를 놓아두고 얼른 길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화가 나서 아들에게 말합니다. ”야 이 녀석아, 보기는 누가 본다고 그래. 아무도 없잖아” 그 떄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빠, 여호와 하나님이 보고 계세요. 여호와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 말이에요. ” 아버지는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그렇구나, 여호와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구나’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가던 길을 다시 걸어갔다고 합니다.
여러분, 지금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이 우리의 일거수 일토족을 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2006년도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히스기야의 자녀교육의 실패를 통해 교훈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정 밖의 일 뿐 아니라 가정 일도 소홀히 하지 않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무엇보다도 우리 자녀들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나도 우리 아버지, 어머니처럼 살아야지’ 하는 삶의 모델이 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계신 분들 가운데 단 한 분도 가정사역에 실패한 히스기야와 같은 분들이 없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의 어머니는 중국 몽골제국의 칭기스칸의 손자인 쿠빌라이의 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충선왕은 몽골제국의 칭기스칸의 증손자로서, 한국 역사상 외국인의 피가 섞인 최초의 임금이었습니다. 충선왕은 자기의 외할아버지 나라이자 당시 세계제국이었던 몽골에 가서, 많은 장점들을 받아들여 나라의 면모를 새롭게 하려한 적극적인 리더십을 소유한 왕이자, 한국 역사상 ‘세계화’를 추구한 최초의 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충선왕의 관심사는 몽골제국의 정국동향이었습니다.
반면에 고려의 정치현실에 너무 무관심하였습니다. 그는 나라 안의 내치(內治)보다는 나라 밖의 외치(外治)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몽골제국의 제도를 개혁의 모델로 삼고, 몽골제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왕권과 왕조의 안정을 보장받으려 한 충선왕의 외치는 내치의 실패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또 1997년부터 2002년까지 5년 동안 한국의 대통령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고려의 충선왕과 비슷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후에 역사가 정확한 평가를 내리겠지만, 현재까지는 외치는 잘했지만 내치는 잘하지 못한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50년 가까이 아무도 추진하지 못하던 북한의 김정일과 남북정상 회담을 성사시켰습니다. 한국인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탁월한 식견과 훌륭한 판단력으로 다른 나라들과의 외교문제를 잘 해결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내치였습니다.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5년 내내 야당과의 관계를 풀지 못했습니다. 처음부터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올 때까지 계속해서 야당과 갈등했습니다. 재임 기간 동안 노사문제, 국민연금문제, 의약분업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등, 내치는 잘못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들들을 잘 다스리지 못해 감옥에 갇히는 등, 가정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히스기야도 그런 사람입니다. 히스기야도 유대 나라의 13대 왕으로서 훌륭하게 나라를 다스렸지만, 아버지로서 가정적인 일은 잘하지 못했습니다. 히스기야왕의 이야기가 오늘 본문 뿐 아니라, 열왕기하 18장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3절부터 5절을 보면 그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야훼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여호와 하나님 야훼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그는 아버지 아하스왕의 뒤를 이어 25세 때에 왕위에 올라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습니다. 여러 우상들을 제거하며 종교개혁을 일으키는 등, 그의 전후에 그러한 왕이 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그는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또 무슨 일을 할 때, ‘이 일이 여호와 하나님이 좋아하실까,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이 싫어하실까’를 항상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랬더니 야훼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고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한 삶을 살게 해주셨습니다(왕하18:7). 이처럼 히스기야는 여호와 하나님께 인정받았던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여호와 하나님께만 인정받은 것이 아닙니다. 백성들로부터도 사랑과 존경을 많이 받았고 인정받았던 왕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 나오는 역대하 32장 33절을 다같이 보겠습니다. “히스기야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이 저를 다윗 자손의 묘실 중 높은 곳에 장사하여 저의 죽음에 존경함을 표하였더라. 그 아들 므낫세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좀더 공정할 수 있습니다. 살아있을 때에는 보복이 두려워서든지, 아니면 살아있는 사람에 대해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든지, 여러 가지 이유로 공정한 평가를 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죽고 나면 어느 정도까지는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여기 히스기야는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도 온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만큼 그는 매우 탁월한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히스기야는 사람에게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도 인정받을 만큼 우리 인생의 모델이 될만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가 죽고 난 후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아들 므낫세가 문제였습니다. 아버지 히스기야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습니다. 1절부터 3절을 보겠습니다. “므낫세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십 이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 오년을 치리하며 야훼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야훼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그 부친 히스기야의 헐어 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며 바알들을 위하여 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일월 성신을 숭배하여 섬기며”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왕위에 올랐을 때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선을 행한 것과 달리, 아들 므낫세는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우상들을 다시 만들고 이방신들을 섬기는 신당들을 다시 쌓아놓고,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보다 각종 우상들을 더 섬기도록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본문 9절을 보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9절을 다같이 보겠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이 므낫세의 꾀임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열방보다 더욱 심하였더라. ” 유다 백성들과 예루살렘 사람들이 얼마나 악했는지, 주변에 있는 이방 나라들보다 더욱 심했다고 합니다. 유다 백성들이 누구의 꾀임을 받아 그렇게 되었습니까 므낫세왕의 꾀임을 받아 그렇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을 여호와 하나님 말씀대로 잘 이끌어야 하고, 백성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왕이 오히려 백성들을 유혹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범죄하게 만들었고, 악을 행하게 한 것입니다.
물론 인생 말년에 므낫세왕은 여호와 하나님께 회개하고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킬 수는 없었습니다. 나중에 요시야가 왕위에 올라 여러 가지 개혁을 하고 훌륭하게 나라를 다스렸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지는 못했습니다. 열왕기하 23장 26절을 보면, 유다 나라가 망하게 된 이유를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야훼께서 유다를 향하여 진노하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야훼를 격노케 한 그 모든 격노를 인함이라. ” 또 열왕기하 24장 2절과 3절에도 구체적으로 유다 나라가 망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훼께서 그 종 선지자들로 하신 말씀과 같이 갈대아의 부대와 아람의 부대와 모압의 부대와 암몬 자손의 부대를 여호야김에게로 보내어 유다를 쳐 멸하려 하시니 이 일이 유다에 임함은 곧 야훼의 명하신 바로 저희를 자기 앞에서 물리치고자 하심이니 이는 므낫세의 지은 모든 죄로 인함이니” 이는 누구의 죄 때문이라고 합니까 므낫세의 죄 때문에 유다 나라가 이방 나라에게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므낫세가 죽은 후 56년 만인 주전 586년에 유다 나라는 바벨론 나라에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가 무려 70년 동안 종살이하며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 후 유다 왕국은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400년 동안 나라의 주권을 회복하지 못한 채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처럼 한 사람 므낫세의 잘못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므낫세는 나라를 망하게 하고 백성들을 포로로 끌려가게 하고 사람들을 극심한 고통 가운데 처하게 했습니다. 므낫세가 왕으로서 백성들을 잘 이끌기는 커녕, 오히려 백성들을 악한 길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므낫세가 그렇게 된 배후에 누가 있습니까 히스기야가 있습니다. 자식 교육에 실패한 히스기야의 책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가정이지만, 만약 히스기야가 아들 므낫세를 잘 교육시켰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므낫세 때문에 나라가 명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다른 이유라면 몰라도, 므낫세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자식교육 잘못 시킨 것 때문에 가문에 수치를 가져왔고 나라를 망하게 했고 유대 나라 역사상 가장 큰 불행을 겪게 했습니다. 오늘본문은 자녀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도대체 유다 왕국의 이름난 히스기야 왕이 아들 므낫세를 왜 그렇게 키웠을까요 왕으로서는 훌륭했던 히스기야가 자녀교육에 실패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성경에는 히스기야가 므낫세를 잘못 교육하였다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 왕의 삶을 자세히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가정 일을 소홀히 여김
첫째로 히스기야가 나라 일은 중요시 한 반면, 가정 일에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가 25세의 젊은 나이에 유다 나라의 왕위에 올랐을 때, 주변 정세가 매우 급하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서쪽으로는 블레셋이 있었습니다. 북쪽으로는 강대국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공격해서 수도인 사마리아성을 함락시켰습니다. 그리고 많은 북이스라엘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 갔습니다. 앗수르는 이어서 남쪽에 있는 유다 나라의 견고한 성읍들을 차례차례 무너뜨렸습니다. 유다 왕 히스기야는 강대국 앗수르와의 전쟁에서 승산이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앗수르왕 산헤립이 은 300달란트와 금 30달란트를 요구하자, 군말 없이 왕궁 곳간에 있는 은과 성전 문의 금과 모든 기둥에 붙어 있는 금을 벗겨낸 다음, 앗수르 왕에게 보내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앗수르가 또 다시 위협하는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히스기야는 사신으로부터 받은 앗수르 왕의 편지를 가지고 야훼의 전에 올라가 기도하며 여호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여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런데 앗수르에 이어 바벨론이 새로운 신흥강국으로 떠오르며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히스기야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국제정세는 급박하게 돌아갔습니다. 한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고, 그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는 등, 끝없이 문제가 이어졌습니다. 아마 이러한 상황 속에서 히스기야는 밤잠 설치며 나라 일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히스기야는 나라 일과 달리, 가정 일을 소홀히 여겼던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히스기야가 처한 당시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 나라를 이끄는 왕으로서, 수많은 백성들을 잘 이끌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문제는 가정일이 나라일과 완전히 별개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히스기야가 일반 평민이었다면 별 문제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왕이었고, 그리고 그의 아들이 장차 유다 왕국을 이끌 왕위에 오를 것이기 때문에 가정 일을 소홀히 한 것이 큰 문제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히스기야는 나라 일은 잘했지만, 가정 일에 소홀히 했던 사람입니다. 3년 전에 우리가 살펴본 적이 있는데, 사사기에 등장하는 기드온도 바로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겨우 300명의 용사를 거느리고 해변의 모래같이 많은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나라의 연합군들을 물리치고 대승을 거둔 장군이었습니다. 그러나 후손들을 위한 가정교육에는 실패한 아버지였습니다. 기드온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살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에봇을 만들었지만, 에봇을 만든 목적을 자녀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확하게 가르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봇을 섬기는 우상숭배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기드온은 사사로서의 일은 잘 했지만, 가정 일은 소홀히 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들도 히스기야 왕처럼, 사사 기드온처럼 밖의 일은 잘 하면서 가정 일에는 소홀히 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 저는 매년 5월만 되면 할 말이 별로 없는 사람입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저는 5월을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가정 사역을 제대로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목사로서 여호와 하나님 일을 한다고 가정 일을 소홀히 하는 사람이 바로 저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준비한다고 자녀들을 잘 돌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면 집 사람과 두 아들이 잠시 휴가를 다녀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이 강단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정에서는 이래야 합니다. 자녀는 이렇게 교육해야 합니다. 아빠는 이렇게 하십시오. ”라고 말씀을 전할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못하는 것이 많이 있지만, 특별히 가정사역을 잘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난 주에 저의 가정에 거래하는 은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그 동안 가정적으로 너무 필요해서 집사람이 몇 차례나 개인신용카드를 만들어 달라고 했지만, 시간을 내지 못해 함께 은행을 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주에 힘들게 시간을 내어 은행에 갔습니다. 은행 일을 다 마쳤는데 키위 직원이 ’한국인 직원을 만나고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별로 한국인 직원을 만날 이유를 몰랐지만, 자꾸 만나고 가라고 해서 결국에는 한국인 직원을 만났습니다. 한국인 직원을 만나 몇 마디 이야기하다가 우리 교회의 행사에 몇 차례 참석한 적이 있고, 저를 안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자매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자매에게 ’이 은행에 근무한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라고 묻자, 4년이 넘었다는 것입니다. 알고보니 제가 거래하는 그 은행을 찾아간 지가 4년이 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저는 슈퍼마켓 안을 들어간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다른 일로 슈퍼마켓을 들어간 적은 있을지 몰라도 가정의 주. 부식을 구입하기 위해 슈퍼마켓을 들어간 기억이 까막득합니다. 이처럼 저는 가정 일에 소홀히 했던 사람입니다. 저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너무나 부끄러운 목사입니다. 저를 위해서, 가정사역에 소홀하지 않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히스기야 왕이나 사사 기드온처럼 가정 일을 소홀히 여기는 잘못을 범하지 않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직장 일이나 사업이나 학업도 열심히 하지만, 가정 일도 열심히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교회학교 교사와 집사와 장로와 목사로 맡겨진 일을 소홀히 여기지 않을 뿐 아니라, 아빠와 엄마와 부모로서 가정 일도 소홀히 여기지 않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2) 제대로 가르치지 못함
둘째로 히스기야가 자녀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25세에 왕이 되어 14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던 어느 날 병에 걸렸습니다. 그 때가 그의 나이 39세가 되었을 때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가 갑자기 찾아와 그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야훼의 말씀이 네가 살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 히스기야는 아직 젊은 나이로 할 일도 많은데, 사형선고를 받은 것입니다. 그 때 히스기야는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결국 그의 눈물을 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명을 15년 동안 연장해주셨습니다. 히스기야는 15년을 보너스로 더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3년 후, 그러니까 그의 나이 42세 때에 므낫세라는 아들을 얻었습니다. 여러분, 질문하겠습니다. 젊었을 때 낳은 자녀가 이쁘겠습니까 나이 들어 낳은 자녀가 이쁘겠습니까 나이 들어 낳은 자녀가 이쁩니다. 건강할 때 낳은 아이보다 몸이 약할 때 낳은 아이가 더 사랑스러운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42세가 되는 늦은 나이에, 그것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얻은 아들 므낫세를 얼마나 애지중지하며 키웠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녀를 사랑하되 여호와 하나님의 방법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십니까 우리가 잘못하면 징계하시고 고된 훈련도 시키십니다. 어느 글에서 “광야로 내보낸 자식은 콩나무가 되었고, 온실로 들여보낸 자식은 콩나물이 되었다. ”는 말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콩나물과 콩나무의 씨앗은 똑같이 콩입니다. 그러나 성장 과정에서 나무가 되기도 하고 나물이 되기도 합니다. 똑같은 콩이지만 땅에서 키우면 콩나무가 되고 시루에서 키우면 콩나물이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땅에 심어진 콩은 자신이 썩어 밑거름이 되어 싹을 틔운 후 차가운 비바람과 뜨거운 햇빛을 맞으면서 강하게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새로운 열매를 맺어 사람들의 먹거리가 될 뿐만 아니라, 수백, 수천 년 다음 세대를 이어갈 수 있는 콩이 됩니다. 그러나 같은 콩이지만 시루에서 키우면 과잉보호를 받아 적당한 온도와 영양 공급 속에서 빨리 자라나 나물이 되어 사람들의 먹거리는 될 수 있지만, 다음 세대로 이어가지 못하는 콩나물이 될 뿐입니다. 므낫세가 시루에서 과잉보호를 받으며 자란 콩나물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과잉보호해서는 안 됩니다. 요즘은 옛날과 달리 자녀를 많이 두지 않기 때문에 지나치게 자녀를 사랑한 나머지 자녀에게 매를 들지 못하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그저 조금만 아이가 싫어해도 안스러워서 견디지 못하는 부모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잠언 29장 15절은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채찍과 꾸지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칭찬과 격려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때때로 매와 횟초리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매는 사랑의 매가 되어야 합니다. 또 에베소서 6장 4절에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잠언 22장 6절에서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그 무엇보다도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유태인의 탈무드를 읽다보면 ‘아키바’라는 랍비 얘기가 나오는데, 이분은 유태인이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훌륭한 랍비로 온 세계에 영향을 끼친 분입니다. 로마가 주후 70년경 예루살렘 성을 쳐들어와 사면을 포위하여 예루살렘 성이 멸망적전에 놓여 내일이면 함락 당할 위기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비통한 울부짖음과 불안 속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때에 랍비 아키바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다가 그 밤에 문을 뛰어나가 로마병정에게 다가갔습니다. 로마병정이 어둠 속에서 그를 붙잡고 ”네가 누구냐” 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내가 랍비 아키바요. ” 라고 대답하니 로마병정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 너무나도 유명한 사람인데다 직접 대하고 본 아키바의 위엄과 준엄한 인격 앞에서 저절로 압도당했던 것입니다. 아키바를 체포한 뒤, 그가 원하는 대로 로마 장군 앞으로 그를 인도하였습니다. 장군이 물었습니다. ”당신이 아키바요” ”예, 할 얘기가 있어 이 밤중에 찾아왔습니다. ” ”그래 뭐요” ”예, 서로 피를 흘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내일 아침이면 예루살렘 성문을 활짝 열고 전혀 항거함 없이 로마군인을 다 맞이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을 한 가운데 조그만 집이 하나있는데, 그 집만은 절대 손대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에게 있는 돈은 다 가져가도 좋습니다. 사람을 붙들어 가도 좋습니다. 다만 성 안에 있는 그 집 하나만은 손을 대지 않도록 약속해 주시기 바랍니다. ” 장군이 물었습니다. ”그곳엔 무엇이 있습니까” ”책이 있는 곳입니다” ”책뿐이라면 그까짓 것 문제될 것 없지, 그렇게 합시다. 전쟁을 하지 맙시다. ” 그 이튿날, 문을 열어주기로 하고 아키바는 바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밤에 유대의 믿음의 어머니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책이 들어 있는 그 조그만 집에 어머니들이 울면서 모였을 때, 아키바는 여기서 유명한 설교를 했습니다. ”어머니 여러분! 다 없어도 됩니다. 다 뺏겨도 됩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어머니들의 가슴 속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져 있으면, 또한 탈무드가 있으면 우리 백성은 영원히 존속됩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이 백성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룰 날이 옵니다. ”라고 설교를 했습니다. 이 설교를 들은 어머니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성경 위에서 엎드려 울며 기도로 밤을 새웠습니다. 이튿날, 예루살렘 성이 점령되어 수많은 사람이 잡혀가고 여러 가지 재물을 탈취 당했지만, 유대 믿음의 어머니들 가슴속에 새겨진 여호와 하나님 말씀과 그 정신은 어머니들의 가슴과 가슴으로 전승되어 오늘의 이스라엘을 있게 하였습니다.
1986년 통계를 보면 그 당시까지 전 세계적으로 노벨상 수상자의 수는 약 300명이었습니다. 그중에 유대인 출신이 93명, 약 3분의 1을 차지합니다. 아시아 출신 중 노벨상을 받은 사람을 다 더해도 몇 명되지 않는데, 조그만 한 나라에서 노벨상 받은 사람이 백여 명 가까이 나온 것입니다. 또 미국 전체 인구 중 유대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2%밖에 안 되는데도 400명의 재벌 중 23%가 유대인이고, 70만 명의 변호사 중에서 20%가 유대인이고, 대학교수 중에 25-35%가 유대인입니다. 세계의 경제도 유대인들이 다 쥐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이 이렇게 복을 받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자녀들을 말씀과 기도로 양육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 무엇보다도 우리 자녀들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기를 바랍니다. 거액의 유산을 자녀들에게 주기 보다는 부모님의 믿음을 물려주시기 바랍니다.
3) 신앙적인 본을 보이지 못함
셋째로 히스기야가 자녀에게 신앙적인 본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의 생명을 15년 동안 연장 받았다면 전보다도 더욱 여호와 하나님을 섬겨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32장 24절과 25절에서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된 고로 야훼께 기도하매 야훼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이적을 보이셨으나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헤를 보답치 아니하므로…..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면, 히스기야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을 연장 받았지만 감사하기는커녕 그 마음이 오히려 교만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들인 므낫세가 아버지의 그 모습을 통해 무엇을 배웠겠습니까 나이어린 므낫세는 아버지의 교만한 모습을 보고, 아버지의 나쁜 모습을 보고 자랐습니다. 그 결과 유대나라에서 가장 악한 왕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15년 동안 생명을 연장 받고 나서 히스기야가 한 일이라고는 자녀에게 나쁜 모습을 보여준 것뿐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 애는 도대체 누구를 닮아서 그래”라는 말을 서슴없이 합니다. 여러분, 우리 자녀들이 누구를 닮아서 그럴까요 저 한국에 사는 친척을 닮아서 그럴까요 아니면 옆집 아저씨 닮아서 그럴까요 아니면 쇼핑센터에서 만난 아주머니를 닮아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자녀는 다 아빠, 엄마 닮습니다. 어느 분은 주장하기를 “자녀교육이란 결국 부모가 자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이 그 부모의 삶을 닮는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육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말로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을 보이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학생들은 교사를 따라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녀는 부모를 따라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부모를 닮게 되어 있습니다.
앞서서도 이야기했지만,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헌옷가게에 들러 외투 하나를 샀습니다. 오면서 외투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보석 하나가 있었습니다. 보석을 보는 순간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산 옷이니 보석은 내 거야! 내 소유야!’ ‘아니야! 원래 주인이 넣어놓은 것을 모르고 헌옷가게에서 판 것이 아닐까 그러면 보석은 주인 것인가’ 그는 랍비에게 가서 물어 보았습니다. 랍비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옷을 산 것이지 보석을 산 것은 아니지 않느냐 보석을 돌려주러 갈 때 네 자녀를 데리고 가라. 보석보다 더 귀한 것을 자녀에게 가르치게 될 것이다. ”
보석보다 더 귀한 것은 사랑하는 자녀에게 부모로서 모범을 보여주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자녀들에게 신앙적인 본을 보여주는 일은 보화를 얻는 것보다 귀한 일인 줄로 믿습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들이 자녀들이 닮아가고 싶은 모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여러분, 지금 보고 있습니다. 누가 보고 있습니까 먼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시고, 둘째로 우리의 자녀들이 보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 소개한 적이 있지만,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늦은 오후 시간에 어느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목도 타고 배가 고파 아빠가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누가 보는지 잘 살피고 있다가 사람이 오면 이야기해라” 그리고는 길 옆에 있는 무우밭으로 뛰어 들어가 무우 하나를 뽑으려고 했습니다. 그 떄 아들이 말합니다. ”아빠, 누가 보고 있어요. ” 아버지는 놀라서 뽑으려고 했던 무우를 놓아두고 얼른 길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시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합니다. ”정신 차리고 누가 보는지 잘 살피고 있거라” 그리고는 다시 무우 밭으로 뛰어들어가 무우 하나를 뽑으려고 하는데, 아들이 또 말합니다. ”아빠, 누가 보고 있어요. ” 아버지는 놀라서 뽑으려고 했던 무우를 놓아두고 얼른 길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시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합니다. ”정신 차리고 누가 보는지 잘 살피고 있으라니까” 그리고는 다시 무우 밭으로 뛰어들어가 무우 하나를 뽑으려고 하는데, 아들이 또 말합니다. ”아빠, 누가 보고 있어요. ” 아버지는 놀라서 뽑으려고 했던 무우를 놓아두고 얼른 길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화가 나서 아들에게 말합니다. ”야 이 녀석아, 보기는 누가 본다고 그래. 아무도 없잖아” 그 떄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빠, 여호와 하나님이 보고 계세요. 여호와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 말이에요. ” 아버지는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그렇구나, 여호와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구나’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가던 길을 다시 걸어갔다고 합니다.
여러분, 지금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이 우리의 일거수 일토족을 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2006년도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히스기야의 자녀교육의 실패를 통해 교훈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정 밖의 일 뿐 아니라 가정 일도 소홀히 하지 않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무엇보다도 우리 자녀들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나도 우리 아버지, 어머니처럼 살아야지’ 하는 삶의 모델이 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계신 분들 가운데 단 한 분도 가정사역에 실패한 히스기야와 같은 분들이 없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