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자녀는 누구인가
본문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느 화가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을 그리고 싶어서 길을 떠났습니다. 길을 가다가 목사님을 만나 물었습니다.
“목사님,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무엇일까요”목사님을 대답했습니다.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것 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을 것입니다. ”
이 화가는 그 생각에 동의하면서 한참을 가다가 군인을 만나 그에게도 물었습니다. 군인은 대답했습니다.
“저는 평화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싸우지 않고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살아가는 것 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
또 한참을 걸어가다가 금방 결혼해서 신혼여행을 떠나는 부부에게 물었습니다. 그들은 대답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사랑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그런 것 같아 화가는‘그래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무엇 하나로 얘기할 수 없구나. 믿음도 아름답고, 평화도 아름답고, 사랑도 아름다우니 말야. 그러면 이 세가지를 모두 공유한 아름다움은 없을까’하고 생각하며 이곳저곳을 다녀봤지만 아름다운 것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화가는 집을 돌아왔습니다.
오랜만에 집으로 왔더니 사랑하는 딸 아이가 뛰어나오면서“아빠! 보고싶었어요”하면서 그의 품에 안겼습니다. 화가는 그 아이가 자신을 아버지로 믿어주고 기다려 준 모습에서 믿음을 발견했습니다. 곧 이어 아내가 뛰어나왔습니다. 그리고 맛있는 것을 준비해 놓고 대접하는 것을 보면서 사랑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여행중에 피로가 쌓인 것을 풀어줄 잠자리에서 평화를 느꼈다고 합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바로 가정이구나’
그렇습니다. 가정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가정의 종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 만드시고 마지막에 만드신 것은 가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제일 먼저 하신 기적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든 것입니다. 그것은 가정에 기쁨을 준 것입니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이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것은 가정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아브라함만을 부르신 것이 아니라 가정을 부르신 것입니다. 노아를 구원하실 때도 노아만을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그의 가족을 모두 구원하신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만큼 가정을 사랑하시고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시대의 슬픈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정 밖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사람들은 가정을 떠나서 행복을 찾고 가정을 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소위 독신주의를 얘기하면서 자유를 부르짖고, 방탕과 향락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합니다.
제가 이번에 중국에 갔을 때 수요기도회를 끝내고 연길교회에서 나오니 탈북한 어린이 몇 명이 그룹을 지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구걸하는 그 아이들에게 얼마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목사님과 좀 번화한 곳으로 갔더니 아이들의 조금씩 모여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 속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는 얼굴이어서 인사를 했습니다. 아주머니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집에서 같이 살것을 얘기하면서 아이들을 끌었지만 한 아이만 가고 가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이 이상해서 물었습니다.
“왜 너희들을 따라가지 않니”
그랬더니 그 중 한 아이가 말했습니다.
“저희가 따라가면 예수를 믿어야 하는데 예수를 믿게 되면 북조선에 가서 총살을 당하게 됩니다. 또 저 아주머니가 우리를 고발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안 따라갑니다. ”
그리고는 서로에게 “살아서 만나자!”라고 인사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튼날 그 아주머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어제 따라간 아이는 잘 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아이의 몸이 온통 옴이 나서 아팠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그 아이는 그래서 따라갔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는 계속 아이의 얘기를 했습니다. 그 아이는 무순에서 탈북해왔는데 그 아이의 아버지는 3년 전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고 일년전에 너무나 먹고살기 힘들어서 아이의 엄마는 집을 500원에 팔아버렸다고 합니다.
500원은 중국 돈으로 5원이고, 한국 돈으로는 700원 내지 750원 정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아이의 엄마가 중국 사람에게 시집을 가면서 생활비를 보내줄테니 여기 있으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으니 아이는 평양, 함흥으로 꽃제비(부랑아)생활을 하다가 넘어오데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북한의 슬픔은 먹지 못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 깨어진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을 만나보면 아버지나 어머니 중 한 사람이 죽어 헤어지거나 부모가 다 굶어 죽는 일이 비일비재 한 것입니다. 이세대의 슬픔은 가정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것이 북한의 슬픔이고 우리가 그것
을 제일 안타깝게 생각해야 합니다. 한국에도 IMF가 터지자 일부 가정이 무너져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가정을 나온 노숙자들이 어렵지만 그 노숙자 연합회에서 효도잔치하는 방송을 보면서 그래도 소망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나안 농군학교의 김영기 장로님은 자유당 정권 때 대모 하는 학생들 앞에 서서 했던 말씀을 생각합니다. 그때 두 가지의 말씀을 했습니다.
“대모는 나라의 희망이다 그러나 대모 하는 사람은 평화적으로 해야한다. 돌을 던지고 집을 부수는 것은 폭력이고 절망이다. 그러니 그렇게 하지 말아라. 둘째로 대모는 민족과 나라를 사랑하는 일이다. 그러나 부모는 공경하지 않는 사람은 대모하지 말라. 집안에서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나라사랑을 할 수 있는가”
또 이 민족의 죄를 두 가지로 얘기했습니다. 첫째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이고 둘째는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효도하는 것은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고 백성된 자격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십계명에서 다른 계명은 모두‘하지 말라’라는 계명들 뿐이지만 유독이 두 계명만 하면 복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안식일을 지키면 복을 받는다는 것과 네 부모를 공경하면 네가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리라고 말씀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땅에 기독교가 들어왔을 때 예수를 믿으면 효도를 하지 않는다고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성경에는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고, 레20:9“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고 하는 말씀 전했습니다.
자식은 누구입니까 자식은 부모를 세워주는 자가 자식입니다. 만약에 자식이 부모를 헐뜯는 다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노아의 세 아들을 보십시오.
하루는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자신의 장막에서 벌거벗고 누워 있을 때 함이라는 아들이 들어와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얼마나 비웃었는지 자기의 형제들에게 와서 조롱을 했습니다.
이 얘기를 듣던 셈과 야벳은 담요를 가지고 뒷걸음질 쳐서 들어가 아버지의 수치를 가리워 주었습니다. 그 이후에 노아가 일어나 자신의 허물을 가리워준 두 아들에게 축복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수치를 드러낸 아들에게는 저주를 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복을 받지만 불효하고 저주하면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를 세워주는 사람입니다. 세워주는 사람이 진짜 자녀입니다. 부모를 깎아 내리면 그것으로 인해 벌을 받는 것입니다.
몇년전 한 생명보험 회사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인생을 소재로 하여 광고를 만든 적이 있습니다. 그때 나왔던 광고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아버지에 관한 내용입니다.
스물 아홉 - 열네 시간을 기다려서야 자식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신을 믿지 않았지만 당신도 모르게 기도를 올렸습니다.
서른 일곱 - 자식이 초등학교에 들어가 우등상을 탔습니다. 당신은 액자를 만들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두었습니다. 아직도 당신의 방에는 누렇게 바랜 액자가 걸려있었습니다.
마흔 셋 - 일요일 아침, 모처럼 자신과 뒷산 약수터로 올라갔습니다. 이웃 사람들은 자식이 아버지를 닮았다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당신은 괜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마흔 여덟 - 자식이 대학 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당신은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했지만 하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쉰 셋 - 자식이 첫 월급을 타서 내의를 사왔습니다. 당신은 쓸데없이 돈을 쓴다고 나무랐지만 밤이 늦도록 그 내의를 입어보고 또 입어봤습니다.
예순 하나 - 딸이 시집을 가는 날이었습니다. 딸은 도둑 같은 사위 얼굴을 쳐다보며 함박 웃음을 피웠습니다. 당신은 나이 들고서 처음으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오직 하나 자식 잘되기만 바라며 살아온 한평생. 하지만 이제는 희끗희끗한 머리로 남으신 당신 우리는 당신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어머니에 관한 내용입니다.
스물 하나 - 당신은 고개를 두개 넘어 얼굴도 본 적이 없는 김씨 댁의 큰아들에게 시집을 왔습니다.
스물 여섯 - 시집 온 지 오년만에 자식을 낳았습니다. 당신은 그제야 시댁 어른들에게 며느리 대접을 받았습니다.
서른 둘 - 자식이 밤늦게 급체를 앓았습니다. 당신은 자식이 학교에서 돌아올 무렵이면 자식의 외투를 입고 동구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자식에게 당신의 체온으로 데워진 외투를 입혀 주었습니다.
쉰 둘 - 자식이 결혼할 여자라고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당신은 분 칠한 얼굴이 싫었지만 자식이 좋다니까 당신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예순 - 환갑이라고 자식이 모처럼 돈을 보냈습니다. 당신은 그 돈으로 자식의 보약을 지어 주었습니다.
예순 다섯 - 자식 내외가 바쁘다며 명절에 고향에 못 내려온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동네 사람들에게 아들이 바빠서 아침 일찍 올라갔다며 당신 평생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습니다.
오직 하나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며 살아온 한평생, 하지만 이제는 깊게 주름진 얼굴로 남으신 당신, 우리는 당신을 어머니라 부릅니다.
이렇게 해서 얼마나 많은 수입을 올렸는지 모르지만 이러한 글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것을 사실입니다. 그래서 광고대상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브라함 링컨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는 상원의원들 앞에서 연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상원의원들 가운데는 그의 아버지가 무슨 직업을 가졌던 사람이었는지 아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구두를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중 한 상원의원이 자존심이 상했는가 봅니다. 구두 만드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자신이 그런 연설을 들어야 했던 이유가 자존심을 상하게 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링컨이 단 앞에 서서 막 입을 열려 할 때 거만해 보이는 한 상원의원이 일어나 링컨을 향해 말했습니다.
"당신이 대통령이 되다니 정말 놀랍소, 그러나 당신의 아버지가 신발 제조공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가끔 당신의 아버지가 우리 집에 신발을 만들이 위해 찾아오곤 했소. 이 신발도 바로 당신 아버지가 만든 것이오. "
그런후 그는 자기 신발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킥킥거리는 웃음 새어 나왔습니다. 링컨은 조용히 서 있었습니다. 키가 훤칠한 링컨의 몸집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습니다. 그것은 부끄러움의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 링컨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의원님 때문에 한동안 잊고 있던 내 아버지의 얼굴이 기억 났습니다. 내 아버지는 신발 제조공으로 완벽한 솜씨를 가진 분이셨습니다. 나는 내 아버지를 능가할 수 없습니다. 다만 아버지의 위대함을 따라 잡으려 노력할 뿐이었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많은 귀족들의 신발을 만드셨습니다. 여기 이 자리에 모이신 분들 중엔 내 아버지가 만드신 신발을 신으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만약 신발이 불편하다면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기술을 옆에서 보고 배웠기에 조금은 손봐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내 아버지가 만드신 신발을 최선을 다해 고쳐 드리겠습니다. 물론 제 솜씨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만... "
그 사람이 위대하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진 권력이나 신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식된 입장에서 적어도 아버지를 세워 드릴 줄 알고 부모님께서 내게 베풀어 주신 그 은혜를 아는 사람만이 위대한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부모에게 효도할 수 있습니까 일반적으로 효도하는 것을 크게 세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전통적인 방법입니다.
가부장 적인 제도아래서 부모의 명령을 듣지 않으면 매를 맞으니 억지로 하는 노예적인 효도를 말합니다. 사실 처음부터 이런 가부장적인 제도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옛날에‘고려장’이란 제도가 있지 않았습니까 이러한 제도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로마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에서는 노인들을“데폴라니”라고 부르는데 이 뜻은“다리 위에서 강을 향해 부모를 내어 던진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나이가 많아 힘이 없어지면 부모를 강에 던져 죽게하는 것입니다.
남 태평양의 어느 섬에서는 부모가 나이가 들면 야자나무 위에 올려 놓고 밑에서 나무를 흔들어 떨어뜨려 죽게한다고 합니다. 중국의 흉노족들은 나이 많은 부모를 자루에 담아 나무에 매달고 그래도 죽지 않으면 활을 쏴서 죽게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것들로 인해 만든 법률이 상속거부입니다. 이것은 독일이 많이 발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독일의 시인 괴테는 나이가 들어서도 창고 열쇠를 가지고 있고 빵을 저울에 달아서 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장남에게 일체 상속하던 형태에서 발전하여 자녀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도록 하는 것, 그리고 최근에는 부모에게 더 효도하는 법으로 절대 상속제가 되어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는 자녀들에게 재산을 상속하는데 우리나라와는 다릅니다. 일본은 점진 상속제도로서 자식이 장성해서 결혼을 하면 그 자녀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부모는 둘째 아들과 더불어 살고, 둘째 아들이 결혼을 하면 둘째 아들을 내보내고 셋째 아들과 사는 점진적인 상속제도입니다. 다시 말하면 고려장같은 제도를 거부하기 위해 상속제도를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삶 속에서의 효도는 물질적인 것을 상속 받아야 하는 효도인 것입니다.
둘째로 현대적인 효도방법은 극단적 이기주의입니다.
지하철을 타게되면 경노석에 젊은이들이 앉아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한 노인이 그 경노석에 앉아있는 젊은이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여보게 젊은이, 여기는 경노석이야, 여기에 이처럼 써 있지 않은가”
그랬더니 젊은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제가 공부하는데 뭐 보태준 것이 있습니까그리고 할아버지는 표 값도 없이 공짜 표를 가지고 타신 것 같은데 저는 돈을 내고 탔습니다. 딴데 가서 알아보십시오. ”
이것은 극단적인 예입니다만 자신에게 이익이 있다면 얼마든지 그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현대적인 효도라는 것은 이처럼 이기적이며 권위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누구 때문입니까 바로 우리 부모들 때문입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음식점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 그 부모들은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혹시 라도 누가 야단을 치게 되면 아이 기죽인다고 얼마나 화를 내는지 모릅니다. 부모들이 그렇게 키우게 된 것입니다.
저도 그 부분에 있어서는 책임이 있습니다. 운전을 하다가 보면 막히는 길에 들어서 오도가도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때 가끔씩 새치기하며 들어오는 차들이 있지 않습니까 비켜주다가도 화가나서 비켜주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자녀들이 보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여러분 앞에 솔직히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이제부터라도 바로 잡아야 합니다. 그것이 성서적인 효도관입니다.
셋째로 성서적인 효도입니다.
성서적인 효도는 율법주의 적이나 무 율법적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위에 올려지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기를 "자녀들아 주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하셨습니다.
주안에서의 순종과 주 밖에서의 순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안에서 순종하라는 말은 "네가 주님 안에 있다면... 네가 예수 믿고 변화된 성도라면... 네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라면, 마땅히 부모에게 순종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롬5:8에 있는 말씀대로“우리가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신 것”을 안다면 우리는 마땅히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것은 부모가 내게 어떻게 했기 때문에 순종한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을 알기 때문에 순종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누구나 다 할 것 없이 순종하고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효도를 두 가지 말로 얘기합니다. 한가지는 순종이고, 또 한가지는 공경입니다.
순종이라는 말은 종이 주인의 말을 듣듯이, 판사가 피고의 말을 잘 듣고 판결을 내리듯이 잘 듣는 것입니다. 공경이라는 말은 대우하는 것을 얘기합니다. 내 몸에 제일 중요한 장기 가운데 한가지는 간입니다. 간을 영어로 카베드 라고 하는데 이 뜻은 가장 중요하고 무겁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요19:26의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은 어머니에게 구나이(Gunai) 라고 불렀습니다. Gunai는 '여왕이여' 라는 뜻입니다. 여왕은 일하지 않아도 왕이기 때문에 백성들이 대접을 하는 것처럼 부모를 왕처럼 대접해야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공경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순종은 자세를 얘기하고 공경은 대접하는 것을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서는 부모의 말씀대로 따라서 행합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는 우리가 부모님의 부족함을 채워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경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농군학교의 김평일 장로님께서 우리에게 효도 십계명을 얘기합니다.
① 신앙을 갖으시도록 해 드리라.
② 말을 잘 들어 드리고 대답을 잘하라.
③ 표정을 밝게 하고 웃음을 잃지 말라.
④ 궁금증을 풀어 드리라.
⑤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용돈을 드리라.
⑥ 향토적인 음식을 대접하라.
⑦ 외모를 아름답게 꾸며 드려라.
⑧ 일거리를 찾아 드리라.
⑨ 친구를 자주 만날 수 있도록 해 드리라.
⑩ 등을 긁어 드리고 손톱, 발톱을 깎아 드리라
공경이라는 말 속에는 부모의 부족함을 채워 드리는 뜻이 있습니다. 부모가 잘 못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을 비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바르게 잡아 드리는 것이 자녀들이 마땅히 부모를 공경하는 자세인 줄로 믿습니다.
제가 중국에 간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인데 하나는 중국교회 지도자들을 가르쳐 복음화 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북한을 돕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북한에 밀가루를 보내고 국수를 보내는 운동에 참여했지만 지난달 서울노회를 통해 밀가루 120톤을 보냈습니다. 또 이번에도 밀가루 60톤을 보냈습니다.
누구는 말을 합니다. “북한 사람들을 도우면 군량미로 써서 전쟁하러 올 것 아닌가”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일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사랑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밀가루 포대에도“예수 사랑을 전합시다”라고 써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교회가 효도관광을 준비합니다. 왜 합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입니다. 신앙의 본을 보이면 언젠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음의 역사를 일으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는 신앙인이라면 마땅히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모를 세워 드리고 그 부모를 통해서 우리의 가정을 바르게 세워 나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기독교는 효도의 종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하는 효도의 종교입니다. 자녀는 부모를 세워주고 부모의 수고를 알고 순종으로 공경하는 여러분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함께 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목사님,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무엇일까요”목사님을 대답했습니다.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것 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을 것입니다. ”
이 화가는 그 생각에 동의하면서 한참을 가다가 군인을 만나 그에게도 물었습니다. 군인은 대답했습니다.
“저는 평화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싸우지 않고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살아가는 것 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
또 한참을 걸어가다가 금방 결혼해서 신혼여행을 떠나는 부부에게 물었습니다. 그들은 대답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사랑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그런 것 같아 화가는‘그래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무엇 하나로 얘기할 수 없구나. 믿음도 아름답고, 평화도 아름답고, 사랑도 아름다우니 말야. 그러면 이 세가지를 모두 공유한 아름다움은 없을까’하고 생각하며 이곳저곳을 다녀봤지만 아름다운 것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화가는 집을 돌아왔습니다.
오랜만에 집으로 왔더니 사랑하는 딸 아이가 뛰어나오면서“아빠! 보고싶었어요”하면서 그의 품에 안겼습니다. 화가는 그 아이가 자신을 아버지로 믿어주고 기다려 준 모습에서 믿음을 발견했습니다. 곧 이어 아내가 뛰어나왔습니다. 그리고 맛있는 것을 준비해 놓고 대접하는 것을 보면서 사랑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여행중에 피로가 쌓인 것을 풀어줄 잠자리에서 평화를 느꼈다고 합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바로 가정이구나’
그렇습니다. 가정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가정의 종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 만드시고 마지막에 만드신 것은 가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제일 먼저 하신 기적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든 것입니다. 그것은 가정에 기쁨을 준 것입니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이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것은 가정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아브라함만을 부르신 것이 아니라 가정을 부르신 것입니다. 노아를 구원하실 때도 노아만을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그의 가족을 모두 구원하신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만큼 가정을 사랑하시고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시대의 슬픈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정 밖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사람들은 가정을 떠나서 행복을 찾고 가정을 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소위 독신주의를 얘기하면서 자유를 부르짖고, 방탕과 향락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합니다.
제가 이번에 중국에 갔을 때 수요기도회를 끝내고 연길교회에서 나오니 탈북한 어린이 몇 명이 그룹을 지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구걸하는 그 아이들에게 얼마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목사님과 좀 번화한 곳으로 갔더니 아이들의 조금씩 모여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 속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는 얼굴이어서 인사를 했습니다. 아주머니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집에서 같이 살것을 얘기하면서 아이들을 끌었지만 한 아이만 가고 가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이 이상해서 물었습니다.
“왜 너희들을 따라가지 않니”
그랬더니 그 중 한 아이가 말했습니다.
“저희가 따라가면 예수를 믿어야 하는데 예수를 믿게 되면 북조선에 가서 총살을 당하게 됩니다. 또 저 아주머니가 우리를 고발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안 따라갑니다. ”
그리고는 서로에게 “살아서 만나자!”라고 인사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튼날 그 아주머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어제 따라간 아이는 잘 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아이의 몸이 온통 옴이 나서 아팠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그 아이는 그래서 따라갔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는 계속 아이의 얘기를 했습니다. 그 아이는 무순에서 탈북해왔는데 그 아이의 아버지는 3년 전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고 일년전에 너무나 먹고살기 힘들어서 아이의 엄마는 집을 500원에 팔아버렸다고 합니다.
500원은 중국 돈으로 5원이고, 한국 돈으로는 700원 내지 750원 정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아이의 엄마가 중국 사람에게 시집을 가면서 생활비를 보내줄테니 여기 있으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으니 아이는 평양, 함흥으로 꽃제비(부랑아)생활을 하다가 넘어오데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북한의 슬픔은 먹지 못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 깨어진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을 만나보면 아버지나 어머니 중 한 사람이 죽어 헤어지거나 부모가 다 굶어 죽는 일이 비일비재 한 것입니다. 이세대의 슬픔은 가정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것이 북한의 슬픔이고 우리가 그것
을 제일 안타깝게 생각해야 합니다. 한국에도 IMF가 터지자 일부 가정이 무너져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가정을 나온 노숙자들이 어렵지만 그 노숙자 연합회에서 효도잔치하는 방송을 보면서 그래도 소망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나안 농군학교의 김영기 장로님은 자유당 정권 때 대모 하는 학생들 앞에 서서 했던 말씀을 생각합니다. 그때 두 가지의 말씀을 했습니다.
“대모는 나라의 희망이다 그러나 대모 하는 사람은 평화적으로 해야한다. 돌을 던지고 집을 부수는 것은 폭력이고 절망이다. 그러니 그렇게 하지 말아라. 둘째로 대모는 민족과 나라를 사랑하는 일이다. 그러나 부모는 공경하지 않는 사람은 대모하지 말라. 집안에서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나라사랑을 할 수 있는가”
또 이 민족의 죄를 두 가지로 얘기했습니다. 첫째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이고 둘째는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효도하는 것은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고 백성된 자격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십계명에서 다른 계명은 모두‘하지 말라’라는 계명들 뿐이지만 유독이 두 계명만 하면 복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안식일을 지키면 복을 받는다는 것과 네 부모를 공경하면 네가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리라고 말씀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땅에 기독교가 들어왔을 때 예수를 믿으면 효도를 하지 않는다고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성경에는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고, 레20:9“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고 하는 말씀 전했습니다.
자식은 누구입니까 자식은 부모를 세워주는 자가 자식입니다. 만약에 자식이 부모를 헐뜯는 다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노아의 세 아들을 보십시오.
하루는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자신의 장막에서 벌거벗고 누워 있을 때 함이라는 아들이 들어와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얼마나 비웃었는지 자기의 형제들에게 와서 조롱을 했습니다.
이 얘기를 듣던 셈과 야벳은 담요를 가지고 뒷걸음질 쳐서 들어가 아버지의 수치를 가리워 주었습니다. 그 이후에 노아가 일어나 자신의 허물을 가리워준 두 아들에게 축복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수치를 드러낸 아들에게는 저주를 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복을 받지만 불효하고 저주하면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를 세워주는 사람입니다. 세워주는 사람이 진짜 자녀입니다. 부모를 깎아 내리면 그것으로 인해 벌을 받는 것입니다.
몇년전 한 생명보험 회사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인생을 소재로 하여 광고를 만든 적이 있습니다. 그때 나왔던 광고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아버지에 관한 내용입니다.
스물 아홉 - 열네 시간을 기다려서야 자식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신을 믿지 않았지만 당신도 모르게 기도를 올렸습니다.
서른 일곱 - 자식이 초등학교에 들어가 우등상을 탔습니다. 당신은 액자를 만들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두었습니다. 아직도 당신의 방에는 누렇게 바랜 액자가 걸려있었습니다.
마흔 셋 - 일요일 아침, 모처럼 자신과 뒷산 약수터로 올라갔습니다. 이웃 사람들은 자식이 아버지를 닮았다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당신은 괜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마흔 여덟 - 자식이 대학 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당신은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했지만 하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쉰 셋 - 자식이 첫 월급을 타서 내의를 사왔습니다. 당신은 쓸데없이 돈을 쓴다고 나무랐지만 밤이 늦도록 그 내의를 입어보고 또 입어봤습니다.
예순 하나 - 딸이 시집을 가는 날이었습니다. 딸은 도둑 같은 사위 얼굴을 쳐다보며 함박 웃음을 피웠습니다. 당신은 나이 들고서 처음으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오직 하나 자식 잘되기만 바라며 살아온 한평생. 하지만 이제는 희끗희끗한 머리로 남으신 당신 우리는 당신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어머니에 관한 내용입니다.
스물 하나 - 당신은 고개를 두개 넘어 얼굴도 본 적이 없는 김씨 댁의 큰아들에게 시집을 왔습니다.
스물 여섯 - 시집 온 지 오년만에 자식을 낳았습니다. 당신은 그제야 시댁 어른들에게 며느리 대접을 받았습니다.
서른 둘 - 자식이 밤늦게 급체를 앓았습니다. 당신은 자식이 학교에서 돌아올 무렵이면 자식의 외투를 입고 동구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자식에게 당신의 체온으로 데워진 외투를 입혀 주었습니다.
쉰 둘 - 자식이 결혼할 여자라고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당신은 분 칠한 얼굴이 싫었지만 자식이 좋다니까 당신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예순 - 환갑이라고 자식이 모처럼 돈을 보냈습니다. 당신은 그 돈으로 자식의 보약을 지어 주었습니다.
예순 다섯 - 자식 내외가 바쁘다며 명절에 고향에 못 내려온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동네 사람들에게 아들이 바빠서 아침 일찍 올라갔다며 당신 평생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습니다.
오직 하나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며 살아온 한평생, 하지만 이제는 깊게 주름진 얼굴로 남으신 당신, 우리는 당신을 어머니라 부릅니다.
이렇게 해서 얼마나 많은 수입을 올렸는지 모르지만 이러한 글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것을 사실입니다. 그래서 광고대상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브라함 링컨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는 상원의원들 앞에서 연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상원의원들 가운데는 그의 아버지가 무슨 직업을 가졌던 사람이었는지 아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구두를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중 한 상원의원이 자존심이 상했는가 봅니다. 구두 만드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자신이 그런 연설을 들어야 했던 이유가 자존심을 상하게 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링컨이 단 앞에 서서 막 입을 열려 할 때 거만해 보이는 한 상원의원이 일어나 링컨을 향해 말했습니다.
"당신이 대통령이 되다니 정말 놀랍소, 그러나 당신의 아버지가 신발 제조공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가끔 당신의 아버지가 우리 집에 신발을 만들이 위해 찾아오곤 했소. 이 신발도 바로 당신 아버지가 만든 것이오. "
그런후 그는 자기 신발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킥킥거리는 웃음 새어 나왔습니다. 링컨은 조용히 서 있었습니다. 키가 훤칠한 링컨의 몸집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습니다. 그것은 부끄러움의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 링컨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의원님 때문에 한동안 잊고 있던 내 아버지의 얼굴이 기억 났습니다. 내 아버지는 신발 제조공으로 완벽한 솜씨를 가진 분이셨습니다. 나는 내 아버지를 능가할 수 없습니다. 다만 아버지의 위대함을 따라 잡으려 노력할 뿐이었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많은 귀족들의 신발을 만드셨습니다. 여기 이 자리에 모이신 분들 중엔 내 아버지가 만드신 신발을 신으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만약 신발이 불편하다면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기술을 옆에서 보고 배웠기에 조금은 손봐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내 아버지가 만드신 신발을 최선을 다해 고쳐 드리겠습니다. 물론 제 솜씨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만... "
그 사람이 위대하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진 권력이나 신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식된 입장에서 적어도 아버지를 세워 드릴 줄 알고 부모님께서 내게 베풀어 주신 그 은혜를 아는 사람만이 위대한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부모에게 효도할 수 있습니까 일반적으로 효도하는 것을 크게 세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전통적인 방법입니다.
가부장 적인 제도아래서 부모의 명령을 듣지 않으면 매를 맞으니 억지로 하는 노예적인 효도를 말합니다. 사실 처음부터 이런 가부장적인 제도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옛날에‘고려장’이란 제도가 있지 않았습니까 이러한 제도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로마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에서는 노인들을“데폴라니”라고 부르는데 이 뜻은“다리 위에서 강을 향해 부모를 내어 던진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나이가 많아 힘이 없어지면 부모를 강에 던져 죽게하는 것입니다.
남 태평양의 어느 섬에서는 부모가 나이가 들면 야자나무 위에 올려 놓고 밑에서 나무를 흔들어 떨어뜨려 죽게한다고 합니다. 중국의 흉노족들은 나이 많은 부모를 자루에 담아 나무에 매달고 그래도 죽지 않으면 활을 쏴서 죽게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것들로 인해 만든 법률이 상속거부입니다. 이것은 독일이 많이 발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독일의 시인 괴테는 나이가 들어서도 창고 열쇠를 가지고 있고 빵을 저울에 달아서 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장남에게 일체 상속하던 형태에서 발전하여 자녀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도록 하는 것, 그리고 최근에는 부모에게 더 효도하는 법으로 절대 상속제가 되어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는 자녀들에게 재산을 상속하는데 우리나라와는 다릅니다. 일본은 점진 상속제도로서 자식이 장성해서 결혼을 하면 그 자녀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부모는 둘째 아들과 더불어 살고, 둘째 아들이 결혼을 하면 둘째 아들을 내보내고 셋째 아들과 사는 점진적인 상속제도입니다. 다시 말하면 고려장같은 제도를 거부하기 위해 상속제도를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삶 속에서의 효도는 물질적인 것을 상속 받아야 하는 효도인 것입니다.
둘째로 현대적인 효도방법은 극단적 이기주의입니다.
지하철을 타게되면 경노석에 젊은이들이 앉아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한 노인이 그 경노석에 앉아있는 젊은이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여보게 젊은이, 여기는 경노석이야, 여기에 이처럼 써 있지 않은가”
그랬더니 젊은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제가 공부하는데 뭐 보태준 것이 있습니까그리고 할아버지는 표 값도 없이 공짜 표를 가지고 타신 것 같은데 저는 돈을 내고 탔습니다. 딴데 가서 알아보십시오. ”
이것은 극단적인 예입니다만 자신에게 이익이 있다면 얼마든지 그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현대적인 효도라는 것은 이처럼 이기적이며 권위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누구 때문입니까 바로 우리 부모들 때문입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음식점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 그 부모들은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혹시 라도 누가 야단을 치게 되면 아이 기죽인다고 얼마나 화를 내는지 모릅니다. 부모들이 그렇게 키우게 된 것입니다.
저도 그 부분에 있어서는 책임이 있습니다. 운전을 하다가 보면 막히는 길에 들어서 오도가도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때 가끔씩 새치기하며 들어오는 차들이 있지 않습니까 비켜주다가도 화가나서 비켜주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자녀들이 보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여러분 앞에 솔직히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이제부터라도 바로 잡아야 합니다. 그것이 성서적인 효도관입니다.
셋째로 성서적인 효도입니다.
성서적인 효도는 율법주의 적이나 무 율법적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위에 올려지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기를 "자녀들아 주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하셨습니다.
주안에서의 순종과 주 밖에서의 순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안에서 순종하라는 말은 "네가 주님 안에 있다면... 네가 예수 믿고 변화된 성도라면... 네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라면, 마땅히 부모에게 순종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롬5:8에 있는 말씀대로“우리가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신 것”을 안다면 우리는 마땅히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것은 부모가 내게 어떻게 했기 때문에 순종한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을 알기 때문에 순종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누구나 다 할 것 없이 순종하고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효도를 두 가지 말로 얘기합니다. 한가지는 순종이고, 또 한가지는 공경입니다.
순종이라는 말은 종이 주인의 말을 듣듯이, 판사가 피고의 말을 잘 듣고 판결을 내리듯이 잘 듣는 것입니다. 공경이라는 말은 대우하는 것을 얘기합니다. 내 몸에 제일 중요한 장기 가운데 한가지는 간입니다. 간을 영어로 카베드 라고 하는데 이 뜻은 가장 중요하고 무겁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요19:26의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은 어머니에게 구나이(Gunai) 라고 불렀습니다. Gunai는 '여왕이여' 라는 뜻입니다. 여왕은 일하지 않아도 왕이기 때문에 백성들이 대접을 하는 것처럼 부모를 왕처럼 대접해야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공경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순종은 자세를 얘기하고 공경은 대접하는 것을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서는 부모의 말씀대로 따라서 행합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는 우리가 부모님의 부족함을 채워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경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농군학교의 김평일 장로님께서 우리에게 효도 십계명을 얘기합니다.
① 신앙을 갖으시도록 해 드리라.
② 말을 잘 들어 드리고 대답을 잘하라.
③ 표정을 밝게 하고 웃음을 잃지 말라.
④ 궁금증을 풀어 드리라.
⑤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용돈을 드리라.
⑥ 향토적인 음식을 대접하라.
⑦ 외모를 아름답게 꾸며 드려라.
⑧ 일거리를 찾아 드리라.
⑨ 친구를 자주 만날 수 있도록 해 드리라.
⑩ 등을 긁어 드리고 손톱, 발톱을 깎아 드리라
공경이라는 말 속에는 부모의 부족함을 채워 드리는 뜻이 있습니다. 부모가 잘 못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을 비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바르게 잡아 드리는 것이 자녀들이 마땅히 부모를 공경하는 자세인 줄로 믿습니다.
제가 중국에 간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인데 하나는 중국교회 지도자들을 가르쳐 복음화 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북한을 돕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북한에 밀가루를 보내고 국수를 보내는 운동에 참여했지만 지난달 서울노회를 통해 밀가루 120톤을 보냈습니다. 또 이번에도 밀가루 60톤을 보냈습니다.
누구는 말을 합니다. “북한 사람들을 도우면 군량미로 써서 전쟁하러 올 것 아닌가”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일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사랑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밀가루 포대에도“예수 사랑을 전합시다”라고 써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교회가 효도관광을 준비합니다. 왜 합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입니다. 신앙의 본을 보이면 언젠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음의 역사를 일으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는 신앙인이라면 마땅히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모를 세워 드리고 그 부모를 통해서 우리의 가정을 바르게 세워 나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기독교는 효도의 종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하는 효도의 종교입니다. 자녀는 부모를 세워주고 부모의 수고를 알고 순종으로 공경하는 여러분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함께 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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