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사랑의 회초리
본문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그동안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계절의 여왕이라고 하는 오월이 다가왔습니다. 오월은 특별히 우리나라에서는 가정의 달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월은 '어린이날'이 있으며, '어버이날'도 있습니다. 그리고 오월은 청소년을 위한 달로 지키기도 합니다. 교회에서도 오월 첫째주일(5월5일)을 어린이 주일로 지키며, 둘째주일(5월 12일)을 어버이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의 설교 본문인 잠언 13장 24절과 23장13절에서 14절까지의 말씀을 중심해서 '사랑의 회초리(매)'라는 말씀의 제목으로 우리 자식들에 대하여 부모들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양육하고 훈련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교인들의 훈련문제도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의 본문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먼저 잠언 13장 24절의 말씀,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 그 다음은 잠언 23장 13절과 14절의 말씀,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 "아멘.
오늘 우리의 본문에 '초달'(楚撻)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초달'이란 말은 부모나 스승이 잘못을 징계하느라고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는 '체벌'(體罰)행위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의 '초달'은 '지팡이', '막대기', '회초리'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의 본문에 '채찍'이란 말이 있는데, 이말 역시 히브리어 원문은 '초달', 즉'지팡이', '막대기', '회초리'와 같은 말로 되어 있습니다. 독일어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Rute매,회초리).
이렇게 오늘 두 곳의 본문, 즉 잠언 13장24절에서 말하고 있는 '초달'과 23장 13절과 14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채찍'은, 이스라엘의 부모가 자식을 엄히 교육하는 일에 하나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토록 자식을 교육하는 일에 있어서 '초달을 하는 일' 즉 자식에게 '회초리로 치는 일'(매질을 하는 일)이 교육의 수단(도구)으로서 바람직한 것인가 아닌가하는 문제가 우리들의 학교에서도 논의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 와서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체벌'하는 문제에 대해서 찬반(讚反)의 논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본문이 말하고 있는 것은, 물론 초달을 하고 매를 들어 체벌하는 일이 교육수단으로써 최선의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의 자녀들을 생명을 위협하는 혼란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초달하는 일, 즉 채찍으로 치는 일이 구약성서에서는 자식을 엄히 교육하는 일에만 사용된 것 뿐만아니라, 이스라엘이나 이방 민족을 응징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채찍은 양을 인도하는 목자의 도구(시23:4)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오늘 우리의 본문에서 말하려고 하는 의도가 무엇인가를 밝히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즉 부모가 자식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체벌하는 깊은 의미가 무엇인가 아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것은 부모가 자식을 징벌하는 일, 즉 초달을 하고 매로 치고 채찍으로 자식을 다스리는 일은 곧 자식을 사랑하는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의 본문이 말하는 것, 곧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잠13:24)는 말씀이 바로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초달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같이 자식에게 초달을 하고 채찍으로 치는 일은 곧 자식을 음부에서 구원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잠23:14). 그러므로 여기에서 분명해지는 것은 매질을 하는 일은 '사랑'이 전제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설교제목을 '사랑의 회초리'곧 '사랑의 매'라고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대로 나는 오늘 이 '사랑의 회초리'라는 제목으로 우리 자식을 교육하는 '가정교육'과 교인들을 교육하는 '교회교육' 즉 교인들의 훈련(권징)문제를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 가정이 위기에 직면했다고 합니다. 왜 그런가 무엇이 우리 가정의 위기인가 그 실상이 무엇인가 그 첫째는 요즈음 우리 아이들이 자기들 밖에 모르는 극단의 이기주의자들이 되고 있으며, 어른들은 안중에 없고, 버릇없고 예의 범절을 지키지 않는 후레자식들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왜 이렇게 되었나 그것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야단치거나 꾸지람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하면 '훈육'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 부모들이 아이들 기(氣) 죽는다고 야단을 치지 않고 벌로 키우고 있습니다. 공부 잘 하는 것이 효도로 생각하고 공부하는 자식을 상전으로 떠받들고 있습니다. 오직 성적에만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도덕교육, 인성교육, 인격과 예절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습니다. 모든 가치관을 공부하는 일, 성적에만 관심을 두지만, 더 큰 문제는 부모들이 자녀들의 공부를 과외선생이나 학원에 맡겨 둘 뿐, 그리고 따뜻한 애정과 보살핌이 없고, 성적이 올라가지 않는다고 윽박지르고 스트레스를 주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가정의 위기는 아버지와 어머니들에게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가정에서 그들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 가정의 가장(家長)으로서의 아버지는 권위를 가지고 가정을 유지해 나가는 기둥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오늘날의 아버지는 유약하기 그지없는 아버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권위와 '영'이 서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토록 아버지가 권위를 상실하고 아버지의 '영'(令), 즉 명령(命令)이 먹히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심한 경쟁사회 속에서 별보고 출근하고 별보며 퇴근하는 아버지들은 자식들과 대화 할 시간을 갖지 못하게 되고, 따라서 자식들로부터 소외되고 요즈음 말로 식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게 되고 가족속에서 '타인'(他人)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버지들은 가정에서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동시에 가장으로서의 권위와 설득력을 상실해 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동안 우리 가정을 지켜온 것은 '아버지의 권위'였는데, 우리 가정의 '버팀목'으로서의 아버지의 권위가 상실되면서 가정이 무너지는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어머니가 가정에서 자리를 지키지 못해서 가정에 위기가 왔다는 것은, 요즈음의 어머니들이 문 밖으로 나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요즈음 어머니들이 바깥으로 나돌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남편과 자식들만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며 희생하며 살아온 어머니들이 심한 허탈감과 박탈감에 빠져 바깥으로 돌며 방황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어머니들이 방황하고 바깥으로 돌게된 것은, 어느정도 사회적으로 출세한 남편은 직장에 매인 '이방인'(타인)이 되어 버리고, 온갖 정성을 쏟아 키워 놓은 자식들로부터 따돌림과 무시를 당하는 어머니들, 이토록 남편들과 자식들로부터 무시당하는 어머니와 아내들은 심한 소외감과 허탈감, 그리고 박탈감등으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같은 심리적, 정신적 공허감과 허기짐을 채우기 위한 몸부림이 바로 어머니와 아내들로 하여금 문 밖으로 나돌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정 밖에서 무엇을 찾아 마음의 공허와 허탈감과 박탈감에 보상을 받아 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같은 보상 심리는 쇼핑 중독증에 걸리는 과소비를 하게 되고 또한 퇴폐풍조에 쉽게 휩싸이게 됨으로 바깥으로 돌게 된다는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우리의 어머니들이 또한 가정을 잘 지켜온 기둥이었는데, 이 기둥이 또한 흔들리고 있으니 가정에 위기가 온 것이라고 합니다. 한국의 어머니(주부)는 남정네들이 허랑방탕하여 기울어져 가는 가정을 일으켜 세우고, 가정을 살려내는 '살림꾼'이었습니다. 남자들을 보고 '살림꾼'이라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주부들을 살림 잘하는 주부, 살림 잘 하는 아내, 살림 잘하는 며느리, 살림 잘하는 어머니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 가정을 버티어 온 두 기둥, 즉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두 '버팀목'이 허약하여 흔들리고, 문밖으로 나돌아 흔들리고 있으니 어찌 우리 가정이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이들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이 모양이니 우리의 자녀들이 어떻게 건강하게, 사람답게 자랄 수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오늘날 우리네의 가정의 위기는 버릇없고, 자기만 아는 이기적이 되어버린 자식들, 이 자식들을 제대로 훈육하여 키우지 못한 유약하기 그지없는 아버지와 바깥으로 도는 어머니들에게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우리의 자식들, 우리의 장래이며, 우리의 꿈과 미래가 되는 우리의 자녀들을 잘 교육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부모들이 자기들의 자리를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들은 아버지의 권위를 회복하고, 어머니들은 문밖으로 돌 것이 아니라 가정을 살리는 '살림꾼'의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자식들에게 초달을 할 수 있고 채찍을 들고 사랑의 매질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를 양육하고 훈련하는 '교회교육'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사람을 교육한다는 것은 사람을 사람답게 되도록 "훈련시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성도들을 교육시킨다는 것은 성도들을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양육하여 훈련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교회가 교인들을 훈련시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가는 제자의 삶을 살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교육적 사명입니다.
칼빈 선생님은 교회란, 교인들을 훈련시키는 훈련장이며, 교회의 '훈련'(Zucht, Discipline)은 교회의 질서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그의 책 기독교 강요 제 4권 12장에서 '교회의 훈련'(The Discipline of the Church)으로써 '징계'(혹은 권징)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교회의 훈련이란, "모든 사람들이 각기 제 멋대로 행동하게 내버려둔다면 어떠한 결과가 생길까 또한 교리를 전하기만 하고 개인적인 충고나 훈계를 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결과가 일어날 것인가 그러므로 징계는 그리스도의 교훈을 반대하여 날뛰는 사람들을 억제하고 길들이는 '굴래'와 같으며,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채 나태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박차를 가하고, 참혹하게 타락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영의 온유함으로 부드럽게 징벌하는 '아버지의 회초리'(매)와 같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교회는 교인들을 훈련하는 훈련장으로써 교인들을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녀답게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징계(훈육, 교육,훈련 등)를 하는일입니다. 이같은 징계는 곧 '여호와 하나님의 회초리'이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를 사랑하여 치는 '사랑의 매'라는 사실을 칼빈 선생님의 글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개혁교회의 창시자인 부처(Martin Bucer)와 요한 칼빈, 이 두분의 영향을 가장 크게 많이 받아 개혁교회 전통에 서서 복음주의적인 목회를 강조한 스위스의 실천신학자이며 위대한 목회자였던 투루나이젠(E. Thurneysen)은 그의 책 목회학원론(Die Lehre der Seelsorge) 제2장: '교회 훈련으로서의 목회'(Seelsorge als Kirchenzucht)에서 '교회훈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는 '목회'란 여호와 하나님은 개개인을 결단코 포기하지 않는 분이라는 믿음 안에서 각 개인들을 설교와 성례전, 즉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끌어주고, 교회의 한 지체가 되게하고, 교회 안에서의 삶을 보전시켜 주는 수단이다. 그러므로 교회 훈련으로서의 목회는 교회를 형성하고, 생존케하며, 개개인을 영적인 타락과 부패에서 건져내서 삶을 보전시켜주는 성화의 행위이다"라고 합니다.
이토록 장로교회(개혁교회)는 전통적으로 '교회훈련'(권징)을 강조한 교회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칼빈의 신앙과 신학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는 오늘날의 한국 장로교회가 권징의 부재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교회는 교회의 권위와 질서가 제대로 세워지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특히 최근의 한국교회는 교회성장주의로 인하여 온 교회가 교리를 '살찌게'하는 일에 몰두한 나머지 '한 영혼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말씀으로 양육하고 돌보며, 그리스도의 제자로 훈련시키는 일을 등한히 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또한 개신교회는 "오로지 믿음으로 구원함을 받는다"라는 '칭의'(Rechtfertigung, Justification by Faith)사상을 너무 '값싼 은혜(die billige Gnade)로 받아들인 나머지, 그 은혜에 응답하는 '성화'(Heiligung, Santification)의 삶을 사는데 소홀히 해 왔습니다. 본훼퍼 목사님은 '거룩하게 되는 것', 즉 성화(聖化)는 '칭의'를 '값비싼 은혜'(die teure Gnade)로 받아들이고 매일매일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복종의 삶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오로지 믿음으로 구원함을 받는다"라는 칭의 교리를 '값싼 은혜'로 해석하여 설교하는 과오를 범할 뿐만 아니라, 교회 성장의 방편으로서 세속적이고 물량주의적인 현세의 축복을 강조하는 기복적인 설교를 하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다. 여러분, 이같은 말씀 선포와 가르침은 교인들을 온전하게 훈련하는 매서운 '회초리'(매)의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회초리'(매)는 바로 아버지가 자식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타이르는 훈육을 위한 수단입니다. 또한, 서당에서 훈장이 든 회초리는 학동을 바르게 가르치기 위한 채찍이며 편달을 위한 회초리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의 훈련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을,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도록 징계(훈육, 훈련)하는 아버지(여호와 하나님)의 회초리이며, 이 회초리는 여호와 하나님 어버지께서 당신의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치는 '사랑의 매'입니다.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오월, 가정의 달, 우리들의 자녀들을 양육하고 훈련하는 일, 또한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인 교인들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고 훈련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여러분의 선교사역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아멘.
오늘은 어린이 주일의 설교 본문인 잠언 13장 24절과 23장13절에서 14절까지의 말씀을 중심해서 '사랑의 회초리(매)'라는 말씀의 제목으로 우리 자식들에 대하여 부모들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양육하고 훈련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교인들의 훈련문제도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의 본문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먼저 잠언 13장 24절의 말씀,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 그 다음은 잠언 23장 13절과 14절의 말씀,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 "아멘.
오늘 우리의 본문에 '초달'(楚撻)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초달'이란 말은 부모나 스승이 잘못을 징계하느라고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는 '체벌'(體罰)행위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의 '초달'은 '지팡이', '막대기', '회초리'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의 본문에 '채찍'이란 말이 있는데, 이말 역시 히브리어 원문은 '초달', 즉'지팡이', '막대기', '회초리'와 같은 말로 되어 있습니다. 독일어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Rute매,회초리).
이렇게 오늘 두 곳의 본문, 즉 잠언 13장24절에서 말하고 있는 '초달'과 23장 13절과 14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채찍'은, 이스라엘의 부모가 자식을 엄히 교육하는 일에 하나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토록 자식을 교육하는 일에 있어서 '초달을 하는 일' 즉 자식에게 '회초리로 치는 일'(매질을 하는 일)이 교육의 수단(도구)으로서 바람직한 것인가 아닌가하는 문제가 우리들의 학교에서도 논의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 와서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체벌'하는 문제에 대해서 찬반(讚反)의 논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본문이 말하고 있는 것은, 물론 초달을 하고 매를 들어 체벌하는 일이 교육수단으로써 최선의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의 자녀들을 생명을 위협하는 혼란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초달하는 일, 즉 채찍으로 치는 일이 구약성서에서는 자식을 엄히 교육하는 일에만 사용된 것 뿐만아니라, 이스라엘이나 이방 민족을 응징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채찍은 양을 인도하는 목자의 도구(시23:4)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오늘 우리의 본문에서 말하려고 하는 의도가 무엇인가를 밝히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즉 부모가 자식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체벌하는 깊은 의미가 무엇인가 아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것은 부모가 자식을 징벌하는 일, 즉 초달을 하고 매로 치고 채찍으로 자식을 다스리는 일은 곧 자식을 사랑하는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의 본문이 말하는 것, 곧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잠13:24)는 말씀이 바로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초달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같이 자식에게 초달을 하고 채찍으로 치는 일은 곧 자식을 음부에서 구원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잠23:14). 그러므로 여기에서 분명해지는 것은 매질을 하는 일은 '사랑'이 전제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설교제목을 '사랑의 회초리'곧 '사랑의 매'라고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대로 나는 오늘 이 '사랑의 회초리'라는 제목으로 우리 자식을 교육하는 '가정교육'과 교인들을 교육하는 '교회교육' 즉 교인들의 훈련(권징)문제를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 가정이 위기에 직면했다고 합니다. 왜 그런가 무엇이 우리 가정의 위기인가 그 실상이 무엇인가 그 첫째는 요즈음 우리 아이들이 자기들 밖에 모르는 극단의 이기주의자들이 되고 있으며, 어른들은 안중에 없고, 버릇없고 예의 범절을 지키지 않는 후레자식들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왜 이렇게 되었나 그것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야단치거나 꾸지람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하면 '훈육'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 부모들이 아이들 기(氣) 죽는다고 야단을 치지 않고 벌로 키우고 있습니다. 공부 잘 하는 것이 효도로 생각하고 공부하는 자식을 상전으로 떠받들고 있습니다. 오직 성적에만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도덕교육, 인성교육, 인격과 예절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습니다. 모든 가치관을 공부하는 일, 성적에만 관심을 두지만, 더 큰 문제는 부모들이 자녀들의 공부를 과외선생이나 학원에 맡겨 둘 뿐, 그리고 따뜻한 애정과 보살핌이 없고, 성적이 올라가지 않는다고 윽박지르고 스트레스를 주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가정의 위기는 아버지와 어머니들에게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가정에서 그들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 가정의 가장(家長)으로서의 아버지는 권위를 가지고 가정을 유지해 나가는 기둥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오늘날의 아버지는 유약하기 그지없는 아버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권위와 '영'이 서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토록 아버지가 권위를 상실하고 아버지의 '영'(令), 즉 명령(命令)이 먹히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심한 경쟁사회 속에서 별보고 출근하고 별보며 퇴근하는 아버지들은 자식들과 대화 할 시간을 갖지 못하게 되고, 따라서 자식들로부터 소외되고 요즈음 말로 식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게 되고 가족속에서 '타인'(他人)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버지들은 가정에서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동시에 가장으로서의 권위와 설득력을 상실해 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동안 우리 가정을 지켜온 것은 '아버지의 권위'였는데, 우리 가정의 '버팀목'으로서의 아버지의 권위가 상실되면서 가정이 무너지는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어머니가 가정에서 자리를 지키지 못해서 가정에 위기가 왔다는 것은, 요즈음의 어머니들이 문 밖으로 나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요즈음 어머니들이 바깥으로 나돌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남편과 자식들만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며 희생하며 살아온 어머니들이 심한 허탈감과 박탈감에 빠져 바깥으로 돌며 방황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어머니들이 방황하고 바깥으로 돌게된 것은, 어느정도 사회적으로 출세한 남편은 직장에 매인 '이방인'(타인)이 되어 버리고, 온갖 정성을 쏟아 키워 놓은 자식들로부터 따돌림과 무시를 당하는 어머니들, 이토록 남편들과 자식들로부터 무시당하는 어머니와 아내들은 심한 소외감과 허탈감, 그리고 박탈감등으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같은 심리적, 정신적 공허감과 허기짐을 채우기 위한 몸부림이 바로 어머니와 아내들로 하여금 문 밖으로 나돌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정 밖에서 무엇을 찾아 마음의 공허와 허탈감과 박탈감에 보상을 받아 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같은 보상 심리는 쇼핑 중독증에 걸리는 과소비를 하게 되고 또한 퇴폐풍조에 쉽게 휩싸이게 됨으로 바깥으로 돌게 된다는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우리의 어머니들이 또한 가정을 잘 지켜온 기둥이었는데, 이 기둥이 또한 흔들리고 있으니 가정에 위기가 온 것이라고 합니다. 한국의 어머니(주부)는 남정네들이 허랑방탕하여 기울어져 가는 가정을 일으켜 세우고, 가정을 살려내는 '살림꾼'이었습니다. 남자들을 보고 '살림꾼'이라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주부들을 살림 잘하는 주부, 살림 잘 하는 아내, 살림 잘하는 며느리, 살림 잘하는 어머니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 가정을 버티어 온 두 기둥, 즉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두 '버팀목'이 허약하여 흔들리고, 문밖으로 나돌아 흔들리고 있으니 어찌 우리 가정이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이들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이 모양이니 우리의 자녀들이 어떻게 건강하게, 사람답게 자랄 수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오늘날 우리네의 가정의 위기는 버릇없고, 자기만 아는 이기적이 되어버린 자식들, 이 자식들을 제대로 훈육하여 키우지 못한 유약하기 그지없는 아버지와 바깥으로 도는 어머니들에게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우리의 자식들, 우리의 장래이며, 우리의 꿈과 미래가 되는 우리의 자녀들을 잘 교육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부모들이 자기들의 자리를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들은 아버지의 권위를 회복하고, 어머니들은 문밖으로 돌 것이 아니라 가정을 살리는 '살림꾼'의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자식들에게 초달을 할 수 있고 채찍을 들고 사랑의 매질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를 양육하고 훈련하는 '교회교육'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사람을 교육한다는 것은 사람을 사람답게 되도록 "훈련시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성도들을 교육시킨다는 것은 성도들을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양육하여 훈련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교회가 교인들을 훈련시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가는 제자의 삶을 살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교육적 사명입니다.
칼빈 선생님은 교회란, 교인들을 훈련시키는 훈련장이며, 교회의 '훈련'(Zucht, Discipline)은 교회의 질서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그의 책 기독교 강요 제 4권 12장에서 '교회의 훈련'(The Discipline of the Church)으로써 '징계'(혹은 권징)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교회의 훈련이란, "모든 사람들이 각기 제 멋대로 행동하게 내버려둔다면 어떠한 결과가 생길까 또한 교리를 전하기만 하고 개인적인 충고나 훈계를 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결과가 일어날 것인가 그러므로 징계는 그리스도의 교훈을 반대하여 날뛰는 사람들을 억제하고 길들이는 '굴래'와 같으며,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채 나태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박차를 가하고, 참혹하게 타락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영의 온유함으로 부드럽게 징벌하는 '아버지의 회초리'(매)와 같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교회는 교인들을 훈련하는 훈련장으로써 교인들을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녀답게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징계(훈육, 교육,훈련 등)를 하는일입니다. 이같은 징계는 곧 '여호와 하나님의 회초리'이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를 사랑하여 치는 '사랑의 매'라는 사실을 칼빈 선생님의 글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개혁교회의 창시자인 부처(Martin Bucer)와 요한 칼빈, 이 두분의 영향을 가장 크게 많이 받아 개혁교회 전통에 서서 복음주의적인 목회를 강조한 스위스의 실천신학자이며 위대한 목회자였던 투루나이젠(E. Thurneysen)은 그의 책 목회학원론(Die Lehre der Seelsorge) 제2장: '교회 훈련으로서의 목회'(Seelsorge als Kirchenzucht)에서 '교회훈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는 '목회'란 여호와 하나님은 개개인을 결단코 포기하지 않는 분이라는 믿음 안에서 각 개인들을 설교와 성례전, 즉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끌어주고, 교회의 한 지체가 되게하고, 교회 안에서의 삶을 보전시켜 주는 수단이다. 그러므로 교회 훈련으로서의 목회는 교회를 형성하고, 생존케하며, 개개인을 영적인 타락과 부패에서 건져내서 삶을 보전시켜주는 성화의 행위이다"라고 합니다.
이토록 장로교회(개혁교회)는 전통적으로 '교회훈련'(권징)을 강조한 교회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칼빈의 신앙과 신학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는 오늘날의 한국 장로교회가 권징의 부재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교회는 교회의 권위와 질서가 제대로 세워지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특히 최근의 한국교회는 교회성장주의로 인하여 온 교회가 교리를 '살찌게'하는 일에 몰두한 나머지 '한 영혼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말씀으로 양육하고 돌보며, 그리스도의 제자로 훈련시키는 일을 등한히 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또한 개신교회는 "오로지 믿음으로 구원함을 받는다"라는 '칭의'(Rechtfertigung, Justification by Faith)사상을 너무 '값싼 은혜(die billige Gnade)로 받아들인 나머지, 그 은혜에 응답하는 '성화'(Heiligung, Santification)의 삶을 사는데 소홀히 해 왔습니다. 본훼퍼 목사님은 '거룩하게 되는 것', 즉 성화(聖化)는 '칭의'를 '값비싼 은혜'(die teure Gnade)로 받아들이고 매일매일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복종의 삶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오로지 믿음으로 구원함을 받는다"라는 칭의 교리를 '값싼 은혜'로 해석하여 설교하는 과오를 범할 뿐만 아니라, 교회 성장의 방편으로서 세속적이고 물량주의적인 현세의 축복을 강조하는 기복적인 설교를 하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다. 여러분, 이같은 말씀 선포와 가르침은 교인들을 온전하게 훈련하는 매서운 '회초리'(매)의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회초리'(매)는 바로 아버지가 자식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타이르는 훈육을 위한 수단입니다. 또한, 서당에서 훈장이 든 회초리는 학동을 바르게 가르치기 위한 채찍이며 편달을 위한 회초리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의 훈련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을,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도록 징계(훈육, 훈련)하는 아버지(여호와 하나님)의 회초리이며, 이 회초리는 여호와 하나님 어버지께서 당신의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치는 '사랑의 매'입니다.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오월, 가정의 달, 우리들의 자녀들을 양육하고 훈련하는 일, 또한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인 교인들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고 훈련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여러분의 선교사역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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