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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후세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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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교육은 죽었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교육학(敎育學)은 있지만 교육은 없다는 말이지요. 교(敎)는 가르치는 것이고 육(育)은 길러지는 것인데 가르침은 많지만 육성은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늘날 교육이 돈이나 벌어들이는 기술자를 만드는 교육으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액 과외 문제가 심각한 수준까지 온 것 아닙니까
성도 여러분! 사회교육을 한 번 보십시오. 부실하기가 그지없습니다. 그렇다면 가정교육은 어떠합니까
역시 대다수가 실패의 현장이에요. 이혼, 개인주의, 물질 만능주의 등 가정이 무너지고 있으니 무슨 좋은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다는 아니겠지만 일부 부모들은 자녀들을 경마용 말처럼 무엇이든지 일등을 하는 것을 목표로 양육을 하다 보니 아이들의 행복과 꿈과 적성은 2차 적인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는 교(敎)는 있지만 육(育)은 없다고 한탄의 소리들을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1. 먼저 한국 교육의 현주소를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나라 행정부에서 제일 많이 바뀐 부서가 어느 곳이겠습니까 지금으로 말하면 부총리급 교육과학기술부입니다. 제가 역대 수장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1948, 8, 3~2008, 5월까지 무려 50대의 수장들이 지나갔고 심지어 사흘 만에 끝난 최고의 단명 장관(이기준)도 있었습니다.
지금의 51대 교육과학기술부 수장도 그 반응이 별로이네요. 일 년 남짓한 단명장관들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를 통솔하는 교육부 장관이 동네 통장보다 더 자주 바뀌는 일은 세계에 유래가 없는 일로서 우리나라 교육의 현주소가 이렇게 표류한다는 것을 대변해 주는 것이라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홈스쿨이 서서히 생겨나고 있는 것 아닐까요 그러고 보면 교육을 놓고는 가히 비관적인 마음까지 들기도 합니다. 좀 답답한 마음을 안고 어린이 주일 설교를 준비하면서 과거의 장관들 중 가장 제 마음에 와 닿았던 국민의 정부 한완상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의 21세기 한국 교육의 비전과 전략(한국 교육의 비전)을 다시 들춰 간략히 소개를 하겠습니다.
배우는 즐거움으로 활기가 넘치는 학교.
①입시위주 교육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실용적인 지식과 기술을 즐겁게 배우는 학교가 될 것이다.
②그 가운데 학생들은 자신의 소질과 적성을 살릴 수 있는 다양한 교육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③학생들이 각종 시험에 대비해 단순 지식을 암기하는 데 치중하기보다 독창적으로 사고하고 필요한 지식을 능동적으로 탐색하며 평생 동안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과 태도를 배우는 학교가 될 것이다.
가르치는 보람과 긍지가 충만한 교직 사회.
①교원들이 가르치는 보람과 긍지가 충만하여 활기차게 학생들을 교육할 수 있도록 될 것이다.
②교원 스스로 평생 학습의 실천자가 되어 자율적인 연수를 통해 지속적으로 전문성을 높여 나가고 더 효과적인 교수 학습 방법을 개발하여 이를 다른 교원과 공유 발전시킬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
③공정하고 합리적인 교원 인사를 통해 열심히 가르치고 끊임없이 학습하는 교원이 우대된다.
④교원이 존경받는 교직 사회가 구현되며 우수하고 능력 있는 교원이 임용될 것이다.
그 중에 좀 더 마음을 끄는 글이 있다면 그것은 교육인적자원부의 수장으로 취임 한 한완상 장로님의 교육 가족 여러분께 드리는 글(200
1. 03)입니다.
오늘도 교육 현장에서 2세 교육을 위해 애쓰시는 선생님 여러분! 학교는 교사들에게는 보람 있는 일터가 되어야 하고 학생들에게는 신나는 배움터가 되어야 합니다.
창조적 학습과 창의적인 놀이가 어깨동무하는 곳이 바로 학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개인도 발전하고 나라도 번영하고 민족도 평화롭게 서로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교육인적자원부 수장의 글처럼 만 된다면 얼마나 다행일 것이며 우리 자녀들의 미래가 얼마나 희망적이겠습니까 대단히 고무적입니다. 정말 입시지옥에서 벗어나 창의성과 인성교육을 개발하면서 즐겁게 뛰어 놀며 미래를 열어 가는 기수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우리의 현실에서 제대로 실천이 잘 안된다는데 문제가 있는 거에요. 그 교육부 수장도 역시 일 년 만에 바뀌었고 그 후에도 무려 일곱 명이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육에 대한 나름대로 한 가지 견해를 가진다면 그것은 성경에서 교육의 방법을 찾자는 것입니다. 즉 신앙 교육 말이죠. 인간의 심령을 파고드는 이 교육만이 참 교육이며 대안이라는 소신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2. 신앙 교육을 물려주지 못하면 비극이 옵니다.
10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오늘날 신앙 교육도 이제는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신앙 교육의 장점 속에 세속적인 방법을 너무 많이 도입하였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는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에게 또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인지를 놓고 상당한 고심을 하여야 하는 시점에 서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재산 교육 물질 신앙 등에 있어서 잘 판단하고 결정해서 물려주어야지 그렇지 못하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는 진리 앞에 인생의 쓰라린 낭패와 시련과 고난을 경험하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음 세대를 바라보며 양육하여야 할 우리의 책임은 무척이나 무겁게 느껴집니다.
만일 후세를 잘못 교육하고 다스렸을 때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을 사사기에 나타난 한 사건을 보면서 우리의 신앙교육 현실을 함께 진단하도록 합시다.
삿 02장은 역사의 전환기에 일어났던 비극을 우리에게 소개하는 내용으로서 10절을 보면 역사의 전환기에서 전혀 예기치 못한 중대한 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10절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의 인도하심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위대한 과제를 성취했던 한 세대가 가고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면서 문제가 발생하였음을 보여줍니다.
새로운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였다는 무서운 불신앙의 진단을 지금 받고 있으니 이는 한 나라가 파멸되는데 못지않게 큰 비극입니다.
후 세대에게 신앙을 물려주지 못했다는 것은 우리가 분명히 경계해야 할 중대한 위기가 아닙니까 신앙이 전수되지 못하고 신앙을 잃는다는 것 이것은 한 나라 정도가 아니라 영원한 기업과 영원한 나라를 상실하는 비극이 됨을 알아야 합니다.
10....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이 말씀 속에는 두 가지의 중요한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새로운 세대는,①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경험적 지식을 상실하기 시작했다는 것과 ②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영적인 무관심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탄식의 모습은 사사시대 초기의 대제사장 엘리의 아들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삼상 02:12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
그들의 아버지 엘리는 제사장으로 또 훌륭한 신앙인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헌신했던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그 아들들이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는 말은 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성전 안에서 살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메시지를 계속 들었으며 성전의 모든 종교 의식에 열심히 참여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는 것은 지식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한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신앙체험 즉 경험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고 있었다는 말로 이것이 새롭게 일어나는 한 세대의 비극이었습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세대를 향하여 이렇게 명하였습니다.
딤후 03:0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이것은 다음 세대를 양육하는 우리에게 주는 중대한 경고로서 우리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우리 뒤에 일어나는 새로운 세대는 영적인 무관심의 세대가 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은 영적 무관심의 세대들은 마땅히 불신앙의 시대를 만들어 가면서 일시적으로는 교회에 출석하겠지만 결국은 여호와 하나님의 품을 떠나 세상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외적 모양만 가지고는 그들의 심령 속에 진정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3. 이러한 비극은 어디로부터 왔습니까
본문을 유심히 읽어보신다면 06-10절 말씀에서 두 가지의 원인을 지적할 수가 있습니다.
① 첫째 현실 안주 의식.
이스라엘은 현실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이만하면 되었지 않는가 라는 현실 만족에 젖기 시작하였습니다. 더 이상의 모험과 더 이상의 희생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죠.
01장을 읽어보면 이스라엘이 여호수아가 죽은 후 베섹을 정복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데 그들은 전환기에 용감하게 전진하여 승리를 쟁취하였습니다.
이처럼 용맹하였던 이스라엘이 어느날 인가부터 전쟁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가나안 땅에 와서 이만큼 정복했으면 되었지 이제 더 이상 피를 흘릴 필요가 있겠는가 지금부터는 우리도 즐기며 살자 라는 생각을 품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의 희생과 더 이상의 노동과 더 이상의 땀 흘림과 더 이상의 모험을 거부하는 현실 안주 의식이 새로운 세대에게 배어들면서 이스라엘은 병들기 시작한 겁니다.
마침내 사사 시대가 비극을 맞게 되는데 비극의 서막은 언제나 현실 안주 의식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음 세대 즉 2세대들은 1세대들이 가지고 있던 도전과 기백을 상실하는 경우가 많아요. 마치 이민 1세대들이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문화에 부딪쳐서도 삶을 잘 가꾸어 나가는 반면 2세대들은 부모님들이 닦아 놓은 터에서 자기들의 삶을 즐기는 것과 같습니다.
이민 1세대들은 나름대로의 꿈을 일구기 위해 땀 흘리며 새로운 역사에 도전해 가지만 그러나 다음 세대에 이 기백과 비전과 새로운 삶에 대한 의욕이 전수되어지지 않음으로 2세대들은 서서히 무력감 속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즉 지금 이대로가 좋아 라는 현실 안주 속에 빠지게 될 그때부터 그들은 꿈이 없고 높은 이상도 없고 새로운 가치에 대한 도전도 없으며 그들에게는 가슴 설레게 하는 가치 있는 삶에 대한 흥분된 기대도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적당히 살다가 적당히 즐기고 죽으면 그만 이라는 현실 안주 의식이 2세대들의 문제 있는 생활 태도였습니다. 현실에 안주하려는 자세는 우리를 죽음으로 이끌어 가게 됩니다.
개구리 한 마리를 냄비에 넣고 서서히 열을 가하면 개구리는 아주 편안하게 기분 좋게 죽어갑니다. 그러니까 현실에 만족하는 개구리는 물이 뜨거워져서 자기가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밖으로 뛰쳐나와야 살 수 있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는 거죠.
성도 여러분! 편안한 환경은 우리의 신앙 의식을 마비시켜 꿈을 잃어버리게 할지도 모릅니다.
② 둘째 신앙 체험의 상실.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세대가 비극을 맞는 또 다른 원인은 신앙 체험이 없는 것입니다. 1세대의 신앙 경험이 07절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07 백성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일을 본 자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1세대는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하신 역사를 경험했고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우신 손길을 경험했습니다. 그들은 많은 역경과 고난과 시련을 통과하면서 이 시련 가운데서도 여호와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면 살 길이 없습니다. 라고 간구했습니다.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면서 역경 속에서 그들을 도우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과 손길을 체험했는데 이것이 1세대의 신앙 체험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새로운 세대는 여호와 하나님을 보는 눈,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를 점점 잃어버리게 되어 마침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보이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보는 것은 이제 현실밖에 없다보니 신앙의 실제성을 잃고 형식주의에 빠져들었습니다. 부모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체면을 지키기 위해 성전 출입은 열심히 했으나 그러나 신앙은 더 이상 그들의 삶에 능력을 주지 못하였고, 신앙은 그들에게 생명도 능력도 아니었으며, 또 신앙은 그들에게 가치가 되지도 못하였습니다.
신앙은 그들의 소망이 아니었으므로 신앙 체험의 상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세상과의 타협과 불순종의 범죄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현실 안주 의식에 빠져 신앙 체험을 상실한 2세대에게는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릅니다. 드디어 본문 02절 말씀에 여호와 하나님의 탄식 소리가 들립니다.
02 너희는 이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며 그들의 단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그리함은 어찜이뇨.
새로운 세대는 여호와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삶을 살은 결과로 그들의 인생은 비극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론으로 이러한 비극의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이 비극은 어떻게 치유될 수 있으며 어떻게 예방할 수 있겠습니까 다음 세대가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가고 의미 없는 삶에 만족하며 사는 비극을 맞지 않게 하려면 다음 네 가지 사항을 지켜야 합니다.
① 첫째 회개. 먼저1세대가 회개해야 합니다.
2세대의 회개가 아니라 부모 세대가 자녀들을 잘 가르치지 못한 것을 우선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며 최대 가치인 신앙을 적극적으로 다음 세대에게 가르쳐야 하는 의무를 다해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 우리의 실패를 여호와 하나님 앞에 자복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내가 교회에 나오니까 그것만으로 우리 자녀들은 잘 되겠지 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며 너무 안이한 태도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자녀를 위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으며, 얼마나 많은 기도를 하였으며, 얼마나 많은 정열을 쏟았습니까 자녀를 믿음으로 기르는 것은 부모의 책임입니다.
② 둘째 도전. 우리는 다음 세대가 세속 문화를 극복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정착하고 있는 당시 가나안의 문화는 우상의 문화, 쾌락의 문화, 불신앙의 문화였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후 세대를 둘러싸고 그들을 죄짓게 만들고 있는 병든 문화에서 그들이 담대하게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녀들이 병든 문화의 물결을 따라가지 않도록 돈보다 더 위대한 신앙을 가르쳐서 우리 자신이 돈에서 해방된 자유인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나아가서 우리의 자녀들이 삶의 진정한 가치, 진정한 의미, 진정한 목적,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숭고한 믿음을 추구하며 도전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③ 셋째 비전.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미래의 꿈과 장래의 소망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 40년 동안 수많은 시련과 어려움을 경험하면서도 지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대한 비전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오자 말자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가나안을 정복함으로 그렇게도 기다리든 꿈이 성취되어 좋아했습니다만 이내 더 이상의 높은 꿈이 없자 그만 주저앉자 버리고 말았습니다. 현실에 안주하면서 미래에 대한 꿈이 없으면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마련입니다.
④넷째 희생. 희생이 없이는 비전이 성취될 수 없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희생하지 않고 위대한 꿈을 이룬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희생의 가치를 가르쳐야 합니다. 안일하게 키우지 마십시오.
우리 자녀들은 그들이 맞닥뜨리는 환경에서 희생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 주변을 조금만 눈여겨보아도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한 이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굶주림과 고통 속에 살고 있는 세계 곳곳의 난민들을 보게 하십시오. 우리 자녀들의 삶이 너무 안일하다면 깨우쳐 주십시오.
그리하여 더 위대한 가치를 위해서 더 위대한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함을 인식하게 하십시오.
자기를 희생할 줄 모르면 우리 다음 세대는 사사 시대의 비극처럼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는 자리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자녀를 신앙으로 양육하여 비극적인 삶을 막아 주는 여호와 하나님의 신실한 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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