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

TOP
DOWN

[어린이] 내 아들아

본문

온 세계 인류 모두가 인정하는 한 옛 현인의 금언을 먼저 전합니다: “내가 만약 아덴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다면 이렇게 외치겠습니다: ‘친애하는 시민 여러분 어째서 여러분들은 재물을 모으기 위하여서는 수단과 방법을 아니 가리면서 여러분들의 자녀들에게는 그토록 무관심하십니까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때가 오기 전에 여러분들의 어린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과 물질을 쏟으시기 바랍니다. ’ ” 이런 유명한 말을 남긴 사람은 바로 쏘크라테스(주전 399년 4월 27일 사망)입니다. 그가 2400여 년 전에 한 말인데 오늘 우리들에게도 매우 적절한 말입니다.
그가 강조한 자녀들에 대한 관심은 자녀에 대한 깊은 사랑과 이해를 말합니다. 한 생명이 올바르게 자라날 수 있는 가정의 환경은 사랑의 관심입니다. 부모님들을 비롯한 집안 어른들의 깊은 사랑이 그 가정의 어린 생명들을 건전하고 튼튼한 인격으로 장성시킵니다. 만약에 한 가정이 참 사랑이 아닌, 동물적인 욕구나 이기적인 기반 위에 세워졌다면 그런 가정은 파괴되도록 운명지어져 있습니다. 가정의 구성원들이 사랑으로 묶여져서 하나가 되어 있는 분위기에서 자라난 어린 싹은 반드시 반듯하게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라난 자식은 부모를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사랑이 바로 효도입니다. 자녀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이해를 가지고 있는 부모님들은 자녀들의 효도를 받게되어 있습니다. 자녀들의 효도를 받지 못하는 어른들이 있다면 그 자녀들을 기를 때 진정한 사랑과 애정을 쏟았는가를 먼저 반성하여야 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형제와 자매의 관계 속에서 사랑으로 한 묶음이 된 가정은 영혼과 영혼이 부딛치고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삶이 있게 마련이고 그런 환경 속에서는 아름다운 인격이 형성되게 됩니다. 고로 소크라테스의 말과 같이 돈 모으기에 정신을 다 쏟지 말고 어린 자녀들에게 사랑의 관심을 먼저 쏟아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불행하게 살다가 나이 15살에 죽은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일생이 지상에서 왜 불행했는가를 알고 싶어서 지상에 잠시 다녀오고 싶어서 여호와 하나님께 청하여 자기의 옛 집으로 잠시만 보내주시되 가장 일상적인 삶의 한 복판에 태어나도록 부탁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허락했습니다.
그는 15세의 나이로 옛집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와서 보니 엄마는 자기를 본척 만척 지나가 버리더니 부엌으로 들어가서 열심히 부엌의 일만 합니다. 아버지 역시 자기에게 무관심한 채 손엔 도구들을 들고 마당을 가꾸는 일에 분주합니다. 이 젊은이는 이제사 깨달았습니다. 어째서 자기의 지상의 삶이 그토록 재미없고 불행했는가를! 자기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애정과 관심 없이 자기를 대함에서 자기의 삶이 불행하게되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옳습니다. 나의 가족 하나 하나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이는 아름다운 가정이 이룩될 수 없으며, 그런 가정에서 사는 가족들 모두는 불행한 삶을 맛보게 됩니다. 사랑만이 재미있고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냅니다.
자녀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할 때는 자녀가 어리면 어릴수록 좋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말과 같이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더 이상 손 쓸 수 없는 때가 오기 전에”란 말에 귀를 기울이셔야합니다. 마치 나무가 처음 자라기 시작할 때 제대로 잡아주지 않으면 커서는 조잡한 나무로 되는 것처럼 여러분들의 어린 자녀들이 어렸을 때 바로 잡아주고 조정해 주지 않으면 이 다음엔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집니다.
나무가 연할 때 똑바로 잡아주면 제대로 자라서 보기 좋은 헌칠한 나무가 되는 것처럼 여러분의 어린 자녀들을 어렸을 때 제대로 가르치고 제대로 인도하면 훌륭한 어른이 되지만 어렸을 때 바로 키워주지 못하면 볼 쌍 사나운 모습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종종 길을 가다가 꼬불꼬불하게 꼬인 나무를 볼 때에 볼 쌍 사납다고 느끼듯이 어렸을 때부터 잘 기르지 못한 자녀들이 커서는 사람들의 눈에 아주 꼴불견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자녀들을, 어린이들을, 소년 소녀들을 어릴 때 올바르게 성장하도록 돕지 않으면 커서는 보기 흉한 어른으로 자랍니다. 그때 후회한들 소용이 없습니다. 더 이상 어찌할 수 없게 되기 전에 여러분들의 관심과 물질을 자녀들에게 쏟으셔야 합니다.
어린이 교육에 관한 미국의 잡지에 실린 글들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 잡지에 기고한 분들이 미국의 저명한 교육학자, 정신병학자, 심리학자들이었는데 그들의 견해를 요약을 하면 대체로 한 어린이가 출생한 후에 첫 5년이 그 인생의 거의 전부를 형성하는 시기라는 결론이었습니다. 한 심리학자는 “인간의 행동은 다섯 살까지에서 규정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한 교육학자는 “애기의 첫 1년간이 제일 많이 자라는 시기다”라고 썼습니다. 한 저자는 “시민들을 요람에서 훈련하라”고 경고하였습니다.
“학교종이 울릴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고도 말하였습니다. 한 심리학자는 “5살은 심리적으로 늙었다”라고 까지 말합니다. 이들은 이구 동성으로 인간의 사회가 아름답고 평화로운 동네가 되려면 범죄율이 낮아져야 하는데 바로 그 “범죄를 애기 때 퇴치해야 한다” 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귀담아들어야 할 아주 중요한 어릴 때의 교육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카고대학의 교육학 교수 벤자민 불룸 교수는 “4살까지는 그가 성숙 때까지의 지능의 반이 형성된다”라고결론을 맺을 정도였습니다. 이상의 이야기들은 어린이들을 상대로 오랜 동안 연구한 전문가들의 말로서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쓴 것입니다. 부모들의 어린 자녀들에 대한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우쳐주는 말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체로 어른들은 어린이들을 무시합니다. 꼬마가 뭘 알겠는가고 무시 하지만 어린이들은 지능에서나 영적 수준에서 매우 높은 수준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어릴수록 마음과 생각이 깨끗하기에 어른들의 영향을 무섭게 받습니다.
가장 어린 나이의 생각과 마음과 영혼은 하이얀 백지와 같아서 엄마 아빠의 말과 표정과 행동 하나 하나가 그대로 그 백지 위에 그려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엄마의 태에서 떨어지는 순간부터, 엄마의 젖을 빨면서 이미 백지 위에는 글들이 씨여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어릴수록 마음은 더 깨끗하기에 밖으로부터의 영향이 그 어린 마음과 생각에 각인되고 색인이 됩니다. 우리가 어린이들의 표정을 보지 못하고 그 마음을 읽지를 못해서 모를 뿐입니다. 그들의 인격과 지능과 마음 바탕이 이 땅에 태어나자 마자 계속하여 형성디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밭에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듯이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무엇을 심느냐에 따라서 그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특히 영적인 면에서 어린이들을 깊이 관심 하여야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어린이의 영적 성장의 상태에 대한 연구나 통계가 없어서 아쉬운데, 서구에서는 어린 나이에 중생하는 경우들이 알려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독일의 개신교 선교운동과 영성 운동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진젠돌프는 4살 때 중생을 체험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구세주 예수님! 주님은 나의 것이고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라는 고백서에 4살 때 서명을 했습니다. 3세기의 위대한 교회의 교부 폴리갑 감독은 7세에 중생을 했고 성경의 대주석가 매튜 헨리는 11세 때에 중생을 체험했습니다.
호라시우스 보나르 박사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중생을 체험한자 253명중 절반이 넘는 138명이 20세 이하에서 중생하여 구원을 얻었다고 고백했습니다. 21세-30세 사이에서는 85명, 31세-40세 사이에서는 22명, 41세-50명까지에는 4명, 51세-60까지에는 3명으로 급격히 줄다가 61세-70세 사이에 단 1명뿐이었고 70세 이상은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 통계가 말하고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받아드려지는 기회가 어릴수록 많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나이가 많아질수록 구원의 기회가 점점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스펜서 박사의 통계도 비슷합니다. 1000명중 20세 전에 구원받아 예수님의 품에 안겼다는 사람들이 548명인데 비하여 20대에 와서는 337명으로 적어졌고, 30대에 와서는 96명을 확 줄었고 40대에서는 단지 15명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리고 50대에서는 단 3명이 구원의 은총을 누렸고 60대에서는 단 1명만이 예수님의 영접을 받았다고 고백했습니다. 그 이후 70 대부터는 단 한 사람도 구원의 반열에 들어 온 사람들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상의 통계가 확실히 증명하는 대로 한 생명을 구원시키는 일에 있어서 나이가 어릴수록 효과적이라는 것입니다.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마음이 굳어져서 예수님을 영접할 수 없도록 된다는 것입니다. 쏘크라테스는 인격과 성격의 형성에 있어서 더 이상 손 쓸 수가 없는 때가 오기 전에 투자하라고 했는데 영적인 면에서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실로 우리 어른들이 가정에서나 교회에서 크게 관심을 가지고 투자하여야 할 대상이 어린이들이요 소년 소녀들임을 깊이 명심하여야 합니다.
한 인간의 삶의 질을 결정짓는 세 가지 요소들, 즉 가정, 학교 그리고 교회를 통하여 배운 것, 얻은 것, 익힌 것이 한 인간의 삶의 내용을 결정짓습니다. 이 셋 중에서도 가장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 가정입니다. 그리고 학교가 너무나 세속화되어서 신앙심을 심어주지 못하는 오늘의 현실에서는 교회의 종교교육이 더 말할 필요 없이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교육관을 그토록 원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이 제법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란 점점 더 세속화되어 갑니다. 비록 기독교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일지라도 거기에서 큰 기독교적 감화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상급학교 진학에만 열을 올리다보니 기독교적 삶의 모습을 배워주는데는 정책상, 시간상 인색해 질 수 밖에 없겠지요.
그런데 교회는 주일에만 한 두시간의 짧은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데 그것 가지고는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에게 그리스도적인 삶의 모습을 전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시설 마져 부족한 경우에는 교회 교육은 힘을 쓰지 못합니다. 우리 교회가 좀 늦은 감이 있지만 교육관을 아름답게 짓게 되어 정말 다행입니다. 사회봉사활동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건물에서 어린이들에게 예수님의 말씀과 삶을 배워주는 일을 하는 일입니다. 주일날 몇 시간만이라도 어린이들에게 영구한 감화를 주는 교육을 우리 모두 관심을 갖고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린이들을 품에 안아주셨듯이 우리 어른들이 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기도해주고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어린이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부탁합니다. 교육관을 어린이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소년 소녀들은 많은 고민을 안고 있습니다. 무서운 경쟁 사회 속에서 엄청난 소외감을 느낍니다. 사회는 이들을 내팽개친 지 오래되었습니다. 가정이 잘 돌보아야 합니다. 오늘 잠언의 말씀에서 보듯이 르무엘왕이 어릴 때 그 어머니가 그를 잘 가르쳤듯이 여러분 가정에서 자녀들을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교회학교는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구주 예수님을 배워주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을 마음에 담는다면 최고의 선물을 주는 일이 됩니다. 어떤 신사 한 분이 주일날 교회에 가던 중에 길거리에서 장난치며 놀고있던 어린아이들 4명을 교회로 데려가서 성경 반을 조직하여 그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이 4명의 어린이들이 모두 믿음 있는 어른들로 자랐습니다.
1932년 이제 나이가 많아 머리가 하얗게 쇈 이 노인 교사의 은퇴 겸 생일 축하 잔치에 네 통의 축하메시지가 전달이 되었습니다. 성경말씀을 가르쳐주신 선생님께 감사의 글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한 통은 중국선교사에게서, 또 한 통은 연방은행 총재에게서, 그리고 후버 대통령의 비서실장에게서, 나머지 한 통은 후버대통령에게서 온 편지였습니다. 아이오아주의 작은 농촌 위스트 브로우치의 이름 없는 한 작은 교회에서 시작된 주일학교의 성경공부가 미국의 위대한 지도자들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가정과 교회에서 아들과 딸들, 어린이들을 위하여 최우선의 관심을 가지기 바랍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