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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예수님의 어린이관

본문

오늘은 교회 절기에 따라 어린이주일로 드려집니다. 오늘 본문을 가지고 ‘예수님의 어린이관’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려 합니다. 본문을 근거로 두 가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어린이관을 통해서 배우는 성경적인 자녀교육법, 둘째는 예수님의 어린이관을 통하여 배우는 제자도, 즉 ‘예수님의 제자된 자로서의 나의 믿음은 어때야 하는가’ 입니다.
1. 뉴질랜드는 여자와 어린이를 보호하는 선진국
뉴질랜드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대표적인 선진국 중의 하나입니다. 소득수준이 높은 것도 그 이유이겠지만, 소득수준만큼이나 문화나 국민의식 수준이 참으로 높습니다. 또한 특별히 뉴질랜드에서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여권, 즉 ‘여성의 권리’가 보호되는 나라입니다. 여성의 권리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인정되어지고 보호되는 나라가 뉴질랜드입니다.
그 이유에는 역사적인 이유와 문화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거의 모든 선진국을 살펴보면, 특별히 여권이 보호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직 선진국이라고 말하기엔 부족한 면이 많이 있지만, 한국도 여권에 관해서는 이제는 많은 부분이 변한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남녀차별이 있었지만 한국의 여권도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이 신장되었다는 것을 여러분도 인정할 것입니다.
뉴질랜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우스갯소리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뉴질랜드에는 차별이 있는데, 먼저는 어린이를 보호하고, 그 다음은 여자, 그 다음은 노인, 그리고 그 다음은 남자가 아니라, 애완견을 포함한 동식물을 보호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호하는 대상은 위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에 여러분은 동의하십니까
뉴질랜드는 여권뿐만 아니라, 어린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참으로 많은 나라입니다. 뉴질랜드에 어린 아이를 데리고 처음 유학을 오시거나 이민을 오신 분들 중에서, 한국과 다른 아동법 때문에 당황한 경우가 있으실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일정나이까지는 집에 아이를 혼자 두지 못한다거나 보호자 없이 혼자 길을 걷게 하거나, 외부에 혼자 놔두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얼마 전에는 자녀체벌금지법도 제정되었습니다. 이 법은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많기는 하나, 분명한 것은 뉴질랜드에서는 어린아이를 우선시하고 보호하려 노력한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2. 어린이라는 말의 유래
그렇다면,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요 혹시 여러분 중에 ‘어린이’라는 말이 언제 처음으로 한국에서 사용되었는지 아는 분이 계십니까 어린이라는 말은 1921년 소파 방정환 선생님에 의해서 처음 사용되었고 그 후로 보급되어 지금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린이라는 말을 쓰기 전까지는 과연 어린이를 어떻게 불렀을까요 보통 세 가지로 정리할 수가 있는데, 첫째, 이 놈, 둘째, 어린 것, 셋째는 애새끼입니다.
어린이라는 말이 쓰이기 전까지는 이런 말들을 자연스럽게 사용했습니다. 1921년부터 현재까지는 90년이 채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전까지는 어린이의 권익이나 복지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많은 어린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였고 심한 노동에 시달리는 어린이들이 많았습니다.
실로 어린이들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의식이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런데 방정환 선생님을 통하여 어린이들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1922년에 처음 어린이날이 정해져서 매년 지켜지다가, 1937년에 일제의 억압으로 중단되었습니다. 그 후 해방이후에, 1946년에 5월 5일로 어린이날을 다시 정해서 지키시 시작했습니다.
1957년에는 어린이헌장이 발표가 되었고, 1970년에 공휴일로 제정되어 지금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예수님은 지금으로부터 2000년의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라고 생각됩니다. 예수님은 이미 2000년 전부터 어린이를 대하는 시각이 다르셨습니다. 유대사회도 예전의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게 어린아이들을 무시하고 천하게 여기는 성향이 강했습니다.
2000년 전이었으니,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을까요 특별히 유대사회에서 어린이들이 천시받았던 이유는 어린이들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 공적을 쌓을 수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예수님께서 어린이들의 소중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 보면, 오늘의 본문에도 어린이라는 말들이 많이 나옵니다. 13절부터 16절까지 매 절마다 어린 아이라는 말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왔습니다. 특별히 예수께서 아이들을 축복하며 기도해주실 것을 기대하며 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아이를 데리고 온 그 부모와 아이들을 꾸짖으며 예수께 다가가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화를 내십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화를 내신 적이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자들에게 화를 내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들을 무시하고 괄시하는 것을 참지 못하십니다. 화를 내십니다.
여러분들은 어린이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자들과 같은 생각을 하십니까 아니면 예수님처럼 어린아이들 존귀하게 여기십니까 예수님은 어린이들을 사랑하셨습니다. 특별히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보셨습니다. 많은 신학자들은 본문을 연구하면서, 어린이들의 장점을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나누고 있습니다.
 첫째는 겸손함 혹은 의존성, 둘째는 신뢰성, 셋째는 단순성입니다. 이 세 가지는 장점은 모두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성격의 것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를 대할 때, 이러한 점들을 보시고 어린이를 귀하게 여기시며 축복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막는 제자들에게 ‘순전함과 신뢰함을 가지고 다가오는 어린 아이들을 왜 가로 막느냐’라고 호통을 치시며 제자들을 꾸짖으신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어린이관을 통해서 배우는 자녀교육법
그렇다면 이러한 시대를 앞서갔던 예수님의 어린이관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성경적인 자녀교육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그것을 말씀드리기 전에, 다른 한 가지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제목은 ‘아이를 문제아로 키우는 열두 가지 방법’입니다. 이는 먼저는 미국 텍사스주 경찰국에서 발표된 것인데, 교육 및 상담심리 전문가인 박경애 교수가 지은 ‘지혜로운 부모가 행복한 아이를 만든다’ 라는 책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잘 들어보십시오.
제목: 아이를 문제아로 키우는 열두 가지 방법
1. 아기 때부터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들어주라. 그러면 자라서 세상은 자기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게 된다.
2. 나쁜 단어를 배워 쓰기 시작하면 고쳐주는 대신에 웃어주라. 그러면 자기가 귀엽게 군다고 생각한다. 더 ‘귀엽다’고 생각할 단어들을 배워올 것이고, 후에는 감당할 수 없는 단어들을 쓸 것이다.
3. 영적인 교육은 전혀 하지 말라. 스물 한 살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신앙은 자기가 스스로 결정하게 하라.
4. ‘안돼!’ 라는 말은 절대로 쓰지 말라. 죄에 대하여 깨닫지 못하고 이다음에 자동차를 훔치다가 잡히면 사회가 자기를 못살게 군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5. 무엇이든지 어질러 놓은 것은 따라다니면서 치워주라. 귀한 자식이라고 무엇이든지 다해줘라. 그러면 모든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자식으로 크게 될 것이다.
6. 아무 책이나 상관없이 읽게 하라. 그릇이나 수저는 잘 씻어서 사용해도 마음속에 집어넣는 것은 어떤 쓰레기라도 상관하지 마라.
7. 아이들 앞에서 자주 싸워라. 그러면 후에 가정이 파괴되어도 별로 놀라지 않을 것이다.
8. 용돈을 달라는 대로 줘라. 노력해서 버는 것을 가르치지 말라. 부모는 힘들게 돈을 벌어야 하지만 아이들은 절대로 부모처럼 고생시키지 말라.
9. 먹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먹여라. 먹고 싶은 것을 다 먹이지 않으면 아이가 불만에 찬 아이로 이상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라.
10. 언제나 아이의 편을 들라. 상대가 이웃이든 선생님이든 경찰관이든지를 막론하고 우리아이를 괴롭히려 한다고 생각하라.
11. 아이가 큰 문제를 일으키면 ‘저 애는 원래 저 모양이어서 어쩔 수 없었어’라고 말하면서 한탄만 하라.
12. 한스러운 인생을 살려고 준비하라. 아마 꼭 그렇게 될 것이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혹시 해당되는 부분이 있지는 않으신지요 혹시 졸다가 깨셔서 이 부분만 들으시고 자녀에게 이와 같이 실천하시는 분이 없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키우면 절대 안됩니다.
이제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예수님의 어린이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를 대하신 태도를 통하여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성경적인 자녀 교육법은 무엇인지 간단하게 몇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인정해주자.
자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자녀의 존재와 인격을 인정하고 자녀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를 다른 집 아이들과 비교하십니다. 비교는 자녀를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자녀를 인정한다는 것은 자녀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만약에 자녀가 단점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나무라고 다그치며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품고 보듬어주고 아껴주는 것, 그것이 자녀를 인정하는 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너는 누구를 닮아서 그 모양이니’라는 말씀을 사용하십니까 제가 질문하겠습니다. “누구를 닮아서 그렇습니까” 부모님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자녀가 과연 자기친구들에게, 학교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부모님께서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며 품고 사랑할 때, 그 자녀는 자존감을 갖고 자라나게 됩니다. 부족한 점은 보완될 것이고 오히려 약점이 강점으로 변해서 귀하게 쓰임 받을 것입니다.
 둘째, 안아주자.
안아주는 것은 자녀의 감성을 따뜻하게 만듭니다. 부모의 스킨십을 통하여 부모의 숨결을 느끼며 자란 자녀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됩니다. 아동학적으로 볼 때, 영아기, 유아기 때 부모와의 스킨십이 적은 아이들이 커서 애정결핍이라는 심리장애를 많이 겪습니다. 애정결핍은 쉽게 간과할 수 없는 심리적 장애입니다. 그로 인해 받는 피해는 평생을 갈 수도 있습니다. 자녀를 얼마나 안아주십니까 쑥스럽다고 피하지 마시고 많이 안아주시고 등도 두드려 주시고 격려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자녀는 부모로부터 행복감을 느끼며 건강한 자아로 성장할 것입니다.
 셋째, 가르치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돈이 많아야 한다. 공부만 잘하면 된다’ 라는 세상의 가치를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먼저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주셔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예배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임을 가르쳐야 합니다. 실패를 경험하고 낙심한 자녀에게 믿음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 실패하기 전보다 더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인물들을 통하여 가르쳐야 합니다. 요셉, 다니엘, 다윗과 같이 여호와 하나님께 쓰임 받은 인물들에 대하여 가르쳐야 합니다. 누군가로부터 배신당하고 외면당한 자녀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널 향하고 있다고 가르쳐야 합니다.
넷째, 축복하자.
사랑하는 성도님들, 자녀들에게 따뜻한 축복의 말을 전하십시오. 할 수 있는 한 많이 전하십시오. 밥 먹을 때도, 등교하는 자녀에게도, 잠자리에 드는 자녀에게도, 축복의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어릴 때, 저희 어머님께 많이 들었던 말이었지만,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를 양육하다가 감정적으로 제어가 안될 때 하시는 몇 가지 말씀들이 있습니다. ‘
너 도대체 커서 뭐가 될래 학교는 왜 다녀 심하면 나가 죽어, 꼴도 보기 싫어. ’ 자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고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는 일들을 했을 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본인의 감정이 제어가 안될 때, 그 때 나오는 말들은 자녀의 영혼에 상처를 주고 멍들게 하는 저주의 말들입니다. 낙심케 하는 말들입니다. 그 말이 자녀를 돌이킬 수 없는 수렁으로 빠뜨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평소에 축복의 말들을 많이 해주십시오. 부모에게 축복을 받으며 자란 자녀가 다른 사람을 축복할 수 있습니다. 축복을 받으며 자란 자녀가 넘어진 다른 이를 일으켜 세울 수 있습니다. 다른 이를 격려하고 힘을 줄 수 있습니다. 나보다 못한 이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진정한 리더로 성장하게 됩니다. 자녀를 향한 부정적인 말들과 무조건적인 나무람들은 오늘 이 시간 이후로 다시는 하지 않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섯째, 기도하자
예수님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성경적인 자녀교육법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자녀를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학교교육, 학원교육만 믿지 마시고, 돈을 주었고, 원하는 것을 사주었다고 안심하지 마시고, 방심하지 마시고 자녀를 위해 기도하셔야 합니다. 한 가지 실천사항을 제시하겠습니다. 자녀들이 잠들기 전에, 혹은 자고 있어도 괜찮습니다.
하루에 한 번씩 자녀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머리에 손을 얹고 주님, 이 아들을, 이 딸을, 주님 손에 맡겨 드립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자녀가 되게 하소서, 지혜로운 자녀가 되게 하소서, 주님의 목적을 이루는 자녀가 되게 하시고, 세상을 품고 여호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며 삶으로 영광 올려 드리는 자녀가 되게 하소서 축복하시며 여호와 하나님께 자녀의 인성을 맡기고, 장래를 맡기고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녀를 향한 부모의 기도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특별히 눈물로 기도하는 부모님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시인 도로시 로 놀트(Dorothy Law Nolte)의 사는 것을 배우는 아이들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한 번 들어보시죠.
제목: 사는 것을 배우는 아이들
어린이들은 사는 것을 배운다.
만약 어린이가 나무람 속에서 자라면, 비난을 배운다.
만약 어린이가 적개심 속에서 자라면, 싸우는 것을 배운다.
만약 어린이가 비웃음 속에서 자라면, 부끄러움을 배운다.
만약 어린이가 수치 속에서 자라면, 죄의식을 배운다.
만약 어린이가 관대 속에서 자라면, 신뢰를 배운다.
만약 어린이가 격려 속에서 자라면, 고마움을 배운다.
만약 어린이가 공평함 속에서 자라면, 정의를 배운다.
만약 어린이가 보호 속에서 자라면, 믿음을 배운다.
만약 어린이가 인정 속에서 자라면, 자기 자신을 좋아하는 것을 배운다.
만약 어린이가 받아들임과 우정 속에서 자라면, 세상에서 사랑을 배운다.
자신의 부모를 통해 배운 것들을 몇 년이 지난 후에 바꾸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들은 영혼의 상처로 각인되어 남아 있게 되고 쓴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 상처는 분명 주님의 능력과 은혜로 치유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수많은 노력과 끊임없는 기도가 수반되어질 때만 가능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녀를 여러분들에게 맡겨주시되, 청지기로 맡겨주셨습니다. 엄밀히 말씀드려서, 자녀는 여러분의 소유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자녀는 결코 내 소유가 아닌, 여호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인격적인 존재입니다. 부모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청지기입니다. 예수님과 같이 자녀를 인정해주고, 안아주고, 가르치고, 축복하며 무엇보다 자녀를 위해 기도하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부모님들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4. 예수님의 어린이관을 통하여 알 수 있는 제자도
두 번째로, 예수님의 어린이관을 통하여서 제자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을 믿어야 할까요 이미 말씀드렸지만, 예수님께서는 어린이의 겸손함, 의존성, 그리고 신뢰성과 단순함을 좋아하셨습니다. 그래서 15절 말씀처럼, 어린이들과 같을 때에만, 비로소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겸손의 반대가 무엇입니까 교만입니다. 교만한 자는 자기자신을 믿을 뿐이지만 겸손한 자는 여호와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합니다. 나의 능력으로 안된다는 것을 알고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가 겸손한 자입니다. 어린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압니다. 자신이 연약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쉽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기뻐하십니다. 겸손한 자만이 여호와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하여서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하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는 것이 어려운 분들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께 이렇게 정직하게 고백하십시오. “주여, 기도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도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아이와 같은 모습으로 다가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그분의 소중한 자녀임을 알기를 원하고, 우리가 온전히 그분을 믿고 의지하길 바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손을 잡고 그분께 기대어 계속해서 도움을 청하길 원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준비하고 기다리십니다. 어린아이들과 같이 겸손한 마음으로 범사에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어린이들은 너무 잘 믿습니다. 믿어도 너무 잘 믿습니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거짓말조차도 사실이라고 말하면 쉽게 믿어버리는 것이 어린이들입니다. 그래서 낯선 사람들에게 유괴도 당하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터무니없는 것이라도 쉽게 믿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아이들이 잘 속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잘 속는 것이 아니라 의심하지 않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잘 믿지 않습니다. 의심을 잘 합니다. 세상을 살면서 겪은 상처가 많을 것입니다. 누군가를 믿었는데, 배신당하거나 손해를 보게 되었을 때,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사람을 믿기보다는 의심하는 일을 더 쉽게 합니다. 물론, 사람은 믿을 존재가 아니고 사랑할 존재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믿을 이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뿐이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항상 의심할 존재로 여겨서는 안됩니다. 여하튼 어른들에게는 그토록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로 인한 큰 문제가 야기되는데, 매사에 쉽게 믿지 못하는 태도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길 때도 반영된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잘 믿어야 하는데, 믿고 싶어도, 잘 되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을 의심합니다. 의심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절망하게 만듭니다. 회의적인 말과 부정적인 말들을 늘어놓게 합니다.
우리는 종종 기도를 하면서도 의심을 합니다. ‘과연 내 기도를 들어주실까’ 또한 가끔 뜻하지 않은 어려운 일을 당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정말 선하신 분이신가 과연 여호와 하나님이 살아계시긴 하신건가’ 라는 커다란 의심까지 하기도 합니다. 의심이야말로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사단의 속임수입니다. 상담치유전문가인 조이스 마이어 목사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믿지 않는 것보다 훨씬 더 간단한 일이다. ’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을 의심하는 자가 아니라, 어린아이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어린아이의 신뢰성을 나에게도 허락해달라고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여호와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의심을 내려놓고 신실하신 주님을 신뢰합시다.
또한 어린아이들은 참으로 단순합니다. 당장 손에 주어주는 그것에만 집중합니다. 다른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 어떠한 일로 혼이 나게 되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잘못했다고 싹싹 빕니다. 정말 다시는 그 일을 하지 않을 것 같이 웁니다. 그리고 돌아서면, 다시 똑같은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지극히 단순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함의 반대는 복잡함입니다. 여러분들은 단순하십니까 복잡하십니까 구원은 어떻게 받습니까 구원받는 길이 복잡한가요 단순한가요 어려운가요 쉬운가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행 16:31) 복음은 놀라운 정도로 단순합니다. 주님께서 믿으라 할 때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모든 것을 복잡하게만 만듭니다. 사단은 믿음이 가져다주는 기쁨과 능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단순함을 싫어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기도하라 할 때 기도하면 응답을 받습니다. 기적을 경험합니다. 순종하라 할 때 순종하면 축복을 받습니다. 섬기라 할 때 섬기면, 자신도 그와 같이 섬김을 받는 인생이 됩니다. 낮아지라 할 때 낮아지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높여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라 할 때 그대로 행하는 자는 말씀의 생명력과 활력을 삶의 현장에서 경험하게 됩니다.
단순하게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우리에겐 어찌 그리 어려운 일인지요 쉽지 않고 잘 되어지지 않는 일이기는 하나, 여호와 하나님을 믿을 때에, 이것저것 따지고 재보지 않고, 어린아이와 같이 단순하게 믿는 믿음이 우리 모두에게도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단순한 믿음, 그 믿음이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얻을 수 있고 이 세상에서도 날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할 수 있는 강력한 믿음입니다.
5.결론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자녀를 맡겨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금의 자녀들을 여러분에게 맡겨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호와 하나님을 대신하는 청지기입니다. 그 자녀는 나의 생각과 가치관으로 키워서는 결코 바르게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방법을 온전히 따르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양육해야만 합니다.
어린이들의 겸손함과 의존성, 신뢰성과 단순성을 귀하게 여기셨던 주님, 그리고 그 어린아이들을 환영하시며 축복하셨던 주님께서, 오늘 어린이 주일에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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