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어린이의 가치(價値)
본문
세계적인 경영의 귀재이며 천재라는 평판을 받는 잭 웰치(Jack Welch)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미국의 GE(The General Electric Company) 회장이었는데 GE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든 위인입니다. 그는 경영신념의 아름다운 것을 배운 것은 어머니였다고 말했습니다. 특별히 그가 경영하면서 여러 번 난관에 봉착했을 때, 그 난관을 해결할 수 있었던 자신감을 바로 그의 어머니가 심어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학교에서 성적표를 어머니에게 들고 오면 가끔 가다가 A가 있고 그 다음에는 B,C,D가 있습니다. 어머니는 B,C,D는 말을 안하고, A를 지적하면서 “A받았구나 A가 있는 것을 보니까 모두다 A를 받을 수 있는 실력이 있는거야. 네가 관심을 안 기울여서 그렇지 너는 A를 받을 수 있는 실력이 있는거야” 그렇게 웰치를 우쭐하게 만들고 담대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또한 잭 웰치는 어릴 때부터 말을 더듬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늘 왕따였습니다. 말을 더듬어서 학교에서 놀림 당할 때마다 어머니는 웰치를 안으면서 “아니다. 애들이 몰라서 그렇다. 너는 머리 회전이 너무 빠르기 때문에 머리 회전에 혀가 미쳐 따라가지 못해서 더듬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웰치는 말더듬의 장애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세계적인 기업가가 되었고 오늘날 전설적인 사업가로 온 세계로부터 추앙받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어머니가 사랑과 인내로 교육한 결과 세계적인 경영가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린 아이를 기를 때 결단코 부정적인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어린 아이에게 긍정적으로 말해야 되고 부정적으로 말하지 말아야 됩니다.
본문 말씀
방금 읽어 드린 3-4절의 말씀은 어린이의 가치를 말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시 127:3-5)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어떤 전도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의 몸의 가치는 이 달러 오 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의 몸은 칠팔십 퍼센트가 물인데 물은 가장 싼 것이다. 내가 푸저우에 있을 때 물 한 짐은 세 푼밖에 되지 않았다. 또한 사람의 몸에 철이 있는데 철 역시 대단히 값싼 것으로 푸저우에서는 쇠못 한 냥에 두 푼이 못 되었다. 또 석회가 있는데 석회 역시 한 짐에 사백여 원에 불과했다. …몸 전체를 나눠 놓고 총계를 내면 이 달러 오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나는 이것도 겸손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오늘 죽어서, 내가 백 달러를 당신에게 주고 내 시체를 가져가 달라고 한다면, 당신은 원치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코를 막고 지나갈 것이다!
화학가가 인체를 분석한 결과, 인체의 지방으로는 여섯 조각의 비누를 만들 수 있고, 인으로는 성냥 이백이십 개피를 만들 수 있고, 모든 석회질로는 닭장 하나를 소독할 수 있고, 철로는 못 하나를 만들 수 있으며, 그 밖에는 소금 한 줌, 설탕 한 컵과 화약을 만들어서 총으로 한 번 쏠 수 있는 약간의 질소 가스가 있고, 나머지는 모두가 수분이라는 것이다.
어린아이는 두 말할 것도 없이 더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어린아이의 가치를 물질적으로 가치를 논하지 않고 신령적인 차원에서 가치를 논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어린아이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말썽꾸러기가 되고 기르기가 힘들다고 하여 아예 낳지 않는 사람도 있고 행여 출산한다 하더라도 내다 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니면 고아원이나 아니면 남의 집 대문간에 유기하는 경우가 있음을 봅니다. 이 같은 행위는 모두가 어린아이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데서 온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자식 상팔자’라고 말합니다. 십대가 되면 제일 인생에 말썽꾸러기가 됩니다. 내다 버릴 수도 없고 그러하고 하여 너는 내 자식이 아니라고 할수도 없는 것이 부모의 입장입니다. 그럼으로 자식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양육하는 부모는 그리 흔치 않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자녀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하며 어린이 주일을 지키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자식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3절에 보면 자식은 여호와께서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라 하였습니다.
1) 자식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셨다는 의미에서 축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식은 갖고 싶으면 갖고 가지고, 싶지 않으면 안가지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태문을 열고 닫는이가 인간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자식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좋으신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면 좋은 선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나쁜 여호와 하나님이라면 그가 주신 것이라면 나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주셨다면 그가 주신 선물은 진정으로 선한 선물일 것입니다.
우리는 권위주의 시대에 청와대(靑瓦)의 아는 사람들이 있다든지, 목사들이 국가 조찬 기도회에 참석하게 되면 시계 하나 선물을 받으면 대단한 것으로 알고 자랑도하고 자신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처럼 야단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이처럼 높은 양반이 주는 선물도 귀하게 여길 줄 알거든, 하물며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면 얼마나 기하게 여겨야 할 것인가를 보여준 말씀입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어린아이가 없어서 얼마나 안달을 하고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하였는가를 우리들은 잘 압니다. 이런 면에서 자식을 귀하게 여길줄 아는 부모들이 되어야 한다.
유대인을 보십시오. 세계 곳곳 각 분야에서 유대인은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지 않았습니까 노벨상 수상자의 26%가 유대인들입니다. 특히 노벨 과학상 수상자의 60%가 유대인입니다. 전 세계 3000여 대학의 교수가 유대인이며, 25%의 유대인들이 총장입니다. 미국에서 큰 빌딩과 은행, 대형 백화점의 주인 90%가 유대인의 것입니다.
세계의 곡물시장, 무기시장, 헐리우드 영화계까지 유대인들이 주름잡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1300만명의 불과한 유대인이 어떻게 그런 큰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백성이 되고 싶어 되는 것이 아님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같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은 망하는 것 같지만 망하는 자리에서도 일어나는 일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가 십자가에 죽었습니다.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금 일으켜 세우는 기적을 행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면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둘도 없는 자녀가 되기 때문에 일으켜 세우신 것입니다.
반면에 미국 하버드 연구팀의 조사에 의하면 청소년 범죄자 80%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이 없었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배우지 않고 자란 아이들이 범죄의 80%를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가르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⑴ 자식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다.
자식은 귀찮은 존재가 아닙니다. 말썽꾸러기가 되어 필요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라는 것이다.
성경에는 자식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요, 상급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업이란 생계를 꾸리기 위한 소득을 얻는 산업입니다. 자영업, 중소기업, 대기업 등이 있지 않습니까 직업의 종류만 해도 미국은 3만 가지, 일본은 2만 5000가지가 있고, 한국은 1만 가지가 있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은 바로 자식인 것입니다. 자식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셔서 우리에게 생계를 꾸리기 위한 소득이 된다는 것입니다. ‘자식이 귀찮다. 식구가 많으면 살기가 힘들다’ 그것은 인간의 생각입니다.
이 말의 본래 의미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토지, 재산과 같은 유산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손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조상 대대로 우리가 물려받는 토지나 재산처럼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자식은 여호와의 기업”이라는 것은 자녀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이고 약속의 선물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식은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을 갖고 오는 기업인 것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됩니다. 자식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은 삶에 소득을 얻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착각을 하고 살아갑니다. 자식 때문에 먹고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벌여 먹인다고 생각하는 일은 금물입니다. 내가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어린 자식을 통하여 나에게 먹고 마시고 살 수 있도록 재물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자식 많은 사람들은 다 굶어 죽어야 합니다. 자식 없는 사람들은 모두가 부자로 살아가야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두 부부가 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자식이 없이 살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두 식구도 살아갈수 없어서 맞벌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남의 집 전세도 아니고 사글세로 살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식의 가치를 인정합시다. 귀하게 여깁시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기업으로 그 때문에 먹고 사는 것을 알아서 직장 이상으로 섬기는 자녀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⑵ 자식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상급이다.
상급은 어떤 사람이 받습니까 잘한 사람들이 받습니다. 무엇이든지 잘하면 상급을 받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끌고 집중토록 하게 되는 것입니다. 상도 타지 못하면 잊혀진 사람들이 될 것이며 버려지고 뒷전에 있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상급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귀하게 여김을 받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대표성을 가지게되며 앞장서게 될 것이며, 성경 신명기 28장에서 보면 위에 있을지언정 밑에 있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추앙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식이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상급이라고 하였습니다. 자식때문에 출세하고 자식때문에 리더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자식은 소용이 없는 자식입니까
문제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 양육을 해야 함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 양육을 해야만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자녀는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다 상타기를 좋아합니다. 조그마한 일을 하고도 상패를 받고 상급을 받으면 마음이 즐거워집니다. 그런데 자녀는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상급입니다. 대통령이 주는 상이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상인 것입니다. 어린이는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상이므로 상을 받은 사람은 자랑하고 기뻐합니다. 자식이 많은 것을 자랑하고 기뻐해야 됩니다. 요사이는 거꾸로 되어서 자식이 많은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자랑하지 않고 기뻐하지 않습니다.
자식 많은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행위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상급임을 생각할 때 부끄러워할 일이 아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편 113편 9절에는 “또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를 집에 살게 하사 자녀들을 즐겁게 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시는도다, 할렐루야”라고, 잠언 17장 6절에는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화살이 전통에 가득한 자입니다.
군인이 전통(戰桶)에 화살을 잔뜩 담고 나가면 어느 곳에 가도 두렵지 않습니다. 전통에 화살이 비면 적군이 와도 감당을 못하지 않습니까 이것을 비유로 말씀하기를 “젊은이의 자식은 장사의 전통에 화살 같다”고 했습니다. 화살이 가득한 것처럼 자녀가 많이 있으면 성문에서 원수와 다툴 때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합니다. 우리 주변에 일본도 있고 중국도 있고 러시아도 있고 미국도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나라 사이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많은 자녀가 있으면 우리나라가 이 가운데서 큰소리 칠 수 있고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은 지금 인구정책이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왜냐하면 심각한 노동력 부족현상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소기업에 일손이 없어 사람을 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노동력 부족사태가 야기되는 것입니다. 노후 연금문제도 위기에 처했습니다. 젊은이들이 열심히 일을 해서 세금을 많이 내야 노후 부모님들이 연금을 타서 살겠는데, 세금을 많이 못 걷으니까 노후에 연금을 줄 수가 없어 노후 생활이 막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외국인 근로자들을 불러오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없습니까 외국인 근로자들 때문에 겪는 수모는 대단합니다.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럼으로 외국인 때문에 한국인들이 죄를 짖고 외국인들은 한국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행위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것은 자업자득입니다. 자녀를 생산하지 않고 편하게 살기 위해서 적게 자식을 출산하기 때문에 생긴 사건입니다. 그럼으로 자업자득(自業自得)입니다. 훗날에 노인이 많아지고 젊은이들이 적게 됨으로 젊은 사람 한 사람이 노인들을 여러명씩 돌봐야 하는 불균형이 생기게 됩니다. 그럼으로 문제가 심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속적인 산아제한 운동으로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1971년에 4. 14명에서 82년에 2. 42명으로 92년에는 1. 78명으로 감소했습니다. 그러다가 2002년에는 출산율이 1. 17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아이 적게 낳기로 유명한 프랑스의 1. 9명보다도 더 낮고 일본의 1. 32명보다도 더 적은 1. 17명으로 되고 말았습니다.
만일 현재의 출산율이 계속 유지된다면 우리나라의 인구는 2070년에 3분의 2로 줄어들고 2090년 정도에는 현재 인구의 절반이 감소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한국이 국력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큰 문제가 되고 국가적인 미래가 우려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국력신장을 위해 아이를 많이 낳아 길러야 합니다. 자식 많이 낳는 자가 오늘날은 애국자가 되는 것입니다.
요즘 표어는 “하나 낳아 자랑 말고 많이 낳아 애국하자”라고 합니다. 이 같은 구호대로 많은 자식을 출산하여 여호와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고 나라에 충성하는 성도의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3 수치를 당하지 않습니다.
5절에 보면, 저희가 성문에서 원수와 말할 때에 수취를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습니다. 아들들이 많은 사람들은 장래가 있습니다. 부모를 아무렇게 취급할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으로 자식이 많은 사람은 그 자식 가운데 어떤 사람이 나올지 알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에게 당할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에 눈치 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100년 전 중국 남방에 송가수 전도사님이 살았습니다.
그는 끼니도 잇지 못하는 가난 속에서도 힘껏 헌금하고 주님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내와 함께 4명의 자녀를 주안에서 성심, 성의껏 길렀습니다. 이 네 아이가 자라 모두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큰 자랑이 되었습니다. 큰 아들 자무는 중국의 재정총장이 되었고, 큰 딸 애령은 남경 정보수석 공상회의 아내가 되었으며, 둘째 딸 경령은 중국의 국부인 손문의 아내가 되었고, 셋째 딸 미령은 중국의 여류시인이요, 장개석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녀를 통해 큰 축복을 주고 큰 자랑이 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자녀는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요, 상급이라는 것을 우리는 마음에 깊이 새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가 많으면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고연히 수고만 한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자식은 부모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가르치고 교육하게 되면 그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럼으로 수치를 당하는 일이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맺는 말
많은 탈북자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정착을 했습니다. 우리 교단에 탈북자 출신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그들이 한국에 정착하면서 훈련을 받을 때 남쪽 사람들이 이해가 잘 안 되는 것이 있답니다. 왜 남쪽 사람들은 왜 그렇게 뛰어야 하는지 왜 고속도로에서 그렇게 목숨 내걸고 속도를 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답니다. 뻐쓰 정거장이나 전철역에 가보면 사람들이 뻐쓰나 전철을 갈아타는데 그곳에 서 있으면 정말 살벌합니다.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은 마치 바보 같고 남을 방해하는 사람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별로 바쁘지 않은 사람들도 덩달아 남들이 뛰니까 자신도 급하게 뛰어야 합니다. 남들이 뛰니까 나도 뛰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너무 급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바쁘게 살아야 하나요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치열한 경쟁심이 유발되기 때문입니다. 경쟁에서 뒤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살지 않으면 죽는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처럼 하지 않으면 바보 되고 뒤떨어진 인생이 된다는 걱정을 합니다. 그러니 남들처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평생을 허덕이다가 죽는 인생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아파트를 소유(遡遊)하기 위해서 있다하더라도 사글세는 전세로, 전세로 사는 사람은 내집마련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출세하고 승진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 보다는 앞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지런을 떨어야 무엇이든지 되는줄 알기 때문에 덩달아 인생을 경기장으로 내몰아 가는 것이 현대인들의 삶입니다.
또 하나는 행복을 잡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정말 그렇게 살면 행복해 질까요 오늘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성경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중요한 한 가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도다”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라고 하십니다.
한마디로, 인생의 스스로의 힘으로는 안 된다!, 여호와 하나님이 내 인생에 손을 대셔야만 뭔가를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힘쓰고 노력하고 고생한다 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이 손을 대주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멘!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중요한 신앙을 가지고 자녀를 양육할 때 이 같은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사람들에게 자식을 기업으로 상급으로 전통에 가득 채워진 화살로 성문에서 말할 때 수취를 당하지 않게 되는 축복을 주십니다.
그가 학교에서 성적표를 어머니에게 들고 오면 가끔 가다가 A가 있고 그 다음에는 B,C,D가 있습니다. 어머니는 B,C,D는 말을 안하고, A를 지적하면서 “A받았구나 A가 있는 것을 보니까 모두다 A를 받을 수 있는 실력이 있는거야. 네가 관심을 안 기울여서 그렇지 너는 A를 받을 수 있는 실력이 있는거야” 그렇게 웰치를 우쭐하게 만들고 담대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또한 잭 웰치는 어릴 때부터 말을 더듬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늘 왕따였습니다. 말을 더듬어서 학교에서 놀림 당할 때마다 어머니는 웰치를 안으면서 “아니다. 애들이 몰라서 그렇다. 너는 머리 회전이 너무 빠르기 때문에 머리 회전에 혀가 미쳐 따라가지 못해서 더듬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웰치는 말더듬의 장애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세계적인 기업가가 되었고 오늘날 전설적인 사업가로 온 세계로부터 추앙받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어머니가 사랑과 인내로 교육한 결과 세계적인 경영가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린 아이를 기를 때 결단코 부정적인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어린 아이에게 긍정적으로 말해야 되고 부정적으로 말하지 말아야 됩니다.
본문 말씀
방금 읽어 드린 3-4절의 말씀은 어린이의 가치를 말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시 127:3-5)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어떤 전도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의 몸의 가치는 이 달러 오 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의 몸은 칠팔십 퍼센트가 물인데 물은 가장 싼 것이다. 내가 푸저우에 있을 때 물 한 짐은 세 푼밖에 되지 않았다. 또한 사람의 몸에 철이 있는데 철 역시 대단히 값싼 것으로 푸저우에서는 쇠못 한 냥에 두 푼이 못 되었다. 또 석회가 있는데 석회 역시 한 짐에 사백여 원에 불과했다. …몸 전체를 나눠 놓고 총계를 내면 이 달러 오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나는 이것도 겸손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오늘 죽어서, 내가 백 달러를 당신에게 주고 내 시체를 가져가 달라고 한다면, 당신은 원치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코를 막고 지나갈 것이다!
화학가가 인체를 분석한 결과, 인체의 지방으로는 여섯 조각의 비누를 만들 수 있고, 인으로는 성냥 이백이십 개피를 만들 수 있고, 모든 석회질로는 닭장 하나를 소독할 수 있고, 철로는 못 하나를 만들 수 있으며, 그 밖에는 소금 한 줌, 설탕 한 컵과 화약을 만들어서 총으로 한 번 쏠 수 있는 약간의 질소 가스가 있고, 나머지는 모두가 수분이라는 것이다.
어린아이는 두 말할 것도 없이 더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어린아이의 가치를 물질적으로 가치를 논하지 않고 신령적인 차원에서 가치를 논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어린아이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말썽꾸러기가 되고 기르기가 힘들다고 하여 아예 낳지 않는 사람도 있고 행여 출산한다 하더라도 내다 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니면 고아원이나 아니면 남의 집 대문간에 유기하는 경우가 있음을 봅니다. 이 같은 행위는 모두가 어린아이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데서 온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자식 상팔자’라고 말합니다. 십대가 되면 제일 인생에 말썽꾸러기가 됩니다. 내다 버릴 수도 없고 그러하고 하여 너는 내 자식이 아니라고 할수도 없는 것이 부모의 입장입니다. 그럼으로 자식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양육하는 부모는 그리 흔치 않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자녀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하며 어린이 주일을 지키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자식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3절에 보면 자식은 여호와께서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라 하였습니다.
1) 자식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셨다는 의미에서 축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식은 갖고 싶으면 갖고 가지고, 싶지 않으면 안가지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태문을 열고 닫는이가 인간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자식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좋으신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면 좋은 선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나쁜 여호와 하나님이라면 그가 주신 것이라면 나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주셨다면 그가 주신 선물은 진정으로 선한 선물일 것입니다.
우리는 권위주의 시대에 청와대(靑瓦)의 아는 사람들이 있다든지, 목사들이 국가 조찬 기도회에 참석하게 되면 시계 하나 선물을 받으면 대단한 것으로 알고 자랑도하고 자신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처럼 야단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이처럼 높은 양반이 주는 선물도 귀하게 여길 줄 알거든, 하물며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면 얼마나 기하게 여겨야 할 것인가를 보여준 말씀입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어린아이가 없어서 얼마나 안달을 하고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하였는가를 우리들은 잘 압니다. 이런 면에서 자식을 귀하게 여길줄 아는 부모들이 되어야 한다.
유대인을 보십시오. 세계 곳곳 각 분야에서 유대인은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지 않았습니까 노벨상 수상자의 26%가 유대인들입니다. 특히 노벨 과학상 수상자의 60%가 유대인입니다. 전 세계 3000여 대학의 교수가 유대인이며, 25%의 유대인들이 총장입니다. 미국에서 큰 빌딩과 은행, 대형 백화점의 주인 90%가 유대인의 것입니다.
세계의 곡물시장, 무기시장, 헐리우드 영화계까지 유대인들이 주름잡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1300만명의 불과한 유대인이 어떻게 그런 큰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백성이 되고 싶어 되는 것이 아님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같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은 망하는 것 같지만 망하는 자리에서도 일어나는 일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가 십자가에 죽었습니다.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금 일으켜 세우는 기적을 행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면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둘도 없는 자녀가 되기 때문에 일으켜 세우신 것입니다.
반면에 미국 하버드 연구팀의 조사에 의하면 청소년 범죄자 80%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이 없었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배우지 않고 자란 아이들이 범죄의 80%를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가르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⑴ 자식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다.
자식은 귀찮은 존재가 아닙니다. 말썽꾸러기가 되어 필요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라는 것이다.
성경에는 자식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요, 상급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업이란 생계를 꾸리기 위한 소득을 얻는 산업입니다. 자영업, 중소기업, 대기업 등이 있지 않습니까 직업의 종류만 해도 미국은 3만 가지, 일본은 2만 5000가지가 있고, 한국은 1만 가지가 있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은 바로 자식인 것입니다. 자식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셔서 우리에게 생계를 꾸리기 위한 소득이 된다는 것입니다. ‘자식이 귀찮다. 식구가 많으면 살기가 힘들다’ 그것은 인간의 생각입니다.
이 말의 본래 의미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토지, 재산과 같은 유산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손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조상 대대로 우리가 물려받는 토지나 재산처럼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자식은 여호와의 기업”이라는 것은 자녀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이고 약속의 선물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식은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을 갖고 오는 기업인 것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됩니다. 자식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은 삶에 소득을 얻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착각을 하고 살아갑니다. 자식 때문에 먹고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벌여 먹인다고 생각하는 일은 금물입니다. 내가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어린 자식을 통하여 나에게 먹고 마시고 살 수 있도록 재물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자식 많은 사람들은 다 굶어 죽어야 합니다. 자식 없는 사람들은 모두가 부자로 살아가야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두 부부가 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자식이 없이 살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두 식구도 살아갈수 없어서 맞벌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남의 집 전세도 아니고 사글세로 살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식의 가치를 인정합시다. 귀하게 여깁시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기업으로 그 때문에 먹고 사는 것을 알아서 직장 이상으로 섬기는 자녀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⑵ 자식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상급이다.
상급은 어떤 사람이 받습니까 잘한 사람들이 받습니다. 무엇이든지 잘하면 상급을 받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끌고 집중토록 하게 되는 것입니다. 상도 타지 못하면 잊혀진 사람들이 될 것이며 버려지고 뒷전에 있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상급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귀하게 여김을 받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대표성을 가지게되며 앞장서게 될 것이며, 성경 신명기 28장에서 보면 위에 있을지언정 밑에 있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추앙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식이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상급이라고 하였습니다. 자식때문에 출세하고 자식때문에 리더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자식은 소용이 없는 자식입니까
문제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 양육을 해야 함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 양육을 해야만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자녀는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다 상타기를 좋아합니다. 조그마한 일을 하고도 상패를 받고 상급을 받으면 마음이 즐거워집니다. 그런데 자녀는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상급입니다. 대통령이 주는 상이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상인 것입니다. 어린이는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상이므로 상을 받은 사람은 자랑하고 기뻐합니다. 자식이 많은 것을 자랑하고 기뻐해야 됩니다. 요사이는 거꾸로 되어서 자식이 많은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자랑하지 않고 기뻐하지 않습니다.
자식 많은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행위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상급임을 생각할 때 부끄러워할 일이 아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편 113편 9절에는 “또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를 집에 살게 하사 자녀들을 즐겁게 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시는도다, 할렐루야”라고, 잠언 17장 6절에는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화살이 전통에 가득한 자입니다.
군인이 전통(戰桶)에 화살을 잔뜩 담고 나가면 어느 곳에 가도 두렵지 않습니다. 전통에 화살이 비면 적군이 와도 감당을 못하지 않습니까 이것을 비유로 말씀하기를 “젊은이의 자식은 장사의 전통에 화살 같다”고 했습니다. 화살이 가득한 것처럼 자녀가 많이 있으면 성문에서 원수와 다툴 때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합니다. 우리 주변에 일본도 있고 중국도 있고 러시아도 있고 미국도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나라 사이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많은 자녀가 있으면 우리나라가 이 가운데서 큰소리 칠 수 있고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은 지금 인구정책이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왜냐하면 심각한 노동력 부족현상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소기업에 일손이 없어 사람을 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노동력 부족사태가 야기되는 것입니다. 노후 연금문제도 위기에 처했습니다. 젊은이들이 열심히 일을 해서 세금을 많이 내야 노후 부모님들이 연금을 타서 살겠는데, 세금을 많이 못 걷으니까 노후에 연금을 줄 수가 없어 노후 생활이 막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외국인 근로자들을 불러오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없습니까 외국인 근로자들 때문에 겪는 수모는 대단합니다.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럼으로 외국인 때문에 한국인들이 죄를 짖고 외국인들은 한국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행위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것은 자업자득입니다. 자녀를 생산하지 않고 편하게 살기 위해서 적게 자식을 출산하기 때문에 생긴 사건입니다. 그럼으로 자업자득(自業自得)입니다. 훗날에 노인이 많아지고 젊은이들이 적게 됨으로 젊은 사람 한 사람이 노인들을 여러명씩 돌봐야 하는 불균형이 생기게 됩니다. 그럼으로 문제가 심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속적인 산아제한 운동으로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1971년에 4. 14명에서 82년에 2. 42명으로 92년에는 1. 78명으로 감소했습니다. 그러다가 2002년에는 출산율이 1. 17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아이 적게 낳기로 유명한 프랑스의 1. 9명보다도 더 낮고 일본의 1. 32명보다도 더 적은 1. 17명으로 되고 말았습니다.
만일 현재의 출산율이 계속 유지된다면 우리나라의 인구는 2070년에 3분의 2로 줄어들고 2090년 정도에는 현재 인구의 절반이 감소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한국이 국력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큰 문제가 되고 국가적인 미래가 우려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국력신장을 위해 아이를 많이 낳아 길러야 합니다. 자식 많이 낳는 자가 오늘날은 애국자가 되는 것입니다.
요즘 표어는 “하나 낳아 자랑 말고 많이 낳아 애국하자”라고 합니다. 이 같은 구호대로 많은 자식을 출산하여 여호와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고 나라에 충성하는 성도의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3 수치를 당하지 않습니다.
5절에 보면, 저희가 성문에서 원수와 말할 때에 수취를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습니다. 아들들이 많은 사람들은 장래가 있습니다. 부모를 아무렇게 취급할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으로 자식이 많은 사람은 그 자식 가운데 어떤 사람이 나올지 알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에게 당할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에 눈치 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100년 전 중국 남방에 송가수 전도사님이 살았습니다.
그는 끼니도 잇지 못하는 가난 속에서도 힘껏 헌금하고 주님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내와 함께 4명의 자녀를 주안에서 성심, 성의껏 길렀습니다. 이 네 아이가 자라 모두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큰 자랑이 되었습니다. 큰 아들 자무는 중국의 재정총장이 되었고, 큰 딸 애령은 남경 정보수석 공상회의 아내가 되었으며, 둘째 딸 경령은 중국의 국부인 손문의 아내가 되었고, 셋째 딸 미령은 중국의 여류시인이요, 장개석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녀를 통해 큰 축복을 주고 큰 자랑이 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자녀는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요, 상급이라는 것을 우리는 마음에 깊이 새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가 많으면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고연히 수고만 한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자식은 부모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가르치고 교육하게 되면 그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럼으로 수치를 당하는 일이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맺는 말
많은 탈북자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정착을 했습니다. 우리 교단에 탈북자 출신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그들이 한국에 정착하면서 훈련을 받을 때 남쪽 사람들이 이해가 잘 안 되는 것이 있답니다. 왜 남쪽 사람들은 왜 그렇게 뛰어야 하는지 왜 고속도로에서 그렇게 목숨 내걸고 속도를 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답니다. 뻐쓰 정거장이나 전철역에 가보면 사람들이 뻐쓰나 전철을 갈아타는데 그곳에 서 있으면 정말 살벌합니다.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은 마치 바보 같고 남을 방해하는 사람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별로 바쁘지 않은 사람들도 덩달아 남들이 뛰니까 자신도 급하게 뛰어야 합니다. 남들이 뛰니까 나도 뛰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너무 급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바쁘게 살아야 하나요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치열한 경쟁심이 유발되기 때문입니다. 경쟁에서 뒤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살지 않으면 죽는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처럼 하지 않으면 바보 되고 뒤떨어진 인생이 된다는 걱정을 합니다. 그러니 남들처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평생을 허덕이다가 죽는 인생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아파트를 소유(遡遊)하기 위해서 있다하더라도 사글세는 전세로, 전세로 사는 사람은 내집마련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출세하고 승진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 보다는 앞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지런을 떨어야 무엇이든지 되는줄 알기 때문에 덩달아 인생을 경기장으로 내몰아 가는 것이 현대인들의 삶입니다.
또 하나는 행복을 잡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정말 그렇게 살면 행복해 질까요 오늘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성경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중요한 한 가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도다”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라고 하십니다.
한마디로, 인생의 스스로의 힘으로는 안 된다!, 여호와 하나님이 내 인생에 손을 대셔야만 뭔가를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힘쓰고 노력하고 고생한다 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이 손을 대주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멘!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중요한 신앙을 가지고 자녀를 양육할 때 이 같은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사람들에게 자식을 기업으로 상급으로 전통에 가득 채워진 화살로 성문에서 말할 때 수취를 당하지 않게 되는 축복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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