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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축복하라, 가르치라, 본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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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업에 앞장서는 '구세군'의 창시자는 '윌리암부스'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와 그 아내 캐서린 부스 사이엔 자녀가 8명이 있었습니다.
이 여덟 명의 자녀는 자라서 모두 여호와 하나님나라를 위하여 쓰임 받는 일군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캐서린 부스는 위대한 남편을 내조한 훌륭한 아내로서 뿐만 아니라, 자녀들을 믿음으로 잘 키워낸 여인으로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자녀 교육의 비결을 물을 때마다 캐서린 부스는 말하길, '저는 언제나 사탄보다 한 발 앞서있었습니다. '라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면 "내 아이들이 사탄으로부터 나쁜 습관에 물들기 전에 나는 부지런히 좋은 습관을 갖도록 가르쳤고, 내 아이들이 사탄으로부터 나쁜 사고방식을 습득하기 전에 나는 긍정적이고 좋은 사고방식을 심어 주었고, 사탄이 내 아이들에게 교활하고 나쁜 거짓말을 하는 지혜를 심어주기 전에 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지혜와 진실 됨을 심어주었습니다. "
마귀의 역사가 자기 자녀들에게 엄습하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을 먼저 배우게 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와 능력에 영향을 받았는가 아니면, 나쁜 습관, 나쁜 사고, 나쁜 지혜에게만 발달이 되어 있습니까
여러분!
여러분, 자녀들은 지금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지혜로 자라나고 있는가 아니면, 이미 세상에서 오염된 것에 노출된 채 자라나고 있습니까
'경건한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이 사회에 유익을 주는 인물이 될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
어떤 조사 결과를 보면 예수님 믿는 사람의 85%가 20살 이전에 복음을 접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어려서 들은 말씀, 그 말씀의 씨앗이 '알게 모르게' 그 심령 속에 자리 잡고 자라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린 아주 어린 아이들을 보면서는 '저 아이가 무얼 알 수 있겠는가' 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비록 어리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들 같지만 복음을 듣고, 중생을 경험하고, 영적 체험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린 시절에 들려진 말씀이 그 사람의 일생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친히 어린이에 관하여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더불어 어느 마을을 지나고 계셨습니다.
이때 마을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자기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께 청하기를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해 주시길 간청하였다'고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안수기도, 축복기도를 청한 것입니다.
적어도 이것은 저들의 믿음이었습니다.
세상에 자식 잘되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나는 비록 못 배웠어도 자식만큼은 더 배울 수 있게 하고 싶고, 나는 성공한 인생이 아니라 할지라도 내 자녀만큼은 성공하는 것 보고 싶고, 내 자녀만큼은 복을 받는 것을 원하는 것이 부모 마음입니다. '
그런데 이 마음을 간직한 부모들이 오늘 예수님을 만나러 온 목적은 "예수님이 내 아이의 머리에 손 얹고 축복 기도해 주시면 내 아이가 분명 복을 받겠다. "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습니다.
여러분, 병 고침 받는 경우에도 '내가 주님의 옷자락에만 손을 대어도 내 병이 낫겠다. '거나 "우리가 우리 친구를 예수님 계신 곳 지붕을 뜯어내서라도, 예수님께 보이면 예수님이 고치시겠다. '는 자기 믿음으로 치유 받는 일이 일어나듯, 오늘 축복받는 일 역시 "예수님이 내 아이의 앞길을 복되게 하시고 열어 주실 수 있다. "는 자기 믿음으로 나아온 것입니다.
누가 '예수님께 데리고 가서 기도나 한번 받아봐라. '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내 아이가 경건하고, 진실하고, 여호와 하나님 은혜 안에 거하는 아이가 되길 진심으로 원한다. "하는 간절함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을 때, 기도를 청하는 이러한 적극성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부모들이 기도를 청하는 믿음으로 예수님 앞에 행동하였을 때, 본문 13절 "제자들이 꾸짖거늘"
제자들은 저들의 믿음, 저들의 간절함을 전혀 알아주지를 못하였다는 점입니다.
그 부모의 마음과 입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금 저들이 예수님의 하시는 일을 방해하고 있다고만 생각을 한 것입니다.
사실 저들 제자들 생각에는 예수님이 권세를 나타내는 행동을 보이시고, 사름들의 주목의 대상이 되는 일이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축복하는 일과 '기적'을 나타내는 일 중 어느 것이 더 자극적이고 신나는 일이겠습니까
제자들은 이 두 가지의 가치 중 '기적'과 '능력'쪽을 택한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예수님은 지금 기적을 보이러 다니시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자기 위하여 가고 계신 길이었습니다.
여러분 '기적'과 '능력'을 보이는 일과 십자가 죽음의 길을 가는 것은 어느 것이 더 신나는 일이겠습니까
제자들은 역시 '뭔가 보여주시는 일', 자신들이 예수님제자라는 사실이 자부심을 들고 어깨가 으쓱해지는 일을 원하였지 '십자가'지러 가시는 것은 원치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이 '꾸짖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지금 바쁘시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무엇에 바쁘시다고 여겼을까요
어디를 가나 병 고치시고 능력 나타내시느라 분주하신 분이 여기서 한가하게 아이들 머리에 손 얹고 축복 기도나 해주실 시간이 없다고 여긴 것입니다.
이것이 저들의 가치관이었습니다.
보이는 기적과 보이지 않는 축복 이 두가지중 여러분은 어느 것을 소중히 여기십니까
투자 중에도 '당장에 거두는 투자'가 있고 오랜 세월이 지나야 결과를 볼 수 있는 투자가 있습니다.
저는 신앙적 차원에서 '축복 받는 일'을 소중한 가치로 여기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경건하게, 헌신하는 일이 더 보배로운 일인 줄 믿습니다.
자녀들과 관련된 것 우리가 후대를 양성하는 것이 다 이 원리에 입각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 설교자도 어린이에게 설교하는 것과 어른들에게 설교하는 것 중 택하라고 하면 당연히 어른들에게 설교할 것입니다.
어른들은 들어주고 '아멘'도 하고 웃고 울고 반응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막살 물으면 들은 것이 나은 게 없는걸 알 수 있습니다.
어린이설교가 왜 힘든가 아이들은 처음부터 듣는 지혜가 아닙니다.
쳐다보지도 않고 떠들고 대꾸도 하질 안습니다.
헌데 희한한 것은 잘들은 어른들보도 들을 것은 더 잘 듣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린이들이나 청소년, 청년들을 향하여 조급한 마음을 가져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조급한 마음은 '당장에 생산성 있는 결과'를 기대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차라리 어린아이들에게 기도나 해줄 시간이면 한사람이라도 더 병든 자를 고쳐주는 것이 낫겠다는 마음입니다.
이 생각에 아이들 축복 기도를 청하는 사람들을
나무라게 된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본문14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 하셨습니다.
사람들(제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예수님의 생각은 병 고치는 일, 먹을 것 주는 일, 살려내는 일 보다는 어린이들에게 축복을 주는 일이 더 급하고 중하다는 생각이셨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는 없어도 우리의 어린생명을 키우는 일 사랑주고, 축복하고, 가르치고 저들에게서 배우는 일까지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은 자녀들을 위하여 "복을 빌라"고 하셨습니다.
옛 유대인들은 오늘 본문의 장면과 같이 자기 자녀들을 자기가 가장 존경하는 앞으로 자기 자녀가 그 분에게 청하여 손을 얹고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하곤 하였습니다.
여러분의 자녀에게 '가장 존경하는 분이 누구냐. 누구처럼 되고 싶으냐'고 물어보시길 바랍니다.
적지 않은 아이들이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자기 부모가 누굴 존경하고 높이는 것을 본적도 들은 적도 없고 부모조차고 존경스럽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아이들이 축복받기 원하시거든 여러분 집안에 "서로 존경(부부간, 부모 자식 간) "분위기가 넘치게 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집에서 속히 없어져야 할 말이 있습니다.
"야 네 엄마는 왜 저러고 있냐. 왜 저모양이냐", "야 너는 제발 네 아버지 닮지 마라" 존경은 없고 원망, 짜증, 불평만 있는 가정에서 무슨 축복이 임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예수님을 사랑하는지를 보여 주었고 아이들이 직접 예수님을 본받게 되기를 소망하였습니다.
이 이상의 자녀교육은 없습니다.
성경곳곳에서 우리는 사람들이 자기 자녀를 위하여복을 간구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복을 내리십사고 구하는 장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복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게 아닙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복 주십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부모님들은 여러분의 자녀가 어린 자녀이든, 성숙한 자녀이든, 출가, 독립한 자녀이든, 그에게 복을 주십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하시길 바랍니다.
잘 되실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과 잘 되길 기도하는 것과는 다른 예기 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자녀의 복을 위하여 기도할 의무가 있고 여러분 자녀에겐 부모의 기도로 복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복을 비는 것만큼 소중한 일은 자녀를 말씀으로 가르치는 일입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의탁된 천국백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원 소속이 하늘나라인 우리 자녀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주는 것은 당연한 일 일것입니다.
선생님들은 자기 반 아이들만 보고도 그 부모를 넉넉히 알수 있다고들 합니다.
이유는 아이들이 어쩔 수 없이 부모를 닮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예수님을 믿는 자다운 삶을 살면 아이들도 예수님을 믿는 자답게 삽니다.
부모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받고 묵상하고 실천하면 자녀들도 그렇게 살아갑니다.
내 부모가 어느 때 찬송하였고 어느 때 기도하였는지 어떻게 섬기고 봉사하였는지 어려움은 어떻게 극복하였는지 자녀들은 보고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자녀들은 얼마나 나의 부모가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고 존중하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는 분들이었는가를 통하여 안도감을 느끼고 자신의 이상적 가정을 꿈꾼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자녀에게 복을 빌고, 말씀으로 가르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자녀에게서 배우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아이들처럼 철없고, 유치해 지라는 게 아니고 아이들같이 순수한 신뢰성을 회복하라는 말입니다.
아이들이 일찍 세상에 순수하면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순수하게 믿고 꿈을 소유하고 상상력이 풍부합니다.
어른들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매사를 색안경을 쓰고 봅니다. 여기 큰 차이가 있습니다.
어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실감하지 못할 때 아이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믿습니다. 어린이의 가슴으로 그 마음으로 배우라는 것입니다.
오늘 어린이주일 겸 자녀초청주일 입니다. 자녀들이 잘 되길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자녀가 잘되시길 바라시면 주님의 마음으로 자녀들을 위한 축복의 기도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순수성을 본받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자녀가 잘 되실 바란다면 자녀를 훈계하기보다 '나 자신이 훌륭한 믿음의 부모가 되게 해 주십사'하는 기도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의 미래를 위한 기도가 시작될 때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자녀들을 복되게 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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