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어린 아이와 같이
본문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우리 교회와 가정에서 자라나는 꽃 중의 꽃 어린이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꽃주일을 맞이합시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어린이를 실물교수로 하여 우리 어른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흔히 말하기를 어린이는 어른의 스승이라고 합니다만 어린이의 어떤 면이 어른들의 스승이 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천국에서 어떤 이가 큽니까”하는 제자들의 질문에 “먼저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난 다음,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제일 먼저 어린 아이들은 믿음을 소유하고 사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어린 아이가 어른의 말을 믿듯이, 우리는 순진하고 단순하게 어른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 두 가지를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첫째,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다는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쉽게 용서하고 화해한다고 말들은 하지만 정말로 용서하지도 않고, 좀처럼 화해하지도 않습니다. 엉어리는 언제나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이 상하면 옛날 역사가 줄줄이 나옵니다. 그래서 요즘은 아예 “용서란 없다. 살기 위해서는 완전해야 한다”는 긴장 속에 사람들이 조금도 쉬지 못합니다.
교회서도 그래요. 한번 누가 내게 섭섭한 말 한 마디를 해도 결코 잊지 못해요. 결국 그말 한 마디 때문에 물고 뜯고 싸우다 상처투성이가 되고 영영 원수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도무지 용서하지 못할 것을 용서하시고 기억도 안하십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의 죄과를 영원히 옮겨버리십니다.
사람은 할 수 없으되 여호와 하나님은 십자가의 고통을 통하여 용서하셨습니다. 사람의 관점에서 본다면 용서는 도무지 불가능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예수 안에서 일체 오래 참으시고, 모든 죄과를 완전히 옮겨버리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의인 예수님의 의를 입혀주십니다. 마치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자기의 잘못을 잘 잊어버려요. 괴롭힌 사람도 쉬 잊어버려요. 엄마, 아빠한테 매를 맞아도 곧 잊어버립니다. 용서받고도 또 잘못하지만 다시 용서받고 좋아하며 메달립니다. 우리는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용서를 믿어야 합니다. 어린이가 자기 잘못을 잊어버리듯이 우리도 우리의 죄책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의 죄도 용서하고 잊어버려야 합니다. 용서는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이 죄책에서의 해방이야말로 천국의 기초입니다. 천국은 죄 사함받은 의인들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용서받은 감격으로 자신도 용서하고 남도 용서하는, 용서받고 용서하는 의인들이 천국백성인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예수 안에서 세상을 이긴다고 단순하게 믿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이 말씀합니다.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대저 여호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요일 5:4-5). 여러분, 어린 아이들을 보십시오.
엄마, 아빠가 모든 것을 다 잘해 주리라고 굳게 신뢰하고 있기 때문에 부모 곁에 있는 한 아무 두려움이 없습니다. 엄마, 아빠와의 관계만 원만하면 그들에게는 아무 근심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우리도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이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말씀과 성령으로 세상의 죄와 마귀에게서 승리한 것을 순간순간 담대하게 믿어야 합니다. 어떤 부흥사가 부흥회 인도차 시골 교회에 갔습니다. 어느 집사님 댁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그 집사님이 마침 산상수훈의 말씀을 읽다가 혼자 말이 “말씀은 참 좋은데”하다가 목사님께 묻더랍니다. “목사님, 이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경말씀을 읽어도 그대로 믿지 않아요. 그런데 어린 아이들은 부모의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부모가 살아있는 권위이기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을 그대로 믿어요. 여호와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의 원래 모습은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권위 아래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생명과 안전,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이 여호와 하나님의 품 안에 사는 인간에게 본래부터 주시고자 한 것입니다.
예수는 우리를 찾아오신 영광의 여호와 하나님이시요 우리를 사랑하시는 임마누엘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기도합니다.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영원한 거처, 맨션 하우스가 되셨나이다”(시 90:1).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과 화해하면 당연히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를 보호하시고 부양하십니다. 삶에 필요한 모든 도움과 위안이 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삶의 모든 고난에 동참해 주시고, 일마다 때마다 거룩하신 손길로 이끌어 주시고(행 11:21), 날마다 우리 짐을 져 주십니다(시 68:19).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우리를 눈동자 같이 지켜 주시다가 마지막 날에는 당신의 나라로 데려가십니다. 그곳에서 새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고(사 62:2), 오직 나를 위하여 예비하신 한 몸을 입고(히 10:5),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한 성에 들어갈 것입니다(히 11:16).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향한 사랑과 목적에 있어서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결코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일반적 필멸성 때문에 완전히 낙심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사랑하고 의지하던 자의 죽음으로 인해 좌절에 빠지지 않습니다. 삶이 고난투성이고 순간적이고 죄악되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믿음으로 큰 기쁨과 넉넉한 위로를 받습니다. 오늘이 괴로와도 내일의 소망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합니다.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으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 2:19-20). 예수 안에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얼마든지 Yes로 받고, Amen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땅 위에서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과 화해한 이상 땅과도 화해하고, 이웃과도 화해하며, 나 자신과도 화해해야 합니다. 조화와 평화,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과 화목할 때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용납하셨습니다. 결코 다시 쫓아내지 않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속죄 받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변함없는 승리를 안겨다 주십니다. 부모 곁에 있는 어린이는 결코 약하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사는 성도는 결코 약하지 않습니다.
만유보다 크신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서 우리를 빼앗을 다른 권세가 없기 때문에 성도는 세상을 이기게끔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마치 죽는 자처럼 못 이겨서 사는 것처럼, 비굴하게 살 필요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합니다. “저가 너희를 향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희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고전 13:3-4).
우리는 완전한 속죄, 완전한 승리를 예수 안에서 이미 소유했습니다. 영원히 단번에 죄책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받고 생명과 성령의 법 안에서 자유합니다(롬 8:2). 예수 십자가의 보혈은 우리를 죄과에서 구원하고, 예수 십자가 자체는 우리를 죄 자체에서 구원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합니다.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여호와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골 2:13-15). 우리는 이렇게 십자가 안에 있는 완전한 용서와 승리 속에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으로 거저 들어가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되어 천국을 상속받은 것입니다.
그 다음에, 천국에서는 누가 큰 자일까요 천국에서 위대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그 대답은 간단합니다. 어린 아이처럼 예수의 용서와 승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처럼 어린 아이처럼 자기를 낮출수록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가 됩니다. 어린 아이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자랑도 순진합니다. 어릴수록 엄마, 어빠 자랑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자랄수록 마음에 교만이 들어가 자기를 높입니다.
남의 말을 믿지 못하고, 남을 용서하지 못합니다. 세상의 천국인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에서 누가 큰 자일까요 여호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자기를 낮추는 자입니다. 그는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무익한 종이라 나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로소이다”(눅 17:10).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자기 변명이 없는 조용한 사람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합니다.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마 12:19, 사 42:2).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7).
교회에서 가장 큰 자는 천국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너희 귀머거리들아 들으라 너희 소경들아 밝히 보라 소경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누가 나의 보내는 나의 사자같이 귀머거리겠느냐 누가 나와 친한 자같이 소경이겠느냐 누가 여호와의 종같이 소경이겠느냐 네가 많은 것을 볼찌라도 유의치 아니하며 귀는 밝을찌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사 42:18-20). 성숙한 주의 종은 보아도 못 본 척, 들어도 안 들은 척, 입이 있어도 없는 것 같이하여 교회의 평화와 연합을 진작시킵니다.
사도 바울이 성도들에게 권면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고전 10:31-33).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에서 조금 괴롭다고 못 참겠다고 엄살을 떨지 맙시다. 조금 많이 부담하게 되었다고 으스대거나 거들먹거리지도 맙시다. 전도서 기자가 말씀합니다.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여호와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전 3:15). 여호와 하나님은 옛것을 찾으십니다. 우리는 오늘이 있도록 헌신해온 옛 성도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은 약해졌지만 오랫동안 희생해온 교회들을 존중합시다. 여호와 하나님은 지난날 우리의 수고와 충성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지 않고 다 기억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는 우리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히 11:6).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우리 모두 우리의 옛날, 어린이 시절을 다시 생각하며 두 가지를 배웁시다. 천국은 어린 아이와 같은 단순한 믿음으로 들어갑니다. 내 이성으로는 이해가 안되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순진하게 믿음으로 들어갑니다. 천국에서 큰 자는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자입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믿고, 어린 아이와 같이 겸손하라” 꽃주일 아침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에서 어떤 이가 큽니까”하는 제자들의 질문에 “먼저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난 다음,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제일 먼저 어린 아이들은 믿음을 소유하고 사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어린 아이가 어른의 말을 믿듯이, 우리는 순진하고 단순하게 어른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 두 가지를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첫째,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다는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쉽게 용서하고 화해한다고 말들은 하지만 정말로 용서하지도 않고, 좀처럼 화해하지도 않습니다. 엉어리는 언제나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이 상하면 옛날 역사가 줄줄이 나옵니다. 그래서 요즘은 아예 “용서란 없다. 살기 위해서는 완전해야 한다”는 긴장 속에 사람들이 조금도 쉬지 못합니다.
교회서도 그래요. 한번 누가 내게 섭섭한 말 한 마디를 해도 결코 잊지 못해요. 결국 그말 한 마디 때문에 물고 뜯고 싸우다 상처투성이가 되고 영영 원수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도무지 용서하지 못할 것을 용서하시고 기억도 안하십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의 죄과를 영원히 옮겨버리십니다.
사람은 할 수 없으되 여호와 하나님은 십자가의 고통을 통하여 용서하셨습니다. 사람의 관점에서 본다면 용서는 도무지 불가능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예수 안에서 일체 오래 참으시고, 모든 죄과를 완전히 옮겨버리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의인 예수님의 의를 입혀주십니다. 마치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자기의 잘못을 잘 잊어버려요. 괴롭힌 사람도 쉬 잊어버려요. 엄마, 아빠한테 매를 맞아도 곧 잊어버립니다. 용서받고도 또 잘못하지만 다시 용서받고 좋아하며 메달립니다. 우리는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용서를 믿어야 합니다. 어린이가 자기 잘못을 잊어버리듯이 우리도 우리의 죄책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의 죄도 용서하고 잊어버려야 합니다. 용서는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이 죄책에서의 해방이야말로 천국의 기초입니다. 천국은 죄 사함받은 의인들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용서받은 감격으로 자신도 용서하고 남도 용서하는, 용서받고 용서하는 의인들이 천국백성인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예수 안에서 세상을 이긴다고 단순하게 믿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이 말씀합니다.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대저 여호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요일 5:4-5). 여러분, 어린 아이들을 보십시오.
엄마, 아빠가 모든 것을 다 잘해 주리라고 굳게 신뢰하고 있기 때문에 부모 곁에 있는 한 아무 두려움이 없습니다. 엄마, 아빠와의 관계만 원만하면 그들에게는 아무 근심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우리도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이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말씀과 성령으로 세상의 죄와 마귀에게서 승리한 것을 순간순간 담대하게 믿어야 합니다. 어떤 부흥사가 부흥회 인도차 시골 교회에 갔습니다. 어느 집사님 댁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그 집사님이 마침 산상수훈의 말씀을 읽다가 혼자 말이 “말씀은 참 좋은데”하다가 목사님께 묻더랍니다. “목사님, 이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경말씀을 읽어도 그대로 믿지 않아요. 그런데 어린 아이들은 부모의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부모가 살아있는 권위이기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을 그대로 믿어요. 여호와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의 원래 모습은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권위 아래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생명과 안전,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이 여호와 하나님의 품 안에 사는 인간에게 본래부터 주시고자 한 것입니다.
예수는 우리를 찾아오신 영광의 여호와 하나님이시요 우리를 사랑하시는 임마누엘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기도합니다.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영원한 거처, 맨션 하우스가 되셨나이다”(시 90:1).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과 화해하면 당연히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를 보호하시고 부양하십니다. 삶에 필요한 모든 도움과 위안이 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삶의 모든 고난에 동참해 주시고, 일마다 때마다 거룩하신 손길로 이끌어 주시고(행 11:21), 날마다 우리 짐을 져 주십니다(시 68:19).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우리를 눈동자 같이 지켜 주시다가 마지막 날에는 당신의 나라로 데려가십니다. 그곳에서 새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고(사 62:2), 오직 나를 위하여 예비하신 한 몸을 입고(히 10:5),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한 성에 들어갈 것입니다(히 11:16).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향한 사랑과 목적에 있어서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결코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일반적 필멸성 때문에 완전히 낙심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사랑하고 의지하던 자의 죽음으로 인해 좌절에 빠지지 않습니다. 삶이 고난투성이고 순간적이고 죄악되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믿음으로 큰 기쁨과 넉넉한 위로를 받습니다. 오늘이 괴로와도 내일의 소망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합니다.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으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 2:19-20). 예수 안에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얼마든지 Yes로 받고, Amen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땅 위에서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과 화해한 이상 땅과도 화해하고, 이웃과도 화해하며, 나 자신과도 화해해야 합니다. 조화와 평화,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과 화목할 때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용납하셨습니다. 결코 다시 쫓아내지 않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속죄 받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변함없는 승리를 안겨다 주십니다. 부모 곁에 있는 어린이는 결코 약하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사는 성도는 결코 약하지 않습니다.
만유보다 크신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서 우리를 빼앗을 다른 권세가 없기 때문에 성도는 세상을 이기게끔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마치 죽는 자처럼 못 이겨서 사는 것처럼, 비굴하게 살 필요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합니다. “저가 너희를 향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희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고전 13:3-4).
우리는 완전한 속죄, 완전한 승리를 예수 안에서 이미 소유했습니다. 영원히 단번에 죄책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받고 생명과 성령의 법 안에서 자유합니다(롬 8:2). 예수 십자가의 보혈은 우리를 죄과에서 구원하고, 예수 십자가 자체는 우리를 죄 자체에서 구원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합니다.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여호와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골 2:13-15). 우리는 이렇게 십자가 안에 있는 완전한 용서와 승리 속에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으로 거저 들어가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되어 천국을 상속받은 것입니다.
그 다음에, 천국에서는 누가 큰 자일까요 천국에서 위대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그 대답은 간단합니다. 어린 아이처럼 예수의 용서와 승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처럼 어린 아이처럼 자기를 낮출수록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가 됩니다. 어린 아이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자랑도 순진합니다. 어릴수록 엄마, 어빠 자랑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자랄수록 마음에 교만이 들어가 자기를 높입니다.
남의 말을 믿지 못하고, 남을 용서하지 못합니다. 세상의 천국인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에서 누가 큰 자일까요 여호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자기를 낮추는 자입니다. 그는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무익한 종이라 나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로소이다”(눅 17:10).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자기 변명이 없는 조용한 사람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합니다.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마 12:19, 사 42:2).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7).
교회에서 가장 큰 자는 천국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너희 귀머거리들아 들으라 너희 소경들아 밝히 보라 소경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누가 나의 보내는 나의 사자같이 귀머거리겠느냐 누가 나와 친한 자같이 소경이겠느냐 누가 여호와의 종같이 소경이겠느냐 네가 많은 것을 볼찌라도 유의치 아니하며 귀는 밝을찌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사 42:18-20). 성숙한 주의 종은 보아도 못 본 척, 들어도 안 들은 척, 입이 있어도 없는 것 같이하여 교회의 평화와 연합을 진작시킵니다.
사도 바울이 성도들에게 권면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고전 10:31-33).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에서 조금 괴롭다고 못 참겠다고 엄살을 떨지 맙시다. 조금 많이 부담하게 되었다고 으스대거나 거들먹거리지도 맙시다. 전도서 기자가 말씀합니다.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여호와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전 3:15). 여호와 하나님은 옛것을 찾으십니다. 우리는 오늘이 있도록 헌신해온 옛 성도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은 약해졌지만 오랫동안 희생해온 교회들을 존중합시다. 여호와 하나님은 지난날 우리의 수고와 충성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지 않고 다 기억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는 우리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히 11:6).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우리 모두 우리의 옛날, 어린이 시절을 다시 생각하며 두 가지를 배웁시다. 천국은 어린 아이와 같은 단순한 믿음으로 들어갑니다. 내 이성으로는 이해가 안되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순진하게 믿음으로 들어갑니다. 천국에서 큰 자는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자입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믿고, 어린 아이와 같이 겸손하라” 꽃주일 아침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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