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본문
지금은 농업이 많이 발달하여 수확을 많이 내지만 예전에는 농사를 한번 성공한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도 일모작은 더욱 그러합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다음해를 기약하면서 가난을 곱씹으면서 생을 꾸려가게됩니다.
농사는 일년에 한번씩의 기회가 있지만 자식은 평생에 한번밖에 기회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자식을 낳아 기르는 일에 한번 실패를 하면 다시는 어떻게 해볼 기회를 상실하게 됩니다.
자식을 부모의 입맛대로 기르려고 하면 실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모의 욕심과 허영에 사로잡혀, 부모의 주관과 지나친 기대를 가지고 기르다가 자식을 망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신앙이 없는 부모들은 세상 적인 기대를 가지고 자식을 기릅니다. 그러나 신앙을 가진 우리 크리스천 부모들은 신앙적인 기대를 가지고 자식을 길러야 합니다.
예수님은 ”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눅2:40)는 말씀대로 이상적인 한 아이로 자라나셨습니다. 한 가정의 보배로운 자식으로, 장남으로 성장하셨습니다.
시편 127:3-5절에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자식을 예수님 처럼 건강하게, 지혜롭게, 은혜스럽게 기르는 것이 부모들의 소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자라게 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로 기르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1. 어른은 어린이의 거울입니다.
거울의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구석기 시대의 거울, 신석기 시대의 거울, 청동기 시대의 거울, 그리고 문명시대의 거울이 있습니다.
문명시대의 거울이라도 깨어진 거울, 때묻은 거울, 버려진 거울, 잘 정리 정돈된 거울등등의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거울을 보느냐에 따라서 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깨어진 거울을 통해서는 자기의 일그러진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때묻은 거울을통해서는 자기의 희미하고, 불확실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버려지거나 방치된거울을 보고는 자기 자신의 버려진 모습이나 방치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며, 어른은 어린이의 거울입니다. 자식은 부모를 보고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게 되고, 어린이는 어른을 보고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게됩니다.
파경된 부모를 보고 그 부모에게서 자식이 무엇을 발견 할 수 있겠습니까 일그러지고 망가진 부모를 보고 자식이 무엇을 발견할 수 있겠습니까 막되 먹은 부모를 보고 자식이 무엇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미가의 어머니는 은 일천 일백을 아들에게 도적 맞았습니다. 아들이 어미에게 은을 도로 가져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은 이 백을 은장색에게 주어 우상을 만들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우상을 아들을 위하여 집에 두어 신당을 차리게 했습니다(삿17:3-5).
엘리 제사장은 아들들이 범죄하고 타락한 생활을 하여도 금하지 않고 방치했습니다. 그 결과 엘리의 가정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갔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가니 그들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들이었습니다(삼상3:13).
아하시아의 어머니 아달랴는 오므리의 손녀 였습니다. 유다왕 아하시야가 아합의 집같이 악을 행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는 그의 어머니 아달랴 였습니다. 아달랴는 친정에서 배웠던 아합의 악행을 그의 아들에게 전수를 했습니다. 결국 아들을 망하게 한 사람은 다른 이가 아닌 자기 어머니 였습니다.
유다왕 므낫세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것을 본받아 그의 아비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산 당을 다시 세우며, 바알들을 위하여 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일월 성신을 숭배했습니다.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그 아들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 또 점치며 사술과 요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그 진노를 격발하였습니다(대하33:1-6).
헤로디아는 자기의 죄를 책망하는 세례 요한을 죽이기로 결심했습니다. 자기의 딸을 시켜 헤롯 대왕에게 세례요한의 목을 베어 달라고 간청을 하게 했습니다. 세례요한의머리를 소반에 담고 그의 어머니 헤로디아에게 주었습니다(막6:14-29).
인류의 역사상 자기의 어린 딸에게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을 시킨 어머니들 중에 헤로디아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앞에 열거한 모든 부모들은 자기 자식들에게 좋은 거울이 되지 못했습니다.
논나(Nonna)는 4세기 정통신앙의 기수인 그레고리 나지안젠(Gregory Nazianzen)의 어머니 였습니다. 논나는 나지안젠을 신앙으로 길렀습니다. 낳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께 바치기로 서약하고 기도로 난 아들을 기도와 성결된 생활로 길렀습니다.
그녀는 특히 기도에 전심했고 언제나 난관을 이기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며 키웠습니다. 그녀는 철저한 성결주의자로서 이교 여자들과는 말도 안하고 악수도 안 했다고 합니다. 우상의 제물은 절대 먹지 않았고, 이교 신전은 쳐다보지도 않았고, 그 땅에 발도 들여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물론 극장은 다니지도 않았고, 성찬예식을 베푸는 상에는 등도 돌리지 않았으며, 죽을 때는 한 손으로 제단을 붙잡고 다른 손은 하늘을 향해서 들고 ”오 나의 임금이신 그리스도시여 나에게 은혜를 베푸소서”라고 했다고 합니다.
안두사(Anthusa)는 초대 교부 크리소스톰의 어머니 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들에게 믿음의 씨를 뿌렸습니다. 그녀의 성경 교육과 훈계 때문에 크리소스톰은 이교의 유혹을 물리칠 수가 있었습니다.
크리소스톰은 언젠가 ”아 ! 신자 중 얼마나 훌륭한 여인이 있는고 !”라고 그의 어머니에게 찬사를 보냈습니다.
모니카(Monica)는 어거스틴의 어머니입니다. 어거스틴은 33세까지 이교와 방탕한 생활을 계속하였으나 어머니 모니카의 많은 눈물과 기도는 헛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어거스틴은 회개하고 어머니 품으로 돌아 왔습니다.
56세 때 세상을 떠날 때 모니카는 아들을 향해서 ”내 몸은 어디 묻어도 좋다. 그러나 한 가지 부탁은 네가 어디 있든지 네 여호와 하나님 제단에서 나를 기억해 달라는 것이다. ”라고 유언을 했다고 합니다.
레오니데스(Leonides)는 초대 교부 오리겐의 아버지 였습니다. 훌륭한 어머니 밑에서 훌륭한 자식이 나는 것이 대부분인데 오리겐은 자기 아버지 레오니데스 때문에 유명한 교부가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오리겐에게 성경 전체를 암송토록 가르쳤습니다.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4-5살 때 시편을 암송했고, 10살 때에 성경 전체를 암송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는 오리겐이 너무 귀여워 잘 때 그의 가슴을 성신의 전이라고 하면서 키스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가 17살 때 세베루스(Severus)의 박해로 그의 아버지가 감옥에 들어갔을 때(주후202년)아버지에게 가족 때문에 예수를 부인하지 말라고 권고하기까지 했고 아버지 대신 죽기까지 하겠다는 것을 그의 어머니가 옷을 감춰서 막은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자식에게 깨어지고 일그러진 거울이 되어 자식을 불행하게 만든 부모가 있는가 하면, 자식에게 깨끗하고 선명한 거울이 되어 자식을 역사적으로 빛난 인물로 만든 부모들도 있습니다.
2. 어린이는 어른의 거울입니다.
스펜서(Spencer)는 일찍이 ”아이는 부모의 거동을 비친 거울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어른이 아이의 거울이라는 말은 아이들이 부모를 보고 자신을 가꾸어 간다는 말입니다. 아이는 부모의 거동을 비친 거울이라는 말은 아이들의 행동에 부모가 다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사람의 눈동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사람의 눈동자 속에 들여다보는 사람의 형상이 뚜렷하게 형성됩니다.
자식의 피와 세포 속에는 부모의 유전인자(DNA)가 그대로 흐르고 있습니다. 다른 것은 다 속여도 그것만은 절대 속이지 못합니다. 생리적인 유전인자 뿐 아니라 사상과 인격과 행동의 유전인자까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가끔은 다를 수도 있습니다. ”누가 낳았느냐”보다는 ”누가 길렀느냐”가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보고 자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인이 길렀느냐, 독일인이 길렀느냐, 네덜란드인이 길렀느냐, 한국인이 길렀느냐에 따라서 어린이의 생활은 엄청나게 달라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나 젊은이들의 말과 행동을 보면 어느 나라 어떤 사람이 길렀는가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노아가 기른 것과 네피림이 기른 것이 차이가 있고, 셈이 기른 것과 함이 기른 것의 차이가 분명히 있습니다. 아합이 기른 것과 히스기야가 기른 것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세벨이 기른 것과 드보라가 기른 것은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1968년 기독신문의 ”마라나다(Maranatha,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란에 ”어린이들은그들이 사는데서 배운다. ”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었습니다.
”애가 원망가운데서 살면 비난만 배우고, 애가 적대 가운데서 살면 싸움만 배우고, 애가 조롱가운데서 살면 수줍어하는 것만 배우고, 애가 격려가운데서 살면 자신감을 배우고, 애가 관용가운데서 살면 인내를 배우고…
애가 칭찬가운데서 살면 존경하는 것을 배우고, 애가 받아들이는 가운데서 살면 사랑하는 것을 배우고, 애가 정직한 가운데서 살면 진리가 무엇임을 배우고, 애가 안전가운데서 살면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신임하는 것을 배운다. ”라고...
3.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삼손의 아비 마노아는 아들을 낳으리라는 계시를 받고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오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오리이까”(삿14:12)라고 여호와 하나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강아지 새끼 한 마리를 한 마리 길러도 ”어떻게 기를까”를 염려하게 됩니다. 하물며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로 받은 자식을 기르는데 신경이 쓰이지 않겠습니까 마노아의 질문은 오늘 우리들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내가 여인에게 말한 것들을 그가 다 삼가서 ”포도나무의 소산을 먹지 말며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아서 내가 그에게 명한 것은 다 지킬 것이니라”(삿13:13-14)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기르라고 하셨습니다.
D. L. 무디는 어린이들을 항상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집회 때 절대로 어린아이들을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열린 집회 때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안내하는 사람이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어린 소년을 쫓아냈습니다.
어린 소년은 예배당 계단 앞에 앉아 훌쩍 훌쩍 울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무디가 다가와 ”왜 우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소년은 무디에게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무디는 소년에게 자기 옷자락에 매달리라고 했습니다. 무디는 그 아이를 데리고 강단까지 올라갔습니다. ”이 소년이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후에 그 소년이 미국의 유명한 전도자 ”폴 레이드(Paul Rader)”였습니다.
바울은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고 말씀했습니다. 자녀를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끝맺는 말
부모가 자식에 대해서 큰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그렇다고 포기해서도 안됩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욕심이지나치면 실망을 하게 되고요, 일찍 포기를 하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를 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식에게 큰 기대를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자식을 기르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린이는 미래의 거울입니다. 어린이 자신의 미래의 거울이며, 한 가정의 미래의 거울입니다. 한 민족의 미래의 거울이며, 한 나라의 미래의 거울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인류의 미래의 거울이며, 영원한 나라의 영원한 미래의 거울입니다.
농사는 일년에 한번씩의 기회가 있지만 자식은 평생에 한번밖에 기회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자식을 낳아 기르는 일에 한번 실패를 하면 다시는 어떻게 해볼 기회를 상실하게 됩니다.
자식을 부모의 입맛대로 기르려고 하면 실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모의 욕심과 허영에 사로잡혀, 부모의 주관과 지나친 기대를 가지고 기르다가 자식을 망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신앙이 없는 부모들은 세상 적인 기대를 가지고 자식을 기릅니다. 그러나 신앙을 가진 우리 크리스천 부모들은 신앙적인 기대를 가지고 자식을 길러야 합니다.
예수님은 ”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눅2:40)는 말씀대로 이상적인 한 아이로 자라나셨습니다. 한 가정의 보배로운 자식으로, 장남으로 성장하셨습니다.
시편 127:3-5절에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자식을 예수님 처럼 건강하게, 지혜롭게, 은혜스럽게 기르는 것이 부모들의 소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자라게 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로 기르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1. 어른은 어린이의 거울입니다.
거울의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구석기 시대의 거울, 신석기 시대의 거울, 청동기 시대의 거울, 그리고 문명시대의 거울이 있습니다.
문명시대의 거울이라도 깨어진 거울, 때묻은 거울, 버려진 거울, 잘 정리 정돈된 거울등등의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거울을 보느냐에 따라서 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깨어진 거울을 통해서는 자기의 일그러진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때묻은 거울을통해서는 자기의 희미하고, 불확실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버려지거나 방치된거울을 보고는 자기 자신의 버려진 모습이나 방치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며, 어른은 어린이의 거울입니다. 자식은 부모를 보고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게 되고, 어린이는 어른을 보고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게됩니다.
파경된 부모를 보고 그 부모에게서 자식이 무엇을 발견 할 수 있겠습니까 일그러지고 망가진 부모를 보고 자식이 무엇을 발견할 수 있겠습니까 막되 먹은 부모를 보고 자식이 무엇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미가의 어머니는 은 일천 일백을 아들에게 도적 맞았습니다. 아들이 어미에게 은을 도로 가져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은 이 백을 은장색에게 주어 우상을 만들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우상을 아들을 위하여 집에 두어 신당을 차리게 했습니다(삿17:3-5).
엘리 제사장은 아들들이 범죄하고 타락한 생활을 하여도 금하지 않고 방치했습니다. 그 결과 엘리의 가정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갔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가니 그들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들이었습니다(삼상3:13).
아하시아의 어머니 아달랴는 오므리의 손녀 였습니다. 유다왕 아하시야가 아합의 집같이 악을 행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는 그의 어머니 아달랴 였습니다. 아달랴는 친정에서 배웠던 아합의 악행을 그의 아들에게 전수를 했습니다. 결국 아들을 망하게 한 사람은 다른 이가 아닌 자기 어머니 였습니다.
유다왕 므낫세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것을 본받아 그의 아비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산 당을 다시 세우며, 바알들을 위하여 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일월 성신을 숭배했습니다.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그 아들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 또 점치며 사술과 요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그 진노를 격발하였습니다(대하33:1-6).
헤로디아는 자기의 죄를 책망하는 세례 요한을 죽이기로 결심했습니다. 자기의 딸을 시켜 헤롯 대왕에게 세례요한의 목을 베어 달라고 간청을 하게 했습니다. 세례요한의머리를 소반에 담고 그의 어머니 헤로디아에게 주었습니다(막6:14-29).
인류의 역사상 자기의 어린 딸에게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을 시킨 어머니들 중에 헤로디아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앞에 열거한 모든 부모들은 자기 자식들에게 좋은 거울이 되지 못했습니다.
논나(Nonna)는 4세기 정통신앙의 기수인 그레고리 나지안젠(Gregory Nazianzen)의 어머니 였습니다. 논나는 나지안젠을 신앙으로 길렀습니다. 낳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께 바치기로 서약하고 기도로 난 아들을 기도와 성결된 생활로 길렀습니다.
그녀는 특히 기도에 전심했고 언제나 난관을 이기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며 키웠습니다. 그녀는 철저한 성결주의자로서 이교 여자들과는 말도 안하고 악수도 안 했다고 합니다. 우상의 제물은 절대 먹지 않았고, 이교 신전은 쳐다보지도 않았고, 그 땅에 발도 들여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물론 극장은 다니지도 않았고, 성찬예식을 베푸는 상에는 등도 돌리지 않았으며, 죽을 때는 한 손으로 제단을 붙잡고 다른 손은 하늘을 향해서 들고 ”오 나의 임금이신 그리스도시여 나에게 은혜를 베푸소서”라고 했다고 합니다.
안두사(Anthusa)는 초대 교부 크리소스톰의 어머니 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들에게 믿음의 씨를 뿌렸습니다. 그녀의 성경 교육과 훈계 때문에 크리소스톰은 이교의 유혹을 물리칠 수가 있었습니다.
크리소스톰은 언젠가 ”아 ! 신자 중 얼마나 훌륭한 여인이 있는고 !”라고 그의 어머니에게 찬사를 보냈습니다.
모니카(Monica)는 어거스틴의 어머니입니다. 어거스틴은 33세까지 이교와 방탕한 생활을 계속하였으나 어머니 모니카의 많은 눈물과 기도는 헛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어거스틴은 회개하고 어머니 품으로 돌아 왔습니다.
56세 때 세상을 떠날 때 모니카는 아들을 향해서 ”내 몸은 어디 묻어도 좋다. 그러나 한 가지 부탁은 네가 어디 있든지 네 여호와 하나님 제단에서 나를 기억해 달라는 것이다. ”라고 유언을 했다고 합니다.
레오니데스(Leonides)는 초대 교부 오리겐의 아버지 였습니다. 훌륭한 어머니 밑에서 훌륭한 자식이 나는 것이 대부분인데 오리겐은 자기 아버지 레오니데스 때문에 유명한 교부가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오리겐에게 성경 전체를 암송토록 가르쳤습니다.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4-5살 때 시편을 암송했고, 10살 때에 성경 전체를 암송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는 오리겐이 너무 귀여워 잘 때 그의 가슴을 성신의 전이라고 하면서 키스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가 17살 때 세베루스(Severus)의 박해로 그의 아버지가 감옥에 들어갔을 때(주후202년)아버지에게 가족 때문에 예수를 부인하지 말라고 권고하기까지 했고 아버지 대신 죽기까지 하겠다는 것을 그의 어머니가 옷을 감춰서 막은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자식에게 깨어지고 일그러진 거울이 되어 자식을 불행하게 만든 부모가 있는가 하면, 자식에게 깨끗하고 선명한 거울이 되어 자식을 역사적으로 빛난 인물로 만든 부모들도 있습니다.
2. 어린이는 어른의 거울입니다.
스펜서(Spencer)는 일찍이 ”아이는 부모의 거동을 비친 거울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어른이 아이의 거울이라는 말은 아이들이 부모를 보고 자신을 가꾸어 간다는 말입니다. 아이는 부모의 거동을 비친 거울이라는 말은 아이들의 행동에 부모가 다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사람의 눈동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사람의 눈동자 속에 들여다보는 사람의 형상이 뚜렷하게 형성됩니다.
자식의 피와 세포 속에는 부모의 유전인자(DNA)가 그대로 흐르고 있습니다. 다른 것은 다 속여도 그것만은 절대 속이지 못합니다. 생리적인 유전인자 뿐 아니라 사상과 인격과 행동의 유전인자까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가끔은 다를 수도 있습니다. ”누가 낳았느냐”보다는 ”누가 길렀느냐”가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보고 자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인이 길렀느냐, 독일인이 길렀느냐, 네덜란드인이 길렀느냐, 한국인이 길렀느냐에 따라서 어린이의 생활은 엄청나게 달라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나 젊은이들의 말과 행동을 보면 어느 나라 어떤 사람이 길렀는가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노아가 기른 것과 네피림이 기른 것이 차이가 있고, 셈이 기른 것과 함이 기른 것의 차이가 분명히 있습니다. 아합이 기른 것과 히스기야가 기른 것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세벨이 기른 것과 드보라가 기른 것은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1968년 기독신문의 ”마라나다(Maranatha,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란에 ”어린이들은그들이 사는데서 배운다. ”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었습니다.
”애가 원망가운데서 살면 비난만 배우고, 애가 적대 가운데서 살면 싸움만 배우고, 애가 조롱가운데서 살면 수줍어하는 것만 배우고, 애가 격려가운데서 살면 자신감을 배우고, 애가 관용가운데서 살면 인내를 배우고…
애가 칭찬가운데서 살면 존경하는 것을 배우고, 애가 받아들이는 가운데서 살면 사랑하는 것을 배우고, 애가 정직한 가운데서 살면 진리가 무엇임을 배우고, 애가 안전가운데서 살면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신임하는 것을 배운다. ”라고...
3.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삼손의 아비 마노아는 아들을 낳으리라는 계시를 받고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오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오리이까”(삿14:12)라고 여호와 하나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강아지 새끼 한 마리를 한 마리 길러도 ”어떻게 기를까”를 염려하게 됩니다. 하물며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로 받은 자식을 기르는데 신경이 쓰이지 않겠습니까 마노아의 질문은 오늘 우리들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내가 여인에게 말한 것들을 그가 다 삼가서 ”포도나무의 소산을 먹지 말며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아서 내가 그에게 명한 것은 다 지킬 것이니라”(삿13:13-14)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기르라고 하셨습니다.
D. L. 무디는 어린이들을 항상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집회 때 절대로 어린아이들을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열린 집회 때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안내하는 사람이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어린 소년을 쫓아냈습니다.
어린 소년은 예배당 계단 앞에 앉아 훌쩍 훌쩍 울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무디가 다가와 ”왜 우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소년은 무디에게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무디는 소년에게 자기 옷자락에 매달리라고 했습니다. 무디는 그 아이를 데리고 강단까지 올라갔습니다. ”이 소년이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후에 그 소년이 미국의 유명한 전도자 ”폴 레이드(Paul Rader)”였습니다.
바울은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고 말씀했습니다. 자녀를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끝맺는 말
부모가 자식에 대해서 큰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그렇다고 포기해서도 안됩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욕심이지나치면 실망을 하게 되고요, 일찍 포기를 하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를 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식에게 큰 기대를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자식을 기르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린이는 미래의 거울입니다. 어린이 자신의 미래의 거울이며, 한 가정의 미래의 거울입니다. 한 민족의 미래의 거울이며, 한 나라의 미래의 거울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인류의 미래의 거울이며, 영원한 나라의 영원한 미래의 거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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