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하나님나라의 자녀
본문
오늘이 어린이주일로 지키고 있고, 저희 어린이들은 따로 예배를 드리고 저희들끼리만 따로 어른예배를 드립니다. 아쉽기는 합니다만 한편 우리끼리 드리면서 오늘 우리의 어린이들을 가슴에 품고 예배를 드려보십시다.
최근에 우리의 관심사를 끄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그 중에 하나가 우리의 전통적인 가정이 과거에는 대가족 제도가 있었습니다만 자꾸 작아지고 핵화되면서 핵가족이 되고 사랑이 자꾸 식어져 가는 것 같고 가족 간의 인간관계가 자꾸 둔화되는 것 같고 그래서 걱정입니다.
출산율도 적어지고 핵가족에 엄마, 아빠의 어깨는 자꾸 무거워져가고, 과거에 할머니가 하던 일, 할아버지가 하던 일을 다 엄마, 아빠가 나눠서 해야 되니까 사실 핵가족이 좋은 것 같지만 무겁습니다. 그래도 큰 가족일 때 하던 가정의 살림을 작은 가정이라도 똑같이 하게 되기 때문에 굉장히 문제가 많이 있는 걸 여러분은 아십니다.
서양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산업화가 되면서 이런 현상이 자꾸 나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우리가 사랑하는 자녀들과 또 공경받는 부모들이 함께 아름답고 따뜻한 가정을 이룰 수 있을까 모두의 관심일 겁니다. 조금 오래된 책이긴 합니다. 91년도에 출간된 책이긴 한데 우리나라에 아주 심금을 울려준 책 하나가 번역되어 소개된 일이 있습니다.
저자는 스웨덴의 여자입니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라고 언어학도 연구하고 토속 문화를 연구해서 논문을 쓰려고 지금의 티베트 지역에 갔다가 티베트에서 사는 문화생활, 전통, 가옥, 가정 이야기가 너무 좋아서 연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눌러 살았읍니다. 티베트에 갔던 스웨덴 여성인데 이 여성이 고백적 생활 수기를 책으로 내놨습니다. 본래 영어 제목은 “Ancient Futures: Learning from Ladakh” (Rider 1992) 입니다.
우리 말 번역에는 “오래된 미래”라 했고, 그렇게 해서 96년도에 나왔는데 최근에 제가 이 책을 입수해서 열심히 읽어보았습니다. 작은 티베트라고 불리는 라다크라 이름하는 곳에 가서 함께 살고 먹고 마시고 생활하다 보니 자기가 서구 출신의 한 여성으로서 또 핵가족의 전통을 받은 사람으로서 아직 물질이 풍족하진 않지만 그래도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가족이 있고 공동체가 있고 따뜻함이 있고 사랑이 있어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서 평화롭게 사는 사람들을 보고,
고도의 산업사회에 살아가는 자기가 배울 점이 뭔가, 충격을 받아서 쓴 이야기입니다. 이 분의결론은 생태학적으로 균형이 이루어진 삶을 이루고 있고, 윗세대 아랫세대 중간세대 합해서 가정을 통해서 사회적 조화가 이루어지고 있고, 이 사람들 보고 사회적 균형도 깨라, 생태적 균형도 깨라, 이렇게 하는 우리 시대의 산업화가 얼마나 부질없는 짓입니까, 하고 고발하는 내용의 책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미 다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여기서 빼겠습니다. 우리에게도 한때는 대가족 제도가 있었고, 할아버지할머니 세대와 손자손녀, 엄마아빠 세대가 함께 어울려 지내면서, 물론 윗사람에 대해서 아랫사람들이 조금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모두가 한 가족의 공동체로 서로 사랑하며 의지하며 지낼 수 있었던 아름다운 전통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저희 나라에도 이런 전통이 다 깨져가는 것 같고 그냥 핵가족만 있어가지고 살아가는데, 사실 핵가족의 몸은요, 어깨는요, 자꾸 무거워져 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학원에, 학교에 전념하다보니, 만나기도 어렵고. 이걸 산업화의 산물이라고 해서 행복하다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요, 오래 만에 고향을 방문해 가 보았더니 자기 친구가 변호사로 일하면서 아이를 잘 기르고 있는데 이 친구가 하는 이야기를 옆에서 들었다는 거예요. 뭐냐고 하니까 갓난 아이가 먹고 싶다고 자꾸 울면, 울 때마다 우유를 주면 아이가 성격이 잘 형성이 안 된다. 그러니까 시간 정해 놓고 그 때만 먹을 것을 주어야 한다.
그래야 규칙적 성격이 형성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생활인줄 알고 지냈는데 한번은 갓난 아이가 잠에서 깨가지고 배고프니까 막 칭얼대면서 울더랍니다. 옆방에 있던 엄마는 아직 우유먹일 시간이 안 되었으니까 못 주고 있는데, 애가 너무 처량하게 우니까 엄마도 같이 울었다는 게에요. 울면서 우유는 못 줘요. 시간이 안 되었다고. 생리현상이 내뿜는 아이의 욕구를 일정 시간을 정해놓은 리듬 때문에 엄마는 울지만 줄 수가 없는 것이 작은 이야기 같지만 오늘날 가정사회의 한 단면입니다.
또 한 티베트 여성이 영국을 방문하고서 느낀 것을 적어 놓은 것을 인용했습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산업화가 잘 발달된 영국에 와서 이곳저곳을 돌아봤는데, 영국 사람들이 사는 생활모습은 아주 간접적인 방식으로만 사는 것 같다는 거에요. 무슨 뜻이냐 하면, 자연이 너무 아름답다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관해서 글도 많고 노래도 있고 이야기도 많고,
그리고 집집마다 보니까 화분에 꽃을 잘 기르고 있고 방에 들어가 봤더니 리빙룸이나 벽마다 사진, 그림들이 붙어 있는데 나무 그림, 숲의 그림, 산 그림, 강물 그림, 아름다운 자연 풍경으로 된 화폭들을 담은 그림이 붙어 있었고, 그리고 TV를 켜면 자연에 관한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
프로그램이 많은데 정작 인간들은 자연과 접촉은 안 하며 살면서 자연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보고 놀고 있더라는 거에요. 자연은 몸으로 사는 것이지, 자연은 우리가 살아야 할 것에 관한 이야기의 주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것이 말하자면 산업화가 덜 된 사람으로서 느끼는 산업사회에 대한 하나의 아쉬움이더라는, 그런 이야기를 썼다고 인용하고 있습니다.
혹시 그것이 오늘의 우리의 삶의 모습은 아닌가요 도시화가 되어 가면서, 아파트에 살면서, 자연이 너무 멀리 있어서, 자연을 대상화하고 객관화 하고 살기는 하는데, 자연의 몸통과 우리 몸통이 교류하면서 사는 것은 너무 적은 것 아닙니까
제가 사실은 자연 그 자체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은 우리 어린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어린이는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라고 했습니다. 혹시 우리 어린이들에 관해서, 어린이들의 학교 공부에 관해서, 어린이들의 학원에 관해서, 어린이들의 생활에 관해서 우리가 많은 것들을 걱정하면서 삽니다. 부모된 여러분,
혹시 아무리 자기가 낳은 자식을 보면서, 자식에 관해서 그렇게 관심을 많이 갖기는 하지만, 자식과 몸을 비비고 그렇게 살아가기가 쉽습니까 자연은 그만 두고라도, 사람과 몸을 비비고 끌어 안고 살고 싶지는 않은지요 그렇게 어린이 처럼 살고 싶은 생각이 많으십니까 자연은 철마다 바뀌어도 내 삶의 한 부분이듯이, 어린이는 어른들의 그리고 부모들의 삶의 한 부분이고 요소이지 객관화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이상한 풍조가 생겨났습니다. 따로따로의 삶의 방식입니다. 분할, 핵분열, 핵가족 분열, 그런 것들이죠. 지금 핵도 핵융합으로 에너지를 만들자고 하는데 왜 사람 융합은 잘 안됩니까 자꾸 분열되는 것이 독립이라고 하고 아름답다고 하는데 얼마나 힘듭니까
제가 언젠가 교인 여러분께 이런 말씀 드린 것 같습니다. 사실 이렇게 핵가족화 되고 도시화되고 문명화되고 살다보니 만남이 힘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어딘가에서는 만나고 서로간에 인간성, 가족성, 공동체성을 회복해야 되겠는데, 현대의 핵가족을 다 없애고 옛날처럼 대가족으로 다시 뭉치게 할 수 있는 방도는 없습니다.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임시적인 방편은 있습니다. 학원에서 만나게 할 수 있고, 학교에서 만나게 할 수 있고, 할아버지 집에서 만나게, 아니면 어느 별장에서 만나게 할 수는 있지만, 그보다 훨씬 더 좋은 - 임시적이긴 합니다만- 융합의 장소가 있습니다. 제가 교회를 추천합니다.
가족들이 흩어져서 여러 교회를 다닐 수도 있고, 안 다닐 수도 있고, 혼자 다닐 수도 있고, 사정은 다양합니다. 심지어 젊은 가족들은 부모님 모시려고 효도하고 싶어도 너무 바빠서 효도할 길이 없습니다. 부모는 자식, 손자 사랑하고 싶어도 너무 바쁘고 생활 리듬이 달라서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너무 적습니다. 그래서 바쁘다고만 합니다.
그런데 바쁜 것 하나 해결해 봅시다. 매 주일은 너무 힘들고요, 한 달에 한 번, 계절별로 한 번, 아니면 아무리 못해도 6개월만에 한 번씩은 모든 가족이 한번 대가족처럼 모여 봅시다. 혹시 경동교회가 좋으시면 여기 모이십시다. 여기 우리 교회가 안 되면, 이 순서를 바꿔서 우리 아들이 다니는, 딸이 다니는 교회에 가셔서 전 가족이 모여보세요. 같이 예배드리고, 같이 말씀 듣고, 같이 찬송해 보고, 같이 국수라도 먹고, 밥 먹고, 이야기하고, 가족뿐만 아니라 가족들 친척들과 같이 모여서 사랑 이야기 나누고, 공동체 이야기 나누고,
이렇게 해서 한 번 신앙 중심으로 하는 교회 공동체 중심으로 하는 가족모임을 가져 보세요. 가족의 따뜻함을 회복할 수 있지않겠습니까 자꾸 핵가족을 탓하지만 말고 가능한 융합의 방법을 연구해 봅시다. 그렇게 해서 저희 교회에 많이 나오시면 좋지만, 그렇지 않으시면 다른 교회 가서라도, 다른 곳에 가서라도 예배드리면서 가족 모임을 만들어 보십시다.
어린이날요 일년에 어린이날 기억하면 뭘 합니까 어린이날, 어버이날 말고요, 만남이 있는 어린이날, 호흡이 함께있는 어린이날, 그런 어머니날, 어버이날을 같이 한번 만들어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핵가족화 되고 우리가 살기가 참 어려워지면서 뼈대와 중심이 자꾸 없어져 가는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제가 여러분과 제 자신에게 바람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낳은 자식은, 어린이들은 시장의 상품으로 치면 명품이어야 합니다. 동의하시죠 기왕이면 헐값 상품 말고 명품이어야 된다.
시장에 나온 명품은 좀 비싸긴 합니다. 그러나 명품이 시장도 형성하고, 또 시장이 명품도 만들어냅니다. 그렇게 경제가 어려워도 명품시장만은 불황이 없습디다. 사실이지요. 특별히 광고나 홍보를 하지 않아도 입에서 입으로, 사람에서 사람으로 소문이 나기에 명품시장만은 튼튼합니다. 물건 이야기해서 안됐습니다만 명품은 오래갑니다. 명품이 되면 오랜기간을 거쳐 브랜드 가치 때문에 불황도 없이 계속 사랑을 받아갈 수 있습니다.
인간사회를 인간시장이라고 해 봅시다. 우리 인간사회에서 우리 자녀들은, 우리 어린이들은 명품이고자 하고 명품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저도 저희 자식들이 명품자식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명품이라고 하기는 어렵고, 우리 어린이들은 “명인”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지요. 명인이 되고 싶으십니까 아름다운 명산이 있고, 명강도 있고, 명품도 있는데, 우리 어린이들은 전부 명인이어라. 그런 바람입니다. 어떻게 하면 명인일 수 있습니까 브랜드는 뭡니까 명인의 중심은 무엇이고, 그 핵심 가치는 뭡니까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오래된 이야기 가운데 오늘 신명기서에 주신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아 들어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어른들아 들어라. 이스라엘 어린이들아, 들어라, 하고 신명기서에 쓰여 있는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한 분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고 평생동안 살아라. 여호와 하나님한테 중심을 딱 박고 거기서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살아라. 그러면 명인이 되느니라고 말입니다.
이유는 주님 안에서 살기로 결단이 이루어지면 주님이 우리 안에서 사시기 때문입니다. 단순 소박한, 그러나 아주 진실이 있는 선언입니다. 계속해서 신명기가 말합니다. “주 여호와 하나님만 섬겨라”. 주 여호와 하나님이 그대들을 사랑할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과 한 몸이 되어 살아라. 한 분이신 여호와 하나님, 그 여호와 하나님이 그대들 속에 살면서 중심을 이루어 주실 것이다.
나갈 때나 들어올 때나 잠잘 때나 일할 때나 언제든지 그 분을 중심 삼아라.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명령이니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들으신대로 신명기 6: 4-9절까지 말씀은 전문용어로 이렇게 말합니다. 히브리말로 ‘쉐마’ (Shema) 이렇게 말하는데, 이 ‘쉐마’라는 말은 서양말로 흘러 들어와서 영어로도 ‘쉐마’, 독일말로도 ‘쉐마’라고 하고, ‘대강, 대강령’ 뭐 그런 뜻입니다. 히브리말로 ‘쉐마’라는 말은 ‘교육 대강령’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본래 뜻은 성경말씀에 있는대로 “이스라엘아, 들어라 (쉐마)” , 그렇습니다. 그 말을 우리가 ‘강령’이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행복, 가정의 축복, 어린이들의 미래, 이 모든 것을 합쳐서 진실된 복이라고 한다면,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쉐마’는 바로 이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중심으로 뭉쳐서 여호와 하나님이 가정의 중심이 되게 하여라. 그러면 사랑 받을 수 있느니라.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도 자기의 마음을 다 우리에게 주시고, 주님의 뜻을 우리를 통해서 실천하시고, 주님께서 자기 힘을 우리에게 주셔서 누워 있을 때나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일어나서 일 할 때나 언제든지 여호와 하나님은 동행하여 주시느니라고 말입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자녀를 사랑하라는 계명의 핵심입니다. 오늘 그렇게 해 보십시다. 자녀에 관해서 이야기만 하시지 마시고 오늘 한번 우리 스스로 자녀들이 되어 보십시다. 우리의 자녀들은 우리와 달리 어리면 어릴수록 꾸밈이 없습니다.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배고파도 배고프지 않다고 꾸밉니다. 자녀들은 겉치레 하지 않습니다. 무조건 부모를 신뢰합니다. 믿어봅니다. 그리고 달라고 합니다. 잘못은 잘못대로 고백합니다. 그리고 기쁘면 기쁘다고 웃습니다. 우리는 기뻐도 기뻐하지 않고 울음이 나와도 울지 않고 얼마나 꾸미고 회칠한 무덤처럼 살아갑니까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데리고 예수 앞에 왔더니 제자들이 우리 귀한 선생님 말씀하시는데 시끄럽게 애들이 떠든다고 나가라고 밖으로 물리쳤습니다. 그랬더니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어린이들이 나한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거기까지는 예의 있는 말씀이고, 그 다음에 하는 말씀이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여호와 하나님나라 못 간다’고 하십니다. 어린이가 되라는 말은 우리가 다시 엄마 뱃속에 들어가서 다시 태어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럴 수가 없지요.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영을 받아서 새로운 사람으로 변하면 됩니다. 잘못한 거 있으면 그냥 여호와 하나님께 이실직고 합시다. 꾸미지 말고요. 거짓말 하지 말고요,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좀 합시다. 좋으면 좋다고 춤 좀 춥시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진실과 지성을 보이면 그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어린이처럼 순박하다고, 진정이 있다고 아름답다고, 사망의 골짜기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지켜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감사가 있다고, 여호와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자기 자녀로 삼고 싶어 하십니다.
제와 여러분이 우리 아이들을, 어린이들을 몸으로 낳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가슴으로 낳으시면서 하시는 말씀, “나는 함께 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진정 속의 말, 진실 속의 말, 순박함 속의 말, 거죽이 아닌 진정함 속에만 함께 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나”를 기둥으로 삼아서 진실이 있는 믿음이 있는, 희망이 있는, 사랑이 있는, 신앙의 대가족 속에서 행복하게 삶을 누리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오늘 주시고자 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어린이날 특별히 할 것 없고요, 오늘 어린이날에, 어린이 문제를 생각하기 전에 우리가 한 번 어린이가 되어 봅시다. 위치 좀 바꿔 봅시다. 우리가 어린이처럼, 우리가 자식들처럼, 다음 주일에 그렇게 되면 아마 우리 자식들이 우리들 부모처럼, 우리들 어른처럼 될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서로 만나서 그 때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오늘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어린 아이와 같지 않으면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요.
아까 제가 인용한 라다크 이야기에 보니까 적어도 어린이와 여성과 노인들이 자연스럽게 존경받는 사회가 아릅답답니다. 그것이 진실로 성경말씀에 있는 사회가 아닙니까. 이렇게 저자가 고백했듯이, 오늘 우리 모두가 다 만족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 사회. 우리 교회는요 바로 이런 사람들이 모인 믿음과 사랑과 희망의 공동체입니다. 조건은 이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우리 자식들이 되어봅시다. 오늘은 그렇게 되어 보십시다.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가 되신 것처럼.
오늘 우리가 성만찬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습니다. 존귀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서 고통을 끌어안고 기쁨을 선사하셨습니다. 먹고 마실 때 우리도 한번 어린이가 되십시다. 그리고 사랑과 구원의 아름다움을 서로 찬양해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아멘.
최근에 우리의 관심사를 끄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그 중에 하나가 우리의 전통적인 가정이 과거에는 대가족 제도가 있었습니다만 자꾸 작아지고 핵화되면서 핵가족이 되고 사랑이 자꾸 식어져 가는 것 같고 가족 간의 인간관계가 자꾸 둔화되는 것 같고 그래서 걱정입니다.
출산율도 적어지고 핵가족에 엄마, 아빠의 어깨는 자꾸 무거워져가고, 과거에 할머니가 하던 일, 할아버지가 하던 일을 다 엄마, 아빠가 나눠서 해야 되니까 사실 핵가족이 좋은 것 같지만 무겁습니다. 그래도 큰 가족일 때 하던 가정의 살림을 작은 가정이라도 똑같이 하게 되기 때문에 굉장히 문제가 많이 있는 걸 여러분은 아십니다.
서양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산업화가 되면서 이런 현상이 자꾸 나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우리가 사랑하는 자녀들과 또 공경받는 부모들이 함께 아름답고 따뜻한 가정을 이룰 수 있을까 모두의 관심일 겁니다. 조금 오래된 책이긴 합니다. 91년도에 출간된 책이긴 한데 우리나라에 아주 심금을 울려준 책 하나가 번역되어 소개된 일이 있습니다.
저자는 스웨덴의 여자입니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라고 언어학도 연구하고 토속 문화를 연구해서 논문을 쓰려고 지금의 티베트 지역에 갔다가 티베트에서 사는 문화생활, 전통, 가옥, 가정 이야기가 너무 좋아서 연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눌러 살았읍니다. 티베트에 갔던 스웨덴 여성인데 이 여성이 고백적 생활 수기를 책으로 내놨습니다. 본래 영어 제목은 “Ancient Futures: Learning from Ladakh” (Rider 1992) 입니다.
우리 말 번역에는 “오래된 미래”라 했고, 그렇게 해서 96년도에 나왔는데 최근에 제가 이 책을 입수해서 열심히 읽어보았습니다. 작은 티베트라고 불리는 라다크라 이름하는 곳에 가서 함께 살고 먹고 마시고 생활하다 보니 자기가 서구 출신의 한 여성으로서 또 핵가족의 전통을 받은 사람으로서 아직 물질이 풍족하진 않지만 그래도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가족이 있고 공동체가 있고 따뜻함이 있고 사랑이 있어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서 평화롭게 사는 사람들을 보고,
고도의 산업사회에 살아가는 자기가 배울 점이 뭔가, 충격을 받아서 쓴 이야기입니다. 이 분의결론은 생태학적으로 균형이 이루어진 삶을 이루고 있고, 윗세대 아랫세대 중간세대 합해서 가정을 통해서 사회적 조화가 이루어지고 있고, 이 사람들 보고 사회적 균형도 깨라, 생태적 균형도 깨라, 이렇게 하는 우리 시대의 산업화가 얼마나 부질없는 짓입니까, 하고 고발하는 내용의 책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미 다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여기서 빼겠습니다. 우리에게도 한때는 대가족 제도가 있었고, 할아버지할머니 세대와 손자손녀, 엄마아빠 세대가 함께 어울려 지내면서, 물론 윗사람에 대해서 아랫사람들이 조금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모두가 한 가족의 공동체로 서로 사랑하며 의지하며 지낼 수 있었던 아름다운 전통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저희 나라에도 이런 전통이 다 깨져가는 것 같고 그냥 핵가족만 있어가지고 살아가는데, 사실 핵가족의 몸은요, 어깨는요, 자꾸 무거워져 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학원에, 학교에 전념하다보니, 만나기도 어렵고. 이걸 산업화의 산물이라고 해서 행복하다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요, 오래 만에 고향을 방문해 가 보았더니 자기 친구가 변호사로 일하면서 아이를 잘 기르고 있는데 이 친구가 하는 이야기를 옆에서 들었다는 거예요. 뭐냐고 하니까 갓난 아이가 먹고 싶다고 자꾸 울면, 울 때마다 우유를 주면 아이가 성격이 잘 형성이 안 된다. 그러니까 시간 정해 놓고 그 때만 먹을 것을 주어야 한다.
그래야 규칙적 성격이 형성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생활인줄 알고 지냈는데 한번은 갓난 아이가 잠에서 깨가지고 배고프니까 막 칭얼대면서 울더랍니다. 옆방에 있던 엄마는 아직 우유먹일 시간이 안 되었으니까 못 주고 있는데, 애가 너무 처량하게 우니까 엄마도 같이 울었다는 게에요. 울면서 우유는 못 줘요. 시간이 안 되었다고. 생리현상이 내뿜는 아이의 욕구를 일정 시간을 정해놓은 리듬 때문에 엄마는 울지만 줄 수가 없는 것이 작은 이야기 같지만 오늘날 가정사회의 한 단면입니다.
또 한 티베트 여성이 영국을 방문하고서 느낀 것을 적어 놓은 것을 인용했습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산업화가 잘 발달된 영국에 와서 이곳저곳을 돌아봤는데, 영국 사람들이 사는 생활모습은 아주 간접적인 방식으로만 사는 것 같다는 거에요. 무슨 뜻이냐 하면, 자연이 너무 아름답다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관해서 글도 많고 노래도 있고 이야기도 많고,
그리고 집집마다 보니까 화분에 꽃을 잘 기르고 있고 방에 들어가 봤더니 리빙룸이나 벽마다 사진, 그림들이 붙어 있는데 나무 그림, 숲의 그림, 산 그림, 강물 그림, 아름다운 자연 풍경으로 된 화폭들을 담은 그림이 붙어 있었고, 그리고 TV를 켜면 자연에 관한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
프로그램이 많은데 정작 인간들은 자연과 접촉은 안 하며 살면서 자연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보고 놀고 있더라는 거에요. 자연은 몸으로 사는 것이지, 자연은 우리가 살아야 할 것에 관한 이야기의 주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것이 말하자면 산업화가 덜 된 사람으로서 느끼는 산업사회에 대한 하나의 아쉬움이더라는, 그런 이야기를 썼다고 인용하고 있습니다.
혹시 그것이 오늘의 우리의 삶의 모습은 아닌가요 도시화가 되어 가면서, 아파트에 살면서, 자연이 너무 멀리 있어서, 자연을 대상화하고 객관화 하고 살기는 하는데, 자연의 몸통과 우리 몸통이 교류하면서 사는 것은 너무 적은 것 아닙니까
제가 사실은 자연 그 자체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은 우리 어린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어린이는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라고 했습니다. 혹시 우리 어린이들에 관해서, 어린이들의 학교 공부에 관해서, 어린이들의 학원에 관해서, 어린이들의 생활에 관해서 우리가 많은 것들을 걱정하면서 삽니다. 부모된 여러분,
혹시 아무리 자기가 낳은 자식을 보면서, 자식에 관해서 그렇게 관심을 많이 갖기는 하지만, 자식과 몸을 비비고 그렇게 살아가기가 쉽습니까 자연은 그만 두고라도, 사람과 몸을 비비고 끌어 안고 살고 싶지는 않은지요 그렇게 어린이 처럼 살고 싶은 생각이 많으십니까 자연은 철마다 바뀌어도 내 삶의 한 부분이듯이, 어린이는 어른들의 그리고 부모들의 삶의 한 부분이고 요소이지 객관화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이상한 풍조가 생겨났습니다. 따로따로의 삶의 방식입니다. 분할, 핵분열, 핵가족 분열, 그런 것들이죠. 지금 핵도 핵융합으로 에너지를 만들자고 하는데 왜 사람 융합은 잘 안됩니까 자꾸 분열되는 것이 독립이라고 하고 아름답다고 하는데 얼마나 힘듭니까
제가 언젠가 교인 여러분께 이런 말씀 드린 것 같습니다. 사실 이렇게 핵가족화 되고 도시화되고 문명화되고 살다보니 만남이 힘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어딘가에서는 만나고 서로간에 인간성, 가족성, 공동체성을 회복해야 되겠는데, 현대의 핵가족을 다 없애고 옛날처럼 대가족으로 다시 뭉치게 할 수 있는 방도는 없습니다.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임시적인 방편은 있습니다. 학원에서 만나게 할 수 있고, 학교에서 만나게 할 수 있고, 할아버지 집에서 만나게, 아니면 어느 별장에서 만나게 할 수는 있지만, 그보다 훨씬 더 좋은 - 임시적이긴 합니다만- 융합의 장소가 있습니다. 제가 교회를 추천합니다.
가족들이 흩어져서 여러 교회를 다닐 수도 있고, 안 다닐 수도 있고, 혼자 다닐 수도 있고, 사정은 다양합니다. 심지어 젊은 가족들은 부모님 모시려고 효도하고 싶어도 너무 바빠서 효도할 길이 없습니다. 부모는 자식, 손자 사랑하고 싶어도 너무 바쁘고 생활 리듬이 달라서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너무 적습니다. 그래서 바쁘다고만 합니다.
그런데 바쁜 것 하나 해결해 봅시다. 매 주일은 너무 힘들고요, 한 달에 한 번, 계절별로 한 번, 아니면 아무리 못해도 6개월만에 한 번씩은 모든 가족이 한번 대가족처럼 모여 봅시다. 혹시 경동교회가 좋으시면 여기 모이십시다. 여기 우리 교회가 안 되면, 이 순서를 바꿔서 우리 아들이 다니는, 딸이 다니는 교회에 가셔서 전 가족이 모여보세요. 같이 예배드리고, 같이 말씀 듣고, 같이 찬송해 보고, 같이 국수라도 먹고, 밥 먹고, 이야기하고, 가족뿐만 아니라 가족들 친척들과 같이 모여서 사랑 이야기 나누고, 공동체 이야기 나누고,
이렇게 해서 한 번 신앙 중심으로 하는 교회 공동체 중심으로 하는 가족모임을 가져 보세요. 가족의 따뜻함을 회복할 수 있지않겠습니까 자꾸 핵가족을 탓하지만 말고 가능한 융합의 방법을 연구해 봅시다. 그렇게 해서 저희 교회에 많이 나오시면 좋지만, 그렇지 않으시면 다른 교회 가서라도, 다른 곳에 가서라도 예배드리면서 가족 모임을 만들어 보십시다.
어린이날요 일년에 어린이날 기억하면 뭘 합니까 어린이날, 어버이날 말고요, 만남이 있는 어린이날, 호흡이 함께있는 어린이날, 그런 어머니날, 어버이날을 같이 한번 만들어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핵가족화 되고 우리가 살기가 참 어려워지면서 뼈대와 중심이 자꾸 없어져 가는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제가 여러분과 제 자신에게 바람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낳은 자식은, 어린이들은 시장의 상품으로 치면 명품이어야 합니다. 동의하시죠 기왕이면 헐값 상품 말고 명품이어야 된다.
시장에 나온 명품은 좀 비싸긴 합니다. 그러나 명품이 시장도 형성하고, 또 시장이 명품도 만들어냅니다. 그렇게 경제가 어려워도 명품시장만은 불황이 없습디다. 사실이지요. 특별히 광고나 홍보를 하지 않아도 입에서 입으로, 사람에서 사람으로 소문이 나기에 명품시장만은 튼튼합니다. 물건 이야기해서 안됐습니다만 명품은 오래갑니다. 명품이 되면 오랜기간을 거쳐 브랜드 가치 때문에 불황도 없이 계속 사랑을 받아갈 수 있습니다.
인간사회를 인간시장이라고 해 봅시다. 우리 인간사회에서 우리 자녀들은, 우리 어린이들은 명품이고자 하고 명품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저도 저희 자식들이 명품자식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명품이라고 하기는 어렵고, 우리 어린이들은 “명인”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지요. 명인이 되고 싶으십니까 아름다운 명산이 있고, 명강도 있고, 명품도 있는데, 우리 어린이들은 전부 명인이어라. 그런 바람입니다. 어떻게 하면 명인일 수 있습니까 브랜드는 뭡니까 명인의 중심은 무엇이고, 그 핵심 가치는 뭡니까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오래된 이야기 가운데 오늘 신명기서에 주신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아 들어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어른들아 들어라. 이스라엘 어린이들아, 들어라, 하고 신명기서에 쓰여 있는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한 분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고 평생동안 살아라. 여호와 하나님한테 중심을 딱 박고 거기서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살아라. 그러면 명인이 되느니라고 말입니다.
이유는 주님 안에서 살기로 결단이 이루어지면 주님이 우리 안에서 사시기 때문입니다. 단순 소박한, 그러나 아주 진실이 있는 선언입니다. 계속해서 신명기가 말합니다. “주 여호와 하나님만 섬겨라”. 주 여호와 하나님이 그대들을 사랑할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과 한 몸이 되어 살아라. 한 분이신 여호와 하나님, 그 여호와 하나님이 그대들 속에 살면서 중심을 이루어 주실 것이다.
나갈 때나 들어올 때나 잠잘 때나 일할 때나 언제든지 그 분을 중심 삼아라.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명령이니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들으신대로 신명기 6: 4-9절까지 말씀은 전문용어로 이렇게 말합니다. 히브리말로 ‘쉐마’ (Shema) 이렇게 말하는데, 이 ‘쉐마’라는 말은 서양말로 흘러 들어와서 영어로도 ‘쉐마’, 독일말로도 ‘쉐마’라고 하고, ‘대강, 대강령’ 뭐 그런 뜻입니다. 히브리말로 ‘쉐마’라는 말은 ‘교육 대강령’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본래 뜻은 성경말씀에 있는대로 “이스라엘아, 들어라 (쉐마)” , 그렇습니다. 그 말을 우리가 ‘강령’이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행복, 가정의 축복, 어린이들의 미래, 이 모든 것을 합쳐서 진실된 복이라고 한다면,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쉐마’는 바로 이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중심으로 뭉쳐서 여호와 하나님이 가정의 중심이 되게 하여라. 그러면 사랑 받을 수 있느니라.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도 자기의 마음을 다 우리에게 주시고, 주님의 뜻을 우리를 통해서 실천하시고, 주님께서 자기 힘을 우리에게 주셔서 누워 있을 때나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일어나서 일 할 때나 언제든지 여호와 하나님은 동행하여 주시느니라고 말입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자녀를 사랑하라는 계명의 핵심입니다. 오늘 그렇게 해 보십시다. 자녀에 관해서 이야기만 하시지 마시고 오늘 한번 우리 스스로 자녀들이 되어 보십시다. 우리의 자녀들은 우리와 달리 어리면 어릴수록 꾸밈이 없습니다.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배고파도 배고프지 않다고 꾸밉니다. 자녀들은 겉치레 하지 않습니다. 무조건 부모를 신뢰합니다. 믿어봅니다. 그리고 달라고 합니다. 잘못은 잘못대로 고백합니다. 그리고 기쁘면 기쁘다고 웃습니다. 우리는 기뻐도 기뻐하지 않고 울음이 나와도 울지 않고 얼마나 꾸미고 회칠한 무덤처럼 살아갑니까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데리고 예수 앞에 왔더니 제자들이 우리 귀한 선생님 말씀하시는데 시끄럽게 애들이 떠든다고 나가라고 밖으로 물리쳤습니다. 그랬더니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어린이들이 나한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거기까지는 예의 있는 말씀이고, 그 다음에 하는 말씀이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여호와 하나님나라 못 간다’고 하십니다. 어린이가 되라는 말은 우리가 다시 엄마 뱃속에 들어가서 다시 태어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럴 수가 없지요.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영을 받아서 새로운 사람으로 변하면 됩니다. 잘못한 거 있으면 그냥 여호와 하나님께 이실직고 합시다. 꾸미지 말고요. 거짓말 하지 말고요,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좀 합시다. 좋으면 좋다고 춤 좀 춥시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진실과 지성을 보이면 그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어린이처럼 순박하다고, 진정이 있다고 아름답다고, 사망의 골짜기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지켜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감사가 있다고, 여호와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자기 자녀로 삼고 싶어 하십니다.
제와 여러분이 우리 아이들을, 어린이들을 몸으로 낳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가슴으로 낳으시면서 하시는 말씀, “나는 함께 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진정 속의 말, 진실 속의 말, 순박함 속의 말, 거죽이 아닌 진정함 속에만 함께 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나”를 기둥으로 삼아서 진실이 있는 믿음이 있는, 희망이 있는, 사랑이 있는, 신앙의 대가족 속에서 행복하게 삶을 누리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오늘 주시고자 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어린이날 특별히 할 것 없고요, 오늘 어린이날에, 어린이 문제를 생각하기 전에 우리가 한 번 어린이가 되어 봅시다. 위치 좀 바꿔 봅시다. 우리가 어린이처럼, 우리가 자식들처럼, 다음 주일에 그렇게 되면 아마 우리 자식들이 우리들 부모처럼, 우리들 어른처럼 될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서로 만나서 그 때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오늘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어린 아이와 같지 않으면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요.
아까 제가 인용한 라다크 이야기에 보니까 적어도 어린이와 여성과 노인들이 자연스럽게 존경받는 사회가 아릅답답니다. 그것이 진실로 성경말씀에 있는 사회가 아닙니까. 이렇게 저자가 고백했듯이, 오늘 우리 모두가 다 만족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 사회. 우리 교회는요 바로 이런 사람들이 모인 믿음과 사랑과 희망의 공동체입니다. 조건은 이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우리 자식들이 되어봅시다. 오늘은 그렇게 되어 보십시다.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가 되신 것처럼.
오늘 우리가 성만찬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습니다. 존귀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서 고통을 끌어안고 기쁨을 선사하셨습니다. 먹고 마실 때 우리도 한번 어린이가 되십시다. 그리고 사랑과 구원의 아름다움을 서로 찬양해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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