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부부의 자리
본문
스위스 상담학자 폴 투르니에는 결혼생활에는 3단계의 주기를 거친다고 주장했습니다. 첫 번째는 밀월의 단계로서 균형을 잡아가는 시기로, 수용성이 늘고 가치관과 기대 등을 서로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적응의 시기입니다. 이시기는 생각과 희망과 감정이 일치하는 시기로서 서로가 일심동체라는 느낌을 갖고 살아가는 낭만의 시기입니다.
결혼한 지 2년에서 10년 사이가 되면 2단계에 들어갑니다. 상대방이 자기가 생각했던 것처럼 자기와 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며, 이제까지 생각했던 못했던 배우자의 결점이 보이기 시작하는 시기 입니다. 이 시기에는 무례한 행동과 말을 마구 하게 되고, 화해하기 위해서 협박하다가 달래다가 안 되면 꾸짖기도 합니다. 남편은 점점 말이 없어지고, 아내는 매일 바가지를 긁는 가운데 사랑이 서서히 식어가는 결혼생활의 위기를 맞게 됩니다. 용기가 없어서 헤어지지 못할 뿐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경우를 ‘정서적인 이혼상태’라고 부릅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3단계로 접어들게 됩니다. 결혼생활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은 이미 결혼을 해서 중년을 맞이한 분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어느 사람이 결혼생활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10대에는 서로가 꿈속에서 그리며 살고,
20대에는 서로가 신이 나서 살고,
30대에는 서로가 환멸을 참으며 살고,
40대에는 서로가 체념하며 살고,
50대에는 서로가 가엾어서 살고,
60대에는 서로가 없어서는 안 되니까 살고,
70대에는 서로가 고마워서 산다.
그러나 한 가지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사랑이 식어지고 다툼이 많은 부부라도 상대방이 없으면 아쉽고 그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살아 있을 때는, 평생 웬수 같지만 그래도 없으면 그 자리는 분명히 크게 나타납니다. 남편이 없어도 살 수 있습니다. 물론 물질적인 면에서는 얼마든지 살 수 있고, 오히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남편이 채워주는 몫이 물질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부모님의 자식으로 감당하는 부분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큰 작용을 합니다. 따라서 아내는 남편을 존경해야 합니다. 왜냐고요 사실 보세요. 남편들이 당하는 고통을 아내들이 그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까 어느 남편의 고백을 들어보겠습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아내 앞에서 나는 나를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아내의 남편입니다. 명세서만 적힌 돈 없는 월급봉투를 아내에게 내밀며 내 능력 부족으로 당신을 고생시킨다고 말하며 겸연쩍어하는 아내의 무능력한 남편입니다. 세 아이의 엄마로 힘들어하는 아내의 가사 일을 도우며 내 피곤함을 감춥니다. 그래도 함께 살아주는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나는 아내의 말을 잘 듣는 착한 남편입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아이들 앞에서 나는 나를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세 아이의 아빠입니다. 요것 저것 조잘대는 막내의 물음에 만사를 제쳐놓고 대답부터 해야 하고, 이제는 고등학생이 된 큰 녀석들 때문에 뉴스 볼륨도 숨죽이며 들어야 합니다. 막내의 눈높이에 맞춰 놀이동산도 가고 큰놈들 학교 수행평가를 위해 자료도 찾고 답사도 가야합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내 늘어진 어깨에 매달린 무거운 아이들 유치원비, 학원비가 나를 옥죄어 와서 교복도 얻어 입히며 외식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생일날 케이크 하나 꽃 한 송이 챙겨주지 못하고, 초코파이에 쓰다만 몽땅 초에 촛불을 켜고 박수만 크게 치는 아빠, 나는 그들을 위해 사는 아빠입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어머님 앞에서 나는 나를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어머님의 불효자식입니다. 시골에 홀로 두고 떨어져 있으면서도 장거리 전화 한 통화에 아내의 눈치를 살피는 불쌍한 아들입니다. 가까이 모시지 못하면서도 생활비도 제대로 못 부쳐드리는 불효자식 입니다. 그 옛날 기름진 텃밭이 무성한 잡초 밭으로 변하여 기력이 쇠하신 당신 모습을 느끼며 주말 한번 찾아뵙는 것도 가족 눈치 먼저 살펴야 하는 나는 당신 얼굴 주름살만 늘게 하는 어머님의 못난 아들입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나는 나를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40대 직장(중견) 노동자입니다. 월급 받고 사는 죄목으로 마음에는 없는 상사의 비위를 맞추며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도 삼켜야 합니다. 정의에 분노하는 젊은이들을 감싸 안지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고개 끄덕이다가 고래 싸움에 내 작은 새우등 터질까 염려하여 목소리 낮추고 움츠리며 사는 고개 숙인 40대 남자입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집에서는 직장 일을 걱정하고 직장에서는 가족 일을 염려하며 어느 하나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엉거주춤, 어정쩡, 유야무야한 모습, 마이너스 통장은 한계로 치닫고 월급날은 저 만큼 먼데 돈 쓸 곳은 늘어만 갑니다. 포장마차 속에서 한 잔 술을 걸치다가 뒤 호주머니 카드만 많은 지갑 속의 없는 돈을 헤아리는 내 모습을 봅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나는 가장이 아닌 남편, 나는 어깨 무거운 아빠, 나는 어머님의 불효자식, 나는 고개 숙인 40대 직장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껴안을 수 없는 무능력한 사람이어도, 그들이 있음으로 나는 행복합니다. 그들이 없으면 나는 더욱 불행해질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은 나의 행복입니다.
나는 나를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나 일 때보다 더 행복할 줄 아는 40대입니다.
이것이 당신 남편의 모습입니다. 당신이 존경해야 할 이유입니다. 이런 남편을 존경하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오늘 말씀 33절에 보면 아내는 남편을 존경하라고 했습니다. 물론 40대라고 하지만 당신의 남편들이 직장생활 하면서 얼마나 수모를 겪으면서 지내는지 아십니까 그래도 가족을 부양할 책임 때문에,
그 어떤 말도 함부로 하지 못하고 자신의 자존심을 삼키며, 하고 싶은 말도, 하고 싶은 욕설도 삼키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삼킵니다. 담배피우는 사람들은 담배연기로 날려 보내고 술을 마시는 사람은 알코올에 실어 보냅니다. 그러나 믿음의 성도는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내려놓습니다. 이것이 오늘 한국 사회의 남편들의 모습임을 기억하십시오.
사랑하는 아내들이여! 남편을 존경하고 남편의 권위를 세워주며, 남편이 안심하고 밖에 나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감당하며 책임 있게 사는 가장이 되도록 위로하며 격려하시기를 바랍니다. 남편이 없는 그 자리가 크기 때문입니다.
자신만만하게 두 눈 부릎 뜨고 큰 소리 치며 사는 남편들이여!
아내의 존귀함을 알도록 하십시오.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아내의 가치는 당신의 사랑에서 나옵니다. 당신이 얼마나 사랑을 하는가에 따라 당신의 아내의 가치는 분명히 달라집니다. 당신의 사랑이 깊을수록 당신의 존재 가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을 것입니다. 특히 아내의 빈자리는 얼마나 큰지 당해 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모르다보니까 당신이 없어서 살 수 있다고 큰소리칩니다. 당신이 아니었으면 당신보다 훨씬 더 좋은 여자를 만났을 것이라고 착각하면서 사는 남편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조강지처 잃고 더 좋은 아내를 얻었다고 하는 남자를 본 일이 없습니다. 아내가 비면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아내가 없는 빈자리를 두고서 고백한 한 남편의 사연을 소개하겠습니다.
아내가 어이없는 사고로 우리 곁을 떠난 지 4년, 지금도 아내의 빈자리는 너무 크기만 합니다. 어느 날 갑작스런 출장으로 아이에게 아침도 못 챙겨주어 마음이 허전하여 하루를 보내고 늦게 돌아와 침대에 벌렁 누웠는데 순간, "푹 - 슈 ~ "소리를 내며 손가락만 하게 불어터진 라면 가락이 침대와 이불에 퍼질러졌습니다. 펄펄 끓은 컵라면이 이불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일어난 과정은 무시하고 아이를 불러 마구 때렸습니다. 계속 때리고 있을 때 아들 녀석이 울면서 한 한마디가 손을 멈추게 했습니다. 평소에 가스렌지 불을 함부로 켜면 안 된다는 말에 보일러 온도를 목욕으로 하고 데워진 물로 하나는 자기가 먹고 하나는 아빠 드리려고 식지 않게 이불로 덮어 놓았는데, 아빠 올 때 너무 반가워 깜빡 잊었다는 것입니다.
이 소리를 들은 나는 아들 앞에서 우는 것이 싫어서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수돗물을 틀어놓고 울었습니다.
그날 밤 저는 잠든 아이 방문에 오랫동안 머리를 기대어 넋 놓고 서 있었습니다. 일년 전 아이와 그 일이 있고난 후, 내 나름대로 4년 전 내 곁을 떠난 아내 몫까지 하려고 더욱 신경을 썼습니다. 아이도 티 없이 맑게 커가고, 아이의 나이 일곱 살, 얼마 후면 유치원을 졸업하고 내년에는 학교에 갑니다.
어느 날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유치원에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불안한 마음에 조퇴를 하고 집에 와도 아이가 없었습니다. 엄마 없는 아이를 부르며 애타게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 놈이 놀이터에서 신나게 혼자 놀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화가 나서 집으로 와서 또 매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놈이 한 마디 변명도 않고 잘못을 빌더군요.
그 날 이후 글을 다 배웠다고 너무 기뻐하며 저녁만 되면 자기 방에서 꼼짝도 않고 글을 써 대는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없었지만, 하늘에서 아이 모습을 보고 미소 지을 아내를 생각하니 난 또 다시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또 일 년이 흐르고, 크리스마스 캐롤이 흘러나오는데 또 아이가 한 차례 일을 저질렀습니다. 회사에서 퇴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우리 동네 우체국 출장소였는데 우리 아이가 주소도 우표도 없이 편지 300통을 넣는 바람에 연말 우체국 업무에 막대한 지장을 끼친다고 화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다시는 들지 않으려 했던 매를 또 다시 들었습니다. 이번에도 변명 않고 잘못했다는 소리 뿐, 이후 우체국에서 편지 모두를 가지고 와서 도대체 왜 이런 일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아이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하늘나라 엄마에게 편지를 보낸 거라고. ”
순간 울컥 나의 눈시울이 빨개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바로 앞에 있어 울음을 참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왜 이렇게 많은 편지를 한꺼번에 보냈냐고....
그러자 아이는 그동안 편지를 써왔는데, 우체통보다 키가 작아 써오기만 하다가 요즘 들어 다시 재보니 우체통에 손이 닿길래, 그동안 써온 편지를 한꺼번에 넣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막막했습니다. 얼마 후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는 하늘에 계시니까 편지를 써서 불에 태워 하늘로 올려 보내자고, 그리고는 그 편지를 가지고 밖에 나왔습니다. 주머니 속에 라이터를 꺼내 그 편지를 태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아이가 엄마한테 무슨 얘기를 썼을까 궁금해 졌습니다. 그래서 태우던 편지 하나를 읽어 보았습니다.
〈보고 싶은 엄마에게!〉
엄마 지난주에 우리 유치원에서 재롱잔치를 했어. 그런데 나는 엄마가 없어서 가지 않았어.... 아빠가 엄마 생각할까봐 아빠한테 얘기 안 했어. 아빠가 나를 찾으려고 막 돌아다녔는데, 난 일부러 아빠 보는 앞에서 재미있게 놀았어. 그래서 날 아빠가 마구 때렸는데도 난 끝까지 얘기 안 했어. 나, 매일 아빠가 엄마 생각나서 우는 거 본다!
근데 나, 엄마 생각 이제 안 나..... 아니..... 엄마 얼굴이 생각이 안 나....
엄마 나 꿈에 한번만 엄마 얼굴 보여줘... 알았지
사랑하는 남편들이여! 이래도 아내를 사랑하지 않으시렵니까 이래도 ‘당신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다’고 하시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내를 주실 때 남편의 돕는 배필로 주셨습니다. 돕는다고 하니까 아내에게 ‘당신은 나를 도와야 하니까 아무 말 하지 말고 내 시키는 대로 해’라고 한다면 대단히 잘못된 해석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남편에게 돕는 자를 주셨다는 것은 돕는 자가 없으면 제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편들은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나는 당신이 없이는 못살아. 당신의 도움이 없이는 제 구실을 할 수 없어. 당신은 여호와 하나님이 나에게 보내주신 헬퍼야. 자기 사랑해! 나를 도와주어서 말이야. 당신 없는 나를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에베소서5:25절 말씀처럼 마치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남편이 아내와 가정을 위하여 자신을 주고 섬길 때 그 가정은 에덴동산의 가정이 됩니다. 28절에도 보면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과 같이 하라고 했고, 결론적으로 말씀한 5장의 끝맺음인 33절에도 보면 남편들이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아내가 중요하고 아내는 남편의 사랑을 먹고 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아내가 남편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기 때문에 사랑해야 합니다. 따라서 남편은 아내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내를 주실 때 나의 부족한 부분을 돕는 자로 주셨기 때문에 아내를 상전처럼 모시고 나 자신을 사랑함과 같이 사랑하면서 살 때 행복한 부부가 됩니다.
오늘 본문 31절 말씀에 보면 부부는 부모를 떠나 한 몸이 된다고 했습니다. 한 몸이 된다는 것은 물방울과 물방울이 합쳐지는 것과 같습니다. 서로 다른 불순물이 합쳐진 것이 아니라 같은 성분을 가진 것이 하나로 합쳐진 것이 부부입니다. 부부는 젓가락과 같습니다. 젓가락은 반드시 두개가 있어야 제 구실을 합니다. 두개가 있을 때 완전하고 사용가치가 있습니다. 부부도 이와 같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안식처가 되며, 남편은 아내의 안식처가 될 때 비로소 가정은 평화의 공간이 되는 것 입니다. 아름다운 부부, 행복한 부부,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따른 사랑과 존경으로 맺어진 부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혼한 지 2년에서 10년 사이가 되면 2단계에 들어갑니다. 상대방이 자기가 생각했던 것처럼 자기와 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며, 이제까지 생각했던 못했던 배우자의 결점이 보이기 시작하는 시기 입니다. 이 시기에는 무례한 행동과 말을 마구 하게 되고, 화해하기 위해서 협박하다가 달래다가 안 되면 꾸짖기도 합니다. 남편은 점점 말이 없어지고, 아내는 매일 바가지를 긁는 가운데 사랑이 서서히 식어가는 결혼생활의 위기를 맞게 됩니다. 용기가 없어서 헤어지지 못할 뿐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경우를 ‘정서적인 이혼상태’라고 부릅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3단계로 접어들게 됩니다. 결혼생활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은 이미 결혼을 해서 중년을 맞이한 분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어느 사람이 결혼생활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10대에는 서로가 꿈속에서 그리며 살고,
20대에는 서로가 신이 나서 살고,
30대에는 서로가 환멸을 참으며 살고,
40대에는 서로가 체념하며 살고,
50대에는 서로가 가엾어서 살고,
60대에는 서로가 없어서는 안 되니까 살고,
70대에는 서로가 고마워서 산다.
그러나 한 가지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사랑이 식어지고 다툼이 많은 부부라도 상대방이 없으면 아쉽고 그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살아 있을 때는, 평생 웬수 같지만 그래도 없으면 그 자리는 분명히 크게 나타납니다. 남편이 없어도 살 수 있습니다. 물론 물질적인 면에서는 얼마든지 살 수 있고, 오히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남편이 채워주는 몫이 물질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부모님의 자식으로 감당하는 부분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큰 작용을 합니다. 따라서 아내는 남편을 존경해야 합니다. 왜냐고요 사실 보세요. 남편들이 당하는 고통을 아내들이 그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까 어느 남편의 고백을 들어보겠습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아내 앞에서 나는 나를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아내의 남편입니다. 명세서만 적힌 돈 없는 월급봉투를 아내에게 내밀며 내 능력 부족으로 당신을 고생시킨다고 말하며 겸연쩍어하는 아내의 무능력한 남편입니다. 세 아이의 엄마로 힘들어하는 아내의 가사 일을 도우며 내 피곤함을 감춥니다. 그래도 함께 살아주는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나는 아내의 말을 잘 듣는 착한 남편입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아이들 앞에서 나는 나를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세 아이의 아빠입니다. 요것 저것 조잘대는 막내의 물음에 만사를 제쳐놓고 대답부터 해야 하고, 이제는 고등학생이 된 큰 녀석들 때문에 뉴스 볼륨도 숨죽이며 들어야 합니다. 막내의 눈높이에 맞춰 놀이동산도 가고 큰놈들 학교 수행평가를 위해 자료도 찾고 답사도 가야합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내 늘어진 어깨에 매달린 무거운 아이들 유치원비, 학원비가 나를 옥죄어 와서 교복도 얻어 입히며 외식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생일날 케이크 하나 꽃 한 송이 챙겨주지 못하고, 초코파이에 쓰다만 몽땅 초에 촛불을 켜고 박수만 크게 치는 아빠, 나는 그들을 위해 사는 아빠입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어머님 앞에서 나는 나를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어머님의 불효자식입니다. 시골에 홀로 두고 떨어져 있으면서도 장거리 전화 한 통화에 아내의 눈치를 살피는 불쌍한 아들입니다. 가까이 모시지 못하면서도 생활비도 제대로 못 부쳐드리는 불효자식 입니다. 그 옛날 기름진 텃밭이 무성한 잡초 밭으로 변하여 기력이 쇠하신 당신 모습을 느끼며 주말 한번 찾아뵙는 것도 가족 눈치 먼저 살펴야 하는 나는 당신 얼굴 주름살만 늘게 하는 어머님의 못난 아들입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나는 나를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40대 직장(중견) 노동자입니다. 월급 받고 사는 죄목으로 마음에는 없는 상사의 비위를 맞추며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도 삼켜야 합니다. 정의에 분노하는 젊은이들을 감싸 안지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고개 끄덕이다가 고래 싸움에 내 작은 새우등 터질까 염려하여 목소리 낮추고 움츠리며 사는 고개 숙인 40대 남자입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집에서는 직장 일을 걱정하고 직장에서는 가족 일을 염려하며 어느 하나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엉거주춤, 어정쩡, 유야무야한 모습, 마이너스 통장은 한계로 치닫고 월급날은 저 만큼 먼데 돈 쓸 곳은 늘어만 갑니다. 포장마차 속에서 한 잔 술을 걸치다가 뒤 호주머니 카드만 많은 지갑 속의 없는 돈을 헤아리는 내 모습을 봅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나는 가장이 아닌 남편, 나는 어깨 무거운 아빠, 나는 어머님의 불효자식, 나는 고개 숙인 40대 직장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껴안을 수 없는 무능력한 사람이어도, 그들이 있음으로 나는 행복합니다. 그들이 없으면 나는 더욱 불행해질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은 나의 행복입니다.
나는 나를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나 일 때보다 더 행복할 줄 아는 40대입니다.
이것이 당신 남편의 모습입니다. 당신이 존경해야 할 이유입니다. 이런 남편을 존경하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오늘 말씀 33절에 보면 아내는 남편을 존경하라고 했습니다. 물론 40대라고 하지만 당신의 남편들이 직장생활 하면서 얼마나 수모를 겪으면서 지내는지 아십니까 그래도 가족을 부양할 책임 때문에,
그 어떤 말도 함부로 하지 못하고 자신의 자존심을 삼키며, 하고 싶은 말도, 하고 싶은 욕설도 삼키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삼킵니다. 담배피우는 사람들은 담배연기로 날려 보내고 술을 마시는 사람은 알코올에 실어 보냅니다. 그러나 믿음의 성도는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내려놓습니다. 이것이 오늘 한국 사회의 남편들의 모습임을 기억하십시오.
사랑하는 아내들이여! 남편을 존경하고 남편의 권위를 세워주며, 남편이 안심하고 밖에 나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감당하며 책임 있게 사는 가장이 되도록 위로하며 격려하시기를 바랍니다. 남편이 없는 그 자리가 크기 때문입니다.
자신만만하게 두 눈 부릎 뜨고 큰 소리 치며 사는 남편들이여!
아내의 존귀함을 알도록 하십시오.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아내의 가치는 당신의 사랑에서 나옵니다. 당신이 얼마나 사랑을 하는가에 따라 당신의 아내의 가치는 분명히 달라집니다. 당신의 사랑이 깊을수록 당신의 존재 가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을 것입니다. 특히 아내의 빈자리는 얼마나 큰지 당해 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모르다보니까 당신이 없어서 살 수 있다고 큰소리칩니다. 당신이 아니었으면 당신보다 훨씬 더 좋은 여자를 만났을 것이라고 착각하면서 사는 남편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조강지처 잃고 더 좋은 아내를 얻었다고 하는 남자를 본 일이 없습니다. 아내가 비면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아내가 없는 빈자리를 두고서 고백한 한 남편의 사연을 소개하겠습니다.
아내가 어이없는 사고로 우리 곁을 떠난 지 4년, 지금도 아내의 빈자리는 너무 크기만 합니다. 어느 날 갑작스런 출장으로 아이에게 아침도 못 챙겨주어 마음이 허전하여 하루를 보내고 늦게 돌아와 침대에 벌렁 누웠는데 순간, "푹 - 슈 ~ "소리를 내며 손가락만 하게 불어터진 라면 가락이 침대와 이불에 퍼질러졌습니다. 펄펄 끓은 컵라면이 이불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일어난 과정은 무시하고 아이를 불러 마구 때렸습니다. 계속 때리고 있을 때 아들 녀석이 울면서 한 한마디가 손을 멈추게 했습니다. 평소에 가스렌지 불을 함부로 켜면 안 된다는 말에 보일러 온도를 목욕으로 하고 데워진 물로 하나는 자기가 먹고 하나는 아빠 드리려고 식지 않게 이불로 덮어 놓았는데, 아빠 올 때 너무 반가워 깜빡 잊었다는 것입니다.
이 소리를 들은 나는 아들 앞에서 우는 것이 싫어서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수돗물을 틀어놓고 울었습니다.
그날 밤 저는 잠든 아이 방문에 오랫동안 머리를 기대어 넋 놓고 서 있었습니다. 일년 전 아이와 그 일이 있고난 후, 내 나름대로 4년 전 내 곁을 떠난 아내 몫까지 하려고 더욱 신경을 썼습니다. 아이도 티 없이 맑게 커가고, 아이의 나이 일곱 살, 얼마 후면 유치원을 졸업하고 내년에는 학교에 갑니다.
어느 날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유치원에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불안한 마음에 조퇴를 하고 집에 와도 아이가 없었습니다. 엄마 없는 아이를 부르며 애타게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 놈이 놀이터에서 신나게 혼자 놀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화가 나서 집으로 와서 또 매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놈이 한 마디 변명도 않고 잘못을 빌더군요.
그 날 이후 글을 다 배웠다고 너무 기뻐하며 저녁만 되면 자기 방에서 꼼짝도 않고 글을 써 대는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없었지만, 하늘에서 아이 모습을 보고 미소 지을 아내를 생각하니 난 또 다시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또 일 년이 흐르고, 크리스마스 캐롤이 흘러나오는데 또 아이가 한 차례 일을 저질렀습니다. 회사에서 퇴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우리 동네 우체국 출장소였는데 우리 아이가 주소도 우표도 없이 편지 300통을 넣는 바람에 연말 우체국 업무에 막대한 지장을 끼친다고 화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다시는 들지 않으려 했던 매를 또 다시 들었습니다. 이번에도 변명 않고 잘못했다는 소리 뿐, 이후 우체국에서 편지 모두를 가지고 와서 도대체 왜 이런 일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아이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하늘나라 엄마에게 편지를 보낸 거라고. ”
순간 울컥 나의 눈시울이 빨개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바로 앞에 있어 울음을 참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왜 이렇게 많은 편지를 한꺼번에 보냈냐고....
그러자 아이는 그동안 편지를 써왔는데, 우체통보다 키가 작아 써오기만 하다가 요즘 들어 다시 재보니 우체통에 손이 닿길래, 그동안 써온 편지를 한꺼번에 넣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막막했습니다. 얼마 후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는 하늘에 계시니까 편지를 써서 불에 태워 하늘로 올려 보내자고, 그리고는 그 편지를 가지고 밖에 나왔습니다. 주머니 속에 라이터를 꺼내 그 편지를 태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아이가 엄마한테 무슨 얘기를 썼을까 궁금해 졌습니다. 그래서 태우던 편지 하나를 읽어 보았습니다.
〈보고 싶은 엄마에게!〉
엄마 지난주에 우리 유치원에서 재롱잔치를 했어. 그런데 나는 엄마가 없어서 가지 않았어.... 아빠가 엄마 생각할까봐 아빠한테 얘기 안 했어. 아빠가 나를 찾으려고 막 돌아다녔는데, 난 일부러 아빠 보는 앞에서 재미있게 놀았어. 그래서 날 아빠가 마구 때렸는데도 난 끝까지 얘기 안 했어. 나, 매일 아빠가 엄마 생각나서 우는 거 본다!
근데 나, 엄마 생각 이제 안 나..... 아니..... 엄마 얼굴이 생각이 안 나....
엄마 나 꿈에 한번만 엄마 얼굴 보여줘... 알았지
사랑하는 남편들이여! 이래도 아내를 사랑하지 않으시렵니까 이래도 ‘당신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다’고 하시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내를 주실 때 남편의 돕는 배필로 주셨습니다. 돕는다고 하니까 아내에게 ‘당신은 나를 도와야 하니까 아무 말 하지 말고 내 시키는 대로 해’라고 한다면 대단히 잘못된 해석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남편에게 돕는 자를 주셨다는 것은 돕는 자가 없으면 제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편들은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나는 당신이 없이는 못살아. 당신의 도움이 없이는 제 구실을 할 수 없어. 당신은 여호와 하나님이 나에게 보내주신 헬퍼야. 자기 사랑해! 나를 도와주어서 말이야. 당신 없는 나를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에베소서5:25절 말씀처럼 마치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남편이 아내와 가정을 위하여 자신을 주고 섬길 때 그 가정은 에덴동산의 가정이 됩니다. 28절에도 보면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과 같이 하라고 했고, 결론적으로 말씀한 5장의 끝맺음인 33절에도 보면 남편들이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아내가 중요하고 아내는 남편의 사랑을 먹고 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아내가 남편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기 때문에 사랑해야 합니다. 따라서 남편은 아내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내를 주실 때 나의 부족한 부분을 돕는 자로 주셨기 때문에 아내를 상전처럼 모시고 나 자신을 사랑함과 같이 사랑하면서 살 때 행복한 부부가 됩니다.
오늘 본문 31절 말씀에 보면 부부는 부모를 떠나 한 몸이 된다고 했습니다. 한 몸이 된다는 것은 물방울과 물방울이 합쳐지는 것과 같습니다. 서로 다른 불순물이 합쳐진 것이 아니라 같은 성분을 가진 것이 하나로 합쳐진 것이 부부입니다. 부부는 젓가락과 같습니다. 젓가락은 반드시 두개가 있어야 제 구실을 합니다. 두개가 있을 때 완전하고 사용가치가 있습니다. 부부도 이와 같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안식처가 되며, 남편은 아내의 안식처가 될 때 비로소 가정은 평화의 공간이 되는 것 입니다. 아름다운 부부, 행복한 부부,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따른 사랑과 존경으로 맺어진 부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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