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하나님이 원하시는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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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영국 신(新)경제재단(NEF)에서 실시한 국가별 행복지수(HPI) 조사에서 178개국 중 행복지수 1위로 선정된 나라는 섬나라인 바누아투입니다. 호주 시드니에서 동북쪽으로 2,500km쯤 떨어진 남태평양 해역에 산재한 80여 개의 섬에 약 20만 명이 사는 미니 군도 국가입니다.
강원 영월군에서 열리는 제3회 세계국립대학총장문화예술교육(UCAWE) 국제심포지엄 참석차 지난 5월 18일 방한한 조지 보루구 관광청장은 바누아투 국민의 행복 비결을 묻는 질문에 “물질이 풍부한 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직접 와서 느끼면 삶을 조금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바누아투 국민의 취업률은 7% 선이고, 취업자 대부분이 관광업에 종사하며 고기잡이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남태평양의 빈곤국 중 하나인 이 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900달러로 전 세계 233개국 중 207위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조사대상국 178개국 중 102위로 조사되었습니다.
성적이 행복순이 아니듯이 소득이나 자원이 행복순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는 자살이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반면에 “바누아투는 지난 5, 6년간 자살자가 한 명도 없다가 얼마 전 1명이 자살했다고 합니다. 인구가 비록 적지만 소득이 233개국 중에서 207위인데도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김동건 아나운스가 진행하던 ‘11시에 만납시다’라는 프로가 있었습니다. 이 프로에 방송된 한 소녀의 사연입니다. 그 소녀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생김새의 소녀였습니다. 아마도 성실하게 사는 소녀가장이라 토크쇼에 초대되어졌던 것 같습니다. 소녀는 병든 할머니와 어린 남동생과 함께 산동네에 산다고 했습니다.
소녀의 아버지는 소녀가 어렸을 때 도아가셨고 얼마 후 어머니까지 집을 나가셨다고 했습니다. 그 소녀의 이름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소녀는 자신도 남들처럼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했습니다.
김동건 아나운스가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하고 물었습니다. 소녀는 동생과 함께 어린이 대공원에 가서 아이스크림도 먹고 평소에 타보고 싶은 바이킹이란 놀이기구도 타고 싶다고 얼굴을 붉히며 말했습니다. 김동건씨는 눈시울을 붉히며 그 비용을 자신이 낼테니 얼마나 되겠느냐고 소녀에게 물었습니다. 이 소녀는 의외의 제안에 조금 생각에 잠기는 듯 했습니다. 소녀는 조심스럽게 “4,750원”이라고 상세한 사용처를 밝혔습니다.
입장료, 아이스크림, 바이킹 요금, 대공원까지의 버스 요금.. 1만원도 아닌 4750원의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이 소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상이 참으로 고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수억이 있어도 불행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4750원만 있어도 행복할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으니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행복이란 많고 큰 것이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소득이 207위인 바누아투가 행복지수가 제일 높다고 하는 것이 결코 실수가 아니요,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행복해야 하고 가정이 행복해야 합니다. 가정 행복의 중심은 부부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참으로 부부가 중요 합니다. 부부가 우선적으로 행복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부부를 만드셔서 에덴에서 살게 하셨을 때의 과정을 살펴봅시다. 여호와 하나님도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부부를 허락하신 후에 어떻게 살기를 원하셨을까요
첫째, 돕는 배필로서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부부가 서로 도우며 살라고 만드셨습니다. 18절 말씀.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는 성격, 인물, 지식, 재물, 건강 등 그 어떤 것도 다 갖춘 사람은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뭔가 부족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가 돕는 관계로 만들어 주신 것이 부부입니다. 부부는 많은 것을 서로가 나누어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부족한 부분을 서로가 채워주는 것이 부부입니다.
내가 채워주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항상 살펴야 합니다. 살아보면 서로가 불만이 있는데 그 불만은 대부분 상대방이 나에게 제대로 해주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그것을 채워주도록 노력해야지, 상대방이 나에게 무엇인가를 해주기를 기다려서는 안됩니다. 서로가 상대방의 부족한 부분을 살펴서 채워주려고 노력할 때 행복 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였던 이태영 여사는 이화여전을 졸업하고 평양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때 평생의 반려인 정일형 박사를 만나 결혼했지만, 그녀는 오랜 시간 남편의 옥바라지를 해야 했습니다. 미국 유학까지 하고 온 남편은 항일 운동을 한다는 명목으로 항상 일본 경찰의 감시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태영 여사는 남편의 옥바라지를 위해 이불을 만드느라 밤새 가위질을 하고 낮에는 이불을 이고 집집하다 다니며 팔았습니다. 전차 삯을 아끼려고 이불 보따리를 이고 수십 리를 걷는 날이 허다했습니다. 남편의 옥살이는 광복이 될 즈음에야 끝났습니다. 그런데 감옥에서 나와 아내의 손을 잡은 남편은 눈물을 왈칵 쏟을 뻔했습니다.
아내의 오른손 엄지가 90도 넘게 뒤로 젖혀지고 검지와 중지도 크게 휘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알제시대 말기 전쟁 무기를 만들기 위해 쇠붙이를 죄다 쓸어가 이불보를 자를 제대로 된 가위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날이 무디기만 한 가위질을 어찌나 많이 했던지 손가락이 휘어 기형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동안 아내의 고생이 어떠했는지 그 휘어진 손가락으로 짐작하고도 남았습니다. 그런 아내를 위해 이제 자신이 무거운 보따리를 바꿔질 때였습니다. 그렇게 남편의 격려로 이 태영 여사는 1946년 서른셋의 나이로 법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최초의 변호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훗날 남편 정일형 박사는 외국을 나가거나 멀리 여행을 다녀올 때면 아내를 위한 선물을 꼭 하나 사왔는데, 그것은 바로 가위였습니다.
잘 드는 가위 하나 가져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아내의 옛 소망을 그렇게나마 풀어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나중에 모여진 가위가 200개나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부부입니다. 서로 돕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부부는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합력해야 합니다. 이것을 일명 바늘과 실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바늘이 너무 빨리 가면 실이 끊어지고, 바늘이 너무 느리면 실은 엉키고 맙니다. 그렇다고 바늘대신 실을 잡아당기면 실과 바늘은 따로 놀게 됩니다. 더구나 실과 바늘은 자신의 역할을 바꿀 수도 없고, 바꾸어서도 안 됩니다. 실과 바늘의 조화, 여기에 부부화합의 비밀이 있습니다.
부부가 화합을 잘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바람을 빼십시오. 힘을 빼야 합니다. 사막의 모래에서 차가 빠져 나오는 방법은 타이어의 바람을 빼는 일입니다. 공기를 빼면 타이어가 평평해져서 바퀴 표면이 넓어지기 때문에 모래 구덩이에서 빠져 나올 수 있습니다.
부부가 갈등의 모래사막에 빠져 헤멜 때 즉시 자존심과 자신의 고집이라는 바람을 빼면 됩니다. 그러면 둘 다 살 수 있습니다. 바람만 빼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을 죽여야 합니다. 죽으면 삽니다. 이것을 일명 김치의 법칙이라 합니다.
배추는 5번 이상 죽어서야 김치가 됩니다. 땅에서 뽑힐 때, 칼로 배추의 배를 가를 때, 소금에 절일 때, 매운 고추와 젓갈과 마늘의 양념에 버무러질 때, 그리고 입 안에서 씹힐 때, 그래서 입안에서 김치라는 새 생명으로 거듭납니다. 행복이란 맛을 내기 위해 부부도 죽고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이 피어납니다.
21-22말씀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하와를 만들 때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해놓고서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그 자리에는 살로 대신 채우셨습니다. 아담에게서 취하신 갈빗뼈로 여자를 만드신 후에 아담에게로 데리고 왔습니다. 남편을 아내를 위해 희생해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의 희생을 통해서 자신이 존재함을 믿고 남편에게는 감사한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와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아담이 하와가 너무 마음에 들어 끔찍이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물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제 아내를 어떻게 저렇게 아름답게 만드셨어요”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래야 네가 사랑할 거 아니냐”그러셨습니다.
“그럼, 어떻게 저렇게 착하게 만드셨어요”
“그래야 네가 아껴줄 거 아니냐”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 가만히 보면 제 아내가 좀 맹한 데가 있어요. 그건 왜죠”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그래야 하와가 너 같은 사람을 사랑할 거 아니냐”
둘째, 사랑의 고백을 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23절 말씀,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한 소년이 엄마 품에 안겨 울먹거리며 말했습니다.
“엄마, 산이 날 보고 자꾸 바보라 그래요. ” 이야기를 들은 엄마가 물었습니다.
“너가 뭐라고 했는데”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야, 이 바보야!” 순간 엄마가 빙그레 웃으며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내일은 산에 가서 “‘야, 이 천재야!!!’하고 외쳐보렴” 엄마가 시키는대로 해보니까 정말로 산이 소리쳐 주었습니다. “야, 이 천재야!!!”
부부의 사랑고백은 항상 되돌아옵니다.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는 것이야말로 부부의 황금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말도 좋은 말을 하세요. 들어서 기분 좋은 말을 하세요.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습니다.
우리가 고백해야 할 말은 한 두 마디가 아닙니다. 평소에 살편서 순간 순간 해야 말들이 많습니다. 몇 가지씩만 살펴보겠습니다. 아내를 감동시키는 말들은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당신 갈수록 더 멋있어, 당신 음식 솜씨는 일품이야, 역시 나는 처복이 많아, 당신, 왜 이리 예뻐졌어, 역시 장모님밖에 없어, 여보 사랑해요, 당신은 못하는 게 없네, 처녀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 등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감동시키는 말들은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여보 사랑해요, 여보, 아이가 당신 닮아서 저렇게 똑똑하나봐요, 내가 시집 하나는 잘 왔지, 내가 복받은 여자지, 당신이라면 할 수 있어요, 역시 당신밖에 없어요, 내가 시어머니 복은 있나봐요, 당신 덕분에 이렇게 잘 살게 되었잖아요, 당신만 믿어요, 세상에 당신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요, 당신은 여호와 하나님 다음이에요, 다시 태어나도 당신밖에 없어요 등입니다.
사실 남편은 아내로부터 “당신을 믿어요” “힘 내세요”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사랑해” “많이 힘들지”란 말을 들을 때 가장 감동받고 힘이 난다고 합니다. 특히 남편은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십시오. 듣고 있어도 또 듣고 싶은 말이라고 합니다. 서로가 귀에다 대고 속삭여볼까요
“누가 뭐래도 나는 당신을 믿어요. 힘내세요”
“못난 나를 만나 많이 힘들지. 여보, 사랑해”
셋째, 부모를 떠나서 독립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24절 말씀,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자식이 부모를 의지하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독립정신을 길러야 합니다. 부모도 자식이 부모를 의존하지 않는 것을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부모님들은 자식이 적어서 그런지 몰라도 자식들을 쉽게 놓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문제가 됩니다.
두 사람의 결혼이 성공하려면 철저하게 떠나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왜 부모를 떠나라고 했는가 몸만 떠난다고 해서 온전히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마음까지도 떠나야 합니다. ‘제가 결혼하더니 제 아내 밖에 모른다. 제가 왜 저렇게 많이 변했지’라고 하면서 아들을 이상하게 취급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고백이 나와야 그 아들의 결혼은 성공하는 것입니다.
넷째, 수치심이 없이 살기를 원하십니다.
25절 말씀,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하나라는 느낌을 가장 강하게 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어떤 사람들 앞에서도 옷을 입지 않고 나타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부부는 예외입니다. 어릴 때는 다 벗고 있지만 여섯 일곱 살만 되어도 부모 앞에서도 쉽게 옷을 벗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부부는 예외입니다. 부부가 진정으로 한몸 된 모습으로 살려면 이런 수치심을 느끼지 않아야 합니다. 그럴려고 하면 허물이 없어야 합니다. 부부는 몸도, 마음도 그 어떤 것도 흉이 될 수 없습니다. 허물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수치심도 없습니다. 사실 수치심이 없으려면 죄가 없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가 벗었음이 눈에 들어왔을 때가 언제입니까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였습니다. 그 전에는 부끄러워하지 않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순간 죄를 범하게 되었고 죄를 범하는 순간 부끄러운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섯째, 부부는 여호와 하나님이 짝지워 주심을 믿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독일 낭만주의 작곡가 멘델스존의 할아버지인 모세 멘델스존은 어려서부터 척추 카리에스를 앓아서 몹시 보기 흉한 곱추였다고 합니다. 어느 날 함부르크에 있는 어느 부잣집 상점에 갔다가 그 집 딸인 프롭체를 보고 첫 눈에 사랑에 빠졌습니다. 애절하고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을 보여주려고 했지만, 프롭체는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되어 모세 멘델스존은 용기 있게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배필이 있다고 믿습니까” 그녀는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모세 멘델스존은 말하기를 “제가 저의 배필을 위해서 기도하였는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너의 배필은 마음이 착하지만 꼽추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안됩니다 여호와 하나님, 차라리 저를 꼽추로 만들어 주시고 제가 사랑할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꼽추가 되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 이야기를 들은 프롭체는 모세의 맑고 아름다운 눈을 볼 수 있었습니다. 천천히 다가가 그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된 것입니다. 얼마 후 프롭체는 모세 멘델스존의 아내가 되었고 그녀의 헌신적인 내조로 가문이 재건되었으며, 이 가정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곡가 멘델스존이 태어난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의 부부도 여호와 하나님이 짝지워주신 줄 믿으면 어떠한 허물이나 부족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청년들도 여호와 하나님에게 자기에게도 배필을 달라고 기도하시고 우리 연로하신 부모님들도 자기 자녀들의 부부는 여호와 하나님이 짝 지워주실 믿으시기를 바라고 계속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생각으로 헤어져서는 안 됩니다.
마태복음19장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시험하려고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날 이혼이 너무 보편적으로 이루어져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러므로 결혼은 기도하며 신중을 기해야 하며, 결혼을 했으면 일단 성경대로 배우자의 부정한 일이 없는 한 가정을 살려나가야 할 것입니다.
한양대 교수로 역임했던 최래옥 장로님의 예화집에는 이런 이야기가 소개 되고 있습니다. 수 십 년 전에 가난한 농촌 출신의 법대생 이었던 박모 군은 어느 여관집 딸인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입주 가정교사를 하며 학교를 다녔습니다. 수차 고시에 낙방, 졸업 후 제대하고 낙심한 가운데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여관집 주인이 그 청년을 불러다가 말하기를 ‘박 군 자네가 어려서부터 가르친 우리 딸이 많이는 못 배웠으나 애는 괜찮네 우리도 외동딸이라 데릴사위를 보려니까 우리 집 사위가 되어 이 여관이 나 운영하며 편히 살게나. ’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주인아저씨의 청을 받아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제자를 아내로 맞았습니다.
그런데 중학교만 나온 아내가 남편이 늘 허전해 하는 것을 보고 권하기를 “고시 운은 아내 운도 있답니다. 제가 기도했으니까 한번 고시를 더 보세요. ” 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내의 간청으로 마지막 고시를 본다는 것이 덜컥 합격되었습니다. 검사가 되니 무식해 보이는 아내보다 많이 배운 여인들의 유혹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럼에도 박 검사는 일찍 퇴근하여 못 배운 아내를 밤이면 이전 가정교사 때 이상의 열의로 가르치고 학원에 내보면서 계속 검정고시를 보게 함으로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후에 귀부인 모임에 당당히 내 보냈습니다.
그 후 겸손하고 온화한 이 부인은 부인회 회장이 되었습니다. 장로 최래옥 교수님이 박검사 집 아들을 가르친 적이 있는데 자손도 다 잘되었다고 합니다. 사랑하시는 부부 여러분들이여, 지금부터 여호와 하나님이 짝 지워주실 여러분의 자식들의 배우자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아무리 기울기가 심하더라도 서로 사랑하며 도와주어 키워가면서 사십시오.
어느 부부든 만족은 없습니다. 다만 아름다움을 만들어 가는 과정입니다. 행복한 부부의 작품이 언제 완성되는가 세상에서 완성은 없습니다. 미완성을 계속 완성시키면서 살다가 떠나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 부부 성가대원이 열심히 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내가 갑자기 병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 대원이 새 장가를 들어서 젊은 새 부인을 맞았고, 그 새 부인과 계속 찬양대 봉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남편이 새로운 부인에게 이전 부인 보다 너무나 잘해주는 것이었습니다. 피스도 들어주고, 까운도 입혀주고, 간식도 챙겨주고... 사실은 이런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던 죽은 전부인의 친구였던 여자성가대원들이 입방아를 찧었습니다.
“먼저 죽는 사람만 병신이여, 일찍 죽은 사람만 불쌍하지. ”
그러던 어느 날도 그 남편이 새로운 부인에게 오버액션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중 한 여자대원이 자기 남편의 옆구리를 찌르면서 따졌습니다. “당신도 나 죽으면 저럴 거지” 그러자 남편이 하는 말, “설마, 나한테도 그런 축복이 있을라고... ”
혹시라도 남편을 죽이고 싶도록 미운분 계십니까 남편을 행복하게 죽이는 법이 있습니다.
귀에다 대고 “사랑해!”소리를 꽥지릅니다. 귀 터져 죽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만 만나주는 겁니다. 그러면 보고 싶어 죽습니다.
뽀뽀만 해주고 Kiss는 안 해 주는 겁니다. 애가 타서 죽습니다.
비 오는 날 집 앞에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깜짝 놀라 죽습니다.
잠옷을 입고 야시시 하게 바라보세요. 어이없어 죽습니다.
모르는 척 다른 남자이름을 불러보세요. 열 받아 죽습니다.
그윽한 눈으로 쳐다보세요. 호수 같은 눈에 확 빠져죽습니다.
매일매일 웃기세요. 턱 빠져 죽습니다.
한밤중에 아프다고 땡강 부려 보세요. 안타까워 죽습니다.
이래도 안 죽으면 평생 행복하게 사세요. 다른 생각하지 마시고요. 이 사람하고 같이 평생을 살 수 없다는 생각이나, 같이 살아야 되나 말아야 되나 하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마십시오. 한 몸 된 것 다시 떼어내서 갈라설 수 없지 않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행복한 부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강원 영월군에서 열리는 제3회 세계국립대학총장문화예술교육(UCAWE) 국제심포지엄 참석차 지난 5월 18일 방한한 조지 보루구 관광청장은 바누아투 국민의 행복 비결을 묻는 질문에 “물질이 풍부한 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직접 와서 느끼면 삶을 조금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바누아투 국민의 취업률은 7% 선이고, 취업자 대부분이 관광업에 종사하며 고기잡이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남태평양의 빈곤국 중 하나인 이 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900달러로 전 세계 233개국 중 207위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조사대상국 178개국 중 102위로 조사되었습니다.
성적이 행복순이 아니듯이 소득이나 자원이 행복순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는 자살이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반면에 “바누아투는 지난 5, 6년간 자살자가 한 명도 없다가 얼마 전 1명이 자살했다고 합니다. 인구가 비록 적지만 소득이 233개국 중에서 207위인데도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김동건 아나운스가 진행하던 ‘11시에 만납시다’라는 프로가 있었습니다. 이 프로에 방송된 한 소녀의 사연입니다. 그 소녀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생김새의 소녀였습니다. 아마도 성실하게 사는 소녀가장이라 토크쇼에 초대되어졌던 것 같습니다. 소녀는 병든 할머니와 어린 남동생과 함께 산동네에 산다고 했습니다.
소녀의 아버지는 소녀가 어렸을 때 도아가셨고 얼마 후 어머니까지 집을 나가셨다고 했습니다. 그 소녀의 이름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소녀는 자신도 남들처럼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했습니다.
김동건 아나운스가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하고 물었습니다. 소녀는 동생과 함께 어린이 대공원에 가서 아이스크림도 먹고 평소에 타보고 싶은 바이킹이란 놀이기구도 타고 싶다고 얼굴을 붉히며 말했습니다. 김동건씨는 눈시울을 붉히며 그 비용을 자신이 낼테니 얼마나 되겠느냐고 소녀에게 물었습니다. 이 소녀는 의외의 제안에 조금 생각에 잠기는 듯 했습니다. 소녀는 조심스럽게 “4,750원”이라고 상세한 사용처를 밝혔습니다.
입장료, 아이스크림, 바이킹 요금, 대공원까지의 버스 요금.. 1만원도 아닌 4750원의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이 소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상이 참으로 고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수억이 있어도 불행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4750원만 있어도 행복할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으니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행복이란 많고 큰 것이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소득이 207위인 바누아투가 행복지수가 제일 높다고 하는 것이 결코 실수가 아니요,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행복해야 하고 가정이 행복해야 합니다. 가정 행복의 중심은 부부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참으로 부부가 중요 합니다. 부부가 우선적으로 행복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부부를 만드셔서 에덴에서 살게 하셨을 때의 과정을 살펴봅시다. 여호와 하나님도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부부를 허락하신 후에 어떻게 살기를 원하셨을까요
첫째, 돕는 배필로서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부부가 서로 도우며 살라고 만드셨습니다. 18절 말씀.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는 성격, 인물, 지식, 재물, 건강 등 그 어떤 것도 다 갖춘 사람은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뭔가 부족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가 돕는 관계로 만들어 주신 것이 부부입니다. 부부는 많은 것을 서로가 나누어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부족한 부분을 서로가 채워주는 것이 부부입니다.
내가 채워주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항상 살펴야 합니다. 살아보면 서로가 불만이 있는데 그 불만은 대부분 상대방이 나에게 제대로 해주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그것을 채워주도록 노력해야지, 상대방이 나에게 무엇인가를 해주기를 기다려서는 안됩니다. 서로가 상대방의 부족한 부분을 살펴서 채워주려고 노력할 때 행복 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였던 이태영 여사는 이화여전을 졸업하고 평양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때 평생의 반려인 정일형 박사를 만나 결혼했지만, 그녀는 오랜 시간 남편의 옥바라지를 해야 했습니다. 미국 유학까지 하고 온 남편은 항일 운동을 한다는 명목으로 항상 일본 경찰의 감시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태영 여사는 남편의 옥바라지를 위해 이불을 만드느라 밤새 가위질을 하고 낮에는 이불을 이고 집집하다 다니며 팔았습니다. 전차 삯을 아끼려고 이불 보따리를 이고 수십 리를 걷는 날이 허다했습니다. 남편의 옥살이는 광복이 될 즈음에야 끝났습니다. 그런데 감옥에서 나와 아내의 손을 잡은 남편은 눈물을 왈칵 쏟을 뻔했습니다.
아내의 오른손 엄지가 90도 넘게 뒤로 젖혀지고 검지와 중지도 크게 휘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알제시대 말기 전쟁 무기를 만들기 위해 쇠붙이를 죄다 쓸어가 이불보를 자를 제대로 된 가위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날이 무디기만 한 가위질을 어찌나 많이 했던지 손가락이 휘어 기형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동안 아내의 고생이 어떠했는지 그 휘어진 손가락으로 짐작하고도 남았습니다. 그런 아내를 위해 이제 자신이 무거운 보따리를 바꿔질 때였습니다. 그렇게 남편의 격려로 이 태영 여사는 1946년 서른셋의 나이로 법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최초의 변호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훗날 남편 정일형 박사는 외국을 나가거나 멀리 여행을 다녀올 때면 아내를 위한 선물을 꼭 하나 사왔는데, 그것은 바로 가위였습니다.
잘 드는 가위 하나 가져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아내의 옛 소망을 그렇게나마 풀어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나중에 모여진 가위가 200개나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부부입니다. 서로 돕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부부는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합력해야 합니다. 이것을 일명 바늘과 실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바늘이 너무 빨리 가면 실이 끊어지고, 바늘이 너무 느리면 실은 엉키고 맙니다. 그렇다고 바늘대신 실을 잡아당기면 실과 바늘은 따로 놀게 됩니다. 더구나 실과 바늘은 자신의 역할을 바꿀 수도 없고, 바꾸어서도 안 됩니다. 실과 바늘의 조화, 여기에 부부화합의 비밀이 있습니다.
부부가 화합을 잘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바람을 빼십시오. 힘을 빼야 합니다. 사막의 모래에서 차가 빠져 나오는 방법은 타이어의 바람을 빼는 일입니다. 공기를 빼면 타이어가 평평해져서 바퀴 표면이 넓어지기 때문에 모래 구덩이에서 빠져 나올 수 있습니다.
부부가 갈등의 모래사막에 빠져 헤멜 때 즉시 자존심과 자신의 고집이라는 바람을 빼면 됩니다. 그러면 둘 다 살 수 있습니다. 바람만 빼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을 죽여야 합니다. 죽으면 삽니다. 이것을 일명 김치의 법칙이라 합니다.
배추는 5번 이상 죽어서야 김치가 됩니다. 땅에서 뽑힐 때, 칼로 배추의 배를 가를 때, 소금에 절일 때, 매운 고추와 젓갈과 마늘의 양념에 버무러질 때, 그리고 입 안에서 씹힐 때, 그래서 입안에서 김치라는 새 생명으로 거듭납니다. 행복이란 맛을 내기 위해 부부도 죽고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이 피어납니다.
21-22말씀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하와를 만들 때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해놓고서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그 자리에는 살로 대신 채우셨습니다. 아담에게서 취하신 갈빗뼈로 여자를 만드신 후에 아담에게로 데리고 왔습니다. 남편을 아내를 위해 희생해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의 희생을 통해서 자신이 존재함을 믿고 남편에게는 감사한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와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아담이 하와가 너무 마음에 들어 끔찍이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물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제 아내를 어떻게 저렇게 아름답게 만드셨어요”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래야 네가 사랑할 거 아니냐”그러셨습니다.
“그럼, 어떻게 저렇게 착하게 만드셨어요”
“그래야 네가 아껴줄 거 아니냐”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 가만히 보면 제 아내가 좀 맹한 데가 있어요. 그건 왜죠”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그래야 하와가 너 같은 사람을 사랑할 거 아니냐”
둘째, 사랑의 고백을 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23절 말씀,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한 소년이 엄마 품에 안겨 울먹거리며 말했습니다.
“엄마, 산이 날 보고 자꾸 바보라 그래요. ” 이야기를 들은 엄마가 물었습니다.
“너가 뭐라고 했는데”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야, 이 바보야!” 순간 엄마가 빙그레 웃으며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내일은 산에 가서 “‘야, 이 천재야!!!’하고 외쳐보렴” 엄마가 시키는대로 해보니까 정말로 산이 소리쳐 주었습니다. “야, 이 천재야!!!”
부부의 사랑고백은 항상 되돌아옵니다.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는 것이야말로 부부의 황금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말도 좋은 말을 하세요. 들어서 기분 좋은 말을 하세요.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습니다.
우리가 고백해야 할 말은 한 두 마디가 아닙니다. 평소에 살편서 순간 순간 해야 말들이 많습니다. 몇 가지씩만 살펴보겠습니다. 아내를 감동시키는 말들은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당신 갈수록 더 멋있어, 당신 음식 솜씨는 일품이야, 역시 나는 처복이 많아, 당신, 왜 이리 예뻐졌어, 역시 장모님밖에 없어, 여보 사랑해요, 당신은 못하는 게 없네, 처녀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 등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감동시키는 말들은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여보 사랑해요, 여보, 아이가 당신 닮아서 저렇게 똑똑하나봐요, 내가 시집 하나는 잘 왔지, 내가 복받은 여자지, 당신이라면 할 수 있어요, 역시 당신밖에 없어요, 내가 시어머니 복은 있나봐요, 당신 덕분에 이렇게 잘 살게 되었잖아요, 당신만 믿어요, 세상에 당신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요, 당신은 여호와 하나님 다음이에요, 다시 태어나도 당신밖에 없어요 등입니다.
사실 남편은 아내로부터 “당신을 믿어요” “힘 내세요”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사랑해” “많이 힘들지”란 말을 들을 때 가장 감동받고 힘이 난다고 합니다. 특히 남편은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십시오. 듣고 있어도 또 듣고 싶은 말이라고 합니다. 서로가 귀에다 대고 속삭여볼까요
“누가 뭐래도 나는 당신을 믿어요. 힘내세요”
“못난 나를 만나 많이 힘들지. 여보, 사랑해”
셋째, 부모를 떠나서 독립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24절 말씀,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자식이 부모를 의지하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독립정신을 길러야 합니다. 부모도 자식이 부모를 의존하지 않는 것을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부모님들은 자식이 적어서 그런지 몰라도 자식들을 쉽게 놓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문제가 됩니다.
두 사람의 결혼이 성공하려면 철저하게 떠나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왜 부모를 떠나라고 했는가 몸만 떠난다고 해서 온전히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마음까지도 떠나야 합니다. ‘제가 결혼하더니 제 아내 밖에 모른다. 제가 왜 저렇게 많이 변했지’라고 하면서 아들을 이상하게 취급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고백이 나와야 그 아들의 결혼은 성공하는 것입니다.
넷째, 수치심이 없이 살기를 원하십니다.
25절 말씀,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하나라는 느낌을 가장 강하게 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어떤 사람들 앞에서도 옷을 입지 않고 나타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부부는 예외입니다. 어릴 때는 다 벗고 있지만 여섯 일곱 살만 되어도 부모 앞에서도 쉽게 옷을 벗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부부는 예외입니다. 부부가 진정으로 한몸 된 모습으로 살려면 이런 수치심을 느끼지 않아야 합니다. 그럴려고 하면 허물이 없어야 합니다. 부부는 몸도, 마음도 그 어떤 것도 흉이 될 수 없습니다. 허물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수치심도 없습니다. 사실 수치심이 없으려면 죄가 없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가 벗었음이 눈에 들어왔을 때가 언제입니까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였습니다. 그 전에는 부끄러워하지 않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순간 죄를 범하게 되었고 죄를 범하는 순간 부끄러운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섯째, 부부는 여호와 하나님이 짝지워 주심을 믿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독일 낭만주의 작곡가 멘델스존의 할아버지인 모세 멘델스존은 어려서부터 척추 카리에스를 앓아서 몹시 보기 흉한 곱추였다고 합니다. 어느 날 함부르크에 있는 어느 부잣집 상점에 갔다가 그 집 딸인 프롭체를 보고 첫 눈에 사랑에 빠졌습니다. 애절하고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을 보여주려고 했지만, 프롭체는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되어 모세 멘델스존은 용기 있게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배필이 있다고 믿습니까” 그녀는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모세 멘델스존은 말하기를 “제가 저의 배필을 위해서 기도하였는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너의 배필은 마음이 착하지만 꼽추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안됩니다 여호와 하나님, 차라리 저를 꼽추로 만들어 주시고 제가 사랑할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꼽추가 되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 이야기를 들은 프롭체는 모세의 맑고 아름다운 눈을 볼 수 있었습니다. 천천히 다가가 그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된 것입니다. 얼마 후 프롭체는 모세 멘델스존의 아내가 되었고 그녀의 헌신적인 내조로 가문이 재건되었으며, 이 가정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곡가 멘델스존이 태어난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의 부부도 여호와 하나님이 짝지워주신 줄 믿으면 어떠한 허물이나 부족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청년들도 여호와 하나님에게 자기에게도 배필을 달라고 기도하시고 우리 연로하신 부모님들도 자기 자녀들의 부부는 여호와 하나님이 짝 지워주실 믿으시기를 바라고 계속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생각으로 헤어져서는 안 됩니다.
마태복음19장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시험하려고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날 이혼이 너무 보편적으로 이루어져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러므로 결혼은 기도하며 신중을 기해야 하며, 결혼을 했으면 일단 성경대로 배우자의 부정한 일이 없는 한 가정을 살려나가야 할 것입니다.
한양대 교수로 역임했던 최래옥 장로님의 예화집에는 이런 이야기가 소개 되고 있습니다. 수 십 년 전에 가난한 농촌 출신의 법대생 이었던 박모 군은 어느 여관집 딸인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입주 가정교사를 하며 학교를 다녔습니다. 수차 고시에 낙방, 졸업 후 제대하고 낙심한 가운데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여관집 주인이 그 청년을 불러다가 말하기를 ‘박 군 자네가 어려서부터 가르친 우리 딸이 많이는 못 배웠으나 애는 괜찮네 우리도 외동딸이라 데릴사위를 보려니까 우리 집 사위가 되어 이 여관이 나 운영하며 편히 살게나. ’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주인아저씨의 청을 받아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제자를 아내로 맞았습니다.
그런데 중학교만 나온 아내가 남편이 늘 허전해 하는 것을 보고 권하기를 “고시 운은 아내 운도 있답니다. 제가 기도했으니까 한번 고시를 더 보세요. ” 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내의 간청으로 마지막 고시를 본다는 것이 덜컥 합격되었습니다. 검사가 되니 무식해 보이는 아내보다 많이 배운 여인들의 유혹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럼에도 박 검사는 일찍 퇴근하여 못 배운 아내를 밤이면 이전 가정교사 때 이상의 열의로 가르치고 학원에 내보면서 계속 검정고시를 보게 함으로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후에 귀부인 모임에 당당히 내 보냈습니다.
그 후 겸손하고 온화한 이 부인은 부인회 회장이 되었습니다. 장로 최래옥 교수님이 박검사 집 아들을 가르친 적이 있는데 자손도 다 잘되었다고 합니다. 사랑하시는 부부 여러분들이여, 지금부터 여호와 하나님이 짝 지워주실 여러분의 자식들의 배우자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아무리 기울기가 심하더라도 서로 사랑하며 도와주어 키워가면서 사십시오.
어느 부부든 만족은 없습니다. 다만 아름다움을 만들어 가는 과정입니다. 행복한 부부의 작품이 언제 완성되는가 세상에서 완성은 없습니다. 미완성을 계속 완성시키면서 살다가 떠나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 부부 성가대원이 열심히 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내가 갑자기 병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 대원이 새 장가를 들어서 젊은 새 부인을 맞았고, 그 새 부인과 계속 찬양대 봉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남편이 새로운 부인에게 이전 부인 보다 너무나 잘해주는 것이었습니다. 피스도 들어주고, 까운도 입혀주고, 간식도 챙겨주고... 사실은 이런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던 죽은 전부인의 친구였던 여자성가대원들이 입방아를 찧었습니다.
“먼저 죽는 사람만 병신이여, 일찍 죽은 사람만 불쌍하지. ”
그러던 어느 날도 그 남편이 새로운 부인에게 오버액션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중 한 여자대원이 자기 남편의 옆구리를 찌르면서 따졌습니다. “당신도 나 죽으면 저럴 거지” 그러자 남편이 하는 말, “설마, 나한테도 그런 축복이 있을라고... ”
혹시라도 남편을 죽이고 싶도록 미운분 계십니까 남편을 행복하게 죽이는 법이 있습니다.
귀에다 대고 “사랑해!”소리를 꽥지릅니다. 귀 터져 죽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만 만나주는 겁니다. 그러면 보고 싶어 죽습니다.
뽀뽀만 해주고 Kiss는 안 해 주는 겁니다. 애가 타서 죽습니다.
비 오는 날 집 앞에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깜짝 놀라 죽습니다.
잠옷을 입고 야시시 하게 바라보세요. 어이없어 죽습니다.
모르는 척 다른 남자이름을 불러보세요. 열 받아 죽습니다.
그윽한 눈으로 쳐다보세요. 호수 같은 눈에 확 빠져죽습니다.
매일매일 웃기세요. 턱 빠져 죽습니다.
한밤중에 아프다고 땡강 부려 보세요. 안타까워 죽습니다.
이래도 안 죽으면 평생 행복하게 사세요. 다른 생각하지 마시고요. 이 사람하고 같이 평생을 살 수 없다는 생각이나, 같이 살아야 되나 말아야 되나 하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마십시오. 한 몸 된 것 다시 떼어내서 갈라설 수 없지 않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행복한 부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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