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그 나라를 바라보며
본문
요즘은 교회마다 부흥회를 대체로 일년에 한번 정도 합니다. 그전에도 농어촌 관계없이 부흥회는 다 했습니다. 지금의 부흥회가 옛날과는 큰 차이는 없지만 그전에 부흥회는 여러 날을 했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저녁까지 합니다. 그러다 은혜가 되면 한 주간 또 연장합니다. 두 주간 동안 성도들이 계속 모여서 은혜를 받습니다. 부흥회 참석하는 성도들의 얼굴이 천사같이 빛납니다. 농촌에서 모두 어렵게 살지만 이 세상의 어떤 부자가 누릴 수 없는 부유함을 가지고 집회에 참여합니다. 부흥회를 하면 그 교회 교인만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교인들은 모두 다 모입니다. 이 집, 저 집에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인이래야 몇 가정 안되기에 장로님가정 집사님 가정에 손님들로 베들레헴에서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처럼 꽉꽉 찹니다. 가난한 우리 집에도 잠 잘 데가 없어서 그저 한 방에 열 명씩 들어가 잡니다. 부흥회만 되면 많은 손님들이 왔었습니다. 집에 있는 양식도 바닥이 납니다. 있는 대로 감자, 고구마 끝장나고 김치, 고추장, 된장 다 없어집니다. 그러나 어느 주인이 '없어진다' 이런 생각 안 합니다. 모두 기쁘게 집회에 참석을 하고 손님 대접하는 것을 그렇게 즐거워 할 수 없습니다. 저도 우리 집에 손님이 오시면 참 반갑고 좋았습니다. 또 부흥 강사도 그렇습니다. 그때는 교회가 어려울 때이니까 사례비로 그저 쌀 두 말 정도 드렸습니다. 그러면 목사님은 쌀 메고 가시는 것입니다. 참깨 같은 것도 드리면 갖고 가시고 그냥 그런 정도입니다. 그래도 목사님들도 모두 다 그런 것 생각하지 않고 기쁘게 오셔서 집회에 최선을 다하고 갑니다. 내용은 거의 다 비슷합니다. 그때의 내용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천국에 대한 소망이었습니다. 예수 잘 믿으면 하늘나라 간다는 내용입니다. 재림론에 대한 것입니다. 전 천년설, 후 천년설을 모르고 요한계시록을 모르면 그때 부흥회를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하늘 나라 생각하고 모두 다 큰 은혜를 받습니다. 얼굴마다 빛나고, 모이는 곳곳마다 대화들에 은혜가 충만했었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조금 반대가 되었습니다. 오늘 교회의 주제들은 천국이 아닙니다. 일년 가봐야 그런 설교 듣기 어렵습니다. 부흥회를 해도 그런 말 별로 잘 안 듣습니다. 그저 재림의 찬송이니 부르는 정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우리가 면류관 받아쓰고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 이것이 성도의 기쁨이요 축복이요 힘인데, 우리가 언제나 그 나라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데, 요사이는 재림에 대한 복음성가가 거의 없습니다. 그 전에는 많이 불렀습니다.
♬잘 있거라 세상아 나도 가노라. 칠년 환난 있기 전에 나는 가노라
♬ 세상의 시달림도 이제 끝나고 할렐루야 이 하루를 기다렸도다. )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 가실 때 다시 오마 하신 내 주님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핍박이 많아도 누구도 그것을 핍박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핍박 때문에 안나오는 분이 별로 없었습니다. 교인이 30명이면, 그 중에 20명은 날마다 얻어맞든지 욕먹던지 쫓겨나서 교회에 나옵니다. 이것이 계속 됩니다. 예배 보다가 거의 불려 나가는 교인이 많습니다. 밖에서 소리 지르면 나갑니다. 그래도 멍이 들어도 그 다음날 다 나옵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다 그렇습니다. 왜, 왜 모두 이렇게 기쁘게 살아갑니까 부유해서 입니까 평안해서 입니까 몸에 걸칠 옷도 없었던 때였습니다. 그 모든 기쁨이, 힘이, 그 풍성한 은혜가 어디에서 왔습니까 천국같이 살아가는 그 힘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저 나라에 대한 소망이었습니다. 유명한 G. 허버트는 '너희 행동은 낮게 하고 희망은 높이 가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삶은 낮추어야 됩니다. 생활은 검소해야 됩니다. 겸손해야 됩니다. 세상의 것은 낮추어야 됩니다. 그러나 영적인 것은 높여야 됩니다. 하늘은 높여야 됩니다. 그러나 땅의 것은 낮추어야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희망이요, 행복이요, 성도들의 축복인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평생동안 낮추어 사셨습니다. 만 왕의 왕 온 우주를 다 가지셨는데도 주님은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권력이 있어도 전혀 힘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하늘의 천군 천사 모든 군대가 당신의 것이지만 주님은 약한 자로 사셨습니다. 태어나실 때도 베들레헴에서, 자라나시는 것도 시골 나사렛이었습니다. 마구간에서 마굿간같은 곳으로 일생을 옮겨가셨습니다. 세례도 낮은 곳에 가셔서... 제자들도 가장 낮은 제자들... 친구들도 가장 낮은 친구들... 심방도 가장 낮은 집에 심방... 문둥병자들이 있는 곳에 가셨습니다. 병자들만 이글거리는 곳, 베데스가에 가셨습니다. 주님이 심방하여 주무시는 집도 땟거리도 없는 집, 마리아와 마르다, 나사로의 집에 가셔서 주무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언제나 바라보는 곳은 저 높은 곳, 아버지 계신 곳, 하늘 나라였습니다. 예수님의 기도하신 모습과 우리가 무엇이 다릅니까 예수님은 아버지를 바라보고 위를 바라봅니다. 우리는 아랫것을 찾고 구합니다. '아랫것 뭐 없나 아래 무슨 좋은 일이 없나' 그저 아랫것 생각하느라고 머리 한번 들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의 삶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습니까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우리 성도들의 기쁨이 어디에서 옵니까 위에서 옵니다. 언제나 저 높은 곳을 바라보며 특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성도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그 보다 더 좋은 것이 하늘나라에 있기 때문에 땅에 좋은 일에 대해서 그렇게 흥분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늘 나라의 기쁨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땅에 어떤 일이 우리에게 실망을 주는 일이 있어도 우리는 바라보는 곳이 있기 때문에 얼마 후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그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 생각하면서 어떤 것에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기쁨으로 살아갑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제자들이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습니까 그러나 모두다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빌립보서 2장 17절에 "내가 관제로 드릴지라도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감옥에 갇힐 뿐만 아니라 지금 로마의 감옥에서 곧 순교자가 되어 어떤 몸으로 비참하게 죽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나는 그 너머에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 죽은 다음에 가는 그 나라 생각하면서 늘 기쁘게 살았습니다. 좋은 것은 이 땅에 없습니다. 가장 귀한 것은 거기에 있습니다. 교회에 오셔서도 그렇습니다. 교회에 와서 은혜 받는 우리 성도들도 설교가 큰 은혜가 되어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하늘나라에 가서 주님 앞에 직접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 뒤에 계시는 참 목자이신 주님 생각하면서 땅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 주시는 말씀에 위로를 받습니다.
오늘 우리 성가대가 참 잘 했지만은 성가대는 하늘 성가대의 모형입니다. 그 나라에는 수많은 천군 천사들이 화답하며 늘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어마어마한 장엄한 성가대의 찬양이 있기 때문에 찬양대 뒤에 있는 하늘의 찬양대를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가대가 참 잘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선 이렇게 많은 인원을 가진 성가대는 전 세계에 거의 없다고 봐야합니다. 한 성가대에 300여명씩 7부를 그렇게 앉는데 간단한 인원이 아닙니다. 또 찬양도 잘합니다. 그러나 땅의 것만 바라보는 사람은 일년 안 가서 그 찬양이 그 찬양입니다. 실증 납니다. 아무 감격이 없습니다. 하늘에 소망을 가지고 하늘의 찬양을 생각하면 여럿이 아닌 한 사람이 해도 할머니가 찬양해도 은혜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하늘에는 찬양이 있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도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가면 주님과 함께 나는 너로 더불어 먹고 너는 나로 더불어 먹는. 주님과 한 상에 먹는 그 나라 음식을 생각할 때 땅의 음식은 모두가 다 꿀맛과 같고 내게 기쁨의 시간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만 보고 이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무너집니다. 잠깐인 것입니다. 오래갈 수 없습니다. 어떤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주일도 부서지지 않았습니까 동아 건설이라고 시리아 수로를 건설하여 100억불 되는 공사를 하는 회사가 있습니다. 세계가 깜짝 놀라는 어마어마한 공사를 하고 세계 신문에 들끓고 하던 회사가 부도가 나서 파산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 나라 첫째, 둘째 하던 대우의 그 분도 방 한 칸이 없고 어디 숨을 자리가 없어서 세계에 유리 방황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큰 기업이 어디 있습니까 현대하면 세계적인 기업입니다. 그러나 현대도 90%가 부도 난 상태입니다. 땅에 있는 성은 무너집니다. 땅에 있는 집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물질의 성은 무너집니다. 권력의 성도 무너집니다. 인기의 성도 무너집니다. 사람이 쌓아 올린 바벨탑은 무너지게 되어져 있습니다. 땅을 바라보면 영원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땅을 바라보면 끊임없이 불안하게 되어 있고 걱정과 근심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어거스틴이 말한 대로 무너지지 아니하는 성은 여호와 하나님의 성입니다. 하늘에 있는 성입니다. 땅의 것은 다 무너지게 되어져 있고 무너지는 것이 정상입니다. 다 무너집니다. 안 무너지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도 무너집니다. 얼마 있지 않으면 우리 다 공동묘지로 갑니다. 오래 남지 않았습니다. 다 가야 합니다. 안 갈 분은 하나도 없습니다. 공원묘지라도 가면 괜찮습니다. 앞으로 우리 나라는 60%이상이 화장하게 될 것입니다. 공원 묘지도 못 갈 분들이 여기 많습니다. 또 공원 묘지 가봐도 20년이면 꺼내서 태웁니다. 그러니까 이래 타나 저래 타나 잠깐입니다. 이 땅에 있는 성은 무너지는 것입니다. 모든 보이는 것은 무너집니다. 내 행복도 무너지는 것이고 건강도 무너지는 것이고 부귀도 영광도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는 저 나라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영원히 살아 있고 영원히 아름다운 무궁세월 흐르는 곳입니다. 그래서 오늘 찬양을 부탁했습니다.
♬아름답다 저 동산 우리 다 같이 가보세
무궁 세월 흐르는 풍파가 일지 않는 곳
평화의 동산 백합화 피고 공기는 신선
저 아름다운 저 동산 저 아름다운
저 기묘한 음악 천군 천사 화답함이라
주님이 계신 곳 그 집이 우리의 집입니다. 무궁 세월 흐르는 곳, 백합화 피는 곳, 측량할 수 없는 곳, 오늘 우리는 이 세상을 저기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기쁘게 살아갑니다. 저 소망이 있으니까 우리는 없어도 늘 있고 약해도 늘 강한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유명한 헬렌 켈러는 '희망은 사람을 성공으로 이끄는 신앙'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희망은 마음에 있는 하나의 힘이 아닙니다. 신앙입니다. 희망을 가지는 한 그는 어디에 살아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며칠 전 이민 유학 박람회를 코엑스에서 했습니다. 이틀만에 사만 오천명이 몰리고 10여만명이 인산 인해를 이뤘습니다. 전부 이민 가겠다고 몰리는 것입니다. 이민 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육문제! 정치에 염증이 나고 불안해서... 여러분 잘 아셔야합니다. 어디 별난 곳이 있습니까 가는 곳이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미국입니다. 아이들 공부만 시키면 다 되는 것입니까 희망이 있어야지 여기를 벗어난다고 해서 천국이 된다라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우리 나라가 어떻습니까 나에게 희망이 없는 것이 문제지 하늘 나라, 그 나라가 없어서 문제지 우리 나라가 뭐가 어떻다는 것입니까 호주는 인구가 1500만, 뉴질랜드는 400만 밖에 안됩니다. 그 넓은 땅에 인구는 적고 외로워서 어떻게 살려고 합니까 나는 욱적욱적하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여기가도 사람 저기가도 사람 얼마나 좋습니까 그곳은 전부 양떼 밖에 없습니다. 뭘 보고 살겠다는 것입니까 뭐든지 많아야 좋은 것입니다. 감사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어디를 가십니까 가면 뭐 대단한 것 특별한 정치가 있는 줄 압니까 여러분은 지금 희망을 가져야 됩니다. 하늘에 소망을 가질 때는 어디든지 천국입니다. 가정도 천국이요, 나라도 천국이요, 교회도 천국이요, 직장도 천국입니다. 소망이 있으면 천국입니다. 소망이 없으면 어디도 지옥입니다. 특별한 곳이 어디 있습니까 특별한 사람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복된 성도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시대의 문제점은 너무 땅의 것을 높이고 위의 하늘의 소망, 내세의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하늘의 소망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그 나라와 비교하면 기쁠 것도 없습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위로 받으며 살아가는 것은 하늘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땅의 생활은 낮추어야 됩니다. 겸손해야 됩니다. 그래서 행복의 요소가 세 가지라고 합니다. 이 세 가지만 낮추면 어디서든지 행복하다고 합니다. 귀 낮추고, 눈 높이 낮추고, 입 낮추면 어디서든지 행복하다고 합니다.
귀 높여 보십시오. 귀에 들어오는 것이 있습니까 눈 높여 보십시오. 눈에 차는 사람이 있습니까 요즘 가정에서도 부인들이 남편을 내려다 봅니다. 그러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가 높여 보아야 됩니다. 내 눈을 낮추어서 아내를 보면 천사와 같습니다. 저는 지금도 '유자'씨와 사는 것이 아니라 천사와 삽니다. 생각하면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잘 살다가 '어디 특별한 남자 없을까' 생각하지 마십시오. 잠깐 왔다가 가는 세상입니다. 눈만 낮추면 다 천사입니다. 눈만 낮추면 다 좋은데 눈을 높여 놓고 어디에 가서 누구하고 살면서 행복 하려고 생각하십니까
입도 낮추어야 됩니다. 입만 낮추면 다 꿀맛입니다. 저는 양평쪽, 청평쪽으로 가다가 놀랬습니다. 식당이 몇 백 곳입니다. 한강가로 너무너무 식당이 많습니다. 식당 메뉴가 너무나 다양합니다. 아무리 식당이 많아도 입맛 높여 놓으면 다 마음에 안차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마음에 안드는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식당에 오리 불고기를 먹으러 갔더니 너무 맛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보니 오리를 옹기에다 넣어서 구워내는데 그게 그렇게 좋았습니다. 또 어디 가니 찰흙에 발라서 내는 것입니다. 또 어디를 가니 호박에다 오리를 넣어서 구워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다음에는 수박에다 넣어라. 그 다음에는 요강에다 넣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만족이 없는 것입니까 우리가 입맛 다 병들게 해 놓았는데 무슨 맛있는 음식이 있겠습니까 항상 먹던 것 먹어도 감사하고 밥맛이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이런 삶으로 살아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의 소망을 위에 두지 않는데 있습니다. 그저 끊임없는 반복 속에서 우리는 실증이 나고, 살기가 싫어지고, 허무주의가 생기는 것입니다. 오늘 사회가 타락하고 방황하고 병들게 되는 것입니다. 소망이 있어야 건강합니다.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야 이 세상이 좋아집니다. 이 땅이 좋아지려면 교인들이 천국 가서 잘 받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상 받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주신 것 가지고 사회를 향하여 봉사도 하고 이웃을 향하여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마저도 전부 땅에 소망을 두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어디도 낙원이 없습니다. 주님이 계신 곳이 낙원입니다.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곳에 즐거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천성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끊임없는 용기요, 지혜요, 힘이 되는 것입니다.
♬하늘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픈 일을 많이 보고
늘 고생하여도 하늘 영과 밝음이 어둔 그늘 헤치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빛을 보도다. 내가 걱정하는 일이 세상에 많으나
속에 근심 밖에 걱정 늘 시험하여도 예수 보배로운 피 모든 것을
이기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빛을 보도다
유토피아는 없습니다. 유명한 토마스 모어는 '유토피아'라고 하는 이 말을 그리스어의 '아무 데도 없다'는 뜻의 말에서 따왔습니다. 그리스말로 없다는 말은 '우', 장소라는 말은 '토퍼스', 없는 장소가 바로 '유토퍼스'입니다. 이 세상에 없습니다. 공산주의는 이 땅에 유토피아가 있는 줄 알고 과학적으로, 제도적으로 사회제도를 바꾸어서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낙원이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옥이 왔습니다. 이 세상에는 낙원 가정도 없고 유토피아 교회도 없고 유토피아 나라도 없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마귀의 시험입니다. 누구하고 살면 유토피아가 됩니까 무토피아입니다. 주님이 계신 곳, 주님과 함께 가는 곳, 그 나라 생각하며 절제하며 살고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할렐루야! 생각해도 기쁨이, 감사가 나오는 이런 삶이 성도의 삶입니다.
어제 새벽집회를 마쳤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이번 집회도 우리 성도들 많이 나오고 잘 마치게 된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제 우리 장로님들이 목사님 수고했다고 사례비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안주는 것보다 낫더라구요. 집에 가서 보니까 사례비가 많습니다. 사례비를 조그맣게 과일을 가져오신 다든지 그러면 좋지 담임 목사가 자기 교회 집회 자기가 해놓고 웃기는 일입니다. 그래서 집사람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만도 너무 많은데 감사드립시다. 여호와 하나님께 바칩시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상을 저기 가서 받아야지 여기서 대우 다 받아 저기 가서 아무 것도 받을 것 없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는 위로를 저기 가서 받기 때문에 땅에서 덜 받는 위로에 대해서 마음 아파하지 않습니다.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식에게 섭섭하고 '어쩌면 이럴까' 합니다. 그러나 저 나라에 가서 위로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다 어떻게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누구하고 살면 천국같이 살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천국 가서 주님과 함께 누리는 영광이 우리 성도에게 최고의 영광, 최고의 기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위를 바라보며 살고, 위를 생각하며 살고 그 나라, 참 좋은 그 곳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직까지 좋은 것은 전혀 오지 않았습니다. 생각할수록 우리에게 희망이 되고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조금 반대가 되었습니다. 오늘 교회의 주제들은 천국이 아닙니다. 일년 가봐야 그런 설교 듣기 어렵습니다. 부흥회를 해도 그런 말 별로 잘 안 듣습니다. 그저 재림의 찬송이니 부르는 정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우리가 면류관 받아쓰고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 이것이 성도의 기쁨이요 축복이요 힘인데, 우리가 언제나 그 나라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데, 요사이는 재림에 대한 복음성가가 거의 없습니다. 그 전에는 많이 불렀습니다.
♬잘 있거라 세상아 나도 가노라. 칠년 환난 있기 전에 나는 가노라
♬ 세상의 시달림도 이제 끝나고 할렐루야 이 하루를 기다렸도다. )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 가실 때 다시 오마 하신 내 주님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핍박이 많아도 누구도 그것을 핍박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핍박 때문에 안나오는 분이 별로 없었습니다. 교인이 30명이면, 그 중에 20명은 날마다 얻어맞든지 욕먹던지 쫓겨나서 교회에 나옵니다. 이것이 계속 됩니다. 예배 보다가 거의 불려 나가는 교인이 많습니다. 밖에서 소리 지르면 나갑니다. 그래도 멍이 들어도 그 다음날 다 나옵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다 그렇습니다. 왜, 왜 모두 이렇게 기쁘게 살아갑니까 부유해서 입니까 평안해서 입니까 몸에 걸칠 옷도 없었던 때였습니다. 그 모든 기쁨이, 힘이, 그 풍성한 은혜가 어디에서 왔습니까 천국같이 살아가는 그 힘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저 나라에 대한 소망이었습니다. 유명한 G. 허버트는 '너희 행동은 낮게 하고 희망은 높이 가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삶은 낮추어야 됩니다. 생활은 검소해야 됩니다. 겸손해야 됩니다. 세상의 것은 낮추어야 됩니다. 그러나 영적인 것은 높여야 됩니다. 하늘은 높여야 됩니다. 그러나 땅의 것은 낮추어야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희망이요, 행복이요, 성도들의 축복인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평생동안 낮추어 사셨습니다. 만 왕의 왕 온 우주를 다 가지셨는데도 주님은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권력이 있어도 전혀 힘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하늘의 천군 천사 모든 군대가 당신의 것이지만 주님은 약한 자로 사셨습니다. 태어나실 때도 베들레헴에서, 자라나시는 것도 시골 나사렛이었습니다. 마구간에서 마굿간같은 곳으로 일생을 옮겨가셨습니다. 세례도 낮은 곳에 가셔서... 제자들도 가장 낮은 제자들... 친구들도 가장 낮은 친구들... 심방도 가장 낮은 집에 심방... 문둥병자들이 있는 곳에 가셨습니다. 병자들만 이글거리는 곳, 베데스가에 가셨습니다. 주님이 심방하여 주무시는 집도 땟거리도 없는 집, 마리아와 마르다, 나사로의 집에 가셔서 주무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언제나 바라보는 곳은 저 높은 곳, 아버지 계신 곳, 하늘 나라였습니다. 예수님의 기도하신 모습과 우리가 무엇이 다릅니까 예수님은 아버지를 바라보고 위를 바라봅니다. 우리는 아랫것을 찾고 구합니다. '아랫것 뭐 없나 아래 무슨 좋은 일이 없나' 그저 아랫것 생각하느라고 머리 한번 들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의 삶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습니까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우리 성도들의 기쁨이 어디에서 옵니까 위에서 옵니다. 언제나 저 높은 곳을 바라보며 특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성도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그 보다 더 좋은 것이 하늘나라에 있기 때문에 땅에 좋은 일에 대해서 그렇게 흥분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늘 나라의 기쁨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땅에 어떤 일이 우리에게 실망을 주는 일이 있어도 우리는 바라보는 곳이 있기 때문에 얼마 후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그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 생각하면서 어떤 것에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기쁨으로 살아갑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제자들이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습니까 그러나 모두다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빌립보서 2장 17절에 "내가 관제로 드릴지라도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감옥에 갇힐 뿐만 아니라 지금 로마의 감옥에서 곧 순교자가 되어 어떤 몸으로 비참하게 죽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나는 그 너머에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 죽은 다음에 가는 그 나라 생각하면서 늘 기쁘게 살았습니다. 좋은 것은 이 땅에 없습니다. 가장 귀한 것은 거기에 있습니다. 교회에 오셔서도 그렇습니다. 교회에 와서 은혜 받는 우리 성도들도 설교가 큰 은혜가 되어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하늘나라에 가서 주님 앞에 직접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 뒤에 계시는 참 목자이신 주님 생각하면서 땅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 주시는 말씀에 위로를 받습니다.
오늘 우리 성가대가 참 잘 했지만은 성가대는 하늘 성가대의 모형입니다. 그 나라에는 수많은 천군 천사들이 화답하며 늘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어마어마한 장엄한 성가대의 찬양이 있기 때문에 찬양대 뒤에 있는 하늘의 찬양대를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가대가 참 잘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선 이렇게 많은 인원을 가진 성가대는 전 세계에 거의 없다고 봐야합니다. 한 성가대에 300여명씩 7부를 그렇게 앉는데 간단한 인원이 아닙니다. 또 찬양도 잘합니다. 그러나 땅의 것만 바라보는 사람은 일년 안 가서 그 찬양이 그 찬양입니다. 실증 납니다. 아무 감격이 없습니다. 하늘에 소망을 가지고 하늘의 찬양을 생각하면 여럿이 아닌 한 사람이 해도 할머니가 찬양해도 은혜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하늘에는 찬양이 있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도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가면 주님과 함께 나는 너로 더불어 먹고 너는 나로 더불어 먹는. 주님과 한 상에 먹는 그 나라 음식을 생각할 때 땅의 음식은 모두가 다 꿀맛과 같고 내게 기쁨의 시간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만 보고 이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무너집니다. 잠깐인 것입니다. 오래갈 수 없습니다. 어떤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주일도 부서지지 않았습니까 동아 건설이라고 시리아 수로를 건설하여 100억불 되는 공사를 하는 회사가 있습니다. 세계가 깜짝 놀라는 어마어마한 공사를 하고 세계 신문에 들끓고 하던 회사가 부도가 나서 파산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 나라 첫째, 둘째 하던 대우의 그 분도 방 한 칸이 없고 어디 숨을 자리가 없어서 세계에 유리 방황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큰 기업이 어디 있습니까 현대하면 세계적인 기업입니다. 그러나 현대도 90%가 부도 난 상태입니다. 땅에 있는 성은 무너집니다. 땅에 있는 집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물질의 성은 무너집니다. 권력의 성도 무너집니다. 인기의 성도 무너집니다. 사람이 쌓아 올린 바벨탑은 무너지게 되어져 있습니다. 땅을 바라보면 영원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땅을 바라보면 끊임없이 불안하게 되어 있고 걱정과 근심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어거스틴이 말한 대로 무너지지 아니하는 성은 여호와 하나님의 성입니다. 하늘에 있는 성입니다. 땅의 것은 다 무너지게 되어져 있고 무너지는 것이 정상입니다. 다 무너집니다. 안 무너지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도 무너집니다. 얼마 있지 않으면 우리 다 공동묘지로 갑니다. 오래 남지 않았습니다. 다 가야 합니다. 안 갈 분은 하나도 없습니다. 공원묘지라도 가면 괜찮습니다. 앞으로 우리 나라는 60%이상이 화장하게 될 것입니다. 공원 묘지도 못 갈 분들이 여기 많습니다. 또 공원 묘지 가봐도 20년이면 꺼내서 태웁니다. 그러니까 이래 타나 저래 타나 잠깐입니다. 이 땅에 있는 성은 무너지는 것입니다. 모든 보이는 것은 무너집니다. 내 행복도 무너지는 것이고 건강도 무너지는 것이고 부귀도 영광도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는 저 나라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영원히 살아 있고 영원히 아름다운 무궁세월 흐르는 곳입니다. 그래서 오늘 찬양을 부탁했습니다.
♬아름답다 저 동산 우리 다 같이 가보세
무궁 세월 흐르는 풍파가 일지 않는 곳
평화의 동산 백합화 피고 공기는 신선
저 아름다운 저 동산 저 아름다운
저 기묘한 음악 천군 천사 화답함이라
주님이 계신 곳 그 집이 우리의 집입니다. 무궁 세월 흐르는 곳, 백합화 피는 곳, 측량할 수 없는 곳, 오늘 우리는 이 세상을 저기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기쁘게 살아갑니다. 저 소망이 있으니까 우리는 없어도 늘 있고 약해도 늘 강한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유명한 헬렌 켈러는 '희망은 사람을 성공으로 이끄는 신앙'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희망은 마음에 있는 하나의 힘이 아닙니다. 신앙입니다. 희망을 가지는 한 그는 어디에 살아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며칠 전 이민 유학 박람회를 코엑스에서 했습니다. 이틀만에 사만 오천명이 몰리고 10여만명이 인산 인해를 이뤘습니다. 전부 이민 가겠다고 몰리는 것입니다. 이민 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육문제! 정치에 염증이 나고 불안해서... 여러분 잘 아셔야합니다. 어디 별난 곳이 있습니까 가는 곳이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미국입니다. 아이들 공부만 시키면 다 되는 것입니까 희망이 있어야지 여기를 벗어난다고 해서 천국이 된다라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우리 나라가 어떻습니까 나에게 희망이 없는 것이 문제지 하늘 나라, 그 나라가 없어서 문제지 우리 나라가 뭐가 어떻다는 것입니까 호주는 인구가 1500만, 뉴질랜드는 400만 밖에 안됩니다. 그 넓은 땅에 인구는 적고 외로워서 어떻게 살려고 합니까 나는 욱적욱적하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여기가도 사람 저기가도 사람 얼마나 좋습니까 그곳은 전부 양떼 밖에 없습니다. 뭘 보고 살겠다는 것입니까 뭐든지 많아야 좋은 것입니다. 감사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어디를 가십니까 가면 뭐 대단한 것 특별한 정치가 있는 줄 압니까 여러분은 지금 희망을 가져야 됩니다. 하늘에 소망을 가질 때는 어디든지 천국입니다. 가정도 천국이요, 나라도 천국이요, 교회도 천국이요, 직장도 천국입니다. 소망이 있으면 천국입니다. 소망이 없으면 어디도 지옥입니다. 특별한 곳이 어디 있습니까 특별한 사람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복된 성도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시대의 문제점은 너무 땅의 것을 높이고 위의 하늘의 소망, 내세의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하늘의 소망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그 나라와 비교하면 기쁠 것도 없습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위로 받으며 살아가는 것은 하늘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땅의 생활은 낮추어야 됩니다. 겸손해야 됩니다. 그래서 행복의 요소가 세 가지라고 합니다. 이 세 가지만 낮추면 어디서든지 행복하다고 합니다. 귀 낮추고, 눈 높이 낮추고, 입 낮추면 어디서든지 행복하다고 합니다.
귀 높여 보십시오. 귀에 들어오는 것이 있습니까 눈 높여 보십시오. 눈에 차는 사람이 있습니까 요즘 가정에서도 부인들이 남편을 내려다 봅니다. 그러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가 높여 보아야 됩니다. 내 눈을 낮추어서 아내를 보면 천사와 같습니다. 저는 지금도 '유자'씨와 사는 것이 아니라 천사와 삽니다. 생각하면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잘 살다가 '어디 특별한 남자 없을까' 생각하지 마십시오. 잠깐 왔다가 가는 세상입니다. 눈만 낮추면 다 천사입니다. 눈만 낮추면 다 좋은데 눈을 높여 놓고 어디에 가서 누구하고 살면서 행복 하려고 생각하십니까
입도 낮추어야 됩니다. 입만 낮추면 다 꿀맛입니다. 저는 양평쪽, 청평쪽으로 가다가 놀랬습니다. 식당이 몇 백 곳입니다. 한강가로 너무너무 식당이 많습니다. 식당 메뉴가 너무나 다양합니다. 아무리 식당이 많아도 입맛 높여 놓으면 다 마음에 안차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마음에 안드는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식당에 오리 불고기를 먹으러 갔더니 너무 맛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보니 오리를 옹기에다 넣어서 구워내는데 그게 그렇게 좋았습니다. 또 어디 가니 찰흙에 발라서 내는 것입니다. 또 어디를 가니 호박에다 오리를 넣어서 구워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다음에는 수박에다 넣어라. 그 다음에는 요강에다 넣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만족이 없는 것입니까 우리가 입맛 다 병들게 해 놓았는데 무슨 맛있는 음식이 있겠습니까 항상 먹던 것 먹어도 감사하고 밥맛이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이런 삶으로 살아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의 소망을 위에 두지 않는데 있습니다. 그저 끊임없는 반복 속에서 우리는 실증이 나고, 살기가 싫어지고, 허무주의가 생기는 것입니다. 오늘 사회가 타락하고 방황하고 병들게 되는 것입니다. 소망이 있어야 건강합니다.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야 이 세상이 좋아집니다. 이 땅이 좋아지려면 교인들이 천국 가서 잘 받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상 받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주신 것 가지고 사회를 향하여 봉사도 하고 이웃을 향하여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마저도 전부 땅에 소망을 두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어디도 낙원이 없습니다. 주님이 계신 곳이 낙원입니다.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곳에 즐거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천성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끊임없는 용기요, 지혜요, 힘이 되는 것입니다.
♬하늘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픈 일을 많이 보고
늘 고생하여도 하늘 영과 밝음이 어둔 그늘 헤치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빛을 보도다. 내가 걱정하는 일이 세상에 많으나
속에 근심 밖에 걱정 늘 시험하여도 예수 보배로운 피 모든 것을
이기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빛을 보도다
유토피아는 없습니다. 유명한 토마스 모어는 '유토피아'라고 하는 이 말을 그리스어의 '아무 데도 없다'는 뜻의 말에서 따왔습니다. 그리스말로 없다는 말은 '우', 장소라는 말은 '토퍼스', 없는 장소가 바로 '유토퍼스'입니다. 이 세상에 없습니다. 공산주의는 이 땅에 유토피아가 있는 줄 알고 과학적으로, 제도적으로 사회제도를 바꾸어서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낙원이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옥이 왔습니다. 이 세상에는 낙원 가정도 없고 유토피아 교회도 없고 유토피아 나라도 없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마귀의 시험입니다. 누구하고 살면 유토피아가 됩니까 무토피아입니다. 주님이 계신 곳, 주님과 함께 가는 곳, 그 나라 생각하며 절제하며 살고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할렐루야! 생각해도 기쁨이, 감사가 나오는 이런 삶이 성도의 삶입니다.
어제 새벽집회를 마쳤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이번 집회도 우리 성도들 많이 나오고 잘 마치게 된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제 우리 장로님들이 목사님 수고했다고 사례비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안주는 것보다 낫더라구요. 집에 가서 보니까 사례비가 많습니다. 사례비를 조그맣게 과일을 가져오신 다든지 그러면 좋지 담임 목사가 자기 교회 집회 자기가 해놓고 웃기는 일입니다. 그래서 집사람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만도 너무 많은데 감사드립시다. 여호와 하나님께 바칩시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상을 저기 가서 받아야지 여기서 대우 다 받아 저기 가서 아무 것도 받을 것 없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는 위로를 저기 가서 받기 때문에 땅에서 덜 받는 위로에 대해서 마음 아파하지 않습니다.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식에게 섭섭하고 '어쩌면 이럴까' 합니다. 그러나 저 나라에 가서 위로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다 어떻게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누구하고 살면 천국같이 살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천국 가서 주님과 함께 누리는 영광이 우리 성도에게 최고의 영광, 최고의 기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위를 바라보며 살고, 위를 생각하며 살고 그 나라, 참 좋은 그 곳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직까지 좋은 것은 전혀 오지 않았습니다. 생각할수록 우리에게 희망이 되고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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