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지금은 나라를 생각할 때입니다
본문
성경 유머 퀴즈 가운데 이런 퀴즈가 있습니다.
세상의 직업 가운데 가장 오래된 직업이 무엇인가
한 의사 선생님이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해요. 나는 아무래도 의료업이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까 아담이 잠들었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갈비뼈 하나를 꺼내서 하와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최초의 외과 수술이 아니겠느냐 의료업이 제일 오래된 직업이다.
그러니까 그 옆에 있던 건축업자가 나는 건축업이 더 오래 되었다고 생각 한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그 창조의 행위 자체가 일종의 건축 행위가 아니겠느냐
옆에 있던 설계업자가 말하기를 그보다 설계사가 더 오래된 직업이라고 생각하는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기 전에 설계를 가지고 계셨으니까 설계사가 제일 오래되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그 옆에있는 한 사람이 이런 소리를 했데요.
나는 정치가 가장 오래되었다고 생각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창세기 1장 2절에 보면 땅이 혼돈하며 그랬는데 그 혼돈을 누가 만들었겠느냐 이 비슷한 맥락의 죠크가 우리 한국 사회의 몇 년 전에 유행했던 것을 아마 기억하실 것입니다.
한강 물에 수녀 하고 국회의원 둘이 빠졌는데 구조대원이 들어가더니 수녀를 먼저 건질 줄 알았는데 국회의원을 먼저 건 지더래요. 그래서 어쩌자고 수녀는 안건지시고 국회위원을 건지십니까 구조대원 대답이 그대로 국회의원을 나두면 한강 물이 오염되지 않겠느냐 이런 유머들은 정치 일반에 대 한 사람들의 그 부정적 인식에 공감대를 나타내는 하나의 조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도 누군가가 정치에 관련한다고 하면 왜 그런 정치를 하실려고 합니까 이런 우리 의식에 맡바탕 구조 속에는 정치는 매우 더러운 것이고 정치에서 멀어질수록 우리의 깨끗함을 유지할 수있다는 그런 일반적 인식이 우리의 생각 안에 존재 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저는 전통적으로 기독교가 정치 참여에는 매우 소극적인 입장 을 취해 왔다고 생각을 합니다. 특별히 복음주의의 교회의 전통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정치 참여의 소홀함의 원인 중에 하나는 소위 정교분리의 전통에 대한 오해가 그 중요한 구실을 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저는 늘 합니다.
본래 이 정교 분리라는 이 단어는 그 단어 자체가 잘못 번역된 것입니다. 본래 영어번역에서 본래대로 번역을 하자면 그것은 교회와 국가의 분리입니다. 교회와 국가의 분리이지 정치와 종교의 분리는 사실 아닙니다. 교회와 국가 사이에 기능적인 분리라는 것은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과거 역사에 보시면 교회가 국가를 지배했던 때가 있었어요. 교회가 국가를 다스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교회가 국가의 왕을 임명 하던 시대, 중세기 어두운 세대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또 거꾸로 국가의 지도자들이 교회의 지도자들을 임명하고 교회를 사사건건 간섭하는 그런 역사의 암흑도 있어왔습니다, 오늘 북한의 교회라던지 전제주의 사회주의 국수주의 국가에서 대체로 이런 형태의 경향 들이 있어왔던 사실을 잘 압니다. 그래서 정치와 종교는 분리 될 수가 없지만 교회와 국가의 기능적 분리라는 것은 기술적으로 매우 필요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이 결코 그리스도인들이 정치를 외면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정치라는 것은 외면할 수도 없고 또 외면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소위 목회 서신, 목회 편지를 기록을 합니다. 디모데 전서나 후서 같은 편지는 바울의 목회서신 중에 한부분이라고 일컬어지요. 그래서 목회를 어떻게 하느냐 이런 것을 기록한 내용인데. 자기 신앙의 후계자인 디모데를 향해서 목회에 대한 지혜를 가르치는 편지를 쓰면서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기도를 강조합니다. 그런데 그냥 기도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지도자들을 위한 기도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결코 정치나 나라의 역사에 대해서 무관심할 수 없다는 좋은 하나의 교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바울은 세계를 가슴에 품고 세계를 여행하며 세계를 선교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어느 도시를 가든지 자기의 민족의 회당을 먼저 찾았고 거기서부터 먼저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복음을 받아들인 이방 민족들에게도 그들이 그들의 나라와 역사를 위해 기도해야 할 중요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웠습니다. 오늘 우리는 남북한 화해가 더 없이 요청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문제 때문에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국제적으로 맞는 어려움이 큽니다.
또한 나라의 여러 가지 어려운 위기 속에서 우리는 나라를 생각할 시간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왜 나라를 생각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나라를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의 태도라고 생각하시나요 우리는 이런 질문에 대한 상당히 분명한 대답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들어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왜 나라를 생각 해야 합니까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나라를 생각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자, 우리는 이 질문을 본문에서 우리가 스스로 답변해 주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다시 한번 짧막한 두 구절이니까 본문을 다시 한번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임금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이유 그 중요한 이유가 마지막에 기록이 되어 있는데요. 이는 우리가 경건과 단정 한 중에 어떤 생활을 하여야 함이니라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여기서 고요하다, 평안하다하는 것은 모두 형용사로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이 고요하다 평안하다하는 이 표현들은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행복의 일반적 삶의 정황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고요하다는 말은 소요스러움이 없는 외적인 삶의 정황을 나타내 주고있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평안하다는 말은 불안이 없는 내적인 삶의 정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고 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앞에 또 앞서서 강조하고 있는 두개의 단어가 있습니다. 무슨 단어가 강조되었습니까 우리가 어떤 중에 경건과 단정한 중에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 두가지 단어가 강조가 되었는데. 경건과 단정. 이 두 단어는 매우 유사하면서도 강조점에 차이가 있는 단어입니다,
우선 경건이라는 단어는 여호와 하나님의 관계에서 쓰여지는 단어입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삶의 태도,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닮아가는 삶의 덕목을 강조할 때 경건이라는 단어가 쓰여집니다.
그 다음에 단정이라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 우리가 이웃들과의 관계에서 질서있는 삶의 모습을 가리켜서 성경은 단정하다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고요. 또 이웃들과 사람들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에 고요하고도 그리고 평안한 삶의 정황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얘기를 지금 나라의 지도자를 위한 기도 속에서 하고 있습니까 이 지도자의 역할, 정치인의 역할 다시 말하면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의 그 결정은 바로 우리의 삶의 질을 결정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살아가는 삶의 상황 이 어떻게 되느냐에 가장 중요헌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이 바로 정치인 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치인들의 이 정치적인 형테에 무관심 할 수가 없습니다. 또 누가 정치를 하느냐 여기에 무관심할 수가 없는 것 입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사람들이 세워지도록 그래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과 바른 관계속에 이웃들과 바른 관계 속에서 한 평생의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 이런 정치의 영역 속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정치에 결코 무관심한 민족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이 정치에 대해 가졌던 관심은 매우 소극적인 관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한 정치 사회학자가 한국인의 정치의식이 건강하게 발전하지 못한 중요한 원인 중에 하나는 집단 의식은 존재하지만 그것이 공공의식으로 발전하지 못한 때문이다. 라는 중요한 지적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집단 의식은 존재하지만 그것이 공공의식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무슨 말입니까 일반적으로 한국인이 갖고 있는 집단의식,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집단의식,공동체 의식은 있습니다. 우리집, 우리나라, 우리 학교 뭐 이런 공동체 의식은 있죠. 그러나 이 집단의식의 영역이 매우 좁다는 거예요.
저는 부분적으로 그 원인 중에 하나가 농경 문화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한국 사람들이 옛날에 집을 지을 때 중요시한 것이 담입니다. 울타리,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강렬한 우리의식을 느낍니다. 우리 집, 우리 식구들, 그러나 내 집 울타리, 우리 집 울타리를 딱 벗어나면 넓은 우리 집에 대한 의식이 희박해요.
그래서 집 안에서는 자기 물건들을 아주 아끼던 사람들이 일단 공공 장소에 가게되면, 학교에 가게되면 이건 우리집하고 상관이 없으니까 물건을 마음대로 쓴다든지 교회에 와서도 마음대로 휴지를 버리고 마음대로 한다든지 넓은 의미의 우리의식이 없는 거예요. 좁은 의미의 우리 의식만 있지 넓은 의미의 우리 의식을 갖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 민족과 아주 유사하면서도 상당히 다른 그런 애국심을 가진 한 민족이 있다면 그들은 유대인일 것입니다. 그 유대인들의 애국하는 삶의 태도 가 우리 민족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저는 그 이유 중에 하나가 그 문화 적 배경의 차이, 특별히 농경문화와 유목 문화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고 생각을 합니다.
유대인들은 일종의 유목 문화의 배경을 가지고 있지요. 양떼를 가지고 죽 이사를 다닙니다. 여기저기 이사를 다닙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가족도 중요 하지만 가족보다 더큰 스케일의 부족이 중요해요. 왜냐하면 함께 모여 다닐 때 가족만 가지고는 그들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안전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부족, 종족 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함께 싸워야 하고 함께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가족 보다는 좀더 넓은 스케일의 민족이 라든지 부족이라든지 종족을 지켜야 하는 그런 의식이 유대인의 독특한 애국심을 만드는 배경이 되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너무 좁다는 말이죠. 우리집 안에서만 우리 가족 우리 의식을 갖지만 넘어서면 큰 스케일의 나라를 생각하는 일에 아주 희박하다는 것입니다.
이 글을 썼던 한 사회학자는 이런 얘기를 했 습니다. 물론 한국 사람이 나라를 생각 안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이 나라를 제일 잘 생각하는 때는 언제냐 나라가 거의 망할 때나, 나라가 망한 다음에. 그 다음에 한국인들의 애국심은 발휘되기 시작한다는 거예요. 그 전에 미리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미리 우리가 넓은 사회를 생각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거의 망할 때가서, 혹은 망하고 난 다음에 비로서 한국인 들의 애국의 투혼이 발휘되기 시작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나를 넘어서서 좁다란 우리를 넘어서서 커다란 스케일의 민족과 나라를 생각할 때라고 생각을 합니다. 왜 그것이 중요합니까 민족의 미래, 나의 미래와 무관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일종의 운명 공동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왜 우리가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성경은 가르칩니까 그것이 우리의 삶, 우리의 미래, 우리의 평안의 미래 또 우리의 고요함의 미래, 우리의 복된 삶 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에 있어서 그들의 영향력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치의 영역에 무관심 할 수 없다고 성경을 가르칩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나라를 생각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나라를 생각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 에서 바울 사도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라를 위할 수 있는 최대의 방편, 최대의 방법은 뭐하는 거라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기도죠 맞습니다. 기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1절을 같이 읽어 볼까요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 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여기 바울이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여기 첫째로라는 단어를 사용합 니다.
그런데 이 첫째로라는 말은 첫째 둘째 셋째 할 때 논리적 순서를 가르치기 위한 첫째로가 아닙니다. 둘째가 없습니다. 그 다음에 여기서 첫째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무엇 보다도 중요하다. 우선 순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삶의 영역에서 우리가 많은 의무를 가지고 있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 크리스찬으로 우리가 많은 의무를 가지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의무,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기 기도의 여러가지 형태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간구 그 다음에 기도 그 다음에 도고 감사 이런 기도의 여러가지 형태들이 등장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관이 없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기록한 바울 사도의 진의를 단순하게 접근하는 것이 중요 하다고 생각을 해요. 바울은 여기에서 모든 방법으로 기도할 것을 권합니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 사용 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형태의 기도의 방법, 혹은 기도의 유형 기도의 수단들을 총 동원해서 여러분 기도하십시오.
누구를 위해서 기도하 라구요 먼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그러나 2절에 가서는 특별히 누구를 위해서 기도하라구요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 다시 말하면 한 나라 , 그리고 인류 역사의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가 나의 지도자들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입니다. 비판이나 비난에는 돈이 들지 않아요. 입만 벌리면 됩니다. 우리가 쉽게 비난할 수가 있습니다. 쉽게 비판할 수가 있어요. 그러나 기도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기도는 일종의 노동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기도를 믿으십니까 우리의 기도가 역사를 바꿀 수 있다 이 사실을 참으로 믿는다면 우리가 한나라, 역사의 운명을 짊어지고 기도한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바울은 그래서 그것이 우리가 첫째로 할 중요한 일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지금이야말로 기도할 떄라고 생각되지 않으세요 .
세계 제 2차대전 중에 윈스턴 처칠경의 그 전기에 보면 이런 일화가 있어요. 자, 국회가 모여서 매우 중요한 안건을 심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상이었던 처칠이 앞의 의자에다가 머리를 파뭍고 졸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국회 의장이 소리를 냅다 질렀다고 합니다. 일국의 수상이 한 나라의 중요한 의제를 논의하는 마당에 어떻게 졸고 계십니까 그러니까 처칠이 갑자기 눈을 뜨더니 하는 소리가 ' 졸다니요 나는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의장이 다시 말하기를 아니 하필이면 이런때 기도하십니까 하필이면 여기에서 기도하십니까 그때 처칠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냅다 벽력같은 호령을 했다고 합니다. 아니 이때 기도하지 않는 다면 언제 기도하란 말입니까 나라의 중요한 일들이 의논되고 있는 바로 이 자리가 기도하는 자리가 될 수 없다면 어디에서 기도하란 말입니까
사랑하시는 여러분, 지금이 야말로 기도할 때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지금 우리가 처한 역사의 자리야 말로 우리의 기도를 필요로 하는 시각이 아닌가요 자리가 아닌가요 기도해야됩니다. 기도만이 우리 민족의 새로운 출구를 열줄 믿 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해야합니다.
그러나
두번째로 우리가 나라를 생각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기도할 뿐만 아니라 기도에 따르는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기도는 기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도에 따르는 책임있는 행동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예컨대 주기도문을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기도했어요. 기도한 다음에 가만히 계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셨다. 반드시 믿는다면 여호와 하나님이 내게 양식을 주실 것이다. 어디에서 양식을 줄것인가, 어떤 방법으로 줄 것인가 일자리를 찾아야 마땅하지 않으십니까 그리고 일을 하셔 야지요.
여러분, 기도는 언제나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그 기도에 합당한 책임있는 행동을 요구합니다.
같은 주기도문 가운데 우리는 어떤 기도를 하도록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까 나라에 뭐라고 그랬어요 임하옵시고 또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 주옵소서. 나라에 임하옵소서. 다시 말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도 임하여 주옵소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로운 뜻이 이 나라에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여호와 하나님 역사해 주시옵소서. 우리가 참으로 이것을 위해서 기도했다면 이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우리가 행동해야할 책임이 있습니다.
어떤 행동이 요구됩니까 저는 선거라는 중요한 역사적 시점 앞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들 중에 또 하나는 투표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요. 투표하는 참여 자체가 나라를 위하는 애국적인 우리의 행동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투표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고 참 여해야 합니다. 기도하고.. 그것이 왜 중요합니까 우리가 정말 기도 하고 참여한다면 '여호와 하나님 정말 이 선거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 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의의와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가 이 땅 위에 이루어지기를 소원 합니다. '이 땅의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신 뢰하는 모든 사람들이 기도하고 이 투표에 참여한다고 가정을 해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의 기도를 통해서 역사 하신다면 때때로 나는 누구를 찍어 야 할 것인가 나 자신은 혼란되어 있을지 몰라요. 그러나 우리가 정말 주의 뜻을 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면 여호와 하나님이 이 투표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 이 세워진다면 저는 우리 민족은 다시 한번 제기할 수있다고 믿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 그것들은 어떤 것들입니까 성경이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특성을 말할 때 무엇을 강조하고 있죠 . 여호와 하나님 나라는 먹는것이나 마시는 것이 아니다. 오직 성령 안에서 그리고 어떤 것들을 강조합니까 의와 평강과 희락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의, 어떤 후보가 여호와 하나님의 의를 이땅에서 이루는 일에 가장 가까운 가치관을 갖고 있을까요. 또 여호와 하나님의 평안, 여호와 하나님의 기쁨 기쁨의 사회, 기쁨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일에 있어서 어떤 후보가 가장 기독교적 정책과 가치관에 가까운 생각을 갖고 있을 가를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누가 더 백성을 위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생각해야합니다. 누가 우리를 위할 수 있는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파당이 아니예요. 특정한 이익 그룹이 아니라 우리 백성 전체를 위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이루 어지면 여호와 하나님은 결코 이 민족을 버리지 않을 줄로 믿습니다. 이 민족은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엎드리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지혜를 구하는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안목으로 분별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게 도와 주시옵소서.
제가 최근에 잡지를 읽다가 재미있는 기사를 하나 봤어요. 유엔 이라는 기구는 이 지구 상에 많은 나라들이 함께 모여서 세계의 중요한 국제적인 분쟁이나 문제들을 해결하는 중요한 기구죠. 따라서 여러 나라가 모여있고 또 여러 종교를 대표하고 있기 때문에 특정 종교의 단어를 유엔의 모든 회의 석상 에서 일체 사용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대통령도 미국 안에서는 연설할 때 여호와 하나님이 여러분을 축복하실길 바랍니다. 이런 말을 할 수가 있지만 그러나 유엔에서는 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유엔의 여러 기구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정책 기구 중에 하나가 우리가 잘 아는 안전보장이사 회입니다. 6. 25 참전도 거기서 결정 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최근에 안전 보장 이사회에서 중요한 투표를 하는 투표함이 하나 있는데 철제함 이래요. 이함을 최근에 바꿨답니다. 철제함이니까 하도 오래 썼기 때문에 고물이 되서 이제는 바꿔야 겠다. 최근에 바꿨데요. 그런데 바꾸는 과정에서 아주 흥미있는 사실이 하나가 발견되었답니다. 그 철제함 의 내부에 보니까 거기 뭐라고 씌여 있는 거예요. 문구가 무슨 문구가 씌여 있나하면 '이 안전보장이사회 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결정이 창조 주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결정이 되어 인류 역사의 올바른 뜻이 이루 어지기를 기도합니다. '
폴 안토니오. 사람 서명인 거예요. 폴 안토니오. 그래서 호기심 많은 사람이 그 이름을 추적했어요. 알고보니까 그 철제 함을 만든 사람이예요. 대장장이. 그 사람이 크리스챤이었어요. 아주 성실한 크리스챤. 이 짤막한 에피소드 기사를 실었던 잡지의 기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얼마나 축복이고 다행인가 인류 역사의 가장 중요한 국제적 분쟁을 해결하는 안전보장이사회의 투표함에 자기의 기도를 함께 집어 넣었던 이 폴안토니오의 기도, 아마도 이 기도는 지구상에 평화를 가져오는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뜻에 일조했음에 틀림이 없다. 여호와 하나님은 유엔에도 역사하셨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든 기독교인들이 정말 다시 한번 어두운 역사 에서 빛을 가져오는 새로운 내일을 창조하기 위해서 주 앞에 엎드릴 수 있다면 우리 민족의 범죄를 회개하 고 우리 자신이 주 앞에서의 모든 잘못된 삶을 다시 고치고 기도로 엎드릴 수 있다면 북한의 핵문제…남북한의 통일문제... 이념과 정치의 문제가 해결 될줄로 믿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새로운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십시다. 주의 이름이 우리 가운데 영광을 받으 시기를 소원합니다 기도하십시다.
세상의 직업 가운데 가장 오래된 직업이 무엇인가
한 의사 선생님이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해요. 나는 아무래도 의료업이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까 아담이 잠들었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갈비뼈 하나를 꺼내서 하와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최초의 외과 수술이 아니겠느냐 의료업이 제일 오래된 직업이다.
그러니까 그 옆에 있던 건축업자가 나는 건축업이 더 오래 되었다고 생각 한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그 창조의 행위 자체가 일종의 건축 행위가 아니겠느냐
옆에 있던 설계업자가 말하기를 그보다 설계사가 더 오래된 직업이라고 생각하는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기 전에 설계를 가지고 계셨으니까 설계사가 제일 오래되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그 옆에있는 한 사람이 이런 소리를 했데요.
나는 정치가 가장 오래되었다고 생각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창세기 1장 2절에 보면 땅이 혼돈하며 그랬는데 그 혼돈을 누가 만들었겠느냐 이 비슷한 맥락의 죠크가 우리 한국 사회의 몇 년 전에 유행했던 것을 아마 기억하실 것입니다.
한강 물에 수녀 하고 국회의원 둘이 빠졌는데 구조대원이 들어가더니 수녀를 먼저 건질 줄 알았는데 국회의원을 먼저 건 지더래요. 그래서 어쩌자고 수녀는 안건지시고 국회위원을 건지십니까 구조대원 대답이 그대로 국회의원을 나두면 한강 물이 오염되지 않겠느냐 이런 유머들은 정치 일반에 대 한 사람들의 그 부정적 인식에 공감대를 나타내는 하나의 조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도 누군가가 정치에 관련한다고 하면 왜 그런 정치를 하실려고 합니까 이런 우리 의식에 맡바탕 구조 속에는 정치는 매우 더러운 것이고 정치에서 멀어질수록 우리의 깨끗함을 유지할 수있다는 그런 일반적 인식이 우리의 생각 안에 존재 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저는 전통적으로 기독교가 정치 참여에는 매우 소극적인 입장 을 취해 왔다고 생각을 합니다. 특별히 복음주의의 교회의 전통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정치 참여의 소홀함의 원인 중에 하나는 소위 정교분리의 전통에 대한 오해가 그 중요한 구실을 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저는 늘 합니다.
본래 이 정교 분리라는 이 단어는 그 단어 자체가 잘못 번역된 것입니다. 본래 영어번역에서 본래대로 번역을 하자면 그것은 교회와 국가의 분리입니다. 교회와 국가의 분리이지 정치와 종교의 분리는 사실 아닙니다. 교회와 국가 사이에 기능적인 분리라는 것은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과거 역사에 보시면 교회가 국가를 지배했던 때가 있었어요. 교회가 국가를 다스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교회가 국가의 왕을 임명 하던 시대, 중세기 어두운 세대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또 거꾸로 국가의 지도자들이 교회의 지도자들을 임명하고 교회를 사사건건 간섭하는 그런 역사의 암흑도 있어왔습니다, 오늘 북한의 교회라던지 전제주의 사회주의 국수주의 국가에서 대체로 이런 형태의 경향 들이 있어왔던 사실을 잘 압니다. 그래서 정치와 종교는 분리 될 수가 없지만 교회와 국가의 기능적 분리라는 것은 기술적으로 매우 필요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이 결코 그리스도인들이 정치를 외면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정치라는 것은 외면할 수도 없고 또 외면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소위 목회 서신, 목회 편지를 기록을 합니다. 디모데 전서나 후서 같은 편지는 바울의 목회서신 중에 한부분이라고 일컬어지요. 그래서 목회를 어떻게 하느냐 이런 것을 기록한 내용인데. 자기 신앙의 후계자인 디모데를 향해서 목회에 대한 지혜를 가르치는 편지를 쓰면서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기도를 강조합니다. 그런데 그냥 기도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지도자들을 위한 기도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결코 정치나 나라의 역사에 대해서 무관심할 수 없다는 좋은 하나의 교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바울은 세계를 가슴에 품고 세계를 여행하며 세계를 선교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어느 도시를 가든지 자기의 민족의 회당을 먼저 찾았고 거기서부터 먼저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복음을 받아들인 이방 민족들에게도 그들이 그들의 나라와 역사를 위해 기도해야 할 중요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웠습니다. 오늘 우리는 남북한 화해가 더 없이 요청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문제 때문에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국제적으로 맞는 어려움이 큽니다.
또한 나라의 여러 가지 어려운 위기 속에서 우리는 나라를 생각할 시간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왜 나라를 생각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나라를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의 태도라고 생각하시나요 우리는 이런 질문에 대한 상당히 분명한 대답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들어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왜 나라를 생각 해야 합니까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나라를 생각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자, 우리는 이 질문을 본문에서 우리가 스스로 답변해 주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다시 한번 짧막한 두 구절이니까 본문을 다시 한번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임금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이유 그 중요한 이유가 마지막에 기록이 되어 있는데요. 이는 우리가 경건과 단정 한 중에 어떤 생활을 하여야 함이니라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여기서 고요하다, 평안하다하는 것은 모두 형용사로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이 고요하다 평안하다하는 이 표현들은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행복의 일반적 삶의 정황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고요하다는 말은 소요스러움이 없는 외적인 삶의 정황을 나타내 주고있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평안하다는 말은 불안이 없는 내적인 삶의 정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고 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앞에 또 앞서서 강조하고 있는 두개의 단어가 있습니다. 무슨 단어가 강조되었습니까 우리가 어떤 중에 경건과 단정한 중에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 두가지 단어가 강조가 되었는데. 경건과 단정. 이 두 단어는 매우 유사하면서도 강조점에 차이가 있는 단어입니다,
우선 경건이라는 단어는 여호와 하나님의 관계에서 쓰여지는 단어입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삶의 태도,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닮아가는 삶의 덕목을 강조할 때 경건이라는 단어가 쓰여집니다.
그 다음에 단정이라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 우리가 이웃들과의 관계에서 질서있는 삶의 모습을 가리켜서 성경은 단정하다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고요. 또 이웃들과 사람들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에 고요하고도 그리고 평안한 삶의 정황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얘기를 지금 나라의 지도자를 위한 기도 속에서 하고 있습니까 이 지도자의 역할, 정치인의 역할 다시 말하면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의 그 결정은 바로 우리의 삶의 질을 결정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살아가는 삶의 상황 이 어떻게 되느냐에 가장 중요헌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이 바로 정치인 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치인들의 이 정치적인 형테에 무관심 할 수가 없습니다. 또 누가 정치를 하느냐 여기에 무관심할 수가 없는 것 입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사람들이 세워지도록 그래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과 바른 관계속에 이웃들과 바른 관계 속에서 한 평생의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 이런 정치의 영역 속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정치에 결코 무관심한 민족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이 정치에 대해 가졌던 관심은 매우 소극적인 관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한 정치 사회학자가 한국인의 정치의식이 건강하게 발전하지 못한 중요한 원인 중에 하나는 집단 의식은 존재하지만 그것이 공공의식으로 발전하지 못한 때문이다. 라는 중요한 지적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집단 의식은 존재하지만 그것이 공공의식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무슨 말입니까 일반적으로 한국인이 갖고 있는 집단의식,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집단의식,공동체 의식은 있습니다. 우리집, 우리나라, 우리 학교 뭐 이런 공동체 의식은 있죠. 그러나 이 집단의식의 영역이 매우 좁다는 거예요.
저는 부분적으로 그 원인 중에 하나가 농경 문화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한국 사람들이 옛날에 집을 지을 때 중요시한 것이 담입니다. 울타리,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강렬한 우리의식을 느낍니다. 우리 집, 우리 식구들, 그러나 내 집 울타리, 우리 집 울타리를 딱 벗어나면 넓은 우리 집에 대한 의식이 희박해요.
그래서 집 안에서는 자기 물건들을 아주 아끼던 사람들이 일단 공공 장소에 가게되면, 학교에 가게되면 이건 우리집하고 상관이 없으니까 물건을 마음대로 쓴다든지 교회에 와서도 마음대로 휴지를 버리고 마음대로 한다든지 넓은 의미의 우리의식이 없는 거예요. 좁은 의미의 우리 의식만 있지 넓은 의미의 우리 의식을 갖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 민족과 아주 유사하면서도 상당히 다른 그런 애국심을 가진 한 민족이 있다면 그들은 유대인일 것입니다. 그 유대인들의 애국하는 삶의 태도 가 우리 민족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저는 그 이유 중에 하나가 그 문화 적 배경의 차이, 특별히 농경문화와 유목 문화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고 생각을 합니다.
유대인들은 일종의 유목 문화의 배경을 가지고 있지요. 양떼를 가지고 죽 이사를 다닙니다. 여기저기 이사를 다닙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가족도 중요 하지만 가족보다 더큰 스케일의 부족이 중요해요. 왜냐하면 함께 모여 다닐 때 가족만 가지고는 그들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안전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부족, 종족 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함께 싸워야 하고 함께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가족 보다는 좀더 넓은 스케일의 민족이 라든지 부족이라든지 종족을 지켜야 하는 그런 의식이 유대인의 독특한 애국심을 만드는 배경이 되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너무 좁다는 말이죠. 우리집 안에서만 우리 가족 우리 의식을 갖지만 넘어서면 큰 스케일의 나라를 생각하는 일에 아주 희박하다는 것입니다.
이 글을 썼던 한 사회학자는 이런 얘기를 했 습니다. 물론 한국 사람이 나라를 생각 안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이 나라를 제일 잘 생각하는 때는 언제냐 나라가 거의 망할 때나, 나라가 망한 다음에. 그 다음에 한국인들의 애국심은 발휘되기 시작한다는 거예요. 그 전에 미리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미리 우리가 넓은 사회를 생각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거의 망할 때가서, 혹은 망하고 난 다음에 비로서 한국인 들의 애국의 투혼이 발휘되기 시작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나를 넘어서서 좁다란 우리를 넘어서서 커다란 스케일의 민족과 나라를 생각할 때라고 생각을 합니다. 왜 그것이 중요합니까 민족의 미래, 나의 미래와 무관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일종의 운명 공동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왜 우리가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성경은 가르칩니까 그것이 우리의 삶, 우리의 미래, 우리의 평안의 미래 또 우리의 고요함의 미래, 우리의 복된 삶 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에 있어서 그들의 영향력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치의 영역에 무관심 할 수 없다고 성경을 가르칩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나라를 생각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나라를 생각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 에서 바울 사도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라를 위할 수 있는 최대의 방편, 최대의 방법은 뭐하는 거라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기도죠 맞습니다. 기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1절을 같이 읽어 볼까요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 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여기 바울이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여기 첫째로라는 단어를 사용합 니다.
그런데 이 첫째로라는 말은 첫째 둘째 셋째 할 때 논리적 순서를 가르치기 위한 첫째로가 아닙니다. 둘째가 없습니다. 그 다음에 여기서 첫째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무엇 보다도 중요하다. 우선 순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삶의 영역에서 우리가 많은 의무를 가지고 있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 크리스찬으로 우리가 많은 의무를 가지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의무,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기 기도의 여러가지 형태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간구 그 다음에 기도 그 다음에 도고 감사 이런 기도의 여러가지 형태들이 등장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관이 없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기록한 바울 사도의 진의를 단순하게 접근하는 것이 중요 하다고 생각을 해요. 바울은 여기에서 모든 방법으로 기도할 것을 권합니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 사용 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형태의 기도의 방법, 혹은 기도의 유형 기도의 수단들을 총 동원해서 여러분 기도하십시오.
누구를 위해서 기도하 라구요 먼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그러나 2절에 가서는 특별히 누구를 위해서 기도하라구요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 다시 말하면 한 나라 , 그리고 인류 역사의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가 나의 지도자들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입니다. 비판이나 비난에는 돈이 들지 않아요. 입만 벌리면 됩니다. 우리가 쉽게 비난할 수가 있습니다. 쉽게 비판할 수가 있어요. 그러나 기도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기도는 일종의 노동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기도를 믿으십니까 우리의 기도가 역사를 바꿀 수 있다 이 사실을 참으로 믿는다면 우리가 한나라, 역사의 운명을 짊어지고 기도한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바울은 그래서 그것이 우리가 첫째로 할 중요한 일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지금이야말로 기도할 떄라고 생각되지 않으세요 .
세계 제 2차대전 중에 윈스턴 처칠경의 그 전기에 보면 이런 일화가 있어요. 자, 국회가 모여서 매우 중요한 안건을 심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상이었던 처칠이 앞의 의자에다가 머리를 파뭍고 졸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국회 의장이 소리를 냅다 질렀다고 합니다. 일국의 수상이 한 나라의 중요한 의제를 논의하는 마당에 어떻게 졸고 계십니까 그러니까 처칠이 갑자기 눈을 뜨더니 하는 소리가 ' 졸다니요 나는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의장이 다시 말하기를 아니 하필이면 이런때 기도하십니까 하필이면 여기에서 기도하십니까 그때 처칠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냅다 벽력같은 호령을 했다고 합니다. 아니 이때 기도하지 않는 다면 언제 기도하란 말입니까 나라의 중요한 일들이 의논되고 있는 바로 이 자리가 기도하는 자리가 될 수 없다면 어디에서 기도하란 말입니까
사랑하시는 여러분, 지금이 야말로 기도할 때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지금 우리가 처한 역사의 자리야 말로 우리의 기도를 필요로 하는 시각이 아닌가요 자리가 아닌가요 기도해야됩니다. 기도만이 우리 민족의 새로운 출구를 열줄 믿 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해야합니다.
그러나
두번째로 우리가 나라를 생각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기도할 뿐만 아니라 기도에 따르는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기도는 기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도에 따르는 책임있는 행동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예컨대 주기도문을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기도했어요. 기도한 다음에 가만히 계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셨다. 반드시 믿는다면 여호와 하나님이 내게 양식을 주실 것이다. 어디에서 양식을 줄것인가, 어떤 방법으로 줄 것인가 일자리를 찾아야 마땅하지 않으십니까 그리고 일을 하셔 야지요.
여러분, 기도는 언제나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그 기도에 합당한 책임있는 행동을 요구합니다.
같은 주기도문 가운데 우리는 어떤 기도를 하도록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까 나라에 뭐라고 그랬어요 임하옵시고 또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 주옵소서. 나라에 임하옵소서. 다시 말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도 임하여 주옵소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로운 뜻이 이 나라에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여호와 하나님 역사해 주시옵소서. 우리가 참으로 이것을 위해서 기도했다면 이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우리가 행동해야할 책임이 있습니다.
어떤 행동이 요구됩니까 저는 선거라는 중요한 역사적 시점 앞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들 중에 또 하나는 투표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요. 투표하는 참여 자체가 나라를 위하는 애국적인 우리의 행동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투표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고 참 여해야 합니다. 기도하고.. 그것이 왜 중요합니까 우리가 정말 기도 하고 참여한다면 '여호와 하나님 정말 이 선거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 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의의와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가 이 땅 위에 이루어지기를 소원 합니다. '이 땅의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신 뢰하는 모든 사람들이 기도하고 이 투표에 참여한다고 가정을 해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의 기도를 통해서 역사 하신다면 때때로 나는 누구를 찍어 야 할 것인가 나 자신은 혼란되어 있을지 몰라요. 그러나 우리가 정말 주의 뜻을 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면 여호와 하나님이 이 투표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 이 세워진다면 저는 우리 민족은 다시 한번 제기할 수있다고 믿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 그것들은 어떤 것들입니까 성경이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특성을 말할 때 무엇을 강조하고 있죠 . 여호와 하나님 나라는 먹는것이나 마시는 것이 아니다. 오직 성령 안에서 그리고 어떤 것들을 강조합니까 의와 평강과 희락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의, 어떤 후보가 여호와 하나님의 의를 이땅에서 이루는 일에 가장 가까운 가치관을 갖고 있을까요. 또 여호와 하나님의 평안, 여호와 하나님의 기쁨 기쁨의 사회, 기쁨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일에 있어서 어떤 후보가 가장 기독교적 정책과 가치관에 가까운 생각을 갖고 있을 가를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누가 더 백성을 위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생각해야합니다. 누가 우리를 위할 수 있는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파당이 아니예요. 특정한 이익 그룹이 아니라 우리 백성 전체를 위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이루 어지면 여호와 하나님은 결코 이 민족을 버리지 않을 줄로 믿습니다. 이 민족은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엎드리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지혜를 구하는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안목으로 분별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게 도와 주시옵소서.
제가 최근에 잡지를 읽다가 재미있는 기사를 하나 봤어요. 유엔 이라는 기구는 이 지구 상에 많은 나라들이 함께 모여서 세계의 중요한 국제적인 분쟁이나 문제들을 해결하는 중요한 기구죠. 따라서 여러 나라가 모여있고 또 여러 종교를 대표하고 있기 때문에 특정 종교의 단어를 유엔의 모든 회의 석상 에서 일체 사용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대통령도 미국 안에서는 연설할 때 여호와 하나님이 여러분을 축복하실길 바랍니다. 이런 말을 할 수가 있지만 그러나 유엔에서는 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유엔의 여러 기구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정책 기구 중에 하나가 우리가 잘 아는 안전보장이사 회입니다. 6. 25 참전도 거기서 결정 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최근에 안전 보장 이사회에서 중요한 투표를 하는 투표함이 하나 있는데 철제함 이래요. 이함을 최근에 바꿨답니다. 철제함이니까 하도 오래 썼기 때문에 고물이 되서 이제는 바꿔야 겠다. 최근에 바꿨데요. 그런데 바꾸는 과정에서 아주 흥미있는 사실이 하나가 발견되었답니다. 그 철제함 의 내부에 보니까 거기 뭐라고 씌여 있는 거예요. 문구가 무슨 문구가 씌여 있나하면 '이 안전보장이사회 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결정이 창조 주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결정이 되어 인류 역사의 올바른 뜻이 이루 어지기를 기도합니다. '
폴 안토니오. 사람 서명인 거예요. 폴 안토니오. 그래서 호기심 많은 사람이 그 이름을 추적했어요. 알고보니까 그 철제 함을 만든 사람이예요. 대장장이. 그 사람이 크리스챤이었어요. 아주 성실한 크리스챤. 이 짤막한 에피소드 기사를 실었던 잡지의 기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얼마나 축복이고 다행인가 인류 역사의 가장 중요한 국제적 분쟁을 해결하는 안전보장이사회의 투표함에 자기의 기도를 함께 집어 넣었던 이 폴안토니오의 기도, 아마도 이 기도는 지구상에 평화를 가져오는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뜻에 일조했음에 틀림이 없다. 여호와 하나님은 유엔에도 역사하셨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든 기독교인들이 정말 다시 한번 어두운 역사 에서 빛을 가져오는 새로운 내일을 창조하기 위해서 주 앞에 엎드릴 수 있다면 우리 민족의 범죄를 회개하 고 우리 자신이 주 앞에서의 모든 잘못된 삶을 다시 고치고 기도로 엎드릴 수 있다면 북한의 핵문제…남북한의 통일문제... 이념과 정치의 문제가 해결 될줄로 믿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새로운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십시다. 주의 이름이 우리 가운데 영광을 받으 시기를 소원합니다 기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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