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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하나님과 결혼한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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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켜서 여호와 하나님과 결혼한 민족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남편이고, 이스라엘 민족은 여호와 하나님의 아내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는 것도 행복하고, 친구간의 사랑도 행복하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행복은 부부의 사랑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즉 특별히 결혼한 부부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에서 가장 큰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전도서 9:9절에서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여호와 하나님이 해 아래서 내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이는 네가 일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인간들이 일평생 무엇을 하고 살든지 간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생이 되고 허무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고생스러운 일이 많고 덧없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즐겁게 사는 것이야말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내려주신 가장 큰 행복중에 행복이라는 말씀입니다.
야곱은 사랑하는 라헬을 아내로 얻기 위해서 삼촌 라반의 집에서 무려 14년간을 종살이했습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야곱은 사랑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그냥 만나서 그럭저럭 사는 부부와 야곱처럼 오직 자기 마음에 드는 한 여자를 얻기 위해 14년을 죽을 고생하며 아내를 맞이한 야곱의 사랑을 비교해 볼 때 아마 평범한 사람보다 그 행복이 열 배 백 배로 컸으리라고 생각됩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데 실패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공통점은 진정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아내를 사랑한다면 아무리 아내가 부정한 유혹에 빠져 잠시 실수를 하고 사기를 당해서 돈을 모두 잃어 버려도 아내를 결코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건부의 사랑이라면 헤어지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배우자를 선택할 때, 인물이 예뻐서 사람이 좋아서 혹은 가문이 좋아서, 학벌이 좋아서 돈을 잘 벌어서 등등의 사랑의 이외의 조건이 결혼 이유로 배우자를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사랑은 참 사랑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사랑 없이 만났기 때문에 사랑에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참 사랑은 조건부의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줄 수 있고 심지어 생명까지도 내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부부는 생명을 내 놓고 서로 사랑할 때 가장 행복합니다.
부부의 사랑은 종합적인 사랑입니다. 마음과 영혼과 육신을 포함하여 생명과 물질까지 주고받으며 사랑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가장 행복한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이스라엘 백성들과 결혼한 남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변함없이 아내를 사랑하는데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고 바람이 난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남편을 두고 가출하여 창녀노릇을 하다가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호세아는 이런 부정한 아내임에도 불구하고 몸값을 지불하고 아내를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행음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좇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고 당부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남편은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바람난 아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성도 여러분! 이렇게 바람난 아내와 사는 남편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라보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이 이러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조금이라도 알게 하기 위해서 호세아 선지자로 하여금 음란한 여자를 아내로 삼아 음란한 자식을 낳아보라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호세아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음란한 여자 고멜과 결혼을 하여 2남 1녀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지어주시며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첫 아이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고 지어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흩으신다는 말입니다.
 둘째 아이의 이름은 로루하마라고 지으셨습니다.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사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셋째 아이의 이름은 로암미라고 지으셨습니다. 이는 내 백성이 아니다. 나는 너희 여호와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뜻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에 패함으로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가서 전 세계로 흩어질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과연 이 예언의 말씀대로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택한 사람과 여호와 하나님이 택하지 않은 사람의 결과는 엄청나게 다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택하지 않은 사람은 멸망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은 절대로 끝나는 법이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끝까지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까지 참고 기다리십니다.
마치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처럼, 집을 나가 고생하는 아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시는 아버지, 그 아들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시며 문밖에 서서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심정이 바로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과 같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택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심판은 멸망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회개시켜서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내리시는 징계는 사랑의 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매를 때리시면 치료도 해주십니다.
호세아 6:1절의 말씀대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시며, 우리를 치셨으나 반드시 싸매어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자식이 너무 말을 안 들으면 매를 듭니다. 때리고 싶어 때리는 것이 아닙니다. 할 수 없이 매를 드는 것입니다. 때려놓고 마음이 아파서 자식이 잠든 후에 상처 난 종아리를 어루만지며 우십니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이고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런데도 어떤 아이들을 말을 듣지 않고 계속해서 말썽을 부립니다. 그러면 할 수 없이 상처가 아물지 않았어도 자식의 앞날을 위해 또 때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럴 때 부모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머리부터 발끝가지 성한 곳이 없도록 매를 맞아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바라보며 마음 아파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심정이 이와 같습니다.
이때 사람이 된 아이는 부모가 때리면 사랑의 매로 알고 고맙게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못된 자식은 당장 아픈 것만 서럽게 생각하여 부모에게 반항하고 집을 뛰쳐나갑니다. 불택자가 이와 똑 같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여호와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고 죄 짓고 타락하면 잠시 진노하시고 때리시지만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반드시 회복시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저와 여러분이 여호와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사랑을 계약된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지금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매를 맞으면서도 머뭇거리고 있는 성도들에게 “어서 돌아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받아주실 준비를 해 놓고 기다리십니다. 문밖에 나와 날마다 탕자를 기다리시는 아버지처럼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 시간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를 부르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사랑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성도들 중에는 매 맞고 나서야 깨닫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매 맞기 전에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이 있습니다.
불효하는 자녀들의 공통점은 부모의 마음을 조금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실 때에도 아버지시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니이다라고 하시며, 저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몰라서 그런 것이니 용서하여 달라고 간구하셨습니다.
이런 여호와 하나님의 애끓는 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다면
 첫번째로,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두번째로, 매를 맞고 있다면 여호와 하나님의 징계를 감사해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도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께서 싸매 주실 것이고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호세아서에서 세가지를 배워야 합니다
1. 순종의 참된 의미
교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 중의 하나가 순종이다.
그러나 순종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호세아에게 내려진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은 행복한 가정을 떠나 집을 나간 방탕한 아내를 데려다가 자식을 낳으라는 심술궂은 요구사항이기도 하다. 이를 어찌 행한단 말인가! 세상의 남자들이여 이 일이 가능할까
여기서 보듯이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은 반드시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다보면 육신적으로 불리하다. 경제적으로 분리하다. 정신적으로 분리하다. 전혀 도움이 안될 때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불리해도 실천하는 것이 참 순종이다.
그러나 호세아는 그대로 실천하였다. 그러므로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수양의 기름 보다 낫다는 말이다. (삼상15:22),
2. 희생의 참된 의미
역시 교회에서 희생이란 단어 만큼 익숙한 단어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구원이 예수님의 희생으로 인하여 이루어 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희생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았으면서도 정작 희생하려 하지 않는다.
호세아에게 내린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은 그 음탕한 아내를 데려다가 자식을 나으라는 것이다. 평범한 한 가정의 남편에게 이보다 더한 희생이 있겠는가
이런 요구를 하심은 너무나 어려운 요구이다. 그러나 이것을 행한 것이 호세아요. 이것이 참 희생임을 알 수 있다. 호세아의 희생이 참 희생의 표본임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시는 것이다.
3. 선의 참된 의미
사람 마다 선의 기준이 다르다. 유대인들의 선은 율법을 조목조목 지키는 것이었다.
오늘 날에는 남에게 좋은 일 하는 것이 선이라고 생각한다.
신앙인의 최고의 선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다.
호세아는 사회적 윤리도덕과 종교적 제정의 규례가 용납하지 않는 일이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이었기에 실천하였다.
우리는 호세아서에서 순종의 참된 의미를, 희생의 참된 의미를, 선의 참된 의미를 맛보았다. 나에게 불리해도,내가 하기 싫은 것도,해서는 안될 일도 다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이해하는 것이 순종이다. 가정의 신성을 송두리째 파괴당하면서도 이루어 낸 것이 희생이다.
우리는 호세아서를 통하여 참된 순종과 희생과 선의 의미를 깨닫고 실천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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