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민족의 회복
본문
어느 분이 허리가 90도 굽은 꼬부랑 할머니에 대해서 글을 썼습니다. 할머니의 몸은 90도로 굽은 채로 뼈와 마디가 굳어져 있었습니다. 잠잘 때도 90도로 구부러진 채로 잠을 자곤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 90도로 구부러진 관을 특수제작 해야 한다고 농담 삼아 말하곤 하였습니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영혼이 떠난 할머니의 몸은 펴지기 시작해져서 곧바르게 되었습니다. 90도 구부러진 관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사실 그 동안 뼈와 마디가 구부러져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삶의 긴장 가운데서 근육이 굳
어져 있었습니다. 굳어진 근육으로 인해 할머니는 90도 꺾여진 꼬부랑 할머니로서 생활을 하였던 것입니다. 세상을 떠나면서 근육이 풀어지자 곧바르게 된 당신의 자세를 도로 찾은 것입니다.
물론 모든 꼬부랑 할머니들이 다 이 할머니처럼 긴장으로 근육이 굳어져서 꼬부랑 할머니가 된 것은 아닙니다. 많은 경우 정말로 뼈와 마디가 굳어져 꼬부랑 할머니가 된 것일 것입니다.
하여튼 이 할머니의 이야기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번 뒤돌아보게 합니다.
우리의 삶도 세상의 온갖 스트레스로 인해 굽어져 있지나 않은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더 중요
한 것은 굽어져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도저히 펼 수 없는 우리 본연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나 않은지 한번쯤 질문해 봄직합니다.
우리의 본래의 모습은 우리가 아는 우리의 모습보다 훨씬 더 멋지고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만 합니다.
칼르로스 밸레스(Carlos Valles)라는 수도사가 "Second-hand people(간접적인 사람들)"이라는
책을 읽고서 글을 쓴 것이 있습니다. 칼로스는 그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자기 자신은 자신 본연의 순수한 칼르로서 벨레스인 줄 알았는데 그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은 자신은 모든 환경으로 인하여 만들어진 Second-hand 임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세상의 온갖 스트레스 가운데서 참 본연의 모습은 사라지고 굽어진 제 2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사실 우리는 모두 Second-hand people입니다. 우리는 모두 좋건 나쁘건 우리의 부모, 가족, 친구, 스승, 사회 환경 등에 의해서 만들어져 왔습니다. 그래서 어느덧 우리 본 연의 모습에서 벗어나 굽어져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 좀더 가까이 가있는 분들은 그래도 그만큼 곧바른 자신의 모습을 유지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지 못하기 때 문에 우리는 각자 굽어진 모습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많은 경우 굽어진 우리의 모 습이 우리의 본연의 모습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굽어진 우리의 모습을 펴는 것일 줄로 압니다. 우리 각자의 모습은 그렇다 치고, 그 러면 우리 민족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 민족은 우리 민족 본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 을까요
오늘 8. 15를 맞이하여 우리 민족의 본연의 모습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하고자 합니다. 현재 우리 민족은 곧 역사의 시련 속에 처해있음을 누구나 다 동감하실 줄 압니다. 남북이 분단된 지 54년,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혹독한 공산주의 나라라는 평을 받고 있고, 남한은 아직도 수치의 IMF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굽어진 우리들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습이 바로 한민족 본연의 모습일까요 저는 이번 주 설교 준비를 하면서 김용운씨의 '한국인과 일본인'이란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김용운씨는 그 책에서 다음 두가지 이야기를 통해 한국인의 본연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삼국사기에 기록된 검군이라는 한 화랑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어느 해 심한 기근이 나라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궁 안에 있는 관리들이 창고 안에 있는 곡식
을 훔쳐 나눠 가지는 것이 예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검군만은 홀로 이 무리와 달리 깨끗이 지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가져가는데 그대만 홀로 가져가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하며 동료들이 오히려 검군을 경원시 여겼습니다. 검군은 웃으며 말하기를 "화랑도를 따르는 화랑으로서, 옳지 않은 일이면 천금의 이익이 있어도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하며 끝내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나 동료들은 그를 의심하여 죽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검군은 그 음모를 알게 되자 친한 근랑 에게 앞으로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이별의 인사를 합니다. 근랑은 그 내용을 알게 되자 상사에게 고발할 것을 권합니다. 그러나 검군은 "내가 죽기를 두려워하여 많은 사람을 죄로 다스리게 하는 것은 인정상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자 근랑은 도망하기를 권합니다. 검군은 "그 사람들의 마음이 그릇되고 내 마음이 정직한데 도리어 도망한다는 것은 장부의 행동이 아니다"라며 동료들이 마련 한 술자리에 가서 그들이 권하는 독약이 담긴 술을 마셨습니다.
검군은 동료를 고발하느니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입니다. 고발정신 따위는 검군의 세계에는 없었습니다. 고발은 나라와 공동체를 위하는 것이기도 하나, 한국인은 오히려 의리 없는 행위라 해서 경멸했습니다. 공공에 대한 질서보다는 우정을 중시하는 한국인의 본연의 모습이 검군의 모습에서 보입니다. "
김용운씨는 검군의 모습을 한 민족의 모습으로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 김용운씨는 호남지방에서 일어난 동학혁명을 소개합니다.
한국역사에 대해서 잘 아시겠지만 김용운씨가 소개하는 동학혁명을 간단히 요약해 드리겠습니다.
한국농민은 일본농민과는 성격이 달랐다고 그는 주장합니다. 일본 사람들은 무조건 권력에 아부하고 맹종하지만 한국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특히 동학혁명을 통해 잘 나타났습니다.
1892년 전라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평소에는 말없이 부당한 착취를 당해 온 농민들이지만 그들이 손수 만들어 놓은 수리시설에 대해 무모하게 과세하는 데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부당한 착취를 당해 온 농민들이 전봉준의 지도 아래 일제히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처음에는 '악질관리 추방하라', '부당한 과세를 철폐하라' 주장하면서 자신의 권익을 먼저 강조했지만 점점 이상론이 대두합니다.
'모든 권력자를 부숴라', '정의를 구현하라'로까지 확대되고 정부, 중앙관리들까지도 적으로 삼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정책을 벌이고 있는 외국군대까지도 정면으로 적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이쯤되면 단순한 농민운동이 아니라 대혁신운동이며 민중중심의 근대화 운동이자 반제국주의 투쟁이 되었습니다.
조선정부만이 상대였다면 충분히 성공할 가능성도 있었으나, 제국주의의 일본과 청나라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결국 동학 농민군은 이들 외국의 직업군인과 정면 충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창이나 낫과 괭이로 무장한 훈련도 제대로 받지 않은 농민군이 이들을 당해낼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농민들은 마지막까지 싸웠습니다. 무려 3-40만의 농민이 학살당했고 결국 한국 민중운동의 위대한 시도는 좌절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동학혁명을 통하여 참 한국인의 모습이 드러났었던 것입니다. 한국민족은 인간의 평등을 주장하는 민족인 것입니다. 인권이 침해될 때는 권력과 투쟁하는 것이 한국민족이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일본인은 권력에 적대적으로 복종하는 민족입니다. 일본에는 동학혁명, 3. 1절, 4. 19와 같은 혁명이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메이지 유신(명치유신)은 농민들의 혁명이 아니라 무사들의 정권이양이었음을 강조합니다. 무사들이 정권을 잡은 후 천황을 앞세웁니다. 천황을 중심으로 무사들이 명치유신을 감행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김용운씨는 그의 책에서 한국인의 본래의 모습을 잘 소개해 줍니다. 한국인의 본래의 모습을 '한국인의 원형'이라는 소제목으로 자세히 소개한 후 김용운씨는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은 글로 마칩니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한국처럼 철저한 평등사회는 없었다. "
요즘 한국에서 사소한 일에도 데모를 많이 한다고 합니다. 물론 쓸데없는 일에 데모를 하면 안
되겠지만 저는 김용운씨의 책을 읽으면서 왜 한국인은 그토록 데모를 많이 해 왔는지의 한 이유를 발견케 되었습니다.
한국민족은 특수한 민족입니다. 권력에 대한 아부보다는 정의사회 구현이 몸에 배인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한 민족의 정신구조 깊숙한 곳에는 인간 평등사상이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검군처럼 우정을 더 귀하게 생각하는 민족이 바로 우리 한민족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꽤나 흥분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참 모습이구나…. " 저는 이 흥분된 마음을 안고 지난주 본교회 교역자분들과 같이 뉴햄프셔에서 캠핑을 하면서 1 박 2일을 지냈습니다.
저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우리 교역자들의 모습이 귀해보였습니다. 전에는 여호와 하나님께 부름받은 자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주어진 사명을 함께 다하자'라는 생각으로 만나곤 하였는데, 이번에 함께 지내면서 저의 마음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 이전에 이 멋진 한국 사람들과 함께 지낸다는 것 자체가 즐거웠습니다. 잔잔한 흥분이 저의 마음속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8. 15 광복절 기념예배를 드립니다. 오늘 우리가 단순히 54년 전의 8. 15해방만을 경축한다면 큰 의의가 없을 줄로 압니다. 오늘 우리는 8. 15 광복을 축하하면서 우리의 굽어진 모습을 보아야 할 줄로 압니다. 아울러 우리의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야 할 줄로 압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말씀에는 우리 한민족과 같이 노예생활을 하다 해방을 맞은 이스라엘 민족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400년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된 이야기를 잘 아실 줄 압니다. 애굽 왕 바로가 이스라엘 민족을 보내지 않자 끝내 여호와 하나님은 각 가족과 모든 가축의 장자를 치는 재앙을 내립니다.
이에 바로는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속히 애굽을 떠나라고 합니다. 이에 이스라엘 민족은 바로가 마음이 바뀔까봐 성급히 무교병을 만들어 가지고 애굽을 떠납니다.
애굽을 떠날 때 재미있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인에게 은금패물과 의복을 구합니다. 이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애굽사람들의 마음을 주장하사 애굽인들이 은금패물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게 합니다.
사실 우리 민족과 이스라엘 민족과는 여러 가지 유사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노예생활을
함께 했다는 것이 대표적인 유사점입니다. 그러나 함께 노예생활을 했지만 마지막 해방될 때에는 크게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인들에게 금은패물을 받아 가지고 나왔는데, 우리 민족은 어떠했습니까 무엇을 받아냈습니까
두 민족 다 노예 생활을 하면서 구부러질대로 구부러졌습니다. 우리 민족은 36년간 일본 압제하에서 Second-hand people이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일본화 되었습니다. 권력의 무서움을 알았습니다. 힘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채로 해방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구부러진 우리의 모습을 보게 해 주질 않습니다. 구부러진 대로 한 민족은 살아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400년간 종살이를 하면서 구부러질 대로 구부러졌습니다. 아니 우리 한민족과는 비교도 안되게 구부러졌습니다. 그런데 해방과 함께 그들은 자신들의 구부러졌던 모습을 볼 수 있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애굽인들이 자진해서 금은패물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내어주었습니다. 그후 이스라엘 민족이 받은 금은패물이 무엇에 쓰여졌습니까
시내산에서 여호와의 법궤를 만들고 성소와 지성소의 성구들을 만드는 자료로 쓰여집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드디어 자신들의 참 모습을 발견케 됩니다. 자신들은 애굽민족을 위한 제사장 나라임을 깨달습니다. 아니 온 세상의 민족들을 위한 제사장 나라임을 깨달습니다.
자기들의 야훼 여호와 하나님이 온 민족의 여호와 하나님이요, 이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자신들이 바로 제사장 나라가됨을 발견합니다.
자기들이 받았던 애굽사람들의 금은패물이 여호와 하나님의 성소와 지성소를 위해 쓰여지는 것을 보면서 자신들의 본연의 참모습을 발견합니다. 자신들은 노예민족이 아니라 온 세계를 위한 제사장 나라의 민족임을 발견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참된 해방이었습니다. 참 민족의 회복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우리 민족은 어떻습니까 이제 해방을 맞이한 지 54년이 지났는데 이제
우리는 우리의 본연의 참모습을 깨달았습니까 우리 민족은 이스라엘 민족처럼 참 민족의 회복을 누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Second-hand people이 되어 일본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그 모양 그 모습을 안고 자유한냥 착각하면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얼마전 한 놀랄만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 민족은 선과 평화를 좋아하는 백의 민족입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역사상 이웃 나라를 침범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국 근대화의 기치 아래 우리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깨뜨렸다는 것입니다. 월남전에 참전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반공을 위해 월남의 민주주의를 위해 참전했다면, 혹은 평화를 수호하는 군대로 참전했다면, 높이 업적을 기릴수가 있겠습니다만 오늘날 평가되는 것은 경제부흥이 그 이유였다는 것입니다. 돈을 숭상하게 된 우리 민족의 구부러진 모습의 한 면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우리 민족은 평화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민족이 아닐까요 인간의 평등과 우애가 얼마나 귀한 것을, 그리고 그러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보내어진 민족이 아닐까요
우리 민족이 인간 평등과 세계 평화를 위한 본연의 모습을 되찾기 전에는 참 해방이 이루어지
지 않을 줄로 압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사람들의 금은패물로 성소와 지성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자기들이 세운 성소와 지성소를 통하여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우리 민족의 본연의 모습은 온 세계에 참 평화와 평등의 나라를 보여주는 것
입니다. 그로 인해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참 회복인 것입니다. 온 세계는 한 민족의 아름다운 모습을 통하여 참 평화와 평등의 나라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로 인해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김용운씨는 그의 저서에서 일본의 히로부미를 죽인 안중근의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안중근은 일본이 그런 불의를 계속 저지르다 보면 여러 나라의 불신을 얻을 것이 분명하며 그
대로 나가다가는 언젠가는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의 공동 포위 속에서 멸망하고 말 것이라고 예 언했다(이 예언은 적중했다). 그리고 일본이 그런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는 안중근 자신이 쓴 동양평화론을 읽으라고까지 이른다. 안중근 의사는 결코 한국의 독립만을 위해 죽어간 것이 아니다. 그는 보편적인 것, 즉 인간의 윤리와 인류의 평화 같은 보다 높은 이상을 표방하고 그것을 고집하였던 것이다. "
세계 평화를 위해 전 삶을 바쳤던 안중근 의사의 모습, 그것이 한국인의 본연의 모습입니다. 이 모습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그동안 대한민국은 11번째 세계경제 대국임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다가
IMF를 맞이했습니다. 그것은 굽어진 우리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굽어진 우리의 모습을 펴십시다.
세계 평화를 위하여 나아가십시다. 참 민족의 회복을 이루십시다.
사실 그 동안 뼈와 마디가 구부러져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삶의 긴장 가운데서 근육이 굳
어져 있었습니다. 굳어진 근육으로 인해 할머니는 90도 꺾여진 꼬부랑 할머니로서 생활을 하였던 것입니다. 세상을 떠나면서 근육이 풀어지자 곧바르게 된 당신의 자세를 도로 찾은 것입니다.
물론 모든 꼬부랑 할머니들이 다 이 할머니처럼 긴장으로 근육이 굳어져서 꼬부랑 할머니가 된 것은 아닙니다. 많은 경우 정말로 뼈와 마디가 굳어져 꼬부랑 할머니가 된 것일 것입니다.
하여튼 이 할머니의 이야기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번 뒤돌아보게 합니다.
우리의 삶도 세상의 온갖 스트레스로 인해 굽어져 있지나 않은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더 중요
한 것은 굽어져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도저히 펼 수 없는 우리 본연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나 않은지 한번쯤 질문해 봄직합니다.
우리의 본래의 모습은 우리가 아는 우리의 모습보다 훨씬 더 멋지고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만 합니다.
칼르로스 밸레스(Carlos Valles)라는 수도사가 "Second-hand people(간접적인 사람들)"이라는
책을 읽고서 글을 쓴 것이 있습니다. 칼로스는 그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자기 자신은 자신 본연의 순수한 칼르로서 벨레스인 줄 알았는데 그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은 자신은 모든 환경으로 인하여 만들어진 Second-hand 임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세상의 온갖 스트레스 가운데서 참 본연의 모습은 사라지고 굽어진 제 2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사실 우리는 모두 Second-hand people입니다. 우리는 모두 좋건 나쁘건 우리의 부모, 가족, 친구, 스승, 사회 환경 등에 의해서 만들어져 왔습니다. 그래서 어느덧 우리 본 연의 모습에서 벗어나 굽어져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 좀더 가까이 가있는 분들은 그래도 그만큼 곧바른 자신의 모습을 유지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지 못하기 때 문에 우리는 각자 굽어진 모습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많은 경우 굽어진 우리의 모 습이 우리의 본연의 모습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굽어진 우리의 모습을 펴는 것일 줄로 압니다. 우리 각자의 모습은 그렇다 치고, 그 러면 우리 민족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 민족은 우리 민족 본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 을까요
오늘 8. 15를 맞이하여 우리 민족의 본연의 모습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하고자 합니다. 현재 우리 민족은 곧 역사의 시련 속에 처해있음을 누구나 다 동감하실 줄 압니다. 남북이 분단된 지 54년,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혹독한 공산주의 나라라는 평을 받고 있고, 남한은 아직도 수치의 IMF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굽어진 우리들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습이 바로 한민족 본연의 모습일까요 저는 이번 주 설교 준비를 하면서 김용운씨의 '한국인과 일본인'이란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김용운씨는 그 책에서 다음 두가지 이야기를 통해 한국인의 본연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삼국사기에 기록된 검군이라는 한 화랑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어느 해 심한 기근이 나라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궁 안에 있는 관리들이 창고 안에 있는 곡식
을 훔쳐 나눠 가지는 것이 예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검군만은 홀로 이 무리와 달리 깨끗이 지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가져가는데 그대만 홀로 가져가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하며 동료들이 오히려 검군을 경원시 여겼습니다. 검군은 웃으며 말하기를 "화랑도를 따르는 화랑으로서, 옳지 않은 일이면 천금의 이익이 있어도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하며 끝내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나 동료들은 그를 의심하여 죽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검군은 그 음모를 알게 되자 친한 근랑 에게 앞으로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이별의 인사를 합니다. 근랑은 그 내용을 알게 되자 상사에게 고발할 것을 권합니다. 그러나 검군은 "내가 죽기를 두려워하여 많은 사람을 죄로 다스리게 하는 것은 인정상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자 근랑은 도망하기를 권합니다. 검군은 "그 사람들의 마음이 그릇되고 내 마음이 정직한데 도리어 도망한다는 것은 장부의 행동이 아니다"라며 동료들이 마련 한 술자리에 가서 그들이 권하는 독약이 담긴 술을 마셨습니다.
검군은 동료를 고발하느니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입니다. 고발정신 따위는 검군의 세계에는 없었습니다. 고발은 나라와 공동체를 위하는 것이기도 하나, 한국인은 오히려 의리 없는 행위라 해서 경멸했습니다. 공공에 대한 질서보다는 우정을 중시하는 한국인의 본연의 모습이 검군의 모습에서 보입니다. "
김용운씨는 검군의 모습을 한 민족의 모습으로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 김용운씨는 호남지방에서 일어난 동학혁명을 소개합니다.
한국역사에 대해서 잘 아시겠지만 김용운씨가 소개하는 동학혁명을 간단히 요약해 드리겠습니다.
한국농민은 일본농민과는 성격이 달랐다고 그는 주장합니다. 일본 사람들은 무조건 권력에 아부하고 맹종하지만 한국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특히 동학혁명을 통해 잘 나타났습니다.
1892년 전라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평소에는 말없이 부당한 착취를 당해 온 농민들이지만 그들이 손수 만들어 놓은 수리시설에 대해 무모하게 과세하는 데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부당한 착취를 당해 온 농민들이 전봉준의 지도 아래 일제히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처음에는 '악질관리 추방하라', '부당한 과세를 철폐하라' 주장하면서 자신의 권익을 먼저 강조했지만 점점 이상론이 대두합니다.
'모든 권력자를 부숴라', '정의를 구현하라'로까지 확대되고 정부, 중앙관리들까지도 적으로 삼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정책을 벌이고 있는 외국군대까지도 정면으로 적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이쯤되면 단순한 농민운동이 아니라 대혁신운동이며 민중중심의 근대화 운동이자 반제국주의 투쟁이 되었습니다.
조선정부만이 상대였다면 충분히 성공할 가능성도 있었으나, 제국주의의 일본과 청나라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결국 동학 농민군은 이들 외국의 직업군인과 정면 충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창이나 낫과 괭이로 무장한 훈련도 제대로 받지 않은 농민군이 이들을 당해낼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농민들은 마지막까지 싸웠습니다. 무려 3-40만의 농민이 학살당했고 결국 한국 민중운동의 위대한 시도는 좌절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동학혁명을 통하여 참 한국인의 모습이 드러났었던 것입니다. 한국민족은 인간의 평등을 주장하는 민족인 것입니다. 인권이 침해될 때는 권력과 투쟁하는 것이 한국민족이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일본인은 권력에 적대적으로 복종하는 민족입니다. 일본에는 동학혁명, 3. 1절, 4. 19와 같은 혁명이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메이지 유신(명치유신)은 농민들의 혁명이 아니라 무사들의 정권이양이었음을 강조합니다. 무사들이 정권을 잡은 후 천황을 앞세웁니다. 천황을 중심으로 무사들이 명치유신을 감행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김용운씨는 그의 책에서 한국인의 본래의 모습을 잘 소개해 줍니다. 한국인의 본래의 모습을 '한국인의 원형'이라는 소제목으로 자세히 소개한 후 김용운씨는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은 글로 마칩니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한국처럼 철저한 평등사회는 없었다. "
요즘 한국에서 사소한 일에도 데모를 많이 한다고 합니다. 물론 쓸데없는 일에 데모를 하면 안
되겠지만 저는 김용운씨의 책을 읽으면서 왜 한국인은 그토록 데모를 많이 해 왔는지의 한 이유를 발견케 되었습니다.
한국민족은 특수한 민족입니다. 권력에 대한 아부보다는 정의사회 구현이 몸에 배인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한 민족의 정신구조 깊숙한 곳에는 인간 평등사상이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검군처럼 우정을 더 귀하게 생각하는 민족이 바로 우리 한민족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꽤나 흥분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참 모습이구나…. " 저는 이 흥분된 마음을 안고 지난주 본교회 교역자분들과 같이 뉴햄프셔에서 캠핑을 하면서 1 박 2일을 지냈습니다.
저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우리 교역자들의 모습이 귀해보였습니다. 전에는 여호와 하나님께 부름받은 자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주어진 사명을 함께 다하자'라는 생각으로 만나곤 하였는데, 이번에 함께 지내면서 저의 마음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 이전에 이 멋진 한국 사람들과 함께 지낸다는 것 자체가 즐거웠습니다. 잔잔한 흥분이 저의 마음속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8. 15 광복절 기념예배를 드립니다. 오늘 우리가 단순히 54년 전의 8. 15해방만을 경축한다면 큰 의의가 없을 줄로 압니다. 오늘 우리는 8. 15 광복을 축하하면서 우리의 굽어진 모습을 보아야 할 줄로 압니다. 아울러 우리의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야 할 줄로 압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말씀에는 우리 한민족과 같이 노예생활을 하다 해방을 맞은 이스라엘 민족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400년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된 이야기를 잘 아실 줄 압니다. 애굽 왕 바로가 이스라엘 민족을 보내지 않자 끝내 여호와 하나님은 각 가족과 모든 가축의 장자를 치는 재앙을 내립니다.
이에 바로는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속히 애굽을 떠나라고 합니다. 이에 이스라엘 민족은 바로가 마음이 바뀔까봐 성급히 무교병을 만들어 가지고 애굽을 떠납니다.
애굽을 떠날 때 재미있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인에게 은금패물과 의복을 구합니다. 이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애굽사람들의 마음을 주장하사 애굽인들이 은금패물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게 합니다.
사실 우리 민족과 이스라엘 민족과는 여러 가지 유사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노예생활을
함께 했다는 것이 대표적인 유사점입니다. 그러나 함께 노예생활을 했지만 마지막 해방될 때에는 크게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인들에게 금은패물을 받아 가지고 나왔는데, 우리 민족은 어떠했습니까 무엇을 받아냈습니까
두 민족 다 노예 생활을 하면서 구부러질대로 구부러졌습니다. 우리 민족은 36년간 일본 압제하에서 Second-hand people이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일본화 되었습니다. 권력의 무서움을 알았습니다. 힘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채로 해방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구부러진 우리의 모습을 보게 해 주질 않습니다. 구부러진 대로 한 민족은 살아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400년간 종살이를 하면서 구부러질 대로 구부러졌습니다. 아니 우리 한민족과는 비교도 안되게 구부러졌습니다. 그런데 해방과 함께 그들은 자신들의 구부러졌던 모습을 볼 수 있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애굽인들이 자진해서 금은패물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내어주었습니다. 그후 이스라엘 민족이 받은 금은패물이 무엇에 쓰여졌습니까
시내산에서 여호와의 법궤를 만들고 성소와 지성소의 성구들을 만드는 자료로 쓰여집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드디어 자신들의 참 모습을 발견케 됩니다. 자신들은 애굽민족을 위한 제사장 나라임을 깨달습니다. 아니 온 세상의 민족들을 위한 제사장 나라임을 깨달습니다.
자기들의 야훼 여호와 하나님이 온 민족의 여호와 하나님이요, 이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자신들이 바로 제사장 나라가됨을 발견합니다.
자기들이 받았던 애굽사람들의 금은패물이 여호와 하나님의 성소와 지성소를 위해 쓰여지는 것을 보면서 자신들의 본연의 참모습을 발견합니다. 자신들은 노예민족이 아니라 온 세계를 위한 제사장 나라의 민족임을 발견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참된 해방이었습니다. 참 민족의 회복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우리 민족은 어떻습니까 이제 해방을 맞이한 지 54년이 지났는데 이제
우리는 우리의 본연의 참모습을 깨달았습니까 우리 민족은 이스라엘 민족처럼 참 민족의 회복을 누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Second-hand people이 되어 일본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그 모양 그 모습을 안고 자유한냥 착각하면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얼마전 한 놀랄만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 민족은 선과 평화를 좋아하는 백의 민족입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역사상 이웃 나라를 침범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국 근대화의 기치 아래 우리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깨뜨렸다는 것입니다. 월남전에 참전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반공을 위해 월남의 민주주의를 위해 참전했다면, 혹은 평화를 수호하는 군대로 참전했다면, 높이 업적을 기릴수가 있겠습니다만 오늘날 평가되는 것은 경제부흥이 그 이유였다는 것입니다. 돈을 숭상하게 된 우리 민족의 구부러진 모습의 한 면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우리 민족은 평화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민족이 아닐까요 인간의 평등과 우애가 얼마나 귀한 것을, 그리고 그러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보내어진 민족이 아닐까요
우리 민족이 인간 평등과 세계 평화를 위한 본연의 모습을 되찾기 전에는 참 해방이 이루어지
지 않을 줄로 압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사람들의 금은패물로 성소와 지성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자기들이 세운 성소와 지성소를 통하여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우리 민족의 본연의 모습은 온 세계에 참 평화와 평등의 나라를 보여주는 것
입니다. 그로 인해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참 회복인 것입니다. 온 세계는 한 민족의 아름다운 모습을 통하여 참 평화와 평등의 나라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로 인해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김용운씨는 그의 저서에서 일본의 히로부미를 죽인 안중근의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안중근은 일본이 그런 불의를 계속 저지르다 보면 여러 나라의 불신을 얻을 것이 분명하며 그
대로 나가다가는 언젠가는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의 공동 포위 속에서 멸망하고 말 것이라고 예 언했다(이 예언은 적중했다). 그리고 일본이 그런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는 안중근 자신이 쓴 동양평화론을 읽으라고까지 이른다. 안중근 의사는 결코 한국의 독립만을 위해 죽어간 것이 아니다. 그는 보편적인 것, 즉 인간의 윤리와 인류의 평화 같은 보다 높은 이상을 표방하고 그것을 고집하였던 것이다. "
세계 평화를 위해 전 삶을 바쳤던 안중근 의사의 모습, 그것이 한국인의 본연의 모습입니다. 이 모습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그동안 대한민국은 11번째 세계경제 대국임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다가
IMF를 맞이했습니다. 그것은 굽어진 우리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굽어진 우리의 모습을 펴십시다.
세계 평화를 위하여 나아가십시다. 참 민족의 회복을 이루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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