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나라를 위해 기도합시다
본문
지금 우리나라는 큰 어려움에 봉착해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함으로 대통령의 직무가 중지되었고, 국무총리가 대통령 서리로 일을 하는 비상시국에 처해 있습니다.
정치는 국민의 기대를 부응하지 못하고 온 나라를 위기 상황으로 몰고 가서 탄핵 정국까지 왔고, 경제는 IMF 때보다 더 어렵다는 비명을 지르면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지내고 있습니다. 장사도 안 되고, 일자리도 없고, 경기 회복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고 탄식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남북통일을 이루고 국제 사회의 경쟁에서 당당히 인류 국가로 발전해야 하는데, 상황은 그렇지 못합니다. 중국은 급속히 발전해서 잠재력만 아니라, 기술과 경제 수준에서 곧 우리나라를 능가할 것이라고 합니다. 일본이나 미국은 우리하고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고 힘 있는 나라입니다. 아시아의 각 나라들은 어떠합니까 지난날 한국이 아시아의 경제 발전을 주도하는 세 마리 용중의 하나라고 했는데, 그것은 옛말입니다. 우리나라가 비틀거리고 있을 때, 각 나라들은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루며 나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월드컵 4강을 한 한국 축구가 베트남에 졌다고 분통을 친 기억이 있습니다. 축구가 진 것은 괜찮지만, 나라가 위청거리는 모습은 정말 안 됩니다.
우리의 문제는 외환이 아니라 내부적인 갈등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고 부끄러움이 있습니다. 일본의 침략을 받고 식민지 통치를 받는 것도 아니고, IMF 같은 경제 위기가 닥친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속사정으로 이런 어려움에 빠져 있습니다. 얼마 전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았습니다. 6. 25 전쟁의 비극을 한 눈에 그린 영화인데, 잘 아는 대로 6. 25 전쟁은 군인들의 전쟁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공산주의와 자유주의의 대결, 분명치도 않은 이념 전쟁으로 인해 얼마나 무고한 양민들이 희생되었습니까
외신 보도에 의하면 외국에서는 우리나라의 탄핵 정국을 한국인의 내부 문제라고 합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한국이 6. 25 이후 가장 심각한 이념 갈등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부인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을 선출하고 한 마음이 되어 국가발전을 이룰 때에, 지난 1년간을 돌아보면 허구한 날 “네 편이나 내 편이냐” 편만 가르고 지낸 것 같습니다. 국가 운명을 좌우할 만한 의견 차이가 과연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분열하고 다투었습니다. 왜 보수다 진보다 해서 편을 가르고 죽기 살기로 싸우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념적 갈등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이념적 사고가 무엇입니까 이념적 사고는 생산적이지도 못할 뿐 아니라, 세계 인류 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적절한 사고방식이 못됩니다. 이념이란 일정한 생각의 틀을 말합니다. 이념이란 것이 현실을 인식하고 행동하게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그 틀 속에 가두려고 한다면 무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라가 발전하고, 국민소득 2만불 시대, 세계 인류 국가의 반열에 서기 위해서는 이념적 사고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같이 세계화 된 세상에서 이념적 사고는 편협하고 낡은 가치관으로 작용하기 쉽습니다.
깊은 생각과 전문가의 견해로 중요한 결정을 이끌어야 내야 할 부분도 많다고 봅니다. 자기 성향과 취향만 반복하거나,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은 낡은 시대의 산물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보다 더 기업하기 좋고 기업인들을 대접한다고 합니다. 자본주의 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경제를 실현하려고 노력한다고 합니다. 지금이 남북 전쟁의 시대입니까 이분법적이고, 투쟁적이고, 논쟁적이고, 전투적인 사고와 분위기는 우리의 적입니다.
앞으로 우리의 과제는 화합과 통합입니다. 남과 북이 분단으로 갈등하고 싸운 것도 힘든데, 지역감정과 싸우고, 이제는 계층간, 세대간에 갈등으로 나라가 요동친다는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분파적이고 분쟁적이고 전투적인 분위기는 나라를 망칩니다. 남북 관계가 어려울 때. 김일성이 당장 쳐 들어올 것처럼 위기 위식이 가득할 때도, 우리 안에는 이런 증오와 갈등이 지금처럼 격하지는 않았습니다. 품고, 포용하고, 화합하고, 하나 되는 나라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국가의 나아갈 길과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모두가 함께 동의할 수 있는 큰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개인의 삶의 목표와 비전이 그 사람의 삶을 좌우합니다. “짱”이 무엇입니까 아무리 문화적인 현상이라고 하지만,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주도하는 것이 “짱” 문화에 그쳐서 안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 앞에 한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이 개인적인 비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국가의 목표와 비전이 무엇입니까 우리 모두가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일터로 돌아가서 밤을 새워 땀 흘리며 살고 싶은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할 일이 많습니다. 하면 됩니다. 할 수 있습니다는 긍정적인 분위기가 되살아나기 바랍니다.
기도의 우선순위
신자는 무슨 일을 만나더라도 여호와 하나님과 자신과 관계를 돌아봅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언약의 백성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는지 돌아봅니다. 우리의 마음의 상태와 삶의 속 모습이 국가의 난국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회개할 것을 회개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과 회복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나라를 위해 기도할 때입니다.
나라를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할 것은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1절). ” 첫째로 권한다는 말은 시간상의 순서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기도의 중요성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신자가 할 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높이는 가장 적절하고 구체적인 방법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선악과를 두시고 먹지 말라하셨습니다. 인간은 자율주의로 살아서 안 됩니다.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중심으로,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피조물 된 인간의 근본입니다. 인간의 지혜와 힘을 의지하지 말고, 겸손하게 여호와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합시다. 우리의 힘과 노력을 무시하거나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최선을 다해도 부족한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 의지하고 도움을 구하자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기도의 골방에 들어가야 합니다. “오늘 집을 나시기 전 기도했나요” 기도합시다. 기도하면 마음에 기쁨이 생기고 여호와 하나님의 선한 인도하심을 맛볼 것입니다. 교회에서 할 일 중에 가장 큰 일이 기도입니다. “내 집은 만인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간구하는 축복의 기관입니다. 예배 시간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기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예배는 여호와 하나님과 우리의 인격적인 만남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시고, 우리가 기도로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기도의 종류도 여러 가지입니다.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 기도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간구와 도고와 기도와 감사함과 같이 다양합니다. 간구가 무엇입니까 간구는 특별한 내용의 기도를 말합니다. “탄핵 정국을 해결하여 주옵소서! 폭설로 인한 피해를 복구해 주옵소서!” 이런 기도가 간구입니다. 기도는 보다 일반적이고 경건한 삶을 위해 드리는 기도를 말합니다. 도고는 다른 사람을 위해 드리는 중보기도를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심판에 직면한 소동성에 살고 있는 조카 롯을 위해 하는 기도가 중보기도입니다. 간구나 기도나 도고나 다 감사함으로 해야 합니다. 모든 기도는 감사의 기도입니다.
기도할 것이 없습니까 정말 기도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기도 안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경건하게 살도록 기도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가 만든 중보기도 노트를 보십시오. 많은 성도들의 기도제목이 가득합니다. 선교와 교회를 위해 기도할 것이 많습니다. 중보기도 하기에 시간이 모자라고, 힘이 부족합니다. 시급하게 간구가 할 것도 많습니다. 꼭 해결해야 할 문제나 시간을 다투는 시급한 문제가 얼마나 많습니까 탄핵 정국을 위해 간구할 때입니다. 기도 없는 신자, 기도 없는 교회는 죽은 것입니다. 첫째로 기도하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기도합시다.
기도가 입술로만 하는 말에 그쳐서 안 됩니다. 입으로 기도하고 몸으로 실천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리고 행동이 곧 기도라고 해서도 안 됩니다. 행동하기 전에 얼마든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입술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밤새도록 기도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행동했습니다. 현실에 뛰어들어 든다고 기도하지 않는다면, 여호와 하나님의 일할 기회를 없애는 것입니다. 기도 중에 응답을 받고 지혜와 용기를 얻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해서 그 나라의 그 의가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행동합시다. 우리의 의와 뜻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의와 뜻에 굴복합시다.
기도의 대상
누구를 위해 기도할 것입니까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2절). ” 임금이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를 들면, 바울 당시 네로 황제 같은 왕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네로가 어떤 사람인데 그를 위해 기도합니까 네로는 기독교를 잔인하게 박해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네로 같은 악인을 위해 기도하단 말입니까 네로가 건강하고 오래오래 황제 노릇하라고 기도합니까 네로에 대해서 우선 감정이 좋지 않습니다. 네로 같은 사람은 생각도 하기 싫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라고 합니다.
감정을 다스리고 기도한다 할지라도 문제는 또 있습니다. 도대체 네로 같은 악한 황제를 위해 무슨 기도를 하란 말입니까 기도의 내용이 문제입니다. “네로의 만수무강을 빈단 말입니까” 여러 가지 의문이 있지만, 결론을 말하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로 황제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네로 개인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그를 통해 선한 역사를 이루도록, 로마 황제로서 선한 일을 감당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통치자를 위해 기도라면 우리에게도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오릅니다. 조찬기도회입니다. 우리나라에 지난날 국가 지도자를 위한 조찬기도회가 유행했습니다. 정권 홍보와 유지 차원에서 조찬기도회가 악용된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기도회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만, 누구를 위해 무슨 기도를 했는가를 돌아보면 조찬기도회가 순수하게 국가와 지도자를 위한 기도였다고 보다는 정권의 시녀로 전락한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이 있습니다. 자발적이고 성경적이고 성령의 역사에 의한 조찬기도회였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일부 허물이 있다할지라도, 우리는 지금이나 앞으로 국가를 위해 올바르게 기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국회와 대통령을 위해 기도했다면 이런 험악한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국가와 지도자를 위한 기도가 사라진 것 같습니다.
탄식하고 절망만 할 것이 아닙니다. 한국에 살기 싫어서 이민이나 가야 하겠다고 할 것이 아니라, 분신하고 거리로 나가서 우호만 외칠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입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자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응답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기도의 대상을 자기 개인으로 한정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기도는 자신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자기만 위해 기도하고 그치지 않습니다. 그 이상입니다. 국가와 나라의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미워하고, 내가 지지하지 않는 정당이나 지도자라 할지라도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개인적이고 신비로운 경험으로 제한해서 안 됩니다. 기도하면 신비적인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입니다. 나라의 현실을 위해 기도합시다.
오해가 있어서 안됩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 기도하면 이 세상은 온데간데없고, 황홀한 세계로 변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세상을 외면하거나 세상을 등지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 세상을 보지 않고, 황홀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은 불건전한 신비주의자입니다. 그들은 세상을 회피할수록 신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보고가 변화산에 올라가서 “여기사 좋사오니” 하고 여기에 집을 짓고 살자고 했지만, 잘못된 태도입니다. 산을 내려와서 귀신들린 자를 고치고 병든 자를 치료하시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주님이 가르친 기도문에도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 땅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여호와 하나님의 관심은 땅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기도합시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의 술관원장이었습니다. 어느 날 예루살렘 성벽이 아직도 불탄 채로 방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금식하여 기도하였습니다. 나라를 위해 금식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은 다락방에 올라가서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조국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자신은 포로로 잡혀 왔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속히 예루살렘을 회복하시고, 포로로 잡힌 백성들을 돌이키도록 기도했습니다. 개인적인 경건을 위해서도 기도도 했지만, 다니엘은 나라와 조국의 회복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모세도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서 40년을 지냈습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 주실 것을 기도했습니다. 애굽의 왕자이기를 거부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애굽의 모든 금은보화 보다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스코틀랜드의 개혁자 존 낙스는 스코틀랜드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기도를 “스코틀랜드의 군대 보다 강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라
첫째, 전쟁 없고 근심 없는 나라를 위해 기도합시다. 우리나라가 살기 좋은 복지의 땅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2절에 기도할 이유가 기록되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이 무엇입니까 밖으로 전쟁이 없고, 안으로 싸움과 원망과 갈등이 없는 생활입니다. 한마디로 좋은 나라, 좋은 세상을 위해 기도합시다. 시편 144편에는 태평성대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곡간에는 백곡이 가득하며 우리의 양은 들에서 천천과 만만으로 무성하며 우리 수소는 무겁게 실었으며 또 우리를 침노하는 일이나 우리가 나아가 막는 일이 없으며 우리 거리에는 슬피 부르짖음이 없을진대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여호와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시144:13-15). ”
국가의 존재 목적이 무엇입니까 개인의 삶을 압제하거나 좌절시키기 위함이 아닙니다. 반대입니다. 모든 사람의 삶의 질을 높이고, 공공의 복리를 증진시키기 위함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국가를 세웠습니다. 국가가 잘못되면, 개인과 가정과 사회에 짐이 되고 큰 화가 됩니다. 우리는 지난날 역사를 통해 국가의 불행이 개인과 가정에 가져다주는 비극을 몸으로 체험했습니다. 식민지의 고통과 민족 동란의 비극과 보리 고개의 헐벗음과 독재로 인한 압제와 IMF 시절의 국가 파산의 위기를 몸소 겪었습니다. 나라가 잘못되면 모두가 불행해집니다. 국가 경쟁력의 향상, 국책 사업의 강력한 추진, 지역과 계층 간의 고른 혜택이 임하는 나라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좋은 나라를 위해 가장 합리적이면서 성경적인 정부 조직이 삼권 분립입니다. 입법부와 행정부와 사법부가 유기적으로 협조하고 조화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 임하는 나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행정부가 독식해서도 안 되고, 국회가 대통령을 마음대로 해서도 안 됩니다. 사법부가 권력의 시녀노릇해도 안 됩니다. 거대한 중앙집권 보다는 지방 분권이 이루어져서 모든 국민이 골고루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도록 기도합시다.
나라에 좋은 지도자가 세워지도록 기도합시다. 혹시 지도자가 우리와 같은 기독교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이 일반은총으로 불신들을 얼마든지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 건전하고 유능한 지도자들을 세워지도록 기도합시다. 그들의 신앙의 유무나 지역이나 출신 학교를 떠나서 나라 발전에 유익을 줄 수 있는 지도자가 세워질 때 나라는 복지가 실현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둘째, 우리가 원하는 좋은 나라는 의의 나라입니다. 정의와 공의가 강같이 하수같이 흐르는 나라입니다. 법정에 갈 필요가 없고, 혹시 법정에 가더라도 언제나 진리가 승리할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솔로몬은 태평 시대를 이루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의의 실현입니다. 솔로몬은 어린 나이에 다윗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번제를 드리면서 지혜를 구했습니다. 지혜가 무엇입니까 의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그 지혜로 아기의 생모를 찾았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솔로몬의 재판입니다. 아이가 생모의 품에 돌아갈 때 그 나라는 의로운 나라입니다. 상식이 통하고 정직하고 땀흘려 일하는 자가 주인이 되는 나라입니다. 솔로몬의 평화의 나라는 의에 기초한 나라입니다.
우리나라는 의가 강같이 하수같이 흐르는 나라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국가와 지도자들에게 정의의 칼을 주셨습니다. 법의 실현과 질서 유지와 치안과 국가 안보를 위해 정의롭게 사용할 합법적인 권력을 주셨습니다. 그 권력은 정의를 실현하는 칼입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내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지니라(롬13:4). ” 권세자는 합당하게 권력을 사용해야 합니다. 정의의 칼을 들어야 합니다. 모든 법 적용과 집행이 공평하고 정당해야 합니다.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었다 하는 것은 안 됩니다. 일한만큼, 법을 준행한 만큼 합당한 대우를 받는 의로운 나라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음지에서 억울하다고 슬퍼하는 사람이 없는 나라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지도자가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사무엘은 은퇴식에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습니다. 누구의 뇌물을 받았으며, 재판의 판결을 굽게 하였느냐 하고 백성들에게 물었습니다. 대통령을 지낸 분들이나 국가의 지도자들이 줄줄이 감옥으로 가는 우리나라의 풍경이 하루 속이 변해야 합니다. 털어도 먼지 나오지 않는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모세는 죽어도 시체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죽을 때 가진 것도 없어서 무덤도 아리마대 요셉의 것을 빌렸습니다.
그리고 국민은 합법적인 법과 권세자들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목소리만 크고 집단으로 떼만 쓰면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감정이나 행동 보다는 법을 존중히 여길 때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가 됩니다. 정정당당하게 경쟁하고, 이긴 자에게 박수를 치고 손을 들어주고, 이긴 자는 패자의 손을 잡고 함께 갈 수 있는 겸손과 베풂의 아량이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나라가 언제부턴가 권위와 권위주의를 혼돈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권위는 언제나 지키고 존중할 것입니다. 우리가 청산할 것은 권위주의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합당한 권위도 인정받지 못하는 무질서와 무례함이 가득한 모습이 있다는 것입니다. 백발은 노인의 면류관이라고 했는데, 기성세대는 인적 청산의 대상일 뿐입니다. 인터넷은 발달했지만, 속설이 아니면 말을 못합니다. 자기하고 생각이 다르면, 폭언을 일삼습니다. 우리는 더욱 겸손과 순종을 배워야지 선진국이 될 것입니다.
셋째, 국가는 건전한 교회와 신앙을 보호 육성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2절). ” 우리가 나라와 지도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것은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세상적인 축복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세상적인 풍요와 축복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분위기와 환경입니다. 신자가 마음 펴고 살 수 있는 영적인 환경이 조성되는 나라, 교회가 부흥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나라가 우리의 기도 제목입니다. 이단이 판을 치고, 불건전한 우상숭배와 종교들이 번성할 수 있는 나라가 되어서 안 됩니다. 국민 소득이 아무리 높아도 단군을 숭배하는 나라가 되게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경제가 중요하지만 물질을 우상처럼 섬기는 물질만능주의 나라를 만들 수 없습니다.
국가와 교회는 서로 다른 권세를 가진 여호와 하나님이 세운 기관입니다. 국가는 세상에 속한 것을 다스리는 권세가 있고, 교회는 영적인 권세가 있습니다. 교회의 영적인 권세는 국가 발전에 도움을 주어야 하고, 국가의 권세는 건전한 교회를 보호 육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둘이 서로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협조할 때 좋은 나라가 됩니다.
교회는 국가가 바로 서도록 도와야 합니다. 히틀러가 등장했을 때, 교회는 히틀러의 게르만 우월주의, 사이비 종교를 막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독일은 물론 온 인류가 큰 화를 입었습니다. 동서독이 통일 할 때에는 교회의 역할이 컸습니다. 정치적인 교류가 있기 전에 교회가 먼저 교류하고 기도했습니다. 베를린의 거대한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우리나라도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국가의 노력 이전에 교회가 기도하고 앞서 나가야 합니다. 교회는 국가를 도와야 합니다.
교회가 국가를 위하듯, 국가는 교회와 신자들을 보호할 책임이 있습니다. 캄보디아의 폴 포트 공산 정권은 혁명의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공산주의는 얼마나 많은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하고 박해했습니까 중국이나 북한의 교회는 국가 권력에 박해와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아직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지 못한 국가일수록 교회를 보호하지 못하고 압제하고 박해합니다. 국가의 이름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많이 자행되었습니까 불행한 일입니다.
반대로 기독교 선진국에서는 국가가 교회를 위해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교회와 영적 지도자가 존경을 받으며, 물질적인 후원을 받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주일에 출근하게 한다든지, 주일에 국가시험이나 자격시험을 치는 것은 경건한 나라의 모습이 아닙니다. 종교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이단과 온갖 종교의 난립을 방치하는 것도 좋은 나라의 모습이 아닙니다. 예술의 이름으로 온갖 음란이 자행되어도 손을 놓고 방치하거나, 비성경적인 윤리 도덕이 판을 쳐도 뒷짐만지는 나라는 좋은 나라가 아닙니다. 소돔성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국가는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는 깨끗하고 거룩한 나라가 되도록 외부적인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넷째, 우리는 복음 전파가 잘 되어서 모든 사람이 구원 받는 나라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라(4절). ”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까 모든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과 화해하고 구원을 받기 위함입니다. 물론 여기서 모든 사람이라는 것은 만인구원론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만인구원론은 모든 사람이 하나도 빠짐없이 구원을 받는다는 말인데,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구원받기로 작정된 자만 구원받습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다는 말은 100% 모든 사람이 아니라, 구원받는데 있어서 인종이나 문화 사회적 어떤 차이나 차별이 없이 누구든지 구원받기 원하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기도합시다. 대통령을 비롯해서 행정부의 지도자와 국회와 사법부의 지도자와 경제와 사화 문화계의 모든 지도자들이 구원받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해답입니다. 지역과 계층을 망라해서 모든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되기를 원합니다. 진정한 화합과 통합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성령이 임해서 우리의 마음에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함이 있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 됩니다.
다음달에 전도 축제를 갖습니다. 언제나 우리의 기도 제목은 가족과 이웃과 친구들이 다 예수 믿고 구원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애국입니다. 불신자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사랑의 대상이고 전도의 대상으로 가까이 할 이웃으로 대합시다. 우리는 민족 복음화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의 분열과 다툼을 보면서 앞으로 통일을 이루어도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온 나라에 임하도록 기도합시다. 기독교 문화와 기독교 예술, 기독교 정치, 기독교 경제, 기독교 사상이 더욱 견고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기를 기도합시다. 기독교를 유일한 국교로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역할과 영향을 더욱 키워가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룹시다. 신자는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라를 위해 기도의 무릎을 꿇읍시다.
정치는 국민의 기대를 부응하지 못하고 온 나라를 위기 상황으로 몰고 가서 탄핵 정국까지 왔고, 경제는 IMF 때보다 더 어렵다는 비명을 지르면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지내고 있습니다. 장사도 안 되고, 일자리도 없고, 경기 회복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고 탄식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남북통일을 이루고 국제 사회의 경쟁에서 당당히 인류 국가로 발전해야 하는데, 상황은 그렇지 못합니다. 중국은 급속히 발전해서 잠재력만 아니라, 기술과 경제 수준에서 곧 우리나라를 능가할 것이라고 합니다. 일본이나 미국은 우리하고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고 힘 있는 나라입니다. 아시아의 각 나라들은 어떠합니까 지난날 한국이 아시아의 경제 발전을 주도하는 세 마리 용중의 하나라고 했는데, 그것은 옛말입니다. 우리나라가 비틀거리고 있을 때, 각 나라들은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루며 나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월드컵 4강을 한 한국 축구가 베트남에 졌다고 분통을 친 기억이 있습니다. 축구가 진 것은 괜찮지만, 나라가 위청거리는 모습은 정말 안 됩니다.
우리의 문제는 외환이 아니라 내부적인 갈등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고 부끄러움이 있습니다. 일본의 침략을 받고 식민지 통치를 받는 것도 아니고, IMF 같은 경제 위기가 닥친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속사정으로 이런 어려움에 빠져 있습니다. 얼마 전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았습니다. 6. 25 전쟁의 비극을 한 눈에 그린 영화인데, 잘 아는 대로 6. 25 전쟁은 군인들의 전쟁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공산주의와 자유주의의 대결, 분명치도 않은 이념 전쟁으로 인해 얼마나 무고한 양민들이 희생되었습니까
외신 보도에 의하면 외국에서는 우리나라의 탄핵 정국을 한국인의 내부 문제라고 합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한국이 6. 25 이후 가장 심각한 이념 갈등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부인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을 선출하고 한 마음이 되어 국가발전을 이룰 때에, 지난 1년간을 돌아보면 허구한 날 “네 편이나 내 편이냐” 편만 가르고 지낸 것 같습니다. 국가 운명을 좌우할 만한 의견 차이가 과연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분열하고 다투었습니다. 왜 보수다 진보다 해서 편을 가르고 죽기 살기로 싸우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념적 갈등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이념적 사고가 무엇입니까 이념적 사고는 생산적이지도 못할 뿐 아니라, 세계 인류 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적절한 사고방식이 못됩니다. 이념이란 일정한 생각의 틀을 말합니다. 이념이란 것이 현실을 인식하고 행동하게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그 틀 속에 가두려고 한다면 무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라가 발전하고, 국민소득 2만불 시대, 세계 인류 국가의 반열에 서기 위해서는 이념적 사고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같이 세계화 된 세상에서 이념적 사고는 편협하고 낡은 가치관으로 작용하기 쉽습니다.
깊은 생각과 전문가의 견해로 중요한 결정을 이끌어야 내야 할 부분도 많다고 봅니다. 자기 성향과 취향만 반복하거나,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은 낡은 시대의 산물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보다 더 기업하기 좋고 기업인들을 대접한다고 합니다. 자본주의 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경제를 실현하려고 노력한다고 합니다. 지금이 남북 전쟁의 시대입니까 이분법적이고, 투쟁적이고, 논쟁적이고, 전투적인 사고와 분위기는 우리의 적입니다.
앞으로 우리의 과제는 화합과 통합입니다. 남과 북이 분단으로 갈등하고 싸운 것도 힘든데, 지역감정과 싸우고, 이제는 계층간, 세대간에 갈등으로 나라가 요동친다는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분파적이고 분쟁적이고 전투적인 분위기는 나라를 망칩니다. 남북 관계가 어려울 때. 김일성이 당장 쳐 들어올 것처럼 위기 위식이 가득할 때도, 우리 안에는 이런 증오와 갈등이 지금처럼 격하지는 않았습니다. 품고, 포용하고, 화합하고, 하나 되는 나라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국가의 나아갈 길과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모두가 함께 동의할 수 있는 큰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개인의 삶의 목표와 비전이 그 사람의 삶을 좌우합니다. “짱”이 무엇입니까 아무리 문화적인 현상이라고 하지만,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주도하는 것이 “짱” 문화에 그쳐서 안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 앞에 한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이 개인적인 비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국가의 목표와 비전이 무엇입니까 우리 모두가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일터로 돌아가서 밤을 새워 땀 흘리며 살고 싶은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할 일이 많습니다. 하면 됩니다. 할 수 있습니다는 긍정적인 분위기가 되살아나기 바랍니다.
기도의 우선순위
신자는 무슨 일을 만나더라도 여호와 하나님과 자신과 관계를 돌아봅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언약의 백성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는지 돌아봅니다. 우리의 마음의 상태와 삶의 속 모습이 국가의 난국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회개할 것을 회개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과 회복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나라를 위해 기도할 때입니다.
나라를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할 것은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1절). ” 첫째로 권한다는 말은 시간상의 순서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기도의 중요성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신자가 할 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높이는 가장 적절하고 구체적인 방법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선악과를 두시고 먹지 말라하셨습니다. 인간은 자율주의로 살아서 안 됩니다.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중심으로,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피조물 된 인간의 근본입니다. 인간의 지혜와 힘을 의지하지 말고, 겸손하게 여호와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합시다. 우리의 힘과 노력을 무시하거나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최선을 다해도 부족한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 의지하고 도움을 구하자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기도의 골방에 들어가야 합니다. “오늘 집을 나시기 전 기도했나요” 기도합시다. 기도하면 마음에 기쁨이 생기고 여호와 하나님의 선한 인도하심을 맛볼 것입니다. 교회에서 할 일 중에 가장 큰 일이 기도입니다. “내 집은 만인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간구하는 축복의 기관입니다. 예배 시간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기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예배는 여호와 하나님과 우리의 인격적인 만남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시고, 우리가 기도로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기도의 종류도 여러 가지입니다.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 기도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간구와 도고와 기도와 감사함과 같이 다양합니다. 간구가 무엇입니까 간구는 특별한 내용의 기도를 말합니다. “탄핵 정국을 해결하여 주옵소서! 폭설로 인한 피해를 복구해 주옵소서!” 이런 기도가 간구입니다. 기도는 보다 일반적이고 경건한 삶을 위해 드리는 기도를 말합니다. 도고는 다른 사람을 위해 드리는 중보기도를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심판에 직면한 소동성에 살고 있는 조카 롯을 위해 하는 기도가 중보기도입니다. 간구나 기도나 도고나 다 감사함으로 해야 합니다. 모든 기도는 감사의 기도입니다.
기도할 것이 없습니까 정말 기도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기도 안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경건하게 살도록 기도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가 만든 중보기도 노트를 보십시오. 많은 성도들의 기도제목이 가득합니다. 선교와 교회를 위해 기도할 것이 많습니다. 중보기도 하기에 시간이 모자라고, 힘이 부족합니다. 시급하게 간구가 할 것도 많습니다. 꼭 해결해야 할 문제나 시간을 다투는 시급한 문제가 얼마나 많습니까 탄핵 정국을 위해 간구할 때입니다. 기도 없는 신자, 기도 없는 교회는 죽은 것입니다. 첫째로 기도하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기도합시다.
기도가 입술로만 하는 말에 그쳐서 안 됩니다. 입으로 기도하고 몸으로 실천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리고 행동이 곧 기도라고 해서도 안 됩니다. 행동하기 전에 얼마든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입술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밤새도록 기도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행동했습니다. 현실에 뛰어들어 든다고 기도하지 않는다면, 여호와 하나님의 일할 기회를 없애는 것입니다. 기도 중에 응답을 받고 지혜와 용기를 얻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해서 그 나라의 그 의가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행동합시다. 우리의 의와 뜻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의와 뜻에 굴복합시다.
기도의 대상
누구를 위해 기도할 것입니까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2절). ” 임금이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를 들면, 바울 당시 네로 황제 같은 왕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네로가 어떤 사람인데 그를 위해 기도합니까 네로는 기독교를 잔인하게 박해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네로 같은 악인을 위해 기도하단 말입니까 네로가 건강하고 오래오래 황제 노릇하라고 기도합니까 네로에 대해서 우선 감정이 좋지 않습니다. 네로 같은 사람은 생각도 하기 싫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라고 합니다.
감정을 다스리고 기도한다 할지라도 문제는 또 있습니다. 도대체 네로 같은 악한 황제를 위해 무슨 기도를 하란 말입니까 기도의 내용이 문제입니다. “네로의 만수무강을 빈단 말입니까” 여러 가지 의문이 있지만, 결론을 말하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로 황제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네로 개인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그를 통해 선한 역사를 이루도록, 로마 황제로서 선한 일을 감당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통치자를 위해 기도라면 우리에게도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오릅니다. 조찬기도회입니다. 우리나라에 지난날 국가 지도자를 위한 조찬기도회가 유행했습니다. 정권 홍보와 유지 차원에서 조찬기도회가 악용된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기도회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만, 누구를 위해 무슨 기도를 했는가를 돌아보면 조찬기도회가 순수하게 국가와 지도자를 위한 기도였다고 보다는 정권의 시녀로 전락한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이 있습니다. 자발적이고 성경적이고 성령의 역사에 의한 조찬기도회였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일부 허물이 있다할지라도, 우리는 지금이나 앞으로 국가를 위해 올바르게 기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국회와 대통령을 위해 기도했다면 이런 험악한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국가와 지도자를 위한 기도가 사라진 것 같습니다.
탄식하고 절망만 할 것이 아닙니다. 한국에 살기 싫어서 이민이나 가야 하겠다고 할 것이 아니라, 분신하고 거리로 나가서 우호만 외칠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입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자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응답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기도의 대상을 자기 개인으로 한정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기도는 자신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자기만 위해 기도하고 그치지 않습니다. 그 이상입니다. 국가와 나라의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미워하고, 내가 지지하지 않는 정당이나 지도자라 할지라도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개인적이고 신비로운 경험으로 제한해서 안 됩니다. 기도하면 신비적인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입니다. 나라의 현실을 위해 기도합시다.
오해가 있어서 안됩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 기도하면 이 세상은 온데간데없고, 황홀한 세계로 변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세상을 외면하거나 세상을 등지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 세상을 보지 않고, 황홀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은 불건전한 신비주의자입니다. 그들은 세상을 회피할수록 신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보고가 변화산에 올라가서 “여기사 좋사오니” 하고 여기에 집을 짓고 살자고 했지만, 잘못된 태도입니다. 산을 내려와서 귀신들린 자를 고치고 병든 자를 치료하시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주님이 가르친 기도문에도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 땅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여호와 하나님의 관심은 땅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기도합시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의 술관원장이었습니다. 어느 날 예루살렘 성벽이 아직도 불탄 채로 방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금식하여 기도하였습니다. 나라를 위해 금식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은 다락방에 올라가서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조국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자신은 포로로 잡혀 왔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속히 예루살렘을 회복하시고, 포로로 잡힌 백성들을 돌이키도록 기도했습니다. 개인적인 경건을 위해서도 기도도 했지만, 다니엘은 나라와 조국의 회복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모세도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서 40년을 지냈습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 주실 것을 기도했습니다. 애굽의 왕자이기를 거부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애굽의 모든 금은보화 보다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스코틀랜드의 개혁자 존 낙스는 스코틀랜드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기도를 “스코틀랜드의 군대 보다 강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라
첫째, 전쟁 없고 근심 없는 나라를 위해 기도합시다. 우리나라가 살기 좋은 복지의 땅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2절에 기도할 이유가 기록되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이 무엇입니까 밖으로 전쟁이 없고, 안으로 싸움과 원망과 갈등이 없는 생활입니다. 한마디로 좋은 나라, 좋은 세상을 위해 기도합시다. 시편 144편에는 태평성대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곡간에는 백곡이 가득하며 우리의 양은 들에서 천천과 만만으로 무성하며 우리 수소는 무겁게 실었으며 또 우리를 침노하는 일이나 우리가 나아가 막는 일이 없으며 우리 거리에는 슬피 부르짖음이 없을진대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여호와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시144:13-15). ”
국가의 존재 목적이 무엇입니까 개인의 삶을 압제하거나 좌절시키기 위함이 아닙니다. 반대입니다. 모든 사람의 삶의 질을 높이고, 공공의 복리를 증진시키기 위함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국가를 세웠습니다. 국가가 잘못되면, 개인과 가정과 사회에 짐이 되고 큰 화가 됩니다. 우리는 지난날 역사를 통해 국가의 불행이 개인과 가정에 가져다주는 비극을 몸으로 체험했습니다. 식민지의 고통과 민족 동란의 비극과 보리 고개의 헐벗음과 독재로 인한 압제와 IMF 시절의 국가 파산의 위기를 몸소 겪었습니다. 나라가 잘못되면 모두가 불행해집니다. 국가 경쟁력의 향상, 국책 사업의 강력한 추진, 지역과 계층 간의 고른 혜택이 임하는 나라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좋은 나라를 위해 가장 합리적이면서 성경적인 정부 조직이 삼권 분립입니다. 입법부와 행정부와 사법부가 유기적으로 협조하고 조화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 임하는 나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행정부가 독식해서도 안 되고, 국회가 대통령을 마음대로 해서도 안 됩니다. 사법부가 권력의 시녀노릇해도 안 됩니다. 거대한 중앙집권 보다는 지방 분권이 이루어져서 모든 국민이 골고루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도록 기도합시다.
나라에 좋은 지도자가 세워지도록 기도합시다. 혹시 지도자가 우리와 같은 기독교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이 일반은총으로 불신들을 얼마든지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 건전하고 유능한 지도자들을 세워지도록 기도합시다. 그들의 신앙의 유무나 지역이나 출신 학교를 떠나서 나라 발전에 유익을 줄 수 있는 지도자가 세워질 때 나라는 복지가 실현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둘째, 우리가 원하는 좋은 나라는 의의 나라입니다. 정의와 공의가 강같이 하수같이 흐르는 나라입니다. 법정에 갈 필요가 없고, 혹시 법정에 가더라도 언제나 진리가 승리할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솔로몬은 태평 시대를 이루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의의 실현입니다. 솔로몬은 어린 나이에 다윗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번제를 드리면서 지혜를 구했습니다. 지혜가 무엇입니까 의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그 지혜로 아기의 생모를 찾았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솔로몬의 재판입니다. 아이가 생모의 품에 돌아갈 때 그 나라는 의로운 나라입니다. 상식이 통하고 정직하고 땀흘려 일하는 자가 주인이 되는 나라입니다. 솔로몬의 평화의 나라는 의에 기초한 나라입니다.
우리나라는 의가 강같이 하수같이 흐르는 나라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국가와 지도자들에게 정의의 칼을 주셨습니다. 법의 실현과 질서 유지와 치안과 국가 안보를 위해 정의롭게 사용할 합법적인 권력을 주셨습니다. 그 권력은 정의를 실현하는 칼입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내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지니라(롬13:4). ” 권세자는 합당하게 권력을 사용해야 합니다. 정의의 칼을 들어야 합니다. 모든 법 적용과 집행이 공평하고 정당해야 합니다.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었다 하는 것은 안 됩니다. 일한만큼, 법을 준행한 만큼 합당한 대우를 받는 의로운 나라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음지에서 억울하다고 슬퍼하는 사람이 없는 나라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지도자가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사무엘은 은퇴식에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습니다. 누구의 뇌물을 받았으며, 재판의 판결을 굽게 하였느냐 하고 백성들에게 물었습니다. 대통령을 지낸 분들이나 국가의 지도자들이 줄줄이 감옥으로 가는 우리나라의 풍경이 하루 속이 변해야 합니다. 털어도 먼지 나오지 않는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모세는 죽어도 시체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죽을 때 가진 것도 없어서 무덤도 아리마대 요셉의 것을 빌렸습니다.
그리고 국민은 합법적인 법과 권세자들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목소리만 크고 집단으로 떼만 쓰면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감정이나 행동 보다는 법을 존중히 여길 때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가 됩니다. 정정당당하게 경쟁하고, 이긴 자에게 박수를 치고 손을 들어주고, 이긴 자는 패자의 손을 잡고 함께 갈 수 있는 겸손과 베풂의 아량이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나라가 언제부턴가 권위와 권위주의를 혼돈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권위는 언제나 지키고 존중할 것입니다. 우리가 청산할 것은 권위주의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합당한 권위도 인정받지 못하는 무질서와 무례함이 가득한 모습이 있다는 것입니다. 백발은 노인의 면류관이라고 했는데, 기성세대는 인적 청산의 대상일 뿐입니다. 인터넷은 발달했지만, 속설이 아니면 말을 못합니다. 자기하고 생각이 다르면, 폭언을 일삼습니다. 우리는 더욱 겸손과 순종을 배워야지 선진국이 될 것입니다.
셋째, 국가는 건전한 교회와 신앙을 보호 육성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2절). ” 우리가 나라와 지도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것은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세상적인 축복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세상적인 풍요와 축복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분위기와 환경입니다. 신자가 마음 펴고 살 수 있는 영적인 환경이 조성되는 나라, 교회가 부흥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나라가 우리의 기도 제목입니다. 이단이 판을 치고, 불건전한 우상숭배와 종교들이 번성할 수 있는 나라가 되어서 안 됩니다. 국민 소득이 아무리 높아도 단군을 숭배하는 나라가 되게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경제가 중요하지만 물질을 우상처럼 섬기는 물질만능주의 나라를 만들 수 없습니다.
국가와 교회는 서로 다른 권세를 가진 여호와 하나님이 세운 기관입니다. 국가는 세상에 속한 것을 다스리는 권세가 있고, 교회는 영적인 권세가 있습니다. 교회의 영적인 권세는 국가 발전에 도움을 주어야 하고, 국가의 권세는 건전한 교회를 보호 육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둘이 서로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협조할 때 좋은 나라가 됩니다.
교회는 국가가 바로 서도록 도와야 합니다. 히틀러가 등장했을 때, 교회는 히틀러의 게르만 우월주의, 사이비 종교를 막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독일은 물론 온 인류가 큰 화를 입었습니다. 동서독이 통일 할 때에는 교회의 역할이 컸습니다. 정치적인 교류가 있기 전에 교회가 먼저 교류하고 기도했습니다. 베를린의 거대한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우리나라도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국가의 노력 이전에 교회가 기도하고 앞서 나가야 합니다. 교회는 국가를 도와야 합니다.
교회가 국가를 위하듯, 국가는 교회와 신자들을 보호할 책임이 있습니다. 캄보디아의 폴 포트 공산 정권은 혁명의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공산주의는 얼마나 많은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하고 박해했습니까 중국이나 북한의 교회는 국가 권력에 박해와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아직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지 못한 국가일수록 교회를 보호하지 못하고 압제하고 박해합니다. 국가의 이름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많이 자행되었습니까 불행한 일입니다.
반대로 기독교 선진국에서는 국가가 교회를 위해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교회와 영적 지도자가 존경을 받으며, 물질적인 후원을 받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주일에 출근하게 한다든지, 주일에 국가시험이나 자격시험을 치는 것은 경건한 나라의 모습이 아닙니다. 종교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이단과 온갖 종교의 난립을 방치하는 것도 좋은 나라의 모습이 아닙니다. 예술의 이름으로 온갖 음란이 자행되어도 손을 놓고 방치하거나, 비성경적인 윤리 도덕이 판을 쳐도 뒷짐만지는 나라는 좋은 나라가 아닙니다. 소돔성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국가는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는 깨끗하고 거룩한 나라가 되도록 외부적인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넷째, 우리는 복음 전파가 잘 되어서 모든 사람이 구원 받는 나라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라(4절). ”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까 모든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과 화해하고 구원을 받기 위함입니다. 물론 여기서 모든 사람이라는 것은 만인구원론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만인구원론은 모든 사람이 하나도 빠짐없이 구원을 받는다는 말인데,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구원받기로 작정된 자만 구원받습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다는 말은 100% 모든 사람이 아니라, 구원받는데 있어서 인종이나 문화 사회적 어떤 차이나 차별이 없이 누구든지 구원받기 원하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기도합시다. 대통령을 비롯해서 행정부의 지도자와 국회와 사법부의 지도자와 경제와 사화 문화계의 모든 지도자들이 구원받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해답입니다. 지역과 계층을 망라해서 모든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되기를 원합니다. 진정한 화합과 통합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성령이 임해서 우리의 마음에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함이 있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 됩니다.
다음달에 전도 축제를 갖습니다. 언제나 우리의 기도 제목은 가족과 이웃과 친구들이 다 예수 믿고 구원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애국입니다. 불신자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사랑의 대상이고 전도의 대상으로 가까이 할 이웃으로 대합시다. 우리는 민족 복음화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의 분열과 다툼을 보면서 앞으로 통일을 이루어도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온 나라에 임하도록 기도합시다. 기독교 문화와 기독교 예술, 기독교 정치, 기독교 경제, 기독교 사상이 더욱 견고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기를 기도합시다. 기독교를 유일한 국교로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역할과 영향을 더욱 키워가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룹시다. 신자는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라를 위해 기도의 무릎을 꿇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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