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예수님을 자랑하는 나라
본문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과 신앙이 있습니다.
하나는 은혜를 알고 감사하고 감격하고 기뻐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하나는 은혜를 모르고 자기 자랑만 하고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참 신앙인은 은혜를 알고 그 은혜를 감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신앙이 없거나, 타락하거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은혜를 모르고 자기 힘을 자랑하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오늘 이 시간 이 자리에 앉은 여러분들은 마땅히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예수님을 자랑하고 살아가는 복 있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 주간 원치 않게 약 9일간 입원을 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알리지 않은 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제 병이 대단치 않기 때문이고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교인들에게 염려를 까치고 싶지 않은 단순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어렵게 살고 있는 여러분들을 아는데 저까지 여러분들에게 심려를 끼치면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였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병원에서 잠시 외출을 하여 얼굴을 비춘 것이었습니다. 또 부목사님의 부임일이고, 오후예배에는 엘림미션센타 개원예배로서, 제 일생에 이런 일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래서 그 역사적인 순간을 참여하고 싶어서 잠시 외출을 한 것이었습니다.
병원에 가던 날은 너무나 아파서 무슨 큰 병인가 걱정을 했지만 여러 검사를 거친 결과 큰 이상은 없고 전립선에 염증이 있는 것으로 통원치료하면 된다고 하니 여러분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그저 위해서 기도만 부탁드립니다.
또 알게 모르게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사랑해 주신 여러분들과 장로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어떤 분들은 찾아와서 하시는 말씀이‘왜 6인실에 계십니까, 시끄럽고 쉬지도 못하시게’하시지만 처음에는 3인실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우리 동네는 지역적 특성상 월세를 살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어려우면 집을 떠나야 하는데 그런 분들을 볼 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떠나면서 공장에 취직하거나 시골에서 농사를 짓거나 친정집으로 가는 교우들의 모습이 선하게 다가오는데 3인실에 있기가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6인실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물론 병원비도 덜 내야 겠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것은 병원비 자체가 아니라 그런 아픔을 같이 나누고저 하는 마음과 죄송스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6인실에 처음으로 있어보았는데 6인실이 아니라 10인실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간병인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낮에는 그래서 견디었는데 밤중에는 얼마나 코를 골아대는지 힘들었습니다.
어째든 병원생활을 했지만 배운 것도 많았습니다.
제 옆의 환자는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는 않아도 그런 대로 살고 교회도 나가고 일주일에 한번은 등산도 가고 운동도 좋아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장에 암이 발견되어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데 빨리 나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병실에 계신 분들이 모두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내일 일을 모르겠다’라는 것입니다. 거의 모든 환자들이 건강했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40년동안 살면서 감기한번 걸리지 않은 것을 자랑으로 삼았었는데 웬일인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잃어버린 땅을 찾기위해 4년 동안 재판을 하여 찾아서 너무나 좋아 집을 지을 계획을 다 세워놓았는데 집도 지어보지 못하고 병원에 누워 있다고 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내일 일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병의 고통이 찾아오니 사람들이 약해지고, 도저히 일어날 수 없다고 실망하고 낙심하는 모습을 볼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길이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자기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자기 행위를 자랑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병원에 있는 동안에‘M’이라고 하는 잡지를 보았는데 병원 의사에 관한 특집기사를 읽었습니다. 그 기사는 병을 고치는 의사도 병에 걸리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의사도 병에 걸린다고 합니다. 특히 암과 심장병에 많이 걸리는데 그 이유는 스트레스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의사들은 병을 어떻게 치료할까요 물론 치료를 하겠지만 그러나 남의 병을 잘 고치는 의사일수록 자신의 병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고 고치는 것을 노력하지 않고 어떻게하면 남은 시간을 잘 보낼까를 생각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고치다보니 현대의학으로 감당치 못하는 그 한계를 너무나 잘 아니까 노력조차 하지 않고 병에 걸린 그 시간부터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가는 그 시간까지 어떻게 하면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낼까, 가족들에게 피해주지 않고 나 자신을 위해 보람 있는 일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어떤 배우는 암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연기생활에 더 열심을 다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주의 사람들에게 힘들게 하지 않고 너무나 애쓰는 모습이 귀해서 TV에서는 특집방송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자기 자랑할 것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내일 일은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건강해도 자랑할 것 없습니다. 또한 내 자식을 키우면서 남의 자녀 흉볼 것 없습니다. 그 불행이 언제 나에게 닥쳐올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부부생활도 그렇습니다. 남의 남편을 보고‘어떻게 그런 남편과 살까’해서도 안됩니다. 내 남편과 내 아내가 어떻게 될런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것을 자랑할 것 아무 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일을 모르기 때문에 성경은 말씀하기를
“내일 일은 알지 못한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잠깐 있다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그렇습니다. 월드컵 축구가 멕시코에게 졌다고 비난하지 마십시오. 어떻게 다 이기고 삽니까 그리고 그 선수들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정말 그들의 아픔을 같이 아파하고 이해하고 비난하는 아까운 시간을 가치 있게 보내고 감사하게 보내고 여호와 하나님의 주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복된 시간인줄로 믿습니다.
이사야14장이나 에스겔 28장에 보면 천사장 루시퍼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천사는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돕는 여호와 하나님의 일군들, 여호와 하나님과 가까이 모시는 일군들이기에 천사만 생각하면 우리의 마음도 편안해 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천사의 대장 루시퍼는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기었는데 그의 부하들이 자신에게 절하고 높이는 모습을 보면서‘야 나도 높구나’하는 교만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 자신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의 종 임에도 불구하고, 종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스스로 교만해 졌습니다. 결국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를 내쫓으셨고 그는 사탄의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사탄의 종은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의 위치를 잃어버리고 교만이 가득한 사람이 사탄의 종노릇 하는 사람입니다.
죄는 무엇입니까 어거스틴은 자기 자랑하는 것을 죄의 본질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말합니다.
“그래서 죄인은 자신의 위치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인줄을 알지 못하고 오늘날 나에게 나타는 축복이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알지 못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저버리고 자기 자신을 높이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바로 죄다”
여러분 사람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우리에게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나니,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느니라”
우리는 다 죄인이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할 자입니다. 그것이 사람이고 인생이며 다 지옥에 갈 사람들인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천국도 가고,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도 되었고 성령 안에 살게 되었음을 기뻐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뱃사공이었고 또 한사람은 컴퓨터 전문가, 나머지 한 사람은 사업가였습니다.
한참 강을 건너가던 중 컴퓨터 전문가가 얘기합니다.
“뱃사공 할아버지, 제가 누군지 아십니까 21세기에 가장 유망한 업종을 가진 컴퓨터 전문가입니다. 사람들이 저를 얼마나 높이는지.. 그런데 할아버지는 컴퓨터를 아십니까”
뱃사공은
“아니오 저는 컴퓨터의‘컴’자도 모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컴퓨터 전문가는 말합니다.
“그래요 컴퓨터도 모르니 할아버지는 인생을 헛 사셨습니다. ”
이 대화를 듣고 옆에 있던 사업가가 얘기합니다.
“할아버지, 이 배로 사람들을 건너다 주고 얼마나 받습니까 하루에 몇 사람이나 건넙니까 집은 있습니까 돈은요”
이에“제가 무슨 돈이 있겠습니까 그저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을 감사하면서 사는 거지요 아무 것도 없습니다”라고 뱃사공은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업가도
“할아버지는 인생을 헛 사셨습니다. 돈도 없이 무슨 재미로 인생을 사십니까”라고 얘기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할아버지는 화가 났을까요, 안났을까요 할아버지는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럼 선생님들 한마디 물읍시다. 내가 이 배를 노저어 갈때마다 있는 일은 아니지만 바람이 세게 불면 배가 흔들려 빠집니다. 또 이 강의 물살은 얼마나 센지 웬만큼 수영해서는 살 아남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들은 수영할 줄 아시오”
그 두 사람은“수영할 줄 모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할아버지는
“당신들이야 말로 인생을 헛 살았소 자신의 생명하나도 지킬 줄 모르고,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이 세상의 컴퓨터를 알고, 우주를 알고 철학을 아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소”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 생명을 모르고, 내 자신이 어떠한 위치인줄도 모르고, 당장 죽을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을 헛 산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그 때를 대비해야 합니다. 남 얘기는 잘 알고 전 세계는 잘 아는데 정녕 알아야 할 자기 자신의 근본적인 문제를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탄은 오늘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모르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일을 할 줄은 아는데 언젠가는 일하지 못할 때가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니 IMF의 어려운 시기를 만나니 이러한 충격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서 거리를 방황하고 헤매는 이들이 많은 것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는 철인의 말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마귀는 어떠한 방법을 통해서라도 남에 관해서 얘기하고 남의 흉은 잘 보면서도 자기 자신의 죄인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일을 잘한다고 부축여 교만하게 하고 똑똑하다고 교만하게 만들어 자기 자신을 모르게 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우리자신을 알고 죄인임을 깨닫게 된다면‘어찌할꼬’하면서 예수님을 찾고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의 복을 누리며 살기 때문에 마귀는 절대로 나 자신을 모르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안타깝게 말씀합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템플던 상이라고 종교계의 노벨상과 같은 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경직 목사님께서 이 상을 받으셨습니다. 이분은 참 신앙인이며 존경하고 존경해도 부족함이 없으신 분입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이 그 상을 받고 나서 소감을 얘기한 것입니다.
“오늘 제가 이 상을 받은 것에 대해 축하예배를 드리지만 사실 저는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제게 넘치는 은혜를 베푸셔서 저같은 자에게 이러한 상을 주셨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고백합니다. 저는 일제시대에 일본신사에 참배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죄인에게 이런 상을 주는 것은 전적인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저는 상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부족을 아는 사람,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이 템플던 상을 받는 것입니다. 새벽기도를 열심히 참석하는 한 분이 계십니다.
그래서 늘 감사하게 여기는 데 그 분이 제게 말씀합니다.
“목사님 저도 새벽기도 참석하기 싫어할 때가 있습니다. 비가 많이 오거나 눈이 많이 오거나 내 몸이 아프면 가기 싫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새벽기도에 참석하는 것은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
여러분 눅18장에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가 나옵니다.
바리새인은 일주일에 한번씩 금식을 하고 하루에 세번 기도하며 십일조 생활을 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여 가르치는 귀한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귀합니까 이러한 것을 쉽게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바리새인이 잘못된 것이 있습니다. 자신의 그러한 모습을 기준으로 왜 당신은 그렇지 못하느냐고 비판하고 정죄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미 여호와 하나님의 상을 다 받았다고 책망 받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 시대는 너무나 많은 의인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의인들이 자신이 그렇게 살고, 감사하고 감격하고 살면 되는데 남에게 이렇게 살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정죄하고 책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부가 깨어지고 부모자식간에 깨어지는 것입니다. 자식을 다 키우면 그 수고가 그 자식 안에서 남아있는 것이지 그것은 자꾸 드러내게 되면 의인이 아닙니다.
주님 앞에 책망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로움 조차, 내가 한 수고 조차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마틴루터에게 어떤 사람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태초에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했는데 그 태초는 언제입니까 그리고 태초가 있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은 뭐하고 계셨습니까”
마틴루터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회초리를 준비해 두셨습니다. ”
즉 자기 자신만 잘 알라는 것입니다. 내가 죄인이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은혜 받지 못하면 살지 못할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너무나 교만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 하는 것입니다.
민20장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지도자 모세에게 목마르다고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물을 달라고 합니다.
그랬을때 모세가 그저 물을 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평한 것들을 다 참고 잘 이끌어 왔는데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모세가 화를 내며 이렇게 말합니다.
“패역한 너희들이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반석에서 물을 내는 것이 나, 모세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물을 내게 하신 것이지 어떻게 모세가 물을 내었습니까
그러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12절에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하는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이미 그때는 믿음이 없는 자 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를 자랑하고, 자신처럼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원망하는 사람, 내가 다 한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태까지 수고하고도 그 말 한마디에, 그 믿음 없는 것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지 못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한 그 것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비극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자기의 부족을 아는 사람을 여호와 하나님은 사랑하시고, 그런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범죄한 아담이 에덴동산에 숨었습니다.
자신을 찾으시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아담은 마치 숨바꼭질을 하는 것 같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저는 죄인입니다’라는 대답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숨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해결방법이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저는 모르지만 저는 죄인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링컨 대통령에게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당신의 성공비결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의 존경 받는 삶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링컨은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간단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너무나 많은 실패를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중에도 중요한 사실은 많은 실패를 경험할 때마다 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더 여호와 하나님이 내게 은혜 주시기를 사모했습니다. ”
남북전쟁 때의 유명한 일화가 있지 않습니까 기도하러 들어가는 링컨을 붙잡고 그의 부하가 말했습니다.
“각하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편이 되시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
그때 링컨은 그를 향해 정색을 하며 말했습니다.
“나는 여호와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 달라고 기도해 본적이 없습니다. 이시간 내가 기도하는 것은 내가 여호와 하나님편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
전쟁이라고 하는 삶과 죽음이 그 순간에도 내가 어떻게 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살까,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살까를 생각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 부족함을 깨닫는 사람이 참 신앙인이고 여호와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은혜를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 어거스틴에게 그리스도인의 덕목이 무엇이냐고 물었을때 그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겸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어떤 분이 그것에 대해서 해석하기를 첫째, 그리스도인은 겸손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고,
두번째도 겸손하라고 하는 것은 겸손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자신 이 도리어 겸손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조금만 있으면 어깨에 힘을 주거나 고개를 들는 악한 사람이니 겸손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번째 겸손은 겸손해 지기 힘쓸 때 다가오는 많은 일들을 은혜로 수용할 줄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겸손해 지기 위해서는 병들어도, 실패해도, 모욕을 당해도 좋다고 받아 드리는 것이 진정한 겸손인 것입니다.
1942년 11월 28일 미국 보스턴 시에서 보스턴 대학과 홀리 크로스 미식축구대회가 있었습니다.
보스턴 대학은 10전 전승을 한 팀이고 마지막 1승만 거두면 전승 우승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기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 대상인 홀리크로스 대학은 10전 4승 6패의 전적으로 누가 보아도 보스턴 대학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보스턴의 코치는 선수들에게 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지막까지 승리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오늘 우승을 한 후에 나이트 클럽에서 축하파티를 열것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안타깝게도 보스턴 대학은 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자만심을 가지지도 않았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기도까지 했는데 졌으니 그들은 실망이 더 컸습니다.
그 경기에서 졌지만 우승했으니 파티를 열자고 해도 선수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과연 여호와 하나님은 계신가’하는 섭섭한 마음에서였습니다.
그런데 그다음날 아침 신문 1면 기사에“코코넛 글러브의 비극”이라고 하는 사건이 소개되었습니다. 그것은 어젯밤 나이트 클럽에서 화재가 나서 491구의 시체를 발굴했다는 기사였습니다.
선수들은 생각했습니다. ‘만약에 내가 이겨서 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그들은 오히려 실패한 것, 진 것을 감사했습니다. 이것이 겸손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이러한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주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고난도 아버지의 뜻에 맡기는 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신앙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떠나라 하셨을때‘정든 고향에서 어떻게 떠납니까 여기서는 안됩니까’라고 한마디 묻지 않았습니다.
외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했을 때도‘다른 것은 안되겠습니까’라고 묻지 않고 그냥 순종했습니다.
모세의 신앙은 홍해바다를 건너라 했을 때 그저 건너갔습니다. 만약 홍해를 건너가기 위한‘조직위원회’를 만들었더라면 건너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눅5장의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밤새 고기를 한마리 잡지 못했습니다. 그물을 내리라는 예수님의 명령 한마디에 순종하니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주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약하면 약한대로 그저 순종하고 감사하고 겸손히 나아갈 때에 주님은 우리에게 복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몸을 위해서 세번이나 기도했지만 낫지 않았습니다. 갈4:14에 보면 이러한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너희가 이것을 업신여기지 아니하며”
성서학자들은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갈라디아 교회에서 사도바울이 설교하던 중 간질병으로 쓰러져서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그를 업신여길 수 있는데도 사도바울은
“나는 이 병을 위해서 세번씩이나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내게 주어지는 실패와 아픔과 고통 조차도 겸손하게 수용하고 이것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아는 성도가 참 성도인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어려움 중에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야 복 있는 성도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더 나아가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가운데 최고의 선물은,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예수 믿는 사람을 제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예수 믿는 사람에게 천국가게 하고 예수 믿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수억 원으로 살수 있습니까 지식으로 이것을 갖을 수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신분이 달라 졌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젖먹이는 어미가 젖먹이는 어린 아이를 잊는다 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된 여러분과 나를 절대로 잊지 않으시고 은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세상의 종말이 곧 닥쳐 올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을 천국으로 인도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다 떠난다고 할지라도 주의 성령만은 나와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고 은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다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내일 일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상황 속에서도 어떠한 일이 닥치든지 감사로 알고 은혜로 받으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뻐 하시고 그런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어려움을 더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예수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게 주신 은혜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래도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이다, 내가 이래도 천국에 가며 내가 이런 실패를 해도 성령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그리고 나는 아브라함처럼, 모세처럼, 요셉처럼 나는 승리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생각만 해도 멋있지 않습니까
제가 병원에 있을 때 어느 할머니가 무슨 쪽지 하나, 엉망으로 낙서한 종이 하나를 붙였습니다. 그래서 그게 뭔지 물었더니 자신의 손자가 2살도 채 안되었는데 자신의 얼굴을 그려 놓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볼때는 얼굴의 생김새, 눈,코, 입은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정말 버려도 아깝지 않을만한 종이 쪽지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좋으셨던지 열심히 보셨습니다.
저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 할머니 만은 이해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손자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생각할 것이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서 백일 기도도, 수억 원의 헌금도 못했고 아무 것도 내어 놓을 것이 없지만, 손자가 할머니의 마음을 기뻐해 드린 것은 수억 원의 돈이 아니라 할머니를 늘 생각하고, 낙서하는 듯 할머니의 모습을 그린 그 모습이 할머니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처럼 우리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내어 놓을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심을 알고, 그 여호와 하나님이 내게 은혜인줄로 알고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예수님을 자랑하고 감사하고 힘쓰며 살아갈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IMF를 극복할 뿐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참된 기쁨을 누리면서 살게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 민족이, 우리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인 예수를 자랑하고 승리하는 인생살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는 은혜를 알고 감사하고 감격하고 기뻐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하나는 은혜를 모르고 자기 자랑만 하고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참 신앙인은 은혜를 알고 그 은혜를 감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신앙이 없거나, 타락하거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은혜를 모르고 자기 힘을 자랑하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오늘 이 시간 이 자리에 앉은 여러분들은 마땅히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예수님을 자랑하고 살아가는 복 있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 주간 원치 않게 약 9일간 입원을 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알리지 않은 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제 병이 대단치 않기 때문이고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교인들에게 염려를 까치고 싶지 않은 단순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어렵게 살고 있는 여러분들을 아는데 저까지 여러분들에게 심려를 끼치면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였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병원에서 잠시 외출을 하여 얼굴을 비춘 것이었습니다. 또 부목사님의 부임일이고, 오후예배에는 엘림미션센타 개원예배로서, 제 일생에 이런 일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래서 그 역사적인 순간을 참여하고 싶어서 잠시 외출을 한 것이었습니다.
병원에 가던 날은 너무나 아파서 무슨 큰 병인가 걱정을 했지만 여러 검사를 거친 결과 큰 이상은 없고 전립선에 염증이 있는 것으로 통원치료하면 된다고 하니 여러분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그저 위해서 기도만 부탁드립니다.
또 알게 모르게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사랑해 주신 여러분들과 장로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어떤 분들은 찾아와서 하시는 말씀이‘왜 6인실에 계십니까, 시끄럽고 쉬지도 못하시게’하시지만 처음에는 3인실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우리 동네는 지역적 특성상 월세를 살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어려우면 집을 떠나야 하는데 그런 분들을 볼 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떠나면서 공장에 취직하거나 시골에서 농사를 짓거나 친정집으로 가는 교우들의 모습이 선하게 다가오는데 3인실에 있기가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6인실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물론 병원비도 덜 내야 겠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것은 병원비 자체가 아니라 그런 아픔을 같이 나누고저 하는 마음과 죄송스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6인실에 처음으로 있어보았는데 6인실이 아니라 10인실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간병인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낮에는 그래서 견디었는데 밤중에는 얼마나 코를 골아대는지 힘들었습니다.
어째든 병원생활을 했지만 배운 것도 많았습니다.
제 옆의 환자는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는 않아도 그런 대로 살고 교회도 나가고 일주일에 한번은 등산도 가고 운동도 좋아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장에 암이 발견되어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데 빨리 나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병실에 계신 분들이 모두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내일 일을 모르겠다’라는 것입니다. 거의 모든 환자들이 건강했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40년동안 살면서 감기한번 걸리지 않은 것을 자랑으로 삼았었는데 웬일인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잃어버린 땅을 찾기위해 4년 동안 재판을 하여 찾아서 너무나 좋아 집을 지을 계획을 다 세워놓았는데 집도 지어보지 못하고 병원에 누워 있다고 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내일 일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병의 고통이 찾아오니 사람들이 약해지고, 도저히 일어날 수 없다고 실망하고 낙심하는 모습을 볼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길이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자기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자기 행위를 자랑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병원에 있는 동안에‘M’이라고 하는 잡지를 보았는데 병원 의사에 관한 특집기사를 읽었습니다. 그 기사는 병을 고치는 의사도 병에 걸리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의사도 병에 걸린다고 합니다. 특히 암과 심장병에 많이 걸리는데 그 이유는 스트레스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의사들은 병을 어떻게 치료할까요 물론 치료를 하겠지만 그러나 남의 병을 잘 고치는 의사일수록 자신의 병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고 고치는 것을 노력하지 않고 어떻게하면 남은 시간을 잘 보낼까를 생각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고치다보니 현대의학으로 감당치 못하는 그 한계를 너무나 잘 아니까 노력조차 하지 않고 병에 걸린 그 시간부터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가는 그 시간까지 어떻게 하면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낼까, 가족들에게 피해주지 않고 나 자신을 위해 보람 있는 일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어떤 배우는 암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연기생활에 더 열심을 다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주의 사람들에게 힘들게 하지 않고 너무나 애쓰는 모습이 귀해서 TV에서는 특집방송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자기 자랑할 것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내일 일은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건강해도 자랑할 것 없습니다. 또한 내 자식을 키우면서 남의 자녀 흉볼 것 없습니다. 그 불행이 언제 나에게 닥쳐올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부부생활도 그렇습니다. 남의 남편을 보고‘어떻게 그런 남편과 살까’해서도 안됩니다. 내 남편과 내 아내가 어떻게 될런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것을 자랑할 것 아무 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일을 모르기 때문에 성경은 말씀하기를
“내일 일은 알지 못한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잠깐 있다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그렇습니다. 월드컵 축구가 멕시코에게 졌다고 비난하지 마십시오. 어떻게 다 이기고 삽니까 그리고 그 선수들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정말 그들의 아픔을 같이 아파하고 이해하고 비난하는 아까운 시간을 가치 있게 보내고 감사하게 보내고 여호와 하나님의 주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복된 시간인줄로 믿습니다.
이사야14장이나 에스겔 28장에 보면 천사장 루시퍼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천사는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돕는 여호와 하나님의 일군들, 여호와 하나님과 가까이 모시는 일군들이기에 천사만 생각하면 우리의 마음도 편안해 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천사의 대장 루시퍼는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기었는데 그의 부하들이 자신에게 절하고 높이는 모습을 보면서‘야 나도 높구나’하는 교만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 자신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의 종 임에도 불구하고, 종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스스로 교만해 졌습니다. 결국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를 내쫓으셨고 그는 사탄의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사탄의 종은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의 위치를 잃어버리고 교만이 가득한 사람이 사탄의 종노릇 하는 사람입니다.
죄는 무엇입니까 어거스틴은 자기 자랑하는 것을 죄의 본질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말합니다.
“그래서 죄인은 자신의 위치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인줄을 알지 못하고 오늘날 나에게 나타는 축복이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알지 못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저버리고 자기 자신을 높이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바로 죄다”
여러분 사람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우리에게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나니,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느니라”
우리는 다 죄인이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할 자입니다. 그것이 사람이고 인생이며 다 지옥에 갈 사람들인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천국도 가고,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도 되었고 성령 안에 살게 되었음을 기뻐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뱃사공이었고 또 한사람은 컴퓨터 전문가, 나머지 한 사람은 사업가였습니다.
한참 강을 건너가던 중 컴퓨터 전문가가 얘기합니다.
“뱃사공 할아버지, 제가 누군지 아십니까 21세기에 가장 유망한 업종을 가진 컴퓨터 전문가입니다. 사람들이 저를 얼마나 높이는지.. 그런데 할아버지는 컴퓨터를 아십니까”
뱃사공은
“아니오 저는 컴퓨터의‘컴’자도 모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컴퓨터 전문가는 말합니다.
“그래요 컴퓨터도 모르니 할아버지는 인생을 헛 사셨습니다. ”
이 대화를 듣고 옆에 있던 사업가가 얘기합니다.
“할아버지, 이 배로 사람들을 건너다 주고 얼마나 받습니까 하루에 몇 사람이나 건넙니까 집은 있습니까 돈은요”
이에“제가 무슨 돈이 있겠습니까 그저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을 감사하면서 사는 거지요 아무 것도 없습니다”라고 뱃사공은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업가도
“할아버지는 인생을 헛 사셨습니다. 돈도 없이 무슨 재미로 인생을 사십니까”라고 얘기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할아버지는 화가 났을까요, 안났을까요 할아버지는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럼 선생님들 한마디 물읍시다. 내가 이 배를 노저어 갈때마다 있는 일은 아니지만 바람이 세게 불면 배가 흔들려 빠집니다. 또 이 강의 물살은 얼마나 센지 웬만큼 수영해서는 살 아남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들은 수영할 줄 아시오”
그 두 사람은“수영할 줄 모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할아버지는
“당신들이야 말로 인생을 헛 살았소 자신의 생명하나도 지킬 줄 모르고,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이 세상의 컴퓨터를 알고, 우주를 알고 철학을 아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소”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 생명을 모르고, 내 자신이 어떠한 위치인줄도 모르고, 당장 죽을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을 헛 산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그 때를 대비해야 합니다. 남 얘기는 잘 알고 전 세계는 잘 아는데 정녕 알아야 할 자기 자신의 근본적인 문제를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탄은 오늘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모르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일을 할 줄은 아는데 언젠가는 일하지 못할 때가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니 IMF의 어려운 시기를 만나니 이러한 충격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서 거리를 방황하고 헤매는 이들이 많은 것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는 철인의 말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마귀는 어떠한 방법을 통해서라도 남에 관해서 얘기하고 남의 흉은 잘 보면서도 자기 자신의 죄인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일을 잘한다고 부축여 교만하게 하고 똑똑하다고 교만하게 만들어 자기 자신을 모르게 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우리자신을 알고 죄인임을 깨닫게 된다면‘어찌할꼬’하면서 예수님을 찾고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의 복을 누리며 살기 때문에 마귀는 절대로 나 자신을 모르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안타깝게 말씀합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템플던 상이라고 종교계의 노벨상과 같은 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경직 목사님께서 이 상을 받으셨습니다. 이분은 참 신앙인이며 존경하고 존경해도 부족함이 없으신 분입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이 그 상을 받고 나서 소감을 얘기한 것입니다.
“오늘 제가 이 상을 받은 것에 대해 축하예배를 드리지만 사실 저는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제게 넘치는 은혜를 베푸셔서 저같은 자에게 이러한 상을 주셨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고백합니다. 저는 일제시대에 일본신사에 참배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죄인에게 이런 상을 주는 것은 전적인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저는 상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부족을 아는 사람,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이 템플던 상을 받는 것입니다. 새벽기도를 열심히 참석하는 한 분이 계십니다.
그래서 늘 감사하게 여기는 데 그 분이 제게 말씀합니다.
“목사님 저도 새벽기도 참석하기 싫어할 때가 있습니다. 비가 많이 오거나 눈이 많이 오거나 내 몸이 아프면 가기 싫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새벽기도에 참석하는 것은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
여러분 눅18장에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가 나옵니다.
바리새인은 일주일에 한번씩 금식을 하고 하루에 세번 기도하며 십일조 생활을 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여 가르치는 귀한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귀합니까 이러한 것을 쉽게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바리새인이 잘못된 것이 있습니다. 자신의 그러한 모습을 기준으로 왜 당신은 그렇지 못하느냐고 비판하고 정죄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미 여호와 하나님의 상을 다 받았다고 책망 받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 시대는 너무나 많은 의인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의인들이 자신이 그렇게 살고, 감사하고 감격하고 살면 되는데 남에게 이렇게 살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정죄하고 책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부가 깨어지고 부모자식간에 깨어지는 것입니다. 자식을 다 키우면 그 수고가 그 자식 안에서 남아있는 것이지 그것은 자꾸 드러내게 되면 의인이 아닙니다.
주님 앞에 책망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로움 조차, 내가 한 수고 조차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마틴루터에게 어떤 사람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태초에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했는데 그 태초는 언제입니까 그리고 태초가 있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은 뭐하고 계셨습니까”
마틴루터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회초리를 준비해 두셨습니다. ”
즉 자기 자신만 잘 알라는 것입니다. 내가 죄인이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은혜 받지 못하면 살지 못할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너무나 교만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 하는 것입니다.
민20장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지도자 모세에게 목마르다고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물을 달라고 합니다.
그랬을때 모세가 그저 물을 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평한 것들을 다 참고 잘 이끌어 왔는데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모세가 화를 내며 이렇게 말합니다.
“패역한 너희들이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반석에서 물을 내는 것이 나, 모세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물을 내게 하신 것이지 어떻게 모세가 물을 내었습니까
그러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12절에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하는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이미 그때는 믿음이 없는 자 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를 자랑하고, 자신처럼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원망하는 사람, 내가 다 한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태까지 수고하고도 그 말 한마디에, 그 믿음 없는 것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지 못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한 그 것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비극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자기의 부족을 아는 사람을 여호와 하나님은 사랑하시고, 그런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범죄한 아담이 에덴동산에 숨었습니다.
자신을 찾으시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아담은 마치 숨바꼭질을 하는 것 같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저는 죄인입니다’라는 대답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숨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해결방법이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저는 모르지만 저는 죄인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링컨 대통령에게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당신의 성공비결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의 존경 받는 삶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링컨은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간단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너무나 많은 실패를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중에도 중요한 사실은 많은 실패를 경험할 때마다 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더 여호와 하나님이 내게 은혜 주시기를 사모했습니다. ”
남북전쟁 때의 유명한 일화가 있지 않습니까 기도하러 들어가는 링컨을 붙잡고 그의 부하가 말했습니다.
“각하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편이 되시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
그때 링컨은 그를 향해 정색을 하며 말했습니다.
“나는 여호와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 달라고 기도해 본적이 없습니다. 이시간 내가 기도하는 것은 내가 여호와 하나님편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
전쟁이라고 하는 삶과 죽음이 그 순간에도 내가 어떻게 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살까,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살까를 생각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 부족함을 깨닫는 사람이 참 신앙인이고 여호와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은혜를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 어거스틴에게 그리스도인의 덕목이 무엇이냐고 물었을때 그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겸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어떤 분이 그것에 대해서 해석하기를 첫째, 그리스도인은 겸손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고,
두번째도 겸손하라고 하는 것은 겸손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자신 이 도리어 겸손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조금만 있으면 어깨에 힘을 주거나 고개를 들는 악한 사람이니 겸손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번째 겸손은 겸손해 지기 힘쓸 때 다가오는 많은 일들을 은혜로 수용할 줄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겸손해 지기 위해서는 병들어도, 실패해도, 모욕을 당해도 좋다고 받아 드리는 것이 진정한 겸손인 것입니다.
1942년 11월 28일 미국 보스턴 시에서 보스턴 대학과 홀리 크로스 미식축구대회가 있었습니다.
보스턴 대학은 10전 전승을 한 팀이고 마지막 1승만 거두면 전승 우승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기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 대상인 홀리크로스 대학은 10전 4승 6패의 전적으로 누가 보아도 보스턴 대학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보스턴의 코치는 선수들에게 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지막까지 승리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오늘 우승을 한 후에 나이트 클럽에서 축하파티를 열것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안타깝게도 보스턴 대학은 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자만심을 가지지도 않았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기도까지 했는데 졌으니 그들은 실망이 더 컸습니다.
그 경기에서 졌지만 우승했으니 파티를 열자고 해도 선수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과연 여호와 하나님은 계신가’하는 섭섭한 마음에서였습니다.
그런데 그다음날 아침 신문 1면 기사에“코코넛 글러브의 비극”이라고 하는 사건이 소개되었습니다. 그것은 어젯밤 나이트 클럽에서 화재가 나서 491구의 시체를 발굴했다는 기사였습니다.
선수들은 생각했습니다. ‘만약에 내가 이겨서 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그들은 오히려 실패한 것, 진 것을 감사했습니다. 이것이 겸손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이러한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주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고난도 아버지의 뜻에 맡기는 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신앙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떠나라 하셨을때‘정든 고향에서 어떻게 떠납니까 여기서는 안됩니까’라고 한마디 묻지 않았습니다.
외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했을 때도‘다른 것은 안되겠습니까’라고 묻지 않고 그냥 순종했습니다.
모세의 신앙은 홍해바다를 건너라 했을 때 그저 건너갔습니다. 만약 홍해를 건너가기 위한‘조직위원회’를 만들었더라면 건너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눅5장의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밤새 고기를 한마리 잡지 못했습니다. 그물을 내리라는 예수님의 명령 한마디에 순종하니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주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약하면 약한대로 그저 순종하고 감사하고 겸손히 나아갈 때에 주님은 우리에게 복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몸을 위해서 세번이나 기도했지만 낫지 않았습니다. 갈4:14에 보면 이러한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너희가 이것을 업신여기지 아니하며”
성서학자들은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갈라디아 교회에서 사도바울이 설교하던 중 간질병으로 쓰러져서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그를 업신여길 수 있는데도 사도바울은
“나는 이 병을 위해서 세번씩이나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내게 주어지는 실패와 아픔과 고통 조차도 겸손하게 수용하고 이것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아는 성도가 참 성도인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어려움 중에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야 복 있는 성도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더 나아가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가운데 최고의 선물은,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예수 믿는 사람을 제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예수 믿는 사람에게 천국가게 하고 예수 믿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수억 원으로 살수 있습니까 지식으로 이것을 갖을 수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신분이 달라 졌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젖먹이는 어미가 젖먹이는 어린 아이를 잊는다 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된 여러분과 나를 절대로 잊지 않으시고 은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세상의 종말이 곧 닥쳐 올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을 천국으로 인도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다 떠난다고 할지라도 주의 성령만은 나와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고 은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다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내일 일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상황 속에서도 어떠한 일이 닥치든지 감사로 알고 은혜로 받으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뻐 하시고 그런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어려움을 더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예수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게 주신 은혜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래도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이다, 내가 이래도 천국에 가며 내가 이런 실패를 해도 성령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그리고 나는 아브라함처럼, 모세처럼, 요셉처럼 나는 승리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생각만 해도 멋있지 않습니까
제가 병원에 있을 때 어느 할머니가 무슨 쪽지 하나, 엉망으로 낙서한 종이 하나를 붙였습니다. 그래서 그게 뭔지 물었더니 자신의 손자가 2살도 채 안되었는데 자신의 얼굴을 그려 놓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볼때는 얼굴의 생김새, 눈,코, 입은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정말 버려도 아깝지 않을만한 종이 쪽지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좋으셨던지 열심히 보셨습니다.
저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 할머니 만은 이해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손자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생각할 것이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서 백일 기도도, 수억 원의 헌금도 못했고 아무 것도 내어 놓을 것이 없지만, 손자가 할머니의 마음을 기뻐해 드린 것은 수억 원의 돈이 아니라 할머니를 늘 생각하고, 낙서하는 듯 할머니의 모습을 그린 그 모습이 할머니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처럼 우리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내어 놓을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심을 알고, 그 여호와 하나님이 내게 은혜인줄로 알고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예수님을 자랑하고 감사하고 힘쓰며 살아갈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IMF를 극복할 뿐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참된 기쁨을 누리면서 살게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 민족이, 우리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인 예수를 자랑하고 승리하는 인생살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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