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성도의 국가관
본문
사도 바울은 로마서 3부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근거하여 구원받은 신자의 삶의 모습 또는 유형이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였습니다. 구원받은 신자의 삶이 나타나는 영역에 따라 설명하였는데, 동심원으로 설명하면 맨 안쪽의 원이 여호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인데, 이 관계는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새로운 관계이며, 그 다음은 이러한 관계가 교회에 표현되고, 다음은 사회에서 어떤 삶의 모습으로 나타나야 하는 지를 설명하였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14-21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근거하여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사회 속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설명하였습니다. 첫 번째로는 핍박하는 자들을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며, 두 번째로는 다른 사람들의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며, 세 번째로는 다른 사람들과 의좋게, 서로 하모니(harmony)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로는 악한 사람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인데, 부정적인(negative) 명령으로 보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고, 적극적인(positive) 명령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삶의 모습들은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의 삶의 유형과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사는 것이 우리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는 것이고, 여호와 하나님을 증거하는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여호와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근거하여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이 교회와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왔습니다. 이제 바울은 국가의 국민으로서 어떻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답게 살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도들이 국가의 국민으로 살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만약에 성도가 국가에 대하여 항상 부정적이고 세금을 내지도 않고, 여러 가지 부정한 방법으로 세금을 속인다면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과 존재를 알 수 있을까요 또한 국가가 악을 행하고 법 적용의 형평성을 잃어버릴 때 성도가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다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이것은 분명 아닙니다. 이 본문의 주제는 국가는 선을 행하기 위해 여호와 하나님이 세우신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이기 때문에 그 권위에 순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잘 이해하기 위하여 첫 번째로는 교회와 국가의 관계문제를, 두 번째로는 국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관점이 무엇인지, 세 번째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국가제도를 주신 목적이 무엇이며, 네 번째로는 국가에 대한 신자의 태도가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교회와 국가의 관계
역사적으로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오랫동안 논란을 불러일으킨 주제입니다. 이것은 교회와 국가의 두 관계를 정의하는 일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와 국가간의 관계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네 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국가가 교회를 통제한다는 국가우선론입니다. 독일의 히틀러가 이 이론을 잘 이용하였습니다. 이 이론이 얼마나 위험한 이론인지도 모르면서 국가가 있어야 교회도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망언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이와는 반대로 교회가 국가를 통제한다는 신정론입니다. 대표적으로 중세시대의 교회와 국가간의 관계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A. D. 800년에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가 이슬람 제국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에 세력을 얻어 교황 레오 3세에 의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의 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샤를마뉴의 대관식으로 말미암아 교황들은 자기 마음대로 세상의 왕들을 세우거나 폐위시킬 수 있는 것처럼 인식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때부터 교회와 국가간의 관계는 서로 갈등을 빚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로는 국가가 교회에 호의를 베풀고, 교회는 국가의 보호를 받기 위해 국가의 편의를 도모해 주는 콘스탄틴주의가 있습니다. 이것은 국가우선론과 신정론의 타협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네 번째로는 교회와 국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독특한 책임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동반자라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 이론 가운데 네 번째 가장 성경에 부합하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개혁주의 교회는 국가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사회의 필요를 위해 주신 제도로 인식하고, 서로의 고유한 책임을 인정하고 서로 건설적으로 협력하는 관계로 인식해 왔습니다.
교회와 국가는 근본적으로 다른 역할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가라고 할 때 근본적으로 사회의 질서를 보호하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의 타락 이후에 필요악으로 주신 공동체입니다. 역사상 항상 국가는 권력과 같은 의미로 이해해 왔습니다. 그래서 국가의 권력은 본질적으로 타락하였기 때문에 국가는 필요악이라는 입장을 지금까지 견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구원받은 성도들은 어떻게 국가에 소속된 백성으로 살면서 어떻게 봉사하며 살 수 있을까요
2. 국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관점
성도들이 어떻게 "국가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할 수 있느냐"는 문제는 "국가가 무엇인가"는 국가관 문제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국가가 무엇이며, 그 기능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이해할 때 어떻게 봉사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결정합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국가에 대하여 가져야 할 기본적인 삶의 모습으로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롬13:1)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를 말하기를 "권세는 여호와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여호와 하나님이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롬13:1-2)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국가의 권위에 순종해야 할 이유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권세를 주셨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근본적으로 국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도라는 것입니다. 국가의 권위를 여호와 하나님이 주셨다고 하는 이러한 사상은 이미 구약성경에서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렘27:5-6; 단2:21; 4:17, 25, 32; 5:21; 7:27).
그러나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국가제도를 주셨다고 해서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는 지배와 복종의 면에서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국가의 권위는 "봉사"라고 하는 면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본문에서 잘 표현된 바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국가에 권위를 주시고 공직자를 세우신 목적은 여호와 하나님이 사자가 되어 국민의 복리를 위하여 일하는 자로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상은 로마서 13:4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또한 바울은 국가에 대한 중요한 한 관점을 보여주고 있는데, 국가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로서 선을 이루는 자"(롬13:4)라는 것입니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어떤 형태의 정부가 좋으나, 예를 들어 정부의 크기는 얼마만한 것이 이상적이냐, 민주적인 정부가 좋으냐, 아니면 공산주의 정부가 좋으냐 하는 등등의 논쟁들이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필요한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서는 이구동성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권력이 잘못 행사되는 사례들이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국가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국가의 보호가 없으면 모든 사람은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어 약한 자는 먹히고, 강한 자는 먹는 약육강식의 법칙만이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외에도 국가는 개인의 힘과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하므로 선을 도모합니다. 우리가 세금을 내는 이유도 정부가 "여호와 하나님이 일군이 되어 선한 일에 힘쓰는 것"(롬13:6)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위생적인 식수를 공급하는 일, 쓰레기 처리, 학교 교육, 공정한 법집행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국가의 권력은 타락한 이후에 생겨났다고 할지라도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어느 정도 억제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하는 중요한 제도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국가를 구원의 은총인 특별은총과 구분하여 일반은총으로 보는 것입니다.
특히 바울이 로마서 13:2에서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자취하리라. "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국가제도를 주셨고,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국가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로서 봉사의 일을 수행해야 합니다.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 중요한 사상은 국가의 권위가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위임되었다고 하는 사실과, 국가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된 사항을 처리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국가의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을 거스리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한가지 기억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권면하고 있는 내용이 무한정한 복종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정부의 명령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 반대된다면 복종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사상은 구약에서 분명한 실례들을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다니엘서에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의 경우가 그러합니다(단1, 3, 6장). 그들은 왕의 금신상에 절하고 경배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왕의 명령이나 법령이 내려졌다고 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일에는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이 점은 정말 중요합니다. 국가에 대하여 맹목적이고 무조건적인 순종을 바치는 일은 우상숭배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절해야 합니다. 초대교회에서도 로마 정부는 가이사를 "주"로 부르기를 요구하였으나 거절하였습니다. 섬김의 대상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 반대될 때는 국가의 명령이라고 할지라도 거절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본문에서 볼 수 있는 국가의 권위라고 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대행자)로서 백성들의 유익을 위하여 선행을 행하는 자에게 상을 주며,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그 악행을 처벌하는 봉사의 의무를 수행하는 국가의 권위를 말합니다. 국가나 국가의 권위를 말할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권세를 주셨다는 의미는 여호와 하나님의 위치에서 절대 권력을 행사하라는 말은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도록 하기 위하여 권위를 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국가에 관하여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관점입니다.
3. 국가에 권위를 주신 목적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왜 칼로 무장하여 권위를 주셨을까요 그것은 이 본문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선을 행한 자에게 보상하여 선을 증진시키고, 또한 악을 행한 자에게 그것을 처벌하여 악을 억제하기 위함입니다. 선을 행한 자에게 칭찬한다고 하는 것은 국가가 선한 일들, 즉 평화를 수호하는 것, 법률과 질서를 유지하는 것, 인권을 보호하는 것, 정의를 증진시키고 궁핍한 자를 돌아보는 것 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국가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법에 따라 처벌해야 합니다(롬13:4). 이 두 가지 기능을 국가가 함께 가지고 있으나 현대 국가는 전자보다 후자에 더 치중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상에 대하여 사도 베드로는 특히 로마 정부의 극심한 핍박 속에서도 성도들에게 국가에 대하여 가지는 태도에 대하여 말하기를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벧전2:13-14)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고백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3장, "국가의 위정자에 관하여" 제1항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국가의 권위를 세우신 분명한 뜻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온 세계의 주가 되시고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영광과 백성의 유익을 위하여 위정자들을 자기 밑에 세우사 백성들을 다스리도록 하셨다. 그리고 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칼의 힘으로 무장시키셔서 선한 자들을 보호하고 격려하며 행악자들을 처벌하도록 하셨다. "
여호와 하나님께서 국가가 권위를 시행하는 수단으로 칼로 무장시키셨습니다. 로마서 13:4에 보면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칼"은 당시의 문화권에서 아주 중요한 무기였습니다. 이것은 오늘날로 말하면 공권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국가에 공권력을 주신 목적은 죄가 없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죄가 있는 사람들을 처벌하여 백성들이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세계에서 특히 우리 나라의 유신정권과 5, 6공화국을 거치면서 국가의 공권력이 남용되어 질서를 유지하고 선한 자들을 보호하고 악을 행하는 자들을 처벌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것이 아니고 그 반대로 정권유지를 위하여 무분별하게 공권력을 남용한 선례들을 목격한 바가 있습니다. 이것은 정당한 권위의 행사가 아니라 폭력입니다. 그래서 국가를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권위를 바르게 사용하여 본래 목적에 맞게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과 백성들의 유익을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공권력을 사용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4. 국가에 대한 신자의 태도
그러면 이제 마지막으로 이러한 국가제도에 대하여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하여야 하겠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국가제도를 세우셨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과 백성들의 유익을 위하여 권위를 주셨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러한 국가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해야 되겠습니까 이러한 국가의 본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면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로서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를 행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는 그 권위에 굴복해야 합니다(롬13:1). 만약에 거기에 대하여 불복한다면 여호와 하나님을 거스리는 것이며 그의 심판을 초래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굴복한다고 하는 것은 이 본문에 기록된 대로 세금을 바쳐야 하고, 마땅히 그들을 존경해야 합니다(롬13:7). 뿐만 아니라 통치자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딤전2:1-2). 국가의 권위와 사역이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수행하는 것임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정하신 국가에 봉사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에 국가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악용하여 악을 증진하고 국가 본래의 기능을 다하지 못할 때,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아니라 마귀의 사자가 되어 일할 때는 그때에는 순종의 의무가 없습니다(출1:15-21; 단3:1-18; 6:1-14; 행4:13-20). 국가의 권위를 존중은 하되 우리는 비판하고 저항할 수도 있습니다. 이 원리는 아주 분명합니다. 국가의 권위는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것임으로 우리가 국가에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국가의 권위에 불순종하게 되는 때는 국가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을 명한다거나, 여호와 하나님이 명하신 것을 금한다면 사도들이 공회에서 분명하게 말하였듯이 "사람보다 여호와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한"(행5:29)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국가와 그 권위에 대한 분명한 관점을 가지게 될 때 국가에 대하여 합당한 봉사를 하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신자들은 국가가 여호와 하나님이 정하신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이 정하신 책임과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세금을 내는 일에서부터 국민의 의무를 다하고 격려하며, 때로는 그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지 감시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국가가 법과 정의를 무시한다면 우리는 그 잘못을 지적하고 정의를 회복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로서 국민을 위해 봉사하며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벌을 주고, 선을 행하는 자에게 상을 주는 공의로운 정부가 되도록 기도하고 감시하는 것이 국가를 보는 우리의 입장이며,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방법입니다. 동시에 이 세상의 국가에 살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입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여호와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근거하여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이 교회와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왔습니다. 이제 바울은 국가의 국민으로서 어떻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답게 살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도들이 국가의 국민으로 살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만약에 성도가 국가에 대하여 항상 부정적이고 세금을 내지도 않고, 여러 가지 부정한 방법으로 세금을 속인다면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과 존재를 알 수 있을까요 또한 국가가 악을 행하고 법 적용의 형평성을 잃어버릴 때 성도가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다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이것은 분명 아닙니다. 이 본문의 주제는 국가는 선을 행하기 위해 여호와 하나님이 세우신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이기 때문에 그 권위에 순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잘 이해하기 위하여 첫 번째로는 교회와 국가의 관계문제를, 두 번째로는 국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관점이 무엇인지, 세 번째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국가제도를 주신 목적이 무엇이며, 네 번째로는 국가에 대한 신자의 태도가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교회와 국가의 관계
역사적으로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오랫동안 논란을 불러일으킨 주제입니다. 이것은 교회와 국가의 두 관계를 정의하는 일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와 국가간의 관계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네 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국가가 교회를 통제한다는 국가우선론입니다. 독일의 히틀러가 이 이론을 잘 이용하였습니다. 이 이론이 얼마나 위험한 이론인지도 모르면서 국가가 있어야 교회도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망언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이와는 반대로 교회가 국가를 통제한다는 신정론입니다. 대표적으로 중세시대의 교회와 국가간의 관계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A. D. 800년에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가 이슬람 제국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에 세력을 얻어 교황 레오 3세에 의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의 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샤를마뉴의 대관식으로 말미암아 교황들은 자기 마음대로 세상의 왕들을 세우거나 폐위시킬 수 있는 것처럼 인식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때부터 교회와 국가간의 관계는 서로 갈등을 빚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로는 국가가 교회에 호의를 베풀고, 교회는 국가의 보호를 받기 위해 국가의 편의를 도모해 주는 콘스탄틴주의가 있습니다. 이것은 국가우선론과 신정론의 타협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네 번째로는 교회와 국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독특한 책임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동반자라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 이론 가운데 네 번째 가장 성경에 부합하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개혁주의 교회는 국가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사회의 필요를 위해 주신 제도로 인식하고, 서로의 고유한 책임을 인정하고 서로 건설적으로 협력하는 관계로 인식해 왔습니다.
교회와 국가는 근본적으로 다른 역할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가라고 할 때 근본적으로 사회의 질서를 보호하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의 타락 이후에 필요악으로 주신 공동체입니다. 역사상 항상 국가는 권력과 같은 의미로 이해해 왔습니다. 그래서 국가의 권력은 본질적으로 타락하였기 때문에 국가는 필요악이라는 입장을 지금까지 견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구원받은 성도들은 어떻게 국가에 소속된 백성으로 살면서 어떻게 봉사하며 살 수 있을까요
2. 국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관점
성도들이 어떻게 "국가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할 수 있느냐"는 문제는 "국가가 무엇인가"는 국가관 문제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국가가 무엇이며, 그 기능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이해할 때 어떻게 봉사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결정합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국가에 대하여 가져야 할 기본적인 삶의 모습으로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롬13:1)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를 말하기를 "권세는 여호와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여호와 하나님이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롬13:1-2)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국가의 권위에 순종해야 할 이유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권세를 주셨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근본적으로 국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도라는 것입니다. 국가의 권위를 여호와 하나님이 주셨다고 하는 이러한 사상은 이미 구약성경에서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렘27:5-6; 단2:21; 4:17, 25, 32; 5:21; 7:27).
그러나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국가제도를 주셨다고 해서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는 지배와 복종의 면에서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국가의 권위는 "봉사"라고 하는 면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본문에서 잘 표현된 바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국가에 권위를 주시고 공직자를 세우신 목적은 여호와 하나님이 사자가 되어 국민의 복리를 위하여 일하는 자로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상은 로마서 13:4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또한 바울은 국가에 대한 중요한 한 관점을 보여주고 있는데, 국가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로서 선을 이루는 자"(롬13:4)라는 것입니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어떤 형태의 정부가 좋으나, 예를 들어 정부의 크기는 얼마만한 것이 이상적이냐, 민주적인 정부가 좋으냐, 아니면 공산주의 정부가 좋으냐 하는 등등의 논쟁들이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필요한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서는 이구동성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권력이 잘못 행사되는 사례들이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국가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국가의 보호가 없으면 모든 사람은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어 약한 자는 먹히고, 강한 자는 먹는 약육강식의 법칙만이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외에도 국가는 개인의 힘과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하므로 선을 도모합니다. 우리가 세금을 내는 이유도 정부가 "여호와 하나님이 일군이 되어 선한 일에 힘쓰는 것"(롬13:6)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위생적인 식수를 공급하는 일, 쓰레기 처리, 학교 교육, 공정한 법집행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국가의 권력은 타락한 이후에 생겨났다고 할지라도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어느 정도 억제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하는 중요한 제도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국가를 구원의 은총인 특별은총과 구분하여 일반은총으로 보는 것입니다.
특히 바울이 로마서 13:2에서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자취하리라. "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국가제도를 주셨고,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국가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로서 봉사의 일을 수행해야 합니다.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 중요한 사상은 국가의 권위가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위임되었다고 하는 사실과, 국가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된 사항을 처리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국가의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을 거스리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한가지 기억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권면하고 있는 내용이 무한정한 복종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정부의 명령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 반대된다면 복종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사상은 구약에서 분명한 실례들을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다니엘서에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의 경우가 그러합니다(단1, 3, 6장). 그들은 왕의 금신상에 절하고 경배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왕의 명령이나 법령이 내려졌다고 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일에는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이 점은 정말 중요합니다. 국가에 대하여 맹목적이고 무조건적인 순종을 바치는 일은 우상숭배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절해야 합니다. 초대교회에서도 로마 정부는 가이사를 "주"로 부르기를 요구하였으나 거절하였습니다. 섬김의 대상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 반대될 때는 국가의 명령이라고 할지라도 거절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본문에서 볼 수 있는 국가의 권위라고 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대행자)로서 백성들의 유익을 위하여 선행을 행하는 자에게 상을 주며,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그 악행을 처벌하는 봉사의 의무를 수행하는 국가의 권위를 말합니다. 국가나 국가의 권위를 말할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권세를 주셨다는 의미는 여호와 하나님의 위치에서 절대 권력을 행사하라는 말은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도록 하기 위하여 권위를 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국가에 관하여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관점입니다.
3. 국가에 권위를 주신 목적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왜 칼로 무장하여 권위를 주셨을까요 그것은 이 본문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선을 행한 자에게 보상하여 선을 증진시키고, 또한 악을 행한 자에게 그것을 처벌하여 악을 억제하기 위함입니다. 선을 행한 자에게 칭찬한다고 하는 것은 국가가 선한 일들, 즉 평화를 수호하는 것, 법률과 질서를 유지하는 것, 인권을 보호하는 것, 정의를 증진시키고 궁핍한 자를 돌아보는 것 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국가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법에 따라 처벌해야 합니다(롬13:4). 이 두 가지 기능을 국가가 함께 가지고 있으나 현대 국가는 전자보다 후자에 더 치중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상에 대하여 사도 베드로는 특히 로마 정부의 극심한 핍박 속에서도 성도들에게 국가에 대하여 가지는 태도에 대하여 말하기를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벧전2:13-14)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고백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3장, "국가의 위정자에 관하여" 제1항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국가의 권위를 세우신 분명한 뜻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온 세계의 주가 되시고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영광과 백성의 유익을 위하여 위정자들을 자기 밑에 세우사 백성들을 다스리도록 하셨다. 그리고 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칼의 힘으로 무장시키셔서 선한 자들을 보호하고 격려하며 행악자들을 처벌하도록 하셨다. "
여호와 하나님께서 국가가 권위를 시행하는 수단으로 칼로 무장시키셨습니다. 로마서 13:4에 보면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칼"은 당시의 문화권에서 아주 중요한 무기였습니다. 이것은 오늘날로 말하면 공권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국가에 공권력을 주신 목적은 죄가 없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죄가 있는 사람들을 처벌하여 백성들이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세계에서 특히 우리 나라의 유신정권과 5, 6공화국을 거치면서 국가의 공권력이 남용되어 질서를 유지하고 선한 자들을 보호하고 악을 행하는 자들을 처벌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것이 아니고 그 반대로 정권유지를 위하여 무분별하게 공권력을 남용한 선례들을 목격한 바가 있습니다. 이것은 정당한 권위의 행사가 아니라 폭력입니다. 그래서 국가를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권위를 바르게 사용하여 본래 목적에 맞게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과 백성들의 유익을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공권력을 사용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4. 국가에 대한 신자의 태도
그러면 이제 마지막으로 이러한 국가제도에 대하여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하여야 하겠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국가제도를 세우셨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과 백성들의 유익을 위하여 권위를 주셨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러한 국가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해야 되겠습니까 이러한 국가의 본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면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로서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를 행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는 그 권위에 굴복해야 합니다(롬13:1). 만약에 거기에 대하여 불복한다면 여호와 하나님을 거스리는 것이며 그의 심판을 초래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굴복한다고 하는 것은 이 본문에 기록된 대로 세금을 바쳐야 하고, 마땅히 그들을 존경해야 합니다(롬13:7). 뿐만 아니라 통치자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딤전2:1-2). 국가의 권위와 사역이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수행하는 것임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정하신 국가에 봉사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에 국가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악용하여 악을 증진하고 국가 본래의 기능을 다하지 못할 때,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아니라 마귀의 사자가 되어 일할 때는 그때에는 순종의 의무가 없습니다(출1:15-21; 단3:1-18; 6:1-14; 행4:13-20). 국가의 권위를 존중은 하되 우리는 비판하고 저항할 수도 있습니다. 이 원리는 아주 분명합니다. 국가의 권위는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것임으로 우리가 국가에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국가의 권위에 불순종하게 되는 때는 국가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을 명한다거나, 여호와 하나님이 명하신 것을 금한다면 사도들이 공회에서 분명하게 말하였듯이 "사람보다 여호와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한"(행5:29)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국가와 그 권위에 대한 분명한 관점을 가지게 될 때 국가에 대하여 합당한 봉사를 하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신자들은 국가가 여호와 하나님이 정하신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이 정하신 책임과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세금을 내는 일에서부터 국민의 의무를 다하고 격려하며, 때로는 그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지 감시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국가가 법과 정의를 무시한다면 우리는 그 잘못을 지적하고 정의를 회복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로서 국민을 위해 봉사하며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벌을 주고, 선을 행하는 자에게 상을 주는 공의로운 정부가 되도록 기도하고 감시하는 것이 국가를 보는 우리의 입장이며,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방법입니다. 동시에 이 세상의 국가에 살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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