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올바른 국가관
본문
사람은 조국을 잃고 나라 없는 백성의 설움을 경험해 보지 않으면 조국의 소중함을 잘 모릅니다.
저의 부친께서는 일본 식민 치하에서 나라 잃은 백성으로 일본에 건너가셔서 고생을 하시다가 중국 북쪽의 하얼빈까지 가셔서 거기서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그 때 제 나이가 7살이었는데, 해방을 맞은 귀환 동포로 천신만고 끝에 압록강을 건너 서울역에 도착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서울역 광장을 지나다닐 때마다 '생각이 납니다. 귀환 동포들이 광장에 모여 앉아서 건빵을 나누어 먹는데 그 건빵이 얼마나 딱딱했는지 모릅니다. 그 때에 나라를 잃고 돌아왔던 그 백성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6. 25동란이 일어나 인민군들이 쳐들어 와서 교회당을 인민군 공회당으로 쓰겠다고 하면서 내어놓으라고 할 때에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인민군 보위대에 끌려가셔서 무수한 고문을 당하셨어요.
그 후에 저의 아버님께서는 천국가실 때까지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소천하셨어요. 이것이 어릴 때에 나라가 없어서 고생했던 저의 기억이요, 공산군에게 아픔을 당했던 저의 기억이기도 합니다.
어린 마음에도 북한군이 점령하였던 세 달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기간이었는지 몰라요. 그런데 그 후에 추석날 국군이 들어왔어요. 인민군들이 다 쫓겨갔어요. 국군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린 마음이지만 왜 그렇게 기뻤는지 모르겠어요.
이 모든 것이 나의 조국 대한 민국이 가난하고 힘이 없어서 모든 국민들이 당했던 고난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이 축복을 생각하면 너무너무 감사한 것 밖에 없어요. 6. 25동난 51주년을 맞는 이 시점에서 우리 조국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신자에게는 조국이 있습니다. 기독교에는 국경이 없지만 기독교 신자에게는 조국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 위에 살고 있지만 두 가지 국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천국 시민의 국적입니다. 다른 하나는 대한민국의 국적입니다.
그러면 천국시민으로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바른 국가관이 있어야 합니다.
올바른 국가관을 다르게 말하면 성경적인 국가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국가관을 바르게 정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와 국가가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역사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초대 교회 때는 국가가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핍박을 당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러나 핍박이 심할수록 교회는 생명력이 더 강해졌어요.
중세에 와서 교회와 국가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가 국가를 지배할 때가 있었어요. 교황이 한 나라의 왕을 폐위시키기도 하고, 세우기도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에 그 때에 교회가 가장 부패한 때였어요. 가장 암흑의 시대였어요. 그래서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교회가 국교가 될 때에 그 나라의 교회는 절대 부패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입니다.
근래에 와서 종교개혁의 영향 때문에 종교와 국가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사상이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헌법에도 교회와 정치가 분리되도록 하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 헌법에는 국교가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성도로 국가를 대하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며, 또 어떤 의무를 행해야 하는가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현실 참여라는 명목을 가지고 국가가 하는 모든 일에 간섭하고 또 불복종 운동도 하고, 반정부 행동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분들은 그렇게 하는 것을 시대적인 사명으로 확신하고 있어요.
그러나 절대다수의 보수적인 교회들은 거의 입을 열지 않습니다. 묵묵하게 기도합니다. 그리고 나라를 위해서는 친정부적인 성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진보적인 교회들로부터 많은 비난도 받았습니다.
오늘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우리가 과거를 반성해야 내일을 바르게 지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 세속의 국가와의 관계 속에서 어떤 국가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로마 제국의 핍박을 받으면서도 믿음을 지키고 있습니다. 당시의 네로 황제는 기독교를 엄청나게 핍박했습니다. 네로 황제는 인간 이하의 폐륜아였습니다. 자기 아내도 죽이고, 수많은 사람들과 자기를 황제로 만들어준 어머니까지 죽였습니다. 그러한 독재자가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편지가 쓰여진 것입니다.
이 편지의 수신자는 대부분 유대인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 입장에서는 반정부적인 마음이 가득 차 있을 것이요. 세금 내기 싫은 마음으로 차있을 것이요. 그리고 황제 숭배를 인정하지 않는 마음으로 차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로마 교회의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이 쓴 편지가 로마서입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은 국민에게는 정부가 필요하고. 국민으로서의 성도는 국가에 의무를 다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국가관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자세하게 말씀하게 보다는 큰 원칙만 말씀하고 있습니다. 원칙이 바로 되면 다 바로 될 것이요. 원칙이 잘못되면 다 잘못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바른 국가관은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통치자의 권위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2절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여호와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여호와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주권자의 권세가 여호와 하나님께부터 왔기 때문에, 모든 권세는 여호와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권력을 인정하지 않으면 여호와 하나님을 거스리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폭군이 지배하던 시대든지, 선한 임금이 지배하던 시대든지 막론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주권자를 존중하고 그들의 영을 거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4장 32절에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고 자기의 뜻대로 누구에게든지 그 권세를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2장 13절에,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해서 순복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 정부 앞에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될까요
저는 생각하기를 우리나라에서 가장 힘든 자리가 대통령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온갖 국민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만약에 한편의 소리만 들으면 반대편에서 야단이 납니다. 그래서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집니다.
우리도 지난 주간에 단군상을 철거하라고 시위하고 왔어요. 신문에 나지는 않았지만 보고는 다 올라갑니다. 대통령이 모르는 것 아닙니다. 다 알아요. 그런데 대통령이 우리 말만 들어주면 절대 다수의 국민들은 단군을 우리 국조로 알고 있는데 야단이 나잖아요.
민주정치는 여론 정치인데 이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대통령이 진짜 믿음이 있으면 여론을 무시하고 우리 말을 들어야 되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자기의 욕구를 들어주지 않는 대통령에 대하여 반대하고, 국가 정치에 대해서 불신하고, 욕하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원리에 맞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대로 우리의 주권자를 따르고 존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현실은 어떻습니까 이 나라 역대 대통령들이 죄인이 안 된 사람이 없어요. 건국의 아버지라고 불리운 이승만 박사, 이제는 역사에 이름도 거론하지 않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모두 역대의 대통령이 역사의 죄인으로 낙인이 찍히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저는 이 문제 앞에 참 많은 갈등을 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한 나라의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필리핀은 30년 전에 우리보다 훨씬 잘 살았고 그 나라가 우리를 후원해 준 나라입니다. 그런데 마르크스 대통령이 장기 집권하면서 키(key)를 잘 못 돌려놓으니까 그 나라가 계속 그대로 정체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계속 발전했습니다. 지금 필리핀과 우리나라는 비교가 되지 않지요. 그러나 그런 가운데에서도 라모스 대통령이 4년 임기동안 거리의 깡통 같은 낡은 차들이 새차들로 다 바뀌어졌습니다. 지도자 한 사람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이만큼 잘 살수 있게 되었다면 누가 수고한 것입니까 물론 온 국민이 수고했지요. 그러나 지도자가 앞에서 키를 잘 잡고 갔기 때문에 이만큼 전진한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민족과 우리를 축복해 주시기 위해서 시대마다 필요한 지도자를 그때 그때 세우셔서 사용하셨다는 것입니다.
건국과 공산주의에서 이 나라를 지키려고 이승만 박사를 사용하셨어요. 경제적인 기초를 닦기 위해서 박정희 대통령을 사용하셨어요. 강력한 정부가 필요했을 때에 전두환 같은 대통령을 사용하셨어요.
과도기적인 과정을 통과할 때에 오랫동안 압제받던 이 나라가 이제는 좀 풀어지니까 온 국민이 다 욕구 분출 할 때에 그 때는 물 대통령이 필요했다 말씀입니다.. 그래서 노태우 대통령이 그때 그 고비를 잘 넘기게 해준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민주화 과정을 통과할 때는 김영삼 대통령이 적격이니까 그분을 세워주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 민족의 숙원의 과제가 무엇입니까 남북간이 서로 교류하고 화해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이때가 되었을 때에 여호와 하나님은 지금의 대통령을 세워 주신 줄로 저는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 시대마다 지도자를 그렇게 사용하셨어요.
그런데 오늘 우리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민주화라는 미명으로 조국과 대통령을 경시하고 정부를 대적하는 세력들이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 보이고 있습니다.
여러분, 직장에서 그런 일에 동참하지 마십시오. 나라의 안녕과 질서를 지키고 나라가 튼튼하게 된 기초 위에서 우리는 북한과 교류를 해야 합니다.
나라를 어지럽혀가면서 북한과 교류할 수 없습니다. 통치권을 무시하고 통치자를 무시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무시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질서를 혼란케 하는 일입니다. 나라전체에 혼란이 오면 사회에 혼란이 오고 사회에 혼란이 오면 여러분의 가정에 혼란이 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혼란이 오면 여러분의 자녀들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그것은 씨를 뿌린 대로 얻는 결과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람을 볼 때에 존경할 만한 지도자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정치 지도자들 힘 좀 있으면 자녀를 다 빼돌리고, 병역 의무를 기피하고, 부정축제하고 온갖 특권은 다 누리면서 세금은 제일 조금 내고 있습니다. 월급 받는 사람들은 세금을 꼬박꼬박 내고, 병역 의무 다하고 있습니다. 진짜 애국자들은 일반 시민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생각하는 것 같이 도덕적으로 완전하다고 해서 누구나 정치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때를 따라서 부족해도 정치는 별개의 것이니까 그렇게 일 할 수 있도록 해 주신 줄로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클린턴 대통령 보세요. 뉴스위크지를 보니까 클린턴 대통령이 어떤 여자와 어떻게 했다고 너무너무 상세하게 다 나왔어요. 그래도 그는 대통령 집무를 잘 했어요. 여호와 하나님은 시대를 따라서 때를 따라서 사람을 세우셔서 일을 맡기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인격 때문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권위 때문에 그를 위해서 기도해 주어야합니다. 우리는 대통령을 위해서 기도하고 지도자를 위해서 기도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2장 1,2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면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국가의 법을 잘 지켜야 합니다. 3, 4절에,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나라의 관직에 앉은 모든 관리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로서 선악을 분별해서 악한 자는 벌을 주고 선한 자는 보상을 주게 하려고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로 세웠으니 네가 마음 편하려거든 악한 일을 하지 말고 선을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결국 국가의 법을 잘 지키라는 의미입니다.
성도는 국가의 법을 어기는 일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국법을 따라서 질서있게 정부의 일에 협력해야 합니다. 한 나라의 질서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그래서 진정한 애국은 질서를 지키고 법을 지키고 그리고 자기 위치를 잘 지키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사회에서 반정부 데모하고 정권 물러가라는 정치적인 구호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대한 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기초 위에 세운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민주주의의 가장 큰 법칙은 질서를 지키는 것입니다. 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잘 되려면 고도의 교육을 받아야 되고, 생활 수준도 고도의 수준으로 올라가야 바른 민주주의가 됩니다. 공산주의는 가난하고 무식한 곳에서 힘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 걱정스러운 일들이 있습니다.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세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이 6. 25동란 때에 목숨 바쳐서 싸웠습니다.
우리 성도들 중에도 6. 25동란 때 몸으로 헌신했고 역전의 전투에 참여했던 어른도 계시는데, 우리나라가 거저 된 나라가 아닙니다. 동작동 국립묘지에 가보면 수많은 우리의 젊은 아버지, 오빠들이 거기에 묻혀 있어요.
그런데 사회 일각에서 일부의 국민들은 북한을 지지하고 대한민국의 정부를 대적하는 말을 하고, 행동을 하는데 우리 성도님들은 절대 거기에 편승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일에 참여하는 것은 성경적인 자세가 아닙니다.
만약에 그 분들의 요구대로 다 된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공산화되어야 합니다. 이 나라의 이야기를 어떤 학자가 말하기를 5%의 공산주의자들이 50%의 대중을 선동하고 있다는 글을 제가 읽어 보았습니다.
여러분, 월남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월남이 있을 때에 그렇게 데모하던 사람들이 다 어디 갔습니까 그렇게 반정부 활동하던 사람들이 다 어디 갔습니까
만약에 이 나라가 공산화된다면 우리가 예배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자유롭게 믿음 생활 할 수 있습니까 선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젊은 우리 청년들은 잘못된 사상에 빠져들면 안 됩니다. 잘못된 사상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나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물이 얼마나 좋습니까 시원해서 좋고, 세탁도 하고, 목욕도 하고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이 물에 빠지면 죽습니다. 잘못된 사상에 빠지면 죽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도는 바른 국가관을 말씀의 기준으로 분별해야 합니다.
아인쉬타인이 말하기를 조국의 운명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삶을 영위할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다고 했습니다. 이 나라의 장래가 잘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를 분별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국민의 의무를 다하는 것입니다.
성경 6,7절은 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저희가 여호와 하나님의 일군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고 하였습니다.
왜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까 폭군이 지배하는 로마제국에 세금내기 싫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라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정부가 우리에게 주는 수많은 혜택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금은 그 혜택에 대한 빚입니다. 그래서 국가가 없으면 국민이 행복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국민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금을 낼 때에 국가에 대해서 깨끗한 세금을 낼 수 있도록 살아야 합니다.
성도의 국가에 대한 의무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기도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성도의 위치를 지키는 것입니다. 성도는 세상과 천국의 이중 국적자 이기 때문에 두 가지를 잘 구별해야 합니다.
구별해야 된다는 것은 천국시민이 세속화되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배가 물에 떠 있어야 되는 것처럼 교회는 세상을 떠나서 존재하지 못하지만 세상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질 수가 있잖아요. 그런데 물이 스며들면 배가 침몰하잖아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성도로서의 거룩한 자기 위치를 잘 지켜야만 이 나라가 든든히 설 수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망할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의인 열 사람이 없어서 망한다고 했어요. 여호와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내 위치를 잘 지키는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원동력이라 말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도로서 이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 잘 하는 것이 나라가 잘 되는 길입니다.
김 구 선생이 말씀하시기를 경찰서 열 곳 세우는 것보다는 교회당 한곳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세상은 변화되고 국가는 더욱 든든하게 선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 한국 교회가 이 사명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6. 25동란 51주년을 맞이하면서 조국의 고마움을 생각해야 합니다. 조국이 힘이 있고 편안해야 성도가 편안할 수 있습니다. 성도의 의무는 나의 조국이 편안하고 튼튼한 조국이 되기 위해서 법을 지키고 질서를 지키고 통치자의 주권을 존중하고 국민의 의무를 다하고 기도하고 자기 위치를 잘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국가관입니다. 우리 이 교훈을 가지고 이 나라의 튼튼한 기둥들이 다 되도록 힘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의 부친께서는 일본 식민 치하에서 나라 잃은 백성으로 일본에 건너가셔서 고생을 하시다가 중국 북쪽의 하얼빈까지 가셔서 거기서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그 때 제 나이가 7살이었는데, 해방을 맞은 귀환 동포로 천신만고 끝에 압록강을 건너 서울역에 도착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서울역 광장을 지나다닐 때마다 '생각이 납니다. 귀환 동포들이 광장에 모여 앉아서 건빵을 나누어 먹는데 그 건빵이 얼마나 딱딱했는지 모릅니다. 그 때에 나라를 잃고 돌아왔던 그 백성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6. 25동란이 일어나 인민군들이 쳐들어 와서 교회당을 인민군 공회당으로 쓰겠다고 하면서 내어놓으라고 할 때에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인민군 보위대에 끌려가셔서 무수한 고문을 당하셨어요.
그 후에 저의 아버님께서는 천국가실 때까지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소천하셨어요. 이것이 어릴 때에 나라가 없어서 고생했던 저의 기억이요, 공산군에게 아픔을 당했던 저의 기억이기도 합니다.
어린 마음에도 북한군이 점령하였던 세 달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기간이었는지 몰라요. 그런데 그 후에 추석날 국군이 들어왔어요. 인민군들이 다 쫓겨갔어요. 국군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린 마음이지만 왜 그렇게 기뻤는지 모르겠어요.
이 모든 것이 나의 조국 대한 민국이 가난하고 힘이 없어서 모든 국민들이 당했던 고난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이 축복을 생각하면 너무너무 감사한 것 밖에 없어요. 6. 25동난 51주년을 맞는 이 시점에서 우리 조국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신자에게는 조국이 있습니다. 기독교에는 국경이 없지만 기독교 신자에게는 조국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 위에 살고 있지만 두 가지 국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천국 시민의 국적입니다. 다른 하나는 대한민국의 국적입니다.
그러면 천국시민으로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바른 국가관이 있어야 합니다.
올바른 국가관을 다르게 말하면 성경적인 국가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국가관을 바르게 정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와 국가가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역사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초대 교회 때는 국가가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핍박을 당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러나 핍박이 심할수록 교회는 생명력이 더 강해졌어요.
중세에 와서 교회와 국가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가 국가를 지배할 때가 있었어요. 교황이 한 나라의 왕을 폐위시키기도 하고, 세우기도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에 그 때에 교회가 가장 부패한 때였어요. 가장 암흑의 시대였어요. 그래서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교회가 국교가 될 때에 그 나라의 교회는 절대 부패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입니다.
근래에 와서 종교개혁의 영향 때문에 종교와 국가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사상이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헌법에도 교회와 정치가 분리되도록 하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 헌법에는 국교가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성도로 국가를 대하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며, 또 어떤 의무를 행해야 하는가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현실 참여라는 명목을 가지고 국가가 하는 모든 일에 간섭하고 또 불복종 운동도 하고, 반정부 행동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분들은 그렇게 하는 것을 시대적인 사명으로 확신하고 있어요.
그러나 절대다수의 보수적인 교회들은 거의 입을 열지 않습니다. 묵묵하게 기도합니다. 그리고 나라를 위해서는 친정부적인 성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진보적인 교회들로부터 많은 비난도 받았습니다.
오늘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우리가 과거를 반성해야 내일을 바르게 지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 세속의 국가와의 관계 속에서 어떤 국가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로마 제국의 핍박을 받으면서도 믿음을 지키고 있습니다. 당시의 네로 황제는 기독교를 엄청나게 핍박했습니다. 네로 황제는 인간 이하의 폐륜아였습니다. 자기 아내도 죽이고, 수많은 사람들과 자기를 황제로 만들어준 어머니까지 죽였습니다. 그러한 독재자가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편지가 쓰여진 것입니다.
이 편지의 수신자는 대부분 유대인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 입장에서는 반정부적인 마음이 가득 차 있을 것이요. 세금 내기 싫은 마음으로 차있을 것이요. 그리고 황제 숭배를 인정하지 않는 마음으로 차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로마 교회의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이 쓴 편지가 로마서입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은 국민에게는 정부가 필요하고. 국민으로서의 성도는 국가에 의무를 다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국가관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자세하게 말씀하게 보다는 큰 원칙만 말씀하고 있습니다. 원칙이 바로 되면 다 바로 될 것이요. 원칙이 잘못되면 다 잘못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바른 국가관은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통치자의 권위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2절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여호와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여호와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주권자의 권세가 여호와 하나님께부터 왔기 때문에, 모든 권세는 여호와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권력을 인정하지 않으면 여호와 하나님을 거스리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폭군이 지배하던 시대든지, 선한 임금이 지배하던 시대든지 막론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주권자를 존중하고 그들의 영을 거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4장 32절에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고 자기의 뜻대로 누구에게든지 그 권세를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2장 13절에,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해서 순복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 정부 앞에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될까요
저는 생각하기를 우리나라에서 가장 힘든 자리가 대통령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온갖 국민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만약에 한편의 소리만 들으면 반대편에서 야단이 납니다. 그래서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집니다.
우리도 지난 주간에 단군상을 철거하라고 시위하고 왔어요. 신문에 나지는 않았지만 보고는 다 올라갑니다. 대통령이 모르는 것 아닙니다. 다 알아요. 그런데 대통령이 우리 말만 들어주면 절대 다수의 국민들은 단군을 우리 국조로 알고 있는데 야단이 나잖아요.
민주정치는 여론 정치인데 이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대통령이 진짜 믿음이 있으면 여론을 무시하고 우리 말을 들어야 되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자기의 욕구를 들어주지 않는 대통령에 대하여 반대하고, 국가 정치에 대해서 불신하고, 욕하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원리에 맞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대로 우리의 주권자를 따르고 존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현실은 어떻습니까 이 나라 역대 대통령들이 죄인이 안 된 사람이 없어요. 건국의 아버지라고 불리운 이승만 박사, 이제는 역사에 이름도 거론하지 않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모두 역대의 대통령이 역사의 죄인으로 낙인이 찍히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저는 이 문제 앞에 참 많은 갈등을 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한 나라의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필리핀은 30년 전에 우리보다 훨씬 잘 살았고 그 나라가 우리를 후원해 준 나라입니다. 그런데 마르크스 대통령이 장기 집권하면서 키(key)를 잘 못 돌려놓으니까 그 나라가 계속 그대로 정체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계속 발전했습니다. 지금 필리핀과 우리나라는 비교가 되지 않지요. 그러나 그런 가운데에서도 라모스 대통령이 4년 임기동안 거리의 깡통 같은 낡은 차들이 새차들로 다 바뀌어졌습니다. 지도자 한 사람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이만큼 잘 살수 있게 되었다면 누가 수고한 것입니까 물론 온 국민이 수고했지요. 그러나 지도자가 앞에서 키를 잘 잡고 갔기 때문에 이만큼 전진한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민족과 우리를 축복해 주시기 위해서 시대마다 필요한 지도자를 그때 그때 세우셔서 사용하셨다는 것입니다.
건국과 공산주의에서 이 나라를 지키려고 이승만 박사를 사용하셨어요. 경제적인 기초를 닦기 위해서 박정희 대통령을 사용하셨어요. 강력한 정부가 필요했을 때에 전두환 같은 대통령을 사용하셨어요.
과도기적인 과정을 통과할 때에 오랫동안 압제받던 이 나라가 이제는 좀 풀어지니까 온 국민이 다 욕구 분출 할 때에 그 때는 물 대통령이 필요했다 말씀입니다.. 그래서 노태우 대통령이 그때 그 고비를 잘 넘기게 해준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민주화 과정을 통과할 때는 김영삼 대통령이 적격이니까 그분을 세워주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 민족의 숙원의 과제가 무엇입니까 남북간이 서로 교류하고 화해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이때가 되었을 때에 여호와 하나님은 지금의 대통령을 세워 주신 줄로 저는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 시대마다 지도자를 그렇게 사용하셨어요.
그런데 오늘 우리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민주화라는 미명으로 조국과 대통령을 경시하고 정부를 대적하는 세력들이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 보이고 있습니다.
여러분, 직장에서 그런 일에 동참하지 마십시오. 나라의 안녕과 질서를 지키고 나라가 튼튼하게 된 기초 위에서 우리는 북한과 교류를 해야 합니다.
나라를 어지럽혀가면서 북한과 교류할 수 없습니다. 통치권을 무시하고 통치자를 무시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무시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질서를 혼란케 하는 일입니다. 나라전체에 혼란이 오면 사회에 혼란이 오고 사회에 혼란이 오면 여러분의 가정에 혼란이 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혼란이 오면 여러분의 자녀들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그것은 씨를 뿌린 대로 얻는 결과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람을 볼 때에 존경할 만한 지도자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정치 지도자들 힘 좀 있으면 자녀를 다 빼돌리고, 병역 의무를 기피하고, 부정축제하고 온갖 특권은 다 누리면서 세금은 제일 조금 내고 있습니다. 월급 받는 사람들은 세금을 꼬박꼬박 내고, 병역 의무 다하고 있습니다. 진짜 애국자들은 일반 시민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생각하는 것 같이 도덕적으로 완전하다고 해서 누구나 정치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때를 따라서 부족해도 정치는 별개의 것이니까 그렇게 일 할 수 있도록 해 주신 줄로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클린턴 대통령 보세요. 뉴스위크지를 보니까 클린턴 대통령이 어떤 여자와 어떻게 했다고 너무너무 상세하게 다 나왔어요. 그래도 그는 대통령 집무를 잘 했어요. 여호와 하나님은 시대를 따라서 때를 따라서 사람을 세우셔서 일을 맡기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인격 때문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권위 때문에 그를 위해서 기도해 주어야합니다. 우리는 대통령을 위해서 기도하고 지도자를 위해서 기도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2장 1,2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면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국가의 법을 잘 지켜야 합니다. 3, 4절에,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나라의 관직에 앉은 모든 관리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로서 선악을 분별해서 악한 자는 벌을 주고 선한 자는 보상을 주게 하려고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로 세웠으니 네가 마음 편하려거든 악한 일을 하지 말고 선을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결국 국가의 법을 잘 지키라는 의미입니다.
성도는 국가의 법을 어기는 일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국법을 따라서 질서있게 정부의 일에 협력해야 합니다. 한 나라의 질서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그래서 진정한 애국은 질서를 지키고 법을 지키고 그리고 자기 위치를 잘 지키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사회에서 반정부 데모하고 정권 물러가라는 정치적인 구호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대한 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기초 위에 세운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민주주의의 가장 큰 법칙은 질서를 지키는 것입니다. 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잘 되려면 고도의 교육을 받아야 되고, 생활 수준도 고도의 수준으로 올라가야 바른 민주주의가 됩니다. 공산주의는 가난하고 무식한 곳에서 힘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 걱정스러운 일들이 있습니다.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세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이 6. 25동란 때에 목숨 바쳐서 싸웠습니다.
우리 성도들 중에도 6. 25동란 때 몸으로 헌신했고 역전의 전투에 참여했던 어른도 계시는데, 우리나라가 거저 된 나라가 아닙니다. 동작동 국립묘지에 가보면 수많은 우리의 젊은 아버지, 오빠들이 거기에 묻혀 있어요.
그런데 사회 일각에서 일부의 국민들은 북한을 지지하고 대한민국의 정부를 대적하는 말을 하고, 행동을 하는데 우리 성도님들은 절대 거기에 편승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일에 참여하는 것은 성경적인 자세가 아닙니다.
만약에 그 분들의 요구대로 다 된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공산화되어야 합니다. 이 나라의 이야기를 어떤 학자가 말하기를 5%의 공산주의자들이 50%의 대중을 선동하고 있다는 글을 제가 읽어 보았습니다.
여러분, 월남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월남이 있을 때에 그렇게 데모하던 사람들이 다 어디 갔습니까 그렇게 반정부 활동하던 사람들이 다 어디 갔습니까
만약에 이 나라가 공산화된다면 우리가 예배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자유롭게 믿음 생활 할 수 있습니까 선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젊은 우리 청년들은 잘못된 사상에 빠져들면 안 됩니다. 잘못된 사상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나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물이 얼마나 좋습니까 시원해서 좋고, 세탁도 하고, 목욕도 하고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이 물에 빠지면 죽습니다. 잘못된 사상에 빠지면 죽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도는 바른 국가관을 말씀의 기준으로 분별해야 합니다.
아인쉬타인이 말하기를 조국의 운명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삶을 영위할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다고 했습니다. 이 나라의 장래가 잘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를 분별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국민의 의무를 다하는 것입니다.
성경 6,7절은 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저희가 여호와 하나님의 일군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고 하였습니다.
왜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까 폭군이 지배하는 로마제국에 세금내기 싫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라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정부가 우리에게 주는 수많은 혜택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금은 그 혜택에 대한 빚입니다. 그래서 국가가 없으면 국민이 행복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국민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금을 낼 때에 국가에 대해서 깨끗한 세금을 낼 수 있도록 살아야 합니다.
성도의 국가에 대한 의무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기도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성도의 위치를 지키는 것입니다. 성도는 세상과 천국의 이중 국적자 이기 때문에 두 가지를 잘 구별해야 합니다.
구별해야 된다는 것은 천국시민이 세속화되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배가 물에 떠 있어야 되는 것처럼 교회는 세상을 떠나서 존재하지 못하지만 세상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질 수가 있잖아요. 그런데 물이 스며들면 배가 침몰하잖아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성도로서의 거룩한 자기 위치를 잘 지켜야만 이 나라가 든든히 설 수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망할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의인 열 사람이 없어서 망한다고 했어요. 여호와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내 위치를 잘 지키는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원동력이라 말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도로서 이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 잘 하는 것이 나라가 잘 되는 길입니다.
김 구 선생이 말씀하시기를 경찰서 열 곳 세우는 것보다는 교회당 한곳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세상은 변화되고 국가는 더욱 든든하게 선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 한국 교회가 이 사명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6. 25동란 51주년을 맞이하면서 조국의 고마움을 생각해야 합니다. 조국이 힘이 있고 편안해야 성도가 편안할 수 있습니다. 성도의 의무는 나의 조국이 편안하고 튼튼한 조국이 되기 위해서 법을 지키고 질서를 지키고 통치자의 주권을 존중하고 국민의 의무를 다하고 기도하고 자기 위치를 잘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국가관입니다. 우리 이 교훈을 가지고 이 나라의 튼튼한 기둥들이 다 되도록 힘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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