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국가의 국민으로서 어떻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인가?
본문
바울은 지금까지 여호와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근거로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이 교회와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왔습니다.
이제 바울은 국가의 국민으로서 어떻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답게 살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성도들이 국가의 국민으로 살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만약에 성도가 국가에 대하여 항상 부정적이고 세금을 내지도 않고, 여러 가지 부정한 방법으로 세금을 속인다면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과 존재를 알 수 있을까요
또한 국가가 악을 행하고 법 적용의 형평성을 잃어버릴 때 성도가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다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이것은 분명 아닙니다.
본문의 주제는 국가는 선을 행하기 위해 여호와 하나님이 세우신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이기 때문에 그 권위에 순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잘 이해하기 위하여 국가에 대한 신자의 태도가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로는 핍박하는 자들을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며,
두 번째로는 다른 사람들의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며,
세 번째로는 다른 사람들과 의좋게, 서로 하모니(harmony)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는 악한 사람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인데,
부정적인(negative) 명령으로 보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고,
적극적인(positive) 명령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까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로서 살아갈 때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핍박하는 자들을 위하여 오히려 축복하여 주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제는 천국시민이기 전에 대한민국의 시민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국가와 교회의 관계는 오래 전부터 많은 논쟁을 하여온 문제이고 지금도 각 종파들마다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어 성도들이 상당히 혼란을 겪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올바른 국가관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1절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여호와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여호와 하나님의 정하신바라"
이 한 구절의 말씀이 오늘의 핵심적인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국가관에 대하여 한 마디로 정의하고 있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바울이 갑자기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요
역사적인 배경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에 바울로부터 본 서신을 받아 읽게 될 로마의 교인들은 대부분이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로마 정부의 지배 아래 놓여 있었습니다. 식민지 백성으로 어렵게 살고 있었기 때문에 항시 로마 정부에 대하여 반감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는 요즈음의 극우파와 같이 극단적인 행동을 스슴지 않고 하는 극렬분자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로마 황제를 자기들의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의 지도자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밖에 없다고 믿었기 때문에 세상의 왕은 아예 인정하려고 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나아가서 로마 정부에 세금을 바치는 것을 거부하였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로 인하여 로마에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입장이 곤난한 처지에 있었습니다.
이 같은 처지에서 바울은 로마서 13장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한 마디로 위에 있는 권세에게 굴복하고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언뜻 우리가 듣기에는 거부감을 가질 수 있는 명령입니다.
더더욱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풍토가 있습니다.
이것이 마치 이 시대 사고방식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어느 사회학자는
"현대인이 경험하는 혼돈의 이유는 요즘 사회가 아버지 없는 사회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 없는 사회, 무슨 말입니까
과거에는 집안에는 아버지가 한마디하면 집안의 질서가 잡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내부터 남편 알기를 우습게 여깁니다.
그러니 가정에서부터 아버지의 권위를 잃은 남자들이 어디에서 인정을 받을 것이며 그러한 가정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 신사고요 신세대인양 하는 잘못된 사회 풍토가 생겼습니다.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면서도 정작 상대방의 권위는 인정하지 않으려는 풍토가 이 시대의 실정인 것 같습니다.
모두가 타인의 충고나 권면을 받아들이기를 싫어하고 있습니다.
다 자기 잘난 맛에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권위에 순종하라고 한 말씀을 실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권위가 무너지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여호와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혼돈과 공허한 가운데서 아름다운 세계를 질서있게 만드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시고 질서의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질서가 무너진다고 생각하여 보십시오. 이 세상은 하루아침에 엉망진창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권위에 굴복하고 순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여호와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여호와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이 무슨 뜻인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위에 있는 권세에 굴복하라고 하는 말씀은 위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신적 권위를 인정하고 존중하라는 의미입니다.
결론부터 내리자면 모든 권위의 기원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권세는 다 여호와 하나님의 정하신 바에 의하여 이 땅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들은 이것을 인정하여야 합니다. 모든 권세가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는 신적 권위를 인정하는 삶이야말로 아름답고 행복한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위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할 때 그 권위에 순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러한 삶의 모습들은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의 삶의 유형과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사는 것이 우리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는 것이고, 여호와 하나님을 증거하는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1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1절)
“각 사람”은 "각 사람의 영혼”이란 뜻입니다.
이는 각 사람들이 그 심령 을 다해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는 것입니다.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하는 자세라면 늘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 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종된 태도를 취하게 될 것이요.
모든 "굴복"은 늘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심령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모두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를 예상하고 선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롬 13: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말씀 속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권세와 그 명령을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받는다는 경고가 내포돼어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대할 때에 복음 전파를 염두에 두고 행동하여야 합니다.
즉 선교를 위해서 우리는 세상권세의 질서와 요구를 받아들여 주어야합니다.
결국 우리의 순종과 헌신 때문에 불신자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가 이웃으로부터 참으로 곤란한 것을 요구 받을 때에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자 세를 가지면 지혜가 생길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신앙의 단호함이 있어야 합니다.
핍박도 있으나 결과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승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의 질서와 분위기를 맞추어주되
그러나 늘 여호와 하나님의 권세 아래 있음을 증거함으로써
세상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권세 앞에 무릎을 꿇을 날이 오도록 해야할 것입 니다.
마태22:21 “이에 가라사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국가는 원래 여호와 하나님의 세상 기구입니다.
국가 기관은 여호와 하나님 의 도구이기에 오늘 본문은 “관원들"을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들”이라고 했습니다(4절).
비록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더라도, 선(善)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정부와 관리들은
실상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통치의 사역자들로 쓰시는 자들이니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을 위해 바치는 희생은 사랑입니다.
공무원들에게 바른 협조를 해주는 것은 시민들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국가의 공무원들, 사회의 책임을 맡은 이들과의 좋은 협력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국가의 권위에 순종해야 할 이유는 근본적으로 국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국가제도를 주셨다고 해서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는 지배와 복종의 면에서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국가에 권위를 주시고 공직자를 세우신 목적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국민의 복리를 위하여 일하는 자로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3:4에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바울은 국가에 대하여 국가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로서 선을 이루는 자"(롬13:4)라는 것입니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정부가 필요한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서는 이구동성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권력이 잘못 행사되는 사례들이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국가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국가의 보호가 없으면 모든 사람은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어 약한 자는 먹히고, 강한 자는 먹는 약육강식의 법칙만이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개인의 힘과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하므로 선을 도모합니다.
우리가 세금을 내는 이유도 정부가 "여호와 하나님이 일군이 되어 선한 일에 힘쓰는 것"(롬13:6)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위생적인 식수를 공급하는 일, 쓰레기 처리, 학교 교육, 공정한 법집행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국가의 권력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하는 중요한 제도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국가를 구원의 은총인 특별은총과 구분하여 일반은총으로 보는 것입니다.
특히 바울이 로마서 13:2에서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자취하리라. "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국가제도를 주셨고,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국가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로서 봉사의 일을 수행해야 합니다.
국가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된 사항을 처리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기억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무한정한 복종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정부의 명령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 반대된다면 복종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사상은 구약에서 분명한 실례들을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다니엘서에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의 경우가 그러합니다(단1, 3, 6장).
그들은 왕의 금신상에 절하고 경배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왕의 명령이나 법령이 내려졌다고 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일에는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이 점은 정말 중요합니다.
국가에 대하여 맹목적이고 무조건적인 순종을 바치는 일은 우상숭배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절해야 합니다.
초대교회에서도 로마 정부는 가이사를 "주"로 부르기를 요구하였으나 거절하였습니다.
섬김의 대상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 반대될 때는 국가의 명령이라고 할지라도 거절해야 합니다.
우리가 본문에서 볼 수 있는 국가의 권위라고 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대행자)로서 백성들의 유익을 위하여 선행을 행하는 자에게 상을 주며,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그 악행을 처벌하는 봉사의 의무를 수행하는 국가의 권위를 말합니다.
국가나 국가의 권위를 말할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권세를 주셨다는 의미는 여호와 하나님의 위치에서 절대 권력을 행사하라는 말은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도록 하기 위하여 권위를 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국가에 관하여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관점입니다.
3. 국가에 권위를 주신 목적
다른 한편으로 국가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법에 따라 처벌해야 합니다(롬13:4).
우리가 고백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3장, "국가의 위정자에 관하여" 제1항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국가의 권위를 세우신 분명한 뜻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온 세계의 주가 되시고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영광과 백성의 유익을 위하여 위정자들을 자기 밑에 세우사 백성들을 다스리도록 하셨다. 그리고 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칼의 힘으로 무장시키셔서 선한 자들을 보호하고 격려하며 행악자들을 처벌하도록 하셨다. "
여호와 하나님께서 국가가 권위를 시행하는 수단으로 칼로 무장시키셨습니다.
"칼"은 당시의 문화권에서 아주 중요한 무기로서 오늘날로 말하면 공권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국가에 공권력을 주신 목적은 죄가 없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죄가 있는 사람들을 처벌하여 백성들이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세계에서 치부와 정권유지를 위하여 무분별하게 공권력을 남용한 선례들을 목격한 바가 있습니다.
이것은 정당한 권위의 행사가 아닙니다.
그래서 국가를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권위를 바르게 사용하여 본래 목적에 맞게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과 백성들의 유익을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공권력을 사용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4. 국가에 대한 신자의 태도
국가제도에 대하여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하여야 하겠는가
여호와 하나님이 국가제도를 세우셨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과 백성들의 유익을 위하여 권위를 주셨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 권위에 굴복해야 합니다(롬13:1).
만약에 거기에 대하여 불복한다면 여호와 하나님을 거스리는 것이며 그의 심판을 초래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굴복한다고 하는 것은 이 본문에 기록된 대로 세금을 바쳐야 하고, 마땅히 그들을 존경해야 합니다(롬13:7).
뿐만 아니라 통치자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딤전2:1-2).
국가의 권위와 사역이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수행하는 것임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정하신 국가에 봉사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에 국가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악용하여 악을 증진하고 국가 본래의 기능을 다하지 못할 때,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아니라 마귀의 사자가 되어 일할 때 그때에는 순종의 의무가 없습니다.
국가의 권위를 존중은 하되 우리는 비판하고 저항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국가와 그 권위에 대한 분명한 관점을 가지게 될 때 국가에 대하여 합당한 봉사를 하게 될 것입니다. 특
별히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신자들은 국가가 여호와 하나님이 정하신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이 정하신 책임과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의무를 다하도록 격려하며, 때로는 그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지 감시해야 할 것입니다.
국가가 법과 정의를 무시한다면 우리는 그 잘못을 지적하고 정의를 회복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로서 국민을 위해 봉사하며 공의로운 정부가 되도록 기도하고 감시하는 것이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방법입니다.
이 세상의 국가에 살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입니다.
공무원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합니다.
그들에게 격려하고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결국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좋은 협력자들이 될 날이 올 것입니다.
때로 세상 권세가 복음을 거스려도 우리는 천국길을 지킴으로써 이길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나라에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하면서 빛을 발해야합니다.
질서와 사랑의 빛을 즉 나눔의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금을 내는데도 앞장서서 사회에서 세금을 제일 잘 내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도 남겨야할 것입니다.
나라의 권세를 잘 존경해주는 그리스도인이 민족복음화의 길을 얻을 것입니다.
추석명절 만이 아니고 환난을 앞에서도 정면으로 이겨나가 는 힘을 보입시다.
제사문제에 두려워마십시오. 음식만들 때 잘 도우십시오.
그리고 절하는 대신 무릎꿇고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세를 보이십시오.
곳곳에서 질서와 나눔 의 빛을 발하십시오.
풍파가 옵니까 천국시민임을 확신하면서 기도의 운전대를 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또한 환난당하는 분들을 위해 우리의 구명복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의 빛을 발합시다.
질서의 빛, 사랑의 빛을 발하여 추석의 기쁨을 주도하게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추석은 추수를 감사하며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즐거운 명절로, 중추 (中秋) 또는 '한가위'라고도 합니다.
한가위라고 할 때 "한"이라는 말은 "크다"라는 뜻이고 "가위"라는 말은 "가운데"라는 뜻을 가진 옛말입니다.
즉 한가위는 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는 뜻입니다.
한가위 추석은 이웃을 생각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오래 전 부터 추석이 되면 일 년 동안 기른 곡식을 거둬들인 햇곡식 과 햇과일로 조상들에게 차례를 지내고 ,이웃들과 서로 나눠 먹으며 즐겁게 하루를 지냈지요.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떡을 빚어 나눠 먹었다고 해서
"일년 열두달 3백 65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말도 생겼습니다.
추석은 민족의 엑소더스라 고 부르는 있는데
이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사랑을 주고 십자가를 지는 마음으로 먼저 수고하고 먼저 양보함으로서 사랑의 빛을 비추는 천국 백성의 정신을 발휘해야할 것입니다.
오늘 로마서 13장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갈 때에 필요한 큰 두가지를 말하고 있는데 첫째는 질서요 둘째는 나눔의 빛입니다.
성도들은 생활을 할 때 먼저 사랑을 실천해야 할 것이며,
또한 빛된 생활 즉 선행을 함으로서 모든 사람에게 모본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바울은 국가의 국민으로서 어떻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답게 살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성도들이 국가의 국민으로 살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만약에 성도가 국가에 대하여 항상 부정적이고 세금을 내지도 않고, 여러 가지 부정한 방법으로 세금을 속인다면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과 존재를 알 수 있을까요
또한 국가가 악을 행하고 법 적용의 형평성을 잃어버릴 때 성도가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다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이것은 분명 아닙니다.
본문의 주제는 국가는 선을 행하기 위해 여호와 하나님이 세우신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이기 때문에 그 권위에 순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잘 이해하기 위하여 국가에 대한 신자의 태도가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로는 핍박하는 자들을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며,
두 번째로는 다른 사람들의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며,
세 번째로는 다른 사람들과 의좋게, 서로 하모니(harmony)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는 악한 사람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인데,
부정적인(negative) 명령으로 보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고,
적극적인(positive) 명령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까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로서 살아갈 때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핍박하는 자들을 위하여 오히려 축복하여 주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제는 천국시민이기 전에 대한민국의 시민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국가와 교회의 관계는 오래 전부터 많은 논쟁을 하여온 문제이고 지금도 각 종파들마다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어 성도들이 상당히 혼란을 겪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올바른 국가관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1절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여호와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여호와 하나님의 정하신바라"
이 한 구절의 말씀이 오늘의 핵심적인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국가관에 대하여 한 마디로 정의하고 있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바울이 갑자기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요
역사적인 배경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에 바울로부터 본 서신을 받아 읽게 될 로마의 교인들은 대부분이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로마 정부의 지배 아래 놓여 있었습니다. 식민지 백성으로 어렵게 살고 있었기 때문에 항시 로마 정부에 대하여 반감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는 요즈음의 극우파와 같이 극단적인 행동을 스슴지 않고 하는 극렬분자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로마 황제를 자기들의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의 지도자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밖에 없다고 믿었기 때문에 세상의 왕은 아예 인정하려고 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나아가서 로마 정부에 세금을 바치는 것을 거부하였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로 인하여 로마에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입장이 곤난한 처지에 있었습니다.
이 같은 처지에서 바울은 로마서 13장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한 마디로 위에 있는 권세에게 굴복하고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언뜻 우리가 듣기에는 거부감을 가질 수 있는 명령입니다.
더더욱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풍토가 있습니다.
이것이 마치 이 시대 사고방식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어느 사회학자는
"현대인이 경험하는 혼돈의 이유는 요즘 사회가 아버지 없는 사회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 없는 사회, 무슨 말입니까
과거에는 집안에는 아버지가 한마디하면 집안의 질서가 잡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내부터 남편 알기를 우습게 여깁니다.
그러니 가정에서부터 아버지의 권위를 잃은 남자들이 어디에서 인정을 받을 것이며 그러한 가정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 신사고요 신세대인양 하는 잘못된 사회 풍토가 생겼습니다.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면서도 정작 상대방의 권위는 인정하지 않으려는 풍토가 이 시대의 실정인 것 같습니다.
모두가 타인의 충고나 권면을 받아들이기를 싫어하고 있습니다.
다 자기 잘난 맛에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권위에 순종하라고 한 말씀을 실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권위가 무너지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여호와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혼돈과 공허한 가운데서 아름다운 세계를 질서있게 만드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시고 질서의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질서가 무너진다고 생각하여 보십시오. 이 세상은 하루아침에 엉망진창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권위에 굴복하고 순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여호와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여호와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이 무슨 뜻인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위에 있는 권세에 굴복하라고 하는 말씀은 위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신적 권위를 인정하고 존중하라는 의미입니다.
결론부터 내리자면 모든 권위의 기원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권세는 다 여호와 하나님의 정하신 바에 의하여 이 땅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들은 이것을 인정하여야 합니다. 모든 권세가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는 신적 권위를 인정하는 삶이야말로 아름답고 행복한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위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할 때 그 권위에 순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러한 삶의 모습들은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의 삶의 유형과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사는 것이 우리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는 것이고, 여호와 하나님을 증거하는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1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1절)
“각 사람”은 "각 사람의 영혼”이란 뜻입니다.
이는 각 사람들이 그 심령 을 다해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는 것입니다.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하는 자세라면 늘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 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종된 태도를 취하게 될 것이요.
모든 "굴복"은 늘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심령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모두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를 예상하고 선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롬 13: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말씀 속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권세와 그 명령을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받는다는 경고가 내포돼어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대할 때에 복음 전파를 염두에 두고 행동하여야 합니다.
즉 선교를 위해서 우리는 세상권세의 질서와 요구를 받아들여 주어야합니다.
결국 우리의 순종과 헌신 때문에 불신자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가 이웃으로부터 참으로 곤란한 것을 요구 받을 때에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자 세를 가지면 지혜가 생길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신앙의 단호함이 있어야 합니다.
핍박도 있으나 결과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승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의 질서와 분위기를 맞추어주되
그러나 늘 여호와 하나님의 권세 아래 있음을 증거함으로써
세상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권세 앞에 무릎을 꿇을 날이 오도록 해야할 것입 니다.
마태22:21 “이에 가라사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국가는 원래 여호와 하나님의 세상 기구입니다.
국가 기관은 여호와 하나님 의 도구이기에 오늘 본문은 “관원들"을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들”이라고 했습니다(4절).
비록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더라도, 선(善)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정부와 관리들은
실상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통치의 사역자들로 쓰시는 자들이니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을 위해 바치는 희생은 사랑입니다.
공무원들에게 바른 협조를 해주는 것은 시민들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국가의 공무원들, 사회의 책임을 맡은 이들과의 좋은 협력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국가의 권위에 순종해야 할 이유는 근본적으로 국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국가제도를 주셨다고 해서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는 지배와 복종의 면에서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국가에 권위를 주시고 공직자를 세우신 목적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국민의 복리를 위하여 일하는 자로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3:4에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바울은 국가에 대하여 국가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로서 선을 이루는 자"(롬13:4)라는 것입니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정부가 필요한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서는 이구동성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권력이 잘못 행사되는 사례들이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국가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국가의 보호가 없으면 모든 사람은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어 약한 자는 먹히고, 강한 자는 먹는 약육강식의 법칙만이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개인의 힘과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하므로 선을 도모합니다.
우리가 세금을 내는 이유도 정부가 "여호와 하나님이 일군이 되어 선한 일에 힘쓰는 것"(롬13:6)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위생적인 식수를 공급하는 일, 쓰레기 처리, 학교 교육, 공정한 법집행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국가의 권력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하는 중요한 제도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국가를 구원의 은총인 특별은총과 구분하여 일반은총으로 보는 것입니다.
특히 바울이 로마서 13:2에서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자취하리라. "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국가제도를 주셨고,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국가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로서 봉사의 일을 수행해야 합니다.
국가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된 사항을 처리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기억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무한정한 복종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정부의 명령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 반대된다면 복종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사상은 구약에서 분명한 실례들을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다니엘서에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의 경우가 그러합니다(단1, 3, 6장).
그들은 왕의 금신상에 절하고 경배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왕의 명령이나 법령이 내려졌다고 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일에는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이 점은 정말 중요합니다.
국가에 대하여 맹목적이고 무조건적인 순종을 바치는 일은 우상숭배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절해야 합니다.
초대교회에서도 로마 정부는 가이사를 "주"로 부르기를 요구하였으나 거절하였습니다.
섬김의 대상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 반대될 때는 국가의 명령이라고 할지라도 거절해야 합니다.
우리가 본문에서 볼 수 있는 국가의 권위라고 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대행자)로서 백성들의 유익을 위하여 선행을 행하는 자에게 상을 주며,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그 악행을 처벌하는 봉사의 의무를 수행하는 국가의 권위를 말합니다.
국가나 국가의 권위를 말할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권세를 주셨다는 의미는 여호와 하나님의 위치에서 절대 권력을 행사하라는 말은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도록 하기 위하여 권위를 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국가에 관하여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관점입니다.
3. 국가에 권위를 주신 목적
다른 한편으로 국가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법에 따라 처벌해야 합니다(롬13:4).
우리가 고백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3장, "국가의 위정자에 관하여" 제1항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국가의 권위를 세우신 분명한 뜻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온 세계의 주가 되시고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영광과 백성의 유익을 위하여 위정자들을 자기 밑에 세우사 백성들을 다스리도록 하셨다. 그리고 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칼의 힘으로 무장시키셔서 선한 자들을 보호하고 격려하며 행악자들을 처벌하도록 하셨다. "
여호와 하나님께서 국가가 권위를 시행하는 수단으로 칼로 무장시키셨습니다.
"칼"은 당시의 문화권에서 아주 중요한 무기로서 오늘날로 말하면 공권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국가에 공권력을 주신 목적은 죄가 없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죄가 있는 사람들을 처벌하여 백성들이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세계에서 치부와 정권유지를 위하여 무분별하게 공권력을 남용한 선례들을 목격한 바가 있습니다.
이것은 정당한 권위의 행사가 아닙니다.
그래서 국가를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권위를 바르게 사용하여 본래 목적에 맞게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과 백성들의 유익을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공권력을 사용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4. 국가에 대한 신자의 태도
국가제도에 대하여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하여야 하겠는가
여호와 하나님이 국가제도를 세우셨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과 백성들의 유익을 위하여 권위를 주셨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 권위에 굴복해야 합니다(롬13:1).
만약에 거기에 대하여 불복한다면 여호와 하나님을 거스리는 것이며 그의 심판을 초래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굴복한다고 하는 것은 이 본문에 기록된 대로 세금을 바쳐야 하고, 마땅히 그들을 존경해야 합니다(롬13:7).
뿐만 아니라 통치자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딤전2:1-2).
국가의 권위와 사역이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수행하는 것임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정하신 국가에 봉사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에 국가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악용하여 악을 증진하고 국가 본래의 기능을 다하지 못할 때,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아니라 마귀의 사자가 되어 일할 때 그때에는 순종의 의무가 없습니다.
국가의 권위를 존중은 하되 우리는 비판하고 저항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국가와 그 권위에 대한 분명한 관점을 가지게 될 때 국가에 대하여 합당한 봉사를 하게 될 것입니다. 특
별히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신자들은 국가가 여호와 하나님이 정하신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이 정하신 책임과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의무를 다하도록 격려하며, 때로는 그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지 감시해야 할 것입니다.
국가가 법과 정의를 무시한다면 우리는 그 잘못을 지적하고 정의를 회복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로서 국민을 위해 봉사하며 공의로운 정부가 되도록 기도하고 감시하는 것이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방법입니다.
이 세상의 국가에 살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입니다.
공무원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합니다.
그들에게 격려하고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결국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좋은 협력자들이 될 날이 올 것입니다.
때로 세상 권세가 복음을 거스려도 우리는 천국길을 지킴으로써 이길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나라에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하면서 빛을 발해야합니다.
질서와 사랑의 빛을 즉 나눔의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금을 내는데도 앞장서서 사회에서 세금을 제일 잘 내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도 남겨야할 것입니다.
나라의 권세를 잘 존경해주는 그리스도인이 민족복음화의 길을 얻을 것입니다.
추석명절 만이 아니고 환난을 앞에서도 정면으로 이겨나가 는 힘을 보입시다.
제사문제에 두려워마십시오. 음식만들 때 잘 도우십시오.
그리고 절하는 대신 무릎꿇고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세를 보이십시오.
곳곳에서 질서와 나눔 의 빛을 발하십시오.
풍파가 옵니까 천국시민임을 확신하면서 기도의 운전대를 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또한 환난당하는 분들을 위해 우리의 구명복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의 빛을 발합시다.
질서의 빛, 사랑의 빛을 발하여 추석의 기쁨을 주도하게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추석은 추수를 감사하며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즐거운 명절로, 중추 (中秋) 또는 '한가위'라고도 합니다.
한가위라고 할 때 "한"이라는 말은 "크다"라는 뜻이고 "가위"라는 말은 "가운데"라는 뜻을 가진 옛말입니다.
즉 한가위는 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는 뜻입니다.
한가위 추석은 이웃을 생각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오래 전 부터 추석이 되면 일 년 동안 기른 곡식을 거둬들인 햇곡식 과 햇과일로 조상들에게 차례를 지내고 ,이웃들과 서로 나눠 먹으며 즐겁게 하루를 지냈지요.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떡을 빚어 나눠 먹었다고 해서
"일년 열두달 3백 65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말도 생겼습니다.
추석은 민족의 엑소더스라 고 부르는 있는데
이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사랑을 주고 십자가를 지는 마음으로 먼저 수고하고 먼저 양보함으로서 사랑의 빛을 비추는 천국 백성의 정신을 발휘해야할 것입니다.
오늘 로마서 13장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갈 때에 필요한 큰 두가지를 말하고 있는데 첫째는 질서요 둘째는 나눔의 빛입니다.
성도들은 생활을 할 때 먼저 사랑을 실천해야 할 것이며,
또한 빛된 생활 즉 선행을 함으로서 모든 사람에게 모본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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