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행복한 우리 가정
본문
어느 화가 한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찾아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아침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제일 먼저 목사를 만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목사는 대답하기를 "신앙이 제일 아름답지요. 진실 된 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성도들의 얼굴에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 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화가는 주일아침에 교회에 나아가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도들의 얼굴을 바라보고 신앙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화가는 왠지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결혼식을 막 끝낸 신부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신부는 수즙은 듯이 얼굴을 붉히면서 "그거야 사랑이 제일이지요. " 라고 말했습니다, 화가는 즉시 캔버스를 내려놓고 신부의 아름다운 얼굴과 그의 눈동자에서 빛나는 사랑을 그림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러나 화가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전쟁터에서 돌아오는 군인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군인은 지체없이 대답하기를 "평화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지요. "라고 말했습니다. 화가는 이 말을 듣고 맹렬한 싸움이 지나간 전쟁터를 일 구워 오곡백과가 넘실거리는 농원을 만들고 그곳에서 기쁨으로 추수하는 농부들의 평화스러운 모습을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화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실망한 화가는 힘없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가 집에 들어서려고 할 때 어린 자녀들이 그에게 달려들어 두 팔로 아빠의 목을 껴안고 반겨 주었습니다. 문을 열고 방에 들어서니 아내가 따뜻한 웃음으로 그를 맞아 주었습니다. 잠시 후 그들은 식탁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찬송을 부르고 무사히 밖에서 돌아온 아빠를 위해서 온 가족이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화가는 비로소 그의 자녀와 아내의 얼굴에서 빛나는 사랑과 신앙과 평화를 발견하게 되었고 이러한 자기 가족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림으로 묘사하고는 "행복한 우리 가정" 이라는 제목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처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곳은 가정이라고 할 것입니다. 브라우닝 은 말하기를 "즐거운 가정은 일찍이 맛보는 천국이다. " 라고 했고 . 페스탈로치는 말하기를 "가정의 화목은 지상의 가장 빛나는 기쁨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자 마자 곧 가정을 창조하셨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가정에서 태어나 가정 안에서 살다가 죽습니다. 가정은 모든 생활의 기반이 됩니다. 가정에서 평생토록 부모님과 그리고 형제 자매들이 함께 꿈꾸고 계획하고 울고 웃고 사랑하고 돕고 격려하면서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이곳에서 몸과 마음과 인격이 성장해 갑니다. 가정은 만사의 토대가 되는 신성한 장소입니다. 가정생활이 행복하면 행복한 인생이 됩니다. 가정생활이 불행하면 그 인생도 불행한 인생이 됩니다. 행복한 가정들이 모이면 행복한 사회가 이루어지고. 불행한 가정들이 모이면 불행한 사회가 이루어집니다. 가정이 바로서면 사회가 바로서고. 가정이 흔들리면 사회도 흔들립니다.
성경은 가정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에 보면 감독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2)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4)라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집사들도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12)라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먼저 가정이 든든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가정과 신앙생활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어서 뗄래야 뗄 수가 없습니다. 가정이 흔들리면 신앙생활도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눈 여겨 살펴보면 대부분이 가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문제의 가정은 문제의 교회를 만들고. 은혜로운 가정은 은혜로운 교회를 만듭니다. 이와 반대로 섬기는 교회가 시험에 빠지거나 어려움에 처하면 가정에서도 다툼이 생기고 어려움이 옵니다. 왜냐 하면 교회는 주님의 몸이고 우리들은 그 지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흔들리면 가정이 흔들리고 가정이 흔들리면 교회가 흔들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가정은 영적 생활에 기초가 되는 처소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사역을 잘 감당하려면 먼저 가정이 평안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평안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가 있을까요
첫째. 주님을 호주로 모신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남편을 주인이라고 부릅니다 .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의 주인은 예수님 이십니다. 사회 중심적인 가정이해는 가정을 사회의 진화된 제도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밖에는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의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생 긴 예수님을 호주로 모신 가정입니다. 가정은 처음부터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생겨났습니다.
인류 최초의 가정은 아담과 하와의 가정이었습니다. 그들의 결혼은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졌고 그들의 신혼 가정은 에덴동산에 마련되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불순종하므로 말미암아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게 되었고 그 후로부터 갖가지 죄악을 범하며 수고와 고통과 괴롬 속에서 살아야만 했던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가정은 이처럼 죄악과 고난과 불안의 그림자가 항상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에덴동산의 행복을 되찾으려면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기는 가정이 되어야합니다. 가정의 목적을 여호와 하나님 섬기는데 둘 때에 그 가정이 깨끗하고 아름답고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 섬기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는 가정이야말로 행복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가정이 됩니다.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땅을 점령한 위대한 인물 여호수아는 말하기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고 했습니다 (수24:15). 우리들에게도 이 고백이 반듯이 필요합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겠노라"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우리 가정의 목적이요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아쉬운 것은 오늘같이 과학 문명이 발달한 시대에도 우상을 섬기는 가정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상을 섬기는 가정의 특징은 언제나 불안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가는 날. 결혼하는 날. 개업하는 날. 등 가정의 중요한 일이 있는 날을 비롯하여 사소한 일까지도 소위 손(날수를 따라 여기저기를 따라다니면서 사람을 방해한다는 귀신) 없는 날을 찾아서 하느라고 고심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악귀나 잡신을 쫒기 위하여 야릇한 글자를 붉은 색깔로 종이에 그린부적을 문 윗 부분에 덕지덕지 붙여 놓고 사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가정은 돈을 복사하여 크게 확대시킨 뒤 코팅한 그림을 책상 위에다 붙여 놓은 가정도 있습니다. 이런 가정은 돈이 우상이 되는 가정입니다. 또 어떤 청소년의 방에 들어가 보면 국내외 연예인들의 사진을 벽에 가득하게 붙여 놓은 가정도 있습니다. 이런 청소년은 연예인이 우상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우상을 섬기는 가정치고 참다운 평화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가정은 없습니다. 참 평화와 행복은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세속적인 평화와 행복은 불완전한 것이며 일순간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참평화. 참행복은 주님을 호주로 모시고 여호와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길 때만 얻을 수 있습니다. (요14:27. 신10:13)
둘째. 성경을 삶의 기준으로 삼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이 가치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전혀 달라집니다. 여러분들은 세상을 살아 나갈 때에 삶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삶의 기준을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마다 생각과 판단이 다르기 때문에 이것은 가치의 척도가 될 수 없습니다. 예컨데 30평 넓이의 아파트를 보고서 어떤 사람은 "참 넓고 좋다" 라고 말 하는가하면 어떤 사람은 "너무 좁고 옹색하게 보인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왜 똑같은 아파트를 보고도 왜 이렇게 의견이 다를까요 그것은 사람마다 보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제껏 30평 보다 작은 집에서 살았다면. 30평의 집은 넓고 좋게 판단될 것입니다. 그러나 30평 보다 큰집에서 살아왔던 사람에게는 30평의 집이 좁고 옹색하게 보일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처럼 30평 아파트가 넓으냐 좁으냐 하는 것은 그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생각이나 판단이 언제나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사회의 윤리나 도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회에서 옳다고 여기는 윤리나 도덕이라고 해서 꼭 저 사회에서도 옳다고 여겨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데 장례식만 해도 나라와 민족마다 그 방법이나 의미가 천차만별입니다. 우리 나라만 하더라도 지방마다 시체를 염하는 것이나 매장하는 방법이 조금씩 다릅니다. 그래서 장례식 때만 되면 이런 문제 때문에 서로가 자기 주장이 옳다고 다투는 장면을 종종 보게됩니다.
아프리카의 어떤 나라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그 시체를 가마솥에 넣고 끓여서 직계자식들만 먹는 도덕이 있습니다. 그들은 귀하신 부모님의 시체를 차마 땅속에 묻을 수가 없어서 자신들의 몸 속에 넣는다는 것입니다. 또 그런가 하면 어떤 종족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시체의 머리부분을 떼어내어 방안 중심부에 걸어 놓았다가 그곳에서 구더기가 생겨서 밑으로 떨어지면 그 구더기를 받아먹는 도덕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하므로써 부모님의 영감이나 지혜가 자식들에게 전해진다고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들의 생각이나 판단은 진정한 가치의 척도가 되지 못합니다. 인간들이 자기 자신에다가 기준을 두려고 하면 결국은 자기 경험이나 한계를 넘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가치 척도를 어디에 두어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삶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합니까 성경입니다. 오직 절대적인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과거에도 진리이고 현재에도 진리이고 미래에도 영원토록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영원한 진리를 우리의 삶의 기준이요. 표준으로 삶고 살아갈 때 우리가정이 바로 서게되고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찬양하기를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말게 하소서"(시119:116) "나의 행보를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아무 죄악이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시119:133). 그렇습니다. 우리들도 주의 말씀에 굳게 서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 인생이 복이 있습니다. 그런 가정에 행복이 떠나지 않습니다.
셋째. 사랑으로 하나된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여간 (보통으로. 어지간하게)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 했습니다. (잠15:17)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고기로 만든 반찬)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 했습니다. (잠17:1)
사랑은 모든 것의 완성입니다. (롬13:10) 그러므로 사랑이 있는 곳에는 가난하다 할지라도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보잘것없는 음식 중에서도 벅찬 만족이 있고 감사가 있습니다. 따라서 행복한 가정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가족이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교훈하기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엡5:25).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 시니라" (엡5:2
2. 23).
"여호와 하나님의 걸작품" 이라는 책에 "행복한 가정에 대한 법칙12가지" 가 있습니다.
1)한꺼번에 화를 내지 않는다. 2) 집에 불이 나지 않는 한 절대로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3) 만약 더 좋은 일을 생각할 수 없으면 자제력에 대한 연습으로 다른 사람 이 원하는 대로 해야한다. 4) 당신이 만약 자신이 훌륭하게 보이든지 혹은 배우자가 훌륭하게 보이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배우자가 훌륭하게 보이는 쪽을 택하라. 5) 어떤 비판을 하려거든 사랑스러운 태도로 하라. 6) 과거의 실수를 절대로 들추워 내지 말라. 7) 전 세계를 소홀이 할지언정 서로를 소홀히 하지 말라. 8) 배우자에게 한가지 이상의 칭찬의 말을 하지 않고는 절대로 하루를 보내지 말라. 9) 만날 때 마다 반듯이 애정어린 환영을 하라. 10) 화난채로 잠자리에 들지 말라. 11) 실수를 했을때는 그것을 입밖에 내지 말고 용서를 구하라. 12) 논쟁을 피하려면 두 사람이 서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잘못한 사람이 말을 많이 할 것이다. 이러한 12가지 법칙을 한마디로 줄이면 사랑입니다. 사랑할 때 가정은 행복이 넘칩니다.
넷째. 함께 부지런한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가는 현숙한 여인에 관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본문 말씀을 자세히 읽어보면 소위 현모 양처란 이런 여인을 두고 하는 말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같게 됩니다. 본문에 나타난 현모양처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남편을 존경하며. 자녀를 잘 양육시키고. 매사에 적극적이며. 부지런하고. 가정을 따뜻하게 하고. 자비 베풀기를 기뻐하는 여인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저는 주부들이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주부의 역할이 얼마나 귀중한가 하는것도 알게되었습니다. 물론 세상의 주부가 다 이렇게 현숙한 여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가려면 이와 같은 열정적인 삶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부만 이렇게 열정적이고 부지런하면 됩니까 아내만 열정적이며 부지런하고. 남편과 자식들은 무능하고 게을러도 됩니까 어떤 가정은 아내만 밤낮으로 죽도록 일하고 남편과 자식들은 빈둥빈둥 놀고먹는 가정도 있습니다. 또 어떤 가정은 남편은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데 아내와 자녀들은 돈을 물쓰듯이 하는 가정도 있습니다. 이래서는 가정이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부지런 해야합니다. 집안 일도 온 가족이 한 부분씩 맡아서 해야 합니다. 서로 부족한 점과 모자라는 점을 도와주고 채워 주어야 합니다. 잠6:6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보고 지혜를 얻으라" 고 했습니다. 개미처럼 온 가족이 부지런 할 때 그 가정이 행복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을 여러분의 가정에 호주로 모십시오. 성경을 여러분 가정에 삶의 기준으로 삼으십시오. 온 가족이 사랑으로 하나가 되십시오. 온 가족이 부지런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 가정에 행복이 보장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 가정에 늘 함께 하시기를 축원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결혼식을 막 끝낸 신부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신부는 수즙은 듯이 얼굴을 붉히면서 "그거야 사랑이 제일이지요. " 라고 말했습니다, 화가는 즉시 캔버스를 내려놓고 신부의 아름다운 얼굴과 그의 눈동자에서 빛나는 사랑을 그림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러나 화가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전쟁터에서 돌아오는 군인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군인은 지체없이 대답하기를 "평화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지요. "라고 말했습니다. 화가는 이 말을 듣고 맹렬한 싸움이 지나간 전쟁터를 일 구워 오곡백과가 넘실거리는 농원을 만들고 그곳에서 기쁨으로 추수하는 농부들의 평화스러운 모습을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화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실망한 화가는 힘없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가 집에 들어서려고 할 때 어린 자녀들이 그에게 달려들어 두 팔로 아빠의 목을 껴안고 반겨 주었습니다. 문을 열고 방에 들어서니 아내가 따뜻한 웃음으로 그를 맞아 주었습니다. 잠시 후 그들은 식탁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찬송을 부르고 무사히 밖에서 돌아온 아빠를 위해서 온 가족이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화가는 비로소 그의 자녀와 아내의 얼굴에서 빛나는 사랑과 신앙과 평화를 발견하게 되었고 이러한 자기 가족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림으로 묘사하고는 "행복한 우리 가정" 이라는 제목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처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곳은 가정이라고 할 것입니다. 브라우닝 은 말하기를 "즐거운 가정은 일찍이 맛보는 천국이다. " 라고 했고 . 페스탈로치는 말하기를 "가정의 화목은 지상의 가장 빛나는 기쁨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자 마자 곧 가정을 창조하셨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가정에서 태어나 가정 안에서 살다가 죽습니다. 가정은 모든 생활의 기반이 됩니다. 가정에서 평생토록 부모님과 그리고 형제 자매들이 함께 꿈꾸고 계획하고 울고 웃고 사랑하고 돕고 격려하면서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이곳에서 몸과 마음과 인격이 성장해 갑니다. 가정은 만사의 토대가 되는 신성한 장소입니다. 가정생활이 행복하면 행복한 인생이 됩니다. 가정생활이 불행하면 그 인생도 불행한 인생이 됩니다. 행복한 가정들이 모이면 행복한 사회가 이루어지고. 불행한 가정들이 모이면 불행한 사회가 이루어집니다. 가정이 바로서면 사회가 바로서고. 가정이 흔들리면 사회도 흔들립니다.
성경은 가정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에 보면 감독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2)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4)라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집사들도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12)라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먼저 가정이 든든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가정과 신앙생활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어서 뗄래야 뗄 수가 없습니다. 가정이 흔들리면 신앙생활도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눈 여겨 살펴보면 대부분이 가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문제의 가정은 문제의 교회를 만들고. 은혜로운 가정은 은혜로운 교회를 만듭니다. 이와 반대로 섬기는 교회가 시험에 빠지거나 어려움에 처하면 가정에서도 다툼이 생기고 어려움이 옵니다. 왜냐 하면 교회는 주님의 몸이고 우리들은 그 지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흔들리면 가정이 흔들리고 가정이 흔들리면 교회가 흔들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가정은 영적 생활에 기초가 되는 처소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사역을 잘 감당하려면 먼저 가정이 평안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평안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가 있을까요
첫째. 주님을 호주로 모신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남편을 주인이라고 부릅니다 .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의 주인은 예수님 이십니다. 사회 중심적인 가정이해는 가정을 사회의 진화된 제도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밖에는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의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생 긴 예수님을 호주로 모신 가정입니다. 가정은 처음부터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생겨났습니다.
인류 최초의 가정은 아담과 하와의 가정이었습니다. 그들의 결혼은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졌고 그들의 신혼 가정은 에덴동산에 마련되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불순종하므로 말미암아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게 되었고 그 후로부터 갖가지 죄악을 범하며 수고와 고통과 괴롬 속에서 살아야만 했던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가정은 이처럼 죄악과 고난과 불안의 그림자가 항상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에덴동산의 행복을 되찾으려면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기는 가정이 되어야합니다. 가정의 목적을 여호와 하나님 섬기는데 둘 때에 그 가정이 깨끗하고 아름답고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 섬기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는 가정이야말로 행복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가정이 됩니다.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땅을 점령한 위대한 인물 여호수아는 말하기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고 했습니다 (수24:15). 우리들에게도 이 고백이 반듯이 필요합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겠노라"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우리 가정의 목적이요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아쉬운 것은 오늘같이 과학 문명이 발달한 시대에도 우상을 섬기는 가정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상을 섬기는 가정의 특징은 언제나 불안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가는 날. 결혼하는 날. 개업하는 날. 등 가정의 중요한 일이 있는 날을 비롯하여 사소한 일까지도 소위 손(날수를 따라 여기저기를 따라다니면서 사람을 방해한다는 귀신) 없는 날을 찾아서 하느라고 고심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악귀나 잡신을 쫒기 위하여 야릇한 글자를 붉은 색깔로 종이에 그린부적을 문 윗 부분에 덕지덕지 붙여 놓고 사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가정은 돈을 복사하여 크게 확대시킨 뒤 코팅한 그림을 책상 위에다 붙여 놓은 가정도 있습니다. 이런 가정은 돈이 우상이 되는 가정입니다. 또 어떤 청소년의 방에 들어가 보면 국내외 연예인들의 사진을 벽에 가득하게 붙여 놓은 가정도 있습니다. 이런 청소년은 연예인이 우상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우상을 섬기는 가정치고 참다운 평화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가정은 없습니다. 참 평화와 행복은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세속적인 평화와 행복은 불완전한 것이며 일순간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참평화. 참행복은 주님을 호주로 모시고 여호와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길 때만 얻을 수 있습니다. (요14:27. 신10:13)
둘째. 성경을 삶의 기준으로 삼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이 가치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전혀 달라집니다. 여러분들은 세상을 살아 나갈 때에 삶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삶의 기준을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마다 생각과 판단이 다르기 때문에 이것은 가치의 척도가 될 수 없습니다. 예컨데 30평 넓이의 아파트를 보고서 어떤 사람은 "참 넓고 좋다" 라고 말 하는가하면 어떤 사람은 "너무 좁고 옹색하게 보인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왜 똑같은 아파트를 보고도 왜 이렇게 의견이 다를까요 그것은 사람마다 보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제껏 30평 보다 작은 집에서 살았다면. 30평의 집은 넓고 좋게 판단될 것입니다. 그러나 30평 보다 큰집에서 살아왔던 사람에게는 30평의 집이 좁고 옹색하게 보일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처럼 30평 아파트가 넓으냐 좁으냐 하는 것은 그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생각이나 판단이 언제나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사회의 윤리나 도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회에서 옳다고 여기는 윤리나 도덕이라고 해서 꼭 저 사회에서도 옳다고 여겨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데 장례식만 해도 나라와 민족마다 그 방법이나 의미가 천차만별입니다. 우리 나라만 하더라도 지방마다 시체를 염하는 것이나 매장하는 방법이 조금씩 다릅니다. 그래서 장례식 때만 되면 이런 문제 때문에 서로가 자기 주장이 옳다고 다투는 장면을 종종 보게됩니다.
아프리카의 어떤 나라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그 시체를 가마솥에 넣고 끓여서 직계자식들만 먹는 도덕이 있습니다. 그들은 귀하신 부모님의 시체를 차마 땅속에 묻을 수가 없어서 자신들의 몸 속에 넣는다는 것입니다. 또 그런가 하면 어떤 종족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시체의 머리부분을 떼어내어 방안 중심부에 걸어 놓았다가 그곳에서 구더기가 생겨서 밑으로 떨어지면 그 구더기를 받아먹는 도덕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하므로써 부모님의 영감이나 지혜가 자식들에게 전해진다고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들의 생각이나 판단은 진정한 가치의 척도가 되지 못합니다. 인간들이 자기 자신에다가 기준을 두려고 하면 결국은 자기 경험이나 한계를 넘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가치 척도를 어디에 두어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삶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합니까 성경입니다. 오직 절대적인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과거에도 진리이고 현재에도 진리이고 미래에도 영원토록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영원한 진리를 우리의 삶의 기준이요. 표준으로 삶고 살아갈 때 우리가정이 바로 서게되고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찬양하기를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말게 하소서"(시119:116) "나의 행보를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아무 죄악이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시119:133). 그렇습니다. 우리들도 주의 말씀에 굳게 서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 인생이 복이 있습니다. 그런 가정에 행복이 떠나지 않습니다.
셋째. 사랑으로 하나된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여간 (보통으로. 어지간하게)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 했습니다. (잠15:17)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고기로 만든 반찬)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 했습니다. (잠17:1)
사랑은 모든 것의 완성입니다. (롬13:10) 그러므로 사랑이 있는 곳에는 가난하다 할지라도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보잘것없는 음식 중에서도 벅찬 만족이 있고 감사가 있습니다. 따라서 행복한 가정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가족이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교훈하기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엡5:25).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 시니라" (엡5:2
2. 23).
"여호와 하나님의 걸작품" 이라는 책에 "행복한 가정에 대한 법칙12가지" 가 있습니다.
1)한꺼번에 화를 내지 않는다. 2) 집에 불이 나지 않는 한 절대로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3) 만약 더 좋은 일을 생각할 수 없으면 자제력에 대한 연습으로 다른 사람 이 원하는 대로 해야한다. 4) 당신이 만약 자신이 훌륭하게 보이든지 혹은 배우자가 훌륭하게 보이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배우자가 훌륭하게 보이는 쪽을 택하라. 5) 어떤 비판을 하려거든 사랑스러운 태도로 하라. 6) 과거의 실수를 절대로 들추워 내지 말라. 7) 전 세계를 소홀이 할지언정 서로를 소홀히 하지 말라. 8) 배우자에게 한가지 이상의 칭찬의 말을 하지 않고는 절대로 하루를 보내지 말라. 9) 만날 때 마다 반듯이 애정어린 환영을 하라. 10) 화난채로 잠자리에 들지 말라. 11) 실수를 했을때는 그것을 입밖에 내지 말고 용서를 구하라. 12) 논쟁을 피하려면 두 사람이 서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잘못한 사람이 말을 많이 할 것이다. 이러한 12가지 법칙을 한마디로 줄이면 사랑입니다. 사랑할 때 가정은 행복이 넘칩니다.
넷째. 함께 부지런한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가는 현숙한 여인에 관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본문 말씀을 자세히 읽어보면 소위 현모 양처란 이런 여인을 두고 하는 말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같게 됩니다. 본문에 나타난 현모양처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남편을 존경하며. 자녀를 잘 양육시키고. 매사에 적극적이며. 부지런하고. 가정을 따뜻하게 하고. 자비 베풀기를 기뻐하는 여인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저는 주부들이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주부의 역할이 얼마나 귀중한가 하는것도 알게되었습니다. 물론 세상의 주부가 다 이렇게 현숙한 여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가려면 이와 같은 열정적인 삶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부만 이렇게 열정적이고 부지런하면 됩니까 아내만 열정적이며 부지런하고. 남편과 자식들은 무능하고 게을러도 됩니까 어떤 가정은 아내만 밤낮으로 죽도록 일하고 남편과 자식들은 빈둥빈둥 놀고먹는 가정도 있습니다. 또 어떤 가정은 남편은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데 아내와 자녀들은 돈을 물쓰듯이 하는 가정도 있습니다. 이래서는 가정이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부지런 해야합니다. 집안 일도 온 가족이 한 부분씩 맡아서 해야 합니다. 서로 부족한 점과 모자라는 점을 도와주고 채워 주어야 합니다. 잠6:6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보고 지혜를 얻으라" 고 했습니다. 개미처럼 온 가족이 부지런 할 때 그 가정이 행복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을 여러분의 가정에 호주로 모십시오. 성경을 여러분 가정에 삶의 기준으로 삼으십시오. 온 가족이 사랑으로 하나가 되십시오. 온 가족이 부지런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 가정에 행복이 보장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 가정에 늘 함께 하시기를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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