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하나님과 땅 그리고 인간
본문
성경을 자세히 보면, 땅과 아담, 땅과 이스라엘, 땅과 성도의 관계를 운명적으로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태초부터 여호와 하나님은 땅을 아름답게 지어 인간으로 하여금 부족함 없이 살게 하셨으며, 인간이 범죄할 때는 어김없이 당을 황무케 하셔서 거할 수 없게 하시거나 땅이 주는 혜택을 누리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볼 때 땅이나 자연이 문제는 우리의 신앙과 별개의 것이 아닌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교회나 성도가 땅이나 자연의 개발을 사회나 국가가 알아서 할 일로 생각해서 무관심하거나 방치하는 것은 결코 건실한 신앙인의 온당한 태도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호와 하나님과 땅, 인간의 바른 관계에 관해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땅은 여호와 하나님의 것임(신10:14-16)
1)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셨음
오늘날 우리의 신앙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은총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대속적 은총을 경험하지 못했던 구약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은 출애굽의 경험과 함께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창조 신앙에 깊은 뿌리를 두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바다도 육지도 여호와 하나님의 것이요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셨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으며 이것을 자주 반복적으로 고백하였습니다(시95:5). 오늘 우리가 뿌리를 두고 있는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한 신앙은 창조 신앙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이 둘은 믿음의 요체인 것입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 아나니"(히11:3). 세상은 진화론을 주장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지으셨다는 것을 부인하지만 우리에게는 믿음이 있기에 이것을 확고히 아는 것입니다.
2) 여호와 하나님의 소유물임
히브리인들이 창조 신앙을 강조하고 반복해서 고백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 만물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므로 모두 여호와 하나님의 소유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를 보면 땅을 매우 신성시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땅을 우상화했던 것은 아니나 한번 기업으로 분배받은 땅은 사고 팔 수 없었으며, 어떤 불가피한 이유로도 다른 기계나 지파로 넘어갈수 없도록 법으로 보호하였습니다(민27:6-11;36장). 심지어 왕이라 할지라도 마음대로 빼앗을 수도 돈주고 살수도 없었습니다(왕상21:1-3). 오늘날 땅에 대하여 마구잡이식 파괴가 일어나는 것은 성도는 물론 모든 인류에게 땅이 여호와 하나님의 것이요 신성한 것이라는 의식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제 성도들부터 이 땅에 대한 신성한 의식을 회복하는 운동을 일으켜야 합니다. 풀 한 포기를 밟고 나무 한 가지 꺾는 일을 여호와 하나님 소유물에 대한 파괴라는 인식을 갖게 될 때 자연은 자연의 위치를 회복하고 사람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해 갈 것입니다.
2. 땅은 여호와 하나님과 인간 관계의 척도임(창3:17)
1) 당의 파괴는 여호와 하나님과 인간 관계의 파괴임
유력한 환경 보고서에 의하면 1년에 남한 땅 넓이만한 아름다운 숲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만한 넓이 만큼 아름다운 땅이 사막으로 변해 가고 있습니다. 25년 전에는 지구 표면의 약25%가 산림이었는데 이제는 20%로 줄었다고 합니다. 성경은 이와 관련해 무어라고 합니까? 땅의 황폐화가 인간의 범죄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합니다(사1:7). 만일 우리가 이 사실을 알면서도 지구 환경 파괴에 관해 무심하거나 그대로 방치한다면 우리는 앉아서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는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것을 우리에게 알리심은 우리로 하여금 예언자적 소명의식을 갖고 스스로부터 생활 속에서 오염원을 줄이라는 명령입니다. 여기에는 그 끝이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이요 멸망인 줄 알면서도 죄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온몸으로 맞섰던 선지자 예레이먀와 같은 희생이 필요할 것입니다.
2) 땅의 회복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임
성도들 가운데는 자연과 환경 파괴의 방지가 교회 본연의 일과는 전혀 무관한 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물론 교회의 주된 사역이 인간 영혼 구원에 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확고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땅의 원기 회복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세우신 안식년 제도와(레25:1-7) 희년 제도를 보시기 바랍니다. (레25:8-12).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친히 이 제도를 세우시고 제 칠년 되는 해와 오십년 되는 해에는 땅을 기경하지 말고 묵혀 두게 하셨습니다. 3,000년도 훨씬 더 전에 이러한 제도를 세운 것이라면 오늘과 같은 자연 환경 파괴의 시대에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법을 세우며 우리에게 어떤 명령을 내리시겠습니까? 성도에게는 시대와 환경에 따른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깨달아야 할 지혜가 필요합니다(롬12:2). 우리는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도 해야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태초부터 그토록 애정을 품고 관리하시며 애타게 소원하시는 땅의 기력 회복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3. 최후에 땅은 원상태로 복원됨(사43:19,20)
1) 사막이 낙원으로 변화함
해마다 지구 표면이 사막화해 가고 있는 이 세계를 향해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광야와 사막에 샘과 강을 내어 사랑과 타조로 마시게 하고 그 땅을 택한 백성에게 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실제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체험하고 묘사한 사도 요한도 그 나라를 생명수 강이 흐르고 생명 나무가 즐비하며 푸른 잎사귀와 열매로 가득한 모습으로 그리고 있습니다(계22:1,2). 그는 그 물의 맑기가 수정과 같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도 모든 피조물들이 이러한 세계의 도래를 목마르게 고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롬8:21). 현대의 진정한 신비주의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점치듯 예언하고 환상을 보는 자가 아니라 이러한 아름다운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꿈꾸며 인간의 파괴로 신음하고 고통하는 자연 세계의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 합성 세제를 덜쓰며 자연 환경을 파수하는 일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는 자 아니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도래하면 눈에 보이는 모든 세계는 멸절되고 전혀 새로운 세계가 도래하리라는 환상부터 버려야 합니다. 재림하시는 예수께서는 만물을 새롭게 하셔서 이 아름다운 땅, 여호와 하나님이 본래 아름답게 지으신 그대로 우리로 살게 하실 것입니다(계21:5).
2) 성도는 새 하늘과 새 땅에 거함
성도가 분명히 깨달아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사야가 예언했고 사도 요한이 보았던 회복된 아름다운 여호와 하나님 나라, 즉 새 하늘과 새 땅은 성도들만의 처소이지 온 인류의 처소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가증한 일, 거짓말하는 자 등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합니다(계21:27). 그러므로 믿지 않는 이들은 거룩한 이 땅을 마음껏 파괴하고 더럽힐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의 경우는 다릅니다. 이 땅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깨끗이 하셔서 우리가 영원히 살 곳입니다. 따라서 우리 스스로 지금부터 주인 의식으로 깨끗이 해야 합니다. 세상에 자기 안방에 침을 함부로 뱉거나 휴지를 함부로 버리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성도에게는 바로 이러한 '안방 의식'이 필요합니다.
결론
예전에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이웃의 고난에 동참하고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는 성도를 가리켰지만 오늘날에는 한가지 덧붙여 스스로 환경 오염원을 줄이고 자연 환경 보호와 복원에 나서는 성도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일에 무관심할 때 여호와 하나님이 아름답게 지으셨고 또 본래 그 모습 그대로 복원되시길 원하시는 땅은 사단적인 역사에 의해 점점 파괴되고 황폐화되어 갈 것입니다. 지금 이 일을 위한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을 귀기울여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땅은 여호와 하나님의 것임(신10:14-16)
1)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셨음
오늘날 우리의 신앙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은총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대속적 은총을 경험하지 못했던 구약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은 출애굽의 경험과 함께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창조 신앙에 깊은 뿌리를 두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바다도 육지도 여호와 하나님의 것이요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셨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으며 이것을 자주 반복적으로 고백하였습니다(시95:5). 오늘 우리가 뿌리를 두고 있는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한 신앙은 창조 신앙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이 둘은 믿음의 요체인 것입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 아나니"(히11:3). 세상은 진화론을 주장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지으셨다는 것을 부인하지만 우리에게는 믿음이 있기에 이것을 확고히 아는 것입니다.
2) 여호와 하나님의 소유물임
히브리인들이 창조 신앙을 강조하고 반복해서 고백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 만물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므로 모두 여호와 하나님의 소유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를 보면 땅을 매우 신성시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땅을 우상화했던 것은 아니나 한번 기업으로 분배받은 땅은 사고 팔 수 없었으며, 어떤 불가피한 이유로도 다른 기계나 지파로 넘어갈수 없도록 법으로 보호하였습니다(민27:6-11;36장). 심지어 왕이라 할지라도 마음대로 빼앗을 수도 돈주고 살수도 없었습니다(왕상21:1-3). 오늘날 땅에 대하여 마구잡이식 파괴가 일어나는 것은 성도는 물론 모든 인류에게 땅이 여호와 하나님의 것이요 신성한 것이라는 의식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제 성도들부터 이 땅에 대한 신성한 의식을 회복하는 운동을 일으켜야 합니다. 풀 한 포기를 밟고 나무 한 가지 꺾는 일을 여호와 하나님 소유물에 대한 파괴라는 인식을 갖게 될 때 자연은 자연의 위치를 회복하고 사람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해 갈 것입니다.
2. 땅은 여호와 하나님과 인간 관계의 척도임(창3:17)
1) 당의 파괴는 여호와 하나님과 인간 관계의 파괴임
유력한 환경 보고서에 의하면 1년에 남한 땅 넓이만한 아름다운 숲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만한 넓이 만큼 아름다운 땅이 사막으로 변해 가고 있습니다. 25년 전에는 지구 표면의 약25%가 산림이었는데 이제는 20%로 줄었다고 합니다. 성경은 이와 관련해 무어라고 합니까? 땅의 황폐화가 인간의 범죄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합니다(사1:7). 만일 우리가 이 사실을 알면서도 지구 환경 파괴에 관해 무심하거나 그대로 방치한다면 우리는 앉아서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는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것을 우리에게 알리심은 우리로 하여금 예언자적 소명의식을 갖고 스스로부터 생활 속에서 오염원을 줄이라는 명령입니다. 여기에는 그 끝이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이요 멸망인 줄 알면서도 죄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온몸으로 맞섰던 선지자 예레이먀와 같은 희생이 필요할 것입니다.
2) 땅의 회복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임
성도들 가운데는 자연과 환경 파괴의 방지가 교회 본연의 일과는 전혀 무관한 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물론 교회의 주된 사역이 인간 영혼 구원에 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확고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땅의 원기 회복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세우신 안식년 제도와(레25:1-7) 희년 제도를 보시기 바랍니다. (레25:8-12).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친히 이 제도를 세우시고 제 칠년 되는 해와 오십년 되는 해에는 땅을 기경하지 말고 묵혀 두게 하셨습니다. 3,000년도 훨씬 더 전에 이러한 제도를 세운 것이라면 오늘과 같은 자연 환경 파괴의 시대에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법을 세우며 우리에게 어떤 명령을 내리시겠습니까? 성도에게는 시대와 환경에 따른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깨달아야 할 지혜가 필요합니다(롬12:2). 우리는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도 해야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태초부터 그토록 애정을 품고 관리하시며 애타게 소원하시는 땅의 기력 회복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3. 최후에 땅은 원상태로 복원됨(사43:19,20)
1) 사막이 낙원으로 변화함
해마다 지구 표면이 사막화해 가고 있는 이 세계를 향해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광야와 사막에 샘과 강을 내어 사랑과 타조로 마시게 하고 그 땅을 택한 백성에게 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실제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체험하고 묘사한 사도 요한도 그 나라를 생명수 강이 흐르고 생명 나무가 즐비하며 푸른 잎사귀와 열매로 가득한 모습으로 그리고 있습니다(계22:1,2). 그는 그 물의 맑기가 수정과 같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도 모든 피조물들이 이러한 세계의 도래를 목마르게 고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롬8:21). 현대의 진정한 신비주의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점치듯 예언하고 환상을 보는 자가 아니라 이러한 아름다운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꿈꾸며 인간의 파괴로 신음하고 고통하는 자연 세계의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 합성 세제를 덜쓰며 자연 환경을 파수하는 일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는 자 아니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도래하면 눈에 보이는 모든 세계는 멸절되고 전혀 새로운 세계가 도래하리라는 환상부터 버려야 합니다. 재림하시는 예수께서는 만물을 새롭게 하셔서 이 아름다운 땅, 여호와 하나님이 본래 아름답게 지으신 그대로 우리로 살게 하실 것입니다(계21:5).
2) 성도는 새 하늘과 새 땅에 거함
성도가 분명히 깨달아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사야가 예언했고 사도 요한이 보았던 회복된 아름다운 여호와 하나님 나라, 즉 새 하늘과 새 땅은 성도들만의 처소이지 온 인류의 처소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가증한 일, 거짓말하는 자 등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합니다(계21:27). 그러므로 믿지 않는 이들은 거룩한 이 땅을 마음껏 파괴하고 더럽힐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의 경우는 다릅니다. 이 땅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깨끗이 하셔서 우리가 영원히 살 곳입니다. 따라서 우리 스스로 지금부터 주인 의식으로 깨끗이 해야 합니다. 세상에 자기 안방에 침을 함부로 뱉거나 휴지를 함부로 버리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성도에게는 바로 이러한 '안방 의식'이 필요합니다.
결론
예전에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이웃의 고난에 동참하고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는 성도를 가리켰지만 오늘날에는 한가지 덧붙여 스스로 환경 오염원을 줄이고 자연 환경 보호와 복원에 나서는 성도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일에 무관심할 때 여호와 하나님이 아름답게 지으셨고 또 본래 그 모습 그대로 복원되시길 원하시는 땅은 사단적인 역사에 의해 점점 파괴되고 황폐화되어 갈 것입니다. 지금 이 일을 위한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을 귀기울여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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