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하나님의 통치를 증거하는 자연
본문
세 사람이 함께 행하면 그 안에는 반드시 스승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물을 주의깊게 관찰하는 사람은 거기에서 남이 알지 못하는 교훈을 얻게 되고 삶의 지혜를 터득하는 법입니다. 자연도 마찬가집니다. 흔히들 자연을 인생의 학교라고 하는데, 그만큼 배울 게 많다는 말이며, 그 법칙과 내용이 여호와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음을 일깨워줍니다. 자연을 통해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의 측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이 세상을 어떻게 이끌어 가시는지 자연이라는 학교에 가면 잘 배우게 됩니다. 그런데 숱한 사람들이 이 학교에 들어가기를 거부함으로 소중한 기회를 상실했습니다.
1.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를 나타내시는 일반 계시(롬1:19)
1) 자연의 질서와 조화
아무리 성능이 좋은 기계라도 잘 훈련된 기술자가 없으면 제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뛰어난 멤버들로 구성이 된 오케스트라도 유능한 지휘자가 없으면 완벽한 연주를 할 수가 없게 됩니다. 자연도 마찬가집니다. 그것이 질서와 조화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이를 주관하시는 전능자의 손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자연의 질서와 조화를 통하여 모든 사람이 자신을 발견하도록 역사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알만한 것이 그분의 지으신 만물 속에 분명히 보인다는 바울의 증거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어떤 사람들의 사물에 대한 관찰력 없음을 질타하는 말입니다. 저절로 질서가 유지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것은 누군가 통제할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질서라는 말 자체가 다분히 피동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2) 자연의 엄청난 위력
예로부터 사람들은 자연신을 숭배하는 습관에 빠졌습니다. 대자연의 엄청난 위력을 보고도 배후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고 보이는 자연에 대해 경의를 표했던 것입니다. 뇌성벽력이 칠 때나 폭우가 쏟아져 강물이 범람하게 될 때에 우리는 자연의 위력을 실감하게 됩니다. 화산이 폭발하는 현장이나 지진으로 도시가 파괴된 곳, 가뭄이 계속되어 많은 토지들이 폐허가 되어 가는 곳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위력 앞에 설 때에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생각하게 됩니다. 노아 시대의 대홍수가 세계를 파멸시켰고(창6-8장). 소돔과 고모라 에 내린 유황과 불은 그 성을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창19장). 이처럼 자연은 여호와 하나님의 위력을 나타내는 도구입니다.
2. 인간의 지혜가 미칠 수 없는 신비의 세계(롬11:36)
1) 과학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
현대인들은 과학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과학 만능주의에 감염되어 있습니다. 이는 인간 인식의 한계와 무지를 단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현상입니다. 과학이 올린 개가가 결코 과소 평가될 수 없음은 사실이지만 대자연의 신비 앞에서 그것은 초라하기 그지 없습니다. 과학자들은 대서양을 가끔 강타하여 엄청난 피해를 입히는 허리케인을 근본적으로 막지 못하며, 파괴되어 가는 오존층을 회복시켜 원래의 상태로 돌려놓는 방법도 찾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우주 공간에 별이 몇 개나 있는지, 큰 별의 크기는 얼마나 되는 지도 모릅니다. 신비의 베일에 가려진 광대 무변의 우주 앞에서 인간은 자신의 지혜와 능력이 보잘것없음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2) 회개해야 할인간의 교만
예레미야는 만물보다 거짓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하였습니다(렘17:9). 제대로 아는 게 없으면서 마치 모든 것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거스름을 피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시 누가 사람 앞에서는 자랑거리가 많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는 초라하게 보일 뿐입니다. 방대한 자연을 보면서 우쭐한 마음을 갖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그는 제정신이 아닐 것입니다. 주께서 지으신 일개 피조 세계 앞에서도 어깨를 움츠리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애써 부인하고 그분께 드려야 할 경배를 거부한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우리는 그분 앞에 진정으로 회개하고 그분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불필요한 고집이 가져다주는 소득은 영원한 멸망밖에 없습니다.
3. 어리석음을 버려야 할 인류의 현실(잠1:7)
1) 평가할 수 없는 여호와 하나님
우리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관해 어느 정도 평가하는 게 가능합니다. 그의 성품이라든지 인격의 높낮이, 대인 관계 및 처세의 태도, 생활 능력, 그밖에도 여러 가지 사항들을 나름대로의 기준에 의해 추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아무도 평가할 수 없으며, 이러한 생각조차도 품어서는 안됩니다. 그분은 피조물이 아니라 창조주이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만들어냈다면 얼마든지 평가, 분석이 가능하지만 우리가 그에게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위해야 할 바른 태도는 외경심을 가지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평가하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즉시 자신의 어리석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도공은 자기가 만든 도자기를 평가할 수 있으나 도자기는 주인에게 그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2) 아직도 벗겨지지 않은 베일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대자연의 웅장함과 신비는 아직도 상당 부분이 베일 속에 가려져 있습니다. 과학적 탐구로 도달할 수 없는 곳입니다. 지금보다 훨씬 더 수준 높은 시대가 온다해도 주께서 공개하지 않으시는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도무지 알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주 시대에 대한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만 그들이 말하는 우주란 태양계가 고작입니다. 저 방대한 우주 공간의 다른 별자리들에 대해서는 지식이 거의 전무한 상태임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지구로부터 수십 억 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별들에 관한 이야기는 인간 지식의 한계를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아는 것이 제한되어 있음에도 모든 것을 아는 양 행세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결론
자연은 여러 측면에서 우주와 만물, 역사 및 세계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을 증거 하여 줍니다. 자연을 단지 있는 그대로만 보는 사람은 지혜가 없습니다. 그 속에 있는 주의 나타내심을 볼 수 있어야 하고, 우리에게 주는 무언의 메시지를 들어야 합니다. 자연보다 훌륭한 인생의 학교는 없을 터인데 많은 사람들이 그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1.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를 나타내시는 일반 계시(롬1:19)
1) 자연의 질서와 조화
아무리 성능이 좋은 기계라도 잘 훈련된 기술자가 없으면 제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뛰어난 멤버들로 구성이 된 오케스트라도 유능한 지휘자가 없으면 완벽한 연주를 할 수가 없게 됩니다. 자연도 마찬가집니다. 그것이 질서와 조화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이를 주관하시는 전능자의 손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자연의 질서와 조화를 통하여 모든 사람이 자신을 발견하도록 역사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알만한 것이 그분의 지으신 만물 속에 분명히 보인다는 바울의 증거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어떤 사람들의 사물에 대한 관찰력 없음을 질타하는 말입니다. 저절로 질서가 유지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것은 누군가 통제할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질서라는 말 자체가 다분히 피동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2) 자연의 엄청난 위력
예로부터 사람들은 자연신을 숭배하는 습관에 빠졌습니다. 대자연의 엄청난 위력을 보고도 배후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고 보이는 자연에 대해 경의를 표했던 것입니다. 뇌성벽력이 칠 때나 폭우가 쏟아져 강물이 범람하게 될 때에 우리는 자연의 위력을 실감하게 됩니다. 화산이 폭발하는 현장이나 지진으로 도시가 파괴된 곳, 가뭄이 계속되어 많은 토지들이 폐허가 되어 가는 곳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위력 앞에 설 때에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생각하게 됩니다. 노아 시대의 대홍수가 세계를 파멸시켰고(창6-8장). 소돔과 고모라 에 내린 유황과 불은 그 성을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창19장). 이처럼 자연은 여호와 하나님의 위력을 나타내는 도구입니다.
2. 인간의 지혜가 미칠 수 없는 신비의 세계(롬11:36)
1) 과학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
현대인들은 과학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과학 만능주의에 감염되어 있습니다. 이는 인간 인식의 한계와 무지를 단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현상입니다. 과학이 올린 개가가 결코 과소 평가될 수 없음은 사실이지만 대자연의 신비 앞에서 그것은 초라하기 그지 없습니다. 과학자들은 대서양을 가끔 강타하여 엄청난 피해를 입히는 허리케인을 근본적으로 막지 못하며, 파괴되어 가는 오존층을 회복시켜 원래의 상태로 돌려놓는 방법도 찾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우주 공간에 별이 몇 개나 있는지, 큰 별의 크기는 얼마나 되는 지도 모릅니다. 신비의 베일에 가려진 광대 무변의 우주 앞에서 인간은 자신의 지혜와 능력이 보잘것없음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2) 회개해야 할인간의 교만
예레미야는 만물보다 거짓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하였습니다(렘17:9). 제대로 아는 게 없으면서 마치 모든 것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거스름을 피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시 누가 사람 앞에서는 자랑거리가 많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는 초라하게 보일 뿐입니다. 방대한 자연을 보면서 우쭐한 마음을 갖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그는 제정신이 아닐 것입니다. 주께서 지으신 일개 피조 세계 앞에서도 어깨를 움츠리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애써 부인하고 그분께 드려야 할 경배를 거부한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우리는 그분 앞에 진정으로 회개하고 그분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불필요한 고집이 가져다주는 소득은 영원한 멸망밖에 없습니다.
3. 어리석음을 버려야 할 인류의 현실(잠1:7)
1) 평가할 수 없는 여호와 하나님
우리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관해 어느 정도 평가하는 게 가능합니다. 그의 성품이라든지 인격의 높낮이, 대인 관계 및 처세의 태도, 생활 능력, 그밖에도 여러 가지 사항들을 나름대로의 기준에 의해 추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아무도 평가할 수 없으며, 이러한 생각조차도 품어서는 안됩니다. 그분은 피조물이 아니라 창조주이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만들어냈다면 얼마든지 평가, 분석이 가능하지만 우리가 그에게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위해야 할 바른 태도는 외경심을 가지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평가하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즉시 자신의 어리석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도공은 자기가 만든 도자기를 평가할 수 있으나 도자기는 주인에게 그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2) 아직도 벗겨지지 않은 베일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대자연의 웅장함과 신비는 아직도 상당 부분이 베일 속에 가려져 있습니다. 과학적 탐구로 도달할 수 없는 곳입니다. 지금보다 훨씬 더 수준 높은 시대가 온다해도 주께서 공개하지 않으시는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도무지 알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주 시대에 대한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만 그들이 말하는 우주란 태양계가 고작입니다. 저 방대한 우주 공간의 다른 별자리들에 대해서는 지식이 거의 전무한 상태임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지구로부터 수십 억 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별들에 관한 이야기는 인간 지식의 한계를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아는 것이 제한되어 있음에도 모든 것을 아는 양 행세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결론
자연은 여러 측면에서 우주와 만물, 역사 및 세계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을 증거 하여 줍니다. 자연을 단지 있는 그대로만 보는 사람은 지혜가 없습니다. 그 속에 있는 주의 나타내심을 볼 수 있어야 하고, 우리에게 주는 무언의 메시지를 들어야 합니다. 자연보다 훌륭한 인생의 학교는 없을 터인데 많은 사람들이 그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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