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더 나은가정
본문
일반적으로 말하는 이상적인 가정의 개념으로는 기독교 가정의 개념을 충족시키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가정의 개념은 모든 것이 수평적 사고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의 가정은 자기 자신들의 유익과 행복만을 위해 존재하기를 거부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의 행복과 축복이 가정의 절대 절명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의 행복과 축복은 그 가정에서 생산되는 부산물에 있는 것입니다. 성도의 가정은 그 가정이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에 나타난 말씀은 물질에 대한 신앙의 우월성과 물질에 대한 사랑의 우월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자는 대신관계에 관한 것이고 후자는 대인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제가 설교제목을 '더 나은 가정'이라고 한 것은 일반적인 가정과 기독교 가정의 비교우위를 말하고자 함입니다.
'더 나은 가정'은
1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입니다(대신 관계).
본문 15장 16절에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 했습니다.
본문은 가산의 적은 것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을 등식화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라야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반드시 가난하거나 가난해야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물질에 의지하지 아니한다는 진리를 찾게 됩니다.
더 나은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하는 가정입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 실천에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0절에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고 했습니다.
1) 제 1계명입니다.
출애굽기 20장 3절에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고 했습니다.
나 외에는 (알 파나아)에서 히브리어 알()은 '올라가다'(rise, climb)의 뜻을 가진 알라에서 온 말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위에', '넘어' 혹은 '-에 대하여'(against)라는 뜻입니다. 여기 파나아()는 '돌아서다'라는 파님( )에서 파생된 말로 '얼굴 앞'이라는 의미입니다.
본문을 직역하면 '나의 얼굴 앞을 넘어서', '나의 얼굴 위에', 혹은 '나의 얼굴과 대립시켜서'가 됩니다. 따라서 본문의 의도는 여호와 하나님을 제외한 그 무엇도 여호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여기 다른 신들 (아헤르)은 '헛된', '이상한'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인간들에게는 헛된 신들이나 이상한 것들에 마음을 두는 경향이 있다는 경고입니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 외에 그 어떤 다른 신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십계명에 나타나는 말지어다 (로)는 절대적 금지명령입니다.
예레미야 25장 6절에 너희는 다른 신을 좇아 섬기거나 숭배하지 말며 너희 손으로 만든 것을 인하여 나의 노를 격동치 말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해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라고 했습니다.
2) 제 2계명입니다.
출애굽기 20장 4-5절에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고 했습니다.
제 2계명은 예술이나 창작활동을 위해 기타 다른 목적으로 사물의 형상을 조각하고 만드는 것까지 금지시킨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것을 만드는 목적이 종교적 경배나 구복(求福 )등의 목적으로 만들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것에 몸을 굽혀 존경이나 경배의 대상으로 삼지 말고 그것을 섬기는 노예가 되지 말라는 말입니다.
여기 여호와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대까지 이르게 한다는 말은 징벌의 연좌(緣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부모들의 죄가 자식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의 심각성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어떤 이들은 여자적 해석을 고집하고 있으나 그렇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에 반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푼다는 말도 마찬가지로 자기 백성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속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3) 제 3계명입니다.
출애굽기 20장 7절에 너는 너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고 했습니다.
이름은 인격의 대명사라고 합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물은 그 이름으로 자신의 정체를 유감없이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이전까지는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얍복강에서 씨름하던 야곱이 이름을 물을 때 거절했습니다(창 32:29). 그러나 출애굽 사건을 통해 마침내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자기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 주신 것은 계시적 사건입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우리의 지배자이시며 인간을 찾아오시는 계시자이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곧 헛되이 혹은 함부로 사용할 때 큰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십계명 중에 절대하지 말라는 계명이 8가지인데 그 처벌 규정이 명시되어 있는 계명은 2가지 뿐입니다. 그것은 2계명, 3계명으로 제 2계명은 우상숭배 금지이고 제 3계명은 여호와 하나님의 성호오용 금지계명입니다.
4) 제 4계명입니다.
출애굽기 20장 8절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형식적인 안식일 제도에 얽매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마가복음 2장 27절에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처럼 안식일 규례를 문자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안식일에는 세속적 일을 쉬고 오직 거룩한 생활을 힘쓰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레위기 19장 3절에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니라 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23장 12절에 너는 육일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제 칠일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계집 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고 했습니다.
이상 4계명은 대신관계에 대한 계명입니다.
'더 나은 가정'은
2 서로 사랑하는 가정입니다.
본문 15장 17절에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 했습니다.
본문에서는 채소 먹는 것과 사랑을 등식화 했고 살진 소를 먹는 것과 미워하는 것을 등식화했습니다.
채소를 먹어야 사랑하게 되고 살진 소를 먹으면 미워하게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사람들이 먹고 살 걱정이 없게 될 때 다투고 미워하는 요소들을 경계하는 말입니다.
전도서 4장 6절에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으려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 했습니다.
전도서 5장 12절에 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배부름으로 자지 못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자와 나사로 비유에서도 부자의 행위를 경계했습니다.
누가복음 16장 9절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고 했습니다.
부자들은 더 많은 부를 위해 미움과 싸움을 계속하기 때문에 결국은 멸망을 자초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5절에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고 했습니다.
1) 제 5계명입니다.
출애굽기 20장 12절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여호와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부모는 단순히 육친의 부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출애굽기 21장 15절에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찌니라 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21장 17절에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고 했습니다.
레위기 20장 9절에 무릇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 그가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였은즉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9절에 알 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며 아비를 치는 자와 어미를 치는 자며 살인하는 자며 라고 했습니다.
2) 제 6계명입니다.
출애굽기 20장 13절에 살인하지 말찌니라 라고 했습니다.
모든 생명은 여호와 하나님께로 온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인간의 생명을 함부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신약에 와서는 살인의 결과를 낳을 수 있는 모든 원인까지도 금지시켰습니다.
마태복음 5장 21-22절에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고 했습니다.
요한1서 3장 15절에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고 했습니다.
3) 제 7계명입니다.
출애굽기 20장 14절에 간음하지 말찌니라 고 했습니다.
남녀의 성(性)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성스러운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일부일처의 원리를 허락하셨습니다(창 2:21-25).
이것은 장차 이루어질 신랑 되신 그리스도와 신부되는 교회와의 연합을 예표하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31-32절에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고 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성스러운 관계가 그 어떤 이유로도 파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계명을 더욱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27-28절에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 17-20절에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 했습니다.
성도들은 성 윤리에 엄격하고 거룩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11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고 했습니다.
4) 제 8계명입니다.
출애굽기 20장 15절에 도적질하지 말찌니라 고 했습니다.
이것은 자기 이웃에 대한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계명입니다. 도적질 개념은 단순히 남의 물건을 훔쳐 가는 것에 국한시키지 아니했습니다.
사기, 착복, 직접적인 것이 아니라도 부주의나 태만으로 인해 이웃의 재산에 손해를 입히는 모든 행위까지를 포함합니다.
현대에서 도적질은 단순히 물적 재산뿐만 아니라 당연히 기술, 지식, 정보 같은 지적 재산에도 동일하게 미치고 있습니다.
5) 제 9계명입니다.
출애굽기 20장 16절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찌니라 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웃에 대한 위증(僞證)의 금지 규정입니다. 근거 없는 말이나 행위로 형제를 욕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거짓은 마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고 했습니다.
6) 제 10계명입니다.
출애굽기 20장 17절에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고 했습니다.
이것은 탐심(貪心)을 경계한 계명입니다. 탐심은 자신의 정당한 소유이상을 소유하려고 하는 불타는 듯한 욕망입니다. 탐심은 모든 죄악을 일으키는 근원이 되기 때문에 이 계명이 제일 마지막에 나온 것 같습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고 했습니다.
3 이 두 계명을 실천하는 개혁주의 신앙의 가정입니다.
마태복음 22장 37-40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고 했습니다.
개혁주의 교회(성도)가 무엇이냐고 할 때
① 사상적 원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 제일주의입니다.
② 실천적 원리는 신행일치의 삶 즉, 순교적 삶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③ 생활원리는 여호와 하나님 중심, 성경중심, 교회중심입니다. 순교적 정신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1-4계명의 실천에 있습니다.
순교적 정신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5-10계명의 실천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정의 달이라는 미명아래 한국교회 강단에 복음이 양보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있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된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11절에 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6절에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4장 10절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4장 16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여호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 안에 거하고 여호와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은 결국 교회 운동에서 그 열매를 보게 됩니다. 말세에는 자기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는 시대입니다(딤후 4:3). 모든 것이 종교화로 치닫는 시대입니다.
여기에 나타나는 병리현상은 우상 숭배로 직결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이 절대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우상입니다.
말세의 징조에 대해서 디모데후서 3장 1-5절에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여호와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곧 복음을 나누어 주는 전도행위로 나타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하는 운동,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해야 될 사람들을 찾는 일이 전도운동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 운동입니다. 우리가 알 것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이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더 나은 본향은 천국입니다. 더 나은 부활은 영생입니다. 더 나은 제사는 여호와 하나님께 열납되는 제사입니다. 더 나은 교육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교육입니다. 더 나은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하는 기독교 가정입니다. 그 중에서도 더 나은 가정은 이 일을 더 낫게 하는 가정입니다. 처처에 지진과 기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말세의 징조입니다. 더 나은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현실적 긴장감이 녹아져 있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의 행복과 축복이 가정의 절대 절명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의 행복과 축복은 그 가정에서 생산되는 부산물에 있는 것입니다. 성도의 가정은 그 가정이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에 나타난 말씀은 물질에 대한 신앙의 우월성과 물질에 대한 사랑의 우월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자는 대신관계에 관한 것이고 후자는 대인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제가 설교제목을 '더 나은 가정'이라고 한 것은 일반적인 가정과 기독교 가정의 비교우위를 말하고자 함입니다.
'더 나은 가정'은
1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입니다(대신 관계).
본문 15장 16절에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 했습니다.
본문은 가산의 적은 것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을 등식화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라야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반드시 가난하거나 가난해야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물질에 의지하지 아니한다는 진리를 찾게 됩니다.
더 나은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하는 가정입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 실천에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0절에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고 했습니다.
1) 제 1계명입니다.
출애굽기 20장 3절에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고 했습니다.
나 외에는 (알 파나아)에서 히브리어 알()은 '올라가다'(rise, climb)의 뜻을 가진 알라에서 온 말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위에', '넘어' 혹은 '-에 대하여'(against)라는 뜻입니다. 여기 파나아()는 '돌아서다'라는 파님( )에서 파생된 말로 '얼굴 앞'이라는 의미입니다.
본문을 직역하면 '나의 얼굴 앞을 넘어서', '나의 얼굴 위에', 혹은 '나의 얼굴과 대립시켜서'가 됩니다. 따라서 본문의 의도는 여호와 하나님을 제외한 그 무엇도 여호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여기 다른 신들 (아헤르)은 '헛된', '이상한'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인간들에게는 헛된 신들이나 이상한 것들에 마음을 두는 경향이 있다는 경고입니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 외에 그 어떤 다른 신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십계명에 나타나는 말지어다 (로)는 절대적 금지명령입니다.
예레미야 25장 6절에 너희는 다른 신을 좇아 섬기거나 숭배하지 말며 너희 손으로 만든 것을 인하여 나의 노를 격동치 말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해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라고 했습니다.
2) 제 2계명입니다.
출애굽기 20장 4-5절에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고 했습니다.
제 2계명은 예술이나 창작활동을 위해 기타 다른 목적으로 사물의 형상을 조각하고 만드는 것까지 금지시킨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것을 만드는 목적이 종교적 경배나 구복(求福 )등의 목적으로 만들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것에 몸을 굽혀 존경이나 경배의 대상으로 삼지 말고 그것을 섬기는 노예가 되지 말라는 말입니다.
여기 여호와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대까지 이르게 한다는 말은 징벌의 연좌(緣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부모들의 죄가 자식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의 심각성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어떤 이들은 여자적 해석을 고집하고 있으나 그렇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에 반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푼다는 말도 마찬가지로 자기 백성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속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3) 제 3계명입니다.
출애굽기 20장 7절에 너는 너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고 했습니다.
이름은 인격의 대명사라고 합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물은 그 이름으로 자신의 정체를 유감없이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이전까지는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얍복강에서 씨름하던 야곱이 이름을 물을 때 거절했습니다(창 32:29). 그러나 출애굽 사건을 통해 마침내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자기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 주신 것은 계시적 사건입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우리의 지배자이시며 인간을 찾아오시는 계시자이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곧 헛되이 혹은 함부로 사용할 때 큰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십계명 중에 절대하지 말라는 계명이 8가지인데 그 처벌 규정이 명시되어 있는 계명은 2가지 뿐입니다. 그것은 2계명, 3계명으로 제 2계명은 우상숭배 금지이고 제 3계명은 여호와 하나님의 성호오용 금지계명입니다.
4) 제 4계명입니다.
출애굽기 20장 8절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형식적인 안식일 제도에 얽매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마가복음 2장 27절에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처럼 안식일 규례를 문자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안식일에는 세속적 일을 쉬고 오직 거룩한 생활을 힘쓰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레위기 19장 3절에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니라 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23장 12절에 너는 육일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제 칠일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계집 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고 했습니다.
이상 4계명은 대신관계에 대한 계명입니다.
'더 나은 가정'은
2 서로 사랑하는 가정입니다.
본문 15장 17절에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 했습니다.
본문에서는 채소 먹는 것과 사랑을 등식화 했고 살진 소를 먹는 것과 미워하는 것을 등식화했습니다.
채소를 먹어야 사랑하게 되고 살진 소를 먹으면 미워하게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사람들이 먹고 살 걱정이 없게 될 때 다투고 미워하는 요소들을 경계하는 말입니다.
전도서 4장 6절에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으려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 했습니다.
전도서 5장 12절에 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배부름으로 자지 못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자와 나사로 비유에서도 부자의 행위를 경계했습니다.
누가복음 16장 9절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고 했습니다.
부자들은 더 많은 부를 위해 미움과 싸움을 계속하기 때문에 결국은 멸망을 자초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5절에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고 했습니다.
1) 제 5계명입니다.
출애굽기 20장 12절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여호와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부모는 단순히 육친의 부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출애굽기 21장 15절에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찌니라 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21장 17절에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고 했습니다.
레위기 20장 9절에 무릇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 그가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였은즉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9절에 알 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며 아비를 치는 자와 어미를 치는 자며 살인하는 자며 라고 했습니다.
2) 제 6계명입니다.
출애굽기 20장 13절에 살인하지 말찌니라 라고 했습니다.
모든 생명은 여호와 하나님께로 온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인간의 생명을 함부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신약에 와서는 살인의 결과를 낳을 수 있는 모든 원인까지도 금지시켰습니다.
마태복음 5장 21-22절에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고 했습니다.
요한1서 3장 15절에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고 했습니다.
3) 제 7계명입니다.
출애굽기 20장 14절에 간음하지 말찌니라 고 했습니다.
남녀의 성(性)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성스러운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일부일처의 원리를 허락하셨습니다(창 2:21-25).
이것은 장차 이루어질 신랑 되신 그리스도와 신부되는 교회와의 연합을 예표하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31-32절에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고 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성스러운 관계가 그 어떤 이유로도 파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계명을 더욱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27-28절에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 17-20절에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 했습니다.
성도들은 성 윤리에 엄격하고 거룩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11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고 했습니다.
4) 제 8계명입니다.
출애굽기 20장 15절에 도적질하지 말찌니라 고 했습니다.
이것은 자기 이웃에 대한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계명입니다. 도적질 개념은 단순히 남의 물건을 훔쳐 가는 것에 국한시키지 아니했습니다.
사기, 착복, 직접적인 것이 아니라도 부주의나 태만으로 인해 이웃의 재산에 손해를 입히는 모든 행위까지를 포함합니다.
현대에서 도적질은 단순히 물적 재산뿐만 아니라 당연히 기술, 지식, 정보 같은 지적 재산에도 동일하게 미치고 있습니다.
5) 제 9계명입니다.
출애굽기 20장 16절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찌니라 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웃에 대한 위증(僞證)의 금지 규정입니다. 근거 없는 말이나 행위로 형제를 욕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거짓은 마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고 했습니다.
6) 제 10계명입니다.
출애굽기 20장 17절에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고 했습니다.
이것은 탐심(貪心)을 경계한 계명입니다. 탐심은 자신의 정당한 소유이상을 소유하려고 하는 불타는 듯한 욕망입니다. 탐심은 모든 죄악을 일으키는 근원이 되기 때문에 이 계명이 제일 마지막에 나온 것 같습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고 했습니다.
3 이 두 계명을 실천하는 개혁주의 신앙의 가정입니다.
마태복음 22장 37-40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고 했습니다.
개혁주의 교회(성도)가 무엇이냐고 할 때
① 사상적 원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 제일주의입니다.
② 실천적 원리는 신행일치의 삶 즉, 순교적 삶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③ 생활원리는 여호와 하나님 중심, 성경중심, 교회중심입니다. 순교적 정신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1-4계명의 실천에 있습니다.
순교적 정신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5-10계명의 실천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정의 달이라는 미명아래 한국교회 강단에 복음이 양보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있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된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11절에 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6절에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4장 10절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4장 16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여호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 안에 거하고 여호와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은 결국 교회 운동에서 그 열매를 보게 됩니다. 말세에는 자기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는 시대입니다(딤후 4:3). 모든 것이 종교화로 치닫는 시대입니다.
여기에 나타나는 병리현상은 우상 숭배로 직결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이 절대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우상입니다.
말세의 징조에 대해서 디모데후서 3장 1-5절에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여호와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곧 복음을 나누어 주는 전도행위로 나타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하는 운동,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해야 될 사람들을 찾는 일이 전도운동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 운동입니다. 우리가 알 것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이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더 나은 본향은 천국입니다. 더 나은 부활은 영생입니다. 더 나은 제사는 여호와 하나님께 열납되는 제사입니다. 더 나은 교육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교육입니다. 더 나은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하는 기독교 가정입니다. 그 중에서도 더 나은 가정은 이 일을 더 낫게 하는 가정입니다. 처처에 지진과 기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말세의 징조입니다. 더 나은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현실적 긴장감이 녹아져 있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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