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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그리스도인의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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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16일에 보건복지부에서 "97년 모자 가정 실태조사"를 발표한 바가 있습니다. 이 조사에서 모자복지법상에 전국에 재가(在家)생활보호대상자가 1만9천7백64가구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중에 주목해 볼만한 내용은 생활보호대상자가 되는 사례 가운데 남편의 죽음으로 인한 경우가 1만1천2백18가구(56. 8%)이고, 이혼에 의한 경우는 5천7백72가구(29. 2%)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가족의 건강과 안전문제가 중요하다는 것과 이혼문제의 심각성에 대하여 부분적이긴 하지만 중요한 정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정이 육신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안정되고 건강해야 한다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그리고 요즘들어 우리 나라 복지시설이나 고아원의 원아들은 부모의 사별보다는 이혼으로 인하여 버림받거나 미혼모에 의해 버려진 아이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가정의 중요성은 이렇게 성경 외의 사회적인 현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정을 이루는 가장 기초적인 관계는 결혼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부부관계입니다. 특히 요즘은 결혼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가치관이 많이 달라져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혼과 가정에 사회적 가치가 어떻게 바뀌어 간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성경적인 원리를 적용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연구할 본문은 구약 시대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가 당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의 가정생활의 잘못을 드러내면서 가정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개혁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오늘 설교의 주제는 그리스도의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주제를 연구하면서 첫 번째로는 가정을 이루는 단계인 결혼문제와 두 번째로는 이미 가정을 이룬 사람들의 부부생활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결혼문제(말2:10-12)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신자들은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 할까요 결혼 대상자를 선택할 때 여러분들의 우선적인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인 신자가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 할까요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지의 문제를 말하기 위하여 중요한 문제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10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바가 아니냐" 여기에 "우리"는 누구를 말하는 것이며, "한 아버지"는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1차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키는 것을 분명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문맥적으로 볼 때 여호와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는 사람은 모두 한 가족이겠지요
그런데 이 본문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아버지가 되시고 이스라엘은 한 형제관계가 된다는 점을 밝히는 의도가 어디에 있을까요 10절 하반절에 "어찌하여 우리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궤사를 행하여 우리 열조의 언약의 욕되게 하느냐"라는 말씀에 나타나 있습니다. 여기에 열조의 언약이라는 것은 그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의미합니다. 이 언약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셔서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고, 이방인들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에 있는 이스라엘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존재방식은 특별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궤사를 행하여 욕되게 하느냐"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궤사를 행하다"는 말의 원어적인 의미는 믿을 수 없는 행동을 하거나 배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점에 대하여 여러 영어 번역성경이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만 그 중에 N4에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에는 "서로의 믿음을 깨뜨리는 것"(breaking faith with one another)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면 서로의 믿음을 깨뜨리는 행동은 무엇일까요 11절을 보십시오. "유다는 궤사를 행하였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중에서도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유다는 여호와의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였느니라. " 유다와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심판을 받은 원인이 여호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배반한 일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고국에 돌아온 이들은 종교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성결해야 합니다. 특히 한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고 있는 자들은 이 점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의 믿음을 파괴하는 행동을 하였고, 가증한 일을 하였습니다. 이 점을 이 본문은 무엇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까 이 본문에서 "여호와의 사랑하시는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문제는 이방인과의 통혼을 말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는 문제입니다. 특히 성경은 믿는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과의 결혼에 대하여 많이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이방인과의 통혼을 금지한 가장 중요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서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고, 또한 이방인과의 혼인은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이 타락하는 통로로 이해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본문에서도 이방인과 결혼하는 것을 가리켜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성결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본문에서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궤사를 행한 일"이나 "가증한 일"은 이방신의 딸과 결혼한 일을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러한 본문을 볼 때 믿는 신자들은 우선적으로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 할까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과 결혼해야 합니다. 이것이 건전한 가정생활의 출발점입니다. 저희 교회 믿음의 가족들 가운데 한 사람도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신자가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을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방신을 섬기는 자들, 즉 믿지 않는 자들과 결혼해서는 안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결혼하여 믿게 하겠다는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실제로 요즘 기독교 가정 세미나를 인도하는 강사들 가운데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여 그 사람을 믿게 하면 된다고 가르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는 성경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에 대하여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구원받는 일은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믿음은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내가 믿게 하면 여호와 하나님 앞에 자랑할 거리가 있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아니면 자기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결단코 믿을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택한 사람의 특징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신자는 반드시 믿는 사람과 결혼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은 반드시 믿는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는 것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6:12-18에서 자세하게 설명하였습니다.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여호와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 당시 고린도 교회의 사람들은 이방인과 결혼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을 마음이 좁은 행동으로 이해한 것같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좁아진 것은 우리가 전하는 말씀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가 좁아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아비가 자녀에게 말하듯이 간곡한 어조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해서는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믿지 않는 자들과 결혼하는 것을 이렇게 금지하는 이유는 그것이 이방화되는 통로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솔로몬은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이방인과 결혼할 때 우상숭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관계에 있는 백성으로서 언약의 말씀을 부도덕한 일을 행할 때 여호와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까요 이 본문에서 말라기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배반한 자들에게 심판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이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속한 자는 깨는 자나 응답하는 자는 물론이요 만군의 여호와께 제사드리는 자도 여호와께서 야곱의 장막에서 끊어 버리시리라. " 믿지 않는 이방인과 결혼하는 일을 얼마나 가증한 일로 간주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깨는 자나 응답하는 자"(히. )는 말 그대로 직역하면 "깨우는 자와 대답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일종의 관용구입니다. 그 의미는 "그가 어떤 사람이든, 혹은 누구이든 간에"라는 뜻입니다. N4성경은 이 관용구를 "그가 누구이든지 간에"(whoever he may be)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그가 누구이든 간에 심지어 여호와께 제사드리는 자라고 할지라도 이방인과 통혼하는 자는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믿는 자들이 결혼할 때 결혼 상대자를 선택하는 문제에 대하여 신경을 써야 되겠지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엘빈 토플러라는 미래학자는 제 3물결(The Third Wave, 1980)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에서 지식, 규범, 경제, 국가 등의 문제를 다루었는데 그 중에 가족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전통사회에서는 배우자를 구할 때 일을 잘 하느냐, 자녀교육을 잘 할 수 있느냐, 부지런한가 등이 중요한 기준이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1물결입니다. 제2물결인 산업사회가 시작되면서 가정이 축소되고 핵가족화되면서 사랑이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이 때부터 미모와 성적인 만족 등을 구하게 되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제3물결인 정보화사회가 되면서 사랑만 가지고 살 수 없고 프러스 알파(+)가 있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그가 말하는 프러스 알파(+)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두뇌와 능력입니다. 사실 그의 지적은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있는 이 시대에 상당히 예언이 적중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요즘 프러스 알파를 사랑이 있으면 좋지만 예로부터 신분상승과 자기의 욕구만족과 관련된 부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신자이면서도 이 점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면 그것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외적인 조건을 보면 안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점도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무엇보다도 그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을 올바르게 섬기는 사람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몇 번 만나보고 알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그 부모들이 다 믿느냐, 그 형제들은 어떤 사람인가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표준은 본인의 믿음과 신앙인격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명하신 방법대로가 아니면 상대방이 어떤 가문이나 미래가 예약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면 결혼해서는 안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들과 결혼하는 일은 건강한 가정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기초입니다.
2. 부부생활(말2:13-16)
그러면 우리 신자는 결혼한 부부 사이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신자는 결혼식을 하면 여호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서약합니다. 그 서약 내용에 이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두 사람을 죽음으로 나누실 때까지, 신실한 아내와 남편으로서 평생토록 괴로우나 즐거우나, 가난하거나 부하거나, 병들거나 건강하거나, 어떤 환경 중에서라도 서로 사랑하고 순종하기를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서약합니다…" 우리 개혁주의 교회에서 이 부부관계의 서약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서약은 부부간의 약속만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서약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서약의 말씀에 따라 행하고 있습니까 말라기 선지자가 활동하던 당시에 부부생활은 문제가 많이 있었습니다. 말라기 2:13-14을 보십시오. "너희가 이런 일도 행하나니 곧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단을 가리우게 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다시는 너희의 헌물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아니하시거늘 너희는 이르기를 어찜이니이까 이는 너와 너의 어려서 취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일찍이 증거하였음을 인함이니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맹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궤사를 행하는도다. "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이 말씀은 어려서 취한 아내, 즉 조강지처가 남편의 학대에 못 이겨 여호와 하나님의 제단에 나와서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제단을 가득하게 했다는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은 아내를 학대해서는 안됩니다.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여호와 하나님의 제단 앞에 나와서 눈물과 탄식으로 고통하겠습니까 말라기 선지자는 아내를 고통스럽게 하는 이유로 인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제단에 나와서 드리는 예물을 받지 않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말라기 2:14을 보십시오. "어찜이니이까"() 이 말의 문자적인 의미로는 "왜요"라는 뜻입니다. 이 질문은 문맥적으로 본다면 성경이 명한 방법에 따라 결혼하지도 않고, 또한 조강지처를 학대하였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이 예배를 받지 않았는데도 "왜 제사를 받지 않는 것입니까"라고 여호와 하나님께 불만을 표시하는 질문입니다. 백성들의 이러한 질문은 그들이 악한 행동을 하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분별력이 없으면 우리가 행한 일에 대하여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자신들이 행한 일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있고, 그들이 드리는 제사를 받지 않는 일에 대하여 "왜 제사를 받지 않습니까"라고 질문하는 이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증거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이르기를 어찜이니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너의 어려서 취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일찍이 증거하셨음을 인함이니라. " 이 말씀에서 참 중요한 말은 "이는 너와 너의 어려서 취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일찍이 증거하셨음을 인함이니라. "라는 표현입니다. 이 말씀을 직역하면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너와 너의 젊을 때 얻은 아내 사이에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다. " 여호와 하나님께서 혼인관계에 증인이 되시기 때문에 응답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하여 N4 성경이 그 의미를 잘 번역하였습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 사이에 증인으로 행동하시기 때문이다. "(It is because the Lord is acting as the witness between you and the wife of your youth) 혼인은 맹세의 엄숙성이 큰 종교적 행위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을 이 결혼언약의 증인으로 삼는 것이며, 그 결혼언약을 위약할 경우 여호와 하나님이 그 언약에 증인이시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징벌을 받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결혼 당시에 여호와 하나님께 서약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아내나 남편에게 눈물과 탄식을 주면서 주님을 섬긴다고 한다면 여호와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는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언약의 증인으로서 행동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조강지처를 버리는 것은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잠2:7).
왜 이혼이 잘못되었고, 아내를 학대하는 것이 잘못되었는지를 15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실지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치 말지니라. " 이 말씀은 번역하기에 어려운 말씀입니다. 특히 여기에 "영이 유여하실지라도"라는 말은 대단히 어려운 말입니다. 이 말씀의 중요한 의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능력이 많으시다고 할지라도 아담을 창조하신 후에 여러 여자를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오직 한 여자만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신 목적은 남녀의 정상적인 결혼을 통하여 하나를 만들고 경건한 자손을 얻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아내를 버리는 이혼에 대하여 마태복음 19:4-6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되게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러므로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한 몸을 이루었기 때문에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치 말지니라. "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궤사를 행하는 일은 어떤 일을 말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문맥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내를 학대하는 것과 다른 여자와 관계를 가지는 것 등입니다. 오늘날의 가정의 문제들, 심지어는 이혼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은 대개가 성을 바르게 사용하지 못하는데 그 원인이 있습니다. 반드시 결혼하여 남자는 자기 아내와, 여자는 자기 남편과만 성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혼전 성관계나 다른 남자나 여자와의 관계는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허용될 수 없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부부가 늘 함께 다니십시오. 쇼핑도 함께 가시고, 운동도 같이 즐기십시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7:5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 부부생활 가운데 기도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서로 분방하지 말 것을 말합니다. 여행가도 혼자 훌쩍 떠나지 마시고 자주 대화하십시오. 기도하는 일 외에는 분방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은 여기서 이혼하는 문제와 함께 아내를 학대하는 문제를 함께 취급하고 있습니다. 특히 "학대로 옷을 가리는 자"라는 말은 성경의 사상을 이해하면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구약에 보면 한 남자가 여자에게 겉옷을 던지면 그 여자는 그의 아내 됨을 보여주는 행동입니다(룻3:9). 남편된 자라면 마땅히 사랑의 옷으로 덮어야 합니다(겔16:8).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학대로 옷을 덮는다고 할 때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내를 사랑으로 감싸는 것이 아니라 폭력으로 그 몸을 상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매 맞는 아내가 많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얼마전 TV 드라마에서 아씨는 연속극을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이 드라마를 잠시 보면서 세상에 이렇게 속좁고 못된 남편도 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그렇게 참는 것이 양반의 덕목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을 보고 상당히 놀랐습니다. 조선일보 기자인 조성관 씨가 쓴 아! 대한민국이라는 책에 이러한 사고는 모두 유교문화의 잔재라고 하면서 유교가 우리 나라를 망치게 하였다고 개탄하였습니다. 그는 그 책에서 유교적 이념이나 가치에서 남녀의 차별과 가부장적인 권위주의를 미덕으로 가르쳐 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그의 주장에 저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전통적인 가치라고 말하는 유교적 이념을 버리지 않으면 소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시대가 많이 변하여서 매 맞는 남편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어떤 경우든지 아내를 학대하거나 남편을 학대하지 마십시오. 어떤 남편은 아예 아내와 대화를 하지 않음으로 상처를 주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아내를 속으로 곪아터지게 만듭니다. 많은 심리학자들의 보고에 의하면 고상한척 하면서 싸우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부부보다 싸우는 부부가 오히려 더 건강하다고 하였습니다. 과묵한 것처럼 보이지만 대화를 하지 않는 사람은 정신위생에 좋지 않습니다. 이 일은 아내나 남편의 속을 곪아 터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큰 일이든지, 작은 일이든지 서로 대화하십시오. 말라기 선지자는 이 말씀을 마치면서 "그러므로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궤사를 행치 말지니라. "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남편이 아내를 학대하는 일은 믿음을 깨는 일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본문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정생활의 핵심을 이루는 결혼이나 결혼으로 이루어지는 부부생활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믿는 신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답게 언약의 말씀에 따라 결혼해야 합니다. 세상적으로 보이는 외적인 조건에 따라 보지 말고 그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인지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이것이 건강한 가정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기초입니다. 그리고 이미 결혼한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행한 서약을 이행하기 위하여 힘써야 합니다. 만약에 그 서약대로 이행하지 않는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언약에 말씀하신 대로 이행하실 것입니다. 특히 그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지런히 교회 생활을 한다고 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은 그와 교제하지 않을 것이며, 복을 주시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을 명심하십시오. 여호와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은혜와 축복 가운데 살기를 원하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올바른 가정을 이루는 일에 힘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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