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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가정생활의 부패

본문

이스라엘은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구심점으로 형성된 신앙공동체요 언약공동체이다. 숱한 외침속에서도 민족의 근간인 신앙의 순수성과 여호와 하나님과의 언약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방 민족들과 구별된 생활이 요구되었고, 그러기 위해 이방 女人들과의 혼인이 금지되었고, 동족끼리 결혼한 사람들의 불법적인 이혼이 여호와의 명령으로 금지되었다.
오늘 세태는 점차 다원화 되어가고 분권화 되어가는 현대사회에서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큰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와 그리스도인 가정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하여 더욱 기도하고 노력할 때만이 진실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본다.
요즈음 이혼율이 무척 높다. 세쌍중 한 쌍이 이혼한다고 한다. 이것은 성급하게 결혼에 임하는 태도와 결혼 생활에 대한 인내와 이해의 부족과 배려할 줄 모르는 사고방식 때문이다. 특히 신자들은 결혼을 하기 전에 심사숙고 해야할 것이며, 일단 결혼을 했으면 서로가 상대방에 대한 책임을 철저히 지키며 여호와 하나님의 命令을 따라야 한다.
죽음이 두 사이를 갈라놓기 전에는 이혼해서는 안되고 불화의 조건들을 서로의 대화와 이해를 통해서 제거해 나가야 한다. 오늘날 이방혼인과 이혼을 통해서 사탄의 공격을 받아 가정 생활이 얼마나 부패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 부패해 가는 가정 생활을 들여다보면서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축복하시는 행복한 가정, 복된 가정으로 든든히 서가기를 바랍니다.
1). 아내의 눈물을 여호와 하나님은 기억하신다.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한 여호와의 책망이 계속된다.
이방 女人과 결혼한 자들을 책망하시며 합법적인 아내를 버려 그녀들의 호소가 여호와 하나님께 상달되었으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죄악 때문에 헌물을 외면하신다는 경고이다.
本文 10-17절은 이스라엘의 가정 생활의 타락과 부패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다.
10-12절, 13-17절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전반부는 이스라엘 전체를 하나의 가정으로 보고 이스라엘이라는 가정이 어떻게 부패했는가를 경고하셨고,
후반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정 하나 하나가 실제적으로 어떻게 부패하여 가는 가를 경고하고 있다.
대체적인 내용은 아내를 학대하는 남편을 경고하면서 아내를 사랑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本文 10절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바가 아니냐 어찌하여 우리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궤사를 행하여 우리 열조의 언약을 욕되게 하느냐"고 하심과 같이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주시요, 이스라엘의 아버지시요 우리들의 아버지시이다.
그러므로 본문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창조주라고 하심은 일반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택한 이스라엘을 지으시고 양육하시고 그들의 혼인과 가정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시는 아버지로서의 창조주였다. 일찍이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경고하신 말씀중에 신 32:26 "우매무지한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너의 아버지가 아니냐 너를 지으시고 세우셨도다"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의 존재 양식과 살아가는 생활 양식은 특별해야 했다.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렇지만 그들 각 이웃간의 관계, 가족, 특히 부부간의 관계도 한 형제로서의 새로운 관계이어야 했다.
그런데 13절-14절에 보니 "여호와께서 다시는 너희의 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아니하시기를 너희는 이르기를 어찜이니까 하도다 이는 너와 너의 어려서 취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일찍이 증거 하셨음을 인함이니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맹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궤사를 행하도다"라고 하신다.
말라기 선지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12절에 보니 "이방신의 딸과 결혼하였고, 또 어려서 취한 합법적인 아내에게 궤사를 행한 가정의 부패함과 타락함을 지적하고 있다. 결혼은 여호와 하나님의 신성한 창조의 원리이므로 이 결혼의 맹약을 파기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리는 일이요,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기만적인 맹세를 한 가증한 인간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은 이와 같은 죄악이 자행되고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정에서 아내를 핍박하고 학대함으로서 아내가 그 학대와 멸시와 구타와 핍박에 못 이겨 집에서 나와 여호와 하나님의 제단에 엎드려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고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아내라는 한 女子를 괴롭게 한 죄만 범한 것이 아니다. 그 남편은 한 가정의 평화를 깨뜨렸으며 가정을 통해 축복하시고 거룩한 섭리를 펼치시려는 여호와 하나님의 의도를 좌절케 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은 그를 맹렬히 책망하시고 경고하시고 저주하신다. 그것은 아내에게 궤사를 행하는 남편의 "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며 그것을 그들의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않으시는 것이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가 어디서 어떻게 예배를 드릴지라도 받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예배를 받지 않으시니 그가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다. 예배가 없으니 회개도 없고, 예배가 없으니 거룩도 없으며, 예배가 없으니 새롭게 됨도, 축복도 없어지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악행을 저지르는 자의 제물은 아무리 화려할지라도 받지 않으신다.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눈물과 탄식으로 자기의 고난을 아뢰고 주께 의지하는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위로하시며, 치유하시고 축복하신다. 사1: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고 하셨다.
마음이 청결해지는 회개와 고백이 있어야 그 기도의 응답이 있는 법이요 예물을 받으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에 부패한 구석은 없습니까 부부사이는 어떠합니까 자녀 사이는 어떠합니까 형제 사이는 어떠합니까 고부사이는 어떠합니까 이웃사이는 어떠합니까 여호와 하나님께 맹약한 언약이 살아있습니까 이 세상은 오늘 우리의 가정을 부패케 만들고 파괴시키려 타락의 올무를 놓고 있습니까
전화방, 단란주점, 락카페, 인터넷 싸이버 공간, 불건전한 채팅으로 인한 불륜, 3류 영화관, 여기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여러분의 가정을 소중히 지켜가야합니다.
인도의 한 장사꾼이 그의 집을 팔기로 하고 광고사원을 고용했다.
그 집에 대한 광고자료를 전부 정리해서 신문에 게재토록 했다. 광고 사원은 그 집을 잘 조사, 연구하여 그 집의 구조와 시설 활용가치, 위치 등을 정확하게 잘 설명하여 광고를 냈다. 그 다음날 아침 집주인이 손에 신문을 들고 급히 뛰어 와서 집파는 것을 취소하겠다고 했는데 그는 "내가 그렇게 좋은 집을 가지고 있다는 걸 몰랐다는 말야, 아마 내 일생에 이렇게 좋은 집을 찾지 못할 거야 내가 이렇게 좋은 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가치를 모르고 있었다니 …" 하더라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 이 집주인과 같이 내 아내, 내 남편, 내 자식, 내 부모, 내 가정의 소중함을 잊어 버리고 살 때가 있지 않습니까 다른 것을 찾아 헤맬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축복을 발견하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이혼의 부당성을 한결같이 가르치고 있으며 주장하고 있다.
(1).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이기 때문에 부당하다.
결혼제도를 세우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인류의 첫 혼인도 여호와 하나님이 직접 짝지워 주셨다. 그러므로 인간의 모든 혼인 의식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예법을 따른 것이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그 의식을 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부간의 혼인 서약은 곧 여호와 하나님과의 서약이요, 언약이다. 그러므로 이혼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는 무서운 죄악이며 여호와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다.
(2). 인간과의 언약이기 때문에 부당함.
결혼 당사자에 대해 평생 사랑하며 서로의 정절을 지키며 존중하며 살겠다는 맹세를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혼은 이 맹세를 깨뜨리는 행위이며 스스로의 신의를 저버리는 행위이며 상대방의 인격을 짓밟고 무시하는 무서운 죄악이다.
(3). 성경에 이혼 사유가 되는 것은 현저한 음행뿐이다.
모세의 이혼증서를 부정한 예수님도 음행만은 이혼의 사유로 인정하셨고, 이혼증서를 써서 내보내라고 하셨다. 마19: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고 하셨다. 음행은 바로 자기 자신 안에 거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을 여지없이 파괴행위이므로 음행한자는 거룩한 결혼제도를 누릴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성경은 한결같이 일관성 있게 이혼의 부당성을 가르치고 있다. 本文 16절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학대로 옷을 가리우는 자를 미워하도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궤사를 행치 말지니라".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않을 때 지은 죄에 대해서는 한번 더 뉘우쳐 돌아보시고 이런 경우가 있는 사람을 인생에 두 번 다시없도록 가정의 거룩성과 신성성과 축복성을 지켜 가시기 바랍니다.
2). 바람직한 가정 생활
인간의 삶속에서 가장 슬픈 일이 죽음이라면 결혼은 가장 기쁜 일이다. 그것은 한 인간이 사회의 주인공으로서 완전한 출발을 함과 새로운 생명의 창조자가 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는 결혼을 인간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도구로만 생각하거나 생존의 한 방편으로만 생각하는 무절제한 결혼관으로 부부사이에 불신의 벽이 높아지고 따라서 이혼율도 높아지며 가정이 부패, 타락하여 죄 없는 아이들만 일평생 멍들게 하고 병들게 하고 원한을 가지고 살아가게 만들므로 온 사회가 병들어 가게하고 있다. 이런 때는 우리는 언제든지 바람직한 가정 생활을 이루어가야 한다.
(1). 하지 말아야할 것.
①. 이방신을 가진 자의 딸과 혼인하지 말 것.
本文 11절 "유다는 여호와의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신의 딸과 혼인하였으니"했다.
②. 이혼하거나 학대치 말아야한다.
16절 "나는 이혼하는 것과 학대로 옷을 가리우는 자를 미워하노라" 했다.
③. 궤사를 행치 말아야한다.
16절 下 "너희 심령을 삼가 궤사를 행치 말지니라"고 했다.
"궤사"는 (dealt treacherously) 배신, 반역, 타격을 가하는, 슬픔을 준다는 의미이다. 이 말이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상거래에로 사용된 단어인데 본문에서는 결혼관계에서 더 큰 비중을 두고 사용되었다.
아내는 남편을 배신하거나 반역해서도 안되며 남편은 아내에게 타격을 가하거나, 슬픔을 주거나, 다른 이성과 불륜을 맺어 그 아내를 배신하여도 안된다.
(2). 결혼의 원리를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한다.
결혼은 인륜지 대사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경솔히 결정한 문제가 아니다. 반드시 성경적 원리에 따를 것이요, 성경적 원리에 따랐으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죽음을 통해서 그 사이를 갈라놓기까지 부부는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을 감사함으로 걷고, 이해함으로 걷고, 서로 도우는 배필로서 걸어가야 한다.
①. 창조적 질서를 확립해야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하실 때 모든 생명을 암수의 쌍으로 만드셨으며, 노아 홍수 때도 짐승들을 쌍으로 짝지워 방주에 태우도록 하셨다(창6:20). 이것은 그 지으신 만물이 번성하고 땅에 충만토록 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이다. 같은 뜻으로 인간에게도 창1:28에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므로 가정이란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인간을 생존케 하고 번성케 하는 중요한 창조적 원리를 확립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여호와 하나님의 만드신 피조물을 다스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청지기의 사명을 다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피조세계를 정복하고 다스려 온 땅에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하고 온 만물을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쓰여지도록 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 가정 이루는 결혼속에 내포되어 있다.
②. 불완전한 인간의 완성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창2:18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여" 하와를 만드시고 아담과 짝지워 주셨다고 했다. 여기 "좋지 못하다"는 말은 외롭다, 심심하다는 부수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완전하지 못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남녀 혼인과 가정을 이루었을 때 서로의 부족함을 메꾸어 온전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사실 남자나 여자는 정신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상반된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결혼이란 제도를 통해 서로 협력, 보완하여 보다 나은 미래의 삶을 창조해 나가도록 하신 것이다.
전라도 어느 산골에 32세쯤 되는 부인이 살고 있는 것을 TV를 통해서 보았다. 그는 22才에 결혼하여 딸을 둘을 낳았다. 어렵고 가난해서 애기 둘이 생길 때까지 결혼식도 못 올렸다. 남편은 건실하고 부지런하며 농사일을 열심히 하는 믿음직하고 성실해 보였다. 그런데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식을 올린 일주일 후 남편이 교통사고로 척추가 부러져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서 지내기를 3년이 되었다고 한다. 먹여줄때 받아먹고 말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못하는 그 남편을 3년동안 오줌, 똥, 뒷물, 그리고 80kg 되는 그를 업어 타이탄 트럭에 싣고 논가 에 앉혀 놓고 자기는 논에 들어 가서 모심고 김매며, 돌아와서는 90노인 치매가 걸린 시할머니를 식사시켜 드리고 씻겨 드리고, 큰 딸 유치원에 다니는 그 딸 머리 빗겨 보내는 모습을 보고 저는 가슴이 찡해오면서 진한 감동을 받으며 눈물이 나도 모르게 흐르는 것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 어려움을 겪어 내면서 여기서 도망가고 싶을 때가 없었나요"라고 기자가 물을 때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여기서 가버리면 이 병든 남편, 아이들은 누가 돌보나요 하면서 그 얼굴에 그늘끼 하나 없이 밝은 미소로 그 가정을 튼튼히 지켜 가는 한 젊은 촌부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
주님이 바라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우리들의 가정이 바로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가정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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