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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언약으로 맺어진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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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4월의 마지막 주일이면서 4월의 마지막 날이기도 합니다. 내일부터는 가정의 달 5월이 시작되어서 오늘은 가정에 대한 성경 말씀을 살펴보고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우리 교회는 성도들의 가정에 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 올바른 가정을 세우는 것을 목회의 중요한 과제요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가정은 작은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정이 올바로 서고, 가정이 건전하게 서야만 교회가 바로 설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가정은 작은 천국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토요일에 부부싸움을 했다면, 그 부부가 다음날 교회에 나오겠습니까.... 아마 안 나올 확율이 더 많을 것입니다.
가정에 문제가 있고, 불행한 일들이 생기면 역시 교회 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또, 교회에 열심히 나가는 아내가 있다면 그 남편이 무기로 삼는 것은 이상하게도 교회에 안 나가는 것입니다. 교회 안나가는 것이 무슨 큰 무기입니다.
그래서 아내가 서비스를 잘 하고, 비위를 잘 맞춰 줘야 목에 힘을 주고 교회에 나가 줍니다. 그러면 아내는 매우 좋아하죠. 남편 전도하기 위해서 믿는 아내들이 참 애를 많이 쓰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왜 교회 나가는 것이 무기가 되어야 합니까.... 신앙생활 하는 것,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왜 무기로 삼습니까....
이것은 무기로 삼을게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부관계가 불편하고 가정에 문제가 있으면 신앙생활하기가 어렵죠....
부부간의 갈등이나, 고부간의 갈등, 자녀들의 문제, 남편의 문제, 아내의 문제 등등.... 가정에 무슨 문제가 있으면 그것이 곧바로 신앙생활 하는데 지장이 있습니다. 신앙생활 열심히 하던 부부가 어느날 갑자기 이혼을 하게 되었는데, 두 사람 다 교회에 안 나옵니다.
그래서 가정이 건강해야 하고 올바로 서야만 교회도 성장하고 바로 서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가정의 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기독교가정사역연구소(기가연)에서 연구하고 개발한 프로그램을 도입해서 성도들의 가정을 올바로 세우는데 주력하려고 합니다.
여기에는 매우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결혼 예비학교, 부모 학교, 행복한 가정만들기, 고부 학교, 부부 성장학교, 아버지 학교, 장애우 부모학교, 남편 사랑교실, 천국 준비교실 등등... 많은 과정이 있습니다.
각 과정마다 일주일에 어느 날을 정해서 한번씩 모여 공부를 하는데 어떤 것은 한달에서 두달, 또 어떤 것은 서너 달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프로그램들이 있습니다.
앞으로 교회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마다 해당되는 분들, 희망하시는 분들은 적극 참여하셔서 복된 가정을 이루시고 여호와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가르켜서 사람들은 '위기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여성 상위시대가 되고, 남녀의 평등을 부르짖으면서 직장을 갖는 아내들이 늘어가고 목소리가 높아지니까 이혼율이 점점 높아졌습니다. 결국은 위기의 시대에 가정의 위기가 다가오고, 가정의 존립마저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결혼식을 할 때 보면, 신랑과 신부의 가족이나 친지 그리고 축하객들이 중앙 통로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나누어서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 꼭 그렇게 나누어서 앉을까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어떤 사람은 뭔지는 잘 모르지만 관행을 따라서 그렇게 한다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부조금 관리를 쉽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는 사람이 있고, 또 양쪽 가문을 비교하기 위해서 양쪽으로 갈라 앉는다.... 그렇게 대답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떤 것이 정답일까요 왜 신랑 신부 양쪽으로 갈라서 앉겠습니까....
우리나라 대부분의 결혼식은 서양에서 유래하게 된 서양식 결혼을 하고 있는데, 이는 성경적인 의미가 많이 담겨져 있습니다.
요즘에는 남녀가 평등하다고 해서 신랑 신부가 손을 잡고 동시에 입장을 하는 것도 보았습니다만, 사실은 신부 아버지가 신부를 신랑에게 넘겨 주는 것이 정석이지요. 이것은 지금까지는 내가 신부되는 이 아이를 사랑하고 키우고 보호하고 성장시켰지만 이제 부터는 신랑에게 모든 것을 인계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신랑 신부가 동시에 손을 잡고 입장을 하는 것은 너무 부모님에 대한 은혜와 사랑을 저버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여러분, 왜 신랑측이나 신부측이나 서로 함께 어울려서 아무대나 앉으면 될텐데 왜 양쪽으로 갈라서 앉겠습니까
이렇게 하는 행위 속에는 성경에 나타난 '언약'의 의미가 있습니다.
언약이란 말의 히브리어 원어를 보면 '자르다', '가르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옛날 구약시대에는 무슨 언약을 할 때에 짐승을 반으로 갈라서 마주 보이도록 놓고, 계약을 하는 당사자가 손을 잡고 그 사이를 지나가면서 언약을 맺었습니다.
이것은 "만약 우리 중에 누구든지 이 언약을 파괴하면 여기 갈라진 이 짐승과 같이 죽게 될 것이다" 라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창15:9-10절 말씀에서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맺으실 때 그렇게 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결혼식 때, 중앙 통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나뉘어 있는 신랑 신부의 가족과 친지들은 신랑 신부가 이 결혼 서약에 들어갈 때 양쪽에 정돈해 놓은 성경상의 희생 제물, 갈라놓은 짐승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이 언약을 파기하는 자는 여기 이 갈라 놓은 짐승처럼 죽음을 각오하며 이 언약에 임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언약입니다.
오늘 본문 14절 중반절에 보면 "그는 네 짝이요 너와 맹약한 아내라" 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맹약', 맹세하고 약속한 관계, 그러니까 결혼은 계약이 아니라 언약이라는 것입니다.
'언약'이라는 말은 '계약'이라는 말과는 다릅니다. 계약은 "만약에 -하면, 나도 -한다" 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쉽게 비유하자면 "당신이 나를 사랑하면 나도 사랑하고, 당신이 미워하면 나도 미워할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순전히 댓가적인 것이 계약입니다.
"당신이 나를 무시하면 나도 당신을 무시할거예요" "당신이 그렇게 나오는데 나라고 못할 이유가 어디있어요!" "당신이 그렇게 하는 한 당신을 도와줄 수 없어요!" 라는 것은 모두 계약입니다.
오늘날 현대의 많은 가정들이 이런 계약적인 결혼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계약 결혼이란 일정한 기간을 정해놓고 그 기간동안에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계약을 체결해 놓고서 그 기간이 끝나면 계약을 다시 갱신할 수 있고, 계약기간 중이라도 위반 사항이 발견되면 즉시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것이 실용적인 가치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생각해 보면 매우 편리하겠지요....
그러나 이런 계약적인 결혼은 서로에게 어떤 필요도 채워줄 수 없고...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결혼 관계를 파기할 수 있다는 암묵적인 동의하에 결혼생활이 영위됩니다.
즉, 필요를 따라 이루어지는 가족관계이므로 언제든지 갈라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약은 이와는 정반대입니다.
언약은 조건에 의해서가 아니라 '무조건'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 라는 등식이 따릅니다.
"당신이 여전히 나를 화나게 만들어도... " "비록 당신이 나에게 고통을 안겨 준다고 할지라도... "
"설령 당신에게 사랑할만한 조건이 사라진다고 할지라도.... " 나는 당신을 여전히 사랑할 것입니다. 라는 방식입니다.
언약은 어떤 댓가를 치루더라도 상대방에 대해서 사랑과 신의를 끝까지 지키는 헌신적인 관계를 말합니다.
마치 요나단과 다윗이 맺었던 언약과 같습니다. 다윗과 요나단, 요나단과 다윗의 우정과 사랑은 너무 모범적인 관계를 우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요나단의 아버지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요나단은 다윗을 끝까지 보호하고 지켰습니다. 자신의 왕의 지위가 위협 당해도 자기의 입었던 겉옷과 군복을 벗어주고 칼과 활도 주었습니다(삼상18:4). 생명의 위협을 당해도 끝까지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 요나단의 모습... 이것이 바로 언약입니다.
다윗도 역시 그와 맺은 언약을 준수하며 끝까지 요나단을 사랑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나중에 사울의 가문이 몰락을 하고 다 죽게 되었는데, 다윗은 요나단과 맺은 언약을 생각하고 요나단의 가족중에서 살아 있는 사람이 없는지 살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요나단의 아들 가운데 므비보셋이라는 사람이 유일하게 살아 있었습니다.
므비보셋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은 소식이 전해 질 때 그 나이가 다섯 살이었습니다. 그 유모가 그를 안고 급히 도망가다가 그만 므비보셋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절뚝발이가 되고 말았는데, 두 발이 다 저는 절뚝발이가 되고 말았습니다(삼하4:4, 9:13).
다윗은 요나단과 함께 여호와 하나님께 맹세한 언약을 생각하고 므비보셋을 데려다가 "너는 이제부터 나의 왕자들 가운데 한 사람처럼 내 상에서 먹고 마시리라!" 하면서 자기 아들처럼 키우고 사랑해 주었습니다(삼하9:11).
이것이 바로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언약은 흔들림없는 지속적인 사랑과 신심함에 기초한 관계가 그 핵심입니다.
성경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결혼을 계약이 아닌 언약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언약으로 이루어진 가정은 행복이 넘칩니다. 기쁨이 넘칩니다. 힘이 있고 소망이 있습니다. 이런 가정의 남편이나 아내는 힘이 있고 무엇을 하든지 헤쳐 나갈 수 있는 용기가 있습니다.
이런 가정에서 자라는 자녀들은 앞날이 밝고 소망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가정입니다.
우리 믿음의 가정들은 모두 언약의 관계로 이루어 진 올바른 가정, 복된 가정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언약 사상'은 매우 중요한 두 가지 개념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는, 무조건적인 사랑이며 두 번째는, 상호간의 책임입니다.
먼저 첫 번째는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무조건적인 사랑과 헌신은 언약의 첫 번째 핵심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조건적'이라는 말입니다.
마치 어린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엄마가 어린아이를 가만히 쳐다 보면서 "하! 그녀석 무척이나 세게 빨고 있네! 이렇게 영양분을 다 빨아 먹고 있으니 내가 이렇게 마르지.... 내 언젠가 이 녀석이 자라면 비싼 양육비를 청구해야 되겠다!" 하면서 젖을 물리는 어머니는 없을 겁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무조건적입니다. 보상을 기대하는 헌신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아도 상관이 없는 그런 사랑입니다.
바로 결혼의 언약은 이런 무조건적인 사랑이 첫 번째의 조건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미 이런 일에 증인까지 되셨습니다.
말2:14절에 앞부분에 보면 ".... 여호와께서 일찍이 증거하셨음을 인함이니라... " 했습니다.
따라서 최소한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에 있어서 신랑과 신부가 맺은 언약의 관계는 여호와 하나님이 증인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어느 한 쪽이 파기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요, 여호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을 파기하는 큰 죄를 범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막10:9절, 마19:6에서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람들이 질문합니다. "그렇다면 무조건적인 사랑의 관계이기 때문에 계속 당해야만 됩니까" 하고 묻습니다.
"상대방이 어떻게 하든지 간에 무조건 참고 지내야만 합니까.... 그건 너무 잔인하지 않습니까.... " 하고 묻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언약의 두 번째 핵심, 바로 상호적인 책임을 성서는 우리에게 증거합니다.
언약이 한번 성립되면 그 언약은 두 사람 다에게 상호 의무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 인간에게 말씀하신 수많은 언약들을 보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언약은 어찌보면 일방적인 언약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언약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는 사랑이셨습니다.
그런데, 은혜의 언약은 그 기원에 있어서 독단적이고 일방적인 것이지만 그 성취에 있어서는 상호적인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그 언약은 우리 인간이 믿음과 복종으로 응답할 때 이루어 집니다.
이러한 인간적인 응답이 중요하기 때문에 신학자 칼빈은 말하기를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들은 조건적인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룰려면 나의 책임이 뒤따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언약만 채결했다고 다 끝난 것이 아니라, 그 언약을 지키기 위해서는 나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언약에 기초를 둔 가정, 언약의 사상으로 무장한 부부, 언약의 성취를 바라보는 가정 위에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하여 만드신 것 가운데 가장 첫 번째의 것은 가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가정을 매우 귀하게 여기시고 가정을 복되게 하시려고 작정을 하셨습니다.
바로 언약으로 맺어진 가정, 그래서 그 언약을 지키기 위하여 서로 책임을 다하고, 희생하고 양보하고 섬기는 가정이 될 때.... 다음과 같은 놀라운 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 사27:3절을 보면 "나 여호와는 포도원 지기가 됨이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이 포도원 지기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포도원은 가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포도원은 때로 이스라엘을 나타내기도 하고, 신약에 와서는 교회를 상징하고 있는데, 본문에서는 가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계시고, 남편이 있고, 아내가 있고, 자녀들이 있는 우리들의 보금자리... 포도원을 여호와 하나님이 포도원 지기가 되어서 지키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의 가정을 여호와 하나님이 지키시고, 가꾸시고, 보살피실 수 있도록... 우리는 우리의 가정을 내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포도원'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의 가정이 행복해야 덕이 됩니다. 자녀들이 올바르고 창대하게 자라야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보면 어떻습니까 수많은 나쁜 환경과 악의 세력들, 음란한 것, 질병과 사건과 사고들.... 그리고 이단세력들이 도사리고 있어서 신성해야 할 가정, 행복해야 할 가정을 파괴하기 위해서.... 악한 마귀는 어찌하든지 병들게 하고, 깨뜨리고... , 자녀들까지 그릇되게 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 인간의 힘만으로, 더군다나 나의 힘만으로는 가정이라는 포도원을 지키기가 힘에 부칩니다. 아니 도저히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이 지켜 주셔야만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 여호와는 포도원 지기가 됨이여" 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완벽한 것입니다.
2절에 보면, "그 날에 너희는 아름다운 포도원을 두고 노래를 부를 찌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노래가 있어야 할 가정에 울음과 탄식과 이혼과 싸움이 있는 가정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여기서 '그 날'은 여호와 하나님이 포도원을 보살피고, 건사하고, 가꾸는 날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가정을 여호와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보살피시고, 보호하실 때.... 노래가 있고, 감사가 있고, 찬송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가정들은 모두들 그런 가정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이 어떻게 이 포도원되는 가정을 지켜주신다고 하십니까.....
1) 아무도 상하지 않게 보호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3절에 "밤낮으로 간수하여 아무든지 상해하지 못하게 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악의 세력이 포도원에 손대지 못하도록 보호하십니다.
2) 밤낮으로 보호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3절에 "밤낮으로 간수하여"라고 했는데, 여기서 "간수"라는 말은 보호한다는 뜻입니다. 낮에도 밤에도... 다시 말씀드리면, 잘될 때에도 안될 때에도.... 기쁨의 때에도 슬픔의 때에도.... 내려갈 때에도 올라갈 때에도... 밤 낮으로 어느 때든지 지키시고 보호하신다고 했습니다.
시121:5-6절 말씀에서도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했습니다.
3) 모든 환경에서 지켜주신다고 했습니다.
어떤 때는 원수들이 포도원에 침입하여 포도나무를 찍어 버리고 불살라 버리는 일이 흔히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들짐승들이 침입하여 포도나무 뿌리를 마구 파버리고 갉아 먹는 경우도 있고, 열매가 익을 무렵에는 도적이 와서 따가고, 새가 날아 와서 쪼아 먹어 버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경우에 우리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간다면 아무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4) 때때로 물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포도원을 사랑하시되 세상 끝날까지 사랑하시며, 때를 따라 적절한 은혜로 다스리신다는 것입니다.
3절에서 "때때로 물을 주며"라는 말씀은 때를 따라 합당한 은혜를 주시어 다스리신다는 뜻입니다.
물은 아무 때나 주는 것이 아닙니다. 많이 주어야 할 때는 많이 주고, 조금 주어야 할 때는 조금 주고, 때를 따라 주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 때를 너무 잘 아십니다.
이처럼 적당한 은혜로 다스리신다는 것입니다. 이를 히브리서에서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라고 했습니다(히4:16).
5) 노하지 아니하십니다.
4절에 보면, "나는 포도원에 대하여 노함이 없나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의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노하시기는 할지라도 이는 영원히 노하시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죄를 지으면 회개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빨리 돌아가야 합니다.
시30:5절에 "그 노염은 잠깐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움이 기숙할 찌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하고 말씀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노여워하시는 것은 우리를 위함입니다. 우리가 잘되게 하시려는 겁니다. 본심이 아니예요.
그래서 렘3:33에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분명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들의 가정, 이 포도원에 대하여 너무 너무 사랑하시고 복 주시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6) 질려와 형극에 대하여 노하십니다.
포도원에 대해서는 노하시지 않지만 포도원에 피해를 주는 질려와 형극에 대하여는 노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사27:4절 말씀에 "포도원에 대하여 노함이 없나니 질려와 형극이 나를 대적하여 싸운다하자 내가 그것을 밟고 모아 불사르리라" 하고 말씀했는데, 질려와 형극은 우리에게서 일어날 수 있는 어려운 문제, 사탄의 장난 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질려라면 밟아 버리고, 형극이라면 불사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분명, 우리의 가정은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질려와 같은 문제가 있습니다. 형극과 같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것을 밟아버린다. 내가 그것을 불살라 버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만나든지 여호와 하나님을 의뢰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포도원 지기가 되시며, 우리의 가정은 그의 포도원이고, 우리는 그의 포도나무입니다(요15:5).
오늘과 같이 험악한 세상,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들의 가정은 언약으로 맺어진 가정이 되어서 여호와 하나님을 포도원 지기로 모셔들이고,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돌보심 가운데... 언제나 승리하며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가정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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