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어린 양의 피가 묻은 집
본문
어느 잡지에서 본 이야기입니다. 억만장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집에 보물 창고가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전문 털이범 조직이 귀가 솔깃해졌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사람의 재산 규모로 볼 때 보물창고에는 엄청난 액수의 현찰이나 귀금속 같은 것들이 가득 들어 있을 게 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회를 엿보다 그 집을 털기로 작정합니다. 그들은 첨단 기술로 삼엄한 경비와 보안 장치를 뚫고 마침내 보물창고의 문을 엽니다.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그 큰 창고에는 낡은 자전거 한 대만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습니다.
허탕을 친 털이범 두목이 화가 나서 억만장자에게 전화를 겁니다. “당신, 도대체 정신이 있소, 없소 보물창고에 숨겨 놓은 게 고작 고물 자전거란 말이요” 억만장자는 허허 웃으며 털이범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가족이 창고를 지어놓고 거기다 집어넣을 가장 소중한 보물이 과연 무엇인지 의논해 봤소. 그랬더니 이구동성으로 말한 게 바로 그거요. 우리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사업에 크게 성공했을 때도 아니고, 대저택을 구입한 때도 아니고, 호화롭게 세계 일주를 한 때도 아니고, 최고급 식당에서 외식을 했을 때도 아니고, 가난했던 시절 온 가족이 동네 공원에 함께 모여 그 낡은 자전거를 타며 즐기던 어느 날 오후 한 때였소. 그래서 그 고물 자전거를 우리 가정의 보물로 정한 거요. 어쨌든 우리 가정의 보물을 가져가지 않아서 정말 고맙소이다. ” 아마 지어낸 이야기일 겁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귀중한 교훈을 제공해 줍니다. 사람들이 세상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보다 오히려 소홀히 여기고 무시하는 것이 오히려 우리 인생의 보물(寶物), 가정의 가보(家寶)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불행한 이유는 정말 소중한 보물을 발견하지 못한 까닭인지도 모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는 과연 무엇이 보물입니까 우리 가정의 가보는 과연 무엇입니까 5월 가정의 달에 행복한 가정을 위해 이런 저런 것들을 챙겨보는데, 과연 우리의 가보는 무엇입니까 오늘 성경은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인생의 보물, 그리고 가보가 무엇인지 소개해 줍니다. 그것은 ‘어린 양 예수의 피’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도 오늘 말씀을 통해 어린 양의 피를 우리 인생의 보물, 우리 가정의 가보로 정하시기 바랍니다.
본문은 B. C. 15세기 애굽(이집트)에서 노예 살이 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해방된 출애굽 사건(Exodus)의 배경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사건을 기념해서 ‘유월절’이란 명절을 지킵니다.
430년 이상 노예 살이 하던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께 해방을 위해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 기도소리를 들으셨고, 모세를 지도자로 보내주십니다. 그러나 모세가 애굽 왕 바로에게 이스라엘을 내보내라고 요구해도 듣질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애굽은 전국 각지에 토목공사를 벌이고 있었는데, 그 노동력을 이스라엘 남자들이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바로 왕에 이스라엘을 순순히 내보내줄 리 없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런 바로의 고집을 꺾고자 재앙을 내립니다. 피 재앙, 개구리 재앙, 이 재앙, 파리 재앙 등 ... 이런 재앙이 임하면 바로는 금세 백성을 내보내줄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한숨을 돌리고 나면 또다시 변심합니다. 그러기를 반복하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마지막 카드를 뽑습니다. 그게 곧 10번째 죽음의 재앙입니다. 바로 왕의 장자로부터 감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모든 짐승의 첫 것까지 다 죽게 되는 재앙입니다. 그런데 유독 이스라엘 집의 장자들은 멀쩡했습니다.
그러면 과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었을까요 어린 양의 피 때문입니다. 본문 21절~22절을 보시면, “ ...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 ” 그랬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어린 양’ 그리고 ‘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을 명령합니까 어린 양을 잡아서, 피를 내고, 그 피로 집 대문의 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뿌리라고 했습니다. 얼른 생각하면 참 이상한 짓입니다. 왜 한 밤중에 피를 내고, 게다가 페인트도 아니고, 색깔도 아름답지 않은데, 왜 대문에다 잔뜩 칠하라고 하나 일반 사람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이상한 짓 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그렇게 하라는 겁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제시하고, 약속하신 구원의 길이었습니다.
23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러 두루 다니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설주의 피를 보시면 그 문을 넘으시고 ... ” 여호와 하나님은 죽음의 천사를 통해 애굽 사람들을 죽음의 재앙으로 심판하실 때, 바로 그 어린 양의 피가 대문에 묻어있는 집만 죽음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구절에서 아주 중요한 단어가 등장합니다. ‘넘는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유월절이란 말이 유래했습니다. 유월절은 히브리어로 ‘페샤흐’인데 ‘넘어가다’ ‘뛰어가다’라는 뜻의 동사에서 나온 겁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 보면 유월절이 Passover라는 말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때로부터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해방된, 구원받은 역사를 기념하며 유월절 절기를 지키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에게 유월절 양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유월절 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하나의 모형이요 예표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전5:7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어린 양의 피가 당시 이스라엘에게 특별한 은혜를 제공해 준 것처럼,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에게 특별한 은혜를 제공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시는 축복이 은혜인데, 은혜에는 크게 두 가지 은혜가 있습니다. 보통 은혜(일반 은총)와 특별 은혜(특별 은총)입니다. 보통 은혜는 모든 인간에게 두루 주시는 은혜입니다. 모든 인간은 여호와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이 육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내려주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심지어는 악인에게도 햇빛과 비를 내려주십니다. (마5:45 참조) 특별 은혜는 여호와 하나님의 택한 백성에게 주시는 특별한 은혜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특별대우’인 셈입니다. 어린 양의 피가 묻은 집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특별대우를 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특별대우를 해주셨을까요
1 여호와 하나님의 특별은혜 : 구원
여호와 하나님이 애굽에 내린 10번째 재앙은 장자 죽음의 재앙입니다. 집집마다 모든 장자가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모든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죽어야 합니다.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 ”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 ”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 ”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이 샘플로 장자만 심판하신 겁니다. 그날 밤 바로 왕의 장자로부터 감옥에 있는 사람의 장자까지 모든 집의 장자가 죽고 집집마다 초상집이 됩니다. 심지어 짐승의 첫 것까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어린 양의 피가 묻은 집의 장자만큼은 죽임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특별 은혜였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23절.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러 두루 다니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설주의 피를 보시면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로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 출12:13 보면 좀더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어린 양의 피가 ‘표적’이 된다는 겁니다. 표적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오트’인데, ‘신호’ ‘표시’ 등의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그 피가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약속의 표시 혹은 싸인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피라고 하는 게 어떻습니까 섬뜩하고 두렵습니다. 잔인한 느낌도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그런 피를 표시로 삼으셨을까요 피는 생명의 본체입니다. 피가 있으면 육체의 생명이 있고 피가 없으면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상징인 피로써 속죄가 가능한 것입니다. 인간이 죄를 지어서 죽을 수밖에 없으니까 피를 흘려야 합니다. 자신이 흘리지 않으면 남이 대신이라도 흘려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죄의 대가입니다. 레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게 하느니라” 히9:22 “피 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느니라”
그런데 중요한 것은 누가 대신 피를 흘려 줄 수 있습니까 자신의 죄가 없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 다 자기 죄 때문에 죽을 인생뿐입니다. 그래서 죄 없는 어린 양이 피를 흘려야 했고, 죄 없으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려야 했던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번번이 어린 양이 피를 흘려야 했으나, 이제 예수님은 단 한번 죽음으로써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것입니다. 히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 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그러면 어떤 사람이 구원을 얻습니까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그 피가 마음속에 있는 사람입니다. 즉 그 피의 대속의 효력을 믿는 사람입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그런데도 그 간단한 것을 회피해서 구원에서 멀어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안타깝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심령 가운데 예수님의 십자가 피를 믿는 믿음이 있으십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죄와 사망에서 완전히 구원받았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의 십자가, 예수의 피는 일종의 ‘암호’입니다. 혹은 ‘열쇠’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있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유일한 암호입니다.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를 들어 집안에 들어갈 때 대문에 부착된 장치에 암호를 누르고 들어갑니다. 암호를 모르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혹은 열쇠를 갖고 열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십자가의 피가 없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어느 맞벌이 부부가 있었습니다. 퇴근길에 집 앞에서 만났습니다. 함께 집에 들어가는 게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하필 정전이어서 둘이 계단으로 열심히 올라갑니다. 30층이라 너무 힘들어 중간에 쉬어가면서 겨우 올라갑니다. 그런데 문 앞에서 서로 문을 열기를 기다립니다. 알고 보니까 경비실에서 상대방이 경비실에 맡겼던 열쇠를 챙긴 줄로 서로 착각하고 그냥 온 겁니다.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다시 내려갔다 올라오느라 파김치가 됐을 겁니다. 그래도 다시 갔다 올 수 있으니까 다행이죠. 우리 인생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인생을 열심히 살았는데 마지막 순간 천국 열쇠를 챙기지 못했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인생은 단 한번이기에 돌아가서 챙겨올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없는 노릇입니다. 이 세상 떠날 때는 오직 어린 양 예수의 피를 믿는 믿음만 갖고 천국에 들어가는 겁니다.
우리 가정을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들을 위해 다른 것은 다 챙겨주면서 어린 양의 피를 믿는 믿음을 챙겨주지 않았다면 얼마나 후회막심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 인생의 보물도, 가정의 가보도 오직 어린 양 예수의 피인 줄로 믿습니다. 벧전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어느 젊은이가 신실한 크리스천 의사의 자가용 운전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젊은이가 너무 착실해서 그 의사는 항상 기특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잘 해주려고 애를 씁니다. 특히 그에게 전도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영혼의 존재와 인간의 죄, 예수님의 구원, 지옥과 천국 등 기본적인 진리를 설명해 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빙글빙글 웃기만 하지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 이런 생각을 했는지 모릅니다. “내 앞길이 창창한데, 그리고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슨 내세고 천국이고 그런 이야기를 하십니까” 안타까워 하던 의사는 어느 날 전도하는 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게. 예수님은 다시 이 세상에 오시네. 우리는 그것을 가리켜 재림이라고 부르지. 그러면 내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게 필요 없어. 그러면 이 자동차도 자네가 가져. 그리고 내 집도. 아니, 그 외에 모든 것도 다 가져도 돼. ” 그 젊은이는 말이라도 너무 고마웠습니다. 의사의 태도가 너무 진지해서 정말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잠자리에 들었는데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습니다.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좋은 자동차와 저택, 모든 게 필요 없을 정도라면 천국은 얼마나 좋은 곳일까 자기는 그곳에 들어갈 수 없다는 이야기인데 ... 게다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면 지옥에 가는 것이고 ... 생각이 이렇게 전개되니까 도저히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늦은 밤이지만 그 의사의 집으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문을 두드립니다. 의사는 놀라서 묻습니다. “아니, 자네가 이 시간에 웬일인가” “선생님, 그 자동차 싫습니다. 집도 싫습니다. 다 싫습니다. ”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저에게도 선생님이 믿는 예수님을 가르쳐 주세요. 저도 구원받기 원합니다. ”
그렇습니다! 세상 그 무엇보다 귀한 것이 어린 양 예수의 피입니다. 우리 인생을 위해서, 가정을 위해서 어린 양 예수의 피를 믿는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2 여호와 하나님의 특별은혜 : 보호
본문 22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우슬초 묶음을 취하여 그릇에 담은 피에 적시어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 여기서 집 밖으로 나가지 마라는 이야기가 중요합니다. 만일 그 밤에 집밖으로 나가면 위험하다는 겁니다. 책임 못 진다는 겁니다. 그런데 집 안에 있기만 하면 안전하다는 겁니다. 어린 양의 피가 묻은 집만이 안전지대입니다.
여러분, 세상은 아주 위험한 곳입니다. 얼마나 위험한 일이 많습니까 마치 지뢰밭과 같습니다. 어디에도 안전지대가 없습니다. 마치 화살이 빗발치듯 날아오는 것과 같이 우리 인생에 순간순간 어려운 일들이 닥쳐옵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피해가면서 살아서 그렇지 그 화살에 맞으면 금세 넘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안전 보장이 필요합니다. 방패와 같은 안전장치가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리석은 인생을 삽니다. 열심히 벌고, 모으고, 쌓습니다. 그런데 지키지 못합니다. 벌고, 모으고, 쌓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저주를 막아내는 것입니다. 빼앗기지 않도록 지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어린 양 예수의 피 공로로만 가능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저주와 죽음, 아니 저 너머 최후의 심판까지 막아낼 주는 것은 오직 예수의 피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곧 보호해 주시는 특별한 은혜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은혜를 가리켜 ‘날개’로 비유해서 말씀합니다. 시57:1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서 이 재앙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시91:1,4~7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옛날 텍사스의 한 호텔방에서 한 사업가가 절망 중에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탁자에는 하얀 알약 수십 알을 놓여져 있었습니다. 사업에 크게 실패하고 이제는 도저히 살 소망이 없어서 마지막 순간을 맞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불현듯 머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사업 한다고 돌아다니느라 오랫동안 뵙지 못했던 어머니 생각입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말씀하신 것이 생각난 겁니다. “얘야, 어려운 일을 만나면 꼭 기억해라. 세상 사람들은 다 너를 배반하고 너를 잊어도, 여호와 하나님은 절대 너를 버리지 않고 잊지 않으신다. 그러니까 어려울 때는 얼른 주님의 날개 아래로 피하거라. ” 그 말씀을 기억하면서 그동안 오래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있었던 자기 자신이 너무 후회스러웠습니다. 그래서 통곡하면서 여호와 하나님 앞에 회개의 기도를 드립니다. 실컷 울고 나자 오히려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 투자자들을 만납니다. 간절히 호소합니다. “여러분, 제가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있다가 이런 일을 당했습니다. 회개하고 다시 시작해 보렵니다. 저를 믿지 마시고 제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한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그러면 원금에 이자까지 넉넉히 붙여서 반드시 돌려드리겠습니다. ” 다행히 가장 큰 손해를 본 사람이 그 말은 듣고 입을 뗍니다. “그래, 언제까지 기다려주면 되겠소” 결국 이렇게 해서 그는 보란 듯이 재기했고, 마침내 큰 사업가로 성공합니다. 그의 이름은 힐튼입니다. 세계적인 호텔 체인 힐튼의 창업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날개 아래 들어갔을 때 그는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지금 어려운 일을 당하고 있지 않습니까 곤고한 일이나 기가 막힌 상황에 봉착해 있지 않습니까 혹시 그것이 주님의 날개에서 벗어나 자행자지하며 내 힘으로 내 재주로 살아보려다 그렇게 된 것은 혹시 아닙니까 주님의 날개 아래로 나아가십시오.
주님이 안전하게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의 포기할 수 없는 보물이 무엇입니까 우리 가정의 가장 소중한 가보가 무엇입니까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 것은 다 지나갑니다. 다 사라집니다. 오직 어린 양 예수의 피만이 우리의 보물입니다. 부디 오늘 말씀을 마음 속 깊이 새기시고, 어린 예수의 피를 의지하며 승리하는 인생, 복된 가정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허탕을 친 털이범 두목이 화가 나서 억만장자에게 전화를 겁니다. “당신, 도대체 정신이 있소, 없소 보물창고에 숨겨 놓은 게 고작 고물 자전거란 말이요” 억만장자는 허허 웃으며 털이범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가족이 창고를 지어놓고 거기다 집어넣을 가장 소중한 보물이 과연 무엇인지 의논해 봤소. 그랬더니 이구동성으로 말한 게 바로 그거요. 우리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사업에 크게 성공했을 때도 아니고, 대저택을 구입한 때도 아니고, 호화롭게 세계 일주를 한 때도 아니고, 최고급 식당에서 외식을 했을 때도 아니고, 가난했던 시절 온 가족이 동네 공원에 함께 모여 그 낡은 자전거를 타며 즐기던 어느 날 오후 한 때였소. 그래서 그 고물 자전거를 우리 가정의 보물로 정한 거요. 어쨌든 우리 가정의 보물을 가져가지 않아서 정말 고맙소이다. ” 아마 지어낸 이야기일 겁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귀중한 교훈을 제공해 줍니다. 사람들이 세상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보다 오히려 소홀히 여기고 무시하는 것이 오히려 우리 인생의 보물(寶物), 가정의 가보(家寶)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불행한 이유는 정말 소중한 보물을 발견하지 못한 까닭인지도 모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는 과연 무엇이 보물입니까 우리 가정의 가보는 과연 무엇입니까 5월 가정의 달에 행복한 가정을 위해 이런 저런 것들을 챙겨보는데, 과연 우리의 가보는 무엇입니까 오늘 성경은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인생의 보물, 그리고 가보가 무엇인지 소개해 줍니다. 그것은 ‘어린 양 예수의 피’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도 오늘 말씀을 통해 어린 양의 피를 우리 인생의 보물, 우리 가정의 가보로 정하시기 바랍니다.
본문은 B. C. 15세기 애굽(이집트)에서 노예 살이 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해방된 출애굽 사건(Exodus)의 배경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사건을 기념해서 ‘유월절’이란 명절을 지킵니다.
430년 이상 노예 살이 하던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께 해방을 위해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 기도소리를 들으셨고, 모세를 지도자로 보내주십니다. 그러나 모세가 애굽 왕 바로에게 이스라엘을 내보내라고 요구해도 듣질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애굽은 전국 각지에 토목공사를 벌이고 있었는데, 그 노동력을 이스라엘 남자들이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바로 왕에 이스라엘을 순순히 내보내줄 리 없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런 바로의 고집을 꺾고자 재앙을 내립니다. 피 재앙, 개구리 재앙, 이 재앙, 파리 재앙 등 ... 이런 재앙이 임하면 바로는 금세 백성을 내보내줄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한숨을 돌리고 나면 또다시 변심합니다. 그러기를 반복하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마지막 카드를 뽑습니다. 그게 곧 10번째 죽음의 재앙입니다. 바로 왕의 장자로부터 감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모든 짐승의 첫 것까지 다 죽게 되는 재앙입니다. 그런데 유독 이스라엘 집의 장자들은 멀쩡했습니다.
그러면 과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었을까요 어린 양의 피 때문입니다. 본문 21절~22절을 보시면, “ ...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 ” 그랬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어린 양’ 그리고 ‘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을 명령합니까 어린 양을 잡아서, 피를 내고, 그 피로 집 대문의 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뿌리라고 했습니다. 얼른 생각하면 참 이상한 짓입니다. 왜 한 밤중에 피를 내고, 게다가 페인트도 아니고, 색깔도 아름답지 않은데, 왜 대문에다 잔뜩 칠하라고 하나 일반 사람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이상한 짓 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그렇게 하라는 겁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제시하고, 약속하신 구원의 길이었습니다.
23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러 두루 다니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설주의 피를 보시면 그 문을 넘으시고 ... ” 여호와 하나님은 죽음의 천사를 통해 애굽 사람들을 죽음의 재앙으로 심판하실 때, 바로 그 어린 양의 피가 대문에 묻어있는 집만 죽음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구절에서 아주 중요한 단어가 등장합니다. ‘넘는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유월절이란 말이 유래했습니다. 유월절은 히브리어로 ‘페샤흐’인데 ‘넘어가다’ ‘뛰어가다’라는 뜻의 동사에서 나온 겁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 보면 유월절이 Passover라는 말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때로부터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해방된, 구원받은 역사를 기념하며 유월절 절기를 지키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에게 유월절 양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유월절 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하나의 모형이요 예표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전5:7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어린 양의 피가 당시 이스라엘에게 특별한 은혜를 제공해 준 것처럼,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에게 특별한 은혜를 제공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시는 축복이 은혜인데, 은혜에는 크게 두 가지 은혜가 있습니다. 보통 은혜(일반 은총)와 특별 은혜(특별 은총)입니다. 보통 은혜는 모든 인간에게 두루 주시는 은혜입니다. 모든 인간은 여호와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이 육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내려주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심지어는 악인에게도 햇빛과 비를 내려주십니다. (마5:45 참조) 특별 은혜는 여호와 하나님의 택한 백성에게 주시는 특별한 은혜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특별대우’인 셈입니다. 어린 양의 피가 묻은 집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특별대우를 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특별대우를 해주셨을까요
1 여호와 하나님의 특별은혜 : 구원
여호와 하나님이 애굽에 내린 10번째 재앙은 장자 죽음의 재앙입니다. 집집마다 모든 장자가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모든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죽어야 합니다.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 ”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 ”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 ”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이 샘플로 장자만 심판하신 겁니다. 그날 밤 바로 왕의 장자로부터 감옥에 있는 사람의 장자까지 모든 집의 장자가 죽고 집집마다 초상집이 됩니다. 심지어 짐승의 첫 것까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어린 양의 피가 묻은 집의 장자만큼은 죽임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특별 은혜였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23절.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러 두루 다니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설주의 피를 보시면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로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 출12:13 보면 좀더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어린 양의 피가 ‘표적’이 된다는 겁니다. 표적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오트’인데, ‘신호’ ‘표시’ 등의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그 피가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약속의 표시 혹은 싸인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피라고 하는 게 어떻습니까 섬뜩하고 두렵습니다. 잔인한 느낌도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그런 피를 표시로 삼으셨을까요 피는 생명의 본체입니다. 피가 있으면 육체의 생명이 있고 피가 없으면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상징인 피로써 속죄가 가능한 것입니다. 인간이 죄를 지어서 죽을 수밖에 없으니까 피를 흘려야 합니다. 자신이 흘리지 않으면 남이 대신이라도 흘려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죄의 대가입니다. 레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게 하느니라” 히9:22 “피 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느니라”
그런데 중요한 것은 누가 대신 피를 흘려 줄 수 있습니까 자신의 죄가 없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 다 자기 죄 때문에 죽을 인생뿐입니다. 그래서 죄 없는 어린 양이 피를 흘려야 했고, 죄 없으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려야 했던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번번이 어린 양이 피를 흘려야 했으나, 이제 예수님은 단 한번 죽음으로써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것입니다. 히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 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그러면 어떤 사람이 구원을 얻습니까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그 피가 마음속에 있는 사람입니다. 즉 그 피의 대속의 효력을 믿는 사람입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그런데도 그 간단한 것을 회피해서 구원에서 멀어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안타깝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심령 가운데 예수님의 십자가 피를 믿는 믿음이 있으십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죄와 사망에서 완전히 구원받았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의 십자가, 예수의 피는 일종의 ‘암호’입니다. 혹은 ‘열쇠’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있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유일한 암호입니다.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를 들어 집안에 들어갈 때 대문에 부착된 장치에 암호를 누르고 들어갑니다. 암호를 모르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혹은 열쇠를 갖고 열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십자가의 피가 없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어느 맞벌이 부부가 있었습니다. 퇴근길에 집 앞에서 만났습니다. 함께 집에 들어가는 게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하필 정전이어서 둘이 계단으로 열심히 올라갑니다. 30층이라 너무 힘들어 중간에 쉬어가면서 겨우 올라갑니다. 그런데 문 앞에서 서로 문을 열기를 기다립니다. 알고 보니까 경비실에서 상대방이 경비실에 맡겼던 열쇠를 챙긴 줄로 서로 착각하고 그냥 온 겁니다.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다시 내려갔다 올라오느라 파김치가 됐을 겁니다. 그래도 다시 갔다 올 수 있으니까 다행이죠. 우리 인생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인생을 열심히 살았는데 마지막 순간 천국 열쇠를 챙기지 못했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인생은 단 한번이기에 돌아가서 챙겨올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없는 노릇입니다. 이 세상 떠날 때는 오직 어린 양 예수의 피를 믿는 믿음만 갖고 천국에 들어가는 겁니다.
우리 가정을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들을 위해 다른 것은 다 챙겨주면서 어린 양의 피를 믿는 믿음을 챙겨주지 않았다면 얼마나 후회막심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 인생의 보물도, 가정의 가보도 오직 어린 양 예수의 피인 줄로 믿습니다. 벧전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어느 젊은이가 신실한 크리스천 의사의 자가용 운전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젊은이가 너무 착실해서 그 의사는 항상 기특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잘 해주려고 애를 씁니다. 특히 그에게 전도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영혼의 존재와 인간의 죄, 예수님의 구원, 지옥과 천국 등 기본적인 진리를 설명해 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빙글빙글 웃기만 하지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 이런 생각을 했는지 모릅니다. “내 앞길이 창창한데, 그리고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슨 내세고 천국이고 그런 이야기를 하십니까” 안타까워 하던 의사는 어느 날 전도하는 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게. 예수님은 다시 이 세상에 오시네. 우리는 그것을 가리켜 재림이라고 부르지. 그러면 내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게 필요 없어. 그러면 이 자동차도 자네가 가져. 그리고 내 집도. 아니, 그 외에 모든 것도 다 가져도 돼. ” 그 젊은이는 말이라도 너무 고마웠습니다. 의사의 태도가 너무 진지해서 정말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잠자리에 들었는데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습니다.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좋은 자동차와 저택, 모든 게 필요 없을 정도라면 천국은 얼마나 좋은 곳일까 자기는 그곳에 들어갈 수 없다는 이야기인데 ... 게다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면 지옥에 가는 것이고 ... 생각이 이렇게 전개되니까 도저히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늦은 밤이지만 그 의사의 집으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문을 두드립니다. 의사는 놀라서 묻습니다. “아니, 자네가 이 시간에 웬일인가” “선생님, 그 자동차 싫습니다. 집도 싫습니다. 다 싫습니다. ”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저에게도 선생님이 믿는 예수님을 가르쳐 주세요. 저도 구원받기 원합니다. ”
그렇습니다! 세상 그 무엇보다 귀한 것이 어린 양 예수의 피입니다. 우리 인생을 위해서, 가정을 위해서 어린 양 예수의 피를 믿는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2 여호와 하나님의 특별은혜 : 보호
본문 22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우슬초 묶음을 취하여 그릇에 담은 피에 적시어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 여기서 집 밖으로 나가지 마라는 이야기가 중요합니다. 만일 그 밤에 집밖으로 나가면 위험하다는 겁니다. 책임 못 진다는 겁니다. 그런데 집 안에 있기만 하면 안전하다는 겁니다. 어린 양의 피가 묻은 집만이 안전지대입니다.
여러분, 세상은 아주 위험한 곳입니다. 얼마나 위험한 일이 많습니까 마치 지뢰밭과 같습니다. 어디에도 안전지대가 없습니다. 마치 화살이 빗발치듯 날아오는 것과 같이 우리 인생에 순간순간 어려운 일들이 닥쳐옵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피해가면서 살아서 그렇지 그 화살에 맞으면 금세 넘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안전 보장이 필요합니다. 방패와 같은 안전장치가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리석은 인생을 삽니다. 열심히 벌고, 모으고, 쌓습니다. 그런데 지키지 못합니다. 벌고, 모으고, 쌓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저주를 막아내는 것입니다. 빼앗기지 않도록 지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어린 양 예수의 피 공로로만 가능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저주와 죽음, 아니 저 너머 최후의 심판까지 막아낼 주는 것은 오직 예수의 피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곧 보호해 주시는 특별한 은혜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은혜를 가리켜 ‘날개’로 비유해서 말씀합니다. 시57:1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서 이 재앙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시91:1,4~7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옛날 텍사스의 한 호텔방에서 한 사업가가 절망 중에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탁자에는 하얀 알약 수십 알을 놓여져 있었습니다. 사업에 크게 실패하고 이제는 도저히 살 소망이 없어서 마지막 순간을 맞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불현듯 머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사업 한다고 돌아다니느라 오랫동안 뵙지 못했던 어머니 생각입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말씀하신 것이 생각난 겁니다. “얘야, 어려운 일을 만나면 꼭 기억해라. 세상 사람들은 다 너를 배반하고 너를 잊어도, 여호와 하나님은 절대 너를 버리지 않고 잊지 않으신다. 그러니까 어려울 때는 얼른 주님의 날개 아래로 피하거라. ” 그 말씀을 기억하면서 그동안 오래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있었던 자기 자신이 너무 후회스러웠습니다. 그래서 통곡하면서 여호와 하나님 앞에 회개의 기도를 드립니다. 실컷 울고 나자 오히려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 투자자들을 만납니다. 간절히 호소합니다. “여러분, 제가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있다가 이런 일을 당했습니다. 회개하고 다시 시작해 보렵니다. 저를 믿지 마시고 제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한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그러면 원금에 이자까지 넉넉히 붙여서 반드시 돌려드리겠습니다. ” 다행히 가장 큰 손해를 본 사람이 그 말은 듣고 입을 뗍니다. “그래, 언제까지 기다려주면 되겠소” 결국 이렇게 해서 그는 보란 듯이 재기했고, 마침내 큰 사업가로 성공합니다. 그의 이름은 힐튼입니다. 세계적인 호텔 체인 힐튼의 창업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날개 아래 들어갔을 때 그는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지금 어려운 일을 당하고 있지 않습니까 곤고한 일이나 기가 막힌 상황에 봉착해 있지 않습니까 혹시 그것이 주님의 날개에서 벗어나 자행자지하며 내 힘으로 내 재주로 살아보려다 그렇게 된 것은 혹시 아닙니까 주님의 날개 아래로 나아가십시오.
주님이 안전하게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의 포기할 수 없는 보물이 무엇입니까 우리 가정의 가장 소중한 가보가 무엇입니까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 것은 다 지나갑니다. 다 사라집니다. 오직 어린 양 예수의 피만이 우리의 보물입니다. 부디 오늘 말씀을 마음 속 깊이 새기시고, 어린 예수의 피를 의지하며 승리하는 인생, 복된 가정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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