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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가정의 근심, 이렇게 극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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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가정이 믿음의 가정입니까 교회에 다니거나 교패가 붙었다고 믿음의 가정은 아닙니다. 교회 생활에 익숙하거나 교회의 전통을 따른다고 믿음의 가정이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성경대로,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사는 가정이 믿음의 가정입니다. 라브리 공동체는 믿음의 가정을 이렇게 말합니다.
가정은 변천하는 생의 수레바퀴입니다. 수많은 과정을 통하여 가정은 성장하고 발전합니다.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 듯이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완성된 가정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은 인간의 삶을 위한 가정 중요한 사회생태학적 환경입니다. 균형잡힌 인격을 형성하고 유지하기 알맞은 사회생태학적 환경이 있습니다. 자연 환경이 오염되면 문제가 되듯이 가정이 깨어지면 치명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가정을 보호하는 것은 환경을 바꾸는 것입니다.
가정은 창조력의 출생지입니다. 가정은 창조력을 개발시키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사람은 창조적일 수도 있고 파괴적일 수도 있습니다. 건설적인 창조력을 위해서는 의사 소 통이 가능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말하는 것이나 듣는 것이 잘 되어야 합니다.
가정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중심지입니다. 어릴 때부터 사람의 가치와 의미, 그리고 인생의 목적을 바로 알려주고 그것을 배워야 하는 장소입니다. 인간관계의 기본은 사랑입니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랑하고 표현하는지 배워야 합니다.
가정은 폭풍우 가운데 은신처입니다. 가정은 폭풍우가 일어날 때 은신처를 만드는 일을 가치 있게 여기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병원이기도 하고, 육아실이기도 합니다. 병들고 지친 인간을 환영하는 곳입니다. 위로 받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하는 곳입니다.
가정은 진리의 영원한 릴레이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이고, 무슨 일을 하셨으며,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전하는 곳입니다. 진리의 바턴은 세대를 넘어서 반드시 전해져야 합니다. 진리는 말만 아니라 행함과 본보기로 전해야 합니다.
가정은 경제적인 필요를 공급합니다. 부부는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그러나 경제가 우선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과 영적 교제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관계가 멀어진다면 적게 갖는 것이 낫습니다. 경제가 인간적인 것을 빼앗는 괴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가정은 교육의 조정기관입니다. 학교에 있지 않은 것을 보상해 주는 곳입니다. 21세기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상대적이고 영원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진정으로 옳고 그른 것이 없다는 상대론적 철학에 물들어 있습니다. 가정은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조정기관입니다. 비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루어 놓은 일들을 알게 합니다. 가정은 진리의 골조 안에서 성장합니다.
가정은 추억의 박물관입니다. 매일 매일의 추억을 박물관에 수집합니다. 추억을 만들기 위해 세심한 계획과 시간과 물질을 준비해야 합니다. 부모는 추억의 박물관장이라는 천직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가정은 돌쩌귀와 자물쇠가 달린 문입니다. 돌쩌귀는 기름칠이 잘되 있어서 문을 활짝 열수 있어야 합니다. 자물쇠는 아주 튼튼해서 닫힌 가족만의 공간이어야 합니다. 참된 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열고 닫는, 다른 가정에 영향을 주는 가정이어야 합니다.
우리 가정은 얼마나 믿음의 가정입니까 겉모양만 아니라 실제 삶이 얼마나 믿음의 가정입니까 행복하고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이 되려면 들어와서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걱정과 근심입니다. 걱정과 근심은 가정을 어둡게 하고 파괴합니다. 걱정이 가득한 가정은 어두운 먹구름 아래서 사는 가정입니다. 밝은 낮에도 밤과 같이 사는 가정입니다.
걱정과 두려움은 구분됩니다. 걱정이 비논리적이고 불합리한 이유에서 오는 위험스러운 감정이라면, 두려움은 실제적인 위협에서 자극되고 의식적으로 생긴 감정입니다. 걱정이 내적인 것이라면 두려움은 외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걱정은 적당한 원인이 없는 두려움이고, 지나친 걱정이 근심입니다. 5월의 화사한 날씨처럼 걱정 근심을 모르고 항상 밝게 사는 가정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고 기도하라
걱정을 물리치는 특효약이 믿음의 기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걱정이 생겼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가르쳐 주십시오. 도와주십시오. ” 기도하면 걱정 근심이 물려가고 여호와 하나님의 평강이 찾아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여호와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
한나는 아들이 없어서 고통을 받았습니다. 남편이 첩을 통해 아들을 얻었는데, 브닌나가 한나를 격동시켰습니다. 가정의 평화가 깨지고 한나는 괴로웠습니다. 한나는 실로의 성막에 올라가서 여호와 하나님께 심령을 쏟아 붓고 기도했습니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동됨이 많음을 인함이니이다(삼상1:16). ” 여호와 하나님이 한나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얼굴에 다시는 수백이 없느니라(삼상1:18). ”
한나는 마음의 슬픔을 무엇으로 극복했습니까 기도했습니다. 브닌나와 싸우지도 않았습니다. 남편에서 투정도 했지만 효과가 없다는 것을 곧 깨닫고 기도했습니다. 화풀이로 쇼핑을 하지 않았습니다. 바람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훌쩍 여행을 떠나지도 않았습니다. 가정의 근심 걱정을 잠재울 사람은 경건한 아내입니다. 현숙한 아내는 그 가치가 진주보다 귀합니다. 기도하는 아내가 복이 있습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보아라.
세상에서 시달린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 바라보아라.
아이들이 공부한다고 집을 떠나 있습니다. 요즘은 카드 전화가 싸서 국제 전화를 마음껏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목소리가 풀이 죽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신경이 쓰입니다. 한집에 살 것을 괜히 보냈나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인가 공부가 안 되나 온갖 걱정이 꼬리를 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제 마음을 다스려 주시고, 아이의 마음도 평안을 얻게 해 주십시오. ” 곧 연락이 옵니다. 목소리에 힘이 있습니다. 언제 먹구름이 지나갔는지 걱정은 사라졌습니다.
자녀들 때문에 걱정합니까 기도하는 자녀는 망하지 않습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아들의 회심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마루 바닥에 구멍이 날 정도였다고 합니다. 디모데에게는 로이스와 유니게 같은 기도의 어머니와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기도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책임질 것입니다.
육신의 부모는 자녀를 버려도 여호와 하나님은 세상 끝 날까지 책임지십니다. 좋은 사람 만나도록 기도합시다.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은사와 재능대로 키워주시도록 기도합시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도록 기도합시다. 기도한지 10년이 안 되었으면 아직 시집장가 보낼 때가 아닙니다.
생활이 걱정되면 기도합시다. 믿음의 기도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엘리야의 기도는 3년 6개월 동안 비 오지 않던 하늘에 축복의 장마비를 가져왔습니다. 마지막 남은 밀가루로 엘리야 선지자를 대접한 사렙다 과부의 집에는 3년 6개월 동안 양식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한 소년의 도시락을 축사하실 때 오천 명이 먹고 열두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기도하면 수입이 늘든지, 지출이 줄든지, 아니면 다른 좋은 길을 열어 주시든지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200만 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길을 걸으면서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먹었습니다. 만나는 여호와 하나님이 공급하신 기적의 양식입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기도합시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온 가족이 기도한다면 여호와 하나님이 양식을 주실 것입니다.
오늘 피었다지는 들풀도 입히는 여호와 하나님 진흙 같은 이 몸을 정금같게 하시네
푸른 하늘을 나는 새들도 먹이는 여호와 하나님 하물며 우리랴 염려 필요 없네
흉년을 피해 베들레헴을 떠났던 나오미의 가정은 남편과 두 아들을 잃었습니다. 요단의 들을 바라보고 나갔던 롯은 소돔성과 함께 모든 것이 불탔습니다. 살아보겠다고 기도 없이 행하다가 망하는 수가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중심, 교회중심, 신앙중심으로 행합시다. 네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잘될 것입니다.
건강이 걱정 되십니까 기도하십시오. 네 영혼이 잘됨과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한은 가이오의 건강을 간구했습니다. 바울같이 위대한 사도도 병약해서 고통 받았습니다. 세 번이나 기도해서 응답받았습니다. 병을 완전히 고쳐주신 것은 아니지만 감당할만한 건강을 주셨습니다. 모세는 120살이 되도록 눈이 흐리지 아니하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습니다. 사명을 다 할 때까지 여호와 하나님이 힘주시고 지켜주실 것입니다.
기도한다는 말이 병원이나 약을 거절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기도한다는 말이 건강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는 말도 아닙니다. 운동도 하고, 음식에 신경 쓰고, 병원이나 약도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받읍시다. 걷기가 건강에 정말 좋다고 합니다. 하루에 한 두 시간 걸읍시다. 병원도 정보를 공개한다고 합니다. 의료도 서비스입니다. 좋은 의료 서비스 받읍시다.
그러나 생사화복의 결국은 여호와 하나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건강을 자신도 모르고, 의사나 병원도 책임질 수 없습니다. 인간이 책임질 수 없는 부분까지 여호와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합시다. 건강을 주시는 분도 여호와 하나님이고, 건강을 얻는 대로 우리가 섬길 분도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기도 가운데 인생의 모든 걸음을 여호와 하나님께 맡깁시다.
문제와 문제의 해결
베드로는 물 위로 걷는 예수님을 보고 도전을 받았습니다. 나도 한번 걷게 해 주십시오. 물 위를 걸으라.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용기를 내서 물 위를 걸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바람이 불고 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던 눈이 풍랑으로 향하는 순간 베드로는 물에 빠져들었습니다. 풍랑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면 풍랑이 일어나고 빠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빠집니다. 풍랑이 일어날 때 일어나더라도 지금 현실에 충실 합시다. 건전하게 미래를 준비하는 것과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일어날 것처럼 걱정하는 것은 다릅니다. 준비를 잘하는 것과 불안에 떠는 것은 다릅니다.
아무리 예산을 잘 세워도 예비비 항목이 있습니다. 나머지는 예비비로 처리합시다. 몸 안에는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도 있지만, 그것을 공격해서 물리치는 백혈구도 있습니다. 병균이 들어오는 것도 막아야 하지만, 병을 이기게 하는 저항력도 키워야 합니다. 결벽증이나 완벽주의와 이별합시다. 내 힘으로는 부족해도 예수의 이름으로 걸어가는 믿음의 사람이 됩시다.
열 두 정탐군들이 40일 동안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왔습니다. 가나안은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그러나 가나안의 성은 하늘을 닿을 듯 높고, 가나안 사람은 대장부입니다. 그들 보기에 우리는 메뚜기입니다. 절대 가나안에 들어갈 수없습니다. 가나안은 피 흘리는 땅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우리를 죽이려 하십니까 우리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불신앙은 순식간에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오염시켰습니다. 그 결과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습니다. 가나안 사람이 우리의 밥이라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능히 감당할 수 있다 했습니다. 가나안은 여호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문제는 가나안 사람이고, 문제의 해결자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문제는 가나안의 높은 성이고, 문제의 해결자는 성보다 크고 견고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문제를 바라볼 것입니까, 문제의 해결 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볼 것입니까 소화불량이면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먹을 수 없습니다. 식욕이 왕성하면 뭐든지 먹고 소화시킵니다. 음식도 중요하지만 식욕이 있어야 합니다.
속초에서 제직 세미나를 하면서 화진포를 다녀왔습니다. 비도 오고 바람이 불어서 쌀쌀한 날씨였는데, 화진포의 성(일명 김일성 별장)을 보고나니 더 쌀쌀했습니다. 화진포의 성은 원래선교사가 지은 휴양지였는데, 6. 25 이전에 김일성 가족이 사용해서 김일성 별장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운치 있는 유럽풍의 성인데 안은 안보전시장으로 꾸몄습니다. 김일성과 휴전을 생각해서 안보전시장을 꾸민 것 같은데, 목사의 눈에는 원래대로 선교사의 추억이 기억되는 선교관으로 꾸몄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화진포의 아름다운 바다 경관과 선교사의 헌신의 삶을 한눈에 본다면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안보전시관 보다 선교관이 좋겠습니다. 생각을 바꾸고 안목을 바꿉시다.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눈으로 바라봅시다. 문제가 아니라 문제의 배후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나발은 집안에 양털을 깎는 축제일에 다윗의 사람들을 멸시해서 쫓았습니다. 원래 축제일에는 손님을 후하게 대접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런데 나발은 음식은커녕 원수 대하듯 쫓았습니다. 사울왕에게 반역하는 무리들.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악한 자들이라는 저주를 퍼 주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다윗은 즉시 군사를 거느리고 나발을 치러 옵니다.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합니까 아비가일은 음식을 준비해서 다윗을 맞으러 나갔습니다. 아비가일은 나발의 아내입니다. 나발의 악행을 용서해 달라고 대신 빌었습니다. 앞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실 분이 이런 일에 피를 흘리면 안 된다고 만류했습니다. 집안에 안아서 걱정하는 것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달려 나갔습니다. 아비가일을 지혜로운 여성입니다. 집안을 살리고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초석을 놓은 사람입니다. 모든 가능한 해결 방법을 찾읍시다. 그리고 즉시 실행에 옮깁시다. 믿고 행하면 근심은 보따리는 싸서 다른 집으로 이사할 것입니다.
문제를 보는 사람은 근심을 부르고, 문제의 해결을 찾는 사람은 근심을 쫓아냅니다. 생각이 많은 사람은 근심을 부르고, 행동하는 사람은 근심을 쫓아냅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근심을 부르고, 긍정적인 사람은 근심 대신 기쁨을 부릅니다. 과거의 실패에 사로잡힌 사람은 근심을 부르고, 미래의 소망을 품는 사람은 열정이 넘칩니다. 집안의 분위기를 바꿉시다. 식탁, 소파, 벽지도 새 것으로 바꿉시다. 무엇보다 긍정적인 생각과 내일에 대한 소망으로 새 집을 지읍시다.
변화시키는 용기와 받아들이는 평온
“오 여호와 하나님 우리에게 변화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과, 변화되어야 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두 가지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나인홀드 니버). ” 니버의 기도를 배웁시다.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거부할 것은 거부하고 변화시킵시다. 받아들이는 평온이나 변화시키는 용기는 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친구들은 목숨을 걸고 기도했습니다. 왕이 하사한 산해진미도 거부했고, 왕이 세운 금 신상에 절하는 것도 거부했습니다. 대단한 용기입니다. 다니엘은 기도한 죄로 사자굴에 던져졌습니다. 삼손처럼 사자의 입을 찢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연인과 같이 사자와 평온하게 하룻밤을 지냈습니다.
사자와 싸워 이기는 것도 필요하지만 사자와 함께 평안히 지내는 것도 필요합니다. 강한 것은 부러져도 약한 것은 부러지지 않습니다.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입시다. 결코 굴욕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맡깁시다. 죽든지 살든지 주 뜻대로 따릅시다. 이것이 참 믿음입니다.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고난과 죽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로써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칼이나 창으로 싸워 이긴 것이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수긍함으로 이겼습니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에게 반역을 당해서 감람산을 맨발로 울면서 넘어갑니다.
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시므이가 입에 담지도 못할 저주를 할 때 다윗은 묵묵히 그 저주를 받았습니다. 신하들은 당장 칼로 치자 했으나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이 허락한 것이면 받자고 했습니다. 아들에게도 반역을 당하는데 시므이가 저주하는 것이 새삼스럽지 않다고 했습니다. 수긍하는 것이 반역을 수습하는 지름길이었습니다.
남성은 굴복시켜서 이기려하지만 여성은 포용함으로 이깁니다. 근심은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받아들임으로 극복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마6:34). ” 한 걸음 한 걸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자에게 근심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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