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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행복한 가정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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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은 미국사회는 물론 우리 사회에도 적지 않는 충격파를 던졌습니다. 학교 내에서 발생한 최대의 총기난사 사건이라는 점과 조승희라는 범인이 한국국적의 이민자라는 점 때문입니다.
저는 다른 각도에서 이 사건을 조명해 보고 싶습니다. 범인 조승희가 1차 범행 후 작성한 영상과 문건이 공개됐습니다. 그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았습니다. 어디에도 가족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자기가 이런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게 된 후 가족들이 받을 고통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내용이 없었습니다. 자기가 자살하게 된 후 부모가 겪을 심적 고통에 대해 미안해하는 내용이 없었습니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었다면 자살을 하려고 할 때 가족들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도중에 포기할 것이고 정 자살을 결행한다고 해도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나 석별의 메시지라도 남기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끔찍한 일을 저지를 때 가족은 아무런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미국 청소년들 사이에 흔히 자기 부모를 “돈 대주는 기계”라고 부르는 은어가 있다고 합니다. 특히 미국에 이민 와서 하루 종일 일에 매달려 아이들과 만날 시간이 없는 부모들은 더욱 돈 대주는 기계로 전락하고 맙니다. 조승희의 부모가 그랬고, 그런 환경을 극복하지 못한 조승희가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만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가정들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참 많은 가정들이 심각한 위기 앞에 놓여있습니다. 어떻게 우리 가정을 행복한 가정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그 답은 성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아니 오직 성경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성경만이 가정의 기원, 가정의 본질, 그리고 참다운 가정의 행복을 제시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자 할 때 지침이 되는 말씀입니다.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어떻게 하면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라는 문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행복한 가정 만들기를 집을 짓는 것에 비유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행복한 가정의 기초 놓기
본문 6-8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우주 만물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셨듯이 우리 가정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셨다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행복한 가정의 기초가 있습니다.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친히 만드셨다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 가정을 행복한 가정으로 든든히 서게 하는 기초가 됩다. 이 믿음만 든든히 세워지면 어떤 시련이나 위기가 닥쳐와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창세기의 창조기사를 살펴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신 다음에는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아담에게는 모든 것이 다 준비되어있었습니다. 에덴동산의 모든 먹거리들, 자기가 보람과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일거리들, 부족함이 없어보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그것들로 채워질 수 없는 공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정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 안에서 행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정작 행복을 누리며 살도록 만들어 주신 가정 안에서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아니 그 가정 때문에 더 큰 불행을 겪는다는 점입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선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만드셨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 태양’씨와 ‘오 천사’씨가 눈에 콩 깎지가 씌어서 새끼손가락 얽어 약속하고 결혼합니다. 부들부들 떨면서 사랑을 고백합니다. 영원히 당신만을 사랑한다고 세레나데를 불러 댑니다. 결혼 서약서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사랑이 식습니다. 벌써 후회가 밀려옵니다. 나도 모르게 이혼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가 선택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이 가정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철저하게 깨닫고 감사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만드셨다는 사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게 꼭 필요한 배필을 허락해 주셨다는 사실, 우리에게 너무도 소중한 아이들을 주셨다는 사실 말입니다.
다음으로 우리 가정에 주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창 2:22절을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오시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와를 만드시고 그냥 에덴동산에 두시지 않았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오다가다 우연히 만나게 두지 않으셨습니다. 하와를 직접 아담에게 데려다 주시고 소개해 주시고 만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결혼이고 또 이것이 가정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매사에 간섭하시고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가정을 보면 모든 일을 우리 스스로 처리하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심지어 여호와 하나님이 귀찮고 필요치 않다고까지 생각합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요 2장을 보면 예수님의 첫 번째 이적 이야기를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 집에서 물로 포도주가 되게 하신 사건입니다. 그 가정에 골치 아픈 일이 생겼습니다. 잔치 도중 포도주가 떨어진 것입니다. 갑자기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다행히 그 집에 주님이 계셨습니다. 주님께서 역사해 주셨습니다. 문제가 해결되고 더 큰 행복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가정의 행복 그 기초는 바로 주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고마워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 집, 고마워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하루” 이 찬송을 뜨겁게 부를 수 있을 때 우리 가정은 행복의 기초를 든든히 놓게 됩니다.
행복한 가정의 건물 세우기
본문 8-9을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부부는 한 몸이 되었으니 한 몸으로 잘 살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가라는 명령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의 핵심 포인트는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부부가 진정 하나를 이룰 때 가정의 행복은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보고 마음이 저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23살 꽃다운 나이에 6. 25로 남편과 생이별을 하고 52년 수절 끝에 정귀엽 할머니는 북쪽 남편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남편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늘과 땅을 합친 것만큼이나 좋다. 지금도 못 만났으면 넋이 새가 되어 울고 다녔을 것이다. ”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헤어져 나오면서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진 보며 내 생각해요 나도 보고 싶으면 사진 볼꺼야” 기약 없는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자 이내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야 말았습니다. “52년 동안 혼자 살았는데 어떻게 또 혼자 가요 나 집에 안 갈꺼야 이제 어떡하라고요... ”
이런 것이 부부입니다. 52년 세월이 갈라놓을 수 없는 관계, 헤어지면 그립고 애틋한 사랑... 여기에 가정의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부부가 함께 있으면서도 소중함을 모르고. 서로 불편해하고 서로 다투고 힘들어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불행의 파장만 키워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우선 서로 다르다는 점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고 하셨습니다. 남자와 여자로 다르게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존 그레이 박사가 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란 책은 중요한 사실을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부부가 서로에 대해 화가 났거나 실망하는 것은 대개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중요한 진리를 잊어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남편은 화성에서 왔고 아내는 금성에서 온 다시 말해서 서로는 다른 별에서 온 사람처럼 다르다는 것을 기억할 때 서로 부대끼면서 겪는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무리하게 변화시키려는 헛된 노력에 정력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남자와 여자는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예컨대
1. 남자는 목표지향적이고, 여자는 관계지향적이다.
2. 남자는 존경과 칭찬받고 싶고, 여자는 사랑과 배려를 받고 싶다.
3. 남자는 축소 결론형으로, 여자는 확대 진술형으로 말한다.
4. 남자는 아내 지향적, 여자는 자녀 지향적이다.
5. 남자는 머리로 생각한고, 여자는 가슴으로 생각한다.
이런 보편적인 차이에 서로만의 고유한 차이까지 더해지면 남편과 아내는 참 많이 다릅니다. 이 차이를 잘못된 것, 틀린 것, 고쳐야 할 것으로 바라볼 때 불행이 찾아옵니다. 이 차이를 함께 누릴 소중한 축복으로 바라볼 때 행복은 찾아옵니다.
다음으로 서로 대화를 발전시켜가야 합니다.
부부가 하나를 이루려면 대화가 막힘없이 그리고 애정을 담아 이루어져야 합니다.
고든 코트맨 박사가 쓴 행복한 부부 이혼하는 부부라는 책을 보면 부부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화라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특히 부부 대화에서 위험한 요인이 있는데 이것을 잘 극복하면 행복한 부부가 될 수 있지만 극복하지 못하고 최악의 상태로 치달으면 결국 이혼하게 된다고 쓰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위험한 요인은 네 가지입니다.
 첫째는 비난입니다. 부부가 서로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불만을 표시할 때 상대방의 흠을 들추어내는 것 그것이 비난입니다. 예를 들어 아내가 약속에 늦게 나왔을 때 “당신은 왜 그 모양이야. 집에서 빈둥거리면서 시간하나 못 지켜. 그러니 애들이 다 그 꼬락서니지” 우리가 불만이 있어도 비난을 하면 안 됩니다. “당신 늦었네 뭐 바쁜 일 있었어!” 라고 말해야 합니다.
 둘째는 모욕입니다. 부부가 대화하면서 상대방이 말할 때 건성으로 듣거나 무시하는 것 그것이 모욕입니다. 상대방이 말할 때 조소하거나 그 말이나 행동을 흉내 내는 것 그것이 모욕입니다. 상대방이 격하게 말하도록 농담하는 것 그것이 모욕입니다. 이런 모욕은 상대방이 재고할 마음을 빼앗아 버리고 서로의 거리를 더욱 멀게 만듭니다. 상대방이 모욕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됩니다.
 셋째는 자기변호입니다. 부부가 변명을 하거나 핑계를 대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변명이나 핑계는 오히려 상대방을 비난하는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문제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서로에게 있는 그대로 진실되게 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넷째는 도피입니다. 부부가 대화도중 비난과 푸념을 들었을 때 상황을 피하고 대화하기를 거부해 버리는 것 그것이 도피입니다. 상대방이 말할 때 시선을 주지도 않고 들은 체도 않고 돌처럼 무감각해 버리는 것 그것이 도피입니다. 이런 도피는 상대방에게 정 떨어지게 만듭니다. 상대방이 말을 걸어올 때 시선을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말” 맞장구를 쳐주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부부가 대화만 유지해도 가정의 행복은 지켜갈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런 위험요소를 잘 제거한다면 가정의 행복은 더욱 풍성해 질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의 내부 장식하기
본문 8절에 “한 몸이 될찌니라”는 말씀은 한 몸이 된 이후에 대한 명령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 몸이 되고 나면 자녀를 낳게 되고 그 자녀들을 잘 양육함으로써 부부가 더욱 하나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 128:3을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 여호와 하나님께서 복된 아내와 행복한 가정을 이룰 뿐 아니라 그 아내와 사이에 복된 자녀들이 태어나 더욱 풍성한 행복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자녀문제 때문에 더욱 큰 불행을 겪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녀와의 관계 속에 갈등이 증폭되고, 자녀들이 잘못 자라서 부모들이 속을 썩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 자녀를 이해해야 합니다.
갈수록 자녀와의 세대차가 심해져서 자녀를 이해하고 대화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녀들과 허물 수 없는 벽이 생기고 있습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딸이 머리를 잘못 자르고 와서 속이 상해서 말합니다. “엄마! 머리를 너무 짧게 잘라서 엉망이야 창피해서 학교도 못가겠어” “뭐 괜찮은데”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 엄마 수준에서나 괜찮지” “시끄러 고 1짜리가 무슨 머리타령이냐 공부나 열심히 해 공부 열심히 하면 다 예뻐져” “하여튼 엄마는 공부공부 그놈에 공부 빼면 할 말이 없지 정말 짜증나”
딸을 이해하면 이렇게 바꿀 수 있습니다. “엄마 머리를 너무 짧게 잘라서 엉망이야 창피해서 학교도 못가겠어” “좀 그래 보인다. ” “엄마 내일 학교 어떻게 가지” “글쎄 그렇겠다. 가다가 남자 친구라도 만나면 어쩌니” “요즘 초등학교 남자 동창들을 가끔 만나거든” “난처하겠네 어떻게 하지” “할 수 없지 며칠 동안 학교에 일찍 가는 수밖에”
우리가 힘이 들지만 아이들을 이해하려고 해야 하겠습니다. 열린 마음 따뜻한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가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자녀들을 믿음으로 잘 양육해야 하겠습니다.
구약 모세 오경에 아므람과 오게벳 가정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가정은 세 명의 자녀를 모두 이스라엘 민족 지도자로 길러냈습니다. 미리암은 남다른 총명함으로 이스라엘의 최초의 여선지자가 되었습니다. 아론은 뛰어난 언변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고 최초의 대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신실한 믿음과 지도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웠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었을까요 바로 요게벳의 신앙교육의 힘입니다. 요게벳은 모세에게 젖을 물리며 “너는 유대인이며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살아야 한다. ”고 되풀이해서 말했습니다. 물론 미리암과 아론에게도 같이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젖을 뗀 후 모세가 성인이 될 때까지 보이지 않게 뒤에서 아들을 위해 기도한 그 기도의 힘으로 모세를 위대한 지도자가 되게 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도 자녀들을 믿음으로 잘 양육해야 하겠습니다. 아이들이 믿음으로 잘 자라서 여호와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을 받는 것을 보는 것은 더할 수 없는 가정의 행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우리 가정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행복한 가정입니까 더욱 행복한 가정으로 세워가시기 바랍니다. 아직 불행의 그림자가 남아있습니까 그 그림자를 어서 걷어내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기초를 놓으십시오. 부부가 진심으로 하나를 이루십시오. 나아가 자녀들을 잘 양육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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