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가정은 행복을 만들어 내는 공장
본문
현대 사회를 평가 할 떼 부모 중심의 대가족 사회에서 부부중심 핵가족 사회로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한걸음 더 나아가서 자녀중심의 신세대 가족 사회로 변질, 타락해간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말세의 고통을 예언한 바울사도는 말세징조 중의 하나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부모를 거역하는 자녀들의 출현'이라고 했습니다. (딤후3:1-4)
부모가 중심일 때는 자녀가 복종하는 위치입니다. 부부 종심일 때는 자녀와 부모가 맞먹는 구조입니다. 자녀 중심일 때는 자녀가 상전이 되어 있고 부모는 저 변두리에서 하녀나 노에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그러면 성경은 대가족을 인정할까요 핵가족이나 신세대 가족 중 어느 것을 인정 할까요 성경은 이 세가지 모두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바로 "주안에서의 가족"을 인정합니다.
오늘 본문 엡6:1을 보세요.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대가족이나 핵가족이나 신세대 가족안에서가 아니라 주안에서 부모를 순종하라입니다. -"주안에서" 이것이 놀라운 성경적 가족구조요 제도입니다.
그러면 '주안에서'란 무엇입니까 - 주님께 순종하는 범위안에서라는 말이며, 주님을 믿는 자로서,주님을 중심으로 하여, 주님과 함께 하는 가운데서라는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가족들은 부모나 자녀가 다함께 주님께 소속된 자로서 주님과 동행하는 자로서 가정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왜 가정을 건설하셨습니까 그것은 주님은 당신을 믿는 가족들과 함께 가정에서 행복을 만들기 위하여 가정을 세우신 것입니다.
즉 믿는 사람에게 가정이란 주님과 가족이 함께 행복을 만들어 내는 공장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말씀선포의 제목을 "가정은 행복을 만들어 내는 공장"이라고 정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는 행복이 생산됩니까
어떤 글에 보니 현대인의 가정에서 아버지는 돈 제조기, 어머니는 밥 제조기,자녀는 성적 제조기 일뿐이라고 하였습니다. 돈과 밥과 성적만 있지, 행복은 없다는 말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행복을 제조하는 Hapymaker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사람이 인생을 사는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에 있습니다. 먹는 것도 행복이요! 돈버는 것도 행복이요! 신앙생활하는 것도 행복에 있습니다. 불행하게 인생을 사는 것은 저주입니다.
여러분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면서 한없는 행복감을 가져야 합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여호와 하나님때문에 임하는 행복감이 저 가슴 밑바닥에서 샘물처럼 솟아 나야 아름다운 신앙을 가진 자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성도들에게서 가끔 이런 말을 듣습니다. 예수 믿는 재미가 없이 무슨 맛으로 세상을 삽니까
잘 생각해 보면 굉장한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재미없이 무슨 맛으로 세상을 삽니까 이 말은 예수 믿는 신앙 생활이 굉장히 행복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고백이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 믿는 것은 행복해야 됩니다.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은 정말 행복해서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처럼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는다. 신앙 생활을 한다' 라는 것은
갈라디아서 2장20절에 나오는 말씀을 그대로 우리의 삶에서 실천하는 것을 의미하고, 체험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20절에 보면 '이제 예수 믿은 사람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신다. ' 이렇게 고백한 다음에 이런 말씀이 뒤 따라 나옵니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그러므로 신앙 생활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다른 말로 하면 죽도록 나를 사랑하신,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와 함께 사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 라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만큼 행복한 것이 또 있습니까 사랑에 눈이 어두워진 두 연인에게는 둘만 있으면 집이 좀 작아도 괜찮습니다. 가난해도 괜찮습니다. 어떤 때는 고생을 하고 남에게 욕을 들어도 괜찮습니다. 그저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나를 위해서 죽도록 사랑하신 예수님하고 함께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행복해야 됩니다. 누구에게나 이 행복이 마음에 담겨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정상입니다.
제가 살던 시골 마을 바닷가에는 제가 좋아하던 조그만한 바위가 하나 있습니다. 만조가 되어서 물이 가득하게 해면을 채우면 그 바위는 보이지 않습니다. 멀리서 보면 바위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 보면 유리알처럼 맑은 물 속에 그 바위는 여전히 앉아 있습니다. 아름다운 고기들이 넘나들고 청초한 미역들이 춤을 추는 그런 모습을 지닌 채 그 바위는 앉아 있습니다. 파도가 칩니다. 바람이 붑니다. 밖에서 보면 바위는 없는 것 같지만 여전히 그 바위는 그 자리에서 파도와 싸워 이기고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앉아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행복도 이 바위와 같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평상시에는 '저 사람이 세상 사는 재미로 저렇게 행복해 하나 아니면 예수 믿는 재미로 저렇게 행복해 하나' 가리기가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수 믿는 재미 때문에 행복해 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음에 행복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가끔은 눈물과 한숨과 잠 못 자는 고통을 안고 씨름 할 때도 있는데 그러면 '저 사람 마음에 그 행복이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면, 파도가 넘실거리는 물 속에 그 바위가 여전히 있듯이 그 사람의 마음 속에 행복의 바위가 있는 것을 봅니다. 이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교회를 다니는 분들 가운데 이 행복을 모르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 중에는 예수 믿는 것이 따분하고 지루하고 너무나 힘겨워서 '어떻게 하면 이것을 좀 벗어버릴 수 있을까' 라는 생각까지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쩌다가 끌려 들어와서 이 젊은 나이에, 주일날 어디 가지도 못하고 교회 와서 지루하게 한 시간을 꼬박 앉아 있어야 되고, 그것도 재미있는 설교나 하면 모르지만,
어떤 때는 기분 나쁜 말도 듣고, 욕도 먹어야 하다니! 내가 무슨 팔자가 사나워서 이 꼴이 됐나. '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이왕 예수를 믿을 바에는 한 60살 넘어서 믿었어야 하는 건데. 그 때는 할 일도 별로 없으니까 정말로 재미있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텐데. 이 나이에 이게 뭐냐' 예배 시간도 지루하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기도 드릴 때 눈을 감는 것만 해도 답답해서 빨리 뜨고 싶은 생각이 자주 들고, 성경 말씀을 읽는다는 것도 정말 부담스러운 그런 분들이 많습니다. 비정상입니다. 신앙생활은 그렇게 재미없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행복하고 재미있는 것인 줄 모릅니다.
저는 이 행복을 가정에서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정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주인이 되시고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를 통해서 그리고 사랑하는 자녀들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충만히 느끼고 살수 있는 공간을 가정으로 하락하신 것입니다.
가정이 행복의 장소여야 합니다. 밖에서 하루종일 시달리고 힘들어 하는 남편이 가정에 돌아 와서 가장 편안하게 쉴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지치고 피곤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왔다가 할지라도 가정에 돌아 오면 모든 것을 잊어 버리고 편안하게 쉴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으로 가정은 사막에 오아시스와 같은 곳입니다. 세상에 행복에 목말라 하는 사람들이 얼마 많습니까 그들이 가정에서 행복의 샘물이 펑펑 쏫아져서 행복의 물을 충분하게 마시고 재 충전을 받아 또다시 힘을 얻고 세상을 향해서 힘차게 나가는 장소가 가정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 가정도 행복을 만드는 공장이 되겠습니까
1 먼저 가로막는 것을 없애야 합니다.
무엇이 우리 가정으로 하여금 행복을 만드는 일을 훼방합니까
그것은 부모와 자녀간의 "세대차이"입니다. 세대 차이는 현대 교육과 각종문화가 급속하게 자녀들에게 쏟아져 들어감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급속한 세대차이를 경험하면서 삽니다. 대화가 안통합니다. 말하는 언어 자체가 다릅니다. 생각하는 것이 너무나 다릅니다. 같은 단일 민족이요!
같은 문화적 환경속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마치 외계인을 만난 것 처럼 다른 것을 느낄때가 많습니다. 특별히 이 세대차이가 가정속에 그대로 들어 와서 저녀들과 부모와의 무서운 담벽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자녀 세대와 부모 세대와 전혀 다른 가치관과, 사상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피할 길이 없는 무서운 행복 창조사역의 방해물입니다.
돈과 쾨락과 개인과 현세와 출세와 지위나 사업만을 제일주의로 알고 있는 인생으로 현대 교육은 자녀들을 물들게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세대차이를 어떻게 없앨수 있습니까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은 한가지 사상, 통일된 가치관, 과거 현재 미래 어느 세대나 다 통할 수 있는 인생관을 부모와 자녀가 함께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곧 오늘 본문의 "주안에서"라는 말입니다.
부모도 자녀도 모두 주님안으로 들어와야합니다. 주님 중심의 가치관, 성경중심의 인생관을 가져야하는데 이것은 주님을 영접하고 성경을 받아드릴 때 주어집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아들과 손자 모든 식구가 한 자리에 앉아 대화가 됩니다. 세대차이가 없습니다. 전세계 어디가서나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가정에는 세대차이가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대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그들은 3대가 함께 사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답니다. 그런데도 아무런 세대차이를 느끼지 않는 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식과 부모와 막힌 것이 없습니다. 손자와 할아버지가 막힌 것이 없습니다.
믿음 안에서 같은 생각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세를 이야기 하면 하루종 일 이야기 할 수 잇습니다. 다윗을 말하면 하나로 통합니다. 유월절을 보내면서 그들은 옛날 조상들이 출애굽 할 때의 이야기를 하면서 충분한 교감과 동질감을 느낍니다. 그들은 장막절을 지내면서 1주일 동안 천막을 치고 광야에 나가서 직접 함께 먹고 자면서 옛날 자기의 조상들이 이렇게 광야에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였을까를 생각하면서 함께 하나됨을 체험합니다. 그들은 가치관이나 생각이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럼으로 가장 세대차이를 모르는 민족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다 무엇으로 가능합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안에서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행복을 창조하려면 먼저 온가족이 예수님을 모셔드리는 일부터 시도해야합니다.
아직 가족 중에 예수님을 모시지 않은 비신자가 있는 분들은 낙심하지 마시고 사랑과 온유로서 전도부터 하시기 바랍니다. 최우선적으로 예수믿고 교회 다니는 것을 반대하지 않도록 힘을 쓰셔야합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인데 자녀 여러분 최고의 효도는 부모님으로 예수님을 믿도록 도와드림으로 천국 백성 되시게 해 드리는 것이 최고의 효도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어버이날이라고 맛있는 사드리고 옷 사다 드리고, 멋있는 곳에 가서 구경시켜 드리고 하루를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효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다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어버이 주일을 맞이 해서 여러분 가운데 몇 사람이나 예수 믿지 아니하는 부모님께 기도하고 전도하는 일을 하였습니까
사랑하는 부모님을 세상에서 아무리 잘 모셨다 할지라도 천국가지 아니하고 지옥가면 어떻게 합니까
그럼으로 전도하는 효도는 가장 아름다운 효도입니다.
일본 동경에 살인 강도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의 딸은 독실한 신앙으로 자라났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자기 아빠가 살인강도가 아닙니까 그녀는 복음과 회개와 용서를 전하였으나 아빠는 거부하며 받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딸은 아빠의 뒤를 따라 갔습니다. 시부야 공원 숲속으로 숨는 아빠를 본 딸은 귀부인으로 변장을 하고 손에 가방을 들고 구두소리를 내며 산을 내려갑니다. 자기 딸인 줄 모르는 그는 딸을 찌르고 가방을 빼앗아 도망을
칩니다. 그런데 가방을 열어보니 그곳에는 돈은 없고 딸의 유서만 있습니다.
"아버지 이 불효한 딸을 용서하세요, 오늘 밤 죽인 것은 아버지가 사랑하는 딸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버지 영혼을 구원하여 천국으로 모시는 길은 이 길밖에 없는 줄 알고 또한 남의 자식 죽이면 그 부모의 고통이 얼마나 큰가를 아버지는 모르시고 계시기에 나는 지금 죽어도 천국에 들어 갈준비가 되어 있사옵기에 최후로 이 길을 택하였사오니 저를 자식으로 생가하신다면 불쌍하다 마시고 회개하시고 예수님을 믿으시어 천국에서 기쁜 낯으로 만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계세요" 강도는 입술을 깨물고 통곡하며 웁니다. 후일 그는 자수하고 20년을 징역을 살되 모범수로 신앙생활을 하여 나중에는 풀려나와 딸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부모여, 자녀여, 무엇을 느낍니까 전도해야합니다.
지상에서의 행복보다 천상의 동반자요 영원한 행복의 가족이 되도록 도와 드림이 더욱 중요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면 부모님이라 할지라도 무너지지 아니하는 장벽이 있습니다. 신앙과 불신앙의 장벽이 얼마나 높은지 모릅니다. 다 통하고 이해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는 이해가 안되고 대화가 막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여러분들의 가정에 무엇이 아직 장벽으로 남아 있습니까 새대간의 차이가 장벽입니까 가치관의 차이가 장벽입니까 문화적인 것이 커다란 장벽입니까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다 극복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지 아니하는 장벽은 가장 큰 장벽입니다. 이 장벽을 허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2 행복은 이해의 문제에 달려 있습니다. (6:1)
이해 "이것을 순종하라"는 명령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주안에 있기 만하면 안됩니다. - 1절의 말씀을 보세요' 순종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행복은 이해하고 순종할 때에 만들어 집니다.
여기의 순종이란 말은 노예가 주인의 말을 잘 경청하여 그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란 뜻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또 법원에서 판사가 판결을 정확하게 하기 위하여 피고의 진술을 귀기울여 듣는 태도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자녀들도 이와같이 부모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저 말씀의 뜻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파악하는 자녀가 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순종은 쉬워집니다. 어떤 명령 이든지 복음의 명령은 자녀의 행복을 위한 것이요, 훌륭한 성장과 장래의 성공을 위한 것입니다. 바로 이 뜻을 파악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명령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그 원인을 하나 하나 설명을 듣자는 것이 아니요, 그 명령의 근본적인 뜻과 의도가 어디 있는지를 파악하라는 뜻입니다. 나의 행복을 위한 말씀이라는 것을 안다면 순종은 쉬워집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성도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빨리 깨달아 그 뜻 앞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자입니다.
누가 효도하는 자입니까 부모님의 마음을 잘 헤아려 그 마음을 흐뭇하게 해 주는 자가 효도하는 자입니다. 사람은 마음이 중요하기 때문에 아무리 호의 호식해도 마음이 괴로우면 괴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초가 삼간에 살아도 마음이 기쁘면 행복한 것입니다. 그럼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내 마음에 구주로 모시고 사는 자가 행복한 것이 아닙니까
부모의 마음을 못질하고서 다른 것은 아무리 잘해도 불효하는 자입니다. 어머니를 이해하면 아무도 불효 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사실 어머니의 사랑과 그 마음을 아직 다 모르기 때문에버릇 없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아르메니아 대지진 때의 이야기 입니다.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져 내려 스물여섯살의 스잔나 페트로시안과 네살된 딸 가야니가 건물 벽 속에 갇혔다. 모녀를 기다리는 것은 오직 죽음의 공포 뿐. 아이는 갈증과 굶주림에 지쳐 울부짖었다. 그때 스잔나는 유리조각으로 손가락을 찔러 딸에게 자신의 피를 먹였다. 어머니는 딸이 보챌 때마다 차례차례 손가락을 베어 아기의 입에 물렸다. 이들 모녀는 매몰된 지 14일 만에 극적으로 구출됐는데 어머니 스잔나의 손가락 열개는 모두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우리의 어머니는 바로 이런 분이다. 그분은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며 가족을 위해 1년 평균 7200개의 그릇을 닦는다. 어머니의 사랑은 물이나 산소같아서 우리가 그것의 고마움을 망각할 때가 많다. 자녀가 어머니의 사랑을 깨달을 때쯤,그분은 이미 우리 곁을 떠난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효도는 다른게 아닙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그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것이 효도입니다.
이렇게 부모님의 마음만이 아닙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의 마음을 잘 이해해 주어야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4절에서 아비들은 자녀를 노엽게 말라고 하였는데 이 경우에도 부모가 자녀를 잘 이해한다면 결코 노엽게 할말
상처가 될 말, 섭섭할 말을 하지 않게 됩니다.
"저 아이가 왜 저것을 요구할까 저 아이가 왜 저 실수를 하였을까 저 아이가 왜 친구들과 싸웠을까
등등 무조건 야단을 치기전에,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른의 마음으로 아이들의 행동을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가 안되지만 그러나 입장을 바꾸어 놓고 내가 저만할때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하면 금방 이해가 됩니다.
머리에 무스를 발르고, 노랑머리 물 드리고. 구두가 삐쭉하게 나온 것을 신고 심지어는 모자를 쓰고 예배를 드리는 것을 보면서 잘 이해가 안되지만 나도 옛날에 학교 다닐때 모자를 세워서.... 옷을 이불 밑에 깔아 다려입고, 나팔바지 입고 광발재고 다녔던 생각이 납니다. 그런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아이들이 하는 것을 별로 부담을 갖지 아니하고 이해하게 됩니다.
어떤 학생이 예배시간에 좀 늦게와서 저 중2층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모자를 확 꺽어서 모자를 쓰고 계속 예배를 드리더라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계속 그 학생에게 신경이 가서 잘 설교를 할 수 없습니다. 모자를 벚지 않고 왜 쓰고 예배를 드리나 좀 모자를 벗었으면 좋겠는데...... 예배가 마치고 인사를 하면서 그 학생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빈정투로.... 왜 모자를 쓰고 예배를 드리는가...... 학생이 하는 말 "목사님은 왜 안경을 쓰고 예배를 드립니까
썰렁! 제가 너무 수준 높은 이야기를 했나요 아무런 표정이 없는 것을 보니.....
가족을 여러 각도에서 이해하는 것이 있어야 행복을 만들어 갈 수있습니다.
예수님도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의 입장이되어 보셨기 때문에 우리 인간의 죄를 다 용서하시고 도와 주시는 것입니다.
벤자민 웨스트라는 유명한 화가는 자신은 어머니에 의하여 만들어졌다고 했습니다. 어린 시절 거울을 깨트리면
"안 다쳤니 그러면 됫다, 엄마도 그랬었단다. 거울은 다시 끼면 되요,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네 몸은 다치면 안된다" 이와같은 엄마는 아이에게 천사와 같은 존재입니다. 모든 부문에서 상대를 이해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행복은 이해하며 순종할 때에 만들어 집니다. -할렐루야!
3 행복은 가치있게 여기는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6:2)
행복이란 부모와 자녀 그리고 온 가족이 서로 서로를 가치있게 여겨줄 때에 만들어집 니다.
2절에서 부모를 공경한다란 부모를 존경한다는 뜻이요, 곧 부모를 가치있는 존재로 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4절의 노엽게 하지말라에서 자녀를 노엽게 한다는 것은 자녀를 무시하거나 가치가 없는 물건으로 취급할 때에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자녀를 성경대로 여호와 하나님이 내게 주신 기업이요, 상급으로 본다면 얼마나 가치있는 선물입니까 사랑하지 않을수 없지요. 또한 부모님은 나에게 얼마나 귀한 존재일까요
성경에는 어버이를 여호와 하나님의 대리자로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어버이는 몇가지의 이유로 여호와 하나님의 대리자가 됩니다.
첫재, 어버이는 자녀를 낳아 주신데서 여호와 하나님의 대리자가 됩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를 말합니다.
둘째, 어버이는 자녀를 길러주심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대리자가 됩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를 말합니다.
부모는 육체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모든 정성을 다해 그리고 희생적으로 자녀를 기릅니다. 이면은 순전히 본능에서 사는 동물의 세계에서 보다 현저히 드러나 그것이 창조주의 역사임을 알게 해 줍니다.
셋째, 어버이는 자녀를 바로 기르기를 원하며 자녀가 잘못되면 이를 징계하는데서 여호와 하나님의 대리자가 됩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말합니다. 사람이란 자신은 부족해도 자녀만은 완벽히 기르기를 원합니다.
이와같이 어버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삼권인 창조와 섭리와 심판의 권력을 대리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어버이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을 배울 수 있고, 또 어버이에게 효도함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습니다. 이러할 때에 행복이 만들어지고 넘쳐 흐릅니다.
4 행복은 가르침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6:3-:4)
왜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순종을 안할까요 그리고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을 안할까요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과 순종해야 할 말씀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순종을 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리와 순종이 주는 행복과 장수, 그리고 잘되는 형통을 배워서 알았더라면 결코 불순종을 할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된 사람들은 3절의 말씀처럼 잘되고 장수하는 길이 순종임을 아시고 진리와 순종에 대하여 배우기에 힘을 써야합니다. 반면에 부모되신 분들은 4절의 말씀처럼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자녀들에게 진리와 순종을 가르쳐야합니다.
여러분! 한번 가르쳐 주면 잘 하리라고 생각하고 한번 이야기 하고 그 다음부터는 잔 소리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 아무소리 안하고 가르치는 것을 등한히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TV에 나오는 광고는 매일 마다 달라지지 않습니다. 한번 만들면 오랫동안 한 광고를 합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생각과 의식속에 그것을 심기 위한 반복교육입니다. 다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가만 나두면 안됩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반복해서 말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중요한 것이면 계속해서 가르치시기를 바랍니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잠 1:8)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 (잠 4:1)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 (잠 13:1)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 22:6)
여러분 상식적으로 다 알고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계속해서 훈계 하고 가르치시기를 바랍니다.
잘 가르침을 받는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나중에 부모를 존경하고 밖에 나아가 많은 사람들에게 부모를 높이는 자가 됩니다. 그렇쟎습니까 밖에 나가 잘 하면! 저집 아이가 누구집 아들인가 그럼 그렇지! 역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고만... 하면서 아버지께 영광이 돌아 갑니다.
그런데 밖에 나가서 악을 행하고 못된 짓을 많이 하면 나중에 사람들이 저집 애비는 누군고 그럽니다. 그러면 누구 아들이 아니요!... 그래 그버릇이 어디로 가냐 그리고 아버지의 얼굴에 침을 뱉게 만듭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이 세상에 나가서 잘 못 살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지만 잘 살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 내는 것 과 같은 것입니다. 그럼으로 부모님 자신들을 위해서라도 가르치기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여러분' 탄광촌 목사의 아내 요한 웨슬러의 어머니를 아시지요, 자녀가 13명 이었는데 학교를 못 보냈습니다. 그래서 웨슬러의 어머니는 자녀 교육을 위하여 한주간의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주일에는 신앙서적과 성경만을 보게합니다.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공부 시켰고, 수요일에는 논리와 윤리학을, 목요일은 히브리어와 아랍어를 금요일에는 철학을 토요일에는 웅변, 시, 일기 발표를 시켰습니다.
2주일에 한번은 고아원을 방문하고 다시 2주일이 되면 양노원을 방문하게 하였습니다. 한주 한끼는 금식을 하게 하였습니다. 하루 세번은 소리내어 기도하며 매일 가족끼리 성경을 가지고 기도회를 하기를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침대 앞에서 매일같이 "너희는 누구냐 우리는 위대한 아이입니다", "누가그랬냐","여호와 하나님이요","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역사를 창조하고 있습니다","누가 그렇게 시켰냐", "우리를 위대하게 쓰시기를 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요" 아멘!
이와같이 행복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가르치고 배우려고 해야합니다.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행복을 만드는 공장입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부모를 이해하고 공경하며 순종해야합니다. 진리를 가르치며 배워야합니다. 그럴 때 여기서 행복은 창조됩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가정이 여호와 하나님의 행복을 만들어 내는 행복 공장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가정이 너무 너무 행복해서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행복하게 살아!... 그러면 네 그래요 저희 가정은 비결이 있어요! 여호와 하나님 우리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어요! 그렇게 전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불행함으로 가족관계가 깨어지고 힘들어 하고 있는 가정들을 향하여 행복을 저 세상불행한 사람들을 위하여 나누어주기까지 크게 복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모가 중심일 때는 자녀가 복종하는 위치입니다. 부부 종심일 때는 자녀와 부모가 맞먹는 구조입니다. 자녀 중심일 때는 자녀가 상전이 되어 있고 부모는 저 변두리에서 하녀나 노에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그러면 성경은 대가족을 인정할까요 핵가족이나 신세대 가족 중 어느 것을 인정 할까요 성경은 이 세가지 모두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바로 "주안에서의 가족"을 인정합니다.
오늘 본문 엡6:1을 보세요.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대가족이나 핵가족이나 신세대 가족안에서가 아니라 주안에서 부모를 순종하라입니다. -"주안에서" 이것이 놀라운 성경적 가족구조요 제도입니다.
그러면 '주안에서'란 무엇입니까 - 주님께 순종하는 범위안에서라는 말이며, 주님을 믿는 자로서,주님을 중심으로 하여, 주님과 함께 하는 가운데서라는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가족들은 부모나 자녀가 다함께 주님께 소속된 자로서 주님과 동행하는 자로서 가정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왜 가정을 건설하셨습니까 그것은 주님은 당신을 믿는 가족들과 함께 가정에서 행복을 만들기 위하여 가정을 세우신 것입니다.
즉 믿는 사람에게 가정이란 주님과 가족이 함께 행복을 만들어 내는 공장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말씀선포의 제목을 "가정은 행복을 만들어 내는 공장"이라고 정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는 행복이 생산됩니까
어떤 글에 보니 현대인의 가정에서 아버지는 돈 제조기, 어머니는 밥 제조기,자녀는 성적 제조기 일뿐이라고 하였습니다. 돈과 밥과 성적만 있지, 행복은 없다는 말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행복을 제조하는 Hapymaker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사람이 인생을 사는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에 있습니다. 먹는 것도 행복이요! 돈버는 것도 행복이요! 신앙생활하는 것도 행복에 있습니다. 불행하게 인생을 사는 것은 저주입니다.
여러분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면서 한없는 행복감을 가져야 합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여호와 하나님때문에 임하는 행복감이 저 가슴 밑바닥에서 샘물처럼 솟아 나야 아름다운 신앙을 가진 자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성도들에게서 가끔 이런 말을 듣습니다. 예수 믿는 재미가 없이 무슨 맛으로 세상을 삽니까
잘 생각해 보면 굉장한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재미없이 무슨 맛으로 세상을 삽니까 이 말은 예수 믿는 신앙 생활이 굉장히 행복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고백이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 믿는 것은 행복해야 됩니다.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은 정말 행복해서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처럼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는다. 신앙 생활을 한다' 라는 것은
갈라디아서 2장20절에 나오는 말씀을 그대로 우리의 삶에서 실천하는 것을 의미하고, 체험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20절에 보면 '이제 예수 믿은 사람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신다. ' 이렇게 고백한 다음에 이런 말씀이 뒤 따라 나옵니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그러므로 신앙 생활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다른 말로 하면 죽도록 나를 사랑하신,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와 함께 사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 라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만큼 행복한 것이 또 있습니까 사랑에 눈이 어두워진 두 연인에게는 둘만 있으면 집이 좀 작아도 괜찮습니다. 가난해도 괜찮습니다. 어떤 때는 고생을 하고 남에게 욕을 들어도 괜찮습니다. 그저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나를 위해서 죽도록 사랑하신 예수님하고 함께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행복해야 됩니다. 누구에게나 이 행복이 마음에 담겨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정상입니다.
제가 살던 시골 마을 바닷가에는 제가 좋아하던 조그만한 바위가 하나 있습니다. 만조가 되어서 물이 가득하게 해면을 채우면 그 바위는 보이지 않습니다. 멀리서 보면 바위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 보면 유리알처럼 맑은 물 속에 그 바위는 여전히 앉아 있습니다. 아름다운 고기들이 넘나들고 청초한 미역들이 춤을 추는 그런 모습을 지닌 채 그 바위는 앉아 있습니다. 파도가 칩니다. 바람이 붑니다. 밖에서 보면 바위는 없는 것 같지만 여전히 그 바위는 그 자리에서 파도와 싸워 이기고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앉아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행복도 이 바위와 같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평상시에는 '저 사람이 세상 사는 재미로 저렇게 행복해 하나 아니면 예수 믿는 재미로 저렇게 행복해 하나' 가리기가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수 믿는 재미 때문에 행복해 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음에 행복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가끔은 눈물과 한숨과 잠 못 자는 고통을 안고 씨름 할 때도 있는데 그러면 '저 사람 마음에 그 행복이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면, 파도가 넘실거리는 물 속에 그 바위가 여전히 있듯이 그 사람의 마음 속에 행복의 바위가 있는 것을 봅니다. 이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교회를 다니는 분들 가운데 이 행복을 모르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 중에는 예수 믿는 것이 따분하고 지루하고 너무나 힘겨워서 '어떻게 하면 이것을 좀 벗어버릴 수 있을까' 라는 생각까지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쩌다가 끌려 들어와서 이 젊은 나이에, 주일날 어디 가지도 못하고 교회 와서 지루하게 한 시간을 꼬박 앉아 있어야 되고, 그것도 재미있는 설교나 하면 모르지만,
어떤 때는 기분 나쁜 말도 듣고, 욕도 먹어야 하다니! 내가 무슨 팔자가 사나워서 이 꼴이 됐나. '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이왕 예수를 믿을 바에는 한 60살 넘어서 믿었어야 하는 건데. 그 때는 할 일도 별로 없으니까 정말로 재미있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텐데. 이 나이에 이게 뭐냐' 예배 시간도 지루하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기도 드릴 때 눈을 감는 것만 해도 답답해서 빨리 뜨고 싶은 생각이 자주 들고, 성경 말씀을 읽는다는 것도 정말 부담스러운 그런 분들이 많습니다. 비정상입니다. 신앙생활은 그렇게 재미없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행복하고 재미있는 것인 줄 모릅니다.
저는 이 행복을 가정에서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정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주인이 되시고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를 통해서 그리고 사랑하는 자녀들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충만히 느끼고 살수 있는 공간을 가정으로 하락하신 것입니다.
가정이 행복의 장소여야 합니다. 밖에서 하루종일 시달리고 힘들어 하는 남편이 가정에 돌아 와서 가장 편안하게 쉴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지치고 피곤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왔다가 할지라도 가정에 돌아 오면 모든 것을 잊어 버리고 편안하게 쉴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으로 가정은 사막에 오아시스와 같은 곳입니다. 세상에 행복에 목말라 하는 사람들이 얼마 많습니까 그들이 가정에서 행복의 샘물이 펑펑 쏫아져서 행복의 물을 충분하게 마시고 재 충전을 받아 또다시 힘을 얻고 세상을 향해서 힘차게 나가는 장소가 가정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 가정도 행복을 만드는 공장이 되겠습니까
1 먼저 가로막는 것을 없애야 합니다.
무엇이 우리 가정으로 하여금 행복을 만드는 일을 훼방합니까
그것은 부모와 자녀간의 "세대차이"입니다. 세대 차이는 현대 교육과 각종문화가 급속하게 자녀들에게 쏟아져 들어감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급속한 세대차이를 경험하면서 삽니다. 대화가 안통합니다. 말하는 언어 자체가 다릅니다. 생각하는 것이 너무나 다릅니다. 같은 단일 민족이요!
같은 문화적 환경속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마치 외계인을 만난 것 처럼 다른 것을 느낄때가 많습니다. 특별히 이 세대차이가 가정속에 그대로 들어 와서 저녀들과 부모와의 무서운 담벽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자녀 세대와 부모 세대와 전혀 다른 가치관과, 사상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피할 길이 없는 무서운 행복 창조사역의 방해물입니다.
돈과 쾨락과 개인과 현세와 출세와 지위나 사업만을 제일주의로 알고 있는 인생으로 현대 교육은 자녀들을 물들게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세대차이를 어떻게 없앨수 있습니까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은 한가지 사상, 통일된 가치관, 과거 현재 미래 어느 세대나 다 통할 수 있는 인생관을 부모와 자녀가 함께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곧 오늘 본문의 "주안에서"라는 말입니다.
부모도 자녀도 모두 주님안으로 들어와야합니다. 주님 중심의 가치관, 성경중심의 인생관을 가져야하는데 이것은 주님을 영접하고 성경을 받아드릴 때 주어집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아들과 손자 모든 식구가 한 자리에 앉아 대화가 됩니다. 세대차이가 없습니다. 전세계 어디가서나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가정에는 세대차이가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대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그들은 3대가 함께 사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답니다. 그런데도 아무런 세대차이를 느끼지 않는 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식과 부모와 막힌 것이 없습니다. 손자와 할아버지가 막힌 것이 없습니다.
믿음 안에서 같은 생각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세를 이야기 하면 하루종 일 이야기 할 수 잇습니다. 다윗을 말하면 하나로 통합니다. 유월절을 보내면서 그들은 옛날 조상들이 출애굽 할 때의 이야기를 하면서 충분한 교감과 동질감을 느낍니다. 그들은 장막절을 지내면서 1주일 동안 천막을 치고 광야에 나가서 직접 함께 먹고 자면서 옛날 자기의 조상들이 이렇게 광야에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였을까를 생각하면서 함께 하나됨을 체험합니다. 그들은 가치관이나 생각이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럼으로 가장 세대차이를 모르는 민족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다 무엇으로 가능합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안에서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행복을 창조하려면 먼저 온가족이 예수님을 모셔드리는 일부터 시도해야합니다.
아직 가족 중에 예수님을 모시지 않은 비신자가 있는 분들은 낙심하지 마시고 사랑과 온유로서 전도부터 하시기 바랍니다. 최우선적으로 예수믿고 교회 다니는 것을 반대하지 않도록 힘을 쓰셔야합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인데 자녀 여러분 최고의 효도는 부모님으로 예수님을 믿도록 도와드림으로 천국 백성 되시게 해 드리는 것이 최고의 효도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어버이날이라고 맛있는 사드리고 옷 사다 드리고, 멋있는 곳에 가서 구경시켜 드리고 하루를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효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다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어버이 주일을 맞이 해서 여러분 가운데 몇 사람이나 예수 믿지 아니하는 부모님께 기도하고 전도하는 일을 하였습니까
사랑하는 부모님을 세상에서 아무리 잘 모셨다 할지라도 천국가지 아니하고 지옥가면 어떻게 합니까
그럼으로 전도하는 효도는 가장 아름다운 효도입니다.
일본 동경에 살인 강도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의 딸은 독실한 신앙으로 자라났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자기 아빠가 살인강도가 아닙니까 그녀는 복음과 회개와 용서를 전하였으나 아빠는 거부하며 받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딸은 아빠의 뒤를 따라 갔습니다. 시부야 공원 숲속으로 숨는 아빠를 본 딸은 귀부인으로 변장을 하고 손에 가방을 들고 구두소리를 내며 산을 내려갑니다. 자기 딸인 줄 모르는 그는 딸을 찌르고 가방을 빼앗아 도망을
칩니다. 그런데 가방을 열어보니 그곳에는 돈은 없고 딸의 유서만 있습니다.
"아버지 이 불효한 딸을 용서하세요, 오늘 밤 죽인 것은 아버지가 사랑하는 딸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버지 영혼을 구원하여 천국으로 모시는 길은 이 길밖에 없는 줄 알고 또한 남의 자식 죽이면 그 부모의 고통이 얼마나 큰가를 아버지는 모르시고 계시기에 나는 지금 죽어도 천국에 들어 갈준비가 되어 있사옵기에 최후로 이 길을 택하였사오니 저를 자식으로 생가하신다면 불쌍하다 마시고 회개하시고 예수님을 믿으시어 천국에서 기쁜 낯으로 만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계세요" 강도는 입술을 깨물고 통곡하며 웁니다. 후일 그는 자수하고 20년을 징역을 살되 모범수로 신앙생활을 하여 나중에는 풀려나와 딸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부모여, 자녀여, 무엇을 느낍니까 전도해야합니다.
지상에서의 행복보다 천상의 동반자요 영원한 행복의 가족이 되도록 도와 드림이 더욱 중요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면 부모님이라 할지라도 무너지지 아니하는 장벽이 있습니다. 신앙과 불신앙의 장벽이 얼마나 높은지 모릅니다. 다 통하고 이해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는 이해가 안되고 대화가 막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여러분들의 가정에 무엇이 아직 장벽으로 남아 있습니까 새대간의 차이가 장벽입니까 가치관의 차이가 장벽입니까 문화적인 것이 커다란 장벽입니까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다 극복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지 아니하는 장벽은 가장 큰 장벽입니다. 이 장벽을 허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2 행복은 이해의 문제에 달려 있습니다. (6:1)
이해 "이것을 순종하라"는 명령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주안에 있기 만하면 안됩니다. - 1절의 말씀을 보세요' 순종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행복은 이해하고 순종할 때에 만들어 집니다.
여기의 순종이란 말은 노예가 주인의 말을 잘 경청하여 그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란 뜻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또 법원에서 판사가 판결을 정확하게 하기 위하여 피고의 진술을 귀기울여 듣는 태도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자녀들도 이와같이 부모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저 말씀의 뜻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파악하는 자녀가 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순종은 쉬워집니다. 어떤 명령 이든지 복음의 명령은 자녀의 행복을 위한 것이요, 훌륭한 성장과 장래의 성공을 위한 것입니다. 바로 이 뜻을 파악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명령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그 원인을 하나 하나 설명을 듣자는 것이 아니요, 그 명령의 근본적인 뜻과 의도가 어디 있는지를 파악하라는 뜻입니다. 나의 행복을 위한 말씀이라는 것을 안다면 순종은 쉬워집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성도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빨리 깨달아 그 뜻 앞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자입니다.
누가 효도하는 자입니까 부모님의 마음을 잘 헤아려 그 마음을 흐뭇하게 해 주는 자가 효도하는 자입니다. 사람은 마음이 중요하기 때문에 아무리 호의 호식해도 마음이 괴로우면 괴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초가 삼간에 살아도 마음이 기쁘면 행복한 것입니다. 그럼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내 마음에 구주로 모시고 사는 자가 행복한 것이 아닙니까
부모의 마음을 못질하고서 다른 것은 아무리 잘해도 불효하는 자입니다. 어머니를 이해하면 아무도 불효 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사실 어머니의 사랑과 그 마음을 아직 다 모르기 때문에버릇 없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아르메니아 대지진 때의 이야기 입니다.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져 내려 스물여섯살의 스잔나 페트로시안과 네살된 딸 가야니가 건물 벽 속에 갇혔다. 모녀를 기다리는 것은 오직 죽음의 공포 뿐. 아이는 갈증과 굶주림에 지쳐 울부짖었다. 그때 스잔나는 유리조각으로 손가락을 찔러 딸에게 자신의 피를 먹였다. 어머니는 딸이 보챌 때마다 차례차례 손가락을 베어 아기의 입에 물렸다. 이들 모녀는 매몰된 지 14일 만에 극적으로 구출됐는데 어머니 스잔나의 손가락 열개는 모두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우리의 어머니는 바로 이런 분이다. 그분은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며 가족을 위해 1년 평균 7200개의 그릇을 닦는다. 어머니의 사랑은 물이나 산소같아서 우리가 그것의 고마움을 망각할 때가 많다. 자녀가 어머니의 사랑을 깨달을 때쯤,그분은 이미 우리 곁을 떠난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효도는 다른게 아닙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그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것이 효도입니다.
이렇게 부모님의 마음만이 아닙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의 마음을 잘 이해해 주어야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4절에서 아비들은 자녀를 노엽게 말라고 하였는데 이 경우에도 부모가 자녀를 잘 이해한다면 결코 노엽게 할말
상처가 될 말, 섭섭할 말을 하지 않게 됩니다.
"저 아이가 왜 저것을 요구할까 저 아이가 왜 저 실수를 하였을까 저 아이가 왜 친구들과 싸웠을까
등등 무조건 야단을 치기전에,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른의 마음으로 아이들의 행동을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가 안되지만 그러나 입장을 바꾸어 놓고 내가 저만할때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하면 금방 이해가 됩니다.
머리에 무스를 발르고, 노랑머리 물 드리고. 구두가 삐쭉하게 나온 것을 신고 심지어는 모자를 쓰고 예배를 드리는 것을 보면서 잘 이해가 안되지만 나도 옛날에 학교 다닐때 모자를 세워서.... 옷을 이불 밑에 깔아 다려입고, 나팔바지 입고 광발재고 다녔던 생각이 납니다. 그런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아이들이 하는 것을 별로 부담을 갖지 아니하고 이해하게 됩니다.
어떤 학생이 예배시간에 좀 늦게와서 저 중2층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모자를 확 꺽어서 모자를 쓰고 계속 예배를 드리더라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계속 그 학생에게 신경이 가서 잘 설교를 할 수 없습니다. 모자를 벚지 않고 왜 쓰고 예배를 드리나 좀 모자를 벗었으면 좋겠는데...... 예배가 마치고 인사를 하면서 그 학생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빈정투로.... 왜 모자를 쓰고 예배를 드리는가...... 학생이 하는 말 "목사님은 왜 안경을 쓰고 예배를 드립니까
썰렁! 제가 너무 수준 높은 이야기를 했나요 아무런 표정이 없는 것을 보니.....
가족을 여러 각도에서 이해하는 것이 있어야 행복을 만들어 갈 수있습니다.
예수님도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의 입장이되어 보셨기 때문에 우리 인간의 죄를 다 용서하시고 도와 주시는 것입니다.
벤자민 웨스트라는 유명한 화가는 자신은 어머니에 의하여 만들어졌다고 했습니다. 어린 시절 거울을 깨트리면
"안 다쳤니 그러면 됫다, 엄마도 그랬었단다. 거울은 다시 끼면 되요,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네 몸은 다치면 안된다" 이와같은 엄마는 아이에게 천사와 같은 존재입니다. 모든 부문에서 상대를 이해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행복은 이해하며 순종할 때에 만들어 집니다. -할렐루야!
3 행복은 가치있게 여기는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6:2)
행복이란 부모와 자녀 그리고 온 가족이 서로 서로를 가치있게 여겨줄 때에 만들어집 니다.
2절에서 부모를 공경한다란 부모를 존경한다는 뜻이요, 곧 부모를 가치있는 존재로 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4절의 노엽게 하지말라에서 자녀를 노엽게 한다는 것은 자녀를 무시하거나 가치가 없는 물건으로 취급할 때에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자녀를 성경대로 여호와 하나님이 내게 주신 기업이요, 상급으로 본다면 얼마나 가치있는 선물입니까 사랑하지 않을수 없지요. 또한 부모님은 나에게 얼마나 귀한 존재일까요
성경에는 어버이를 여호와 하나님의 대리자로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어버이는 몇가지의 이유로 여호와 하나님의 대리자가 됩니다.
첫재, 어버이는 자녀를 낳아 주신데서 여호와 하나님의 대리자가 됩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를 말합니다.
둘째, 어버이는 자녀를 길러주심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대리자가 됩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를 말합니다.
부모는 육체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모든 정성을 다해 그리고 희생적으로 자녀를 기릅니다. 이면은 순전히 본능에서 사는 동물의 세계에서 보다 현저히 드러나 그것이 창조주의 역사임을 알게 해 줍니다.
셋째, 어버이는 자녀를 바로 기르기를 원하며 자녀가 잘못되면 이를 징계하는데서 여호와 하나님의 대리자가 됩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말합니다. 사람이란 자신은 부족해도 자녀만은 완벽히 기르기를 원합니다.
이와같이 어버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삼권인 창조와 섭리와 심판의 권력을 대리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어버이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을 배울 수 있고, 또 어버이에게 효도함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습니다. 이러할 때에 행복이 만들어지고 넘쳐 흐릅니다.
4 행복은 가르침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6:3-:4)
왜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순종을 안할까요 그리고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을 안할까요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과 순종해야 할 말씀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순종을 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리와 순종이 주는 행복과 장수, 그리고 잘되는 형통을 배워서 알았더라면 결코 불순종을 할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된 사람들은 3절의 말씀처럼 잘되고 장수하는 길이 순종임을 아시고 진리와 순종에 대하여 배우기에 힘을 써야합니다. 반면에 부모되신 분들은 4절의 말씀처럼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자녀들에게 진리와 순종을 가르쳐야합니다.
여러분! 한번 가르쳐 주면 잘 하리라고 생각하고 한번 이야기 하고 그 다음부터는 잔 소리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 아무소리 안하고 가르치는 것을 등한히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TV에 나오는 광고는 매일 마다 달라지지 않습니다. 한번 만들면 오랫동안 한 광고를 합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생각과 의식속에 그것을 심기 위한 반복교육입니다. 다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가만 나두면 안됩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반복해서 말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중요한 것이면 계속해서 가르치시기를 바랍니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잠 1:8)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 (잠 4:1)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 (잠 13:1)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 22:6)
여러분 상식적으로 다 알고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계속해서 훈계 하고 가르치시기를 바랍니다.
잘 가르침을 받는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나중에 부모를 존경하고 밖에 나아가 많은 사람들에게 부모를 높이는 자가 됩니다. 그렇쟎습니까 밖에 나가 잘 하면! 저집 아이가 누구집 아들인가 그럼 그렇지! 역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고만... 하면서 아버지께 영광이 돌아 갑니다.
그런데 밖에 나가서 악을 행하고 못된 짓을 많이 하면 나중에 사람들이 저집 애비는 누군고 그럽니다. 그러면 누구 아들이 아니요!... 그래 그버릇이 어디로 가냐 그리고 아버지의 얼굴에 침을 뱉게 만듭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이 세상에 나가서 잘 못 살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지만 잘 살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 내는 것 과 같은 것입니다. 그럼으로 부모님 자신들을 위해서라도 가르치기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여러분' 탄광촌 목사의 아내 요한 웨슬러의 어머니를 아시지요, 자녀가 13명 이었는데 학교를 못 보냈습니다. 그래서 웨슬러의 어머니는 자녀 교육을 위하여 한주간의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주일에는 신앙서적과 성경만을 보게합니다.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공부 시켰고, 수요일에는 논리와 윤리학을, 목요일은 히브리어와 아랍어를 금요일에는 철학을 토요일에는 웅변, 시, 일기 발표를 시켰습니다.
2주일에 한번은 고아원을 방문하고 다시 2주일이 되면 양노원을 방문하게 하였습니다. 한주 한끼는 금식을 하게 하였습니다. 하루 세번은 소리내어 기도하며 매일 가족끼리 성경을 가지고 기도회를 하기를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침대 앞에서 매일같이 "너희는 누구냐 우리는 위대한 아이입니다", "누가그랬냐","여호와 하나님이요","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역사를 창조하고 있습니다","누가 그렇게 시켰냐", "우리를 위대하게 쓰시기를 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요" 아멘!
이와같이 행복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가르치고 배우려고 해야합니다.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행복을 만드는 공장입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부모를 이해하고 공경하며 순종해야합니다. 진리를 가르치며 배워야합니다. 그럴 때 여기서 행복은 창조됩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가정이 여호와 하나님의 행복을 만들어 내는 행복 공장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가정이 너무 너무 행복해서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행복하게 살아!... 그러면 네 그래요 저희 가정은 비결이 있어요! 여호와 하나님 우리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어요! 그렇게 전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불행함으로 가족관계가 깨어지고 힘들어 하고 있는 가정들을 향하여 행복을 저 세상불행한 사람들을 위하여 나누어주기까지 크게 복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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