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가정의 화목
본문
오늘은 설날입니다. 설날이면, 원근각처에 있던 모든 식구들이 모두 모이는 날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가정에 대해서 설교하고자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가정이라고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미술가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을 그리기 위해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는 어느 교회에 가서 목사님에게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신앙이라. ’고 하면서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는 성도의 얼굴을 그리어 보라. ’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리고 보니 흡족한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이번에는 새로 결혼한 부부에게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가’ 물었더니 ‘사랑’이라고 해서 서로 사랑하는 두 남녀의 얼굴을 그렸으나 거기에서도 만족을 못 느꼈습니다. 군인에게 묻자 ‘평화’라고 대답했고, 농부들의 추수하는 장면에서도 만족을 못 느꼈습니다. 화가는 실망하여 자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때에 그의 어린 자녀들이 달려와서 아빠를 두 팔로 안고 반겨 주고 아내는 따뜻한 웃음으로 맞이합니다.
온 식구가 식탁에 둘러앉아 여행 중에 무사히 돌아온 아빠를 위하여 기도할 때 식구의 얼굴에 나타난 사랑과 신앙, 그리고 평화를 보고 거기에 가장 아름다운 것이 있음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정은 세상의 최소한 단위의 행불행을 좌우하는 곳입니다. 세상에서는 말할 수 없이 고달프고 지친 상태에 있을지라도 가정이 화목하고 행복하면 그의 생애는 언제나 새 용기와 새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이 불화하고 행복하지 못하면 세상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명예와 부귀를 획득했을지라도 그는 불안, 고독, 초조 속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 안나카레니나 부활 등, 불후의 명작을 쓴 유명한 소설가요, 또 막대한 재산을 가진 부자였으나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살다 갔습니다. 그것은 그의 아내의 탓으로, 너무나 바가지를 긁어서 견디지 못한 톨스토이는 결국 82세 되던 해에 그 막대한 재산을 팽개치고 가출하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10일 후에는 어느 기차역에서 객사했습니다. 그는 죽어 가면서도 마지막 유언이 자기의 아내가 옆에 오지 못하도록 막아 달라는 간청이었다고 합니다. 그에 비해서 검은 대륙의 성자 알버이트 슈바이처는 “자기가 유명해진 것은 일생동안을 함께 살며 내조해준 아내 헬레네 브라스라의 절대적인 공로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가정의 화목은 이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가정이 화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느 분은 무엇보다도 돈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좋은 주택과 좋은 가구, 좋은 음식이 풍부할 때 화목이 넘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아주 잘못된 착각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고 가장 부자 나라였던 미국의 현실은 가정이 날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미국 전체 가정의 3분지 1의 부부가 이혼하고 많은 대부분의 자녀들이 다른 아버지나 어머니 밑에서 자라고 있고 800만 이상의 노인들이 혼자 삽니다.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를 보십시오.
과거보다 우리나라는 얼마나 잘 삽니까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 열한 번째 무역을 많은 하는 경제 강국이 되었습니다. 무역량의 변화추이를 보면 1967년에는 10억 달러, 1974년도 100억 달러, 1988년에는 1,000억 달러, 2005년에는 무려 5,000억 달러로 계속 상승세를 타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한국 사회는 모두가 행복이 넘치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부끄러운 일에 1등 국가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출생률 저하 세계 1위, 교통사고 발생률 세계 1위, 사교육비 부담 세계 1위, 그리고 이혼율 세계 1위로 올라서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돈이 많으면 가정도, 교회도 잘될 것이라는 생각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성실하게 자기 삶을 개척, 세계적인 ‘자동차 왕’이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헨리 포드입니다. 포드는 거부가 된 다음에도 옛날 농사꾼의 아들로 뛰놀며 자란 농촌에서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집이 너무 초라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포드는 웃으며 “나는 아름다운 집을 짓기보다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기 원하네.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의 방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습니다. ‘자기 손으로 장작으로 패서 불을 지펴라. 두 배로 따뜻해진다. ’ 포드야 말로 참으로 인생의 진수(眞髓)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물질 만능 시대에서 우리 성도들은 가정을 화목하도록 지키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 가정의 화목을 이룰까
노아의 가정을 통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1. 가정의 화목은 여호와 하나님 중심으로 살 때에 이루어집니다.
노아는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 중심으로 산 당대의 의인이었습니다. 창6:9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탄식하실 정도로 세상은 모두 타락하고 죄악이 관영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들의 욕심과 욕망대로 살 때라도 노아는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 당시 사람들은 허랑 방탕하게 사는 것을 가장 큰 낙으로 아는 때에 노아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대로 120년 동안 거대한 방주를 지었다고 했으니 얼마나 많은 놀림과 비난을 받았겠습니까 방주의 크기는 길이가 150 미터, 높이가 15 미터로 보통 4-5층 정도의 높이입니다. 어느 주석가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그 크기가 화물 차량 522대의 용적과 맞먹는 크기로서 짐승이 125,000마리 들어갈 수가 있다고 합니다.
현존하는 동물의 종류는 17,600종인데 정한 동물 암수 일곱 쌍씩, 부정한 짐승 암수 한 쌍씩 계산하면 45,000마리인데 충분히 들어가고 노아의 식구와 식량 등을 넣을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방주를 120년 동안 잣나무를 베어다가 짓고 틈 사이에 역청을 칠하고 온갖 새와 짐승, 곤충을 잡아들이고 양식을 저장할 때 미친 영감이라는 욕을 수없이 들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 비난을 받으면서도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했다는 것은 대단합니다.
또한 노아도 위대하지만 그를 협력했던 그 부인이나 세 아들 내외들도 위대합니다. 그처럼 여호와 하나님 중심으로 살 때에 시128:1-2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 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고 약속하신 대로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해 주시고 큰 축복을 아끼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 중심으로 살 때 화목과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대의 의인 노아가 홍수가 끝난 후에는 여호와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못할 때 큰 불행이 닥쳐왔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술에 취하여 인사불성이 되었고 대낮에 벌거벗고 자는 추태까지 벌리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주석가들은 세 가지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1)큰 사건의 후유증 탓인지 신앙의 해이와 나태에서 온 것이요, (2)자신에 대한 지나친 신뢰와 교만 탓이요, (3)육체적인 쾌락과 안일을 바라다가 이런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완전한 정도로 단결되고 화목하던 가정이 금이 갈라지기 시작하여 세 형제가 갈라지게 되고 불행의 기운이 그 가정에 싹트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인간은 얼마나 간사한 면이 많습니까 여러분 생각에 여호와 하나님이 물질 축복을 주시면 신앙생활을 잘할 것 같지요 그렇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교회성장 연구가들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국민 소득이 1천불 이하일 때에 교회가 급성장하고 2천불까지는 상당히 성장하지만 3천불 이상이 되면 성장이 멈추게 되고 서서히 성장률이 내려가기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1990년대부터 한국 교회가 성장이 둔화된 것은 그런 현상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어렵고 괴로울 때, 단칸방에 살 때는 오직 사나 죽으나 여호와 하나님 중심으로 살더니 건강해지고 사는 집도 마련하여 좀 살 만하면 점점 신앙이 해이하여 기도나 말씀을 읽는데 게을리 하고 충성의 짐도 하나 둘씩 벗어버립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교회를 열심히 다니라고 승용차를 주었더니 주일이면 야외로 놀러 나가기 바빠지니 문제가 아닙니까 이것이 인간의 약점이요, 간사성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울 때보다 좀 여유가 있을 때, 사업이 잘되어 점점 바빠질 때 더욱 기도, 더욱 성경, 더욱 성수주일, 더욱 충성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성도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한 성도에게 더 큰 축복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신앙적인 책을 많이 저술한 유명한 안드류 머레이 목사님은 여호와 하나님 중심으로 살면서 경건과 기도, 사랑의 삶을 살 때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가문을 크게 축복하여 주시는데 그의 자녀 6명 중 5명이 목회자가 되고 손자 10명이 목사가 되고 13명이 선교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이여. 금년에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가정이 되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지켜 주시는 화목과 복이 넘치는 가정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가정의 화목은 서로의 허물을 덮어 주는 데 있습니다.
노아가 술에 만취하여 벌거벗은 채 누워서 자고 있을 때 함이라는 아들이 이 사실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식구들은 누가 볼까 해서 재빨리 이불을 덮어 주는 것이 상정인데, 함이라는 아들은 아버지에 대해서 평소 좋지 못한 감정을 가졌는지 밖에 나가서 두 형제에게 경멸과 조롱의 태도로 떠들기를 “아버지도 이제는 망령이 난가 봐. 우리 보고는 늘 경건하게 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하시더니 술에 만취되셔서 벌거벗고 주무시다니, 남부끄러워서 이제는 고개도 못 들고 다니겠어. ”라고 떠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이 사실을 듣자마자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버지의 벌거벗은 하체를 보지 않고 덮어 드렸던 것입니다. 노아가 술이 깬 후에 그 사실을 듣고 얼마나 부끄러웠을까요 그러다가 함이라는 아들의 행한 일을 알고는 얼마나 화가 났는지 “너는 형들의 종들이 될 것이라. ”고 예언했고, 자기의 허물을 감추어 주려고 애썼던 셈과 야벳은 크게 축복을 하였던 것입니다. 가정은 허물을 덮어 주는 곳입니다.
허물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당대의 완전하다던 노아도 그런 허물을 들어냈습니다. 만약에 허물이 없다면 그는 인간적이지 못하여 아무도 가까이하지 않을 것입니다. 적극적인 사람은 침착하지 못해서 허물이 많이 나타나지만, 침착한 사람은 꽉 막혀서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아마 결혼한 사람은 자기 남편, 자기 아내에 대해서 불만의 요소가 많을 것입니다. 만약, 가정에서 남편이나 아내가 서로의 허물을 계속 서로 들추어내려고만 한다면 견디지를 못하고 가출하여야 할 것입니다.
링컨은 대통령까지 한 사람이었으나 그는 가정에서는 불행한 사람이었는데 그 이유는 그 아내 매리도트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귀족학교 출신으로 학교에서 배운 대로 산골 출신인 링컨을 고치려고 얼마나 잔소리를 하는지요 걸음 거리를 고치라, 옷을 바르게 입어라, 음식을 먹을 때 이렇게 하라고 잔소리를 했고, 나중에는 심지어 귀와 코가 못생겼다고 트집이요, 아래 입술이 툭 튀어나왔다느니, 손발이 너무 크다고 트집을 잡습니다.
그러므로 링컨은 가정에 들어가기를 싫어서 공연히 일거리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서로 비판하기에 바쁜 가정은 너무나 끔찍한 곳입니다. 그러나 지체부자유자가 있을지라도 늘 허물을 덮어 주고 감싸주는 가정은 화목이 넘치게 마련입니다. 이조시대에 유명한 분 중의 하나가 율곡 이이입니다. 율곡은 아주 훌륭한 인물인데 비해서 그의 아내는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못된 모양입니다. 대부분의 아내는 자기 남편의 인격이 손상이 될 것 같아서 신경을 많이 쓰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율곡의 부인은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장소만 가면 이상하게 남편을 깎아 내리는 입버릇이 있고 품행도 단정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한번은 율곡선생의 선친의 제삿날을 당하여 많은 문중 어른들이 모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의 부인이 제상에 차려놓은 음식을 슬금슬금 집어먹는 것이었습니다. 문중의 선비들은 너무나 한심하고 기막힌 모습을 보다 못하여 율곡선생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좀 말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꾸짖었다고 합니다.
그 때에 율곡선생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하기를 “그냥 두십시다. 선친께서는 저 모자라는 며느리를 무척 아끼고 사랑하셨는데 당신의 제사상에 오른 것을 집어 먹었다고 그를 책망하면 제사 받으시는 아버님 마음이 기쁘시겠습니까”라고 했다고 합니다. 위에 언급했던 톨스토이나 링컨보다 얼마나 큰 가슴을 가진 남편의 모습입니까 가정은 이처럼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감싸주는 곳이기에 천국에 가까운 곳입니다.
그러나 서로 허물을 감싸지 못하면 그 가정은 지옥과 가까운 곳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여러분의 가정은 언제나 십자가의 사랑으로 모든 허물도 덮어 줌으로 화목이 넘치는 가정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가정의 화목은 서로 축복할 때 이루어집니다.
저는 오늘 본문에서 노아의 또 하나의 실책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자기의 자식인 함을 저주한 것입니다. 사실, 아들 함이 자기를 비난한 것을 발견하고 회개해어야 신앙적으로 옳은 자세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주님의 뜻대로 산다고 하다가 한 때 방심한 나머지 술에 만취되어 벌건 대낮에 벌거벗고 누워 있었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나 식구들 앞에서 너무나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단을 쌓고 가슴을 치면서 회개했어야 옳았습니다.
“오, 여호와 하나님이여, 제가 큰 죄를 범했나이다. 이제부터는 옛날처럼 의롭게 살겠사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한 후, 자기의 부족한 아들 함의 잘못도 바로 자기의 탓인 줄 알고 아들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였어야 옳습니다. 아들만 자기의 허물을 덮어 주기를 바라지 말고 자기도 덮어 주었어야 합니다. 아들을 불러다가 눈물로 타이른 후에 축복하였더라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그러나 노아는 아들 함을 저주에 가까이 말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가정은 큰 불행의 씨를 심게 되고, 형제들 사이가 심한 반목으로 가득 차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부모가 자녀들을 축복하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고 야곱이 요셉을 축복하였습니다. 잠언에도 자녀를 축복하는 구절이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축복대로 되어졌던 것입니다. 심지어는 무능한 엘리 제사장이 축복함으로 한나가 아들을 잉태하는 축복도 받기도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노아가 셈과 야벳을 축복한 대로 셈은 영적인 축복을, 야벳은 물질의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식구들은 서로 서로 축복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비록 남편이 실직 상태에 있을지라도 “내가 집중적으로 당신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으니 여호와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의 길을 축복하여 주실 것이라. ”고 하고, 아내가 무슨 일로 낙심할 때에 “여보, 염려하지 말구려. 당신이 그렇게 주님만 의지하고 사는 데 여호와 하나님이 반드시 더 좋은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라고 해보십시오.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부모는 자녀들을 향해서 축복의 말을 자주 해줄 때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 부모들은 자녀들을 향해서 제멋대로 말하기를 잘합니다. 어느 엄마는 자녀가 듣고 있는 데서 말하기를 “저 아이는 낳지 않으려고 했는데 조절을 못해서 낳았다. ”고 합니다. 혹은 딸이 여섯인 가정의 엄마가 하는 소리가 “아들을 낳으려고 하다 보니 딸부자가 되었다. ”고 합니다. 그러면 딸들은 개평짜리 인생이 된다는 말이 됩니다. 얼마나 섭섭한 마음이 들겠습니까 그래도 그 말은 애교로 봐 줄 수가 있습니다.
예전의 엄마들은 너무나 살기가 힘들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지독한 욕을 잘했습니다. “저런 빌어먹을 놈” 혹은 “오그라질 놈”, “호랑이가 물어 갈 놈” 혹은 “사지를 찢어 죽일 놈”, “엠병 하다가 고꾸라질 놈” 등등 한이 없습니다. 그런 욕을 잘 들어보세요. 너무나 끔찍한 저주의 욕입니다. 안됩니다. 말로 떠든 대로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어느 분은 우리나라가 조선 시대나 일제시대. 육이오 사변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끔찍하게 죽은 것은 다 그러한 욕들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축복의 말을 자주 심어 주십시오. “너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복된 자가 되어라. ” “너는 여호와 하나님이 반드시 함께 하실 것이다. ”라고 하면 그것이 씨가 되어 그 아이 속에서 자라서 많은 열매를 맺는 날이 올 것입니다. 영국 북부지방의 한 공원에 12사도의 이름을 붙인 나무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가룟 유다라는 이름을 붙인 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을 향해 지나가는 사람마다 욕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 뒤 얼마 안 가서 그 나무는 말라죽고 말았습니다. 심을 때는 분명히 12그루를 심었는데 지금은 11그루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한낱 식물이라도 계속 저주하면 이런 결과를 가져오는데 영적인 존재인 사람은 얼마나 축복과 저주에 영향을 받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축복하면 축복을 받는 날이 오고, 저주를 하면 저주를 받는 날이 오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식구끼리 부족한 것이 많을지라도 축복하십시오. 그러면 참으로 시인한 대로 이루어지는 날이 옵니다.
‘실화사전’에는 이런 귀한 예화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남편이 이중 생활하는 것을 견디다 못해 목사님께 상담하러 온 자매님이 있었습니다. 살기가 등등한 얼굴로 와서 자기 남편에 대해 심한 욕을 마구 하면서 가정을 돌보지 않는다고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자매님의 말을 다 듣고 난 목사님은 “자매님이 남편을 그렇게 저주하시면 남편은 점점 강퍅해질 것 뿐 아니라 그것이 자매에게 나쁜 영향이 가져옵니다. 지금 자매님의 얼굴은 말이 아닙니다. ”
“성경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편께서 돌아오는 것은 둘째로 하고 우선 자매님의 마음이 평안해지기 위해 남편을 축복해 주십시오. ”라고 권면하였습니다. 그러자 자매님은 처음에는 펄쩍 뛰면서 그럴 수가 있느냐고 완강히 거부하였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의 설득으로 남편에 대하여 축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죽이고 싶던 남편에 대하여 증오심이 풀리고 불쌍히 여겨지고 자신에게 평안한 마음이 가슴속에 가득 찼습니다.
걸핏하면 신경질 내고 애들을 매질하던 손길이 다정스러운 사랑의 손길로 변하였습니다. 오랜만에 남편이 찾아 왔습니다. 전 같으면 냉대하던 부인이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띠고 반가이 맞아주며 극진하게 대접하니 남편은 양심에 가책을 느껴 집을 떠날 수 없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본 자매님은 더욱 열심을 내서 남편을 위해 주었습니다. 심지어 첩에 안부를 묻기도 하였습니다. 첩이 친구한테 전도를 받아 예수 믿게 되니 본집으로 돌려보내고 남편은 가정에 돌아와 충실한 가장이 되었습니다.
그 자매는 남편을 축복하고 첩을 축복하였더니 그 축복이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을 보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인 부모들은 이재부터 자녀들에게 격려의 말, 비전의 말, 축복의 말, 믿음의 말을 심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또한 남편과 아내에게도 늘 축복의 말을 하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금년에는 우리 모든 가정들이 여호와 하나님 중심의 가정, 서로 허물을 덮어 주는 사랑의 가정, 서로 축복하는 가정이 되심으로 가정의 화목과 복이 넘치는 해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나 그리고 보니 흡족한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이번에는 새로 결혼한 부부에게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가’ 물었더니 ‘사랑’이라고 해서 서로 사랑하는 두 남녀의 얼굴을 그렸으나 거기에서도 만족을 못 느꼈습니다. 군인에게 묻자 ‘평화’라고 대답했고, 농부들의 추수하는 장면에서도 만족을 못 느꼈습니다. 화가는 실망하여 자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때에 그의 어린 자녀들이 달려와서 아빠를 두 팔로 안고 반겨 주고 아내는 따뜻한 웃음으로 맞이합니다.
온 식구가 식탁에 둘러앉아 여행 중에 무사히 돌아온 아빠를 위하여 기도할 때 식구의 얼굴에 나타난 사랑과 신앙, 그리고 평화를 보고 거기에 가장 아름다운 것이 있음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정은 세상의 최소한 단위의 행불행을 좌우하는 곳입니다. 세상에서는 말할 수 없이 고달프고 지친 상태에 있을지라도 가정이 화목하고 행복하면 그의 생애는 언제나 새 용기와 새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이 불화하고 행복하지 못하면 세상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명예와 부귀를 획득했을지라도 그는 불안, 고독, 초조 속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 안나카레니나 부활 등, 불후의 명작을 쓴 유명한 소설가요, 또 막대한 재산을 가진 부자였으나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살다 갔습니다. 그것은 그의 아내의 탓으로, 너무나 바가지를 긁어서 견디지 못한 톨스토이는 결국 82세 되던 해에 그 막대한 재산을 팽개치고 가출하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10일 후에는 어느 기차역에서 객사했습니다. 그는 죽어 가면서도 마지막 유언이 자기의 아내가 옆에 오지 못하도록 막아 달라는 간청이었다고 합니다. 그에 비해서 검은 대륙의 성자 알버이트 슈바이처는 “자기가 유명해진 것은 일생동안을 함께 살며 내조해준 아내 헬레네 브라스라의 절대적인 공로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가정의 화목은 이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가정이 화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느 분은 무엇보다도 돈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좋은 주택과 좋은 가구, 좋은 음식이 풍부할 때 화목이 넘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아주 잘못된 착각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고 가장 부자 나라였던 미국의 현실은 가정이 날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미국 전체 가정의 3분지 1의 부부가 이혼하고 많은 대부분의 자녀들이 다른 아버지나 어머니 밑에서 자라고 있고 800만 이상의 노인들이 혼자 삽니다.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를 보십시오.
과거보다 우리나라는 얼마나 잘 삽니까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 열한 번째 무역을 많은 하는 경제 강국이 되었습니다. 무역량의 변화추이를 보면 1967년에는 10억 달러, 1974년도 100억 달러, 1988년에는 1,000억 달러, 2005년에는 무려 5,000억 달러로 계속 상승세를 타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한국 사회는 모두가 행복이 넘치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부끄러운 일에 1등 국가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출생률 저하 세계 1위, 교통사고 발생률 세계 1위, 사교육비 부담 세계 1위, 그리고 이혼율 세계 1위로 올라서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돈이 많으면 가정도, 교회도 잘될 것이라는 생각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성실하게 자기 삶을 개척, 세계적인 ‘자동차 왕’이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헨리 포드입니다. 포드는 거부가 된 다음에도 옛날 농사꾼의 아들로 뛰놀며 자란 농촌에서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집이 너무 초라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포드는 웃으며 “나는 아름다운 집을 짓기보다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기 원하네.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의 방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습니다. ‘자기 손으로 장작으로 패서 불을 지펴라. 두 배로 따뜻해진다. ’ 포드야 말로 참으로 인생의 진수(眞髓)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물질 만능 시대에서 우리 성도들은 가정을 화목하도록 지키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 가정의 화목을 이룰까
노아의 가정을 통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1. 가정의 화목은 여호와 하나님 중심으로 살 때에 이루어집니다.
노아는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 중심으로 산 당대의 의인이었습니다. 창6:9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탄식하실 정도로 세상은 모두 타락하고 죄악이 관영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들의 욕심과 욕망대로 살 때라도 노아는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 당시 사람들은 허랑 방탕하게 사는 것을 가장 큰 낙으로 아는 때에 노아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대로 120년 동안 거대한 방주를 지었다고 했으니 얼마나 많은 놀림과 비난을 받았겠습니까 방주의 크기는 길이가 150 미터, 높이가 15 미터로 보통 4-5층 정도의 높이입니다. 어느 주석가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그 크기가 화물 차량 522대의 용적과 맞먹는 크기로서 짐승이 125,000마리 들어갈 수가 있다고 합니다.
현존하는 동물의 종류는 17,600종인데 정한 동물 암수 일곱 쌍씩, 부정한 짐승 암수 한 쌍씩 계산하면 45,000마리인데 충분히 들어가고 노아의 식구와 식량 등을 넣을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방주를 120년 동안 잣나무를 베어다가 짓고 틈 사이에 역청을 칠하고 온갖 새와 짐승, 곤충을 잡아들이고 양식을 저장할 때 미친 영감이라는 욕을 수없이 들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 비난을 받으면서도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했다는 것은 대단합니다.
또한 노아도 위대하지만 그를 협력했던 그 부인이나 세 아들 내외들도 위대합니다. 그처럼 여호와 하나님 중심으로 살 때에 시128:1-2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 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고 약속하신 대로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해 주시고 큰 축복을 아끼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 중심으로 살 때 화목과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대의 의인 노아가 홍수가 끝난 후에는 여호와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못할 때 큰 불행이 닥쳐왔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술에 취하여 인사불성이 되었고 대낮에 벌거벗고 자는 추태까지 벌리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주석가들은 세 가지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1)큰 사건의 후유증 탓인지 신앙의 해이와 나태에서 온 것이요, (2)자신에 대한 지나친 신뢰와 교만 탓이요, (3)육체적인 쾌락과 안일을 바라다가 이런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완전한 정도로 단결되고 화목하던 가정이 금이 갈라지기 시작하여 세 형제가 갈라지게 되고 불행의 기운이 그 가정에 싹트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인간은 얼마나 간사한 면이 많습니까 여러분 생각에 여호와 하나님이 물질 축복을 주시면 신앙생활을 잘할 것 같지요 그렇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교회성장 연구가들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국민 소득이 1천불 이하일 때에 교회가 급성장하고 2천불까지는 상당히 성장하지만 3천불 이상이 되면 성장이 멈추게 되고 서서히 성장률이 내려가기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1990년대부터 한국 교회가 성장이 둔화된 것은 그런 현상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어렵고 괴로울 때, 단칸방에 살 때는 오직 사나 죽으나 여호와 하나님 중심으로 살더니 건강해지고 사는 집도 마련하여 좀 살 만하면 점점 신앙이 해이하여 기도나 말씀을 읽는데 게을리 하고 충성의 짐도 하나 둘씩 벗어버립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교회를 열심히 다니라고 승용차를 주었더니 주일이면 야외로 놀러 나가기 바빠지니 문제가 아닙니까 이것이 인간의 약점이요, 간사성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울 때보다 좀 여유가 있을 때, 사업이 잘되어 점점 바빠질 때 더욱 기도, 더욱 성경, 더욱 성수주일, 더욱 충성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성도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한 성도에게 더 큰 축복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신앙적인 책을 많이 저술한 유명한 안드류 머레이 목사님은 여호와 하나님 중심으로 살면서 경건과 기도, 사랑의 삶을 살 때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가문을 크게 축복하여 주시는데 그의 자녀 6명 중 5명이 목회자가 되고 손자 10명이 목사가 되고 13명이 선교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이여. 금년에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가정이 되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지켜 주시는 화목과 복이 넘치는 가정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가정의 화목은 서로의 허물을 덮어 주는 데 있습니다.
노아가 술에 만취하여 벌거벗은 채 누워서 자고 있을 때 함이라는 아들이 이 사실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식구들은 누가 볼까 해서 재빨리 이불을 덮어 주는 것이 상정인데, 함이라는 아들은 아버지에 대해서 평소 좋지 못한 감정을 가졌는지 밖에 나가서 두 형제에게 경멸과 조롱의 태도로 떠들기를 “아버지도 이제는 망령이 난가 봐. 우리 보고는 늘 경건하게 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하시더니 술에 만취되셔서 벌거벗고 주무시다니, 남부끄러워서 이제는 고개도 못 들고 다니겠어. ”라고 떠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이 사실을 듣자마자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버지의 벌거벗은 하체를 보지 않고 덮어 드렸던 것입니다. 노아가 술이 깬 후에 그 사실을 듣고 얼마나 부끄러웠을까요 그러다가 함이라는 아들의 행한 일을 알고는 얼마나 화가 났는지 “너는 형들의 종들이 될 것이라. ”고 예언했고, 자기의 허물을 감추어 주려고 애썼던 셈과 야벳은 크게 축복을 하였던 것입니다. 가정은 허물을 덮어 주는 곳입니다.
허물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당대의 완전하다던 노아도 그런 허물을 들어냈습니다. 만약에 허물이 없다면 그는 인간적이지 못하여 아무도 가까이하지 않을 것입니다. 적극적인 사람은 침착하지 못해서 허물이 많이 나타나지만, 침착한 사람은 꽉 막혀서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아마 결혼한 사람은 자기 남편, 자기 아내에 대해서 불만의 요소가 많을 것입니다. 만약, 가정에서 남편이나 아내가 서로의 허물을 계속 서로 들추어내려고만 한다면 견디지를 못하고 가출하여야 할 것입니다.
링컨은 대통령까지 한 사람이었으나 그는 가정에서는 불행한 사람이었는데 그 이유는 그 아내 매리도트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귀족학교 출신으로 학교에서 배운 대로 산골 출신인 링컨을 고치려고 얼마나 잔소리를 하는지요 걸음 거리를 고치라, 옷을 바르게 입어라, 음식을 먹을 때 이렇게 하라고 잔소리를 했고, 나중에는 심지어 귀와 코가 못생겼다고 트집이요, 아래 입술이 툭 튀어나왔다느니, 손발이 너무 크다고 트집을 잡습니다.
그러므로 링컨은 가정에 들어가기를 싫어서 공연히 일거리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서로 비판하기에 바쁜 가정은 너무나 끔찍한 곳입니다. 그러나 지체부자유자가 있을지라도 늘 허물을 덮어 주고 감싸주는 가정은 화목이 넘치게 마련입니다. 이조시대에 유명한 분 중의 하나가 율곡 이이입니다. 율곡은 아주 훌륭한 인물인데 비해서 그의 아내는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못된 모양입니다. 대부분의 아내는 자기 남편의 인격이 손상이 될 것 같아서 신경을 많이 쓰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율곡의 부인은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장소만 가면 이상하게 남편을 깎아 내리는 입버릇이 있고 품행도 단정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한번은 율곡선생의 선친의 제삿날을 당하여 많은 문중 어른들이 모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의 부인이 제상에 차려놓은 음식을 슬금슬금 집어먹는 것이었습니다. 문중의 선비들은 너무나 한심하고 기막힌 모습을 보다 못하여 율곡선생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좀 말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꾸짖었다고 합니다.
그 때에 율곡선생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하기를 “그냥 두십시다. 선친께서는 저 모자라는 며느리를 무척 아끼고 사랑하셨는데 당신의 제사상에 오른 것을 집어 먹었다고 그를 책망하면 제사 받으시는 아버님 마음이 기쁘시겠습니까”라고 했다고 합니다. 위에 언급했던 톨스토이나 링컨보다 얼마나 큰 가슴을 가진 남편의 모습입니까 가정은 이처럼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감싸주는 곳이기에 천국에 가까운 곳입니다.
그러나 서로 허물을 감싸지 못하면 그 가정은 지옥과 가까운 곳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여러분의 가정은 언제나 십자가의 사랑으로 모든 허물도 덮어 줌으로 화목이 넘치는 가정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가정의 화목은 서로 축복할 때 이루어집니다.
저는 오늘 본문에서 노아의 또 하나의 실책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자기의 자식인 함을 저주한 것입니다. 사실, 아들 함이 자기를 비난한 것을 발견하고 회개해어야 신앙적으로 옳은 자세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주님의 뜻대로 산다고 하다가 한 때 방심한 나머지 술에 만취되어 벌건 대낮에 벌거벗고 누워 있었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나 식구들 앞에서 너무나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단을 쌓고 가슴을 치면서 회개했어야 옳았습니다.
“오, 여호와 하나님이여, 제가 큰 죄를 범했나이다. 이제부터는 옛날처럼 의롭게 살겠사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한 후, 자기의 부족한 아들 함의 잘못도 바로 자기의 탓인 줄 알고 아들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였어야 옳습니다. 아들만 자기의 허물을 덮어 주기를 바라지 말고 자기도 덮어 주었어야 합니다. 아들을 불러다가 눈물로 타이른 후에 축복하였더라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그러나 노아는 아들 함을 저주에 가까이 말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가정은 큰 불행의 씨를 심게 되고, 형제들 사이가 심한 반목으로 가득 차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부모가 자녀들을 축복하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고 야곱이 요셉을 축복하였습니다. 잠언에도 자녀를 축복하는 구절이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축복대로 되어졌던 것입니다. 심지어는 무능한 엘리 제사장이 축복함으로 한나가 아들을 잉태하는 축복도 받기도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노아가 셈과 야벳을 축복한 대로 셈은 영적인 축복을, 야벳은 물질의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식구들은 서로 서로 축복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비록 남편이 실직 상태에 있을지라도 “내가 집중적으로 당신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으니 여호와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의 길을 축복하여 주실 것이라. ”고 하고, 아내가 무슨 일로 낙심할 때에 “여보, 염려하지 말구려. 당신이 그렇게 주님만 의지하고 사는 데 여호와 하나님이 반드시 더 좋은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라고 해보십시오.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부모는 자녀들을 향해서 축복의 말을 자주 해줄 때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 부모들은 자녀들을 향해서 제멋대로 말하기를 잘합니다. 어느 엄마는 자녀가 듣고 있는 데서 말하기를 “저 아이는 낳지 않으려고 했는데 조절을 못해서 낳았다. ”고 합니다. 혹은 딸이 여섯인 가정의 엄마가 하는 소리가 “아들을 낳으려고 하다 보니 딸부자가 되었다. ”고 합니다. 그러면 딸들은 개평짜리 인생이 된다는 말이 됩니다. 얼마나 섭섭한 마음이 들겠습니까 그래도 그 말은 애교로 봐 줄 수가 있습니다.
예전의 엄마들은 너무나 살기가 힘들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지독한 욕을 잘했습니다. “저런 빌어먹을 놈” 혹은 “오그라질 놈”, “호랑이가 물어 갈 놈” 혹은 “사지를 찢어 죽일 놈”, “엠병 하다가 고꾸라질 놈” 등등 한이 없습니다. 그런 욕을 잘 들어보세요. 너무나 끔찍한 저주의 욕입니다. 안됩니다. 말로 떠든 대로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어느 분은 우리나라가 조선 시대나 일제시대. 육이오 사변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끔찍하게 죽은 것은 다 그러한 욕들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축복의 말을 자주 심어 주십시오. “너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복된 자가 되어라. ” “너는 여호와 하나님이 반드시 함께 하실 것이다. ”라고 하면 그것이 씨가 되어 그 아이 속에서 자라서 많은 열매를 맺는 날이 올 것입니다. 영국 북부지방의 한 공원에 12사도의 이름을 붙인 나무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가룟 유다라는 이름을 붙인 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을 향해 지나가는 사람마다 욕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 뒤 얼마 안 가서 그 나무는 말라죽고 말았습니다. 심을 때는 분명히 12그루를 심었는데 지금은 11그루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한낱 식물이라도 계속 저주하면 이런 결과를 가져오는데 영적인 존재인 사람은 얼마나 축복과 저주에 영향을 받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축복하면 축복을 받는 날이 오고, 저주를 하면 저주를 받는 날이 오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식구끼리 부족한 것이 많을지라도 축복하십시오. 그러면 참으로 시인한 대로 이루어지는 날이 옵니다.
‘실화사전’에는 이런 귀한 예화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남편이 이중 생활하는 것을 견디다 못해 목사님께 상담하러 온 자매님이 있었습니다. 살기가 등등한 얼굴로 와서 자기 남편에 대해 심한 욕을 마구 하면서 가정을 돌보지 않는다고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자매님의 말을 다 듣고 난 목사님은 “자매님이 남편을 그렇게 저주하시면 남편은 점점 강퍅해질 것 뿐 아니라 그것이 자매에게 나쁜 영향이 가져옵니다. 지금 자매님의 얼굴은 말이 아닙니다. ”
“성경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편께서 돌아오는 것은 둘째로 하고 우선 자매님의 마음이 평안해지기 위해 남편을 축복해 주십시오. ”라고 권면하였습니다. 그러자 자매님은 처음에는 펄쩍 뛰면서 그럴 수가 있느냐고 완강히 거부하였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의 설득으로 남편에 대하여 축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죽이고 싶던 남편에 대하여 증오심이 풀리고 불쌍히 여겨지고 자신에게 평안한 마음이 가슴속에 가득 찼습니다.
걸핏하면 신경질 내고 애들을 매질하던 손길이 다정스러운 사랑의 손길로 변하였습니다. 오랜만에 남편이 찾아 왔습니다. 전 같으면 냉대하던 부인이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띠고 반가이 맞아주며 극진하게 대접하니 남편은 양심에 가책을 느껴 집을 떠날 수 없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본 자매님은 더욱 열심을 내서 남편을 위해 주었습니다. 심지어 첩에 안부를 묻기도 하였습니다. 첩이 친구한테 전도를 받아 예수 믿게 되니 본집으로 돌려보내고 남편은 가정에 돌아와 충실한 가장이 되었습니다.
그 자매는 남편을 축복하고 첩을 축복하였더니 그 축복이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을 보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인 부모들은 이재부터 자녀들에게 격려의 말, 비전의 말, 축복의 말, 믿음의 말을 심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또한 남편과 아내에게도 늘 축복의 말을 하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금년에는 우리 모든 가정들이 여호와 하나님 중심의 가정, 서로 허물을 덮어 주는 사랑의 가정, 서로 축복하는 가정이 되심으로 가정의 화목과 복이 넘치는 해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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