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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구원받는 가정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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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철학자인 토마스아퀴나스는 자녀가 부모에게 받은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이는 낳 아주고, 길러주고, 가르쳐 준 것이니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부모는 곧 가정입 니다. 가정은 어는 한 사람의 소유물이 아니므로 서로의 역할을 잘 감당해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사는 가정의 역할 중 중요한 것 하나가 아버지의 역할입니다. 성경에는 집 '이라는 말을 내 아버지 곁에 있다'는 말로 함께 번역을 했습니다.
누가복음 )5장의 말씀에 둘째 아들이 집을 떠난 것은 곧 아버지를 떠난 것이고, 그가 집으 로 돌아왔다는 것은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왔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역할이 곧 울타리, 집의 기둥과 같은 것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시작의 축복에 관한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천지만물의 창조에서 부터 새하늘과 새땅을 만드는 일까지 이 모두가 다 시 작에 대한 기록입니다. 창조 때부터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유일한 조직체는 바로 가정입니다. 이 가정은 새하늘과 새땅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생명이 지속되는 날까지 영위되는 조직체입 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사는 사람들은 이 가정을 지키려고 애를씁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행 16:31) 말씀은 믿음 생활 의 정답입니다. 너 혼자만이 아니라 네 집까지 구원 얻는 진리, 그것이 기독교입니다.
어떤 가정은 가족 구성원이 각기 다른 종교를 갖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한 피받아 한 몸 이룬 우리들은 같은 제단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가정의 꽃이 되어야 하고 아름다운 열매가 되어야 할 자녀로 인 해 망신당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 이유는 돈 때문에, 명예 때문에, 권력 때문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한마디로 요약을 하면 예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없는 가정은 아 무리 돈과 권력과 명예가 있어도 영생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호의호식한다 하더 라도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 그들은 패자입니다. 우리가 비록 가난하게 살고 어려움이 있지 만 우리는 영생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의 삭개오의 가정을 통해 "구원받은 가정 의 특징"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는 예수를 알기 전 삭개오의 가정의 모습을 통해 그리스도 이전의 우리의 삶, 내 가정은 어떠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 이전의 삭개오의 가정은 한 마디로 삭막했 습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해골 무더기 처럼 삭막한 가정, 오직 돈만을 생각하던 가정이었습 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유태인이면서 정복자인 로마의 앞잡이인 세리 장이 되었습니다. 우리 역사의 친일파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부와 명예를 쌓아 부족함이 없는 듯이 보 였으나 실상 마음속에는 허전함으로 가득찬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인정을 받았지만 민족의 원성을살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몸의 편안함은 얻었지만 그러나 조용한 시간 자신을 되돌아 볼 때 스스로는 비참함을 느껴야 했습니다. 지위와 명예, 돈과 권력이 있는 삶을 살면서 마 음의 허전함을 해결할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의 소식을 듣자 곧 예수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심중에 얻은 것으로도, 취한 것으로도 만족되지 않던 그에게 예수의 소 식이 들린 것입니다. 이 소식이 들려지고 난 후 삭개오는 예수를 만나기도 전부터 마음이 들뜨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자리를 박차고 예수님이 지나시는 거리로 나간 것입니다. 예수를 만나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심정이 오늘 예배하는 우리 모두의 심정이기를 바랍 니다. 그리스도 이전과 이후에 우리 모두의 심정이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이전과 이후에 우리 삶에 획을 그을 수 있는 차이가 있어야 합니다.
이사야는 '예수님이 계신 곳은 영화로우리라' (사 11. 10)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다 는 사실만으로도 즐거운 일이었는데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집으로 영접하는 기쁨을 통해 삶 과 마음속 깊이 까지 예수를 받아들였습니다. 오늘 여러분 중에도 예수님을 대문 밖에만 세 워두는 사람, 현관 안에 들여놓는 것으로 끝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례와 직분을 받기 이전 과 이후가 달라져야 합니다. 획을 그을 수 있어야 합니다. 불안한 세월을 보내던 삭개오가 예수에게 희망을 걸었습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사력을 다해 예수의 옷자락 을 만진 것처럼, 열 문등병 환자가 자리에서 뛰쳐나와 예수를 붙잡은 것처럼 머뭇거리지 말 고, 연기하지 말고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우리가 머뭇거리면 그만큼 손해가 됩니다. 삭개오 가 예수를 만나려 애쓴 것은 성령의 지시하심이나 인도하심이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그에 게 나타난 예수그리스도는 풍문에 들려오는 소리에 불과했습니다.
오늘 여러분 앞에도 동방박사의 별과 같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었다 하더라도 많은 경로를 통해 예수의 소식이들려 왔을 것입니다. 동방박사와 같이 예수를 만나는 사람도 있지만 장 애물을 극복하고 예수를 만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행가연 독자 여러분,
장애물이 있다고 주저해선 안됩니다. 장애물을 극복하고 예수를 찾아가야 합니다. 성경은 '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했습니다. 구하는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요 찾아야 하고 열릴 때 까지 두드려야 합니다. 이러한 세 가지가 하나가 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삭개오는 마음의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찾아 나섰으며 장애물을 뚫고 나아갔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신앙의 장애물이 있다면 극복할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의 목표는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삶'으로 정해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만나지 못한다면, 예수 의 소식만 듣는다면, 예수와 함께 살 수가 없습니다. 신앙은 생활이 따라와야지 생각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므로 장애물을 극복하고 예수님과의 만남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서 삭개오 는 자리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만약 그가 자리에 앉아서만 예수를 찾았다면 그는 영원히 기 독교 역사에 들어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이때부터 벌써 그에게는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한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주변 사람들에게 복을 전하고 계
셨습니다. 키가 작은 삭개오는 그러나 권력이나 금력을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약점을 가려 줄수 있는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그때까지 전혀 관심이 없으시던 예수님이 삭개오가 자신 의 결점을 솔직히 드러내자 올라간 뽕나무아래에 서서는 '삭개오야, 내려오라' 고 말씀하셨 습니다.
행가연 독자 여러분,
여러분과 나에게 예수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은 무엇입니까 수 십 년을 교회에 왔다 갔다했으나 주변 만 맴돌다 간 이유가 무엇입니까 생활 속에 신앙이 자랍니다. 어떻게 하 면 신앙이 자할지 생각해야 합니다. 삭개오는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 체면을 내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은 삭개오와 함께 평안을 누립니까 여러분 가정의 장애물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에게 초점이 모아지도록 이번 기회에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역사 속에 찾 아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가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터인데 가리운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먼저 믿는 사람들의 실 때문에 복음이 가리울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힘으 로 가리운 것들을 해결하는 지혜가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어떻게 영접했습니까 예수님과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에 삭개오는 일생 느껴보지 못한 마음의 평안을 느꼈습니다. 경쟁자 앞에서도, 상관 앞에서도, 연인 앞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이상한 느낌, 그 느낌이 예수님을 만난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목소 리를 듣고 달려. 내려와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모셨습니다. 비록 초라한 모습이 었지만 이 런 느낌을 갖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그날 지난날의 삶을 완전히 청산했습니다. 죄를 회개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 영원히 그날의 감격을 안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 길 인자가 세상에 온 것은 잃어 버린 것을 찾으러 왔다 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를 믿는다면 완전한 회개가 따라야 하며 주님을 내 마음에 모 시려 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삶이 우리의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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