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남(南)과 북(北)이 손을 잡으려면
본문
벌써 반세기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남과 북이 손을 잡지 못하고 있습 니다. 그때 일을 생각할 때마다 동족끼리 잔인한 모습에서 전율과 공포와 무서움을 금치 못합니다. 6. 25전쟁 때 죽은 사람들을 헤아릴 수 있습니까 우리 부모도 죽解우리의 형제도 죽었습니다. 그런데 더 잔인스럽게 여기는 것은 평소에 사랑하던 동네 사람들끼리 죽인 사람이 헤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민군이 들어왔을 때는 반동분자라고 죽이고 정 부군이 들어왔을 때는 인민군의 부역자라고 죽였습니다.
그런데 반세기가 지난 오늘에 와 서 가슴이 미어지는 그때의 일을 상기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게다가 바로 1년전 6 월 15일에 남북정상들이 평양에서 모여 역사적인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하기도 하지 않았습니 까 이날 TV앞에서 우리 모두는 감격했습니다. 그 감격이 중천에 달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오늘 별다른 진전이 없습니다. 영해침범은 있었어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답방은 오리무중(5里霧中)입니다. 왜 이 모양일까 여호와 하나님 말씀을 미 뤄 묵상해볼 때에 진실, 그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 말씀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아합 이라고 하는 사람은 22년 동안 독재한 악명 높은 이스라엘의 7대 왕입니다. 이방여인 이세 벨과 결혼했고, 그들은 바알신을 섬겼습니다. 아합왕은 이스라엘의 여호와 종교를 말살시 켜버리려고 이세벨을 앞세워 우상 아세라 신상을 건립했고, 수많은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상선벌악(賞善罰惡)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엘리사에게 기름 부음 받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 예후를 부르셨습니다. 예후야 이제 일어나라, 내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후를 통해서 칼을 뽑으신 것입니다. 열왕기상 10장에 보면 아합의 아들들과 친척들을 처치했고, 열왕기하 9장을 보면 아합 의 아내 이세벨을 죽이니 그 시체를 개들이 먹었다고 했습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예후는 바알 섬기는 자들을 진멸하기 위해서 병거를 타고 달려갔습니다. 이때입니다. 경건한 사 람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이 오고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절호의 기회입니다. 여호나답이 힘을 합하면 능히 바알을 섬기는 자들을 진멸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후가 입을 열었습니다.
본문 15절입니다. "내 마음이 네 마음을 향하여 진실함과 같이 네 마음 도 진실하냐" 여호나답이 답했습니다. "그러하니이다" 그 때에 예후가 지체할 수 없었습 니다. "그러면 나와 손을 잡자"고 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또 한번의 6. 25상기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남과 북의 통일을 기원하면서 본문 말씀 중심의 '남(南)과 북(北)이 손을 잡으려면' 이러한 주제로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남과 북이 손을 잡으려면
첫째, 마음(良心)이 진실해야 합니다. 본문 15절입니다. "네 마음도 진실하냐" 이 말씀을 이렇게 바꾸어 봅니다. "네 양심도 진 실하냐" 사실 양심은 민족의 횃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심이 살면 나라가 흥하고 양 심이 죽으면 나라가 망합니다. 국토가 넓어야 큰 나라입니까 인구가 많아야 대국입니까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민족의 양심이 살아서 세계를 감동시킬 수 있는 나라라면 바로 그 나라가 큰 나라요, 대국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 민족의 최대 위기가 무엇입니까 정치적 인 위기 경제적인 위기 결코 아닙니다.
민족 양심의 위기라고 성경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어느 것 하나 성한 것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양심이 부패해서 냄새를 피우기 때문입니다. 정치는 민족을 분열시켰고 그리고는 야와 여 의 분열, 동과 서의 분열, 남과 북의 분열을 가져왔습니다. 경제는 결국 국민정신을 병들 게 했고, 그 사상과 이념은 도덕적 불감증을 만들어냈습니다. 지금 우리 모두는 형제끼리 서로 죽이고 싸우면서도 양심의 가책이 없습니다. 참으로 비통한 현실입니다. 오늘의 모든 문제는 정치, 경제의 문제가 아닙니다. 양심문제요, 도덕문제요, 진리문제입니다. 무너진 양심이 성수대교를 내려 앉히고 삼풍백화점을 쓰러뜨렸습니다. 속이는 정치, 속이는 경제, 속이는 교육, 여기에 무슨 소망이 있습니까
그런데 우리의 현실이 아닙니까 양심이 살 아야 정치도 살고, 양심이 살아야 경제도 교육도 살아납니다. 양심을 살리는 길이 무엇입 니까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서로가 먼저 내가 죄인이로소이다. 죄인임을 자각하는 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백성을 용서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축복하십니다. 하 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의 기도를 응답하십니다. 그런데 북녘 땅에도 성경이 말하는 그 양심 이 있겠습니까 물론 양심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그런데 총살과 투옥과 추방이 그들의 양심이라면 어떻게 그들을 믿으며, 그들과 함께 손을 잡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반 세기 지난 오늘 그때에 있었던 6. 25를 상기하면서 그리고 그 경험을 결코 배제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목회자들이 죽창으로 찔러 죽임을 당했습니다. 구덩이를 파고 사람을 산채로 묻었습니다. 때문에 생긴 고아와 과부와 상이군인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세상에는 화인 맞은 양심이 많습니다. 남한에도 많고 북한에는 더더구나 많습니다. 이 때에 주님이 말씀 하십니다. 회칠한 무덤 인생들아 돌아오라, 화인 맞은 양심을 정결케 하라 주님 말씀하십 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는 불꺼져 버린 양심에다가 불을 붙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양심이 살아야 민족의 양심이 살고 민족의 양심이 살아야 남북통일의 염원도 발걸음을 재촉 하게 될 줄로 믿어마지 않습니다.
둘째, 생각(思想)이 진실해야 합니다. 본문 말씀 15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네 마음도 진실하냐" 저는 이 말씀을 이렇게 바꿔봅 니다. "네 생각, 곧 사상이 진실하냐" 영국의 철학자 버틀란드 렛셀은 그가 써놓은 책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이란 책에서 공산주의 사회를 유대교에 비유를 했습니다. 공산당이 교회요, 변증법적 유물론은 여호와요,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택한 백성이며, 그 혁명은 최후 심판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그들에게도 성경도 있고, 그들에게도 성자도 있습니다. 1848년 2월 24일에 영국 런던 공산당연맹의회에서 공포된 공산당 선언이 그들의 성경입니다.
그리고 막스 레닌과 앵겔스는 그들의 성자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성경 데살 로니가후서 3장 10절을 도용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 라" 그래서 1932년 많은 승려들을 일하지 않는 자라고 규정하고 살상하고 추방을 한 바 있 습니다. 공산주의 사상이 무엇입니까 유물론 사상입니다. 유물론 사상에 의하면 인간이 무엇입니까 하나의 물질에 지나지 않습니다. 때문에 정신이 없습니다. 영혼이 없습니다.
공산주의 신조 제 10조에 의하면 어떠한 행위라도 예컨대 살인이나 양친을 밀고하는 행위라 도 그것이 공산주의 목적에 도움이 된다면 정당하다고 문서화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자에 의하면 인민재판과 사형은 대중을 교화시키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히틀러 피의 정 치가 육백만을 살해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독일 근교에 있는 까따워 마을에 가면 유대 인 수용소 가스실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로 남긴 글들이 희미하게 남 아있는데, 거기에 보면 많은 글귀가 있습니다.
그 중에 눈에 띄는 것이 있습니다. 아도나 이, 아도나이 뿐만 아닙니다. 나이네 무텔 번역하면 나의 여호와 하나님, 나의 여호와 하나님 그리고 나 의 어머니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남과 북은 우선 생각부터가 다릅니다. 남은 위에 것을 생각하고 북은 땅에 것을 생각합니다. 남은 반석사상에 집을 짓고 북 은 모래사상에 집을 짓습니다. 그러나 모래 위에 세운 집은 어떠합니까 바람이 불고, 비 가 내리고, 창수가 나면 무너지고 맙니다. 우리는 햇빛정책인데 저들은 흑막정책입니다. 우리는 민주주의 방식인데 비하여 저들은 공산주의 방식입니다. 우리 모두는 자유를 갈망 합니다.
그래서 자유 그것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합니다. 물론 저들에게도 자유가 있습니다. 인민의 자유, 계급의 자유를 제창합니다. 그러나 자유의 개념과 자유의 사상이 다릅 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자유 없는 사회가 공산주의 사회가 아닙니까 우리 모두는 평화 를 염원합니다. 통일을 갈망합니다. 물론 저들도 평화를 말하고 통일을 노래합니다. 그 러나 그 평화는 무장된 평화요, 통일은 적화 통일입니다. 공산주의가 무엇입니까 피의 숙청이요, 소수 무장 무산 계급의 폭군입니다. 공산주의가 무엇입니까
쇄국주의적인 은둔 정치요, 정치적 거짓 메시아입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내 마음이 네 마음을 향하여 진실 함과 같이 네 마음도 진실하냐" "그렇다" "그러면 나와 손을 잡자" 여기 손을 잡자는 말의 뜻이 무엇입니까 알기 쉽게 풀이합니다. 여당과 야당이 서로 협력하자는 뜻이요, 동과 서가 마음을 합하여 하나되자는 뜻이며, 남과 북이 속히 통일하자는 뜻일 것입니다. 이 시 간 6. 25상기 주일을 맞이하여 1분 동안 통성 기도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오, 여호와 하나님이 여! 남북통일을 주시옵소서'
셋째, 믿음(信仰)이 진실해야 합니다. 본문 15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내 마음이 네 마음을 향하여 진실함과 같이 네 마음도 진 실하냐" 여기 마음을 믿음 곧 신앙으로 바꾸어 봅니다. 민족이 살 수 있는 큰 비결은 오 직 예수 신앙에만 있습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면 국가는 흥하고 거절하면 국가는 망합니다. 세계 역사가 이것을 증언하고 있지 않습니까 똑같은 한반도의 한민족인데 남한은 잘 살고 북한은 가난합니다.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남한은 예수님을 받아 들였고 북한 은 예수님을 거역했기 때문입니다. 남녘 땅에서 교회가 확장되고 있는 동안에 북녘 땅에서 는 있었던 교회까지 문을 닫아버리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북한은 오늘 헐벗고 굶주리고 황 무한 땅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남한은 여호와를 섬길 때에 북한은 바알을 섬겼습니다. 남한의 지도자는 엘리야인데, 북한의 지도자는 아합입니다. 가정이 화목하려면 믿음이 같 아야 합니다. 아버지는 유교, 어머니는 불교, 아들은 마호멧, 그리고 딸은 기독교라면 어 찌 되겠습니까
결혼한 신랑 신부의 경우도 같습니다. 주일이 되면 신랑은 천주교회로 가 고, 신부는 장로교회로 간다면 우습지 않습니까 본문 16절을 보십시오. 예후가 여호나답 에게 한 말입니다. "나와 함께 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했습니다.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는 우리 모두입니다. 이것이 예후의 믿음이요, 엘리야의 믿음이요, 우리 모 두의 믿음이 아닙니까 그런데 북한에도 이러한 믿음이 있겠습니까 물론 거기에도 믿음 은 있습니다. 그것은 무신론 신앙입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은 없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하 나님은 죽었다고 믿습니다. 그들에게 종교는 아편입니다. 공산주의는 일종의 거짓 종교입 니다.
도리어 공산주의는 기독교의 가장 무서운 적입니다. 우리 모두는 남과 북이 손을 잡기를 기원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 해결의 열쇠가 여호와 하나님의 장중에 있음을 의심하 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누가 38선 장벽을 무너뜨리겠습니까 탱크로 아닙니다. 대포 로 아닙니다.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누가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습니까 하 나님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습니다. 하 나님은 전쟁을 주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손을 잡아야 되는데 믿음이 진실해야 합니다. 믿음이 하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은 저쪽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돌아와, 돌아와 여기 손을 잡자는 말이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교훈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 생활이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먼저 여호와 하나님과 손을 잡고 또 믿음으로 성도 서로가 손 을 잡는 생활입니다. 손을 잡고 서로가 하나되는 일은 참 성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손 을 잡는 일은 가정에서 필요합니다. 손을 잡는 일은 사회에서 필요합니다. 손을 잡는 일 은 교회에서 필요합니다. 손을 잡는 일은 기관마다 필효합니다. 찬양대도 필요합니다. 주일학교에도 필요합니다. 사실 손을 잡아야 힘이 강해집니다. 손을 잡아야 이적이 생겨 납니다. 교회 부흥을 원하십니까 온 성도가 손을 잡아야 합니다. 교회가 정말로 부흥하 기를 원하십니까 손을 잡고 힘을 뭉쳐야 합니다. 성전 건축의 완공을 염원합니까 온 성도가 손을 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잡음이 없어야 합니다.
불평이 없어야 합니다. 오직 기도에 전념해야 합니다. ♬기도하자 우리 마음 합하여 기도하자 우리 마음 합하여 할렐루 야 아멘 할렐루야 아멘 기도하자 우리 마음 합하여♬ 그런데 한가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예후가 여호나답을 만나 손을 잡자고 했을 때에 조건이 무엇입니까 한 가지 조건이 있었 습니다. "내 마음이 네 마음을 향하여 진실함과 같이 네 마음도 진실하냐 그러면 나와 손 을 잡자" 그렇습니다. 진실! 이것이 남과 북이 손을 잡는 첫째 조건입니다. 여당과 야당 이 손을 잡는데도 진실이 있어야하고 동과 서가 손을 잡는데도 진실이 있어야 합니다. 김 집사님과 박 집사님이 손을 잡는데도 진실이 있어야 합니다. 왜 국회의사당이 저 모양으로 소란합니까 진실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네가 나를 믿어주지 아니하고 왜 내가 너를 믿어 주지 못하는가 진실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학원에 풍랑이 일어납니까 교수가 학생이 손을 잡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남과 북이 손을 잡기 전에 잃어버린 진 실을 찾아야 합니다. 내 마음이 너를 향해서 진실해야 하고, 네 마음이 나를 향해서 진실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자문자답(自問自答)해보시기 바랍니다. 진실한 삶을 살 고 있습니까 정말 믿음생활에 진실이 있습니까 언어에 진실이 있고 행실에 진실이 있습 니까 진실을 내 놓을 수 있습니까 진실 되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어디에서나 무엇을 하던지 진실함으로 손을 꼭 잡고 주님의 뜻을 이루시는 사랑하 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반세기가 지난 오늘에 와 서 가슴이 미어지는 그때의 일을 상기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게다가 바로 1년전 6 월 15일에 남북정상들이 평양에서 모여 역사적인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하기도 하지 않았습니 까 이날 TV앞에서 우리 모두는 감격했습니다. 그 감격이 중천에 달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오늘 별다른 진전이 없습니다. 영해침범은 있었어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답방은 오리무중(5里霧中)입니다. 왜 이 모양일까 여호와 하나님 말씀을 미 뤄 묵상해볼 때에 진실, 그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 말씀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아합 이라고 하는 사람은 22년 동안 독재한 악명 높은 이스라엘의 7대 왕입니다. 이방여인 이세 벨과 결혼했고, 그들은 바알신을 섬겼습니다. 아합왕은 이스라엘의 여호와 종교를 말살시 켜버리려고 이세벨을 앞세워 우상 아세라 신상을 건립했고, 수많은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상선벌악(賞善罰惡)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엘리사에게 기름 부음 받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 예후를 부르셨습니다. 예후야 이제 일어나라, 내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후를 통해서 칼을 뽑으신 것입니다. 열왕기상 10장에 보면 아합의 아들들과 친척들을 처치했고, 열왕기하 9장을 보면 아합 의 아내 이세벨을 죽이니 그 시체를 개들이 먹었다고 했습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예후는 바알 섬기는 자들을 진멸하기 위해서 병거를 타고 달려갔습니다. 이때입니다. 경건한 사 람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이 오고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절호의 기회입니다. 여호나답이 힘을 합하면 능히 바알을 섬기는 자들을 진멸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후가 입을 열었습니다.
본문 15절입니다. "내 마음이 네 마음을 향하여 진실함과 같이 네 마음 도 진실하냐" 여호나답이 답했습니다. "그러하니이다" 그 때에 예후가 지체할 수 없었습 니다. "그러면 나와 손을 잡자"고 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또 한번의 6. 25상기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남과 북의 통일을 기원하면서 본문 말씀 중심의 '남(南)과 북(北)이 손을 잡으려면' 이러한 주제로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남과 북이 손을 잡으려면
첫째, 마음(良心)이 진실해야 합니다. 본문 15절입니다. "네 마음도 진실하냐" 이 말씀을 이렇게 바꾸어 봅니다. "네 양심도 진 실하냐" 사실 양심은 민족의 횃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심이 살면 나라가 흥하고 양 심이 죽으면 나라가 망합니다. 국토가 넓어야 큰 나라입니까 인구가 많아야 대국입니까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민족의 양심이 살아서 세계를 감동시킬 수 있는 나라라면 바로 그 나라가 큰 나라요, 대국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 민족의 최대 위기가 무엇입니까 정치적 인 위기 경제적인 위기 결코 아닙니다.
민족 양심의 위기라고 성경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어느 것 하나 성한 것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양심이 부패해서 냄새를 피우기 때문입니다. 정치는 민족을 분열시켰고 그리고는 야와 여 의 분열, 동과 서의 분열, 남과 북의 분열을 가져왔습니다. 경제는 결국 국민정신을 병들 게 했고, 그 사상과 이념은 도덕적 불감증을 만들어냈습니다. 지금 우리 모두는 형제끼리 서로 죽이고 싸우면서도 양심의 가책이 없습니다. 참으로 비통한 현실입니다. 오늘의 모든 문제는 정치, 경제의 문제가 아닙니다. 양심문제요, 도덕문제요, 진리문제입니다. 무너진 양심이 성수대교를 내려 앉히고 삼풍백화점을 쓰러뜨렸습니다. 속이는 정치, 속이는 경제, 속이는 교육, 여기에 무슨 소망이 있습니까
그런데 우리의 현실이 아닙니까 양심이 살 아야 정치도 살고, 양심이 살아야 경제도 교육도 살아납니다. 양심을 살리는 길이 무엇입 니까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서로가 먼저 내가 죄인이로소이다. 죄인임을 자각하는 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백성을 용서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축복하십니다. 하 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의 기도를 응답하십니다. 그런데 북녘 땅에도 성경이 말하는 그 양심 이 있겠습니까 물론 양심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그런데 총살과 투옥과 추방이 그들의 양심이라면 어떻게 그들을 믿으며, 그들과 함께 손을 잡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반 세기 지난 오늘 그때에 있었던 6. 25를 상기하면서 그리고 그 경험을 결코 배제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목회자들이 죽창으로 찔러 죽임을 당했습니다. 구덩이를 파고 사람을 산채로 묻었습니다. 때문에 생긴 고아와 과부와 상이군인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세상에는 화인 맞은 양심이 많습니다. 남한에도 많고 북한에는 더더구나 많습니다. 이 때에 주님이 말씀 하십니다. 회칠한 무덤 인생들아 돌아오라, 화인 맞은 양심을 정결케 하라 주님 말씀하십 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는 불꺼져 버린 양심에다가 불을 붙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양심이 살아야 민족의 양심이 살고 민족의 양심이 살아야 남북통일의 염원도 발걸음을 재촉 하게 될 줄로 믿어마지 않습니다.
둘째, 생각(思想)이 진실해야 합니다. 본문 말씀 15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네 마음도 진실하냐" 저는 이 말씀을 이렇게 바꿔봅 니다. "네 생각, 곧 사상이 진실하냐" 영국의 철학자 버틀란드 렛셀은 그가 써놓은 책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이란 책에서 공산주의 사회를 유대교에 비유를 했습니다. 공산당이 교회요, 변증법적 유물론은 여호와요,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택한 백성이며, 그 혁명은 최후 심판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그들에게도 성경도 있고, 그들에게도 성자도 있습니다. 1848년 2월 24일에 영국 런던 공산당연맹의회에서 공포된 공산당 선언이 그들의 성경입니다.
그리고 막스 레닌과 앵겔스는 그들의 성자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성경 데살 로니가후서 3장 10절을 도용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 라" 그래서 1932년 많은 승려들을 일하지 않는 자라고 규정하고 살상하고 추방을 한 바 있 습니다. 공산주의 사상이 무엇입니까 유물론 사상입니다. 유물론 사상에 의하면 인간이 무엇입니까 하나의 물질에 지나지 않습니다. 때문에 정신이 없습니다. 영혼이 없습니다.
공산주의 신조 제 10조에 의하면 어떠한 행위라도 예컨대 살인이나 양친을 밀고하는 행위라 도 그것이 공산주의 목적에 도움이 된다면 정당하다고 문서화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자에 의하면 인민재판과 사형은 대중을 교화시키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히틀러 피의 정 치가 육백만을 살해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독일 근교에 있는 까따워 마을에 가면 유대 인 수용소 가스실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로 남긴 글들이 희미하게 남 아있는데, 거기에 보면 많은 글귀가 있습니다.
그 중에 눈에 띄는 것이 있습니다. 아도나 이, 아도나이 뿐만 아닙니다. 나이네 무텔 번역하면 나의 여호와 하나님, 나의 여호와 하나님 그리고 나 의 어머니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남과 북은 우선 생각부터가 다릅니다. 남은 위에 것을 생각하고 북은 땅에 것을 생각합니다. 남은 반석사상에 집을 짓고 북 은 모래사상에 집을 짓습니다. 그러나 모래 위에 세운 집은 어떠합니까 바람이 불고, 비 가 내리고, 창수가 나면 무너지고 맙니다. 우리는 햇빛정책인데 저들은 흑막정책입니다. 우리는 민주주의 방식인데 비하여 저들은 공산주의 방식입니다. 우리 모두는 자유를 갈망 합니다.
그래서 자유 그것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합니다. 물론 저들에게도 자유가 있습니다. 인민의 자유, 계급의 자유를 제창합니다. 그러나 자유의 개념과 자유의 사상이 다릅 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자유 없는 사회가 공산주의 사회가 아닙니까 우리 모두는 평화 를 염원합니다. 통일을 갈망합니다. 물론 저들도 평화를 말하고 통일을 노래합니다. 그 러나 그 평화는 무장된 평화요, 통일은 적화 통일입니다. 공산주의가 무엇입니까 피의 숙청이요, 소수 무장 무산 계급의 폭군입니다. 공산주의가 무엇입니까
쇄국주의적인 은둔 정치요, 정치적 거짓 메시아입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내 마음이 네 마음을 향하여 진실 함과 같이 네 마음도 진실하냐" "그렇다" "그러면 나와 손을 잡자" 여기 손을 잡자는 말의 뜻이 무엇입니까 알기 쉽게 풀이합니다. 여당과 야당이 서로 협력하자는 뜻이요, 동과 서가 마음을 합하여 하나되자는 뜻이며, 남과 북이 속히 통일하자는 뜻일 것입니다. 이 시 간 6. 25상기 주일을 맞이하여 1분 동안 통성 기도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오, 여호와 하나님이 여! 남북통일을 주시옵소서'
셋째, 믿음(信仰)이 진실해야 합니다. 본문 15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내 마음이 네 마음을 향하여 진실함과 같이 네 마음도 진 실하냐" 여기 마음을 믿음 곧 신앙으로 바꾸어 봅니다. 민족이 살 수 있는 큰 비결은 오 직 예수 신앙에만 있습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면 국가는 흥하고 거절하면 국가는 망합니다. 세계 역사가 이것을 증언하고 있지 않습니까 똑같은 한반도의 한민족인데 남한은 잘 살고 북한은 가난합니다.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남한은 예수님을 받아 들였고 북한 은 예수님을 거역했기 때문입니다. 남녘 땅에서 교회가 확장되고 있는 동안에 북녘 땅에서 는 있었던 교회까지 문을 닫아버리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북한은 오늘 헐벗고 굶주리고 황 무한 땅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남한은 여호와를 섬길 때에 북한은 바알을 섬겼습니다. 남한의 지도자는 엘리야인데, 북한의 지도자는 아합입니다. 가정이 화목하려면 믿음이 같 아야 합니다. 아버지는 유교, 어머니는 불교, 아들은 마호멧, 그리고 딸은 기독교라면 어 찌 되겠습니까
결혼한 신랑 신부의 경우도 같습니다. 주일이 되면 신랑은 천주교회로 가 고, 신부는 장로교회로 간다면 우습지 않습니까 본문 16절을 보십시오. 예후가 여호나답 에게 한 말입니다. "나와 함께 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했습니다.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는 우리 모두입니다. 이것이 예후의 믿음이요, 엘리야의 믿음이요, 우리 모 두의 믿음이 아닙니까 그런데 북한에도 이러한 믿음이 있겠습니까 물론 거기에도 믿음 은 있습니다. 그것은 무신론 신앙입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은 없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하 나님은 죽었다고 믿습니다. 그들에게 종교는 아편입니다. 공산주의는 일종의 거짓 종교입 니다.
도리어 공산주의는 기독교의 가장 무서운 적입니다. 우리 모두는 남과 북이 손을 잡기를 기원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 해결의 열쇠가 여호와 하나님의 장중에 있음을 의심하 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누가 38선 장벽을 무너뜨리겠습니까 탱크로 아닙니다. 대포 로 아닙니다.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누가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습니까 하 나님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습니다. 하 나님은 전쟁을 주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손을 잡아야 되는데 믿음이 진실해야 합니다. 믿음이 하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은 저쪽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돌아와, 돌아와 여기 손을 잡자는 말이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교훈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 생활이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먼저 여호와 하나님과 손을 잡고 또 믿음으로 성도 서로가 손 을 잡는 생활입니다. 손을 잡고 서로가 하나되는 일은 참 성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손 을 잡는 일은 가정에서 필요합니다. 손을 잡는 일은 사회에서 필요합니다. 손을 잡는 일 은 교회에서 필요합니다. 손을 잡는 일은 기관마다 필효합니다. 찬양대도 필요합니다. 주일학교에도 필요합니다. 사실 손을 잡아야 힘이 강해집니다. 손을 잡아야 이적이 생겨 납니다. 교회 부흥을 원하십니까 온 성도가 손을 잡아야 합니다. 교회가 정말로 부흥하 기를 원하십니까 손을 잡고 힘을 뭉쳐야 합니다. 성전 건축의 완공을 염원합니까 온 성도가 손을 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잡음이 없어야 합니다.
불평이 없어야 합니다. 오직 기도에 전념해야 합니다. ♬기도하자 우리 마음 합하여 기도하자 우리 마음 합하여 할렐루 야 아멘 할렐루야 아멘 기도하자 우리 마음 합하여♬ 그런데 한가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예후가 여호나답을 만나 손을 잡자고 했을 때에 조건이 무엇입니까 한 가지 조건이 있었 습니다. "내 마음이 네 마음을 향하여 진실함과 같이 네 마음도 진실하냐 그러면 나와 손 을 잡자" 그렇습니다. 진실! 이것이 남과 북이 손을 잡는 첫째 조건입니다. 여당과 야당 이 손을 잡는데도 진실이 있어야하고 동과 서가 손을 잡는데도 진실이 있어야 합니다. 김 집사님과 박 집사님이 손을 잡는데도 진실이 있어야 합니다. 왜 국회의사당이 저 모양으로 소란합니까 진실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네가 나를 믿어주지 아니하고 왜 내가 너를 믿어 주지 못하는가 진실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학원에 풍랑이 일어납니까 교수가 학생이 손을 잡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남과 북이 손을 잡기 전에 잃어버린 진 실을 찾아야 합니다. 내 마음이 너를 향해서 진실해야 하고, 네 마음이 나를 향해서 진실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자문자답(自問自答)해보시기 바랍니다. 진실한 삶을 살 고 있습니까 정말 믿음생활에 진실이 있습니까 언어에 진실이 있고 행실에 진실이 있습 니까 진실을 내 놓을 수 있습니까 진실 되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어디에서나 무엇을 하던지 진실함으로 손을 꼭 잡고 주님의 뜻을 이루시는 사랑하 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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