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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6.25의 교훈

본문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신 8:2)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왜 사람들이 잊고 싶어하는 수치와 고난의 역사를 기억하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잊혀져 가는 6. 25를 상기함으로 역사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 그 교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전쟁과 비극
전쟁의 최대 비극은 존귀한 생명을 앗아가는 것입니다. 6. 25 전쟁 기간 동안 남북한은 무려 450만 명의 인명피해를 가져왔습니다. 수많은 군인들이 죽고 다쳤을 뿐만 아니라, 전쟁 고아 5만 명, 전쟁 과부 30만 명, 행방 불명자 36만 명, 납북자가 8만 명, 그리고 3천만 가운데 3분의 1이나 되는 일천만 이산가족이 생겨났습니다. 그간의 오십년 세월 동안 300만 명은 죽고, 이젠 700만 명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전쟁의 가장 무서운 비극은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고 죽이는 것에 대해서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과 윤리가 사라지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형제조차도 죽이도록 만드는 것이 전쟁입니다. 한마디로 전쟁은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인간을 철저하게 타락시키는 것입니다.
또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합니다. 전쟁은 폭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6. 25는 전통 문화재로부터 시작해서 각종 산업시설과 주택 그리고 아름다운 조국 강산을 모두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대대로 내려오는 효의 정신과 막 뿌리 내리기 시작한 신앙도 파괴했습니다.
그러한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남과 북은 정치, 경제, 사회, 외교, 스포츠 모든 면에서 민족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지 못하고, 서로의 힘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톨스토이는 말하기를 "전쟁은 인간이 범하는 죄 가운데 가장 큰 죄악이다. "라고 했습니다.
 둘째, 전쟁은 다시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6. 25 전쟁이 발발한 것에 대해서 갖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전쟁은 여호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삼상 17:47). 이 민족의 죄악을 심판하고 경고하시기 위해서 6. 25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첫째로, 이 민족은 우상숭배의 죄를 범했습니다. 평양은 제2의 예루살렘이라고 할 만큼 교회가 부흥했던 도시였습니다. 1907년 1월 16일 한국 교회 최초의 성령강림이 있었던 곳도 평양 장대현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일제 시대 때 한국 교회는 신사참배를 하고, 성도들에게 이를 권장하기까지 했습니다. 교회의 종을 떼어서 일본의 전쟁무기를 만드는 데 헌납하고,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주의 종들을 파면했을 뿐만 아니라, 감옥에 집어넣어서 온갖 고문을 당하여 죽게 했습니다. 둘째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힘써 지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우상숭배의 죄도 모자라서 해방을 전후로 치열한 교권 싸움과 교회 분열이 한국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한국 교회는 깨어 경성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4만5천 교회, 10만 주의 종, 1200만 신자를 가지게 되었다고 교만해서는 안됩니다. 천년 동안 정교회 국가였던 러시아에서 제일 먼저 공산주의가 일어났고, 종교개혁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에서 히틀러가 나타났습니다. 교황청이 있는 이태리에서 독재자 뭇솔리니가 나타났으며, 제2의 예루살렘이라고 하는 평양에서 공산주의가 일어나서 남한을 침략하는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개인, 교회, 국가 모두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이 임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들은 다시 전쟁의 징계를 받지 않도록 이 나라의 빛과 소금이 되며, 민족의 파숫군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파숫군이 칼이 임함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치 아니하므로 그 중에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제한바 되려니와 그 죄를 내가 파숫군의 손에서 찾으리라 인자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을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겔 33:6-7)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므로,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겨야 합니다(엡 6:12). 그럴 때 이 민족이 변화되고, 이 땅에서 전쟁이 사라지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와 하나됨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셋째, 6. 25의 아픔을 잊지 말자
망각의 동물인 인간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수치스러운 역사나 불행했던 과거는 빨리 잊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과거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40년 광야 생활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6. 25를 통해서 역사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베트남이나 중국처럼 공산화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산화되지 않은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북한이 침공했을 때, 유엔 파병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소련 대표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 오던 중 이유 없이 차의 시동이 꺼지는 바람에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하여 유엔군의 한국파병이 결정되었습니다. 한국 교회를 사랑하시고 이 민족을 사랑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6. 25는 자녀를 사랑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회초리입니다. 성경에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삼하 7:14)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6·25를 맞을 때마다 자녀들에게 지난 잘못을 얘기해 주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가르쳐야 합니다.
고난의 역사를 기억하면, 그때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역사를 배우지 않은 민족은 똑같은 잘못을 계속 반복합니다. 이런 문제점이 6. 25를 경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들 가운데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의 위험과 전쟁의 고통을 모르는 그들은 공공연히 북한과 공산주의를 찬양하기도 합니다. 이는 그동안 부모들이 자식에게 전쟁의 아픔과 고통을 잘 교육해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에게 역사를 사실대로 가르치고, 역사의 현장을 복원하며, 북한을 바로 알도록 해 주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넷째, 여호와 하나님은 합력해서 선을 이루셨다
전쟁은 분명 비극이고 아픔이며 슬픔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런 전쟁일지라도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하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6. 25는 이 민족으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게 했습니다. 전쟁은 아무것도 남겨 두지 않았습니다. 육체적으로 궁핍했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공허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동안 사람들이 의지하던 각종 우상과 더러운 영들이 헛된 것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전쟁이라는 고난을 통해서 이 민족에게 참된 평화와 안식을 주는 복음에 순종하게 하셨습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 그 결과 휴전 후에 한국 교회는 1980년도 초까지 계속해서 인구 성장을 앞지르는 교회 성장이 거듭되었습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어떤 고난도 이길 수 있는 희망을 주셨습니다. 전쟁 이후 육체적, 영적으로 굶주림에 허덕이던 이 민족이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복음의 능력과 기독교 신앙 때문입니다. 복음이 증거되는 곳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하는 긍정적인 신앙과,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다"는 적극적인 신앙이 심겨졌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눈에 아무 증거 안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도 여호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풍성한 축복을 받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벧전 1:21)
6. 25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의 수치와 고난의 역사를 기억함으로써 다시는 똑같은 실수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면서, 창조적인 미래를 열어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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