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하나님이 축복하신 결혼
본문
가정의 달을 맞이했습니다. 여러분들의 가정 위에 여호와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와 위로와 축복이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창세기에서, 첫번 결혼주례를 하시고 가정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살피려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 교회에서 가정에 대한 문제를 깊이 다루어 보려는 이유는 오늘의 위기는, 정국의 위기, 경제의 위기, 노사관계의 위기 이전에 가정의 위기라는 인식 때문입니다. 우리 ooo 교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실하고 아름다운 가정 건설을 위해서 힘써야 할 줄 압니다.
우리 모두가 사랑과 기쁨과 평화가 넘치는 아름다운 가정 건설을 위해서 기도하고 실천에 옮겨야 하리라고 봅니다. 오늘 우리 본문의 내용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떻게 가정을 만들어 주셨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숙한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분명한 가정의 목적을 세우시고, 여자를 남자에게 중매한 후에, 신부를 맞이하는 아담이 남자로서 최초의 위대한 사랑의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례사로서 가정을 이룬 목적 즉 결혼의 목적을 발표하십니다. 그리고 죄가 가정에 들어 오기 전에 행복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1. 이 본문을 통해서 깨닫는 진리는 결혼 즉 가정을 만드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사역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가정은 자연 발생적이 아닙니다. 무신론적 진화론자들은 인간자체가 아메바에서 점점 진화되었다고 합니다만. 살펴 보는 은혜(恩惠)의 시간(時間)을 마련했습니다.
어리석고 유치한 가설을 믿고 있다는 자체(自體)가 우스운 일입니다. 성경은 모든 만물이 그 종류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음을 밝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만물을 다스리는 책임자로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 아담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 아담은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긴 했으나,
그는 여전히 피조물인고로 부족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 2:18)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몇가지 진리를 캐어 봅니다.
그것은 피조물의 한계성이란 점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유아독존격으로 개성이 강하고, 교만한 마음으로 자기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할지 몰라도 결국 남자는 여자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여자는 남자의 한 부분이므로 남자의 사랑으로 만이 온전한 인격이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돕는 배필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배필은 여호와 하나님이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배필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셨으니만큼 주신 배필에 대해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배필이 귀하고 사랑스럽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배필을 늘 감사하며, 자신의 연약과, 부족을 메꾸어 주는 조력자로 생각하는 신본주의적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이 세상에 모든 공동체는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가정과 교회는 여호와 하나님이 직접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두 공동체는 신비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 두 기관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만들어졌으니 여호와 하나님을 중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중심하고 되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을 버린 가정, 여호와 하나님 없는 가정은 처음부터 가정의 본질과 사명이 무엇인지 모르고 출발하는 삶이 됩니다.
물질이 가정의 중심이 되거나, 향락이 가정의 중심이 되게 할 때 그 가정은 파멸을 가져옵니다.
왜냐하면 결혼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남자와 여자의 인격적 만남이 아니고, 단순히 성적 쾌락과, 물질을 얻기 위한, 지위를 얻기 위한 정략적 결혼 등이 오늘날 한국 가정의 위기가 된 것입니다.
이미 결혼해서 가정을 가진 우리들도 자신을 돌아보며 생기 넘치고 사랑이 넘치는 가정을,
만들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결혼을 앞두고 있는 청년들도 확실한 결혼관을 가져야 합니다. 나를 위한 배필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셨다는 믿음이 필요하고 그 배필을 돕고 사랑하면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가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배필을 찾기 위한 삶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본능적으로 한쪽을 찾기 위한 노력입니다. 그래서 고뇌하며 아퍼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짝을 찾는 것도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순종의 걸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신 배필을 감사하며 서로 도우며 사랑함으로써 완전한 인격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2. 크리스찬 가정에는 언제나 사랑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와를 소개합니다. 마치 결혼 예식장에서 신부의 아버지가 신랑에게 신부의 손을 잡고 들어와서 신랑에게 행복하게 살라고 부탁하는 듯한 장면이 있습니다.
우리 본문 23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중매자인 동시에 주례자의 역할을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를 창조하는 과정을 우리는 너무 어렵고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초자연적 창조 행위에 속한 것입니다. 그것은 신비스럽고, 아름답고, 성숙한 여인으로 만드셨습니다. 아름다운 신부로 만드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숙한 남자인 신랑과 성숙한 여자인 신부를 통해서 자녀를 낳으며 여호와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시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자녀가 가정의 중심이기 보다 부부가 가정의 중심이 됩니다. 자녀에 대한 사랑은 내림 사랑이기 때문에 누가 요구하거나 가르치지 않아도 합니다. 사실 부부의 사랑은 서로의 부족을 채워주는 조력자이기에 서로 노력하고 애써야 합니다.
마치 모닥불을 피우는 것처럼 그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계속 기름과 나무를 모아서 불이 활활 불타도록 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하와를 아담에게 이끌어 왔다는 표현은 여성은 남자와는 달리 수비적이요 소극적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끌어 와서 아담에게 데려왔습니다.
사실 남자나 여자나 그의 인격과 가치와 모든 권리는 완전히 꼭 같습니다. 그러나 성격과 기능의 차이가 있습니다. 하와는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이끌리어 아담에게 시집온 것입니다. 그런데 퍽 흥미있는 것은 이것을 본 아담이 인류 최초(最初)의 위대한 사랑의 고백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랑의 고백 가운데 아직도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에게 한 사랑의 고백만큼 더 크고 놀라운 것이 없다고 합니다. 흔히 하는 말로 나 너 좋아해, 사랑해 당신을, 오 나의 태양! 당신은 나의 모든 것 등입니다. 그러나 아담 신랑은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고 했습니다.
아직 인류역사(人類役事)에 이처럼 농도짙은 아름다운 사랑의 고백(告白)은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는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남편(男便)은 여호와 하나님처럼 그리스도처럼 섬겨야 할 여자의 몸의 근원입니다. 성경 표현대로 남자가 여자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男子)에게서 나왔다는 표현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하는 말씀입니다. 참된 크리스찬 가정은 언제나 사랑의 고백을 하는 가정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가정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며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있으며 여호와 하나님을 중심한 가정을 꾸며 가고자 할 때 언제나 그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아내와 남편과 자녀를 위해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참으로 한국 사람은 사랑의 표현도 할 줄 모르고 사랑의 고백(告白)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좋으면서도 토라진 말만 골라서 하고 좋으면서 한번 꺾어서 말하고, 좋으면서도 한번 구기고 퉁기면서 말하므로 자기를 주장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우리들의 문화적 토양과 언어와 풍속도 있겠지만 우리 크리스찬 가정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아름답고 활기찬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두운 언어보다 밝은 언어를, 거친 언어보다 아름다운 언어를 써야 합니다.
아내와 남편의 아무리 작은 봉사와 수고라도 꼭 여보 고마워요 감사해요 라고 말해야 합니다. 자녀들이 아무리 작은 봉사를 하더라도 꼭 고맙다는 말을 쓰십시요. 그리고 서로 위해서 기도하면서 그리스도안에서 더 넓은 사랑과 믿음을 갖도록 노력합시다.
그리고 자주자주 하루에 한두번 씩이라도 사랑한다는 말을 쓰기 바랍니다. 정 그 말을 못쓰겠거든, 남편과 아내는 각각 손을 꼭 잡아 주십시요,
첫번째 가정이 여호와 하나님을 중심하고 놀라운 사랑의 고백 위에 출발했듯이 오늘 우리 크리스찬들의 가정에도 언제나 사랑의 고백이 넘쳐야 할 것입니다.
아담은 하와를 가르켜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로 칭하리라"고 했습니다. 아담은 그 아내의 모든 것을 전부 알고 포용하고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사실 부부 생활에는 상대방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신앙적 배경, 학력도 서로 다른 사람끼리 부부가 된다는 것은 신비한 일입니다.
그러나 부부가 만날 때, 본능으로만 만나거나, 명예를 위해서나, 물질 때문에 만나서는 안되고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이끌리어 여호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배필을 감사하며 감격하는 아름다운 삶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3. 여호와 하나님의 주례사입니다. 사실상 첫번 결혼예식의 주례자인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미 창1:28에 첫 가정을 이루어 주시면서 위대한 주례사를 하셨습니다. 창2:28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은 우리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위해서 자녀를 낳으며 땅을 정복하고 충만하라는 문화적 명령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만물을 다스리는 관리자와 청지기의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삶의 의욕을 잃고 낙심하고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는 자학적인 행위가 얼마나 많습니까 생활은 안정이 되어가나 인간의 내부의 갈등은 심화되고 부동산은 많아졌으나 부부의 사랑은 텅비어 버렸고, 학식은 많아졌으나 상대방을 용납할 공간은 한치의 땅도 없어졌습니다.
GNP는 늘어났으나 자살자는 늘어나고 가정 파괴범, 성적인 탕자문화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결국 오늘의 위기는 경제적 위기, 정치의 위기, 사회의 위기 전에 가정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중심의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 책임이 우리에게 높아졌습니다.
악한 세대일 수록 모든 것을 잃어도 아름다운 가정을 가꾸어 가겠다는 결심이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복주신 가정, 여호와 하나님을 떠날 때 모든 것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이 본문의 끝 부분에 이 성경 기록자인 모세는 24절에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라"고 선언했습니다.
25절에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고 했습니다. 부부 간에는 촌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허물을 가리워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안에서 연합을 이루어 한 몸을 이룬 가정은 세상을 이기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께 인정 받고 사랑 받는 가정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렇게 우리 교회에서 가정에 대한 문제를 깊이 다루어 보려는 이유는 오늘의 위기는, 정국의 위기, 경제의 위기, 노사관계의 위기 이전에 가정의 위기라는 인식 때문입니다. 우리 ooo 교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실하고 아름다운 가정 건설을 위해서 힘써야 할 줄 압니다.
우리 모두가 사랑과 기쁨과 평화가 넘치는 아름다운 가정 건설을 위해서 기도하고 실천에 옮겨야 하리라고 봅니다. 오늘 우리 본문의 내용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떻게 가정을 만들어 주셨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숙한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분명한 가정의 목적을 세우시고, 여자를 남자에게 중매한 후에, 신부를 맞이하는 아담이 남자로서 최초의 위대한 사랑의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례사로서 가정을 이룬 목적 즉 결혼의 목적을 발표하십니다. 그리고 죄가 가정에 들어 오기 전에 행복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1. 이 본문을 통해서 깨닫는 진리는 결혼 즉 가정을 만드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사역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가정은 자연 발생적이 아닙니다. 무신론적 진화론자들은 인간자체가 아메바에서 점점 진화되었다고 합니다만. 살펴 보는 은혜(恩惠)의 시간(時間)을 마련했습니다.
어리석고 유치한 가설을 믿고 있다는 자체(自體)가 우스운 일입니다. 성경은 모든 만물이 그 종류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음을 밝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만물을 다스리는 책임자로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 아담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 아담은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긴 했으나,
그는 여전히 피조물인고로 부족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 2:18)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몇가지 진리를 캐어 봅니다.
그것은 피조물의 한계성이란 점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유아독존격으로 개성이 강하고, 교만한 마음으로 자기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할지 몰라도 결국 남자는 여자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여자는 남자의 한 부분이므로 남자의 사랑으로 만이 온전한 인격이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돕는 배필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배필은 여호와 하나님이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배필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셨으니만큼 주신 배필에 대해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배필이 귀하고 사랑스럽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배필을 늘 감사하며, 자신의 연약과, 부족을 메꾸어 주는 조력자로 생각하는 신본주의적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이 세상에 모든 공동체는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가정과 교회는 여호와 하나님이 직접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두 공동체는 신비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 두 기관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만들어졌으니 여호와 하나님을 중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중심하고 되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을 버린 가정, 여호와 하나님 없는 가정은 처음부터 가정의 본질과 사명이 무엇인지 모르고 출발하는 삶이 됩니다.
물질이 가정의 중심이 되거나, 향락이 가정의 중심이 되게 할 때 그 가정은 파멸을 가져옵니다.
왜냐하면 결혼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남자와 여자의 인격적 만남이 아니고, 단순히 성적 쾌락과, 물질을 얻기 위한, 지위를 얻기 위한 정략적 결혼 등이 오늘날 한국 가정의 위기가 된 것입니다.
이미 결혼해서 가정을 가진 우리들도 자신을 돌아보며 생기 넘치고 사랑이 넘치는 가정을,
만들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결혼을 앞두고 있는 청년들도 확실한 결혼관을 가져야 합니다. 나를 위한 배필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셨다는 믿음이 필요하고 그 배필을 돕고 사랑하면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가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배필을 찾기 위한 삶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본능적으로 한쪽을 찾기 위한 노력입니다. 그래서 고뇌하며 아퍼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짝을 찾는 것도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순종의 걸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신 배필을 감사하며 서로 도우며 사랑함으로써 완전한 인격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2. 크리스찬 가정에는 언제나 사랑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와를 소개합니다. 마치 결혼 예식장에서 신부의 아버지가 신랑에게 신부의 손을 잡고 들어와서 신랑에게 행복하게 살라고 부탁하는 듯한 장면이 있습니다.
우리 본문 23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중매자인 동시에 주례자의 역할을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를 창조하는 과정을 우리는 너무 어렵고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초자연적 창조 행위에 속한 것입니다. 그것은 신비스럽고, 아름답고, 성숙한 여인으로 만드셨습니다. 아름다운 신부로 만드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숙한 남자인 신랑과 성숙한 여자인 신부를 통해서 자녀를 낳으며 여호와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시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자녀가 가정의 중심이기 보다 부부가 가정의 중심이 됩니다. 자녀에 대한 사랑은 내림 사랑이기 때문에 누가 요구하거나 가르치지 않아도 합니다. 사실 부부의 사랑은 서로의 부족을 채워주는 조력자이기에 서로 노력하고 애써야 합니다.
마치 모닥불을 피우는 것처럼 그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계속 기름과 나무를 모아서 불이 활활 불타도록 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하와를 아담에게 이끌어 왔다는 표현은 여성은 남자와는 달리 수비적이요 소극적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끌어 와서 아담에게 데려왔습니다.
사실 남자나 여자나 그의 인격과 가치와 모든 권리는 완전히 꼭 같습니다. 그러나 성격과 기능의 차이가 있습니다. 하와는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이끌리어 아담에게 시집온 것입니다. 그런데 퍽 흥미있는 것은 이것을 본 아담이 인류 최초(最初)의 위대한 사랑의 고백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랑의 고백 가운데 아직도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에게 한 사랑의 고백만큼 더 크고 놀라운 것이 없다고 합니다. 흔히 하는 말로 나 너 좋아해, 사랑해 당신을, 오 나의 태양! 당신은 나의 모든 것 등입니다. 그러나 아담 신랑은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고 했습니다.
아직 인류역사(人類役事)에 이처럼 농도짙은 아름다운 사랑의 고백(告白)은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는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남편(男便)은 여호와 하나님처럼 그리스도처럼 섬겨야 할 여자의 몸의 근원입니다. 성경 표현대로 남자가 여자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男子)에게서 나왔다는 표현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하는 말씀입니다. 참된 크리스찬 가정은 언제나 사랑의 고백을 하는 가정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가정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며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있으며 여호와 하나님을 중심한 가정을 꾸며 가고자 할 때 언제나 그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아내와 남편과 자녀를 위해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참으로 한국 사람은 사랑의 표현도 할 줄 모르고 사랑의 고백(告白)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좋으면서도 토라진 말만 골라서 하고 좋으면서 한번 꺾어서 말하고, 좋으면서도 한번 구기고 퉁기면서 말하므로 자기를 주장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우리들의 문화적 토양과 언어와 풍속도 있겠지만 우리 크리스찬 가정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아름답고 활기찬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두운 언어보다 밝은 언어를, 거친 언어보다 아름다운 언어를 써야 합니다.
아내와 남편의 아무리 작은 봉사와 수고라도 꼭 여보 고마워요 감사해요 라고 말해야 합니다. 자녀들이 아무리 작은 봉사를 하더라도 꼭 고맙다는 말을 쓰십시요. 그리고 서로 위해서 기도하면서 그리스도안에서 더 넓은 사랑과 믿음을 갖도록 노력합시다.
그리고 자주자주 하루에 한두번 씩이라도 사랑한다는 말을 쓰기 바랍니다. 정 그 말을 못쓰겠거든, 남편과 아내는 각각 손을 꼭 잡아 주십시요,
첫번째 가정이 여호와 하나님을 중심하고 놀라운 사랑의 고백 위에 출발했듯이 오늘 우리 크리스찬들의 가정에도 언제나 사랑의 고백이 넘쳐야 할 것입니다.
아담은 하와를 가르켜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로 칭하리라"고 했습니다. 아담은 그 아내의 모든 것을 전부 알고 포용하고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사실 부부 생활에는 상대방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신앙적 배경, 학력도 서로 다른 사람끼리 부부가 된다는 것은 신비한 일입니다.
그러나 부부가 만날 때, 본능으로만 만나거나, 명예를 위해서나, 물질 때문에 만나서는 안되고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이끌리어 여호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배필을 감사하며 감격하는 아름다운 삶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3. 여호와 하나님의 주례사입니다. 사실상 첫번 결혼예식의 주례자인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미 창1:28에 첫 가정을 이루어 주시면서 위대한 주례사를 하셨습니다. 창2:28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은 우리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위해서 자녀를 낳으며 땅을 정복하고 충만하라는 문화적 명령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만물을 다스리는 관리자와 청지기의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삶의 의욕을 잃고 낙심하고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는 자학적인 행위가 얼마나 많습니까 생활은 안정이 되어가나 인간의 내부의 갈등은 심화되고 부동산은 많아졌으나 부부의 사랑은 텅비어 버렸고, 학식은 많아졌으나 상대방을 용납할 공간은 한치의 땅도 없어졌습니다.
GNP는 늘어났으나 자살자는 늘어나고 가정 파괴범, 성적인 탕자문화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결국 오늘의 위기는 경제적 위기, 정치의 위기, 사회의 위기 전에 가정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중심의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 책임이 우리에게 높아졌습니다.
악한 세대일 수록 모든 것을 잃어도 아름다운 가정을 가꾸어 가겠다는 결심이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복주신 가정, 여호와 하나님을 떠날 때 모든 것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이 본문의 끝 부분에 이 성경 기록자인 모세는 24절에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라"고 선언했습니다.
25절에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고 했습니다. 부부 간에는 촌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허물을 가리워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안에서 연합을 이루어 한 몸을 이룬 가정은 세상을 이기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께 인정 받고 사랑 받는 가정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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