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사명으로 자연을 보호하자
본문
사람들은 대부분 자연을 보호할 필요성에는 공감합니다. 그러나 또한 대부분 그것을 실행하는 일에는 소홀합니다. 자연 보호는 어느 특정한 나라의 사람들이나 환경 보호 단체에서만 행하는 특정한 일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이 증언하듯 자연에 대한 관리와 그 보호는 여호와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고유한 사명입니다. 창조의 사역과 함께 주신 절대적인 명령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연 보호가 구호와 형식으로 그쳐서는 안됩니다. 성도의 한 사명으로 인식하고 행동해야 온당할 것입니다.
1. 자연에 대한 성도의 사명(창8:17)
1) 여호와 하나님 뜻으로 정복함
본문에서 먼저 여호와 하나님은 땅을 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정복하라는 말씀은 단순하게 생물학적인 차원, 즉 양육 강식, 적자 생존의 원리대로 정복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자연 세계를 여호와 하나님 뜻에 합당한 세계로 만들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이 명령을 "문화 건설 명령"(Cultural)이라고 부릅니다. 아브라함 카이퍼라는 신학자는 말하기를 '자연의 주권자는 여호와 하나님이시지만 그 주권의 주된 도구는 인간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모든 환경과 세계에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해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복한다는 것은 자연을 외적으로 종속화, 자원화 할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으로 재창조한다는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자연을 단순히 물질적인 자원이나 재산 가치로 여기고 그것에 집착한다면 이는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정복당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2) 여호와 하나님 뜻대로 관리함
다음, 여호와 하나님은 자연을 적극적으로 관리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관리는 정복 후에 하는 일입니다. 정복되지 않은 것은 관리도 되지 않습니다. 또 온전히 관리되지 않은 것은 참된 의미에서 정복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관리라고 하는 뜻은 자연을 여호와 하나님 뜻대로 운용하고 선용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여기에서 진정한 자연 보호의 기독교적인 개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자연 만물을 대하되 세속적인 가치나 욕망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이 관리하도록 맡겨주신 것임을 인정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선용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자연에 대한 사명입니다.
2. 성도의 자연 보호 원리(엡5:2)
1) 창조 원리대로 보존함
자연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래 창조하신 원리와 목적대로 보존하는 것이 성도의 자연보호 원리의 근본입니다. 즉 자연물 각각 고유한 속성과 특성을 보호하고 육성시키는 것입니다. 그 창조된 본래의 모습, 본연의 자리를 지켜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생물들의 멸종을 방지하고, 자연 환경 훼손을 막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창조의 순리를 파괴하는 그릇된 유전공학 및 생물학의 행동을 규제하고 감시해야 할 것입니다. 유전공학을 악용하여 창조의 순리를 깨뜨리려는 사단적인 사조를 막아야 하겠습니다.
2) 절약하고 아껴줌
자연물은 여호와 하나님이 인류에게 삶의 자원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남용하거나 악용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오늘날 지구상의 자원이 어느 특정한 국가나, 인종이나, 집단에 의해 독식, 남용, 악용됨으로써 심각한 자원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으며 훼손, 상실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신의 가정, 직장, 교회부터 물질을 절약하고, 자신과 관계된 동식물을 아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후 남은 떡과 고기는 버리지 말고 거둘 것을 명하셨습니다(요6:1-12). 여기서 자연물을 아끼시는 정신을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목자 없는 양이 방황하고 위험에 처한 것을 돌아보시는 것에서 동물에 대한 사랑과 애정도 깊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이 증언하는 여호와 하나님은 동식물들에게도 깊은 애정을 지니신 분이며, 그와 같은 모습을 그리스도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욥39:1;시104:27,28;시147:9). 그러므로 사랑을 따라 자연물을 보살피는 것이 성도의 자연 보호 행동의 첩경입니다.
3. 자연보호와 성도 신앙의 관계(욥42:12)
1) 신앙 진위를 가늠짓는 요소임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그 사람의 인품을 가늠짓는 요소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가령 그 사람의 집에 기르는 가축의 상태, 또는 그 사람이 경작하고 있는 논밭의 상태를 보면 그 사람의 마음가짐이나 성질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축이 굶주리고 병든 집안, 논밭에 풀이 무성해도 방치하는 집안의 사람들은 그 성실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신앙 진위 여부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자연을 남용하고 훼손하는 사람, 자신과 관계된 동식물을 학대하거나 방치하는 사람이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지닌 성도라고 하겠습니까? "의인은 그 육축의 생명을 돌아보나 악인의 긍휼은 잔인이니라"(잠12:10)는 성경 말씀만 봐도 자연에 대한 사랑이 없는 사람은 참성도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물인 자연 만물을 보호, 선용치 않고 낭비하고 악용하고, 무자비하게 대하는 것은 곧 사단에게 속한 불신자들의 행태인 것입니다.
2) 신앙발전의 요소임
자연을 아끼고, 보호하고, 선용하는 성도들은 그 과정과 그 결과를 통해 신앙의 깊은 지혜와 자원을 얻게 됩니다. 심는 대로 거둔다는 법칙을 체득하게 될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자연 만물을 선용하면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결과, 풍요로운 결과가 주어진다는 진리를 깨닫고 경험케 되는 것입니다. 또 동식물을 아끼고 보살피는 과정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성도와의 사랑과 믿음의 원리도 터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연에게 있어서 인간은 신(神)인 것입니다. 인간에 의해 행복해질 수도 불행해질 수도 있는 존재가 자연입니다. 그러므로 사랑과 자비를 자연에게 베푸는 성도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그 얼마나 성도를 아끼고 사랑하시는지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자연 보호는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절대 사명이자 성도의 신앙과 그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요소입니다. 이 사명을 실현함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 안에 더욱 깊이 들어가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빕니다.
1. 자연에 대한 성도의 사명(창8:17)
1) 여호와 하나님 뜻으로 정복함
본문에서 먼저 여호와 하나님은 땅을 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정복하라는 말씀은 단순하게 생물학적인 차원, 즉 양육 강식, 적자 생존의 원리대로 정복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자연 세계를 여호와 하나님 뜻에 합당한 세계로 만들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이 명령을 "문화 건설 명령"(Cultural)이라고 부릅니다. 아브라함 카이퍼라는 신학자는 말하기를 '자연의 주권자는 여호와 하나님이시지만 그 주권의 주된 도구는 인간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모든 환경과 세계에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해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복한다는 것은 자연을 외적으로 종속화, 자원화 할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으로 재창조한다는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자연을 단순히 물질적인 자원이나 재산 가치로 여기고 그것에 집착한다면 이는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정복당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2) 여호와 하나님 뜻대로 관리함
다음, 여호와 하나님은 자연을 적극적으로 관리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관리는 정복 후에 하는 일입니다. 정복되지 않은 것은 관리도 되지 않습니다. 또 온전히 관리되지 않은 것은 참된 의미에서 정복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관리라고 하는 뜻은 자연을 여호와 하나님 뜻대로 운용하고 선용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여기에서 진정한 자연 보호의 기독교적인 개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자연 만물을 대하되 세속적인 가치나 욕망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이 관리하도록 맡겨주신 것임을 인정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선용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자연에 대한 사명입니다.
2. 성도의 자연 보호 원리(엡5:2)
1) 창조 원리대로 보존함
자연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래 창조하신 원리와 목적대로 보존하는 것이 성도의 자연보호 원리의 근본입니다. 즉 자연물 각각 고유한 속성과 특성을 보호하고 육성시키는 것입니다. 그 창조된 본래의 모습, 본연의 자리를 지켜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생물들의 멸종을 방지하고, 자연 환경 훼손을 막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창조의 순리를 파괴하는 그릇된 유전공학 및 생물학의 행동을 규제하고 감시해야 할 것입니다. 유전공학을 악용하여 창조의 순리를 깨뜨리려는 사단적인 사조를 막아야 하겠습니다.
2) 절약하고 아껴줌
자연물은 여호와 하나님이 인류에게 삶의 자원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남용하거나 악용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오늘날 지구상의 자원이 어느 특정한 국가나, 인종이나, 집단에 의해 독식, 남용, 악용됨으로써 심각한 자원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으며 훼손, 상실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신의 가정, 직장, 교회부터 물질을 절약하고, 자신과 관계된 동식물을 아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후 남은 떡과 고기는 버리지 말고 거둘 것을 명하셨습니다(요6:1-12). 여기서 자연물을 아끼시는 정신을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목자 없는 양이 방황하고 위험에 처한 것을 돌아보시는 것에서 동물에 대한 사랑과 애정도 깊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이 증언하는 여호와 하나님은 동식물들에게도 깊은 애정을 지니신 분이며, 그와 같은 모습을 그리스도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욥39:1;시104:27,28;시147:9). 그러므로 사랑을 따라 자연물을 보살피는 것이 성도의 자연 보호 행동의 첩경입니다.
3. 자연보호와 성도 신앙의 관계(욥42:12)
1) 신앙 진위를 가늠짓는 요소임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그 사람의 인품을 가늠짓는 요소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가령 그 사람의 집에 기르는 가축의 상태, 또는 그 사람이 경작하고 있는 논밭의 상태를 보면 그 사람의 마음가짐이나 성질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축이 굶주리고 병든 집안, 논밭에 풀이 무성해도 방치하는 집안의 사람들은 그 성실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신앙 진위 여부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자연을 남용하고 훼손하는 사람, 자신과 관계된 동식물을 학대하거나 방치하는 사람이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지닌 성도라고 하겠습니까? "의인은 그 육축의 생명을 돌아보나 악인의 긍휼은 잔인이니라"(잠12:10)는 성경 말씀만 봐도 자연에 대한 사랑이 없는 사람은 참성도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물인 자연 만물을 보호, 선용치 않고 낭비하고 악용하고, 무자비하게 대하는 것은 곧 사단에게 속한 불신자들의 행태인 것입니다.
2) 신앙발전의 요소임
자연을 아끼고, 보호하고, 선용하는 성도들은 그 과정과 그 결과를 통해 신앙의 깊은 지혜와 자원을 얻게 됩니다. 심는 대로 거둔다는 법칙을 체득하게 될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자연 만물을 선용하면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결과, 풍요로운 결과가 주어진다는 진리를 깨닫고 경험케 되는 것입니다. 또 동식물을 아끼고 보살피는 과정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성도와의 사랑과 믿음의 원리도 터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연에게 있어서 인간은 신(神)인 것입니다. 인간에 의해 행복해질 수도 불행해질 수도 있는 존재가 자연입니다. 그러므로 사랑과 자비를 자연에게 베푸는 성도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그 얼마나 성도를 아끼고 사랑하시는지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자연 보호는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절대 사명이자 성도의 신앙과 그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요소입니다. 이 사명을 실현함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 안에 더욱 깊이 들어가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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